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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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문을 통해 만났던 전작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이 책 자체로의 매력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야기 그 자체로 즐기고 싶은 마음에, 기존의 소설들과는 뭔가가 다를 것이라든 기대감에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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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출판 24시
김화영 외 지음 / 새움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 고백하건대, 유감스럽게도 내가 이 책을 순수한 의도로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소설 출판 24시’라는데, 그 24시라는 기준은 누구의 입장에의 시간인지, 어떤 이야기로 변명을 포장하려 하는 것인지 싶은, 조금은 삐딱한 시선이었다. 현재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참여해 쓴 소설이란 점에서 정말 솔깃했다. 철저하게 독자로,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소비자로만 살아온 내가 요즘처럼 시끄러울 때 이 책을 펼쳐보게 된다면,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기는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책과 관련된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었고, 누구의 변명도 아니었으며, 활자 그대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신뢰하면서 듣고, 내 자리에서 내 몫의 역할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었다. 책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오래전에 책을 잘 안 읽을 때의 나는, 도서관이나 서점, 출판사라는 공간에 환상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러움 같은 게 있었다. 대뜸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으니 좋겠군요!” 라는 말을 쉽게 건네곤 했었다. (아마도 이쪽 업계 종사자들은 이 질문을 지금도 많이 받고 있지 않을까?) 물론 과거형이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돌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치는 낯선 남자와 여자가 시작하는 인연, 서점의 바닥 한구석에 앉아 책을 보면서 살짝 입을 맞추기도 하는 연인들,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 책들 덕분에 머릿속에 가득 채워질 것만 같은 지식까지! (이 무슨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던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책과 관련된 일에서 환상을 기대하지 않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누군가는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책이 참 많구나, 하고 생각하면 돼.” 라고 말했고, 서점에서 일하던 지인은 “완전 막노동이야. 늘 야근이고, 항상 목장갑을 끼고 일하느라 손이 거칠어. 핸드크림도 소용이 없어져.” 라고 말하기도 했다. (항상 무거운 책들을 대하느라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이라고 했다.) 출판사는 뭐, 직접적으로는 아니어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환상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그러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여전히 독자로 내 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책 읽기)을 내가 좋아서 계속하는 것, 그 외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선입견이나 환상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책과 관련해서 내가 거의 알 수 없었던 출판사의 생생한 하루가 소설로 써졌다니 얼마나 솔깃하겠는가. 한 권의 책(이 책에서는 제목처럼 소설이 주제이긴 하나, 나는 장르 구분 없이 ‘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이 만들어져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들을 이런 기회가 흔하지는 않으리라.

출판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책’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기가 이 한 권에 다 담겨있다.
수비니겨 출판사에는 편집자 출신의 사장 이정서가 있고, 기획실장 강아라, 꼼꼼한 편집장 김해윤, 전자책을 주로 담당하는 편집자 이순덕, 영업부 과장 민윤식, 그리고 작가가 있다. 편집자의 책상 한 구석에서 선택되어지지 못한 원고 하나를 우연히 사장이 먼저 읽게 된 후, 소설로 출간하기로 결정된다. 그렇게 출간이 결정된 소설 한권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이들이 책 한권을 만들기까지는 우연처럼 운명처럼 다가오는 원고가 있고, 그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길 선택되는 순서가 있다. 출간이 결정되면 최종원고가 만들어지고, 교정과 교열의 과정을 거치고 겉옷이 결정되면, 인쇄소에서 잉크냄새 풀풀 풍기면서 새 책이 나온다. 그 사이에 편집자와 마케터는 그 책을 어떻게 소개할까 하는, 어떤 홍보로 독자들의 눈에 들게 되는 책을 만들어서 팔 수 있을까 하는, 머리 쥐어짜는 고통과 환희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책의 카피나 마케팅 계획을 짜는 일은 고통스러운 시간일지 모르겠으나, 그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책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면 그건 또 환희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보통 책을 자식으로 비유한다고 생각하면, 열 달을 뱃속에 품고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때로는 그 반대의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결과를 만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결과가 만들어지는 부분까지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기에 더욱 집중하고 읽게 한다.

“어느 한 권의 책이 팔린다는 건, 정말 누구 혼자만이 아니라 작가와 출판사, 독자가 한마음이 될 때 가능한 일인 거 같아요.” (266페이지)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글이 출판사로 투고되어 선택되기도 하고, 혹은 편집자가 아이템을 구상해서 그 목적에 맞는 책이 맞추어지기도 한다. 정말 뭘 모르던 때에 책을 그냥 글만 쓰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편집자’라는 일에 대해, 상당히 어렵기도 하고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한 편의 드라마였다. <반짝반짝 빛나는(2011 MBC)>이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출판사의 편집자로 나온 것이었다. 다이어리에 깨알 같은 정보가 가득한 그 장면에서 알았다.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아이템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보물처럼 여기던 주인공의 모습은, 책과 편집자라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아, 누군가가 글을 가져와서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살펴봐 주는 게 편집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뒤늦게야 제대로 알았다. 거기에 이 책에서 들려주던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원고 수정을 놓고 벌어지는 의견 교환의 과정은 팽팽한 신경전 같으면서도 결국은 같은 방향을 보고 가는 사람들이기에 합의점을 찾게 된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더 훌륭한 생각’을 주고받고 있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기에, 그 시간은 아름다운 치열함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말이다. 책이 만들어지는 시작이 글이 먼저일 수도, 목적이 먼저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되어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너무, 좋다.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정말로 중요하다. 제목이 청각적 감각을 지배한다면 표지는 시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153페이지)

책의 출간이 결정되고 편집부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그 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어야 한다. 책의 판형부터 속지, 겉표지 디자인, 그리고 더 많게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책의 모든 것들이 계획되고 결정되고 진행되는 것이다. 그 과정도 만만치는 않았다. 여러 시안을 디자인하고, 많은 의견을 참고하고, 최종적으로 맘에 들 때까지 계속 반복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지칠 만도 할 텐데,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끝까지 붙들고 있는 그 끈기가 에너지를 퐁퐁 샘솟게 하는가 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제목이나 표지가 완성되는걸 보니, 지금 내 옆에 있는 책의 모습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많은 시간과 땀으로 만들어졌구나 싶어, 대견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선택된 원고가 하나의 책으로 탄생하기 전부터 출판 영업자들은 시장성과 작품 내용 등을 분석하여 홍보 계획을 수립한다. 더불어 도서의 콘셉트와 제목, 표지, 가격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초판을 몇 부 제작할 것인지, 제작된 부수를 각 서점과 도매상별로 어떻게 나눠 배본하며 홍보를 위한 광고나 이벤트, 그 밖의 프로모션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따위의 계획을 짠다. (196페이지)

그렇게 만들어진 책은 독자를 향해 달려간다. 그 타이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케팅일 것이다. 나 역시도 기다리던 책이 나오면 반가움에 더럭 구매하기도 하지만, 혹여나 이벤트가 진행된다면 기간 맞춰 구매하기도 한다. 책의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말 독자들에게 노출되는 빈도수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떤 책은 정말 좋은데 조용히 소리소문없이 묻히기도 하고, 왜 베스트셀러인지 모르겠는데도 많이 팔리는 걸 보면(이건 나와 다른 독자들의 취향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로 마케팅, 특히 입소문은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거나 구매하면서 보는 많은 장면이, 이런 과정이 있기에 내 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좋은 책은 기본적으로 글에서부터 시작할 테지만 잘 팔리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여기서 그 힘을 발휘하는 건 마케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일 테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그렇게 간단하거나 말 한마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 책이 들려주고 있는 더 많은 일화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그 생생함을 이 책으로 직접 확인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서 멈추려 한다. 몇 년 동안 들어와서 지겨운, 하지만 살벌한 그 말 ‘유사 이래 최고 불황’이라는 말을 이들의 이야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불황’이라는 게 어디 출판계뿐이랴 만, 현재 내가 부리는 유일한 사치가 책인데, 그 책에서까지 불황을 느끼고 싶지는 않은 바람이 있기에 많이 안타까운 것이 나의 진심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베스트셀러로 올리기 위해 사재기까지 해야만 하는 상황, 오프라인 중소형 서점의 계속되는 폐업, 책의 유통 과정에서 존재하는 어음거래의 폐해와 업체의 부도, 서점에서 책의 진열위치에 따라 명당과 흉당이라 붙여지는 이름, 그동안 정말 궁금했던(이미 들었던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와의 관계,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 등장한 전자책과의 동행 등등. 우리(독자)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담겨 있는 듯했다. 다 읽은 후에는 숙제를 남겨주기도 했다. 출판계의 현실이 이러한데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안에 존재하는 관계들이 갑과 을의 구조가 아닌 모두(출판사, 서점, 독자)가 동등한 입장에 서서 나란히 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책을 만드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 그 사이에 존재하는 다리는 ‘소통’이어야 하므로.

책이 좋아서 읽었고(독자),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출판인) 뛰기 시작했을 그 ‘처음’을 상기하게 하고 있었다. 독자인 나에게, ‘처음 내가 왜 책을 읽기 시작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를, 지금 읽고 있는 이 책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 남아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럼 또 다른 출판인에게는 설렘과 흥분으로 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고 있겠지. 좋은 책을 위해 땀 흘리게 뛰며 등에 소금꽃을 피워가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그때를...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는 계속 책을 읽어가면서 살아갈 것 같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책과의 시간을 위해서 ‘유사 이래 최대 불황’ 같은 말이 출판계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현실이란 것이 한 번에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런 억지는 부리지 않겠다. 다만 어느 입장에서든 책을 대하는 자세가 똑같다면, 어느 순간에서든 접점은 있을 테니 ‘좋은 책’을 읽고 만들어가기 위한 방향으로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출판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실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소설이다. ‘소설’이라 부르지만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던 책이었다. 출판시장의 현주소와 미래를 같이 고민하게 하는 이 소설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나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독자’가 있었다.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설책은 소설가 혼자만 잘하면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해윤은 이제는 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 및 본문 디자인, 어떤 마케팅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것인지 등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 책은 여러 사람의 손길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 때면 책 속의 문장들 사이에 숨었던 해윤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이 전해주는 위로에 미소 지었던 해윤은, 자신의 손길이 닿은 책들 역시 독자와의 만남에서 그런 소중한 순간을 맞이했으면 하고 바랐다. (301페이지)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보고 듣고 싶다면 이곳으로....
http://saeumboo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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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하는 중입니까?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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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굴 빨개져가면서, 누구 앞에서 마음 붉히며 수줍어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고 느낄 즈음 만난 이 책이 설렜다. 늙은 여자 사람이 추하게 느끼는 설렘이 아닌, 인간적으로 느끼는 설렘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 공유한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일 것이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것이고, 살아가면서 장애물 하나 만나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후회되고 안타까워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 자리에서 다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일 테고... 두 주인공은, 특히 그 남자 문정효는 그래서 지금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한 순간에 과거를 한번 후회 했으니, 이 시간 이후로 살아가는 순간에 만날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동생의 상담을 기다리다가 만난 희한한 남자, 정효. 긴 머리와 함께 그가 툭툭 던지는 말들은 그 남자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린의 손에 쥐고 있던 큐브보다 더 큐브 같았던 그 남자 정효를 그렇게 눈에 담았다. 한번 스칠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그린은 정효의 공방에서 베이비시터(강아지 또또)를 하게 되고, 정효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시작을 열게 된다. 정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함께 점점 더 알아가게 된다. 문정효라는 남자, 그의 과거, 그의 시간, 그의 상처, 그의 다짐 같은 것들을. 그리고 정효와 함께 할 그린의 시간, 그린의 상처, 그린의 치유까지...

왠지 제멋대로인,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을 것 같은 정효와 ‘토실토실’이 ‘사랑스럽다’는 말과 동의어로 들리게 하는 그린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이 입술 끝에 걸리게 했다. 물론 이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던 그 과정에서는 지나간 상처도 다시 꺼내야했고, 그로 인해 아픔도 견뎌야했지만, 이루고자 하는 그 끝을 만났으니 된 거다, 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쉬운 길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길을 걷는 시간마저 소중하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그 종착역에서 만나고 싶은 거다. 가고자 하는 그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지나온 그 여정마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싶은 소소한 바람... 그래서 그린과 정효에게 새롭게 시작될 오늘, 어쩌면 내일이 아름다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었다. 집중력 최고의 초록을 수제자 삼아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을 것 같은 정효, 정효를 ‘싸부님~ 나의 싸부님~(초록이처럼 강하게 발음해야 함!)’이라 부르며 자신의 재능을 신나게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초록, 평생 청소는 안하게 만들겠다는 정효를 머슴 부리듯, 발끝을 리모콘 삼아 정효를 향해 까딱대고 있을 것 같은 그린, 아장아장 지후와 아직 이름이 없는 베이비가 함께 하는 그림이, 막 그려지지 않아? 물론 배경색은 그린이어야 한다.(좀 연한 그린이었으면 좋겠다.) 편안해 보이고 쉬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치 삶의 피곤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연분홍 나비가 살랑살랑 날갯짓 하며 날아와 새겨졌을 것처럼 싱그럽게...

‘사부님’이란 단어가 이렇게 말랑말랑한 줄 몰랐다.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나오는 호칭으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이런 정신적 충격을 선사하다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많은 호칭 다 내다 버리고 이렇게 불러줄 테다. “사부님~ 나의 사부님~(아주 부드럽고 연하게 불러줄 테야!)”이라고 불러야지. 맘에 안 드는 말이나 행동을 봤을 때는 입술을 쭉 내밀고, 뿌~ 해야지. 의자가 아닌 책상에 걸터앉아 발을 구르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의자 따위 필요 없어!) 휴대폰에는 ‘사부님 나의 사부님’의 이름은 ‘내 남자’라고 저장해야지. 평범한 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이렇게 구구절절 말해놓고 보니, 나는 그린이한테 진 거다. (읽는 내내 그린이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 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었는데... ㅠㅠ) 정효의 왼쪽 어깨에 새겨진 빨강(연분홍이라 우기고 싶은) 나비 문신이 지워지지 않을 테니... 에잇~ 부럽네. (인정!)

이 책이 나를 건드렸던 한 가지 있는데(물론 더 많지만 콕 찍어서 말하자면), 도예가라는 정효의 직업이, 나에게 이렇게 한 번씩 떠오르게 하는 지나간 시간이다. 정효의 공방이 나에게는 그랬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교복을 입은 채로 극장에 들어가서 봤었던 기억, 벌써 23년이나 지난 영화지만 이 영화의 물레씬이나 포스터만큼은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강렬했던... 하긴, 사춘기의 여고생이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어. 긴 생머리가 넘버원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여자가 예뻐 보였고, 그전까지 내 눈에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던 패트릭 스웨이지(안타깝게도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가 상의 탈의하고 데미 무어를 뒤에서 백허그 하듯이 끌어안고 함께 물레를 돌리다니!! 허...어....억....! (하지만 입꼬리는~ 므훗~)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과 영혼 공홈>

오래전 좋아해 마지않던 영화를 기억나게 하면서 나에게도 있었던 푸릇푸릇함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지나갔나 싶게 KTX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이십대 초반. 학교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단과대 바로 옆 건물이 도예과의 작업실이었다. 겉으로 보면 창고 같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그곳을 지날 때면 그 특유의 흙냄새와 지저분한(?) 실내를 볼 수 있었다.(청소는 무지 안하더라.) 흙이 잔뜩 묻은 비닐 앞치마를 입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학생들, 우연히 봤던 늦은 시간까지의 작업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까지 곁들여져서 나는 그곳-도예과의 작업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었다. 내가 손대는 것은 슬픔인데, 바로 버려야할 쓰레기 수준으로 만들어놓는 나의 손을 보면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인 곳이다. 더군다나 언니가 도예를 전공해서 그런지 그 흙덩어리를 패대기치듯 던져가면서 작업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중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언니의 학교 작업실에도 가끔 놀러가기도 했었으니까. 아직도 우리집에는, 언니가 실습삼아 만들었던 그릇이 있다. 이름도 몰라, 용도도 몰라, 생김새는 민망해, 진짜 안습이다. 차마 식탁에는 절대 올려놓지 못할 저질 상태이지만, 가끔 내가 맥주 마실 때 쥐포를 잘라서 놓는 그릇으로 만들어주면서 그 그릇의 존재를 각인시켜준지 오래... ^^


공방이란 이름, 반죽이 되어있는 흙,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가면서 가마에 그릇을 굽던 장면이(직접 본 장면이라 더 생생하다.) 정효와 그린의 사랑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으나, 아직 지워지지 않았음에 웃을 수 있는...

이 책 『곰곰, 하는 중입니까』 속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할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줄지, 얼마나 많은 공감으로 여운을 남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지독하게 싫어하는 빗소리마저 음악소리로 듣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린의 부모님은 지금 어떤 소통을 하고 있을지, 정효의 아픔은 말끔히 치유가 되었을지, 그들의 ‘곰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냥 궁금함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궁금한 채로, 계속 기억되고 있을 테니까... ^^

풋풋함이 사라진 연애와 현실 속으로 뛰어든 연애에 익숙해졌을 때, 아마도 그때 처음 소설을, 로맨스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허구에 빠져 허우적대려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읽었던 한권의 소설 속에서 공감했던 현실이 먼저 다가와 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문학에 빠져들고 로맨스소설을 즐기면서 겪었던 감정은 공감과 기대, 혹은 위로였다.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가깝게 지내던 나의 지인들을 봤다. 또한 나를 보기도 했다. 그건 공감이란 이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로맨스소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책 앞에서는, 글 앞에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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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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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유정! 책의 무게감 때문에 손목이 아프지만 그 무게감이 책 안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집중하고 싶을 때 무조건 펼쳐야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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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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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색다른 그림과 독특한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풋사랑이란 이름 앞에 미처 듣지 못한 그 마지막 말이 궁금해 미칠 지경. 아마도 주인공에게 첫(?)사랑의 맛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염소의 맛이라고 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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