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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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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배우자나 애인)에게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범위가 있다. 쉬운 말로 ‘바람’이라 부르는 행위. 최소한 가장 일순위로 지켜야할 서로의 믿음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하고 멍청해서 그런지 바람은 못 피우겠다. 상대방에게도 그걸 요구한다. 마음이 식었거든 바람이 아니라 한 번에 한 사람씩 선택하라고. 누군가와 나누기는 싫다고. 실제로 상대의 바람을 알아차리고 헤어진 경우도 있다. 마음을 준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가슴에 돌덩이를 끌어안고 사는 것보다는 어쭙잖은 자존심을 택하겠다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떤 변수가 생겨서 생각이 달라질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런 불륜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보면서도 분명한 복수가 등장하지 않으면 심통이 난다. 내가 해줘야지, 그 복수.

세상에서 불륜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와타나베. 그런 그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같은 회사의 계약직 직원인 아키하와 불륜이란 것을 저지른다. 그 아름다운 이름 ‘사랑’으로. 여기까지만 보면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쓴 한 편의 사랑과 전쟁이 되시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가 된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동안에도 우리에게 재미를 선사하던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아키하는 15년 전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계된 인물이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 그리고 그런 아키하와 불륜에 빠진 와타나베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아키하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계획하던 찰나에 그 사건을 알게 되고 아키하가 그 사건의 용의자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그 사건의 내막 파헤치기에 참여하게 되는 와타나베.

자신의 장점을 상대방에게 최대한 드러내는 것이 연애라면, 결점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결혼이다. 더는 상대를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연애할 때처럼 상대의 눈길을 끌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혼을 동경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그랬다.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편안해지고 싶어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편안함을 얻는 대가로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192페이지)

결혼이 그런 것이야?
사실 결혼뿐만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다 보면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는 거 아닌가? 그렇게 선택한 것이 버린 것의 몫까지의 만족감을 주는 순간도 있지 않아? 이 책에서 와타나베와 그의 친구들이 등장하면서 풀어내는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면 진정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면서 동시에 그들이 선택한 결혼이 가져다주는 장점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평한 것 아닐까 하고.

와타나베와 아키하의 불륜을 보여주는 그 과정이 참 재미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딱 한 번만’, 그 다음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미심쩍은 안도의 마음으로 계속 진행 중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결국은 유지해 온 가정을 버리고 새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대부분 불륜의 과정이 그런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듣고 싶으면서도 씁쓸하다. 결국은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짓일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말이지.

처음부터 불륜임을 말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다. 와타나베의 고백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15년 공소시효가 끝나감을 자꾸만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불륜의 대상인 아키하와 살인사건을 연결시켜줌으로써 이야기의 재미는 배가 된다. 물론 살인 사건의 전말을 마지막에 드러내주면서 그 모두가 연관되었던 ‘불륜’의 말로를 가장 잔인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무고한 하나의 생명이 사라짐으로써 더 이상의 불륜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경고 같기도 하다.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던 그 센스도 잊지 않는다.

결혼이란 것을 선택한 자의 책임이란 게 있다. 사랑해서 결혼이란 결실을 이루었으면 지켜야 할 것들도 생겨난다. 배우자 외의 사람을 만나면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거라 생각하지 말자. “불륜은 불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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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웨딩드레스
김은정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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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뛰쳐나가는 신부의 설정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었어? 근데 그 영화 같은 설정을 가능하게 만든 여인네가 여기 또 한명 있어. 한세경. 지나간 첫사랑이 남겨두고 간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해서 사랑이란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비오는 날을 공포로 만들었지. (세찬 빗줄기 아래서 무섭게 차였던 거야.) 그런 그녀가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했다지. 굳이 사랑이라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지로 선택한 결혼. 그런데 뭔가 이상해.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망설임이 결혼식 직전에 드는 거야.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 사랑이 아님을 알았는데도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을 계속 하던 순간 뛰쳐나갔어. 저주 받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질주를 시작한 거지.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었나 봐. 그 웨딩드레스 세경이 것이 아니었거든. 이탈리아 장인에게 특별 맞춤 제작한 자신의 웨딩드레스가 아닌 다른 이의 웨딩드레스가 배달되어 왔던 거야. 그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나봐. 이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결혼식은 끝장나고 사돈어른이 될 뻔한 분들의 화를 받아내느라 자신의 일에 차질이 생기고, 타이밍 절묘하게 5년 전에 떠나간 첫사랑은 되돌아와서 받아달라고 떼를 쓰고, 바뀐 웨딩드레스를 제자리로 찾아주기 위해 조해윤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 바뀐 드레스는 자신의 약혼자가 주인이었던 거야. 그 남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행기 공포증이라면서도 얼굴이 허옇게 사색이 되어 나타난 거야. 오직 그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근데 이놈의 웨딩드레스는 발이 달렸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웨딩드레스를 찾기 위해 스펙터클한 액션 로드 무비가 펼쳐지고 있어. ㅎㅎ

남주 조해윤.
변호사인데 이 남자 진지한 모습을 별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고아로 자라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성공했다. (물론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후원자의 손녀딸과 결혼하려 했다. 아이도 필요 없고 사랑도 필요 없다. 어차피 사랑이란 것도 믿지 않던 그였으니, 그냥 돈 계산만 잘 해서 챙기면 된다. 그러려고 했다. 그래서 비행기 공포증도 무릅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로지 약혼자가 애타게 찾는 이탈리아 장인이 유작으로 남긴 그 웨딩드레스에 목숨을 걸고.
여주 한세경.
기획사의 평범한 월급쟁이다. 말 그대로 일도 잘해야 하고 사장님께도 잘 보여야 밥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좀 편하게 살 것 같은 결혼이었는데 그것도 만사 오케이는 아닌 것 같다, 막판에 뛰쳐나온 것을 보면. 끝장 난 결혼식에서 남은 건 자신에게 웨딩드레스뿐인데 그걸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남자에게 왜 그 웨딩드레스를 찾아주어야 하는지 괘씸하지만. 뭐 그래도 바뀐 건 바뀐 거니까 일단 찾아주기로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진심이 궁금하다. 뭐, 어쩌자는 건 아니지만…….

웨딩드레스가 뒤바뀐 (뒤바뀌었다 해도 상관없는)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온 남자와의 한판 달리기 같다. ^^ 꽈배기 보다 더 심각하게 꼬인 이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무난하고, 특히나 시종일관 웃음이 나게 하는 두 사람의 대화들이 톡톡 튄다. 웃어보고자 싶으면 읽어봐도 좋다. 우울해지려던 차에 읽으면서 한바탕 웃었으니 다행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다. 웃겨줄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게 하고, 진지해야할 부분에서는 진지함도 남겨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각자가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물론 소설이 주는 허구도 분명 있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니까.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현실과 이야기를 같이 듣게 되는 기분이다.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이들의 이야기에는 세상 속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뭔가가 느껴진다. 진정 결론에서는 찾을 것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하지만, 그 과정은 고속도로도 있었고, 자갈길도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따라 달리던 이 두 사람이 결승점에서는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기 끝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책 소개 글에서 보면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했다. 꼬이고 꼬여서 더 꼬일 것이 없을 때, 의외의 곳에서 탈출구가 열린다는. ^^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면 다음에도 선뜻 선택해서 읽고 싶어진다. 개운한 여운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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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요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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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과 민혜우.
스무 살에 만나 뜨겁게 사랑했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었고, 두 사람의 아이가 잠시 머물다가 가버렸고, 정원은 군대에 갔다 왔고. 그래도 괜찮아 보였던 두 사람은 4년 열애의 종지부를 찍고 헤어진다. 혜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정원은 묵묵히 기다리겠다는 마음으로 헤어짐에 동조한다. 그리고 4년 후 전남편과 전부인으로, 앞집에 사는 이웃으로 재회한 스물여덟의 두 사람. 혜우는 이혼을 얘기하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었기에 정원은 이혼 그 자체보다는 그녀가 말한 시간에 동의를 하고 떠난 거였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알았다면, 돌아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떠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생각한다. 두 사람이 끝나지 않았다고, 끝났던 적이 없었다고, 여전히 ‘-ing’의 상태로 이어져 오던 것이라고.

정말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소재다. 내가 해보지 못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는데,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는 그 설정. 도대체 두 주인공의 마음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그려지는 그 이야기들에 문득 의심이 생긴다. ‘그 마음 진짜야?‘ 라고 묻고 싶다.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마음이 그게 진짜인 게 맞냐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 마음은 의심천국)
근데 한 가지는 알 것도 같다. 무언가 그 마음에 대한 확답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분명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금방 다시 붙여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내 마음이 정말 잘라내고 싶은 건지 붙여보고 싶은 건지 다시 또 의심이 들고, 어느 것으로 하든지 만족도 못하겠고 이게 잘하는 짓인지도 확신도 안서고.

전체적인 스토리는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이 결혼도 했었고 다시 헤어졌고, 다시 또 만난다는 내용이다. 우연히 이웃사촌으로 만나서 다시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싹튼다는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목적 그대로 진행된다는 설정이다. 남자는 여자와 헤어진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여자의 앞집으로 이사를 오고,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놓치지 않을 정도로 다가가고 있는 과정을 그린 것. 그 사이에 솔직하고 대범했던 여주인공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과거의 경험들 때문인지 걱정 많고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렸고.
주저하던 여자는 결국 자신의 마음이 남자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을 표현하고, 솔직해지고,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흔히 시행착오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의 두 주인공이 그런 경우다. 사랑하면 다 되는 줄 알고 결혼을 했지만, 끝이 없는 꽃길만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결혼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딱히 더 어려울 것도 없었겠지만 마냥 신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 한참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라는 대상들과 어쩌면 이성친구도 사귀면서 즐길 나이였던 그때에 결혼이라는 것을 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조금은 더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이론이나 마냥 상상 속의 결혼생활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철없던 시간의 잘못을 되돌리고 싶었던가 보다. 물론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기본으로 깔고, 그 외의 것들이 이제는 좀 제대로 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것인가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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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크 다이어리
고은상 지음 / 로코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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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가능성을 두고 확률적으로 계산을 하는 순서가 종종 있는데, 그때 우리는 말 그대로 배운 그대로 수학적으로 계산을 한다. 하지만 그런 수학적 확률이 거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보통 사람의 마음이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아무도 상대에 대해서 100%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렇다.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확률 100%,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할 확률 100%,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될 확률 100%. ‘아무것도 100%는 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 확률 100%를 검증한 남자가 있다. 그 확신이 볼수록 재수 없는 그 남자, 쳇~!!

모든 것을 확률 100%로 만들어버리는 남자, 유진현.
뉴욕에 있는 그녀와 서울에 있는 그가 뉴욕의 공항에서 만날 확률 100%. 그가 친구 대신에 나간 선 자리에서 그녀를 만날 확률 100%. 그녀가 다니는 회사를 그가 인수할 확률 역시도 100%. 뭐든 100%. 100%... 100%...... 그가 그렇게 만들어버린다. 마음에 둔 그녀가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는 것으로 그 확률 100%를 끔찍하게도 채워버린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웃긴 짬뽕이라고 놀려주고 싶지만 그 남자의 진심은 통해버려서 밉다. 사람이 말이지 안 되는 것도 좀 있어야 사람이지, 안 그래?
“지겨워서.
기다리는 게 지겹다고.
누가 너무, 너무 늦어.
먼저 나가도 내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려.
늦어도 올 것 같아서 기껏 기다렸더니 저쪽엘 간 거지. 난 이쪽에 있는데. 이젠 기다리는 게 재미없어. 늦어도 안 기다려.”

그 남자의 100% 확률 안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여자. 김세은.
이상하게 자신에게만 까칠하게 빈정거리는 것 같고, 놀리는 것만 같은 그 남자가 보여준 진심 한 자락 때문에 3년의 시간을 타국에서 보내고, 다시 또 3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다. 바보 같은 그녀, 기다린다는 그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함께 나눌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길어, 너무 길어…….
“그럼 기다리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서 늘 진심을 한발 늦게 알아차리는 캐릭터가 한 명은 등장해야 한다. 진현의 사촌동생 유준현. 세은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대상이며, 나중에서야 세은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남자. 그러나 너는 그 순간 바로 아웃이야~! 원래 이런 때는 타이밍이 중요한 거거든~??!!!
“해도 어렵고, 안 해도 어렵고. 사랑, 대체 왜 그래?”
“그러게. 대체 왜 그래?”
“그러니 사랑이지.”
“그러네.”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인 세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교차소설의 아오이의 마음을 듣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친절하게도 쥰세이의 마음까지 세세하게 들려주었으나, 불친절한 작가 고은상은 오직 세은의 마음만 들려주고 진현의 행동만을 보여준다. 어차피 서로가 마주하고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입장과 마음 밖에 모를 테니까 나는 세은이의 말만 듣기로 한다.(어쩔 수 없잖아, 진현의 마음을 안 들려주니.) 그래도 이야기는 충분히 재밌게 서로의 마음을 독자로 하여금 알 수 있게 그려지고 있다. ^^ 그래서인지 세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그 상황들이나 감정들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주저하는 마음, 살면서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 그래서 놓을 수도 쥘 수도 없으니 당연히 아파야 하는 마음. 사랑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늘 가슴 한 구석 불안을 같이 안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안타깝다. 그 와중에 언젠가는 끝을 내고 달아날 궁리를 하는 그녀의 마음을 인내심의 최강자 진현은 잘도 들여다본다. 놓치지 않기 위해, 기다리다 머뭇거리다 끝나기 전에, 그 기다림을 멈추고 기꺼이 다가가면서 말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번의 확률을 계산한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 나올 확률을. 오른쪽? 왼쪽? 1분? 2분? ^^

재밌게도 그녀의 마음이나 순간순간의 기분, 사랑을 하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 지금까지 살아온, 살아가는 인생들을 오만가지 맛을 내는 드링크로 설명된다. 조금 우울하다 싶을 때는 알코올이 들어간 아이리시 커피가 위로를 해주고, 인생 자체가 너무 힘들어 괴로울 때는 쓰고, 달고, 시고, 짜고, 매운 오미자차가 공감을 해주고, 달콤한 그 순간에는 청량한 콜라의 한 모금이 톡 쏘아주고, 밤을 새울 수 있게 도와주는 각성제 믹스 커피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애는 너무 시지 않은, 너무 달지 않은 레모네이드 같다. Not too sweet, not too sour.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음료들 때문인지 어느 계절에 읽어도 어울릴만한 느낌이다. 얼음을 오도독 씹어야 할 것 같은 차가운 주스가 필요한 순간도 있고, 향이 그윽한 홍차가 어울리는 여운이 있고, 기계적으로 느껴지지만 늘 가까이에 있는 커피향이 나는 시간이 이들의 이야기 속에 공존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딱히 계절을 타면서 고를 대상은 아니지만, 굳이 또 한 번 이 이야기에 궁합이 맞는 계절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바람 부는 계절에, 추운 계절에 더 어울릴 것 같다.
딱,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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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음을 찾습니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민선 작가가 그려낸 선연한 청춘의 순간들
정민선 지음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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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 그런 느낌이 있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와 방송작가가 쓴 에세이는 그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읽어본 후의 느낌이 저절로 그걸 잡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한밤의 라디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이미나씨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다른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난다는. 그래서 더 내 맘에 들었다는 게 생각이 난다.
이 책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TV음악방송 프로그램의 작가가 쓴 에세이. 근데 왜 나는 자꾸만 라디오 작가 같은 느낌을 더 받았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그렇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소설과는 다른 느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 어쩌면 누구의 가슴 속 이야기를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 같은…….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더 부담 없이 읽힌다. 그렇다고, 부담이 없다고 해서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겠다. 가볍게 휘리릭 넘기고 싶은 책도 아니다.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고 공감하면서, 오래전 우리들을 꺼내게 되는 순간 숨어있던 온기마저 찾아내어 나누고픈 책이다.

주로 심야에 방송하는 음악방송이 그녀의 손을 거쳐 나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리고 드라마음악의 가사까지 그 영역을 보탠 그녀. 그녀가 서른을 앞에 두고 쓴 이야기다.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주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 그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 조용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의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이야기,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이야기, 그래서 다시 또 계속되는 하루하루를 만나야할 이야기.

사랑도 일도 일상도, 소소하거나 크거나, 모든 것들을 다 합한 인생이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책으로 태어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동안에 그녀는 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의 마음은, 마음이 생각이 되고 정리가 되고 활자로 연필로 종이에 한 글자씩 한 줄씩 써내려갈 때마다 내려놓음이었을 거라고. 무거운 것들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내일을 위한 그녀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져서 차분히 호흡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표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집 나간 마음’이라니. 허락도 없이 수시로 집을 나가는 우리의 마음들, 그 마음들을 다시 잡아다가 내 안에 가두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데 조바심이 나지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더 어른이 되고 무언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간 후에는 저절로 다시 들어올 것 같다, 그 마음이. 그래서 안절부절 서성이듯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곧 다시 돌아올 그 마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분이다. 곧.돌.아.올.테.니.까.

그녀의 담담한 이야기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찍힌 듯한 사진들, 인디밴드가 들려주는 세상살이를 초월한 듯한 가사들. 굳이 사랑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무언가 간절히 말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는 내 귀로 들어오고. 책 표지의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의 주인공인 그 여자처럼 마음에 바람이 같이 불어온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한밤의 라디오에서도 듣고 싶어진다.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그녀의 마음을 듣고 싶다, 그녀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노래의 가사와 함께.


슬픔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자세

A는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를 잔뜩 칠해서 박박 무지르고 헹구고
‘아무래도 때가 덜 진 것 같아’ 혼잣말을 하며
옷이 다 닳도록 문대고 또 문댔다.

C는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칫솔에 치약을 꾸욱 눌러 짜서는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거품을 물고
3분이 넘도록 치카치카 칫솔질을 했다.

S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의 소음에 맞춰 못생긴 춤을 추었고,
낡은 수건을 걸레로 둔갑시킨 후
닥치는 대로 먼지를 훔쳐냈다.

J는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20분간 몸을 불린 후
이태리 타올로 힘주어 구석구석 때를 밀었다. 

 

어떤 일이 되었든지 그게 슬픔이 되고 힘겨운 순간에는 풀어낼 방법이 필요하다. 그녀들은 빨래를 하고 칫솔질을 하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한다. 나는, 잠을, 잔다. 당신들은 무얼 하면서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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