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네 말 창비시선 373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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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어를 달려 가고자 하는 곳이 대체 어디쯤일까.

이시영 시인의 석 줄 혹은 넉 줄 아니면 두 줄의 시는 할 말을 다함으로써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음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과 생각을 낭비하며 사는지를 증명한다.

 

머리가 쩡 갈라지는 것보다는 마음이 화끈 달아오른다.

심장이 간지럽고 손가락이 달싹거리면서

 

시끄럽게만 들리던 아침 까치소리,

아가의 숨넘어갈 듯 우는 소리,

경비 아저씨의 비질 하는 모습,

택배왔다고 외치는 소리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말로 살아난다.  

 

독자가 나름의 감상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을 두고 발문을 적은 이는 그것이 여백 때문이라고 한다.

여백을 채우는 건 공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시집 곳곳에서 펄떡이는 시의 심장을 읽고 느꼈다.

 

몸이 얼었을 때 맨 살로 언 살을 덮어 몸을 녹이듯

마음이 얼었을 때 시를 읽는다면 아주 언 마음이  조금은 녹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다시 녹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 시집을 그녀에게 보낸 것은 그녀의 언 마음을 이 시집의 시들이 스쳐 조금씩 녹여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말 때문에 받은 상처를 이길 수 있는 말이 시라고 믿는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의 심장은 그만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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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05-1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의 심장....
와, 좋아요.
뜨겁게 펄떡이는 시의 심장을 저는 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각각의 시마다 피가 흐르고 있고 혈관이 있고 심장이 존재할 텐데...
그것을 모두 느낄 수 있을 때가 언제 올는지.
 
골목길이 끝나는 곳 동화 보물창고 34
셸 실버스타인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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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상상 뿐이다. 죽음과 삶까지 자유 왕래가능하다. 절대로 쉘 실버스타인처럼 상상할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이 있기에 시인은 꼭 존재해야 한다. 그의 상상은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고, 웃기고, 또 무엇보다도 따뜻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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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 2006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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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를 주지 않고 내려꽂히는 화살처럼, 문득문득 김수영이 비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갸우뚱하지 않아도 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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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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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전문

 

 나는 왜 시를 읽는가 혼자 물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는지, 불어터진 건빵처럼 치덕거리며 사는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났을 때 딱딱했던 건빵의 '간결'을 기억해낸다. 대답하자면 내가 시를 읽는 이유는 이런 팽팽한 긴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 아닌 어떤 글에서 이런 순도 높은 긴장의 순간과 마주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시인 당신처럼 문장이 내 손목을 잡았던 적은 없지만 그 순간의 홀림을 나는 알겠다. 내일 날씨를 점쳐본다는 것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인가.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그런 사람 조차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가. 그 외롭고 쓸쓸하고 간결한 생계를 가진 당신이 쓰는 시는 그래서 아주 느릿한 읽음새로 읽고 되새김하게 된다.

 

 이 시의 세 번째 연은 너무 쓸쓸하고 간곡해서 내가 이 연을 만나기 위해 이 시집을 읽게 되었는가 싶다.

 그러니까 당신의 시는 빗물에 외투가 젖어드는 속도, 외투의 내피까지 빗물이 도달하고 그 빗물이 외투의 색을 이끌어 이제 흰 속옷에 스며드는 속도, 혹은 그 만큼의 감각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

 몹시 느리며 몹시 예민하게!

 그러다보면 간결한 생계의 주름 마다 빼곡하게 들어 있는 당신의 숨을 거두어 들이게 된다. 그 숨의 결이 하도 뜨거워 당신의 시를 읽는 일은 쉽지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묵은 두통이 서서히 잦아드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결국 당신이 여러 편의 시에서 호명한 미인은 아름다웠고, 당신도 아름다웠다. 그리하여 나에게 당신은 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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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염바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5
이세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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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먹염바다>도 여름 끝무렵에 사놓고는 가을 끝에야 읽는다.

바다 가까이 살았지만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 좋은 곳이지, 생활의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태생이 강원도 산골이라 고등어 자반을 생선으로 알고 자랐다.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에도 벅찬 대상이었다.

 

그런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가 들렸다.

굴봉 쪼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고, 검은 바다 위에 쏟아지는 눈도 보이는 것 같다.

바다 곁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낯설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한반도 서쪽 어느 곳 거기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를 읽으니 때가 낀 유리를 빡빡 닦아낸 기분이 들어 좋다.

맑아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보았다.

 

최원식의 해설은 시같다고 생각하며 이런 해설도 있구나 감동하며 읽었다.

최두석 시인과 박영근 시인의 표지 해설은 읽어 본 해설 가운데서도 가장 정확하다.

시인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런 속깊은 글을 쓰지 못하리라.

 

그 맨 처음이 시들이다.

시와 해설과 표지 글이 있어 비로소 <먹염바다>가 되었다.

외우고 싶은 시 한편을 얻었다.

 

 이번 겨울만큼은 부디 사그라들지 말거라 개오동나무야 하니

 

 그러마 한다.

 

 할머니 감자탕집 뒷간 지키는 강아지도 그러마 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그러마 한다

 

 꾸벅꾸벅 조는 할매야 미안타 영하까지 내려온 이 한밤 녹아내리는 한밤인데

 

 한 잔 더 묵자 할매야 하니

 

 그러마 한다

 

 흐릿한 유리창 밖 네거리 싸락눈만 내리고

 

<싸락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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