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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이병률을 알게 된건, 문동 계지 올 봄호에서다. 얼마전 작고하신 고 박완서 님의 추모글을 썼는데 글이 음악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시던 선배작가였던 박완서님을 보내면서 보내기 싫어하는 마음과 먹먹함을 적어놓은 글은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다가와 애도의 공감이 형성되었다. 올려진 사진들 중,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고 박완서님이 중간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행복한 가족사진이 있다. 사고로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진은 남아 박완서를 오래도록 위로했고, 이제 그 위로의 사진이 다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한다.
그렇게 가슴을 아리는 듯한 사연이 담뿍 담겨진 사진을 이병률은 찍는다. 그는 직업이 여행가인듯, 사진작가인듯, 시인인듯, 라디오작가인듯 애매하다. 그는 매번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와서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하다. 톱카프궁전처럼 보이는 바다가 면한 궁전 맞은 편 도시 연안에 정박된 작은 배들이 나란히 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이 이병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작은 배들은 기름칠도 잘 되어 있고, 햇볕에 반짝거리며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고 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배는 항상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는 순간, 한동안은 정처없이 떠돌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를 찾아간다. 떠나온 그곳으로 가든 새로운 세상으로 가든. 이병률의 마음엔 늘 떠남을 부추기는 바람이 머물고있어 그의 허파에 시동을 거는 듯하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들, 만난 사람들은 어디에 새겨야할까. 지나가는 바람에 새겨놓으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들를 때쯤 새겨진 기억들을 돌이킬 수 있을까. 그 숱한 여정들이 쌓였을 때, 그 바람이 잠시 멈추어 여정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가 바람결에 새겨놓은 미지의 것에 대한 냄새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맡을 수 있는걸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무척 따뜻하다. 사진의 렌즈는 찍는 이의 마음을 담기도 하나보다. 따뜻한 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 따뜻함이 흘러넘쳐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 너도 여행을 떠나봐라, 너도 이런 멋진 장소에 있어봐라, 요구하지 않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그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또다른 장소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사람들 사이의 오가는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그래서 보면 볼수록 편하다.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1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1백미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중략)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잠시 어딘가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치하는 것이다.
<아줌마, 저 있던 방, 1박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내게
어딜 나갔다 오겠냐고 묻는다.
<네,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그의 여행은 이처럼 집 근처에서 집을 들르지 않고, 혹은 조금더 멀리, 어쩔땐 아주 많이 멀리, 떠났다가 잠시 집에 다니러 가는 것과 같으리. 우리네 삶도 또한 이처럼 여행같으리. 나는 왠지 이병률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