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 - 존 버거와 이브 버거의 편지
존 버거.이브 버거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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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또는 어머니와 딸이 아니면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편지란 전화 통화와는 달리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오고 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그 다듬은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더 내밀한 생각들이 담기게 되고, 그런 편지들을 주고받는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간에 주고받은 편지. 그것도 그림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들이 화가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화가가 아니더라도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더 좋은 관계를 맺어갈테고.


존 버거와 이브 버거가 쓴 편지들. 서로 내용을 주고받는데, 그림을 매개로, 또는 화가를 매개로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확장해 나간다. 그 중에서 몇몇 기억해 두고 싶은 구절들이 있다.


소음은 설명을 덮어버리고, 침묵은 계속해서 현재를 따져 묻는 질문들을 내놓지. 둘 다 온전히 살아 있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아.

무엇이 도움이 될까? 아마도 '질문하기'겠지. 그리고 질문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야.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하나씩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거야. (41쪽)


그렇다. 좋은 그림은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답을 찾아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질문. 아무런 질문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네가 보고, 경험한 일이 전부는 아니라고. 다른 모습도 있다고.


드로잉이라는 행위를 통해 들여다보면, 나무나 돌멩이, 꽃 한 송이는 우리가 읽으려는 텍스트임이 분명하지요. 알려지지 않은 언어, 말이 없는 언어로 쓰인 텍스트예요. 우리는 선과 명암과 색깔 들을 종이에 입히며 그것의 형태감을 만들려고 해요! 드로잉하는 사람은 이름 없는 것들의 통역자이고요…. (66쪽)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계속해서 질문한다. 이 질문은 이브 버거의 말처럼 통역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화가가 통역한 결과를 가지고 그림을 보는 사람은 또다른 통역을 시도한다. 계속되는 질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화가의 질문과 보는 사람의 질문이 서로 교차하면서 그림은 말이 없는 존재들에게 말을 부여한다.


이렇게 그림을 통해서 나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존재를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통해서 질문을 하게 된다. 질문을 하면 대화를 하게 된다. 마치 존 버거와 이브 버거가 편지를 통해 대화를 하듯이 우리들도 그림을 통해서 다른 존재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림과도 대화를 하게 될테고.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서 그림에 대해서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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