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 우리 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
심상정 엮음 / 양철북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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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지역의 <마을학교>에서 이런 사람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건 마을학교 교장 격인 심상정의 힘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지역구의 어떤 당 소속 의원은 임대아파트 건축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어쨌든 서울 서쪽 끝 동네에 사는 나는 책을 통해 이런 학교 소식을 접하면 일단 배가 아프다. 전에 없던 욕심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것을 부러워 할 만큼 사회화가 된 사람이 아니다. 도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동네가 그래서 나한테 딱 맞는 동네다.

그러던 사람인데 어쩌자고 요새는 괜한 트집을 잡고 입꼬리가 치어 올라가는 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늘 뭔가에 화가 나있는 나를 발견한다.

겉보기에는 작은 키에 앳된 얼굴을 한 그녀가 있다.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굉장히 열을 받는 사람이다. 아픈 손가락 같은 아들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이 아픈 평범한 둘째와 그 친구들이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기운 없어 하다가 마치 박카스를 찾는 사람처럼 <나꼼수> 언제 업 되냐며 ‘졸라’ 씩씩댄다.

사십을 훌쩍 넘겨 살면서 그녀는 욕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완벽하게 도덕적인 사람’인 그녀가 아이가 학교에서 하도 이것 저것 뺏기길래 부부가 욕을 한번 가르쳐보려다가 실패했던 일도 알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나꼼수>를 들으면서 욕과 도덕의 경계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대단한 <나꼼수>다.

말이 길어졌다. 단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를 생각했고, 내가 열받아 하는 이유가 아마도 그녀에게 바짝 붙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

 

박경철의 말을 읽은 날, 마침 아들과 피자에 꽂혔고 동네 59쌀피자를 꼭 먹어야 한다며 큰 거 두 판을 쏘았다. 아들 녀석 친구들도 마침 들이닥쳐서 예산이 더 들었지만 특별히 더 맛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역경제, 서민 경제, 동네 경제 그런 것 잘 모른다고 이마트 피자 사먹는 짓 하지 않겠다고.

정태인의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컴퓨터를 싹 지우고 재부팅 하듯이 그렇게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부터 준비 땅해서 우리 모두 사교육 같은 거 동시에 손 딱 놓는 걸로!

이범의 얘기는 언제 들어도 목소리가 분명하고 커서 듣기 좋다. 딱 써먹기 좋은 구체적인 방법들이라서 더 잘 들린다. 너무 분명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거나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선택인데, 선택하지 말고 제도로 정해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학교에서는 어떤 경쟁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나임윤경이라는 여성학자를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소득이다. 이러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겠나. 세상에는 이토록 멋지고 훌륭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책으로 만나는 것이다.

사교육을 외도와 연관지어 현 상황을 들여다 보니 정말 요즘 우리 부모들은 다 집단 최면에 걸린 게 맞구나 싶다. 증세는 좀 더 심한 것 같다. 부부가 부부의 삶을 못살고 부모로서만 사니, 부는 돈을 벌고 모는 자식을 가르치고 결국에는 부부는 없고 의무만 이행하더라는 말.

그래서 외도를 하는데 또 이혼으로 가정이 깨지면 외도 또한 깨진다는 말은 너무 슬퍼서 속상했다. 부부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남편에게 해주었더니 그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아이 교육 때문에 부부가 돈버는 기계, 돈쓰는 기계가 되지는 않아야겠다. 아이도 그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니 우리 부부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윤구병과 이이화 선생의 말은 죄송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두 분 다 한평생 흙과 역사에 뜻한 바 대로 삶을 집중해오신 분들인데 왜 나는 이 두 분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을까.

대안학교의 귀족화에 상처를 받았다고 윤구병 선생에게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마 아직도 내가 수양이 덜 되어 편협한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두 분이 하시는 얘기가 더 근본적이고 지당한 말씀이긴 한데 “저는 지금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며 일어나 가버리는 나쁜 청중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무릎 꿇고 두 분의 말씀을 들을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이 나는 늘 어렵고 무섭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섞이면 그것은 양면이 아니라 더 큰 하나의 덩어리(힘)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을 선생을 보면서 느낀다. 그래서 감히 우러르기는 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것 같아 부끄럽다.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을 말씀들이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말.

 

“인디언들은 초원을 달려 작은 언덕에 올라가면 말머리를 돌려서 자기가 달려온 초원을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까 봐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먼 길은 영혼과 함께 가야 됩니다”

 

이 먼 길은 “자신의 논리, 자신의 이유로 가야하는 길”이다. 그리고 ‘더불어’ 가야하는 길이다.

 

조국은 늘 그렇듯이 말보다 글이 쎈 사람 같다. 말로 한 것을 글로 옮겼을 때 조차 그렇게 느껴진다. 학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 년 열두 달 책상에 앉아서 연구만 하는 선생이 아니라서 좋다. <진보집권플랜>에서 동네 커피전문점에 가서 그곳에서 모은 쿠폰을 쓰더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듯 생활인으로서 법학자인 그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사심이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는 먼 그대(나는 잘생긴, 엄친아들, 강남좌파를 감당할 만한 자신이 없다, 뼛속깊은 이 촌스러움!)인 그가 열심히 자기 몫을 하되, 현실에 발딛고 있는 것이 좋다.

심상정은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그녀에 대해 알려고 해 본적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 책이 그녀의 손에서 나오게 된 책이라는 것으로 나는 그녀가 국회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끝내 그곳에서 굳건히 뿌리 내리기를 바란다.

 

이 책을 손에 들기 전부터, 다 읽고 몇 날이 지난 지금도 뉴스만 틀면 학교 폭력 기사가 뜬다. 이젠 거의 기겁의 수준으로 그 뉴스만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른 방송사 뉴스도 학교 폭력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집과 학교 밖에 모르고 사는 나같은 엄마는 좀 과장하면 패닉 상태다. 그래도 세상이 좀 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믿어야 하는가. 책에서 얻은 위안과 위로, 희망의 힘이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툭하고 맥이 빠져버린다.

신영복 선생의 “자신의 논리, 자신의 이유로 가라는 말”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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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1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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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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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을까

 

내 손으로 골라 읽기를 원했지만 과연 이것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 봤을 때는 무척 두꺼울 것 같더니 받아보니 의외로 얇다. 몸피도 작고.

후루룩 책장을 넘겨본 첫 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긴 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비연속적이고 짧은 글이다. 상대를 잘 모르는 사람한테 짧게 끊어 하는 말은 깊이 쫓아가기가 버겁다.

방법은 있는 힘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 발이라도 더 거리를 좁히는 것.

 

틈이 보였다

 

표지 안쪽에 저자의 사진을 본다. 오른쪽 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웃고 있다. 손바닥으로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 듯, 그 연속적인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목의 주름이 낯설지 않다. 늙음은 어디나 똑같다.

신과 대립하는 것이 신의 부재가 아니라 악마이며, 우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립되어 있다. 스푼이 포크 덕택에 모성적 부드러움을 보여준다는 저자의 말을 읽으며 비로소 나는 마음이 조금 열렸다. 겨우 그를 따라 상상력을 펼쳐볼 틈을 보았다.

 

거울을 보는 시간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나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여지없이 그곳에 있다. 입꼬리가 쳐져 있어서 더 무표정해 보인다. 내 얼굴과 대립되는 것을 찾아보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재미있지도 않고, 진지해 지지도 않았다. 기어이 생각해 낸 것이 고작 나와 사막, 나와 독서 정도. 이것도 나에 대한 개념 정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

 

저자의 거울은 116개의 개념들을 보여준다. 각각이 개념들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들하고 짝을 이룬다. 남자의 거울에는 여자가 비치고, 황소의 거울에는 말이 비친다. 좀 더 본다. 문화의 거울에는 문명이, 순수의 거울에는 순결이, 태양의 거울에는 어둠일거라는 생각을 뒤집고 달이 비친다.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들로 나간 끝에서 보는 거울에는 존재의 얼굴에 무가 비친다.

 

서로 대립되는가 싶은 것들의 닮음과 다름을 저자의 안내를 따라 자각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은 힘을 얻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 눈과 정신이 ‘블링블링’해 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독자의 소화 능력에 따라 눈부심의 정도가 확연해 진다.

개념을 정리하는 개론서의 성격을 갖겠노라고 했으니 각 개념들의 정의는 분명하되 지극히 문학적이어서 읽기 즐겁다. 스푼과 포크, 지하실과 다락방 같은 글들은 정말 맛있는 글이다.

 

“나무는 수직적이고, 길은 수평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무는 한군데에 붙박여 있는 안정성의 상징이다. 반면 길은 순환의 도구이다.(나무와 길)” 나무의 수직성에서 안정성의 상징을 얻어내거나 수평적 길에서 순환의 의미를 찾아내는 그의 상상력은 나같이 단순한 사람의 뇌를 즐겁게 자극시킨다. 나무와 길로 대립되는 두 개념은 균형을 이루기도 하지만 균형을 잃기도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도시의 두 가지 기능이 균형을 잃어가는 것이다. 거주의 기능이 순환의 기능에 의해 희생당하고 무시당한다.”

 

희생당하는 것들은 나무들이나, 분수대, 시장, 강둑 같은 것들이다.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풀이 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 물론 자동차 바퀴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와 같은 통찰과 유머와 상상력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건 정말 문득 든 사족인데, 거주의 기능을 회복한다며, 시멘트와 전력으로 되돌려 놓은 서울의 청계천을 본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더러, 특히 광대나 신화적 존재들을 이야기 할 때는 잘 몰라서 머쓱하고 낯설다. 어쩔 수 없는 문화의 차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넘어가더라도 깨알 같은 재미가 많은 책이다.

 

그가 단순히 철학적 사유로서 개념을 정리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문제로 상상력을 확대 시켜서 나는 더 좋다. <나무와 길>도 그렇고 <문화와 문명> 같은 글은 두고 두고 생각해 볼만한 개념의 대립이다. 보편적인 것으로 열려 있지 못한 이기적인 문명이 문화를 살해했다는 그의 말이 유난히 자극적이다.

그와 나의 물리적 거리에 대립하여 생각의 거리가 자주 좁혀지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은 무엇과 대립할까? 잠? 이 여행을 시작할 즈음 거울에 비춰본 나는 무엇과 대립할까? 이런 질문들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의미까지 있어 보인다.

대립하는 것을 찾는 과정은 한쪽의 개념을 일단 정리해야 가능하다. 개념을 정리하다 보니 대립한, 혹은 이웃한 개념을 더 많이 알게 된다. 다름을 통해 개별적인 것들의 의미를 알게 되거나 닮음을 통해 편협한 사고를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한결 즐거운 여행이 된다.

이 책은 <시간의 거울>로 오래전에 소개되었다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고 한다. 훨씬 철학적이었던 제목에서 다분히 문학적인 제목으로 ‘문패’가 바뀐 것 같다.

여행 가방을 정리하면서 여행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지금 내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상관없이 여행하는 내내 나는 즐거웠다. 아, 물론 즐거움과 대립하여 어려움 앞에서 발을 떼기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말이다. 책과 여행은 어떻게 닮아있거나 다른 지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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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 - 이찬수 선생님의 종교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6
이찬수 지음, 노석미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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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다는 것에는, 지금은 완전하게 알 수 없는 부분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나 가치가 긍정적으로 전개되리라 예측하면서 그 예측에 몸과 마음을 용감하게 맡기는 자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4)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너머 학교에서 발간된 책에 실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너머학교 열린교실 시리즈를 빼놓지 않고 읽은 독자로서 이 책에 대한 믿음은 읽지 않았을 때는 98%의 믿음이었고, 읽으면서 의심했던 2%가 채워졌다.

 

 

나는 이 책이 믿음을 주제로 하지만 종교에 대한 것만이 아닐 것으로 기대했다. 위키 백과는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로 정의했다.

 

이 책은 종교 뿐만이 아니라 사람, 가치관, 사실에 대한 믿음의 얘기를 하고 있다. 만약 종교‘만’ 얘기했더라면 내 예측은 빗나갔고 2%가 채워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만 믿어지니까 믿었을 뿐인데,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아서 나는 고맙고 즐겁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눈여겨 살펴보고 내적 사유를 많이 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의 주체는 ‘너’(나의 경우 나의 아들!)다. 나는 너(아들)를 믿고 있는가.

내가 ‘너’를 믿는 것은 네가 나에게 왔기 때문이다. 대상(너)이 없으면 나는 믿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나를 믿는다고 할 때 조차 나는 대상이 된다. 그러니 내 믿음의 원천이 되는 대상, 너(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내가 너를 믿고 싶을 때, 내게 필요한 것은 “지난 경험들에 담긴 의미 혹은 의미 있는 관계를 구체화하려는 의지와 지난 경험에 비추어 2%의 불확실성을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결단이“었다. 그리고 ”경험, 의지, 용기는 믿음의 주요 구성요소“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아주 조금 짐작하기 시작했다. 의무와 책임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바심으로 야단을 치면서 어느 순간, 내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동안 내 입은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했을 터. 나는 내 아이와 살아온 지난 경험을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 아이가 커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아이의 삶을 바탕으로 그 아이의 앞 날도 긍정적것이라고 믿을 용기와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온전히 믿기까지 아직은 부족은 2%를 그 용기가 채워 줍니다. 그 순간 믿음의 내용이 단순히 내 밖의 어떤 대상으로 남지 않고 나 자신의 것이 됩니다.“(50)

 

믿음의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나같은 사람이 많을 것을 알고, 용감하게 결단하라고 충고한다. 가려고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는 말은 옳다. 수학 시험을 50점을 맞아놓고도 자기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기를 믿으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를 믿겠노라 결단을 못내린다면 나와 그 아이는 싸움 밖에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한들, 아직도 내 마음은 갈등 상태다. 한겨울에도 온종일 운동장에 나가 사는 아이를 감사히 받아들일 것이냐, 끌어다 책상 앞에 앉혀 놓고 그 날 그 날 해야할 수학 문제집을 들이밀 것이냐.

 

그런데 내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려면 즉 내 아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려면 나는 내 아이를 그 아이 생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기에 용기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고. 이 과정은 수도승이 그러하듯 나 또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깨닫고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과정은 신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신을 믿는다는 말은 그 신이 내 안에 들어와 있어서 나의 모든 것이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그와 어울리게 움직이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신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그렇게 살게 하고, 인류를 나아가 온 생명을 그렇게 살게 하는 분이라고 여기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65)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근대 이전 서양 세계에서 신을 믿는 것은 자신과 이웃과 사회, 나아가 우주 전반에 어울리는 ‘삶’으로서 교리를 머리로 인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랑, 헌신, 경외 등 전인격적인 자세이자 행위였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믿음은 대체로 종교를 떠올리며 결단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행위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믿는다는 것을 자연법칙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초자연적인 어떤 너머의 존재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연법칙 안에서 살 때 너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하며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것이 멋진 믿음의 세계라는 말이 나는 마음에 든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열린 교실 기획이지만 먼저 나온 책들도 그렇고 이 책 또한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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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2012-03-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의 내용을 아드님과의 관계에 적용해 해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 글이 '수수꽃다리'님의 삶을 통해 몸을 입는 느낌이 듭니다. 글은 역시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더 들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수꽃다리 2012-03-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찬수 선생님!
어쩌면 이 글을 읽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드립니다.(마음은 더 크게 소리지르고 있답니다, 하악,하악 이럴수가. 책의 저자께서 이렇게 글을 남겨주시다니. 제게도 이런 일이^^)
그때 함께 구입한 선생님의 다른 책들은 곧 읽게 되겠지요? 어느 한때에, 제가 선생님의 글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좋은 글(말씀)을 책으로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비가 제법 내립니다. 오늘만큼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보낼 것 같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이찬수 2023-12-20 15:4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기쁜 마음으로 진작에 읽었는데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좋게 읽어주신 다른 글도 있으시다니 글쓴이로서는 기운이 나면서도 어깨도 무거워집니다. 아드님이 벌써 성인이겠습니다. 더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수수꽃다리님의 삶을 응원하며 댓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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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샀지?

사놓고도 내가 왜 샀는지 모르는 책을 만났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는지. 마흔 넘어가면서 냉장고 문을 열고는 왜 열었지 하는 꼴이다. 생활에서야 그렇다 해도 책까지 이럴 줄이야.

 

굳이굳이 이유를 대자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내 지식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것 정도. 지긋지긋하게도 책 읽기 싫어하는 모 학생 녀석들한테 절망하고 좌절하다가 읽는 대신 말로 들려주면 좀 들을까 싶어서 이 책 저 책 찍었다 놨다 하던 중이었을 거고.

 

아는 분은 정말 이야기를 잘 한다. 듣다보면 책 한권을 읽고 난 느낌이 들 만큼 거의 탁월하다. 그 양반이 하는 것이 스토리텔링, 이야기 들려주기라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어쩌면 내가 이 책을 골라든 것이 좌절의 끝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을 거다.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 들려주기가 아니라 이야기 만들기에 관한 책이다. 김탁환은 소설 대신 이야기라고 했으니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소설이다. 소설 창작에 대한 김탁환의 지상 강의다. 김탁환만의 이야기 만들기 사계절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게는 필요 없는 책 아닌가?

처음에는 그래, 한 번 생각 해봐하는 심정이었으나 제2코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접었다.

그래도 도전하고 싶은 독자라면 100권의 책과 10권의 공책을 준비하여 바다를 출발하여 사막에도 가고, 설산에도 오르고 수없이 맞아도 끄덕 없을 자신이 있다면 그가 마련한 코스를 밟아도 된다. 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 산 책인데, 나는 그 어느때 보다 열중하여 읽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나처럼 눈 밝은 독자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이 무척 유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야기 만드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으니 만든 사람처럼 읽으면 되는 일. 좀 더 밀착해서 그 작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 하기도 좀 쉬워질래나?

어쨌든 이야기를 만드는 김탁환의 자세를 듣는 동안, 내 비록 이야기를 만들 능력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지만 그 또한 썩 괜찮은 경험이었다. 깨끗하게 마음 비우는 일!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 누군가를 흔들(shake) 힘은 없으나 잘 만들어진 쉐이크를 발견하여 기분 좋게 흔들릴 준비를 한 셈이니 이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내게 처음 다가올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이야기가 끝나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서 오라, 새로운 여행이 될 이야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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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의 세 친구 창비청소년문고 3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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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것은 그 실패가 잉태하고 있는 희망의 씨앗 때문일 것이다.

<갑신년의 세 친구>는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등 갑신정변 주요 인물 셋을 다루기는 하지만 갑신정변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변을 일으키고 삼일 만에 막을 내린 젊은 개혁가들의 좌절을 절정에 두되 당대 시대 상황을 면밀하게 그려냄으로서 짤막한 역사적 사건에 살과 근육을 입혔다. 그래서 독자는 빈약한 역사적 사실의 행간에서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역사적 당대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새삼 안소영의 작가적 능력에 감탄하였다.

 

김탁환은 <김탁환의 쉐이크>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자세로 100권의 책을 준비하라 했다. 이야기 하나를 ‘머뭇거리며’ 준비하는 동안 100권의 책을 준비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하였다.

단 몇 줄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재현하고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인데, 안소영이 <갑신년의 세 친구>를 역사적 공간에 재현시키기 위해 참고한 도서 목록은 책 뒤에서 확인할 수있다. 나는 이 아직까지 이야기책 하나를 내기 위해 이토록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였다는 기록을 보지 못하였다. 참고 자료를 보면 이 작품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치 있고 재미가 있는 까닭은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살아나는 시간 저편의 인물들이다. 이름 석자로 남은 김옥균은 마치 지금 내 옆에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수고 덕택이다. 그녀가 참고하고 만들어낸 김옥균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졌으며 호리호리하게 큰 키에 갸름한 얼굴이다. 얼굴빛은 백송 줄기만큼이나 희었고, 가늘고 긴 눈매는 젊은이다운 자신감과 단호함이 어려있다. 책 끄트머리에 실려있는 김옥균은 사실 별 표정이 없다. 하지만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김옥균은 이토록 생생한 젊은이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의 모습을 풍전등화라 하였다. 이 책은 풍전등화의 조선을 글로써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을 암기로 받아들이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책이 필요한 것은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신년의 그 청년들이 세상을 개혁하지 못했다 하나, 거슬러 박지원의 사랑에 몰려들어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던 이덕무, 박제가 그들 또한 실패한 인물들이었다.

완전한 실패란 없기 때문에 실패한 역사 속에서 또 누군가는 희망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사랑에서 갑신년의 세 친구들의 운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안소영의 전작 <책만보는 바보>와 함께 읽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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