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집에서 약국은 가깝다. 아침을 먹고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한 뒤 자전거를 살랑거리며 탔다. 예년과 달리 여름 날씨의 추석이어서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맨살에 닿는 바람이 시원했다. 강다리를 건너니 강변도로와 접하는 부분에 막아놨던 공사비품들이 죄다 치워져 있다. 그동안 부산을 떨더니 추석전까지 마무리를 확실하게 해놓아서 자전거를 중간에 내리지 않고도 강변도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강변도로를 달리다가 예의 그 텃밭을 마주쳤다.
집들의 연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텃밭은 출근을 서두르던 내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자전거로 텃밭을 지나치다 다시 돌아온 나는 한 쪽 구석에 자전거를 세웠다.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랑마다 심어놓은 호박, 파, 고추, 쑥갓, 해바라기, 깻잎, 상치 등을 살피다가 문득 아침 햇살에 싱싱한 초록을 자랑하는 그네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졌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한 장 한 장 찍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꼬맹이의 손을 잡은 할머니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게 아닌가.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 나를 힐끗 보더니 텃밭 안으로 성큼 걸어들어가서는 싱싱한 깻잎을 뚝뚝 따서 손에 가득 쟁였다. 멀리서 할머니의 딸과 사위인 듯한 사람이 엄마~라고 부르며 양 손에 선물셋트를 들고 왔다. 가족의 상봉을 잠시 지켜보다가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달렸다. 아침의 싱싱함을 몸안 가득 담아서인지 페달을 잣는 다리가 가뿐했다.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사는 집이었던 그곳은 이제 집터로서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예전엔 분명 예쁜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늘 어두침침한 느낌이어서 이상타, 생각했던 집이었고 어느날인가 헐렸다. 그 땅을 새로 산 집주인은 오랜간 그 대지를 빈 공터로 놔두고 싶어했다. 공터로 만들려고 멀쩡한 집을 헐어버리는 경우는 없겠지만 집주인은 그리했고 공터로 놔둔지 몇 달이 지나서야 소문이 슬슬 돌아다녔다. 전 주인들이 두 번이나 잘못 되는 경우가 생겨버려 집이 헐값에 나왔고, 새로 집을 사서 들어가는 사람마다 횡액을 맞았다는 둥, 해서 이번에 헐값으로 그 집을 산 사람은 애초에 집을 허물어 몇 년간 땅을 놀릴 생각을 했다는 둥, 땅을 몇 년 놀리면 그 집에 도사린 슬픔, 원한 등이 사라질 거라는 둥, 땅을 놀리느니 차라리 이웃에 무상임대를 해서 텃밭을 만들기로 했다는 둥, 누구네는 거기에 고추를 심었고, 아무개는 고구마를 심었다는 둥,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여러 명이 합작해서 텃밭으로 가꾸는 그곳은 이제 두 해를 넘어가면서 완연한 텃밭의 기능을 하고 있었고 갖가지 야채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도심 속의 정원 같은 느낌을 주며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띄게 만들고 있다.
살던 집이 헐리어 다른 무엇으로 변모되는 모습을 보는 건 하나의 소멸과 생성의 순환고리를 보는 것과 같다. 아무 것도 없는 대지 위에 집을 짓게 되면 그 대지에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존재의 '기'가 깃든다. 사람이 살게 되면 사람의 기가 깃들고 강아지가 살게 되면 강아지의 기가 깃든다.드는 자리는 모르지만 나는 자리는 금방 표가 나듯이, 사물의 자리 역시 그 고유의 자리값을 한다. 저 집에서 연거푸 목매달아 죽었다는 사람들의 원혼이란 것이 만약 있어서 저 대지에 묶여 있다면,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싹들과 더불어 노닐면서 정화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어둠이 기운이란 것이 있다면 정직하게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야채(생물)들을 위해 땀을 뚝뚝 흘리는 얼치기 농부의 땀방울에 씻겨 내려갈 것이다. 그 야채들은 얼치기 농부의 밥상에 올라와 아이를 쑥쑥 자라게 할 것이고 할머니의 양푼이 비빔밥이 될 것이며, 비 오는 날 부침개의 깻잎이 될 것이다.
잠시 이런 생각에 젖어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만치에 약국이 보인다. 차를 세워놓고 나의 출근을 기다리는 때이른 손님도 보인다. 이제 나의 일상이 시작될 터이고, 텃밭에선 야채들의 하루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나는 자전거로 출근을 하며 텃밭의 오이, 가지, 각종 야채들의 자라남을 지켜볼 생각이다. 나의 또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