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가 담겼는지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아서 잠깐 주춤거리다가,

시집에 담긴 시 중에서 한 편 적어본다.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 좀 걸어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쪽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이 대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인데,

'4월이면 바람 나고 싶다'는 이 시는 그냥 제목에서부터 좀 웃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곧 황사 바람도 불어올 거고, 4월도 올 건데, 그럼 바람이 나도 괜찮을 걸까 묻고 싶은.

아마도, 여기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좀 날려 보내고 싶은 마음이려니 한다.

시 구절에서 그의 삶이 보이는 듯하기도 하지만, 내가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고,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가 마신 술들을 한순간 토해낸다면 집 앞에 작은 또랑 하나를 이루리라 그 취기를 풀어 권태로운 211번지 주민들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열정으로 몰아가고 나는 빈 소주병이 되었으면,

혼이 빠져나가듯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모아 뭉게구름을 만들면 우울증의 애인을 잠시 즐겁게 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웃는 애인 앞에서 구겨진 담뱃갑이 된다면,

 

내가 읽어온 책들의 활자를 풀어 벽촌의 싸락눈으로 내리게 하고 만남과 이별의 숱한 사연들을 가랑비로 내리게 한다면, 그리고 속이 텅 빈 가을 벌판의 허수아비가 된다면,

주저하다 보내지 못했던 수많은 편지의 허리 굽은 글씨들을 바로 펴 삼천리 금수강산을 그릴 수 있다면 북어대가리 같은 사유의 흔적만 남더라도 한결 가벼워진 몸을 쉽게 눕힐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누워 썩을 수 있다면,

제 영혼은요 거름이 되고 공기가 되어서 우울에 지친 그대 어깨 위에 잠시 머물고 잠시 머물며 썩어 거름이 되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썩기 위해 우울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없이 깊은 어느 곳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되어버린 시도 같이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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