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웨딩드레스
김은정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뛰쳐나가는 신부의 설정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었어? 근데 그 영화 같은 설정을 가능하게 만든 여인네가 여기 또 한명 있어. 한세경. 지나간 첫사랑이 남겨두고 간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해서 사랑이란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비오는 날을 공포로 만들었지. (세찬 빗줄기 아래서 무섭게 차였던 거야.) 그런 그녀가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했다지. 굳이 사랑이라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지로 선택한 결혼. 그런데 뭔가 이상해.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망설임이 결혼식 직전에 드는 거야.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 사랑이 아님을 알았는데도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을 계속 하던 순간 뛰쳐나갔어. 저주 받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질주를 시작한 거지.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었나 봐. 그 웨딩드레스 세경이 것이 아니었거든. 이탈리아 장인에게 특별 맞춤 제작한 자신의 웨딩드레스가 아닌 다른 이의 웨딩드레스가 배달되어 왔던 거야. 그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나봐. 이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결혼식은 끝장나고 사돈어른이 될 뻔한 분들의 화를 받아내느라 자신의 일에 차질이 생기고, 타이밍 절묘하게 5년 전에 떠나간 첫사랑은 되돌아와서 받아달라고 떼를 쓰고, 바뀐 웨딩드레스를 제자리로 찾아주기 위해 조해윤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 바뀐 드레스는 자신의 약혼자가 주인이었던 거야. 그 남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행기 공포증이라면서도 얼굴이 허옇게 사색이 되어 나타난 거야. 오직 그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근데 이놈의 웨딩드레스는 발이 달렸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웨딩드레스를 찾기 위해 스펙터클한 액션 로드 무비가 펼쳐지고 있어. ㅎㅎ

남주 조해윤.
변호사인데 이 남자 진지한 모습을 별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고아로 자라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성공했다. (물론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후원자의 손녀딸과 결혼하려 했다. 아이도 필요 없고 사랑도 필요 없다. 어차피 사랑이란 것도 믿지 않던 그였으니, 그냥 돈 계산만 잘 해서 챙기면 된다. 그러려고 했다. 그래서 비행기 공포증도 무릅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로지 약혼자가 애타게 찾는 이탈리아 장인이 유작으로 남긴 그 웨딩드레스에 목숨을 걸고.
여주 한세경.
기획사의 평범한 월급쟁이다. 말 그대로 일도 잘해야 하고 사장님께도 잘 보여야 밥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좀 편하게 살 것 같은 결혼이었는데 그것도 만사 오케이는 아닌 것 같다, 막판에 뛰쳐나온 것을 보면. 끝장 난 결혼식에서 남은 건 자신에게 웨딩드레스뿐인데 그걸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남자에게 왜 그 웨딩드레스를 찾아주어야 하는지 괘씸하지만. 뭐 그래도 바뀐 건 바뀐 거니까 일단 찾아주기로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진심이 궁금하다. 뭐, 어쩌자는 건 아니지만…….

웨딩드레스가 뒤바뀐 (뒤바뀌었다 해도 상관없는)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온 남자와의 한판 달리기 같다. ^^ 꽈배기 보다 더 심각하게 꼬인 이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무난하고, 특히나 시종일관 웃음이 나게 하는 두 사람의 대화들이 톡톡 튄다. 웃어보고자 싶으면 읽어봐도 좋다. 우울해지려던 차에 읽으면서 한바탕 웃었으니 다행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다. 웃겨줄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게 하고, 진지해야할 부분에서는 진지함도 남겨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각자가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물론 소설이 주는 허구도 분명 있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니까.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현실과 이야기를 같이 듣게 되는 기분이다.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이들의 이야기에는 세상 속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뭔가가 느껴진다. 진정 결론에서는 찾을 것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하지만, 그 과정은 고속도로도 있었고, 자갈길도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따라 달리던 이 두 사람이 결승점에서는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기 끝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책 소개 글에서 보면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했다. 꼬이고 꼬여서 더 꼬일 것이 없을 때, 의외의 곳에서 탈출구가 열린다는. ^^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면 다음에도 선뜻 선택해서 읽고 싶어진다. 개운한 여운이 있거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 나간 마음을 찾습니다 -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민선 작가가 그려낸 선연한 청춘의 순간들
정민선 지음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희한하게 그런 느낌이 있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와 방송작가가 쓴 에세이는 그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읽어본 후의 느낌이 저절로 그걸 잡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한밤의 라디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이미나씨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무언가가 다른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난다는. 그래서 더 내 맘에 들었다는 게 생각이 난다.
이 책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TV음악방송 프로그램의 작가가 쓴 에세이. 근데 왜 나는 자꾸만 라디오 작가 같은 느낌을 더 받았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그렇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소설과는 다른 느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 어쩌면 누구의 가슴 속 이야기를 써놓은 일기를 보는 것 같은…….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그런지 더 부담 없이 읽힌다. 그렇다고, 부담이 없다고 해서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도 못하겠다. 가볍게 휘리릭 넘기고 싶은 책도 아니다.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고 공감하면서, 오래전 우리들을 꺼내게 되는 순간 숨어있던 온기마저 찾아내어 나누고픈 책이다.

주로 심야에 방송하는 음악방송이 그녀의 손을 거쳐 나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리고 드라마음악의 가사까지 그 영역을 보탠 그녀. 그녀가 서른을 앞에 두고 쓴 이야기다.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주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어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 그저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듯 조용히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녀의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이야기,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이야기, 그래서 다시 또 계속되는 하루하루를 만나야할 이야기.

사랑도 일도 일상도, 소소하거나 크거나, 모든 것들을 다 합한 인생이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에,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책으로 태어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동안에 그녀는 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의 마음은, 마음이 생각이 되고 정리가 되고 활자로 연필로 종이에 한 글자씩 한 줄씩 써내려갈 때마다 내려놓음이었을 거라고. 무거운 것들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내일을 위한 그녀의 마음은 점점 가벼워져서 차분히 호흡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표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집 나간 마음’이라니. 허락도 없이 수시로 집을 나가는 우리의 마음들, 그 마음들을 다시 잡아다가 내 안에 가두어야 안심이 될 것 같은데 조바심이 나지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더 어른이 되고 무언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간 후에는 저절로 다시 들어올 것 같다, 그 마음이. 그래서 안절부절 서성이듯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곧 다시 돌아올 그 마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분이다. 곧.돌.아.올.테.니.까.

그녀의 담담한 이야기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찍힌 듯한 사진들, 인디밴드가 들려주는 세상살이를 초월한 듯한 가사들. 굳이 사랑에 관한 에세이가 아니라, 무언가 간절히 말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는 내 귀로 들어오고. 책 표지의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의 주인공인 그 여자처럼 마음에 바람이 같이 불어온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한밤의 라디오에서도 듣고 싶어진다.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그녀의 마음을 듣고 싶다, 그녀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노래의 가사와 함께.


슬픔에 대처하는 그녀들의 자세

A는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비누를 잔뜩 칠해서 박박 무지르고 헹구고
‘아무래도 때가 덜 진 것 같아’ 혼잣말을 하며
옷이 다 닳도록 문대고 또 문댔다.

C는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칫솔에 치약을 꾸욱 눌러 짜서는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거품을 물고
3분이 넘도록 치카치카 칫솔질을 했다.

S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의 소음에 맞춰 못생긴 춤을 추었고,
낡은 수건을 걸레로 둔갑시킨 후
닥치는 대로 먼지를 훔쳐냈다.

J는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20분간 몸을 불린 후
이태리 타올로 힘주어 구석구석 때를 밀었다. 

 

어떤 일이 되었든지 그게 슬픔이 되고 힘겨운 순간에는 풀어낼 방법이 필요하다. 그녀들은 빨래를 하고 칫솔질을 하고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한다. 나는, 잠을, 잔다. 당신들은 무얼 하면서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어 어휘 어법 사전 -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
김이석 지음 / 미문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종종 그럴 때가 있다.
분명 맞는 말 같은데 아닌 것 같고, 같은 의미인데 길게 발음해야 하는지 짧게 발음해야 하는지 구분이 안될 때도 있고, 이게 맞춤법이 맞나 싶을 때가 있고. 어떤 경우에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그 적절함이 빛을 발하는지 몰라서 허둥댈 때도 많고.
온라인이 연결된 상태라면 바로 사전 검색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오프라인 일때는 종이사전이나, 혹은 전자사전이나 그 밖의 다른 도구들로 검색을 하게 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는 수고스러움에도 찾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사전을 찾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정말이지 맟춤법 검사기를 바로 옆에 즐겨찾기를 해놓고서도 게으름과 귀찮음에 사용하지 않을 정도면, 내가 사용하는 어휘 하나가 틀렸어도 뭐 대수랴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넘기고픈 마음... 실제로 나는 십자말 풀이나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퀴즈가 아닌 경우에는 그까짓(?) 맞춤법이나 부적절한 어휘 사용 정도야 가뿐히 무시하는 지독한 게으름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참고로 나는 완전 두터워서 손목이 아플 정도의 그 가죽커버의 종이사전을 선호한다. 아쉬운 얘기지만 어느 사전전문업체는 이제 더이상 종이사전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보니 수익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로 세상에서 종이사전이 사라지기 전에 가죽커버로 하나 마련해놓아야겠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종이사전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만난 책이다.
400여 페이지 분량의 어휘 어법 사전. 제목에서 들리는 그대로다. 어휘와 어법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두꺼운 종이 사전 수준은 아니다. 아마도 그 종이사전 안에서도 우리가 사용하는 빈도수가 높은 어휘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지는 않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봤다)
흔히 일상 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휘나 이걸까 저걸까 혼동하기 쉬워 잘못 쓰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어휘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얼핏 학생용 참고서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참고서는 아니고 옆에두면 종종 손길이 갈 만한 필요성을 가진 책이라는 말씀.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생활에 이용하는 빈도수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실제로 글을 쓰는 분들, 혹은 글에 관련해서 가르치는 분들이 원하는 단어를 손쉽게 찾아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당히 유용한 구성이다." - 뒷표지에 이렇게 써 있다. 그런데 정말 맞는 말 같다. 실제로 그렇게 이용하라고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나처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도 들여다보게 된다. 필요한 것만 쏙쏙 찾아서 쓰고 싶은 간편함에...
각각의 어휘에 설명에, 옆에 살짝 해설이 필요한 부분에는 해설까지 곁들이고, 뒷부분에는 고사성어나 속담, 관용어까지 담겨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이나 다른 시험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문제들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참고서 역할도 할 것 같다.

일단은 크거나 해서 부피를 차지하지도 않고, 책처럼 옆에 두고 종종 사용할 것 같아서, 지금 옆에 쌓아두었던 책들 옆에 나란히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필요할때 바로 들춰볼 수 있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구판절판


조카아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책선물을 우선적으로 해서 그런지...
의외로 동화책 단행본을 선물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불어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것을 같이 배우게 된다. 작년에 작가의 전작들을 보고나서 그림이 참 예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얘기들일지도 모를 일들을 이렇게도 설명해줄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책이 주는 즐거움과 교훈을 다시 한번 알아가게 된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빠의 숨겨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 <구름빵>. 그리고 이번에는 절약이라는, 환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달 샤베트>.


정말 무더운 어느 여름날 밤.
너무나 더워서 잠도 오지 않는 그 밤에 모두들 창물을 꼭꼭 닫은채로, 에어컨과 선풍기를 쌩쌩 틀어대며 잠을 자고 있는데...
똑.....똑.....똑..... 들리는 소리. 창 밖을 내다보니 정말 커다랗던 달이 똑똑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가 큰 고무 대야를 들고 뛰쳐나가 떨어지고 있는 달방울들을 받았더랬지. 고무 대야에 받아진 달 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반장 할머니는 노오란 달 물을 샤베트 틀에 나누어 담은 다음, 냉동칸에 넣어두었지.

여전히 에어컨과 선풍기가 쌩쌩 돌고 있던 그때...

앗~! 온 세상이 캄캄해져버렸어. 전기를 너무 써서 정전이 되어버린거야.
사람들은 온통 캄캄한 그 곳에서 벽을 더듬어가며 반장 할머니 집으로 갔어. 반장 할머니집 창문을 통해 노오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 빛을 따라 반장 할머니 집으로 향했지.
할머니는 문을 열고 냉동칸에서 꺼낸 달샤베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지. 할머니가 주신 달샤베트는 정말 시원하고 달콤했어.

근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달샤베트를 먹고 나니까 더위가 싹 달아나 버렸던거야. 이럴 수가...
달샤베트 덕분인지, 그날 밤 사람들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틀지 않고, 창문을 활짝 얼겨 잠을 잤어. 모두들 너무나도 시원하고 달콤한 꿈까지 꾸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날 밤, 반장 할머니집에 찾아온 또 다른 손님이 있었지.
달이 사라져 버려서 더이상 살 곳이 없어져버린 옥토기 두 마리. ^^

생각에 잠긴 할머니는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빈 화분에 남은 달 물을 부어주었어. 그러자 정말 달처럼 환하고 엄청 커다란 달맞이꽃이 피어난거야. 달맞이꽃의 꽃송이가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지. 아주 환하게...

그리고 잠시 후, 새까만 밤하늘에 작은 빛이 피어났는데... 그건 점점 더 자라나 커다랗고 노랗고 둥그런 보름달이 된 거지. 옥토끼 두 마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새로 피어난 보름달 속으로 돌아갔어...
반장 할머니도 달콤하고 시원한 잠을 청할 수 있었지... ^^


모두가 시원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반장 할머니의 달샤베트 덕분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자연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겨울, 한 여름, 전기 사용량이 매일 최고치를 경신한다고 하는 뉴스를 보면서 나도 일조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뜨끔하지만, 그래도 '나는 에어컨은 잘 안틀잖아' 하면서 핑계를 대본다. 사실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전기가 아니면 안되는 많은 것들을 열어놓고 있다. 컴퓨터, 방을 환하게 해줄 전등, 따뜻하게 해줄 보일러와 전기매트... 등등... 한낮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는 것 같다. 잠깐만 전기가 끊겨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사실 그게 없어지기 전에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모르는 듯 하다. 여름 땡볕에 단수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리라.

전기를 절약해야 하면서, 전기 낭비로 인해 파손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설명을 어른이 아닌 어린이를 그것도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단 설명 자체가 어렵고,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나이이기에...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동화라는 장르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서, 눈길을 끄는 그림에 그 역할을 더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있는 전기, 그로 인해 갑자기 찾아온 정전, 달샤베트를 통해 달빛의 밝음까지 앓게 해주니까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어른들의 눈에도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해도 모르는 생각없는 어른들이 분명 있을테니까...

자연바람의 상쾌함을 느끼고자 드라이브를 하고 '바람을 쇠러 가자'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분명 자연이 주는 그 무언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편리함보다 한수 위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고, 비닐 코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움이나 파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넓게 이해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책의 맨 뒤장에 적혀있는 이 문구가 가슴을 따갑게 한다. 멋지고 좋고, 소장하기 좋은 책만 생각했지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는 생각 못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월 0일
바르트 무이아르트 지음, 한경희 옮김 / 낭기열라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그 무엇도 폭력 앞에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것만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폭력 사이의 관계, 그 거리,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폭력과 파괴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베니와 바르트, 그리고 바르트의 개 엘머는 어딘서가 쫓기듯 달려온다. 바르트의 가슴에 죽은 오리 한 마리를 품고서... 뒤따라 달려오는 사람은 베트예만. 죽은 오리의 주인이며 한쪽 손이 플라스틱 의수로 된 사람. 그렇게 달리다가 끝이 날 줄 알았는데, 결국은 바르트의 개 엘머를 오리의 주인 베트예만이 죽임으로서 새로운 폭력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베니와 바르트는 왜 베트예만의 오리를 죽였나?...
시작은 그렇다. '장난'이었다. 뛰어다니던 엘머를 찾으러 베트예만의 집까지 들어갔는데 마침 보였던 오리. 장난으로 집어던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장난이라... 그 결과 오리는 죽었고, 오리의 주인 베트예만은 베니와 바르트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은 오리를 안보이는 곳에 던져놓고 아무일도 없었던 듯 행동했고, 결국 베트예만은 자신의 오리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바르트의 개 엘머를 죽인 것.
그럼 그 장난은 단순한 재미로 시작된 것인가?. 진짜 장난이었어?... 

이제부터 하나의 퍼즐을 맞추든 하나하나 조각들이 등장한다. 왜 오리를 집어던지기 시작했고, 베트예만이 바르트의 개 엘머를 죽였는지, 단지 모든 이유가 그것 뿐이었는지...
이야기는 이 책이 다 끝날 무렵에 모든 진실을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마지막 장을 덮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을 남겨놓고서... 우리는 그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능력도 힘도 없지만, 충분히 같이 고민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의식하면서도 혹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지르고 있는 폭력들을 우리가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도 그게 폭력인지조차 모를 때가 많으니까. 뒤돌아서서 다시 또 잊은듯 행하는 폭력일테니까... 

그럼 그 폭력이 생겨났던 이유는?...
분명 그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을테지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던 그 폭력은 하나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외로움'.
"있잖아." 베니 엄마가 말했다.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어."
"그래, 아주 외로운...... 사람들이 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떠나서 말이야. 과거에 있었던 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린 거야. 그 사람들한테는 이제 남은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뿐이지. 외롭게 말이야. 무엇보다도 외롭게 말이야." (51~52페이지)
베트예만에게 쫓기던 베니와 바르트에게 베니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예만의 외로움에 대해서... 그가 외롭다고 해서 그가 부리는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그 폭력이 생겨난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어른의 눈으로 보는 어른의 외로움을 베니엄마는 설명하려 한다.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고독을 넘어서는 고립됨을... 집에 아무리 물건들로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도 사람의 마음 속에 미처 채워지지 못한 그 외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어른이 말하는 그 외로움을 다 이해하지 못했을 뿐더러 또 다른 분노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바르트의) 외로움은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당했던 것. 어른이 말하는 그 외로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또 아이의 입장에서 가지는 외로움이 있는 것이다. 베트예만이 자신의 가족들 속으로 침투(?)하려 드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바르트의 마음이 외로웠고, 미안한 줄도 모르고 행하는 폭력을 증오했던 것일테니까...
마치 한켤레로 여겼던 베니의 말이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인줄도 모르고 베니와 함께 또 다른 폭력을 시작하려 했던 바르트의 행동, 그리고 실패로 끝난 복수가 바르트의 가슴에 남겼을 그 무엇이 만들어낸 감정은 또 다른 외로움과 힘이 없는 자책감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우정을 빙자한 폭력.
무언가 확신할 수 없어 행동하기 주저했던 마음을 베니가 흔들어놓는다. 마치 고민하던 바르트의 머리 양쪽 위에서, 하나의 천사와 하나의 악마가 속삭이던 것처럼...
"아무리 복수하고 싶다지만 그건 아니잖아. 좀더 다른 것으로 마음을 달랠 생각을 해봐."
"아니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이 되갚아줘야해. 그게 맞는거 아니겠어?"
친구라는 베니의 역할은 후자였다. 아직 덜 자란 인격체이기에 그런 하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베니의 역할은 한결같았다. 바르트를 좀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듯한.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마음 가운데 바르트는 한켤레라는 이름으로 베니를 따른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우정이란 이름으로 바르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베니의 역할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 친구라는 이름은 허울 뿐이고 무슨 부하 다루듯 바르트에게 행동하는 베니의 행동이 그랬으며, 끝까지 함께 하는 듯한.
이미 어른인 우리들도 덜 자란 인격체의 모습을 보일때가 많은데, 하물며 아직 어른이지 못한 이 아이들의 행동에 감히 뭐라고 판단하고 훈계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마음은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데,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행동해야 친구인 것처럼 알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바로 주변의 아이들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사소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르트가 오리를 죽였던 것은...
그런데 이야기가 풀리듯 하나하나 거꾸로 된 기억을 떠올릴때마다 드는 생각은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르트의 감정 속에서 쌓였던 것은 베트예만의 폭력이었으니까. 자신에게, 자신의 엄마에게 그리고 자신의 가족에게 행하는 베트예만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의도적이었든 아무 생각없이 행했던 우발적이었든지...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던 베트예만의 폭력은 누군가에게 커다란 상처와 함께 어긋난 생각들과 감정드을 쌓이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고통받았던 그 정신에 대해 그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으며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직접 베트예만이 아닌 그의 오리에게 먼저 복수했던 것은 바르트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응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르트가 가졌을 분노, 폭력, 외로움.
물론 베니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어른의 외로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바르트가 가진 감정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그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해나가는게 맞는 것인지 역시 어렵다는 생각 뿐이다. 베트예만이 바르트의 가족 속으로 들어오는게 서로를 위해 맞는 것인지, 아직은 어린 소년의 다음 행동은 또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서서히 스며드는 외로움과 폭력은 또 무엇으로 치유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이 아이들의 마음에 빛을 뿌려줄 것인지...
주인공인 바르트에 촛점이 마추어진 이야기에 고민스러웠지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 옆에서 함께 하던 베니에게 눈길이 더 간다. 이미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는 어른의 눈으로 내가 지켜보는 그 마음이 내내 안타까워서... 흔하게 말하는 비뚫어진 그 아이의 마음의 어떻게 바로 세워주어야할지 내내 고민스러웠으니까. 그것 역시도 내 입장에서 바로 세워준답시고 또 다른 억지와 폭력을 그 아이에게 행하는 것은 아닌지 또다른 걱정이 따르니까... 

"새해 첫날은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날이야."
"그러니까 너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80페이지)
이미 그 아이들의 하루는 지나갔을 것이고, 한 해의 마지막인 그 날의 악몽 같았던 시간도 지나갔을테지.
그럼 그 아이들이 맞이했을 새해 첫날. 어땠을까?.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을까.
궁금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무언가가 두 소년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주길 바라면서... 

조각퍼즐은 다 맞춰야만 그 그림을 제대로 다 볼 수 있다. 그 조각 조각이 맞추어져 가는 모습을 볼 때 궁금증과 호기심은 동시에 조금씩 해결된다. 다 완성된 그림을 보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맛으로... 하지만, 이 이야기가 맞추어낸 완성된 퍼즐은 슬프다.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수학문제는 언젠가는 풀리는 것으로 마무리될테지만, 이 문제들은 풀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엉킨 문제를 던져 놓는다. 각자의 몫으로 풀어내라고. 

원제가 <맨손>이다. 왜 원제가 그런 이름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책 속에 등장한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까봐 주저하게 된다. CD케이스 정도의 작은 크기의 이 책이, 140여페이지 정도의 작은 분량의 이 책이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새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기쁨의 폭죽은 터졌을 것이고, 모두가 환호하고 있겠지만 소년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닌 1월 0일로 여전히 외롭지 않을까 하는 안쓰러움에 마지막 장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