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텍스트T 2
정연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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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아빠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돈다.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엄마가 돌아가신다. 충격.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빠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원망만 있다.


이제 아빠 고향으로 가게 된다. 처음으로 가게 된 아빠 고향. 왜 그럴까? 소설은 여기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왜 아빠는 밖으로 돌았을까? 그는 왜 고향에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와서 왜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부모의 죽음은 충격이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다.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남남처럼 지내던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낯선 곳에서. 어쩌면 낯선 곳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에 좋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을 늘 웃는 표정의 아이로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자신의 슬픔으로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아이. 이런 아이는 슬픔이 안으로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슬픔은 어느 정도 고여 있다가도 밖으로 흘러야 한다.


슬픔을 가둬두었다간 언젠가 댐이 터지듯 터져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슬픔의 둑에 구멍을 내는 역할을 무엇이 할까? 언제까지 슬픔에 갇혀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슬픔을 내보낼 구멍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다.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온 시. 시는 가슴 속에 남아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슬픔이 나갈 구멍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아이가 시를 만나면서 시를 쓰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면서 피해가지 않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시가 곳곳에 나온다. 주옥같은 시라는 표현이 식상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시들은 마음 속에 콕콕 박힌다.


그런 시들을 읽는 재미, 소설의 상황에 맞게 등장하는 시는 우리에게 시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여기에 여자 등장인물, 은혜. 그야말로 은혜다. 축복이다. 이 은혜로 하여금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모든 것이 주인공과 반대인 듯하지만, 그런 은혜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 그 상처를 은혜는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자신에게도 현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아빠와 화해하는 장면까지 가지 않는다. 아니, 갈 필요가 없다. 그 이후는 이제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지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녹록치 않음을 회피로 가게 하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다. 시를 통해서 또 은혜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본 주인공은 이제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자신을 긍정하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이는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회 속에서 사는가? 후회는 앞으로 나아갈 발판이 되면 좋지만, 과거에 나를 머물게 하면 안 된다. 주인공인 아빠, 이 사람은 후회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과거에 잡혀 있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현재를 살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면서 아웅다웅 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하지 못하고 회피했다.


나약함, 한때 시를 썼다는 사람이 시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레 현재가 다가왔다. 현실이 그의 앞에 떡 나타났다. 그 역시 현재를 살아야 한다. 자식과 같이 살아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기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신이 떨치고 떠난 곳. 새로운 시작은 자신이 버린 곳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제 현재 속에서 길고도 긴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자식과 함께 하는 삶을.


이런 삶. 자식은 시를 통해서 자기 슬픔을 내보내는 길을 찾았고, 은혜라는 친구를 통해 현실에 충실한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더 성숙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슬픔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 또 그 슬픔에 함께 하는 시들. 시를 통해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소설은 한 아이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시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도 있고, 소설 속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아이는 시를 통해 슬픔을 위무하고, 슬픔을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는 시를 통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 이게 바로 시의 힘이다. 이런 시들을 곁에 두고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사람들이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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