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염바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5
이세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먹염바다>도 여름 끝무렵에 사놓고는 가을 끝에야 읽는다.

바다 가까이 살았지만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 좋은 곳이지, 생활의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태생이 강원도 산골이라 고등어 자반을 생선으로 알고 자랐다.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에도 벅찬 대상이었다.

 

그런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가 들렸다.

굴봉 쪼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고, 검은 바다 위에 쏟아지는 눈도 보이는 것 같다.

바다 곁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낯설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한반도 서쪽 어느 곳 거기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를 읽으니 때가 낀 유리를 빡빡 닦아낸 기분이 들어 좋다.

맑아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보았다.

 

최원식의 해설은 시같다고 생각하며 이런 해설도 있구나 감동하며 읽었다.

최두석 시인과 박영근 시인의 표지 해설은 읽어 본 해설 가운데서도 가장 정확하다.

시인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런 속깊은 글을 쓰지 못하리라.

 

그 맨 처음이 시들이다.

시와 해설과 표지 글이 있어 비로소 <먹염바다>가 되었다.

외우고 싶은 시 한편을 얻었다.

 

 이번 겨울만큼은 부디 사그라들지 말거라 개오동나무야 하니

 

 그러마 한다.

 

 할머니 감자탕집 뒷간 지키는 강아지도 그러마 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그러마 한다

 

 꾸벅꾸벅 조는 할매야 미안타 영하까지 내려온 이 한밤 녹아내리는 한밤인데

 

 한 잔 더 묵자 할매야 하니

 

 그러마 한다

 

 흐릿한 유리창 밖 네거리 싸락눈만 내리고

 

<싸락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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