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Navie 255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예쁜 우산 하나 갖고 싶어지게 한다...

 

 

나에게 징크스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많이 걸리는 게,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이 없는 거다. 오늘처럼...

하루도 비켜가지 않았다. ‘비’ 따위 나는 모르겠소, 하는 것처럼 하늘이 쨍쨍 맑아서 그냥 나가도 비가 온다.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다. 늘 우산이 없거나 가진 우산마저 잃어버리곤 했었다.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괜찮아서 그냥 나갔더니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늘... 오늘처럼...

계속 내리던 비가 오후에 잠깐 멈췄다. 잠깐이니까 괜찮겠지 싶어서 우산을 두고 그냥 나갔다. 불과 몇 분 사이. 갑자기 사위가 캄캄해지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그 잠깐, 너무 방심했나보다. 그럼 그렇지. 어김없이 또, 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징크스가 아니라, 비가 내릴 거라고 분명히 말했던 일기예보를 내가 무시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미리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던 나의 못된 습관이 오늘 같은 날까지 비를 맞게 한 것만 같다. 오늘, 그냥 보이던 우산을 들고 나갔으면 될 일을 굳이 무시하고 나가서 비를 맞은 거다. 하늘에서 갑자기 퍼붓는 비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거 마지막 경고니까, 이젠 우산 준비를 좀 하고 다니시지?’

 

 

살아가는 게 팍팍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날씨까지 이렇게 더해주면 정말 길바닥이라도 누워버리고 싶어진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위로의 한 자락을 찾아다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늦은 시간, 고요하게 반복재생하며 듣고 있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라디오 찾아 채널을 고정하고 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잘 들리지 않아서 볼륨을 높여야만 하는데도, 선뜻 라디오의 OFF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계속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중인 거다.

 

가끔 걸리면 뉴스 정도, 스치듯 드라마 잠깐 보는 편이어서 그런지, TV보다는 라디오를 즐겨 듣곤 한다.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큰언니를 따라서 초등학교 때 처음 라디오를 듣기 시작해서, 중고등학생 때는 내가 직접 찾아서 들을 정도로 좋아했었으니까. 그것도 한밤중의 라디오를... 한밤의 라디오는 모든 감성을 총동원해서 끌어올리는 정점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의 노곤함을 풀기 위해 누워있는 시간, 누군가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로 눈이 초롱초롱 떠져 있기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그 밤에 다 들려오는 듯 했다. 그 시간, 그렇게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음악들,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사연들, 결국은 살아가는 모양새가 비슷해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렇게 나도 그 공감의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라디오...

그렇게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서 들려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귀로 듣는 이야기들이 저절로 가슴에 담겨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여기, 그런 여자가 한명 더 있다. 신희수. 서른둘의 봄, 어느 날 문득 라디오에 손을 뻗고 들려온 디제이의 이야기와 음악에 위로를 받는 여자가 있다. 그 전파를 타고 날아와 가슴에 박혀 시린 가슴에 세상의 온기를 뿌려주는 사람, 이은세를 만난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두부로 위로 받던 여자 희수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배려해주는 남자 은세가 만나서 이루어가는 사랑이야기다. 얼핏 보면 일반인과 연예인의 만남쯤으로 생각하기도 쉽겠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내가 이 책에서 집중해서 느꼈던 부분은 그 여자 ‘신희수의 삶’이었다. 그 가운데 은세라는 인물은 신희수의 서른둘 나이에 시작된, 또 다른 인생의 조력자라고나 할까. 무언가 막연한 그 순간에 누가 불을 질러놓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 은세는 희수에게 그런 자극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풀어 올라 흐릿해진 여름밤의 정경을 희수는 방울방울, 눈물로 떨구었다. 소리도 없이 눈물이 났다. 세상이 이다지도 아름다워 웃음 짓는 순간에도 눈물이 흘렀다. (183페이지)”

서른둘, 인생에 있어서 뭔가가 정해져있고 쌓아져 있어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준 1년이라는 안식의 시간이 정말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여행에 대한 동경으로 사 모은 책들만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 순간...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마냥 불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때 만난 은세는, 외로움과 막연함과 두려움으로 희수의 시야를 뿌옇게 가려버린 안개를 걷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오히려 희수의 새로운 선택을 지지하며 응원해주고, 같이 시작할 내일을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아마 은세 본인도 희수처럼 다시 일어나고 자라나는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철컥’ 소리와 함께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가 잠겼다가, 다시 풀리는 순간을 확인했을 때 쏟아지는 눈물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쏟아지는 비가 아무리 가려준다고 해도 본인은 알고 있으니까. 지금 이 눈물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한 여자의 서른 두 해가 누군가의 눈에는 눈물로만 채워져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매. 모든 것이 어려웠던 때. 그래서 더 치열하게 앞으로만 달렸던 시간들. 당신 딸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워보였지만 차마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없었던 엄마의 눈물.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아직도 결혼 안하고 혼자인 딸의 현재를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만 같아서 더 애달픈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제라도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순간, 딸이 선택한 것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는 여행이라 더 불편한 마음인 엄마였다. 그마저도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붙잡고만 싶은 간절함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이 그러한가 싶게 만드는 부분들의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적신다. 그 누구를 이해할 것도 이해 못할 것도 없게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너무 콕콕 쑤신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보듬어지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인가?

 

살아가는 그 순간의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너무나 평범해서, 우리들의 엄마를 보는 것만 같아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막막한 내일이 두려운 우리들 같아서... 이런 이야기, 차마 모른 척 하고 이해 안 된다고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순간순간 치받고 올라오는 감정들 때문에 화가 나게 만들면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게 만드는 이기적인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사람이 자라나고, 사랑을 하고, 정을 나누고, 마음을 키우면서 세상에서 담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들이부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

사연을 싣고 들려오는 이야기에, 필수 옵션처럼 따라오는 음악에, 지금 들려오는 모든 것에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좋네, 라디오...

 

 

서른 두 살의 봄, 신희수에게 찾아온 위로가 나에게도 찾아올까? 비록, 전파를 타고 날아온 음성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른 아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가게 앞에서 시작되었지만,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어지게 창피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에서 조우한 것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이자 힘이었다는 것을... 서른세 살이 된 신희수는 알게 되었을 테니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알지도 못하는 음악 한 곡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기적처럼 나타난 것만 같다.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 비가 내려도 괜찮을, 우산 하나가 준비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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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리 2014-11-0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리뷰 보고 라디오 구입했어용 ^^ 땡스투 눌리고 갑니다 ^^

구단씨 2014-11-11 16:56   좋아요 0 | URL
설리님 취향에도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