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김소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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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웹툰 작가인 김소은이 사랑하는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과정과 딸을 낳고 키우던 순간들, 그러는 사이 깨달은 감정들에 관한 기록이다. 일상만화를 올리던 작가는 엄마를 간병하며 웹툰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밝혔고, 많은 독자들이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버터와 소>라는 일상만화는 '엄마 3부작'으로 인해 입소문을 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엄마의 옛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철없는 딸로서 존재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보다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를 멀리서 한 번쯤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어린 엄마가 그리는 꿈과 미래를 온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 그렇게 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엄마는 그냥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는데, 엄마도 이렇게 힘들게 나 키웠어? 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게 되는 건, 내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되고 나면서부터이다. 우리의 부모들이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한숨처럼 내뱉던 그 말, "너도 너랑 똑같이 닮은 자식 새끼 낳아봐라. 그때는 내 마음 알 거다."라는 대사가 비로소 체감이 되는 순간, 그제야 내가 부모가 되면서 다시 한번 더 자식이 되어, 내 부모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게' 늘 곁에서 보살펴주고 무한정한 사랑을 주기만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엄마의 입장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족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어찌보면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이가 어디있겠는가.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고, 손해보면서도 티내지 않고, 억울해도 참고, 힘들어도 아닌 척 하고.. 그렇게 정해져 태어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는지.. 우리는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속 썩이고 걱정끼치는 건 생각지 않고, 오로지 엄마가 하는 잔소리만 듣기 싫어 하면서, 나중에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면 저런 소리 안 해야지하는 생각 따위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엄마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늘 이런 식이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엄마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사랑해줄 거라는 믿음이 이런 식으로 나를 제멋대로 굴게 만들었다. 잠이 깨자마자 드는 머쓱함과 무안함에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 솔이와 놀고 있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힘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었다. "자기 엄마가 화나 있으니까 이 조그만 게 눈치를 엄청 보더라." 그 말에 나는 더더욱 못난 사람이 되었다. 성질을 부리고 실컷 울고 나니 내 속은 후련해졌지만 나를 제일 믿고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다.

 

저자는 결혼을 그다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친구들 중에 가장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고 딸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철부지 딸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엄마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하루 아이를 키우는 건 전쟁과도 같았고, 육아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엄마의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수술을 무사히 끝내고 항암치료를 하고, 하지만 암세포는 전이되어 결국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결국 그렇게 엄마를 떠나보냈지만, 그녀가 병실에서 엄마를 간병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은 소중한 그림일기들로 남게 된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점점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 되는 건, 언제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 버리고 나서라는 사실이 슬프지만...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겪게 되는 일들이라 가슴 먹먹하면서도 머리에,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대목들이 많았다. 항상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생각도 한번 되돌아 보게 되었고 말이다. 책은 저자가 엄마와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어린 시절과 그녀의 결혼, 육아 일기가 함께 담겨 있어, 엄마의 죽음이라는 우울하고 슬픈 과정도 마냥 어둡게만은 그려지지 않아 더 담백하고 좋았던 것 같다. 저자는 “많이 표현하고 살아. 참지 말고”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딸과 남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긍정 마인드가 작품 전반에 배어 있어 담담하면서도 뭉클한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에는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가 매 페이지마다 내 마음을 쿡쿡 찔러 댄다. 심플하고 귀엽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이지만, 함께 있는 글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엄마를 잊어 버리고 사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일러스트의 비중보다 글을 비중이 더 많아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에피소드들의 임팩트가 강해 웹툰처럼 짧지만 강한 임팩트가 남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이젠 엄마 옆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딸이라서 더 서운했던 것들, 엄마라서 더 안타까운 것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원망이 되고 후회가 되었던 시간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엄마들이라면 비슷한 상황들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애하느라 정신없다고, 사는 게 만만하지 않아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어쩌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먼저 엄마라는 존재를 미뤄왔던 게 아닐까. 나부터 미안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특히나 가슴 먹먹했던 대목은 책의 후반부에 실려 있는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이었다. 엄마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앨범들 속 사진을 일러스트로 그려서 담아두었는데.. 그 어떤 절절한 말이나 표현보다도 더 와닿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평범하지만 우리의 엄마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장면들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 엄마와 아빠의 결혼 사진, 그리고 내가 갓난아기 일때의 모습, 함께 가족 여행을 갔던 곳, 어느 새 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 손주와 함께 있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과 마지막 병실에 누워 있던 모습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설명 없이도 한 컷의 그림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심금을 울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계실 때 잘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그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엄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꿈밖에 없는데 말이다. 나도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더 마음을 표현하고, 배려하고,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딸들, 그리고 엄마들이 꼭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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