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오수연 지음 / 강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진지하게 읽다가 자꾸 삼천포로 흘러서 진이 빠졌는데 책을 덮고나니 삼천포가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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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나도 40자가 되는구나! 하나씩 배워가는구나~ 하하하

다락방 2011-08-11 13:1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달사르님 귀여워요. ㅎㅎㅎㅎㅎ

달사르 2011-08-11 16: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성공을 축하해주시는 건가요? ㅎㅎㅎㅎ

2011-08-14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조란 지브코비치의 도서관은 모두 환상도서관이다. 그러나 결코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이지 않다. 어떤 문을 열었을 때 내지는 어떤 책을 펼쳤을 때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초대 받아가는 일 같은 건 없다. 조란의 도서관은 그저 현실에서 잠시 몽상을 하거나 상상에 그치는 정도의 접점을 가진다. 그러나 그 몽상은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 봄직한 것들이어서 그래, 나도 이런 생각 했더랬어, 와 같은 공감을 독자로부터 얻어낼 수 있으며 또한 환상도서관은 현실과 아주 미묘한 조금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환상은 그 순간에는 빠져들기도 하나, 책을 덮고나면 그 괴리감에 되려 사람을 현실과 더 멀어지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조란이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무언지 알거 같았다. 조금의 웃음, 조금의 익살이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처럼 조란의 환상도서관도 그러한 역할을 하기를 작가는 바라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요새는 이메일을 잘 쓰지 않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길이가 있는 문장의 오고 감에는 이메일이 단연 으뜸이다. 게다가 요즈음의 작가들은 대부분 이메일을 사용할 것이다. 곧 계정은 노출될 것이고 잡다한 스팸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스팸을 지우면서 신경질도 낼 것이다. 그러다 문득, 혹시 진짜 내게 보내온 메일이 스팸으로 오인되어 버려지는 경우는 없을까, 란 염려도 될 것이다. 그순간 조란의 상상력은 발동되고 조란의 환상도서관에 불이 켜진다. 나는 언젠가 호기심에 스팸인줄 알면서도 메일을 죄다 열어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즉석만남, 야한동영상무지많아요, 등등. 나는 그런 스팸을 단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기에 작가의 말이 신기하게 들렸다. 아, 그런거 열어보는 사람도 있구나..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작.가.라면? 작가의 호기심은 일반인의 호기심을 넘어설터. 작가의 그런 호기심이 바탕이 된다면 얼마든지 조란의 가상도서관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 뚜껑을 열어본 가상도서관은 작가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제 겨우 3권만을 냈을 뿐인 자기에게 앞으로 최대 20권 정도의 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나라면 단순하게 미래에 내가 저렇게 책을 많이 내? 라고 좋아할 것 같은데 작가는 저작권을 먼저 걱정하고 우롱당함을 기분나빠한다. 결국 환상의 세계와 잠시 접했음을 인지하지 못한 작가는 미래의 자기 책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도 잃어버리고 뒤늦게 후회하며 스팸메일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번 열어본다. 

집안도서관은 매일같이 우편함을 확인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우편함에 들어있을 거라곤 월초에 우송되는 청구서가 고작이기에 그 기회는 한 달에 한 번 뿐인걸 알면서도 남자는 매일같이 우편함을 확인한다. 갑자기 남자의 외로움이 왈칵 느껴졌다. 그 달의 중순깨에 접었기 때문에 아직도 보름 이상이나 기다려야 청구서는 도착할 터인데 오늘도 남자는 우편함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우편함 안에는 짙은 노란색의 커다란 하드커버 책이 얌전히 들어 있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없는 상황에서 남자는 기다렸다는듯이 책을 꺼내어 집에 들고 들어간다. 책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누군가가 나에게 우편함을 열었을 때 발견하는 무언가를 보냈다는 게 중요하다. 남자에게 집착증이 있을 수도 있고, 지독한 고독감을 견디는 중임을 상상할 수도 있다. 현대인 누구나가 조금씩은 이 남자와 같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주고, 나에게 선물을 주고, 내 외로움의 시간을 잠시나마 덜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함 말이다. 책을 들고 집으로 향하다 우편함을 청소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한 남자는 돌아서서 우편함을 다시 연다. 그순간 노란 책이 또 한 권 들어있음을 발견한다. 환상의 세계와 남자가 접한 것이다. 남자는 놀라지 않는다. 믿지 않고 회의했던 가상도서관의 남자와 달리 집안도서관의 남자는 놀라지 않고 집안으로 책 두 권을 갖다놓는다. 그리고 또 우편함을 열고 책 한 권을 꺼내고, 반복한다. 우편함을 기다리던 남자에게 이같은 선물이 또 어디 있으리. 책을 들여놓는데 집중한 남자는 수도없이 쏟아지는 책들을 집으로 옮긴다. 급기야 공간이 부족해지자 집안의 가재도구를 내다버린다.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는데 남자는 흥분한다. 책을 왜 그렇게 집안에 들이지 못해서 안달인걸까. 우스꽝스런 남자의 행동이지만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팔천삼백다섯 권의 책을 집안에 들인 남자는 그제야 일을 멈췄고, 그 웅장함에 감격했다. 쓰레기를 집안에 모으는 정신병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무언가를 모으는 편집증이라면 차라리 쓰레기가 낫지 않을까. 읽지도 않을 책을 저렇게 쌓아올린다니,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쓰레기를 집안에 모으는 할머니의 경우는 쓰레기에 온정을 느껴 애지중지하는거라 쓰레기가 대접받는 느낌이어서 할머니는 안쓰럽지만 쓰레기가 불쌍하다 생각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책으로 집안을 도배한 남자의 경우, 집안에 책들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책은 여러 명이 나눠서 읽는 것이 책의 존재이유로서는 최상일텐데 저렇게 한 집에 감옥처럼 갇혀있다니..책이 누군가의 손으로 가기 전에 책 창고에 그득한 책들을 보면서 누군가의 집에 갈 준비를 하고 행복해하고 있을 책과는 달리 저 남자네 집의 책은 너무 불쌍해보였다. 흥분한 남자가 퇴근했을 때 환상과의 접점이 풀려서 집안의 책이 싹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고 바래본다.   

불꺼진 도서관을 볼 때마다 책들이 잠들어있는 도서관의 밤은 어떤 느낌일까,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불꺼진 건물에 들어가는 느낌은 색다르다. 저녁 운동을 마치고 다시 가방을 가지러 약국에 들르는 경우 껌껌한 공간에 작은 불 하나 켜고 들어올 때, 밤이 주는 긴장감을 느낀 적이 있다. 정상적이지 않은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그 공간에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공간이 도서관이라면 그 긴장감은 더 커지겠다. 야간도서관에서는 또 어떤 환상의 접점이 일어날까. 조란은 지옥도서관, 초소형 도서관, 위대한 도서관을 차례로 구경시켜준다. 삶에서 이런 잠시의 환상에 접어들면서 그 접점의 순간을 즐겨보고싶다면, 이 책의 도움을 얻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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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7-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도서관 부분을 읽으면서 그 책들을 그는 다 읽나요? 라고 물으려 했는데 읽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시네요. 문득 집안에 팔천삼백다섯권의 책이 있는 장면은 대체 어떨까 싶어서 상상해 보는데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질 않아요. 그러나 그 책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책인거죠? 저도 팔천권의 책을 집에 쌓아두고 싶어요. 그리고 매일 사람들에게 놀러오라고 하고 매일 그중에 두세권을 꺼내서 선물로 안겨주고 싶어요. 이거 읽어봐, 이거 좋아, 하면서요. 그러나 그러려면 그 팔천권의 책들은 모두 제가 읽은 책들이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사람에 따라서 적당히 알아서 추천해주죠.

하루에 한권은 벅차고 한달에 한권쯤 제 우편함에도 제가 알지 못하는 기대하지 않았던 책들이 들어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달사르 2011-07-15 22:48   좋아요 0 | URL
팔천삼백다섯권의 책이 모두 같다면 그야말로 지옥이겠지요? 게다가 책을 읽기는 커녕 건드리지도 못하게 벽을 둘러가며 꽉 채워놓았으니 말입니다.

하하. 다락방님의 상상을 들으니 지옥이 갑자기 멋진 공간으로 바뀌는 듯 합니다. 다락방님이 모두 읽은 팔천권의 멋진 책, 놀러오는 친구들, 나눠주는 책들. 와..저도 그 공간에 초대받아서 가고 싶습니다. ^^

다음에는 제가 다락방님 우편함에 기대하지 않던 책 한 권, 넣어드릴께요. ^^ 고마워요. ^^

pjy 2011-07-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매일같이 우편함에 책이 한권씩 들어있다면? 첨엔 우와~~ 하겠지만 곧, 좁은 집안을 한탄할 것이며, 독서 속도에 맞지 않게 책이 들이닥치는 상황이나, 특히나 취향에 맞지않으면 책선정 기준에 대해 불평하게 될 듯 싶습니다^^; 원래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이 잘 안납니다-_-;
우편함을 열어보던 그 남자가 다른 사람의 우편함에 책을 넣어주는 그런 센스가 생기길 바라는건 오지랖이 넓은건가..하고 생각해봅니다요....

달사르 2011-07-15 22:52   좋아요 0 | URL
ㅎㅎ 맞지여? pjy님의 말씀이 정답같애요. 기왕 책을 주려면 책 읽는 속도에 맞춰서, 그리고 원하는 종류의 책을 주는 게 맞지요.
와~ 어쩜 그런 멋진 생각을!! 다른 사람의 우편함을 책을 넣어주다니요. 그런 멋진 생각이 떠오르는 pjy님은 더 멋진 사람!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1.
구석기인의 눈으로 21세기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내지는 22세기의 미래에서 현재로 여행을 오면 또 어떨까. 불과 십 년의 세월만 흘러도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초스피드를 자랑하는 현대에서 허수경은 머나먼 과거, 혹은 가까운 미래에서 현재까지의 거리만큼이나 저만치 멀리 있다. 멀리 있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시인이겠다만.

아직 야만은 시작되지도 않은 거라고 그가 말할 때 그 수많은 야만보다 오래전에 화석이 된 야만이 더 무서우냐고 물을 때
<그러나 아직 당신이 오지 않았는데 고생의 한 남자가>

유전인자 관리하던 실험실도 잠기고 그 안에서 태어나던 늑대들도 잠기고
<나의 도시>

어린 새들은 시간에 쫓기며 하늘을 건너간다 태양의 손가락 사이에 든 시간 날개 속에 시간을 집어넣느라 바람은 깃털 속에 자리를 잃었다.
..
시간들은 역사에 들어가지 않은 파편, 파편의 시간 속에 일그러진 자연
<바다 곁에서의 악몽> 

시간을 잘라 만든 혁대를 목에 감고 죽은 테러리스트가 살던 감방 안에서 자라던 작은 백합의 뿌리는 세계를 버티는 나무처럼 테러의 주검을 견뎌내고 있었어
아주 어린 중세가 대륙 저편에서 현대처럼 활개를 치고 있네
<거짓말의 기록>
 

허수경은 시인임과 동시에 고고학자이다. 두 개의 직업이 가지는 매력을 그는 시에서 풀어놓는다. 그는 발굴현장에서 과거의 것들과 조우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질까. 그는 아마도 시간과 대화를 하지 않을까. 우리네 과거에 존재했음이 분명한 그 어떤 것들과 마주칠 때, 과거와 미래가 스스로와 연결되어 있지만 현재만을 생각하고 사는 우리네와는 다른 그 어떤 감각이 그의 속에서 일깨워지지 않았을까. 그래서일까. 허수경의 시는 억겁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 색을 잃지 않는 원시 구석기의 천연칼라빛 동굴벽화를 느끼게 해준다. 허수경은 또한 미래의 시간에서 날아와 생의 무상함과 대비되는 자연의 장엄을 보여주기도 하고, 참혹할 듯한 인류의 미래를 예견하기도 한다. 이 둘은 따로 있지 않고, 마구 섞인다. 그래서 허수경은 과거와 미래를 종횡무진한다. 이 느낌은 서로 맞물려서 구석기 동굴과 22세기 미래가 동시성을 가지고 현재의 내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허수경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사는 여자 같다. 아니, 모든 인류는 그러하겠다. 단지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두터운 과거의 퇴적층을 밟고 현재를 사는 우리는 한 발짝 미래가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또한 살아갈 수 있지만 과거와 미래의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한다. 허수경같은 예민한 시인이 있기에 그나마 간접적으로 이런 감각을 '시'를 통해 우리들은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애
<수수께끼>

그는 현재 또한 세분해서 여러 곳을 동시에 산다. 그는 한국에서도 살고 있고, 독일에서도 살고 있다. 몸이 존재하는 곳만이 현재 사는 곳은 아니다. 태어났고 한때 살았던 한국이란 곳은 그에게는 여전히 지금도 살고 있는 공간이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숱한 이산자들과 같이. 그러나 그는 이제 더이상 고향만을 그리워하지는 않는 듯하다. 고향을 넘어서서 고향으로 상징되는 전체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는 그 슬픔의 감정까지도 겪게 되는 것이리. 그의 이런 정서의 망을 서영채는 집중하고 있다. 발문을 하신 서영채는 스물 몇 살에 이미 '주모'의 마음을 가진 허수경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알고 있다.그래서 작가의 이번 시집에 실린 <저녁에 흙을 돋우다가>에서 나오는 '향수'를 대표하는 나비와 잠자리에 집중을 했다. 서영채는 그 정서의 망의 존재 이유를 우리 마음의 보호막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망 너머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어떤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 잠자리의 고향에 있는 그 무엇, 천상이거나 지하거나 우리의 삶의 원리나 정서의 한계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우리가 그것을 보거나 겪어버린다면 더이상 우리 마음의 삶뿐 아니라 몸의 삶도 불가능하게 될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삶 그 자체의 통렬한 허무감과도 같은 것이겠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를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통해 감각하게 되는 거미줄 같은 정서의 망이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어떤 것으로부터 우리를 차단시켜주는 보호막으로 자리잡고 있다. 
 
   



2.
애니미즘이라 지칭해도 될 정도로 허수경의 시에서는 인간 아닌 것들이 인간과 동급으로 존재한다. 과거현재미래가 연속된 시간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 속에서 언제든 현재로 회귀될 수 있는 것처럼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 혹은 자연까지도 허수경에게는 똑같이 그저 자연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풍경'으로 존재한다. 천년의 시각으로 본다면, 만년을 늙어가는 산의 마음으로 본다면, 가능하겠다.

국수 소스를 끓이던 토마토는 나를 올리브기름으로 볶았다. 일생 동안 몇 개의 토마토가 만찬을 동반했던가...
자연 앞에서 식욕을 느낄 때 나는 생물이다 그런데 저 푸른 초장은 나보다 더 많이 자연을 퍼먹는다 양 때들이 태양을 향하여 한꺼번에 방귀를 뀔 때 태양은 대양을 건너가는 검은 배에 매달린 전구처럼 흔들린다
<바다 곁에서의 악몽>

21세기의 새들은 대륙을 건너다가 선술집에 들러 한잔했지
21세기의 모래들은 대륙과 대륙에 새 집을 짓다가 스시집에 들러 차가운 생선의 심장을 먹었어
<비행장을 떠나면서>

까르륵거리며 새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고
도르륵거리며 다람쥐들은 철근공사판에서 돌아오는 나날이었지요
<추운 여름에 받은 편지>  



3.
허수경은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예사로 넘나든다. 그에게는 그 경계가 없는 듯 보인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여행을 한다.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외면을 당하는데 생이 소멸되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리. 아니 어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의 감각이 마지막 순간보다 더 괴로울 수도 있겠다. 고고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머나먼 과거의 '죽음'과 매순간 마주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까. 과거의 죽음을 다시 들춰내서 먼지를 털어내고, 옛 영광의 그림자를 햇볕에 비춰보는 것일까. 

삶으로 머리칼을 묶고 죽음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도 모자라
<저녁 직전>

죽은 이들 봄 무렵이면 돌아와 혼자 들판을 걷다 새로 돋은 작은 풀의 몸을 만지면서 죽은 이들의 눈동자 자꾸자꾸 풀의 푸른 피부 속으로 들어가다 마치 숲이 커다란 눈동자 하나가 되어 그 눈동자 커다란 검은 호수가 되어 검은 호수가 작은 풀끝이 되어 나를 자꾸 바라보고 있는데 내버려두었다네, 죽은 이들이 자꾸 나를 바라보는데, 그것도 나의 생애였는데
<눈동자>

내 마음속 도저한 수압 속에서 살아가던 당신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던 그 아침
심해에 있던 기억이 표면으로 나와 헤엄을 치고 있었지,
두 시간가량, 주름상어처럼 죽음을 메고 조용히 조용히
죽을 것을 알고 헤엄을 치고 있었지.
<내 마음속 도저한 수압에서 당신은 살아간다, 내 기억이여, 표면으로 올라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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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2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2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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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을 알게 된건, 문동 계지 올 봄호에서다. 얼마전 작고하신 고 박완서 님의 추모글을 썼는데 글이 음악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시던 선배작가였던 박완서님을 보내면서 보내기 싫어하는 마음과 먹먹함을 적어놓은 글은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다가와 애도의 공감이 형성되었다. 올려진 사진들 중,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고 박완서님이 중간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행복한 가족사진이 있다. 사고로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진은 남아 박완서를 오래도록 위로했고, 이제 그 위로의 사진이 다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한다. 

그렇게 가슴을 아리는 듯한 사연이 담뿍 담겨진 사진을 이병률은 찍는다. 그는 직업이 여행가인듯, 사진작가인듯, 시인인듯, 라디오작가인듯 애매하다. 그는 매번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와서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하다. 톱카프궁전처럼 보이는 바다가 면한 궁전 맞은 편 도시 연안에 정박된 작은 배들이 나란히 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이 이병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작은 배들은 기름칠도 잘 되어 있고, 햇볕에 반짝거리며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고 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배는 항상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는 순간, 한동안은 정처없이 떠돌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를 찾아간다. 떠나온 그곳으로 가든 새로운 세상으로 가든. 이병률의 마음엔 늘 떠남을 부추기는 바람이 머물고있어 그의 허파에 시동을 거는 듯하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들, 만난 사람들은 어디에 새겨야할까. 지나가는 바람에 새겨놓으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들를 때쯤 새겨진 기억들을 돌이킬 수 있을까. 그 숱한 여정들이 쌓였을 때, 그 바람이 잠시 멈추어 여정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가 바람결에 새겨놓은 미지의 것에 대한 냄새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맡을 수 있는걸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무척 따뜻하다. 사진의 렌즈는 찍는 이의 마음을 담기도 하나보다. 따뜻한 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 따뜻함이 흘러넘쳐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 너도 여행을 떠나봐라, 너도 이런 멋진 장소에 있어봐라, 요구하지 않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그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또다른 장소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사람들 사이의 오가는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그래서 보면 볼수록 편하다.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1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1백미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중략)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잠시 어딘가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치하는 것이다.
<아줌마, 저 있던 방, 1박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내게
어딜 나갔다 오겠냐고 묻는다.
<네,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그의 여행은 이처럼 집 근처에서 집을 들르지 않고, 혹은 조금더 멀리, 어쩔땐 아주 많이 멀리, 떠났다가 잠시 집에 다니러 가는 것과 같으리. 우리네 삶도 또한 이처럼 여행같으리. 나는 왠지 이병률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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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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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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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자신의 속에 가득찬 기쁨, 슬픔, 뿌듯함, 억울함 등의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어한다. 타인의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들어야된다면 그것만으로 힘이 들어 녹초가 될 것이다. 내 직업 또한 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되는 경우인데 오후 정도되면 녹초가 되어 손님이 하는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루에 들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듣고싶어도, 아니 들어야해도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럴때는 어쩔 수 없이 건성으로 듣는 척 할 수 밖에 없는데, 주인공인 '나'는 신기하게도 낯선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무척 좋아해 병적이다 싶을 지경까지 다다른 사람이다. 참 요상한 사람이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의 여러 주인공들 중 특히 나오코의 이야기에는 '개'가 나온다. 언제나 기차 플랫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는 시골의 한적한 역과 인근의 따분한 거리들이 나오는 이야기. '나'는 어쩜 나오코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버린걸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나면 나오코도 '나'에게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늘어놓을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처럼 이야기를 얼마든지 잘 들어줄 수 있겠다.  

그런 나오코가 어느날 죽었고, 방황하던 '나'는 나오코가 말한 플랫폼에서 개를 보러 갔다. 결국 개를 플랫폼 끝에서 끝까지 다니게 한 '나'는 이제 나오코를 잊을 수 있을까. 소설 속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연인이거나 짝사랑의 그녀 나오코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살고 있는 '나'는 이제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할까. 막막한 그에게 쌍둥이 자매가 다가온다. 눈을 떠보니 침대 양 옆으로 누워있는 쌍둥이 자매. 어쩜 환상인듯 '나'의 옆에 존재해줬던 쌍둥이 자매 덕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개'가 있는 플랫폼을 보러 갈 수 있었을까. 쌍둥이 자매는 이름조차 남에게 말할 것이 안되며, 옷도 그다지 갖춰입지 않으며, '나'의 퇴근 후부터 출근 전까지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나'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줘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며, 죽어가는 '배전반'의 장사를 지내러 저수지에 가기고 하며, 골프코스를 돌며 떨어진 공을 줍기도 했다. '내'가 쌍둥이 자매와 보낸 시간은 그런 것들이었다. 치유의 시간은 그런 시간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나'는 쌍둥이 자매에게 위안을 얻었을까. 쌍둥이 자매들과 함께하던 언젠가부터 '스페이스십'을 찾으러다니고 있었다. 독자들는 '내'가 나오코와 만난 시점이 1969년이라는 것만 알고 그 이후의 시간은 알지 못한다. 다만 1년 뒤인 1970년에 제이스 바에서 스페이스십이라 불리는 모델로 핀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70년의 겨울에 드디어 핀볼의 주술에 빠져 오락실에서 스페이스십(그녀)와 열애하듯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열애가 식듯 스페이스십은 어느날 오락실이 망하면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멀쩡한 도넛 가게가 생겼고, 거리는 오락실이 있었다는 과거조차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나'역시 적당히 핀볼을 그만두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나는 왜 갑자기 '스페이스십'을 찾는걸까. 그녀가 '나'를 부르는 걸까? 아니면, 나오코가 '나'를 부르는 걸까. '나'는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그녀를 찾으러다녔다. 그리고 결국 찾게 된 그녀는..차갑고 넓은 공간에 시체처럼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있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살아서 사람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움직여야했다. 그러나 차가운 공간에 송장처럼 존재하는 그녀를 보며, 그제서야 '나'는 뭔가를 느낀다. 그녀를 이제 보내야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나'는 그녀를 보내는 의식을 치르면서 내 속에서 여지껏 보내지 않았던 나오코까지 같이 보내는 걸까. 그녀와 함께하던 차가움이 옮겨져 심한 몸살을 앓던 '나'는 열이 내리면서 어떤 시절과 이제 정말 이별이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 쌍둥이 자매도 '나'에게서 떠난다. 환상처럼 '내' 곁에 존재했던 쌍둥이 자매는 언젠가 어딘가에선가 다시 막연히 만나는 존재로 바뀐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이 지나간다. 그렇게 생의 한 순간이 지나간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의 한 순간을 보낸다. 보내고 싶지 않는 그 무엇을,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던 그 무엇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보내게 된다. 사랑하던 사람을, 젊음을, 꿈을.. 그게 무엇이 되었던간에 이별의식을 제대로 치르는 건 중요하다. 나는 이 책이 소중했던 그 무엇과의 이별의식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무엇과 이별을 해야할 날이 다시 또 올때, 나는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다음에는 '나'의 친구인 '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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