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장 그르니에의 글은 '시적 아포리즘' 투성이다. 늦게까지 그의 선집 '섬'을 읽느라 잠을 설쳤다. 오늘부터 추석 당일까지 계속 근무해야 하는데, 여행 후유증으로 비실거리는 내 상태를 봐서라도 책을 읽지 말고 차라리 잠을 청했어야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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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는 몽골어로 '달'이다. 그래서 달사르는 우리말로 달, 몽골어로 사르(달), 그러니까 두 개의 달이란 의미이다. 아직 몽골어를 많이 알지 못하기에 이렇게 지었고, 원래 내가 짓고 싶은 이름은 몽골어로 '달그림자'였다. 태양의 존재로 인해 밝고 따뜻한 빛을 가지게 된 달, 그리고 그 달빛 뒤에 감춰진 달그림자의 의미를 넣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양이 밝은 건 저 스스로이지만, 그런 밝음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건 언제나 근처에 머무는 덜 밝은 다른 것들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 저 스스로 밝음의 존재는 인력으로써 근처에 있어주는 다른 존재가 있기 때문에 더 밝은 것이라고. 그리고 스스로를 밝히지 못하는 것의 존재는 저 스스로 밝은 존재의 빛을 받아서 저 스스로 밝은 존재보다 더 은은한 빛을 발하며 또다른 매력의 빛을 뿜게 된다고. 세상의 어떤 존재든 이렇듯 서로간에 주고받는 것이 존재한다고.
1.
예전에 신종플루가 창궐하던 시절에, 나도 그 한복판에 있었다. 그때는 의사고 간호사고 약사고간에 다들 무서워 떨고 있었다. 예방백신의 부작용 설까지 나돌면서 의료진들 중 예방백신을 맞은 사람은 절반을 넘지 않았고 약국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백신을 맞는 사람이 조금씩 늘었지만 백신을 맞고도 신종플루에 걸리는 경우까지 생겨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다들 난감하기만 했고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부터 하자,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정부는 자영업 직종인 약국에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강제적으로 구비하게 할 수 없었기에 타미플루를 취급하겠다는 약국을 선정해야만 했고, 자발적 신청자에 한해 전국적으로 거점약국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그때 인근의 소아과 과장님은 매일같이 퇴근시간을 넘어서까지 초과근무를 했다. 6시 퇴근이었지만 8시 넘어서까지 진료를 보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종플루가 정점을 찍던 날 과장님이 휴가를 내셨다. 의아했다. 학회 때문에 휴가를 가끔씩 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 학회를 가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급한 학회가 뭐가 있을까. 혹시 아프신 건 아닐까. 손님들 중 몇은 약국에 와서 의사 흉을 보았다. 몇 일이 지났고 과장님이 복귀하셨다. 그리고 아는 지인을 통해 비밀리에 들은 이야기는 과로와 감기가 심해지신 과장님이 병원에 링거를 맞고 입원하셨더랬다. 자신의 입원소식을 알게 되면 엄마들이 마음 아플까봐 그 사실을 극구 비밀로 붙이시고 차라리 팔자 편하게 학회나 간 사람으로 오해받는 쪽을 택하신 거다.
나는 지금도 개인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오면 그때 소아과 과장님의 행동이 떠오른다. 본인이 오해를 받더라도 타인의 걱정을 최소화시키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던 그 과장님이 생각난다. 본인의 두려움을 뒤로 돌리고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방에 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뜨거운 가슴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나면 나의 두려움은 조금 작아지고 나의 용기는 조금 자라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
그런데 나는 대비적으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보았다. 소아과 과장님 만큼 열악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나는 계속 몸이 튼튼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집에선 걱정이 태산 같았다. 신종플루 환자의 기침 한 번이면 바로 옮을텐데..하루종일 그 기침포말을 삼킨다면 니가 견디겠냐.. 언니..이건 위급상황이야. 우린 고작 한 사람이지만, 나로 인해 나을 수 있는 몇 십, 몇 백 사람을 생각해야하는 상황이야. 전쟁이 나면 종군의사처럼, 나도 종군약사로 가야되는 직군이야.(그런 단어가 있는지 들어보지는 못했지만..아마 없을 것이다. ㅋ) 나는 거점약국이 아니었지만 인근 약국들이 대부분 타미플루를 취급하지 않으려 들었고 인근에 거점병원이 있는지라 지역의 신종플루환자들은 거의 다 나에게로 왔다. 매번 병원에서는 재고약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화를 해줬고 그 와중에 서로간의 비장함에 대해 격려를 하며 서로 힘든 시기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비장함을 가뿐하게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원래 타미플루 처방전을 가지고 오면 약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보호자가 대신 약을 타게 되어 있었다. 보호자가 없이 본인이 직접 오는 경우는 밖에서 전화를 걸어서 처방전만 약국 안으로 들여보내고 약을 다 지은 약사가 약국 밖으로 나가서 투약하게 되어 있었다. 이는 물론 약국 안에 있는 다수의 일반인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였다. 그러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타미플루라는 표현을 삼가고 최대한 배려를 해줬음에도, 본인은 감염자가 아니라는 듯이 행동을 했고 오히려 오버해서 약국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마구 만져대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마스크를 무료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갑갑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벗고 있었으며 기침까지 마구 해대었다. 약국 안에 어린 아이들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으나 들은 척도 않고 그들은 계속 대화를 했고 기침을 해댔다. 결국 그 손님들이 나가고 나서 문을 열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소독했고, 그 손님이 만진 물건들을 죄다 소독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손님처럼 무례하진 않았지만 비슷한 사례는 무척 많았다.
그때는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중엔 선생님도 있었는데, 선생님입네 하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 타인의 건강을 고려치 않을꼬, 그저 의아할 뿐이었고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하는 못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람들이 다른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일에 선의적인 사람이 다른 일에 충분히 선의적이 아닐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는 타인의 상황에 직접 처해 보지 못하는 경우엔 자신의 예단으로 지레짐작하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에 위의 사례처럼 나 같이 서운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지레짐작한 사람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숨은 고충까지 알아봐주고, (자신은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숨은 손으로 자신에게 배려해주는 타인의 배려까지 미처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숨은 배려를 알게 된다면 지레짐작한 사람의 다음 행보는 분명 이타적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 그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 부분은 달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속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달의 밝은 부분에 존재하면서 달의 이면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예민한 사람이며 선지자적인 사람이며 이타적인 사람이다. 지금 일어나는 알라딘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댓글의 추천 부분은 그런 의미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달의 그림자에 속하면서 달의 밝음을 더욱 밝게 해주는 그런 추천. 더 나아가 태양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그런 추천. 나는 그래서 알라딘의 추천 기능이 예쁘고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