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아버지 차순봉(유동근)은 자식들을 상대로 불효자 청구 소송을 했다. 자식들에게 성인이 된 후에 들어간 돈을
계산해서 청구한 거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야 말 그대로 미성년이니 부모가 자식을 부양해야 할 의무라고 계산에서 뺐나 보다. 암튼 삼 남매에게
청구된 금액은 컸다. 그런 소송을 받아들인 판사도 의아해 하면서 이 소송을 지켜보기로 한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자식을 상대로 왜 이런 소송을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알고 있기에 무시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러면서 차 씨 삼 남매에게 강조한다. 이 소송은 판결이 아니라 조정으로만
진행하겠다고, 그러니 아버지와 합의를 하라고 조정 자리에 나온 삼 남매에게 말한다. 그럼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은 뭔가. 결혼 안 한 첫째
강심(김현주)에게는 석 달 동안 열 번의 선을 보라고 한다. 둘째 강재(윤박)에게는 석 달 동안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한다. 셋째
달봉(박형식)에게는 석 달 동안 매달 백만 원의 용돈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삼 남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버지가 원한 합의 조건을 수락한다.
이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 소송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정말 삼 남매는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얌전히 이행할 것인가, 석 달 후 이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드라마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하며,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물론 아버지 차순봉의 건강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에 동생이 다녀갔다. 저녁을 먹으며 이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생이 툭 말을
던진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더라고 말했다. 동생은 파출소에 근무하는데, 파출소로 서류
떼러, 혹은 뭔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출소해서 나왔는데, 본인이 먹고 살길이 없으니 자식들에게 위자료 청구 소송을 했단다. 그에 소송을 당한 자식이 파출소로 서류를 떼러 왔는데, 그
서류가 뭔고 하니, 그동안 아버지가 쳤던 사고 뒷수습한 증거라고 했다. 그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술 먹고
들어와 행패 부리고, 때려 부수고, 폭행하고... 교도소에 있기 전부터도 오랫동안 자식들과 연락 없이 지냈단다. 그런데 이제 와, 실컷 죄를
저지르고 처벌받고 세상에 나와 먹고 살길이 없으니, 가족마저 외면하니 자식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한 거란다. 자식들은 이에 억울해서
반박할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이런 서류도 떼러 온다고 했다. 그 아버지가 사고 쳐서 신고 된 내용, 어떤 내용으로 잡혀왔고 자식들은 그에 어떤
식으로 얼마를 합의하거나 뒷수습을 했는지 증거를 찾으러 온 거다. 그러니까 자식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가족을, 자식을 돌 본 기억이 없는 거다.
평생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는 사고 쳐서 경찰서 드나들고 자신들은 그거 뒤처리한 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는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빈번했다고
했다.
동생이 들려준 말에 조금 놀랐다.
그런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걸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이런 소송을 하기도 하는
구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저 밥을 먹는데 좀 답답했다. 남의 가정사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아버지가 술 먹고 행패부리고 폭행하고
했다고 해도, 자식들이 그 뒷수습 하느라 지쳤다고 해도, 그 이하의, 그 이상의 일들을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함부로 판단할 수도 없다. 그저,
드라마 속의 이런 일도 실제 일어나고 있구나 하면서 끄덕이는 수밖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다른 것들 다 차치하고서라도,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해야 부모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거다. 부모 자식 간에도 기브 앤 테이크가 존재한다.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게 아니고,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서 자식을 어떻게 키웠느냐 하는 자세의 문제다. 저기 파출소에 서류 떼러 왔다는 가족의 문제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자식 대접을 못 받은 것에 속상하지 않을까. 자식으로 아버지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애정과 보살핌을 못 받아서 아버지를 돌볼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부모인데...’ 라는 말을 누군가는 여기서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그게
속상할 것 같다. 젊은 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실컷 술 먹고 손이 가는 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죄를 저질렀으니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데, 자신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서 지우고 낳아놨다는 것 한가지만으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하는 것으로만 보이는 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게 더없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