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판 기간을 기다리던 그 목마름이 이렇게 해소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웃어본다. 당분간 외출 시 내 가방 안에 자리할 책이다. 시와 가을... 괜찮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수고했어요 - 붓으로 전하는 행복, 이수동의 따뜻한 그림 에세이 토닥토닥 그림편지 2
이수동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그림으로 이 따스함이 전해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책. 진정한 위로를 건네고 있기에 누군가는 이 책을 선택함을 주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로든, 만족이든, 기쁨이든...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정리 편지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24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언어는 선율을 가진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말들은 그 언어가 가지는 고유의 색과 음, 거기에 말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만일 내가 “엄마” 하고 불렀다면, 그 ‘엄마’라는 단어와 음에 어떤 마음을 담아 부르고 있는지가 그대로 보이고 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으로 부르고 있는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말은 그 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건 우리가 외국어라 부르는 다른 언어에게도 있겠지만, 유독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한글(한국어)에는 우리만의 정서가 더 보태어져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한글을 사용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우리말이 아름답고 정감 있게 들린다는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평범한 우리들에게 세종대왕이 기적처럼 선물해준 한글이란 언어에 대해 너무나도 당연한 찬미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우리 역사의 기록처럼 신분의 계급이 있던 시절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면, 세종대왕이 한글이란 목소리를 우리에게 선물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너무 어려운 한자는 배울 엄두도 못내는 글자였을 것이고, 감히 배울만한 신분도 아니었을 것이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빠 배울 시간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글이 없이, 영혼 없는 목소리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서러운 눈물의 인생이 아니었을까.

 

한글의 창제를 국사수업시간에 배웠던, 하나의 역사적인 기록쯤으로만 생각했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특별히 다를 것 없이 생활의 일부로 익숙했었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책 『초정리 편지』 한권으로 인하여 한글에 대한 자세가 180도 달라졌다. 아, 이런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한글이 태어났구나 싶은 감탄과, 한글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는지가 눈에 환히 보였다. 우리가 평범한 삶이라고 부르는 그 대상이 어쩌면 이 책 속의 장운이네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에서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그 안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야만 했던 이유와 의미가 하나씩 더 새겨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감동으로 연결되고는 했다. 어떻게 보면 권력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을, 사대주의에 반하는 정치적인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을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 『초정리 편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한글이란 것이, 그런 시간들을 부딪혀와 지금의 우리에게 닿기까지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난한 석수장이의 아들인 장운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할아버지 한분을 만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좀 이상(?)한 듯하다. 초정 약수터로 눈병을 고치러 왔다는 할아버지는 양반의 품위가 있어 보이면서도 사람을 편안히 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생뚱맞게 장운에게 낯선 글자를 가르쳐주고 다음 날까지 글자를 외워오면 쌀을 주겠다고 하신다. 장운이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글자를 외우고 다음날 할아버지에게 검사를 받고 쌀을 받아간다. 며칠 동안 그러면서 할아버지와 장운은 점점 그 글자를 대하는 진심을 나누게 되고, 할아버지에게는 굳은 각오(이건 나중에 나오는 일. ^^)가, 장운에게는 희미하게나마 꿈을 향해 가는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 반포 전에 시집간 딸에게 한글을 시험해 보았다는 사실에서 근거한 이 이야기의 발상은 그래서 더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여전히 신료들은 한글 반포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었으나 그 효용성을 검증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 대상을, 역사 속에서는 세종대왕이 자신의 딸에게 적용시켰으나 이 이야기에서는 가난하고 글자에 무지한 하층민인 장운이란 아이에게 적용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자를 몰라 사기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해도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이 살아온 많은 백성들이 존재했다.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글을 대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라면, 그저 오늘이라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삶으로 인생을 마감해야만 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계급일진데, 앞으로도 무엇 하나 나아질 것 없는 삶 앞에서 한글의 등장은 삶의 의미를 다시 부여하는 도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한글 창제의 취지 중에 ‘불편을 겪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백성들에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하게 하는 애민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장운이란 아이의 등장은 그 의미를 굳건하게 하는 것 같다. 가난한 석수장이인, 그것도 몸이 불편해져 일을 못하는 아비를 두고 집안의 살림을 꾸려야 하는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글이라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일 것이다. 그런 장운에게 생이별을 하게 된 누이와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까마득할 때 사용했었던 한글이다. 비록 며칠이나 걸려 주고받을 수 있었던 편지였지만, 오늘날의 빠른 소식통인 SNS보다 더 값진 수단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저 가난한 삶이 당연하듯 살아왔던 장운에게 한글은, 꿈이라는 것을 꾸게 하는 마법 같았다. 누구도 몰라주던 손재주, 그저 소소한 취미로만 했었던 돌을 깎아내는 일을 점밭아저씨가 눈여겨보고 장운의 재주를 키워주려 한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가 한계가 있을 터인데 어찌 배운 것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시험공부를 하듯이 듣고 쓰고 보고 외우고 하는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 역시 글자가 아니었겠나. 장운에게 한글은 그 공부를 돕는, 차츰 나아지는 재주를 갖게 하면서 꿈을 이루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 장운의 모습은 주변사람들에게 더 많이, 더 널리 한글을 퍼지게 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동료 석수장이들에게는 더 발전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주고, 의원이 되고 싶다던 친구인 난이에게도 기록이란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산증인이 되었다. 단순하게 한 아이가 손으로 돌을 깎아내면서 재주를 늘려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한글의 역할을 톡톡히 발견했기에 너도 나도 그 습득의 과정을 갖고 싶었으리라. 흙바닥 훈장이라 불리던 장운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나무막대기로 흙바닥에 한글을 써서 공부를 하고, 제대로 학습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기에 여유시간에 놀이처럼 이용했을 한글 역시 애잔하게 보였다. 아녀자들이나 서민들이 사용하는 글자라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기도 했지만,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위대한 글자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일매일 배운 것들의 기록들이 다시 복습해 볼 수 있는 학습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꿈을 이루게 해주는 한권의 비망록처럼 간직하게 된 장운의 노트는 ‘장운’이란 한 역사의 산물이 될 것이다.

 

결과로만 보자면 지금의 우리 역시 이렇게 한글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때 한글 반포의 어려웠던 과정이나 한글의 약했던 힘, 양반들로부터 천대받았던 글자라는 것이 무색해졌음이다. 발음 기관의 형상과 우주의 형성, 그 이법의 근원을 가지고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고, 상당히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라 오늘날 칭송받고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글이 거의 변화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은, 처음 만들 때부터 완벽한 구조와 제자원리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라고 하는 이유를 조금을 알 것도 같다.

“참 요상도 하구나. 뻗치고 둥글리고 점 찍고 해서 글자가 된다니……”

평생 까막눈으로 꿈도 미래도 없이 살 것 같은 삶이었는데, 멀리 몸종으로 가게 된 누이 덕이와 장운이 이 글자로 서로 소식을 전하게 되는 것을 보고 장운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낯선 글자, 어쩌면 망가진 그림처럼 보였던 글자가 서로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신기함을 느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휴대폰의 문자 창을 열고 키패드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모두 스물네 글자. 그런데 휴대폰 키패드의 모음은 딱 세 글자다. “․ (天,하늘) ㅡ (地,땅) ㅣ (人,사람)” 이 세 글자로 우리가 발음할 수 있는 모음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게 보였다. 익숙하게 매일매일,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해왔었던 글자였는데 이런 위대함을 이제야 느꼈다니…….

 

이 책 『초정리 편지』는 한 나라의 고유한 언어가 태어난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나라 하층민의 삶이 글자 하나로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사적인 큰 그림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고유 언어인 한글이 반포되는 과정이었고,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내일’이란 미래가 존재함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나의 글자가, 한 나라의 역사와 한 사람의 삶에 깊숙하게 파고드는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이리라.

 

집 근처 마을도서관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어르신들-보통 70세 이상이신 분들, 그리고 할머님들이 대부분이다- 한글수업을 진행한다. 알고 지내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처음 몇 번 그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많으신 분들이 수업을 받으실 줄 몰랐다. 그건 글을 모르시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분들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글을 써서 의사를 표현한 적은 없었다고 하셨다. 아... (또 한 번 아...) 흔히 까막눈이라 부르는 삶이 동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안타까움의 한숨을 여러 번 자아냈다. 처음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보다 더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만 수업을 따라올 수 있다고 담당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수업을 들으시는 할머님들의 표현 그대로를 옮겨보자면, 머리가 굳어서 빨리하면 못 따라간다, 라고 하시더라. 그럼에도 저하된 시력으로 눈을 크게 뜨고 칠판을 바라보시는 모습들은 사뭇 진지하다. 속된 말로, 다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데 이제 와서 머리 아프게 글은 배워서 뭐에 쓰나,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런데 이 어르신들의 수업을 잠깐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분들의 열정에 끝없는 박수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다.

 

지난 3월,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이분들의 수업도 같이 시작했으니 지금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주에 도서 반납 때문에 마을도서관을 찾았다가 다시 한 번 이분들의 수업에 참관하게 되었었다. 아, 반년이란 시간동안 이분들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더라. 일상이 바쁘실 텐데 그사이에 자신들의 이름과 짧은 문장들을 쓰고 계셨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 국어 노트에 열심히 배운 것을 쓰고 계시던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니, 그 할머니 나를 보고 수줍게 웃으신다. 나도 마주 웃어주면서 살짝 여쭈어봤다.

“할머니, 한글 다 배우시면 뭐하실 거예요?”

“응... 우리 손자한테 크리스마스카드를 쓸 거야.”

라고 말씀하신다. 그동안 손자 분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랑 연하장을 받았는데 한 번도 답장을 쓰지 못하신 게 내내 마음에 걸리셨단다. 큰돈이 들어가는 선물도 아니고 문구점에서 금방 사서 몇 글자 써서 보내고는 했었던 카드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반년 이상을 배워야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엇보다 칠순이 넘은 한 노인에게 올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수 있는 간절한 희망을 갖게 한 게 한글이라는 점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개인의 삶이 이렇게 기록되듯 역사 또한 이렇게 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졌다! 사계절 그림책
서현 글.그림 / 사계절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다 자란 어른인 저는, 지금도 키가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많이 웃음 ^^) 다 자라다 못해 이제는 늙어가면서 오히려 키가 줄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실제로 저희 엄마가 나이 드시고 키가 줄었어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이 들면서 대부분은 키가 약간씩 줄어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세 변형이나 뼈 같은 곳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면 그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저는 지금 5cm정도만 더 자라서 아주 얇은 플랫슈즈를 신고 윗동네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음, 제 키가 지금 164cm 정도 되는데 살짝 아쉬워요. (일단 다이어트부터 좀 하고. ^^)

그런데
저 말고도 키가 크고 싶은 아이가 있군요. 오호~

우리의 주인공은 키가 크고 싶어 합니다. 누군 안 그렇겠어요. 키가 훌~쩍 크고 싶죠.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른 나이게 키에 대해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보통 생각하기에 사춘기 때나 하는 고민이 아닐까 싶은데 초등 저학년, 혹은 초등 입학 전에도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작으면 아이들만의 고민도 시작된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키가 우리 인생에 이렇게 중요한 문제였던지, 어휴. 이 어린 아이들까지 이른 나이부터 키 고민에 합류하게 되는군요.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은 키가 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키가 크기 위한 노력은 엄청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시간을 지켜 잠을 잡니다. 오직 키가 크기 위한 바람으로요. “얼른 크면 좋겠어요!!”

어~ 어~ 정말 커졌어요!

나무가 햇빛을 쐬고 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라듯이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했더니 비를 맞고 자라는 나무처럼 쑥~! 쑥~! 커졌어요! 너무 신나요~ 사람들이 개미만 해 보여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 정말 신기하군요.

키가 크니까 배도 빨리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많이 먹었어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었죠. 먼지, 쓰레기, 음식, 꽃과 나무, 건물, 자동차 할 것 없이 입안으로 몰아넣고 뱃속을 채웠지요. 그래서 지구를 뚫고 우주까지 휩쓸 정도로 커져버렸어요! 슈우우욱! 그러다가, 친구들과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지구까지 삼켜버렸어요. @@

우욱! 퉤, 퉤, 퉤!
신기하게도 다 뱉어냈더니, 다시 작아졌어요. 아, 아, 다시 작아졌네? 어떡하지?

키가 크고 싶은 아이가 참 아이다운 발상으로 키가 커지는 모험을 즐기는 이야기입니다. 엉뚱해서 웃음도 나고, 그만큼 키에 대한 고민이 심각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식물이 자라듯 사람도 그렇게 자랄 수 있다는 발상으로 아이는 ‘키 크기’ 모험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죠. 그런데 마지막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시 작아졌지만, 그래도 그 전보다 큰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 이렇게도 키가 클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우주까지 키가 자란 아이의 상상력에 기발함이 보이고, 모든 것을 집어삼켜 신체의 상태를 유지하는 생존력에 눈이 크게 떠지고, 결국 우리가 살던 지구까지 삼켜버린 아이가 다시 뱉어내는 모습에서는 원칙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무리수를 두어 지구까지 삼키는 것은 안 될 일이니까요.

아이의 엉뚱함 때문에 웃음이 많이 났지만,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에 대한 그 상상력은 충분히 차고 넘치게 기발했습니다. 그렇게 자랄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아이다운 모습과 생각에 더 들어주고 싶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키가 크고 싶은 것은 어린 아이나 자라는 학생들이나 이미 어른이 된 우리도 바라고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어른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키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 자랐다는 것을요. ^^ 키가 커야겠다는 스트레스에 가까운 고민들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것이 키가 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말해주고 싶어지네요. 하루 세끼 제 시간에 밥을 먹고, 규칙적인 운동과 활동을 하고, 자야할 시간에는 잠을 자고 하는 것들이 가장 기본이라고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4
조나 윈터 지음, 정지현 옮김, 배리 블리트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지인이 이삿짐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서, 이삿짐 옮기고 난 후의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자주 들었던, 이삿짐센터에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반갑지 않은 이삿짐 목록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라고 했다. 너무 무겁고, 혹시라도 옮기면서 흠집이라도 날까 긴장하면서 옮기게 되고, 이사를 의뢰한 사람의 집이 1층이 아니면 피아노를 옮기기도 전에 등에 땀부터 난다고. ^^ 전문가들이 피아노를 옮기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실제로 피아노를 옮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나도, 상상만 해도 벌써 등에 땀이 난다. 베토벤은 그런 피아노 이사를 빈에서만 서른아홉번이나 했다니 금방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괴팍한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던 일꾼들의 땀 흘리는 얼굴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사실 :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1770년 독일 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베토벤은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가 있었고, 방바닥에 앉아 위대한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서른아홉 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책에서 다루려는 주제입니다. 피아노를 옮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기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베토벤.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음악가. 훗날,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라고 들어온 인물이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베토벤의 유명한 음악 몇 곡만 들어왔을 뿐, 베토벤이라는 인물 자체나 그의 음악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역사에 대해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에서 들려주고 있는,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에 살면서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서른아홉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왜 이사를 그렇게 자주 했었는지, 어디로 이사를 했었는지, 그가 이사한 방은 어땠는지, 문제의 다리 없는 피아노 다섯 대를 이사할 때마다 어떻게 옮겼는지 알려진 부분이 없다. 이 백 년 동안 연구됐지만 피아노 다섯 대를 옮긴 방법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밝혀내고 싶은 미스터리란 말인가! 서른아홉번이라는 이사의 횟수가 적지도 않을뿐더러(^^), 한 대도 아닌 다섯 대의 피아노를 매번 어떤 방식으로 옮겨야 했을지 궁금했던 마음을 한방에 해소해주고 있는 책이다. 게다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베토벤의 음악이 탄생된 배경까지 듣고 있자면, ‘어머, 정말?’ 하면서 귀가 솔깃해지고, ‘아하, 그럴 수도 있겠어!’ 라며 손뼉을 치면서 읽게 된다.

예를 들면, ‘피아노 소타나 14번(월광)’은 도시 중심가에 있는, 열린 창으로 달빛이 들어오는 아름다운 방에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말한다.(상당히 그럴싸하지?^^) 그럼, 이렇게 아름다움이 스며드는 방에서 계속 작곡을 하면 될 것을, 베토벤은 이 셋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왜냐고? 방세 내는 것을 잊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ㅠㅠ 이때부터 베토벤의 이사여행은 시작된다. 그 다음 이사한 지하 셋방에서는 8일 만에 또 이사를 하게 된다. 테라스가 있는, 다뉴브 강이 한눈에 보이고 창문으로는 비엔나커피 향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교향곡 3번(영웅)에서 5번(운명)’까지 만들었다고도 한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는 ‘교향곡 6번(전원)’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니, 혹시 그가 한 번씩 이사할 때마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악상이 막 떠올랐던 것일까? 그럼 서른아홉 번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이사를 했다면 지금쯤 베토벤의 음악은 더 많이 남겨져 있었을까? ^^

이 책이 써진 목적처럼, 여기서 내가 추리하고 싶은 것은 그의 이사 이유만큼이나 서른아홉 번에 달하는 그의 이사에서 피아노가 어떻게 옮겨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어떻게 건물 밖으로 꺼냈는지(비록 다리가 없었다고 해도 피아노는 덩치가 크고 무겁잖아!), 고층 혹은 지하 같은 곳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올리고 내리고 했는지(혹시 피아노가 타고 다닐만한 미끄럼틀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갈 때는 어떻게 갔는지(바퀴가 달린 커다란 수레를 직접 제작해서 피아노를 태웠을지도 몰라!) 그의 이사에 관한 모든 것이 궁금해서 안달이 날 지경이다. 피아노를 건물 밖으로 꺼내어 뒷문으로 옮겼을 수도, 도르래로 지붕 위를 통과하게 한 다음 옆 건물 난간에 내려놓았을지도, 벽을 뚫고 이웃집의 주방을 통과했을 지도, 낑낑거리면서 고층 계단을 걸어서 피아노를 들고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베토벤의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직접 도면(피아노를 땅에 내리지 않고 옮길 수 있는 방법을 그렸다니까!)을 그려야했을 정도로 짐꾼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이사로 인한 분노가 끓어오르기 일보직전이었던 것 같다. ^^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이곳저곳으로 옮기느라 망가진 피아노를 버리고 새 피아노를 사기도 한다.

베토벤의 이사의 시작이 단지 방세를 못 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일기에서 언급됐던 것처럼 ‘코를 찌르는 끔찍한 치즈 냄새’ 한 가지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점점 잃어가는 그의 청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처음 이사의 시작은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그의 청력은 이웃들에게 본의 아니게 소음을 제공하는 격이 되었다. 이웃들의 “다아아아악쳐!!!” 하는 항의가 빗발쳤으니까.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피아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고, 조금 더 크고 힘 있게 피아노 건반을 내리친다면 자신의 귀에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귀, 폭발할 것 같은 화, 광기까지 더해져 피아노에 그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인지도... 어쨌든, 실제로 그가 내는 소음 때문에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는 걸 보면 그의 잦은 이사의 이유가, 이웃에게 끼치던 소음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베토벤은 청력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귀로 그는 ‘교향곡 9번(합창)’까지 만들어냈다. 그의 이웃들에게는 이런 그의 행동이 소음으로 행하는 폭력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자신이 계속해왔던 음악(작곡)에 대한 애착과 들리지 않는 귀로 인해 번번이 좌절로 보내야 했을 시간을 견디게 해줄 방법 같은... 상상력과 사실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들려준 그의 이사는 웃음과 기발함으로 재미를 주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음악에 대한 그의 고통과 간절함은 괴팍스러운 성격과 광기, 소음으로 신고 되기까지 하는 그의 음악으로 함께 보여주고 있다. 상상력으로 그려진 이야기의 웃음 뒤의, 사실을 담은 그의 고통으로 인한 아픔까지 보게 하는 것이다.

외골수, 광기, 혹은 괴짜로 유명한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서른아홉번의 피아노 이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상하는 재미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걸 보면, 이 책의 작가 조나 윈터 역시 베토벤 못지않게 괴짜로 보인다. ^^ 틀에 박힌 위인전의 색깔을 벗고 뜬금없이 베토벤의 이사를 언급하다니! 요즘에 비추어 보면 베토벤은 진상 중의 진상 고객이다. 들려오는 그의 성격을 봐도 보통의 고객은 아니었을 것이다. ㅋㅋ 피아노 다섯 대와 괴팍한 성정의 베토벤. 생각만 해도 진상 고객을 욕하는 짐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이삿짐센터에서 피해가고 싶은 진상 고객이다. 이 많은 책에다가 예민한 성격까지, 베토벤의 서른아홉번의 이사로 내가 받은 교훈은 이삿짐센터의 진상 고객은 되고 싶지 않다는 거. 그렇다면 (이사 계획이 생긴다면) 이사하기 전에 이 책을 다 처분하고 이삿짐센터에 의뢰해야 한다는 말인가?! ㅠㅠ

이 책에서, 베토벤의 이사는 서른아홉번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나머지 이사의 방법, 이사의 이유, 이사하는 모습을 우리가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베토벤의 그 시간 속으로 함께 들어가 그와 같이 이사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봐.(어쩌면 나는 낑낑대며 그의 다리 없는 피아노 중의 한 대를 옮기고 있을지도 몰라!) 신나지 않겠어? ^^

그동안 내가 만났던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보편적으로 들어왔던 내용은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 형식이었는데, 이 책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은 베토벤에 대해 알려진 사실 단 몇 줄만을 언급해주고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형식으로 구성했다. 베토벤이 서른아홉번의 이사를 했다는 것뿐, 이사의 내용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기발한 상상력을 채워 넣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그림과 글로 보이고 있는 그 이상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계속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몇 가지 추측으로 따라가 본 베토벤의 이사는, 어쩌면, 영원히 ‘왜?’ 라는 의문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베토벤의 인생에 있어서 이미 알려진 사실들 말고, 이런 내용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아니겠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