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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동물원 문학동네 동시집 36
이안 지음,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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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의 동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가 이해하기에도 결코 쉽지 않은 동시들이 많다. 최후에 선택한 시의 언어가 세공사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데서 오는 차가움 때문이라고 여겨지는데 오래 들여다보고 다듬고 걸러낸 후 완성된 것 같은 시 시월, 모과나무 달, 외눈바위, 돌사자상에 비가 오면, 화살나무, 굼벵이로부터등이 그렇다. 장자까지 등장하는 구름 붕붕은 류선열 동시에 등장하는 대가리가 이쪽 산마루를 넘어갈 때쯤/꼬랑지는 건너편 산등성이에 걸쳐 있었다.”고 했던 할아버지의 거짓말을 애교로 들리게 할 만큼 작정하고 쓴 것 같다.

모과나무에서/ !/달이 떨어졌어//노오란,// 바람에 긁힌/상처에서 새어 나오는/달빛 향//노오란,”이라고 쓴 시 <모과나무 달>은 모과라는 개체에 대한 정의가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고, 극적인 사건 혹은 이야기는 있으나 꼭꼭 숨었고, ‘, 노오란, 이라는 감각과 두 번의 노오란이 부르는 리듬이 도드라져 시일 수밖에 없는 시다. 더 필요한 말도 없고 여기서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시가 무너지고 말 것처럼 단단히 여며졌다.

이 시는 시인이 마주친 시적인 순간과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시적 언어, 가장 효율적인 시적 배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차갑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이 그러하고 나아가 이안 시가 그러하다. 이것이 이안 동시가 다른 동시와 다른 지점이며 난해함이라는 문제 앞에 그의 시를 두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난해함이라는 시선을 그가 굳이 걷어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대신 이번 시집에는 그간 해오던 말놀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시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갸우뚱한 시도가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갸우뚱이상한 시를 쓴 그의 생각 밑에 있는 것은 관습적인 것들에 대한 반항처럼 다가온다.

 

 

절대 이 책릉 거꾸로 꽂지 마시오

문이 곰릉 열고 탈출할 수도 있믕

-른자 동롬원전문

 

이 시는 만을 바른 문법으로 알고 왔던 언어 습관을 대신 이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우선 발음이 익숙지 않아서 읽기부터 걱정이었다. 글자-른자, 동물원-동롬원 등 문자를 문자로만 따로 떼어 읽으면 글자들을 정확히 구분하여 발음할 수 있다. 유일한 실험 대상이었던 한 아이는 아주 잠깐 갸우뚱-그것은 익숙한 것이 비틀어지는 순간이다- 했지만 이내 글자를 거꾸로 쓴 시의 장난을 이해한 듯했다. 아마 아이들은 장난이라고 느꼈을 때 즐거웠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이 시는 우스꽝스러운 시에 머물면 장난이 주는 재미로 남겠지만 갸우뚱한 시로 읽을 때 한 걸음 나아갈 것 같다. 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소리가 주는 배반과 함께 의미가 품고 있는 똘끼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관습에 대한 반항이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이 바른 글자가 바름을 뚫고 뒤집어짐으로써 심심한 관습에 날린 훅이다. 그런 시도가 있으면 문이 곰을 열고나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발상이 어떠한가.

우리는 동물원에 갇힌 곰처럼 관습 혹은 의식이라는 동물원에 갇힌 존재들이다. ‘동물원동롬원으로 뒤집어질 때, 의식-‘글자른자로 뒤집어질 때 의식의 은 자유로움을 향해 열리는 새로운 문의 의미로서 이 열리는 경험.

갇힌 언어로 갇힌 상태에서 창작을 해야 하는 시인이라면 어느 순간 언어의 동물원에 갇힌 자신 혹은 의식을 제한하는 글자가 주는 감금상태에 놓이는 경험을 할 것 같다. 아이들도 그렇다. 바름, 정답, 옳음을 향해 맞춤 성장해야하는 아이들이 한번 뒤집어지면서 느끼는 쾌감이나 시인이 언어를 뒤집고 발상을 뒤집어 느끼는 쾌감은 같다. 갸우뚱한 시는 새로운 경험-생각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를 유혹하는 시다. 이 시는 흔쾌히 갸우뚱한 자신의 속으로 뚜벅뚜벅 독자가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시는 여전히 따스하다. 채송화 꽃에 전기를 나눠주고 가는 아이, 함함함 심심한 길에 메꽃 입을 달아주는 시선, 설에 쓰고 난 밤에 싹이 돋으면 튼튼하게 자랄 밤나무 자리를 보아주려는 마음은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따스함의 깊이일 것이다.

차갑고 따스하고 갸우뚱 우스꽝스러운 시들이 시집 한 권 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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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2018-03-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동시가 많아요.
동시 안에서 발견되는 시인의 마음 자리가 따뜻해요.
채송화를 보기 위해 발이 저리도록 쪼그려 앉는 자리,
억년 동안 외로웠던 바위에게
네발나비 머문 발자취로 세상을 품게 하는 자리인 것 같아요.
참 따뜻한 시인이에요
 
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동시집 37
류선열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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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여분의 것이고, 놀이는 여유가 있을 때, 자유 시간에 행해지는 것’(요한 호이징아, 호모루덴스, 까치, 1993)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오로지 놀이를 할 수 있는 자유 시간과 놀 공간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의 놀이는 아이들이 만드는 문화가 되는데, 노는 아이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들의 문화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오늘도 아이들은 교실과 학원 강의실에서 나가 어둠 속으로 비척비척 시무룩하게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류선열의 동시집 잠자리 시집보내기는 아이들의 놀이를 빼앗은 어른들 보라고 나온 시집 같기만 하다. 나는 이 시집에 들어있는 그 때 그 시절을 온 몸으로 겪고 자란 아이였다. 지금도 똑딱 할멈처럼 뜨겁게 달궈진 돌멩이에 떨어진 물방울이 스며들며 사라져 가던 모습, 돌멩이의 온기, 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며 귓구멍이 시원해지던 느낌이 생생하다. 몸에 새겨진 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더니 잠자리를 잡으려고 선 계집아이 정수리는 따갑고 잠자리 다리를 엄지와 검지로 잡았을 때 전해지던 그 격렬한 반항으로 손끝이 찌릿하다.

멀쩡한 잠자리 꽁지를 자르고 날개를 자르고 꽁지에 실을 묶어 기둥에 매달아 놓기도 하던 아이들은 잔인하고 나쁜 아이들이 아니었다. 강원도 떼사공을 짓궂게 놀려먹고, 앞서가는 친구를 도둑이라고 놀리며 그렇게 뭔가를 가져보고 잡아보고 장난치고 골려먹다가 어느 날 문득, 정말 문득 잠자리한테 미안해지는 순간이 닥친다. 그 때가 되어 아이는 더 이상 그런 놀이를 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미안함과 이해와 타자성이 생기기까지 아이들은 수많은 잠자리를 제물로 삼는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무한하게 당하면서 용서하고 참아내며 아이들을 길러내고 아이들은 싸우고 화해하면서 자라는 것이었다.

놀 시간, 놀 공간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놀이를 받아 주는 어른이다. 국수를 밀면 으레 국수꼬리를 널따랗게 남겨주던 엄마의 마음, 그걸 태우지 않고 고소하게 구워주기 위해 몸을 굽혀 입으로 바람 조절을 하던 아버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형도 없고 엄마도 일하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심심한 아이에게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것 자체가 놀이고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신랑신부도 되고 아기도 되며 아프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하는데(우리들의 소꿉놀이) ‘호랑이 사냥꾼쯤이야.

메주 냄새 굼뜨는 할머니 방을 열면/여덟 폭 병풍에 호랑이 한 마리/나는 다짜고짜 그놈을 쏘아요./그러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호랑이를 잡아 주셨으니 곶감을 드려야지.”(호랑이 사냥)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이 아이의 놀이는 사냥 의식으로 완성 된다. 이 아이가 느낄 성취감과 뿌듯함은 서사에 힘입어 시대를 넘어선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어쩌면 요즘 아이들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요즘 아이들의 경험 밖, 지나간 시간과 공간이며 역사 혹은 신화로 배우지도 못할 소소한 일상이다. 그것을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에 가난, 배고픔, 누나를 잃은 샛강아이의 슬픔 같은 낯선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의 마음밭을 가꾸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믿는 어른들과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자.”고 다짐하며 이제 첫 시집을 묶어냈을 시인의 이 말은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다행히 시집 복간으로 우리는 한 때 놀이-문화의 창작자였던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은 어른이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 시집을 읽을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놀이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어른을 향해 눈을 흘길지도 모르겠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사랑할 줄 모른 어른으로서 그 눈총을 따갑게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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