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크리스마스 아침에 엄마가 교회에 가기 전, 조카(엄마의 손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조카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셨냐고 물었다.

8세 조카 하는 말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안 왔어요. ㅠㅠ"

형아 옆에 있던 6세 조카는 갑자기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유치원에서 배웠다던 노래를 불렀단다.

"루돌프 사슴 코는~~~~~~~ "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말을 듣고 깔깔거렸다.

산타클로스가 안 와서 서운했구나, 그래도 아직은 믿는구나 싶었다.

 

근데 뭐, 산타클로스는 안 왔어도 택배 아저씨는 다녀갔을 터이니...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니다. 비밀스러운 낭만이 없어져서 슬픈 건가?

 

 

정확하게 기억에 없다.

나는 언제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는지...

 

분명 어렸을 적에 양말을 만들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 눈을 뜨면 양말 속에 과자며 기타 등등 뭔가가 들어있기도 했다.

거기까진 기억난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는 그냥 빨간 글씨, 휴일, 뭘할까 고민하는 날, 이런 저런 일들에 돈이 좀 들겠구나, 같은...

그냥, 어른의 365일 중 하루가 되어버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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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2014-12-28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숙모는 아들이 셋인데요.
첫째와 둘째는 이미 초등학생이고 산타의 존재가 아빠라는 걸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셋째한테 그걸 안말하고 환상을 지켜주는 모습이 예쁘더군요 ㅋㅋㅋ

구단씨 2014-12-30 15:01   좋아요 0 | URL
아이들 마음이 참 예쁘네요. ^^
스스로 알게 될 때까지는 저도 말 안해주고 싶어요.

Breeze 2014-12-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애들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었던것 같아요.
언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받았다는 친구의 말에 `베개 밑에랑 잘 찾아봐`라고 말하는 아들녀석이 아직도 생각나요. ㅋㅋ

구단씨 2014-12-30 15:00   좋아요 0 | URL
녀석들, 참나... ㅎㅎ
요즘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믿을까 싶었거든요.
선물도 콕 찍어서 주니까 뭐... ^^
 

 

 

언젠가부터, 늦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가 무서운 적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 무서움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조금 무뎌진 건지, 예전보다는 덜 하다. 뭐 별것도 아닌 걸로 그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경험이 아니었기에 그 기억이 더 오래가는 듯하다. 위험한 말이 오고 가서가 아니고, 안 좋은 소식이나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 많아서였다. 절대 유쾌하지 않을 일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밤중에 도착하는 소식 중에는 외로움, 혹은 쓸쓸함이 담겨 있는 것도 많았다. 자정을 전후로 들어오는 문자가 특히 그랬다. 밤이라는 시간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는 이는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었고, 대개 가까운 사이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을 웃음과 같이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다행인... 때로 바쁜 시간이 지난 후 찾아온 여유에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시간이거나, ‘그냥’이라는 이유로 스스럼없이 말문을 열 수도 있는 시간. 그래서 한밤중의 문자가 안 좋은 소식들로 불안한 것보다 괜히 마음이 허해지는 순간으로 변해가곤 했었다.

 

 

외로운 밤이 있다.

'아니 이건 그리움이야, 아니 이건 고독이지, 고독은 나의 친구인걸' 하고

아닌 체해보아야 어쩔 수 없이 사무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움에는 눈물이 없다.

메마른 가슴이 괴롭게 사람을 들쑤시는 밤.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194페이지)

 

 

 

이상한 밤이었다.

요즘, 이상하게 잘못 걸린 전화가 자주 온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 그것도 밤에 주로. 지금 번호를 사용한지 1년쯤 됐는데, 그동안 잘못 걸린 전화 어쩌다 한번 받기는 했어도 요즘처럼 자주 오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

‘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불가능하다.’

비루한 고백을 들어줘서 고마워. 오랫동안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마지막으로 어떤 주저도 없이 말할게.

행복해라, 꼭. (말하자면 좋은 사람 198페이지)

 

 

 

며칠 전 금요일 밤, 자정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문자 한 통이 들어온다.

 

“00아, 잘 지내니?”

모르는 이름이기에 잘못 온 문자려니 싶어 무시했다.

몇 분쯤 지나자 다시 또 문자가 들어온다.

“00아, 나야. 보고 싶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상대방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문자 잘못 보내셨습니다.”

상대가 잘 알아들었겠거니 했다. 잘못 수신된 문자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으니, 알아듣고 이젠 문자를 안 보내겠구나 했다. 그런데 이 사람 이젠 문자가 아니라 전화를 걸어온다. 순간, ‘이걸 받어, 말어?’ 몇 초의 고민을 했더랬다. 굳이 잘못 보냈다는 문자에 왜 전화를 걸어올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 알바 아니라는 마음이 커서, 귀찮아서였다. 그래도 한 번 더 친절해도 될 것 같아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말 00 휴대폰이 아닌가요?”

“모르는 분입니다. 전화 잘못 거셨어요. 제가 이 번호를 1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바로 전화를 끊을 줄 알았다. 전화를 잘못 걸었다는데, 상대방은 자기가 찾는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끊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 전화를 끊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내가 먼저 전화를 끊겠다고 말하고 종료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이 남자가 먼저 말문을 연다.

 

“죄송합니다. 00은 헤어진 여자 친구인데요.”

그래서?

“참고 참다가 1년이 넘어서야 전화를 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 사이 전화번호가 바뀐 걸 몰랐어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번호라 계속 사용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문자 잘못 보냈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고 전화까지 하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네.”

“......”

“저기요?”

“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평소 하던 대로 했다. 나와 상관없는 이 얘기를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찾는 분의 전화번호가 바뀐 걸 알았으니, 이제 이 전화를 끊어야하지 않겠어요?”

“아, 예. 그렇죠. 그래야죠...”

근데 왜 끊겠다는 말이 없어?

내가 먼저 끊어야겠다고 다시 말하려고 하는 순간, 상대가 다시 말문을 연다.

“정말 거짓말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00과 목소리까지 비슷하네요. 처음엔 본인인데 아닌 척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말의 억양이 달라서 아닌 걸 알았어요. 그쪽은 목소리가 좀 더 낮네요.”

“저에게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저는 그쪽과 계속 통화할 이유가 없는데요.”

냉정하게 들릴 정도로 딱 잘라 말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할 이유도 없었다. 상대를 배려하고 싶어도,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을 찾아 데려다 줄 수도 없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 말투가 정말 스팸전화 끊듯이 ‘뚝’ 끊어버릴 수 없게 했다. 그렇게 나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 이어져오는 말.

“보고 싶은 거 그동안 잘 참았는데, 오늘은 정말 못 참겠어서요. 한마디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안하던 짓을 했어요. 죄송했습니다. 제가 먼저 끊겠습니다...”

뚜. 뚜. 뚜...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오 분에 가까운 시간동안 뭐가 지나갔나? 뭐지, 이건? 아, 진짜...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하는 순간 증기처럼 아득한 두려움이 나를 덮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시간 토막들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을까.

진짜는 죄다 도둑맞고,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아의 금고 속에는 엉뚱한 모조품만 잔뜩 쟁여져 있는 느낌이다.

스물두 살의 첫새벽처럼 나는 텅 빈 주방 앞에서 나지막이 읊조린다.

누가 너를 내게 보내주었지? (비자나무 숲 262페이지)

 

 

 

 

멀쩡한 기분이었다. 두통이 좀 심했던 거 말고 특별히 더 나쁠 게 없었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잠들려고 했던 기운을 다 깨워놓고 이상하게 멜랑콜리한 기분까지 남겨놓다니. 그 사람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괜찮아졌는지 어땠는지 몰라도, 그녀의 전화번호가 바뀐 것을 알고 이제 삭제하고 개운해졌는지 몰라도, 이젠 정말 그 미련을 버렸는지 몰라도... 나는 괜히 우울해졌다. 전혀 모르는 남인, 누군가의 외로움이 쓸데없이 전염된 듯했다. 수화기 너머 누군가의 쓸쓸함이 그대로 건너온 듯했다. 뭐가 이래. 아, 이런 거 정말 별론데.

 

 

잠이 다 깼다. 이대로 잠들기는 어려울 듯하여 양양의 책 제목이 생각나서 들춰보다가 문득, 내 전화번호 전 주인이 궁금해졌다. 나에게 온 잘못 걸린 전화는 남자를 찾는 전화도 있었지만 대부분 여자를 찾는 전화였다. 같은 이름의 여자를 찾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번호연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은 듯했다. 그 말은, 굳이 바뀐 전화번호를 전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 아닌가. 본인이 먼저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이상 타인이 그 번호를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나에게 잘못 걸려온 전화를 생각해보니, 1년 동안 이 사람들은 내 전화번호 전 사용자와 연락이 없었다는 건가? 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람을 찾는 거지? 전화한 그 남자는 1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혹시, 좁은 편도 1차선 같은 길을 가고 있었을까.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길, 상한 마음에 '나 없이 잘 지내지 말라'고 소심한 복수라도 했던 걸까. 그래도 결국 쓸쓸해진 마음을 어쩔 수 없어 그녀를 찾았던 걸까.

 

 

한 사람을 떠올렸다. 늦은 밤 전화해서 내려앉은 목소리를 들려주던, 늦은 퇴근길에 걸음은 무겁고, 불 꺼진 집에 들어와 시어진 김치에 물을 만 밥으로 허기를 달랬다던, 외롭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목소리. 누구나 사는 게 비슷하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외롭다고 말하던 사람의 가슴은 쓸쓸했겠구나, 싶다. 이런 거였구나. 양양이 평범하다면 평범한 일상을 두고 말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를, 어쩌면 알 것도 같다.

 

늦은 밤 불쑥 이 책을 펼쳐 들었던 건, 제목에서 흐르는 그 쓸쓸함 때문이다. 아닌 체하려고 해도 안 되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침묵이 기어코 또 다른 말이 되어 뛰쳐나오고야 마는 것. 함박눈이 펑펑 내리며 추위가 더 짙어지고, 양양의 노랫말이 되어버린 그녀의 끼적임은 그래서 '비슷한 사람'이란 이유로 우리를 붙든다. 닮아있음을 부정하지 말라고, 닫힌 창문 열고 손 뻗으면 바로 닿는 사람들이라고... 살아가는데 때로 말이 없어도 되고 표정이 없어도 되고 혼자여도 되지만, 가끔은 딱 한 마디가 필요한 때가 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한 마디만. '어쩌면 우린, 비슷하구나.' 느낄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 필요할 때. 이 책에서 그녀가 뿜어대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 같은 시간 앞에 괜히 민망해진다. '너도 그렇잖아' 건네는 한 마디에 모든 감정을 읽힌 듯 얼굴이 붉어진다. 나도 모르는, 혹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감정을 타인이 살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다. 전화를 잘 못 걸었던 그 남자에게 괜찮아질 거라는, 진심어린 한 마디라도 해줄 걸 그랬나 싶은 마음에 뒤늦은 후회를 한다.

 

 

 

 

외롭게 혼자 맞이하는 쓸쓸한 죽음도 있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떠나는 행복한 죽음도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떠날 때는 우리 모두 혼자다.

(기억해줘 184페이지)

 

 

 

 

나답지 않게,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신경이 쓰여 생각의 오지랖을 넓혔다.

이상하게, 괜히 쓸쓸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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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학도서 출판그룹 사이언스북스입니다. :)


사이언스북스에서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의 신간,

왕의 한의학』이 출간되었습니다.

신동아, CBS, 프레시안에서 큰 인기를 끈 '왕의 한의학'의 정수를 한데 모은 도서로

조선 왕의 몸과 질병 속에서 조선 역사의 비밀을 풀어내는 도서입니다.

의학과 건강 특히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읽는다!

조선 왕들의 몸을 진단하고 현대인들의 마음을 처방한다



최근 조선 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 붐이 뜨겁다. 여름에는 극장가에서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이 1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텔레비전에서 사도세자의 비극을 다룬 「비밀의 문」, 광해군의 왕위 계승 이야기를 다룬 「왕의 얼굴」 등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조선 시대는 스토리텔링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100만 부를 돌파하고 정치사에서부터 민중사, 그리고 미시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선 역사 관련 서적들이 빈번하게 출간되며 출판 불황 속에서도 조선 시대사 관련 출판 시장은 나름의 성장세를 유지해 가고 있다. 이것은 1990년대 초⋅중반 『조선왕조실록』의 국역 완료 이후 그 범위와 깊이를 확대해 가고 있는 조선 시대 연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의 기록 문화 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왕들의 모습은 다채롭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든 사관들은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대 조선 왕들의 삶과 정치적 행위 등 모든 것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휘둘리고, 왕권과 신권의 우열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따지는 민심의 향배에 불안해했던 조선 왕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록에는 조선 왕의 공식적인 삶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그들의 숨기고 싶었던 육체적, 정신적 아픔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조선 왕은 천명(天命)을 대리하는 초월자인 동시에 현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자였다. 그리고 자기만의 사생활과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었다. 따라서 때에 따라 공식적 삶이 주는 스트레스는 왕의 삶과 건강을 망치기도 했고, 반대로 왕의 건강과 질병은 정치사를 뒤바꾸기도 했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우리말 완역 이후 『승정원일기』 등에 대한 번역과 전산화 작업이 진척되면서 왕의 육체를 둘러싼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번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의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는 바로 이런 학문적, 콘텐츠 산업적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책이다.

전작 『낮은 한의학: 알기 쉽게 다가오는 한의학의 지혜』를 통해 대중의 눈높이에서, 현대인의 건강 수요에 맞춰 한의학의 오래된 역사와 지혜를 소개한 바 있는 이상곤 원장은 이번 책 『왕의 한의학: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에서 조선 한의학의 지식과 기술의 정수가 응집되어 있었을 조선 왕실의 의료와 의학, 그리고 그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이상곤 원장은 왕들의 질병 및 치료 기록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태종, 세종 때부터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 때까지 실록 및 아직 번역되지 않은 영역이 더 많은 『승정원일기』와 『약방일기』 등의 왕실 의료 관련 기록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해독해 가며 조선 왕실의 의학, 즉 ‘왕의 한의학’의 비밀을 파헤쳐 간다.


 

***


『왕의 한의학』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왕의 한의학』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 2014년 12월 18일(목)부터 12월 25일(목)까지 입니다.

셋, 추첨인원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입니다.

다섯, 서평기간2015년 1월 1일(목)부터 1월 15일(목)까지 15일간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2월 25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12월 25일 이후까지 확인이 안되면 선정이 자동취소됩니다.

마지막, 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5일간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왕의 한의학』 서평단 발표 포스팅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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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표지가 예뻐서 눈에 담았다.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 찬 소설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딱 그 느낌인 듯하다.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의 열정은

사랑이 끝난 후의 그 상실감과 늘 함께인 듯하다.

 

젊은 남녀의 사랑과 권태, 재회를 가볍지만 감각적으로 그려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소설을 기대하지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깊어질 것만 같다.

 

그 사랑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줄 것 같아서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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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아버지 차순봉(유동근)은 자식들을 상대로 불효자 청구 소송을 했다. 자식들에게 성인이 된 후에 들어간 돈을 계산해서 청구한 거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야 말 그대로 미성년이니 부모가 자식을 부양해야 할 의무라고 계산에서 뺐나 보다. 암튼 삼 남매에게 청구된 금액은 컸다. 그런 소송을 받아들인 판사도 의아해 하면서 이 소송을 지켜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자식을 상대로 왜 이런 소송을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알고 있기에 무시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러면서 차 씨 삼 남매에게 강조한다. 이 소송은 판결이 아니라 조정으로만 진행하겠다고, 그러니 아버지와 합의를 하라고 조정 자리에 나온 삼 남매에게 말한다. 그럼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은 뭔가. 결혼 안 한 첫째 강심(김현주)에게는 석 달 동안 열 번의 선을 보라고 한다. 둘째 강재(윤박)에게는 석 달 동안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한다. 셋째 달봉(박형식)에게는 석 달 동안 매달 백만 원의 용돈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삼 남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을 수락한다. 이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소송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정말 삼 남매는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얌전히 이행할 것인가, 석 달 후 이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드라마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하며,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물론 아버지 차순봉의 건강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에 동생이 다녀갔다. 저녁을 먹으며 이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생이 툭 말을 던진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 말했다. 동생은 파출소에 근무하는데, 파출소로 서류 떼러, 혹은 뭔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나왔는데, 본인이 먹고 살길이 없으니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했단다. 그에 소송을 당한 자식이 파출소로 서류를 떼러 왔는데, 그 서류가 뭔고 하니, 그동안 아버지가 쳤던 사고 뒷수습한 증거라고 했다. 그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술 먹고 들어와 행패 부리고, 때려 부수고, 폭행하고... 교도소에 있기 전부터도 오랫동안 자식들과 연락 없이 지냈단다. 그런데 이제 와, 실컷 죄를 저지르고 처벌받고 세상에 나와 먹고 살길이 없으니, 가족마저 외면하니 자식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한 거란다. 자식들은 이에 억울해서 반박할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이런 서류도 떼러 온다고 했다. 그 아버지가 사고 쳐서 신고 된 내용, 어떤 내용으로 잡혀왔고 자식들은 그에 어떤 식으로 얼마를 합의하거나 뒷수습을 했는지 증거를 찾으러 온 거다. 그러니까 자식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을, 자식을 돌 본 기억이 없는 거다. 평생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는 사고 쳐서 경찰서 드나들고 자신들은 그거 뒤처리한 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빈번했다고 했다.

 

 

 

 

 

 

 

 

 

 

동생이 들려준 말에 조금 놀랐다. 그런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이런 소송을 하기도 하는 구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저 밥을 먹는데 좀 답답했다. 남의 가정사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아버지가 술 먹고 행패부리고 폭행하고 했다고 해도, 자식들이 그 뒷수습 하느라 지쳤다고 해도, 그 이하의, 그 이상의 일들을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그저, 드라마 속의 이런 일도 실제 일어나고 있구나 하면서 끄덕이는 수밖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른 것들 다 차치하고서라도,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해야 부모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다. 부모 자식 간에도 기브 앤 테이크가 존재한다.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게 아니고,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서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 하는 자세의 문제다. 저기 파출소에 서류 떼러 왔다는 가족의 문제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자식 대접을 못 받은 것에 속상하지 않을까. 자식으로 아버지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애정과 보살핌을 못 받아서 아버지를 돌볼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부모인데...’ 라는 말을 누군가는 여기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그게 속상할 것 같다. 젊은 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실컷 술 먹고 손이 가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죄를 저질렀으니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데, 자신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서 지우고 낳아놨다는 것 한가지만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게 더없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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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모 2014-12-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자료라는게 부모 자식간에 성립할수도 있군요 부모님의 사랑을 너무 당연시한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구단씨 2014-12-09 11:22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

세실 2014-12-08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벌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때 생색을 많이 냅니다. 공을 알아야 나중에 당당하게 요구하죠! ㅋ

구단씨 2014-12-09 11:21   좋아요 0 | URL
부모가 당연하게 돌보고 생색내도 됩니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아이들도 알아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