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조현예 지음, 박태희 사진 / 안목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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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이 동일한 하나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상대방이 달의 그늘까지 알아봐주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내 속에 걸어들어온 듯한 벗과 더불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든다는 건 무척 짜릿할 것이다. 사진가 박태희와 작가 조현예. 둘의 만남은 머나먼 타국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둘은 이내 서로의 마음을 맞췄고, 하나의 약속을 했다. 강산이 변할 만큼에서 약간 모자란 세월이 흘렀을 때, 그들 중한 명은 한 줌의 재로 세상과 작별을 했고 남은 한 명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 인사를 했다. 여기 이 책은 그들의 약속에 대한 징표의 다른 이름이다.

책 제목, 사막의 꽃. 만지면 모래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를듯한 질감의 책 표지에, 앞면 중앙엔 꿈인듯 새 한 마리 날아가고 뒷면엔 바다의 색인듯 파란 나무 한 그루 머물고 있다. 사막을 걷다 보면 새나 파란 나무가 어쩌면 있을 것이며, 어딘가쯤엔 붉은 꽃도 보일 것이다. 사막은 한때 바다였던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다시 바다로 돌아감을 꿈꾸고도 있는 공간이다. 사막에서 발견되는 심해의 조가비는 사막이 바다를 잊지 않고 있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물 없는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은, 물 있는 공간을 씨앗 시절부터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곳은 바다일 수도, 물이 가득한 수영장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사랑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도 이와 같을까. 사막처럼 황량해 보이지만 가슴 속 깊이 타고 남은 불씨의 잔해를 소중히 간직했기에, 그래서 실연을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조현예의 글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사랑의 간절함도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그 무언가를 간직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사진가가 찍은 숱한 사진들을 넘기다 어느 한 지점에서 우연히, 이 세상인듯 저 세상인듯 혼몽스러운 사진들 너머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붉은 빛깔의 꽃을 발견했다. 그 꽃은 물로 가득한 실외 수영장 구석 한 켠에서 아치를 그리며 서 있었고, 따뜻한 햇살 속에서 수영장 속 물을 흠모하는 듯 보였다. 물이 가득한 수영장을 넘어다보는 붉은 꽃은 혹시, 잃어버린 바다를 추억하는 사막과 같은 의미일까. 박태희는 이 장면을 멕시코에서 찍었다. 붉은 꽃은 또한 가도가도 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다. 물로 가득찬 수영장에 뛰어들고픈 마음이 사막에서 가지게 되는 간절한 바램이듯, 인간은 삶에서 간절한 신기루를 누구나 하나쯤 품고 산다. 그래서 사막의 꽃은 환상의 꽃이기도 하다. 인생은 어쩜 그 하나의 꽃을 보기 위해 지난한 무채색의 과정들을 견디는 일과 같을까.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꽃의 사진을 지나치고도 무채색의 사진들은 계속 나타난다. 얼마간 사진과 글들을 계속 보다가 문득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했다. 말이 없는 사진은 말이 없다는 이유로 되려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다. 유일한 붉은 꽃 사진과 대비되는 숱한 무채색의 사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그 순간은 너무나 찰나적이어서 차라리 숱한 무채색의 나날만 못하다는 걸. 우리는 정점의 순간을, 사막의 꽃을, 신기루를, 쫓는 부나비와 같지만 정작 인생은 무채색의 나날들에서 향기를 뿜는다는 것을. 십 몇 년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아 처음으로 사진집을 낸 박태희에게서도 무채색의 시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20년동안 꾸준히 일기를 쓴 조현예 역시 마찬가지다. 조현예의 그런 무채색의 시간들을 알았기에 박태희는 그녀의 사후 8년을 견딜 수 있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사후 그녀의 일기장에서 발췌했다는 조현예의 글은 한 곳만을 쳐다보는 해바라기같은 글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온다. 그녀의 글은 사진에 질감을 느끼게도 해주고, 사진에 햇볕을 쬐여주기도 하며, 또 어쩔 땐 사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진과 글은 둘인듯 하나이고, 하나인듯 둘이다. 서로 각자의 마음과 눈에서 나온 글과 사진이 이토록 잘 어울려서, 그래서 더 눈물겹고 안타까운 책이다.  
 


이런 날, 이렇게 고요한 날,
이런 시간, 이렇게 깊은 시간,

한 사천 밤쯤 되었을까
너를 그려본 시간,

혼자서 꿈을 꾼다
나는 현실이고, 너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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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의 사춘기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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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출근길에 후두둑 떨어지는 목련을 보았다. 고개를 돌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중학교 때 선생님께 배운 노래는 어느날 속절없이 떨어지는 목련을 본 순간 더 이상 부르지 않았고 길에서 목련을 접하면 고개부터 돌아갔다. 그러나 어제밤 고은의 시에서 이 부분을 발견하고는 목련꽃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뜨락의 목련이 윷처럼 쪼개어지고 있다
                                                              <폐결핵>

감탄..살해당한 봄이니 뭐니로 표현되는 글들은 떨어지는 목련에 애도를 표하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들어간다. 나는 이 감정이 싫다. 목련은 그저 자기 생을 마치고 순리대로 떨어질 뿐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자연 스스로의 목련을 안경을 쓰고 바라봐질까. 그 아름다움이 언제까지 지속되었으면 하는 우리의 이기심, 우리의 욕심 때문일까. 물론 나 역시 이 혐의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그리고 벗어날 방도를 모르기에  외면으로 그나마 체면치레를 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고은의 '윷처럼 쪼개어지고 있다' 는 표현은 뭐랄까, 차원이 다른 언어를 쓰는 느낌이다. 윷처럼 쪼개어져서 피어나고, 윷처럼 쪼개어져서 바닥에 흩어지는 목련. 장엄한 우주의 질서 속의 한 개체로서의 목련이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다.


사별했다. 애도조차도 무례하다
                                                              <소등>

아...멋지다..고은의 시는 한 줄로도 시가 된다. 따로 떼어도 시이고 모아놔도 시가 되는 희한한 시. 그만큼 정신의 집중력이 대단하다는 의미겠다. 고은의 시를 읽을 때의 그 저릿함은 한껏 늘어진 정신에 커다란 침을 한 방 맞는 느낌이다. 영혼의 세례를 받는 느낌이다. 사별의 아픔을, 애도조차 무례하다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사별의 대상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대상의 전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며, 자연의 일부로 화한 대상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이승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존재가 무(혹은 새로운 유)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장엄한 다비를 보는 느낌이랄까.


긴 편지를 쓰고 끝에는 '끝'이라고 썼다.
(중략)
들쥐들이 종점에서 종점으로 몰려다닌다.
(중략)
너무나 많은 끝이 내 발등에 쌓인다
                                                
              <예감>
얼마나 많은 끝이 또 하나 지나는가
                                                              <폐결핵>

고은의 시어들 중 특히 '끝, '종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열여덟 살의 자살소동과 함께 미국 항만운수와 검수원, 엿장수, 중등 교사, 거지, 승려, 시인, 정치범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 속에서 여러 번 겪었을 '끝'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삶에 '끝'이란 것이 있기나 할까. 고은은 끝이다, 라고 생각한 지점을 도대체 얼마나 여러번 닿아봤을까. 그렇다. 끝까지 가고 나면 다시 원점, 출발선인 것이다. 그저 끝이 숱하게 발등에 쌓일 뿐인 것이다. 몸으로 체득했을 그의 숱한 끝을, 이제 겨우 몇 개 경험했을 뿐인 나의 끝으로 감히 견주어보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나 이야기하자면 고은의 '끝'은 '재생'을 알고 있는 끝이다. 다시 돌아옴을 아는 끝. 그래서 그는 사별의 애도조차 무례하다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의 말이라도 말 속에는
일생의 파도소리가 들어 있다

                                                           <소등>

고은의 50년 시의 인생을 엮으신 김형수 시인이 무척 좋아하신다는 부분. 그리고 나 역시 그저 명심하고 또 명심하고픈 그런 부분. 이런 구절을 읽고 나면,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고, 위대해 보인다.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속에서 몰아치는 파도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일 파도의 파장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누군가 미워지는 사람이 있을 때, 이 구절을 음미해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이 더없이 사랑스런 사람으로 달리 보일 것이다. 고은은 어쩜 이런 철학적인 시를 쓸 수 있을까. 고은의 시는 이 한 권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어들은 자연의 형상, 자연의 소리들을 시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반짝이는 햇살, 뜨거운 태양, 이런 식의 외형적 형상 말고 자연의 본질을 직관으로 꿰뚫어 시로 옮겨놓은 것 같다. 그의 시는 작살이 되어 나를 뚫어 자연에 내다 건다. 그의 작살에 잡히고서야 비로소 나는, 그의 수중에 들고서야 그제야 나는, 자연의 비밀을 아주 조금 알아차린다. 이런 전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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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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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1998 제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220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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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만으로 온전히 알 수 있는 세계, 시의 세계
온갖 이론으로 중무장해도, 전혀 못 알아먹을 수도 있는 세계, 시의 세계

시의 세계는 참 공평하다. 예전에 박노해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노동자 시인이라며 사람들이 신기해했을 때 나도 덩달아 신기해했지만, 이제는 알겠다. 초등학생 시인도 가능하고, 늦깍이 시인도 가능한 세계가 시의 세계라는 것을. 쓰는 족족 시가 되는 사람과 일 년에 한 줄의 시도 못 쓰는 사람이 동일인일 수도 있는 것이 시의 세계라는 것을. 시의 세계는 처음 들어설 때는 무척 넓은 문이지만 조금씩 들어가다 보면 입구가 점차로 작아져서 나중엔 호리병처럼 정신의 변형이 있지 않은 이상 더 깊이  들어가기 힘이 든다. 시를 쓴 시인의 감성이 온전히 세계의 속살과 맞닿는 일이니 이는 당연한 일이겠다. 정신의 골격을 바꾸어 흐물흐물 해파리처럼 유연한 정신으로 탈바꿈하고 나서 들어간 시의 세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신비로워 그간의 고통을 벌충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건 그런 고통을 감수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시의 세계.

황지우. 그의 이전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그에게 그런 정신의 변형이 일어나는 과정을 담은 투병기다. 그는 실험을 한다. 그의 몸을 가지고, 그의 정신을 가지고. 그는 전략을 세우고 넓디넓은 시의 세계를 탐방한다. 환자로서 병을 앓으면서 병을 가지고 깨달음을 실행했던 유마힐처럼. 그는 우울, 상실감, 분열, 환각, 공포, flight of ideas 증세와 관련된 '유사- 광증'을 실험했으며 그 이유는 우리 삶에 유지되고 있는, 그래서 더욱 지옥 같은 혼돈에 대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병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는데 그 결과 모든 착란적인 것이 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착란적인 것'은 시적이다, 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여기서 착란적이라는 단어를 선적이라는 단어로 대치해도 무방하다)

자기의 온 몸을 내던져 미지의 세계에 풍덩 빠지는 자세라니, 너무 멋지다. 이는 예술가의 본연의 자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술가는 순간의 번득이는, 찰나적인 감성으로 만 하룻동안 얼마든지 다른 사람처럼 살 수 있다. 연극배우처럼, 글을 쓰는 소설가나 시를 쓰는 시인 또한 그 작품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작품 속 인물로 변해서 살아 간다. 제대로 사느냐 겉치레로 흉내만 내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작품이 말을 해 줄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황지우의 그런 실험 정신에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게다가 황지우의 탐침은 내가 앞으로 할 작업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물론 나는 내 몸을 대상으로 유사 체험을 하진 않을테고, 관찰을 할 생각이다. 양귀자 식의 관찰 말이다. 그러나 탐침과 관찰은 언제라도 혼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어서 일개 독자에 불과한 나이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혼용을 허락한다. 내가 너그러운 마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는 시의 세계에 갓 입문한 초보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의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하겠는가 말이다. 나의 이런 노력, 탐침과 관찰의 혼용은 시인이라면 얼마든지 마땅히 흔쾌하게 받아줄 일이 되는 것이 자명한 이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착란적인 것, 어떤 선적인 것은 어떤 것일까. 작품을 들여다 보자. 

어렸을 적 낮잠 자다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와
똑같은, 별나도 노란빛을 발하는 하오 5시의 여름 햇살이
아파트 단지 측면 벽을 조명할 때 단지 전체가 피안 같다
내가 언젠가 한번은 살았던 것 같은 생이 바로 앞에 있다  
(중략)                    <아주 가까운 피안>

일상에서 무심결에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갈 때 어떤 서늘함을 느끼고, 거듭 생을 사는 느낌을 받을 때의 그 희열을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위 시를 읽다보면 찰나적인 착각, 착란은 충분히 선적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 황지우의 예민한 더듬이는 이를 좀더 깊이 느꼈을 테고, 이 속에서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림자를 감지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지점을 찾고 싶어 탐침을 한 게 아닐까.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서 오히려 더 간절한 그런 느낌을 좀더 깊이, 좀더 오래 알고자 황지우는 유사 광증을 실험했을 것이다. 광증의 세계에서는 이런 느낌이 오래도록 제대로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결과물을 우리는 책으로 읽고 있지만, 황지우에게는 아직도 과정 중에 있는 일일 터이다. 물론 독자 역시 시를 두고두고 읽으면서 황지우가 숨겨놓은 겹 언어를 찾아내어 자신들만의 과정을 발견하리라 황지우는 바랄 것이다. 그건 그의 시의 세계를 좀더 폭넓게 하는 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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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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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 아이들은 땅 속에 난 세상의 구멍을 무척 좋아한다. 개미 구멍도 좋고, 지렁이 구멍도 좋고. 소꿉놀이 구멍도 좋다. 아이들은 흙만 보이면 어디선가 나무 꼬챙이를 주워와서 땅에 구멍을 낸다. 그러다 어느날 아이들끼리 모여 구멍을 크게 만들어도 본다. 구멍을 점점 깊이 파면 지구 반대편에 닿을거야.   

아이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했을까. 여기, 신나게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캠프가 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 한때의 영광으로 진주가 비밀스레 숨어있듯이, 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있던 이름뿐인 초록호수 캠프가 그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가로 세로 1.5 미터 장방형으로 구덩이를 판다. 먼저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일찍 가서 쉬어도 된다. 공부도 안 해도 되고, 놀기만 하면 된다. 아! 물론 오락거리? 전혀 없다. 명색이 캠프인데 노는 건 알아서 놀아야지? 뭐. 물론 피곤하면 그냥 암것도 안하고 쉬든지. 테레비도 잘 안 나와. 테레비는 아이들 두뇌건강만 해치니 필요없지, 뭐.

너무 재미난 일도 매일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 날도 생기겠지? 그럼 그런 날은 전갈이나 방울뱀에게 시비를 걸어보는 거야. 아주 살짝~만 물리게 말야. 몸에 열이 나는 동안은 구덩이 파는 신나는 일을 잠시 쉴 수 있거든. 그치만 말야. 노랑 반점 도마뱀은 조심해야돼. 구덩이 파는 일을 영영 못하게 될 수가 있거든. 그것만 조심하면 돼.

이런 멋진 캠프에 어떡하면 갈 수 있냐구? 어른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잘못을 하게 되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아주 명명백백한 잘못을 하기만 하면. 그러니까 이런 거. 길 가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냄새나는 운동화를 머리에 맞고, 무심결에 신어보는 거. 그리고 잠시 걸어보는 거. 그거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갈 수 있지. 이건 아주 큰 잘못이거든? 이 운동화가 누구건 줄 알고 함부로 신길 신어! 이 운동화는 도둑맞은 운동화일 수도 있고. 유명인의 운동화일 수도 있고. 엄청나게 비싼 운동화일 수도 있는데. 외관이 허름하고 낡아빠졌고, 썩는 양파같은 냄새가 난다고 무시하지 말라구. 외관과 가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운동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증거, 댈 수 있니? 증인 있어? 하다못해 돈이라도 있어? 없으면 당신은 유죄!! 감옥 가는 거 보다는 캠프가 더 신날 거 같지 않니? 신나게 구덩이 파는 일, 재밌을 거 같지 않니? 같이 구덩이 파러, 가지 않을래?

살다보면 억울한 순간이 종종 옵니다. 나는 분명 안 했는데 내가 하는 거를 누가 봤다고 증언을 할 때, 나는 물건을 안 훔치고 그저 길을 가던 중인데 도둑으로 오인할 때, 친구들이 수군대며 사건의 범인으로 나를 몰아세울 때, 친구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그럴 때. 그토록 억울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거 같으세요? 아무리 변명을 해도 안 통하고, 주위에서 온통 내 말을 믿지 않을 때, 미칠 거 같은 억울함에 밤새워 눈물지어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빛 뿐일 때, 그럴 때는 도리없습니다. 나를 굽어보며 지켜봤을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요.

시간은 지금은 너의 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너의 편이 되어 줄거야. <미미 여사의 영웅의 서에서>

시간이 지나면, 너 스스로 정직하면, 너를 믿어주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날 거야. <내 생각>

초록호수 캠프에서 덩치 큰 소년인 스탠리 옐내츠는 그냥 원시인이라 불린다. 원시인은 그곳에서 겨드랑이, 엑스레이, 자석, 지그재그, 제로와 같이 한 팀을 이뤄 매일 구덩이를 판다. 이 중에 원시인을 믿어주는 친구가 있을까. 그런 친구를 만나려면 어떡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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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31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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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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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저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인가봐요. 막 친구들끼리 수다떨고 놀다가 제가 다가가서 말을 하면 제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친구들이 저를 대해요. 제가 벽, 같은가봐요."

하얀 벽
벽이 말한다.
-너도 이제 혼자구나
-내가 왜 여기 있냐구 글쎄 생각나 네가 나보고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거 같다고 했었어
-내 이름은 없었어 신학기가 되어 모두들 새 반을 배정 받았는데 내 이름을 아무도 부르지 않았어 내 이름이 없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어 잊어버린거야 나를 그때 난 정말 벽이 되었어


놀란 나는 말문을 겨우 연 조카가 고마웠다. 한달간 조카와 같이 강변을 거닐기도 하고, 식당에 가서 뭘 시켜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결과 드디어 조카가 입을 열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내성적이 된다. 준비없이 당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토록 밝고 화사하던 아이가 어느결에 성격이 백팔십도로 바뀌어 어두침침한 아이로 변해서 걱정이 컸는데 아이의 말문으로 치료의 첫 신호탄이 울린 것이다. 알고보니 왕따 시키는 아이는 작년까지 조카의 친한 친구였다. 집안이 가난하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하던 아이는 자기와 정반대이며 선생님께 이쁨까지 받는 조카와 잘 지내면서도 늘쌍 눈에 가시로 조카를 여겼나 보다. 학년이 바뀌면서 그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친구를 왕따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손톰이 자라날 때
선주가 뺨을 감싸 쥐었다. 손이 얼얼했다. 내가 선주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마치 궁지에 몰린 쥐새끼, 아니 고양이처럼. 선주는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툭 튀어나온 눈을 커다랗게 뜨고 벌벌 떨면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 놀란 건 선주만이 아니었다.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서 있었다. 심장이 조그맣게 오그라든 채 굳어 버린 것만 같았다. 선주의 뺨에 난 손톱자국이 독이라도 오른 것처럼 벌겋게 부어올랐다.

평소에 담임이 조카에게 관심가지는 게 싫었던 아이는, 조카가 대장놀이에 기질이 없는 걸 눈치챘다. 선생님이 잘 해주는 애는 대부분 그 반에서 대장질을 하는데 개중에 순한 애들은 그걸 못한다. 그렇담 조카를 왕따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 먼저 다른 친구에게 조카 흉을 본다. "지가 뭘 그리 잘나서 저리 잘난 척이다니? 공부 좀 잘 하믄 다인가? 선생님은 뭘 보고 쟤만 이뻐 한다니? 아이 재수없어." 이런 식으로 몇 마디만 오가도 동조자가 생긴다. 그 다음번엔 우리 노는데 조카가 끼일 때 슬쩍 조카 말을 몇 번 씹어준다. 그럼 같이 흉보던 다른 애들도 슬쩍 같이 씹게 되는데 이때 조카의 반응을 살펴서 조카가 대놓고 발끈하면 시기를 조절해야 되고, 조카가 상처를 받은 눈치면 본격적으로 따를 시키기 시작하면 된다. 사람 한 명 왕따 시키는 거, 일도 아니지 뭐. (물론, 내 속이 그리 편치는 않다구. 나도 알아. 친구를 괴롭히는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거. 그래서 어쩌라구? 당신이 나를 알아? 나도 괴로워. 나도 괴롭단 말야. 그치만..나도..나도..얘처럼 그런 평안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싶고, 나도 얘처럼 선생님에게 이쁨받고 싶고, 나도..나도..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먹고 싶단 말야. 우유값이 없어서 징징거리는 엄마 목소리 더는 듣기 싫어. 싫다구..난, 어쩜 친구가..되고 싶었던..걸까?)

난 네가 되고 
예전엔, 내가 말하기 전에 주영이가 먼저 그 말을 했다. 그럼 나는 말을 하려다 말고 어색하게 웃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말을 삼키며 다문 입안에 이물질이 가득 들어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쾌하고, 불길하기까지 한 기분이. "내가 무슨 말이든 하려고만 하면, 네가 먼저 해 버렸잖아. 내가 할 말을 읽고, 일부러, 일부러 방해했잖아!" '그걸 이제 알았어? 병신 같은 년.'

자라는 성장기의 아이들은, 특히나 한국적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스트레스가 무척 많다. 가난한 집은 가난한 집대로, 학원 순례하는 아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 그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아이들. 그 스트레스는 어디로 갈까. 풀 때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동기에게 푸는 아이도 생기겠다. 아이에게서 자라나는 잔혹성. 아이는 순수하기에 동시에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고누다
난 그 교실에서 총을 쏜 거다. 20발의 총알을 가지고. 탕탕탕. 신나게 총을 쏘다가 마지막 한 발이 남았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잠시 뜸을 들인 거다.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던 거다. 내게 보라는, 마지막 총알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난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에도 보라를 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난 모두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손가락으로 겨누어 총을 쏘면 순식간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둘로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 나는 그런 능력으로 학급 친구들을 하나만 남겨놓고 죄다 쏘아버렸다. 둘로 나누어지자마자 진짜는 쏜살같이 가짜를 먹어삼킨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난 그 장면이 무척 잔인했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총을 겨눌까. 이제 반에는 보라 한 명밖에 안 남았다. 마지막 남은 총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게 이런 능력이 도대체 왜 있는 걸까. 나는 왜 다른 얘들이랑 다를까. 왜 다른 얘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을까. 혹시, 내가 총을 겨눈 걸..친구들이 알까. 설마..내가 외롭다..거나 그래서, 보라를 남겨놓은 건 아니..겠지? 게다가 보라는 이미..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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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7 1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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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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