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웨딩드레스
김은정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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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뛰쳐나가는 신부의 설정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었어? 근데 그 영화 같은 설정을 가능하게 만든 여인네가 여기 또 한명 있어. 한세경. 지나간 첫사랑이 남겨두고 간 트라우마는 어마어마해서 사랑이란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비오는 날을 공포로 만들었지. (세찬 빗줄기 아래서 무섭게 차였던 거야.) 그런 그녀가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했다지. 굳이 사랑이라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지로 선택한 결혼. 그런데 뭔가 이상해. 이게 맞는 건가 싶은 망설임이 결혼식 직전에 드는 거야.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 사랑이 아님을 알았는데도 계속 진행해야 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을 계속 하던 순간 뛰쳐나갔어. 저주 받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질주를 시작한 거지.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었나 봐. 그 웨딩드레스 세경이 것이 아니었거든. 이탈리아 장인에게 특별 맞춤 제작한 자신의 웨딩드레스가 아닌 다른 이의 웨딩드레스가 배달되어 왔던 거야. 그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나봐. 이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결혼식은 끝장나고 사돈어른이 될 뻔한 분들의 화를 받아내느라 자신의 일에 차질이 생기고, 타이밍 절묘하게 5년 전에 떠나간 첫사랑은 되돌아와서 받아달라고 떼를 쓰고, 바뀐 웨딩드레스를 제자리로 찾아주기 위해 조해윤이라는 남자가 나타났어. 바뀐 드레스는 자신의 약혼자가 주인이었던 거야. 그 남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행기 공포증이라면서도 얼굴이 허옇게 사색이 되어 나타난 거야. 오직 그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근데 이놈의 웨딩드레스는 발이 달렸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웨딩드레스를 찾기 위해 스펙터클한 액션 로드 무비가 펼쳐지고 있어. ㅎㅎ

남주 조해윤.
변호사인데 이 남자 진지한 모습을 별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적인 인물로 비춰진다. 고아로 자라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성공했다. (물론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후원자의 손녀딸과 결혼하려 했다. 아이도 필요 없고 사랑도 필요 없다. 어차피 사랑이란 것도 믿지 않던 그였으니, 그냥 돈 계산만 잘 해서 챙기면 된다. 그러려고 했다. 그래서 비행기 공포증도 무릅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로지 약혼자가 애타게 찾는 이탈리아 장인이 유작으로 남긴 그 웨딩드레스에 목숨을 걸고.
여주 한세경.
기획사의 평범한 월급쟁이다. 말 그대로 일도 잘해야 하고 사장님께도 잘 보여야 밥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좀 편하게 살 것 같은 결혼이었는데 그것도 만사 오케이는 아닌 것 같다, 막판에 뛰쳐나온 것을 보면. 끝장 난 결혼식에서 남은 건 자신에게 웨딩드레스뿐인데 그걸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남자에게 왜 그 웨딩드레스를 찾아주어야 하는지 괘씸하지만. 뭐 그래도 바뀐 건 바뀐 거니까 일단 찾아주기로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진심이 궁금하다. 뭐, 어쩌자는 건 아니지만…….

웨딩드레스가 뒤바뀐 (뒤바뀌었다 해도 상관없는)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찾으러 온 남자와의 한판 달리기 같다. ^^ 꽈배기 보다 더 심각하게 꼬인 이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무난하고, 특히나 시종일관 웃음이 나게 하는 두 사람의 대화들이 톡톡 튄다. 웃어보고자 싶으면 읽어봐도 좋다. 우울해지려던 차에 읽으면서 한바탕 웃었으니 다행이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다. 웃겨줄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게 하고, 진지해야할 부분에서는 진지함도 남겨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각자가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물론 소설이 주는 허구도 분명 있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니까.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현실과 이야기를 같이 듣게 되는 기분이다.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이들의 이야기에는 세상 속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랑말랑한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뭔가가 느껴진다. 진정 결론에서는 찾을 것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선사하지만, 그 과정은 고속도로도 있었고, 자갈길도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따라 달리던 이 두 사람이 결승점에서는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달리기 끝의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책 소개 글에서 보면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했다. 꼬이고 꼬여서 더 꼬일 것이 없을 때, 의외의 곳에서 탈출구가 열린다는. ^^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면 다음에도 선뜻 선택해서 읽고 싶어진다. 개운한 여운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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