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집에서 약국은 가깝다. 아침을 먹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한 뒤 자전거를 살랑거리며 탔다. 예년과 달리 여름 날씨의 추석이어서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맨살에 닿는 바람이 시원했다. 강다리를 건너니 강변도로와 접하는 부분에 막아놨던 공사비품들이 죄다 치워져 있다. 그동안 부산을 떨더니 추석전까지 마무리를 확실하게 해놓아서 자전거를 중간에 내리지 않고도 강변도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강변도로를 달리다가 예의 그 텃밭을 마주쳤다.   

 

집들의 연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텃밭은 출근을 서두르던 내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자전거로 텃밭을 지나치다 다시 돌아온 나는 한 쪽 구석에 자전거를 세웠다.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랑마다 심어놓은 호박, 파, 고추, 쑥갓, 해바라기, 깻잎, 상치 등을 살피다가 문득 아침 햇살에 싱싱한 초록을 자랑하는 그네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졌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꼬맹이의 손을 잡은 할머니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나를 힐끗 보더니 텃밭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가서는 싱싱한 깻잎을 뚝뚝 따서 손에 가득 쟁였다. 멀리서 할머니의 딸과 사위인 듯한 사람이 엄마~라고 부르며 양 손에 선물셋트를 들고 왔다. 가족의 상봉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달렸다. 아침의 싱싱함을 몸안 가득 담아서인지 페달을 잣는 다리가 가뿐했다.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사는 집이었던 그곳은 이제 집터로서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예전엔 분명 예쁜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늘 어두침침한 느낌이어서 이상타, 생각했던 집이었고 어느날인가 헐렸다. 그 땅을 새로 산 집주인은 오랜간 그 대지를 빈 공터로 놔두고 싶어했다. 공터로 만들려고 멀쩡한 집을 헐어버리는 경우는 없겠지만 집주인은 그리했고 공터로 놔둔지 몇 달이 지나서야 소문이 슬슬 돌아다녔다. 전 주인들이 두 번이나 잘못 되는 경우가 생겨버려 집이 헐값에 나왔고, 새로 집을 사서 들어가는 사람마다 횡액을 맞았다는 둥, 해서 이번에 헐값으로 그 집을 산 사람은 애초에 집을 허물어 몇 년간 땅을 놀릴 생각을 했다는 둥, 땅을 몇 년 놀리면 그 집에 도사린 슬픔, 원한 등이 사라질 거라는 둥, 땅을 놀리느니 차라리 이웃에 무상임대를 해서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는 둥, 누구네는 거기에 고추를 심었고, 아무개는 고구마를 심었다는 둥,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여러 명이 합작해서 텃밭으로 가꾸는 그곳은 이제 두 해를 넘어가면서 완연한 텃밭의 기능을 하고 있었고 갖가지 야채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도심 속의 정원 같은 느낌을 주며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게 만들고 있다.  

살던 집이 헐리어 다른 무엇으로 변모되는 모습을 보는 건 하나의 소멸과 생성의 순환고리를 보는 것과 같다. 아무 것도 없는 대지 위에 집을 짓게 되면 그 대지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존재의 '기'가 깃든다. 사람이 살게 되면 사람의 기가 깃들고 강아지가 살게 되면 강아지의 기가 깃든다.드는 자리는 모르지만 나는 자리는 금방 표가 나듯이, 사물의 자리 역시 그 고유의 자리값을 한다. 저 집에서 연거푸 목매달아 죽었다는 사람들의 원혼이란 것이 만약 있어서 저 대지에 묶여 있다면,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싹들과 더불어 노닐면서 정화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어둠이 기운이란 것이 있다면 정직하게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야채(생물)들을 위해 땀을 뚝뚝 흘리는 얼치기 농부의 땀방울에 씻겨 내려갈 것이다. 그 야채들은 얼치기 농부의 밥상에 올라와 아이를 쑥쑥 자라게 할 것이고 할머니의 양푼이 비빔밥이 될 것이며, 비 오는 날 부침개의 깻잎이 될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에 젖어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에 약국이 보인다. 차를 세워놓고 나의 출근을 기다리는 때이른 손님도 보인다. 이제 나의 일상이 시작될 터이고, 텃밭에선 야채들의 하루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자전거로 출근을 하며 텃밭의 오이, 가지, 각종 야채들의 자라남을 지켜볼 생각이다. 나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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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1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도 이런 사연을 품고 있는 텃밭이 다 있군요. 공연히 한 번 가보고 싶네요ㅎㅎ
추석은 잘 쇠셨죠?^^

달사르 2011-09-14 13:45   좋아요 0 | URL
앗. 하하하. 여긴 시골인데용~~~ 서울에서 버스 타면 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시골요. ㅋ
제가 '도심 속의 정원' 이라고 말을 해서 헷갈리셨죠? ㅎㅎㅎ
제가 있는 곳은 그래도 읍내여서 도시분위기가 난답니다. 여기서 외곽으로 빠져야 논이고 밭이고..를 볼 수 있지요. 음..그러니까, 저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는..농활이란 걸 가서야 알았다는..ㅠ.ㅠ (그래서 촌년인 저에게도 저런 텃밭은 신기하거든요. 헤)

넹. 후와님도 추석 잘 쇠셨지요?

stella.K 2011-09-15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블럭에 일기 글이나 끄적이는 수준이라더니 이거 뭐 장난이 아닌데요?
100프로젝트는 저 같은 허접 허당이나 하는 거랍니다.ㅋㅋ

달사르 2011-09-16 18:08   좋아요 0 | URL
하하. 일기가 맞긴 한데..매일 쓰는 건 역시나 힘이 드네요. 학생일 때도 일기같은 걸 꾸준히 쓰질 않았어요. 지금 필사..란 걸 하는데 매일 한두시간 씩 한 게 벌써 1주일이 되어가네요. 이거라도 매일 꾸준히 하기를..하는 바램이 있어요. 스텔라님처럼 매일 꾸준히 하는 게 결국엔 남는 거로구나, 생각을 하면서 저도 꾸준히 따라해볼려구요. ^^ 100일프로젝트 아자아자!

stella.K 2011-09-17 20:08   좋아요 0 | URL
햐~! 그거 꾸준히 하기 어려운건데.
에고, 뭘 저를 따라하십니까 민망하게...큭
암튼 기왕 마음 먹으신 거 끝까지 잘하시길 바랍니다.
응원해 드립니다.^^

달사르 2011-09-18 18:3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르게나 말입니당. 어제는 일찍 퇴근했음에도 책장조립하느라 새벽 한 시까지 노가다를 했어요. 한 시가 넘어서 필사를 하려고 의자에 앉으니 어찌그리 삭신이 쑤시는지요..자고 내일 해야지..생각했는데 오늘도 오후까지 책장조립 마저 하고 이제 겨우 자리에 앉아 리뷰 하나 썼네요.

하하하. 이제 댓글 마저 달고 다시 필사 요이땡! 할려구요. ^^ 스텔라님의 응원! 고맙습니닷!

노이에자이트 2011-09-1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지간한 부지런함 아니고는 텃밭 못가꾸죠.옆에서 보면 쉽지만 채소 하나 기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길러보면...도시에서만 산 사람들이 채소가꾸는 법을 배워 베란다 화분이나 마당 텃밭에서 채소기르는 데 성공한다면 대단한 겁니다.

달사르 2011-09-16 18:10   좋아요 0 | URL
앗. 역시 노이에자이트님! 맞아요. 저는 허브같은 것도 제대로 길러본 적이 없어요. 매일 물 주는 것도 힘든 일에 속하더라구요. 근데 채소 기를려면 물도 줘야되고, 잡초도 뽑아줘야되고, 기타..할 일이 많더라구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말이죠. 하하. 텃밭이 있다, 고 말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부지런한 사람과 '동급'이로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9-17 15:46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면 그 방면에 부지런하게 되지요.특히 동식물 기르는 것은 성미에 안 맞으면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달사르 2011-09-18 18:41   좋아요 0 | URL
네. 동식물은 성미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중요한 거 같애요. 저는 식물류도 아닌데, 동물류마저 아니어서 그냥 구경꾼으로 만족할려구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18 21:21   좋아요 0 | URL
오홍! 그러시구나...

달사르 2011-09-22 22:45   좋아요 0 | URL
ㅎㅎ 넹~ 그치만 구경은 좋아하니, 구경은 신나게 할려구요. ^^
 

과연 장 그르니에의 글은 '시적 아포리즘' 투성이다. 늦게까지 그의 선집 '섬'을 읽느라 잠을 설쳤다. 오늘부터 추석 당일까지 계속 근무해야 하는데, 여행 후유증으로 비실거리는 내 상태를 봐서라도 책을 읽지 말고 차라리 잠을 청했어야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 90

사르는 몽골어로 '달'이다. 그래서 달사르는 우리말로 달, 몽골어로 사르(달), 그러니까 두 개의 달이란 의미이다.  아직 몽골어를 많이 알지 못하기에 이렇게 지었고, 원래 내가 짓고 싶은 이름은 몽골어로 '달그림자'였다. 태양의 존재로 인해 밝고 따뜻한 빛을 가지게 된 달, 그리고 그 달빛 뒤에 감춰진 달그림자의 의미를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양이 밝은 건 저 스스로이지만, 그런 밝음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건 언제나 근처에 머무는 덜 밝은 다른 것들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 저 스스로 밝음의 존재는 인력으로써 근처에 있어주는 다른 존재가 있기 때문에 더 밝은 것이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밝히지 못하는 것의 존재는 저 스스로 밝은 존재의 빛을 받아서 저 스스로 밝은 존재보다 더 은은한 빛을 발하며 또다른 매력의 빛을 뿜게 된다고. 세상의 어떤 존재든 이렇듯 서로간에 주고받는 것이 존재한다고. 

1. 

예전에 신종플루가 창궐하던 시절에, 나도 그 한복판에 있었다. 그때는 의사고 간호사고 약사고간에 다들 무서워 떨고 있었다. 예방백신의 부작용 설까지 나돌면서 의료진들 중 예방백신을 맞은 사람은 절반을 넘지 않았고 약국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을 맞는 사람이 조금씩 늘었지만 백신을 맞고도 신종플루에 걸리는 경우까지 생겨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다들 난감하기만 했고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부터 하자,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정부는 자영업 직종인 약국에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강제적으로 구비하게 할 수 없었기에 타미플루를 취급하겠다는 약국을 선정해야만 했고, 자발적 신청자에 한해 전국적으로 거점약국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그때 인근의 소아과 과장님은 매일같이 퇴근시간을 넘어서까지 초과근무를 했다. 6시 퇴근이었지만 8시 넘어서까지 진료를 보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종플루가 정점을 찍던 날 과장님이 휴가를 내셨다. 의아했다. 학회 때문에 휴가를 가끔씩 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 학회를 가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급한 학회가 뭐가 있을까. 혹시 아프신 건 아닐까. 손님들 중 몇은 약국에 와서 의사 흉을 보았다. 몇 일이 지났고 과장님이 복귀하셨다. 그리고 아는 지인을 통해 비밀리에 들은 이야기는 과로와 감기가 심해지신 과장님이 병원에 링거를 맞고 입원하셨더랬다. 자신의 입원소식을 알게 되면 엄마들이 마음 아플까봐 그 사실을 극구 비밀로 붙이시고 차라리 팔자 편하게 학회나 간 사람으로 오해받는 쪽을 택하신 거다.  

나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오면 그때 소아과 과장님의 행동이 떠오른다. 본인이 오해를 받더라도 타인의 걱정을 최소화시키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던 그 과장님이 생각난다. 본인의 두려움을 뒤로 돌리고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방에 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뜨거운 가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나면 나의 두려움은 조금 작아지고 나의 용기는 조금 자라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 

그런데 나는 대비적으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보았다. 소아과 과장님 만큼 열악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나는 계속 몸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집에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신종플루 환자의 기침 한 번이면 바로 옮을텐데..하루종일 그 기침포말을 삼킨다면 니가 견디겠냐.. 언니..이건 위급상황이야. 우린 고작 한 사람이지만, 나로 인해 나을 수 있는 몇 십, 몇 백 사람을 생각해야하는 상황이야. 전쟁이 나면 종군의사처럼, 나도 종군약사로 가야되는 직군이야.(그런 단어가 있는지 들어보지는 못했지만..아마 없을 것이다. ㅋ)  나는 거점약국이 아니었지만 인근 약국들이 대부분 타미플루를 취급하지 않으려 들었고 인근에 거점병원이 있는지라 지역의 신종플루환자들은 거의 다 나에게로 왔다. 매번 병원에서는 재고약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화를 해줬고 그 와중에 서로간의 비장함에 대해 격려를 하며 서로 힘든 시기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비장함을 가뿐하게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원래 타미플루 처방전을 가지고 오면 약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보호자가 대신 약을 타게 되어 있었다. 보호자가 없이 본인이 직접 오는 경우는 밖에서 전화를 걸어서 처방전만 약국 안으로 들여보내고 약을 다 지은 약사가 약국 밖으로 나가서 투약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물론 약국 안에 있는 다수의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였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타미플루라는 표현을 삼가고 최대한 배려를 해줬음에도, 본인은 감염자가 아니라는 듯이 행동을 했고 오히려 오버해서 약국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마구 만져대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마스크를 무료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갑갑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벗고 있었으며 기침까지 마구 해대었다. 약국 안에 어린 아이들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으나 들은 척도 않고 그들은 계속 대화를 했고 기침을 해댔다.  결국 그 손님들이 나가고 나서 문을 열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소독했고, 그 손님이 만진 물건들을 죄다 소독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손님처럼 무례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는 무척 많았다.

그때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엔 선생님도 있었는데, 선생님입네 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 타인의 건강을 고려치 않을꼬, 그저 의아할 뿐이었고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는 못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들이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일에 선의적인 사람이 다른 일에 충분히 선의적이 아닐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는 타인의 상황에 직접 처해 보지 못하는 경우엔 자신의 예단으로 지레짐작하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에 위의 사례처럼 나 같이 서운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지레짐작한 사람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숨은 고충까지 알아봐주고, (자신은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숨은 손으로 자신에게 배려해주는 타인의 배려까지 미처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숨은 배려를 알게 된다면 지레짐작한 사람의 다음 행보는 분명 이타적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 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 부분은 달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속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달의 밝은 부분에 존재하면서 달의 이면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예민한 사람이며 선지자적인 사람이며 이타적인 사람이다. 지금 일어나는 알라딘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댓글의 추천 부분은 그런 의미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달의 그림자에 속하면서 달의 밝음을 더욱 밝게 해주는 그런 추천. 더 나아가 태양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그런 추천. 나는 그래서 알라딘의 추천 기능이 예쁘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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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1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사르라는 예쁜 이름이 그런 뜻이었군요.
추석 당일까지 근무하신다니 힘드시겠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구세주처럼 느껴질 거예요.
어지러운 마음을 좀 탁탁 털어왔으면 좋겠는데 비도 오고...
공감, 공감하며 읽으면서 또 한편 '우리가 보는 달의 표면은 정말 한 곳 뿐일까? 자전, 공전, 막 떠올리면서 머리 굴리고 있습니다 ㅋㅋ)

달사르 2011-09-13 22:28   좋아요 0 | URL
히힛. 이틀 연짱 근무하고 오늘은 하루종일 드러누워 있었어요. 친척들이 오전부터 들이닥쳐서 지금까지 놀고 있네요. 피곤한 나날들 중에 휴식같은 하루가 끼어있는게 참 고마운 일이네요. ^^

네. hnine님 말씀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한다는 게 때로는 힘도 들지만 때로는 너무 감사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간아요. 아주 조금이지만 말에요. 히히.

아하하. 방금 어딘가를 다녀왔는데 보름달이 환하게 떴더군요. 달그림자를 같이 보면서 저도 자전, 공전, 막막 생각 했어요. ㅋ hnine님은 추석 잘 지내셨나요? 이제 명절휴일이 지나가고 있어요. 오늘 밤 달님보면서 소원 비셨어요? ^^

마노아 2011-09-1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강 사르는 1월 1일, 차가운 달인데, 달사르라는 이름은 그보다 더 예뻐요.
깊은 사유가 따뜻함을 동반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네요.
달사르님, 추석 연휴 건강히 보내셔요.^^

달사르 2011-09-13 22:31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1월 1일이 그런 의미로군요. 마노아님 덕분에 하나 배웠습니당. 덧붙이자면, 내년에는 저쪽 나라 말을 떠듬떠듬이라도 조금은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닷. 히.
하하. 고마워요. 달사르, 란 이름이 아직까진 조금 낯설지만 마노아님이 이쁘다 해주시니 조금 친근해지는 듯해요.

네. 추석이 지나가는 밤입니다. 마노아님도 추석 잘 보내셨어요? ^^

다락방 2011-09-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달사르 2011-09-13 23:44   좋아요 0 | URL
이제 추석연휴가 한 시간도 안 남았네요. 그치만 곧 또 주말이 다가올 테니까, 히.
다락방님, 달님 보고 소원 비셨습니까! ^^
예쁜여자는 달님 보고 어떤 소원 비는 겁니까. 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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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 커플은 팬이라네. 중성펜은 뭐니뭐니해도 미피펜! 나는 미피펜의 열혈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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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를 하려는데 노트부터 챙기려드네.ㅋ 잘 펴져서, 악필의 소유자가 필기하기에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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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저장해놨기에 이름이 떴을 때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예상대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고 수줍은 따뜻함이 부드럽게 내 귀를 적시고 들어왔다. 우린 첫 통화였지만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했고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심장소리를 공유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어서 더 기뻤고,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있어서 더 기분 좋았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아무 조금의 연결 지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우린 훨씬 가까웠다. 우린 지리상으로도 가까운 거리였고 서로 공유하는 비밀지점이 알고 보니 겹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밝혀졌다.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내 근처의 어느 반경 안으로는 저절로 접근 불허가 되는 나에게 그녀는 처음부터 그 반경 안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 그녀는 어쩜 나의 울타리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그녀에게는 나의 울타리의 존재를 보여주지조차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실은..그녀가 모르는 하나의 접점이 더 있다. 그건 다음에 그녀가 만났을 때 그녀에게 깜짝선물처럼 들려주고픈 비밀이야기이다.  추운 겨울 날 따뜻한 커피숖에 앉아서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하며 "어머 어머 왠일이래?" 하고 호들갑을 떨면서 수다를 떨어야 될 종류인 것이다.  

학창시절이 한참 전에 지나가버린 요즘엔, 소중한 것들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다시 한 번 커다란 공간으로의 진입이 가능할 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해도 이전과 달리 소중한 것들의 존재를 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실'은 '소중한 것' 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해주는 고마운 기능이다. 그녀는 물론 그런 기능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픈 밤이다. 그녀가 골라준 음악을 들으며, 그녀가 내게 들려준 아름다운 음색을 떠올린다. 다음에 그녀도 좋아하는 그를 같이 만나서 셋이서 좀더 따뜻함이 흐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녀에게 내가 조금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새 집에서 퇴근 후 늦은 밤에 처음으로 써보는 글이다. 나는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고 있었는데 왠지 그녀가 떠올라서 읽던 책을 덮고 그녀 생각에 잠긴다. 그녀도 '섬'을 좋아할까. 분명, 좋아할 거야. 그녀의 섬세한 감성이 이 '시적 아포리즘'으로 가득찬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을 리 없잖아?  이 책을 선물해준 또다른 그녀도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내게 '섬'을 소개해준 그도 보고 싶어진다. 아..보고싶어지는 사람들이 왜이리 많지?   

그녀와 음미하고픈 구절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런 비참 속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시련 속에서, 만사에 대하여,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하여 회의를 느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어떤 현실과 접촉하게 된다. 우리는 혼자서 살다가 혼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부조리한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는 반항심을 불러일으킨다. 러시아 사람들이 태형과 시베리아 수용소에 의하여 얻어낸 안이한 효과에 매달리는 대신 비밀과 가난 속에 은신할 때 우리는 <겸허함을 통하여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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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09-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문장보면서, 예전에 내가 읽었었나? 싶었어요. 얼마 전에 굴러다니는? 섬을 본 거 같은데 다시 읽어 봐야겠습니다. 거기 있으려나? 거기가 어디였지?ㅎㅎ

그르니에의 섬 하면 떠오르는 건 네이버 오늘의 책이에요.
오래 전에 본건데 휴가철 섬에 놀러가서 읽을 만한 책으로 네이버에서 섬을 추천하더라고요. 그거보고 응??? 했었는데 ㅋㅋ 뭐 사람마다 다르니깐 하고 넘어갔지만 또 생각나네요.^^

달사르 2011-09-10 11:29   좋아요 0 | URL
ㅎㅎ 집에 '섬'을 하나 키우시는군요. 저도 내년, 내후년에 집에 굴러다는 섬을 생각날 때마다 찾아볼 거 같애요. ^^

앗. 그래요? 휴가철 섬에서..ㅎㅎ 저도 응??? 소리가 먼저 나옵니다요. 맞아요. 사람마다 다르니깐요. 누군간 섬에서 '섬' 책을 읽기도 할 테니깐요. 그나저나 '섬'에 가보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섬에 못 가본지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이제 기억도 가물거려서 말이죠.

반가워요, 차좋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