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생일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5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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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르귄 소설을 천천히 읽는다. 일부러. 천천히. 그래서 내용을 여러모로 생각해 본다. 이건 없는 세상이다. 없는 세상인데, 이상하게도 있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왔던 세상, 감히 말로 꺼내지 못했던 세상과 사람들이 르귄 소설에 등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르귄은 소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소설가가 신이 되는 순간인데, 소설 속에서 르귄은 신을 부정한다. 이 책 제목이 된 '세상의 생일'이란 소설을 봐도 신이 과연 존재하는가 또는 신이란 무엇인가 아니면 우리는 신을 어떤 존재로 믿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신이 존재하고, 신은 계승이 되지만, 이 신은 홀로가 아닌 둘이 하나가 된 신이다. 혼자서는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소설 속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미래를 볼 수는 있지만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또한 사람들은 신은 믿지만 어떠한 신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이라고 선언한 존재를 믿는다. 여러 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은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 없는 세상이 천국일까? 아니다. 그 점을 이 소설집에 실린 '잃어버린 천국들'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우주선에서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우주선에서 영원히 나아가는 일을 추구하려는 천사들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에게 갈등이 없는 우주선은 천국이다. 


그런데 왜 이들이 '발견'이라는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게 되었는가? 지구와 비슷한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모험을 위해서다. 모험은 갈등을 수반하고, 갈등은 또한 죽음까지도 불러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가 없는, 갈등이 전혀 없는 우주선을 뒤로 하고 또다른 행성에 정착하기도 결정하기도 한다.


이들은 갈등없는 천국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갈등이 있더라도 자신이 부딪쳐 살아가는 세상을 원한다. 


그렇다면 어떤 갈등이 일어날까? 세상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고, 어떤 갈등은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으로 안해 너무도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한다. 다만, 이 갈등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이 갈등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소설집에 실린 소설 중 몇 편은 다른 결혼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만으로 결합되는 결혼이 아닌,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결합하는 네 쌍의 결합된 가족이 이루는 결혼 생활도 보여준다. 


또한 남자로 태어난 고통을 반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애트우드가 쓴 "시녀들'에서 여성들이 애 낳는 기계로 전락하듯이, '세그리의 사정'이라는 소설에서는 남자들이 애낳는 기계나 싸우는 기계로 전락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아니다. 그러니 남자와 여자의 상황이 바뀐 세상 역시 행복할 수가 없다. 르귄은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함께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소설에도 나온 '옛음악'이라는 사람을 통해 혁명이, 해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혁명이란 내가 춤출 수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혁명은 진정한 혁명이 아니다. '옛음악과 여자 노예들'을 읽으면서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되고.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총8편이 소설이 실려 있다) 지금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우리 세상에는 없는 세상을 경험한다. 없는 세상을 있는 세상으로 만나면서 유토피아를 생각한다. 르귄은 이런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즉, 소설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여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역시 르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 르귄이 쓴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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