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사라 크로산 지음, 정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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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를 기괴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멀리 떨어져서 우리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확연히 둘이었던 몸이 허리에서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에서부터 어깨까지만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우리가 쌍둥이이며 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오고 티피 머리카락은 더 짧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못생겼다고? 에이. 이젠 좀 지겹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모두 누군가와 붙어 있었다고 한다. 팔도 네 개, 다리도 네 개,머리는 하나에 얼굴이 두 개지만 신을 위협할 정도로 강했기에, 신이 우리 영혼의 짝을 반으로 갈라 영원히 짝 없이 외롭게 살아가도록 만든 거란다. '헤드윅'이라는 작품 속 노래 가사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를 가지고,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 가진 사람이 있었다고. 제우스가 번개 가위로 반쪽으로 갈라 영원토록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신이 인간을 반쪽으로 가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모두 영혼의 짝과 한 몸인 상태로 살고 있을까.

 

여기, 엄마 배 속에서부터 이미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히 묶여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머리가 둘, 심장도 둘, 폐와 신장도 두 쌍에 팔도 넷이지만, 제대로 움직이는 다리는 둘이고, 모양만 그럴듯한 다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달려 있는, 이들은 결합 쌍둥이였다. 일반적으로 샴쌍둥이는 불완전한 분할로 수정란이 나뉘어져 신체의 일부가 결합된 상태로 태어나는데, 생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두 개 달리거나, 두 개의 몸에 머리의 정수리 부근이 서로 붙어있거나. 쌍둥이의 머리를 분리하는 대수술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후 몇 시간, 혹은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요즘은 출산 전에 기형아 검사를 하기 때문에, 아이의 기형 사실을 부모가 미리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사실로 인해 아이를 포기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아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차별 받고, 고통 받게 되는 건 부모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 겪어내고, 참아내고, 부딪쳐 싸워내야 한다. 물론, 그것도 살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허드슨가에서 꼬마 하나가 엄마를 툭 차고는 전속력으로 달아나다가 엄마를 뒤쫓으며 꺅꺅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티피도 키득거렸다. 폴이 카메라를 우리 쪽으로 돌리자 렌즈에 비친 햇살도 우리를 향했다. 캐롤라인이 말했다. “너흰 정말 많이 웃는구나. 그런 상황에서조차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 하지만 삶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거부했어야 하는 걸까? 난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웃음을 택했다.

이 작품은 16년간 홈스쿨링을 받아온 결합 쌍둥이가 난생처음으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꿈꾸던 평범한 학창 시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라 크로산은 이 작품으로 그 해 최고의 청소년 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카네기 메달을 받았다. 2016 카네기 메달, 2016 영어덜트 도서상, 2016 아일랜드 올해의 청소년 도서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만큼, 특별한 이야기를 보편성 있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자유시 형식으로 쓰인 독특한 본문이 인상적인데, 덕분에 페이지가 굉장히 수월하게 넘어가서 가독성도 좋고,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을 붙여주어 몰입감도 선사하고 있다.

 

그레이스와 티피의 상반신은 확실히 둘이지만 허리 아래로는 하나다. 좌골부 결합형 쌍둥이인 그녀들은 16살에 첫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그 동안은 홈스쿨링으로 공부해왔지만, 후원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라는 존재가 생기게 되고, 그들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우정과 사랑이라는 감정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는 그레이스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덕분에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보다는 따뜻하고 유쾌한 감정이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마치 쌍둥이 자매의 일기장을 엿보는 기분도 들고,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허구의 이야기지만 마치 실화 같은 느낌을 주는 진지함과 리얼함이 있다. 그럼에도 무겁지만은 않은 분위기라 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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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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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패터슨은 무시당하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세 달째 매일 이 체육관에 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자기가 관심 있는 일에만 몰두하는 한가한 여자들을 지켜보았다. 이 여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앰버는 그들 중 누구와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매일 1.5미터 거리에서 운동하는 사이인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앰버는 붙박이 가구처럼 하찮고 주목할 가치 없는 존재였다.

평범한 시골 마을 출신의 앰버 패터슨은 부동산 사무소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자신이 현재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조사 끝에 잭슨 패리시를 표적으로 정하고, 그의 완벽한 아내인 대프니 패리시에게 접근한다. 잭슨 패리시는 포춘 500대 기업에 선정된 회사를 이끄는 엄청난 부자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외모를 가진 매력적인 남자이기도 했다. 그보다 열 살 어린 대프니는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낭포성 섬유증을 겪는 이들을 위한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동생이 같은 병으로 죽었기에 자신이 운영하는 줄리스 스마일 재단을 통해 기금을 마련해서 병든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 엠버는 대프니가 다니는 체육관에 세 달 째 다니다 어느 날 드디어 그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신의 멀쩡한 여동생을 낭포성 섬유증을 앓다 죽은 걸로 만들어서는 그녀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호화로운 저택들이 비밀스럽게 자리한 코네티컷 비숍 하버에서도 수백만 달러의 저택에 살고 있는 잭슨과 대프니 부부는 마치 동화 속에서 빠져 나온 것처럼 완벽한 커플이었다. 앰버는 자신이 늘 꿈꾸던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대프니에게 질투를 느끼면서,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을 빼앗고 자신이 저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대프니와 가까워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두 사람은 금새 서로를 이해해주는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 간다. 앰버는 점점 대프니와 생활을 공유하며 그녀의 신뢰를 쌓아가고, 잭슨의 회사에 비서로 일하게 되면서 조금씩 그들의 삶에 더 발을 깊숙이 들여 놓게 된다. 대프니가 너무 착해서 죄책감이 들 지경으로 앰버의 계획은 술술 풀려 나간다.

 

앰버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대프니가 너무 착해서 죄책감이 들 지경이었다. 대프니가 패리시 인터내셔널에 일자리를 알아보게 하려면 은연중에 뜻을 비치고 교묘하게 행동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미끼가 무슨 맛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덥석 물어버렸다. 그리고 앰버 때문에 명성이 더러워지고 불쌍해질 행복한 유부남 마크 잰슨은 앰버에게 접근과 비슷한 행위조차 한 적이 없었다. 앰버는 오후에 마크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할 생각이었다. 자동차 엔진에서 부르릉 하고 소리가 났다. 이제 모든 일은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지나치게 완벽해 보이는 부부 앞에 나타난 한 여자. 그녀가 아내와 가까워지면서 친구가 되고, 결국 남편을 유혹해 가정을 파괴한다는 플롯은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한 동안 유행처럼 자주 출간되고 있는 심리 스릴러 장르에서도 유독 비슷한 플롯의 이야기가 많은 편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줄거리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끊임없이 다음 장면이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고 할까. 앰버와 대프니, 잭슨 모두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 마치 영상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매 장면마다 넘쳐나서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구성과 반전 또한 매우 훌륭해서, 정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대프니에게 접근해서 잭슨을 유혹하려는 앰버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녀의 계획이 막 성공하려는 시점에 시작되는 2부에서는 대프니가 잭슨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대망의 3부에서는 앰버와 대프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보여지는데, 충격적인 반전도 매혹적이고, 각자의 삶 속에서 감춰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되는 구성도 훌륭하다. 1부가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를 파멸시키는 욕망에 불타오르는 여성이 등장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같은 신분상승 드라마라면, 2부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삶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는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 같은 심리 스릴러이다. 그래서 같은 등장 인물이 등장하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른 분위기로 차별화된 색깔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이야기가 모두 군더더기 없이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어, 후반부의 반전에 더욱 놀라운 힘을 실어주고 있다. 가독성 면에서도,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서도 굉장히 빛을 발하고 있는 대단한 작품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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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오나 2017-12-09 00:09   좋아요 0 | URL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멋지네요. ^^
 
퍼즈 - 노력을 이기는 일시정지의 힘
레이첼 오마라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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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기운이 빠지는 경우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일상이지만, 어딘가에서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고 있는 순간이다. 외적인 상황들과 사회에서의 성공에 집중하느라, 정작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거나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처럼 예전에는 신나게 몰입했던 일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일을 통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활력이 소진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가? 만약 당신의 직책이나 임무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갑자기 일의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분명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라면 무작정 일을 지속하기보다는 일시 정지의 시간을 가지면서 의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에서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

 

구글의 리더쉽 코치 레이첼 오마라는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저녁 모임에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밀린 업무에 열중했고, 주말에도 컴퓨터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빛나는 성과가 보상으로 주어졌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번아웃 증후군에 빠져버린다.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고, 도무지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바로 '일시정지'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무급 휴직을 허락하는 전 세계 15퍼센트의 글로벌 기업 중 하나였고, 그녀는 90일 동안의 휴직을 신청한다. 그리고 기간 동안의 일시 정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에너지를 완전히 회복한 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시 정지의 기술과 가치를 설파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우리가 멈춰야 할 때를 알려주는 다섯 가지 신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그토록 사랑했던 일을 이제는 혐오한다. 둘째,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질책 받는다. 셋째, 인터넷 또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 넷째, 삶의 대대적인 사건과 변화가 발생한다. 다섯 째, 새로운 기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시 정지란 내 삶에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완벽한 구실인 셈이다.

 

일시 정지의 기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상황이다. 하지만 일시 정지를 나 스스로에게 주는월급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번다고 하면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꿔보라. 일시 정지는 자신을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영혼에 투자하는 일이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미리 돈을 내는 것이며, 인생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방법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마음을 청소하고, 새로운 선택과 실행을 하기 전에 나를 가로막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하냐는 두려움, 새로 잡은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는 통제불가에 대한 의심, 가족들은 내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존감, 돈도 없는데 무슨 여행이냐는 돈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걸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냐는 자기파괴에 대한 생각까지.. 이러한 마음속 테이프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100퍼센트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생각이 나에게 최선인지를 파악하여 새로운 신념을 만들어내도록, 그래서 이 테이프들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시 정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일시 정지를 통해서 삶을 변화시킨 사례들이 중간 중간 등장하고, 일시 정지를 위해 직접 실행해 볼 수 있는 프랙티스 코너도 인상적이다. 매 장마다 실려 있는 이 코너의 질문들에 대답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돌아보고, 용기를 얻게 되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에게 3개월의 장기 휴가가 주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이 주어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시정지란 무엇인가? 지금 어떤 기분이 드는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러한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자신을 기대하는가? 실제로 각 질문 아래에 빈 칸이 세 줄씩 놓여 있어 뭔가를 끄적거리며 답변을 적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의미 있는 일시정지를 위한 8가지 조언이다. 그녀가 직접 일시정지의 기간 동안 실행해보았던 활동 중에 꽤나 효과가 좋았던 것들이라고 한다.

일상의 규칙을 디자인하라. 정신을 위로하는 일을 하라. 나에게 이로운 일과 해로운 일을 구분하라.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를 파악하라. 삶의 목적을 서약하라. 일시정지를 일종의 실험으로 여겨라. 모든 일에 '예스'라고 대답하라. 자신의 안전지대를 넓혀라.

일시정지란 단지 숨을 몇 번 들이쉬는 짧은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몇 달에 걸친 장기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구글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일시정지를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과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일시정지는 당신이 길을 벗어났을 때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고, 내면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만약 지금 당신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거나,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갈 곳을 잃었거나, 스스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라는 생각이 든 다면, 바로 지금이 일시정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책은 당신에게 일시정지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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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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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웹툰 작가인 김소은이 사랑하는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과정과 딸을 낳고 키우던 순간들, 그러는 사이 깨달은 감정들에 관한 기록이다. 일상만화를 올리던 작가는 엄마를 간병하며 웹툰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밝혔고, 많은 독자들이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버터와 소>라는 일상만화는 '엄마 3부작'으로 인해 입소문을 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 그렇게 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나 키웠어? 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게 되는 건, 내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되고 나면서부터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 "너도 너랑 똑같이 닮은 자식 새끼 낳아봐라. 그때는 내 마음 알 거다."라는 대사가 비로소 체감이 되는 순간, 그제야 내가 부모가 되면서 다시 한번 더 자식이 되어, 내 부모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어찌보면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이가 어디있겠는가.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손해보면서도 티내지 않고,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아닌 척 하고.. 그렇게 정해져 태어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는지..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속 썩이고 걱정끼치는 건 생각지 않고, 오로지 엄마가 하는 잔소리만 듣기 싫어 하면서, 나중에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면 저런 소리 안 해야지하는 생각 따위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엄마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늘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엄마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이 이런 식으로 나를 제멋대로 굴게 만들었다. 잠이 깨자마자 드는 머쓱함과 무안함에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 솔이와 놀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었다. "자기 엄마가 화나 있으니까 이 조그만 게 눈치를 엄청 보더라." 그 말에 나는 더더욱 못난 사람이 되었다. 성질을 부리고 실컷 울고 나니 내 속은 후련해졌지만 나를 제일 믿고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다.

 

저자는 결혼을 그다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철부지 딸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엄마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하루 아이를 키우는 건 전쟁과도 같았고, 육아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엄마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항암치료를 하고, 하지만 암세포는 전이되어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결국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냈지만, 그녀가 병실에서 엄마를 간병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은 소중한 그림일기들로 남게 된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점점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 되는 건, 언제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리고 나서라는 사실이 슬프지만...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들이라 가슴 먹먹하면서도 머리에,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대목들이 많았다. 항상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고 말이다. 책은 저자가 엄마와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어린 시절과 그녀의 결혼, 육아 일기가 함께 담겨 있어, 엄마의 죽음이라는 우울하고 슬픈 과정도 마냥 어둡게만은 그려지지 않아 더 담백하고 좋았던 것 같다. 저자는 “많이 표현하고 살아. 참지 말고”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딸과 남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긍정 마인드가 작품 전반에 배어 있어 담담하면서도 뭉클한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에는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내 마음을 쿡쿡 찔러 댄다. 심플하고 귀엽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이지만, 함께 있는 글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엄마를 잊어 버리고 사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일러스트의 비중보다 글을 비중이 더 많아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에피소드들의 임팩트가 강해 웹툰처럼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남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이젠 엄마 옆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딸이라서 더 서운했던 것들, 엄마라서 더 안타까운 것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원망이 되고 후회가 되었던 시간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엄마들이라면 비슷한 상황들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애하느라 정신없다고, 사는 게 만만하지 않아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어쩌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엄마라는 존재를 미뤄왔던 게 아닐까. 나부터 미안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특히나 가슴 먹먹했던 대목은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이었다. 엄마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앨범들 속 사진을 일러스트로 그려서 담아두었는데.. 그 어떤 절절한 말이나 표현보다도 더 와닿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평범하지만 우리의 엄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장면들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 엄마와 아빠의 결혼 사진, 그리고 내가 갓난아기 일때의 모습, 함께 가족 여행을 갔던 곳, 어느 새 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 손주와 함께 있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과 마지막 병실에 누워 있던 모습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설명 없이도 한 컷의 그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심금을 울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그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엄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밖에 없는데 말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표현하고, 배려하고,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딸들, 그리고 엄마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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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소피 골드스타인 지음, 곽세라 옮김 / 팩토리나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고의 그래픽 노블에 수여하는이그나츠 어워드수상작이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띤다. 만화책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지닌 깊이 있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만화가 지닌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즐긴다는 것이 매력이다. 촘촘히 글자가 박힌 소설책보다는 눈의 피로도 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그녀들의 나라에서는 비밀리에 범죄자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쓸모 있는 기술을 가진 전과자들에게 감옥에 갈 건지, 식민지 별에 파견되어 일할 건지 선택하게 한다는 거다. 그리고 식민지에 가기로 결정한 범죄자들은 환경에 맞게 유전자 변형을 시켜서 다시는 돌아올 생각을 못하도록 일종의 낙인을 찍는다. 그녀들이 교육을 하려는 소녀들 역시 남자처럼 눈이 네 개인 외계인들이다. 그녀들의 말을 할 줄 아는 소녀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들은 그것 마저 못하지만 여자들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여성들만 있는 곳에 있는 단 하나의 남성이라는 설정은, 그들 각자의 마음 속에 숨겨진 욕망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그들의 복잡미묘한 심리변화와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플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이미지들과 식민지 행성의 황량하고 독특한 풍경들은 굉장히 흡입력있는 서사를 전개한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을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수상쩍은 남자는 원주민 여자들의 단순함을 노리고 그녀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푹 빠진 여자들에겐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제국에서 25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우주의 미개척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렇게 현대 사람들의 질투와 욕망, 그리고 배신과 집착을 그려낸 것처럼 리얼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그리고 남자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여자들. 섬뜩하도록 기괴한 환경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공포스럽게 변해간다. 정확한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설정도 없고, 기묘한 인물들과 독특한 상황 설정들 모두 기괴하고 무시무시하다.

그래픽 노블은 흥미나 재미 위주로 만들어진 만화와 달리 소설이나 다큐멘터리처럼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됐으나 이를 화려한 만화로 풀어내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책들을 가리킨다. 대부분 그래픽 노블은 엑스맨, 아이언맨, 헐크,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많이 만나왔을 것이다. 특히나 이들 작품들은 영화를 통해서도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소설이 지닌 깊이 있고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만화가 지닌 시각적 효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히어로물이 가진 강점을 드러내기에 좋은 장르임에 틀림 없다.

 

한국과 일본 만화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 유럽·미국식 그래픽 노블의 빡빡한 지면 구성, 때론 실험적인 내용 같은 장르적 특성이 장벽으로 작용하긴 한다. 하지만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읽고 자란 세대가 중년에 이르러 적극적 독자군으로 등장한데다 인기 높은 그래픽 노블 대부분은 현지에서 영화 등으로 제작되면서 이미지와 영상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접근 동기를 제공하고 있어 그래픽 노블 시장이 국내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소피 골드스타인의 이 작품은 SF와 사이코섹슈얼 드라마의 만남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매우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그래픽 노블을 즐겨 읽었던 사람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인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 자체가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순하지만 강력하게 각인되는 메시지, 한 컷 한 컷에 담긴 놀라운 은유와 암시가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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