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링 서스펜스 - 구조와 플롯
제인 클리랜드 지음, 방진이 옮김 / 온(도서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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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를 키우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인물이 느끼는 불안감을 독자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인물을 따라다니면 몰입하게 된다. 게다가 그 안 좋은 일의 구체적인 내용(어디서, 언제, 무엇 등)이 곧장 밝혀지지 않을 때 더욱더 몰입한다. 불길한 예감 자체가 핵심 장치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로 허둥지둥 달려가면서 어깨너머를 연신 돌아본다. 불길한 예감이 모든 움직임에 배어 있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p.79

'서스펜스'란 영화, 드라마, 소설 에서, 줄거리의 전개나 기교의 발전이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주는 기법을 말한다. 보통 추리물이나 공포물에만 사용하는 요소라고 장르물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순수문학부터 에세이, 자서전, 로맨스물 등 장르 불문하고 서스펜스는 정서적 긴장감으로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관객들이 극에 빠져들게 만들기 위한 핵심요소가 바로 서스펜스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서스펜스를 쌓고, 서스펜스의 틀을 잡고, 서스펜스를 이야기에 엮어 넣고, 서스펜스의 상황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라고 말한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쓰든지 작가가 해야 할 일은 평범함에서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것이고, 이 책은 바로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서스펜스는 바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서스펜스가 없다면 독자들은 굳이 꾸역꾸역 끝까지 글을 읽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가 결코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서스펜스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카페로 한 남자가 들어간다. 그 남자가 기둥 뒤에서 낡은 자명종 시계가 1시에 울리도록 맞추는 것이 보인다. 자명종은 폭탄과 연결되어 있다. 근처 벽에 걸린 시계는 12 45분을 가리킨다. 시곗바늘이 조금씩 움직인다. 12 49분이다. 사람들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다. 12 52분이다. 어떤 여자가 웃음을 터뜨린다. 12 57분이다. 두 사람은 이제 커피를 다 마셨다. 12 59분이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숨을 죽인 채 폭탄이 터지기만 기다릴 것이다. 또는 어디선가 영웅이 나타나 사람들을 구해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이런 접근법은 15분간의 서스펜스를 낳는다.   p.164

이 책은 2016년 애거사상 베스트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다. 제인 클리랜드는 '조시 프레스콧 골동품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는 코지 미스터리물의 작가이자, 작가 지망생을 위한 주말 창작 워크숍과 회고록 쓰기 과정 등 다양한 글쓰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플롯과 이야기의 개오를 짜고 구조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시작해, 긴장감을 불어넣고 서스펜스를 쌓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작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대목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 10여 편을 예로 들어 이야기의 구조와 플롯 또는 개요에 서스펜스를 녹여 넣는 법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기존 작품을 분석하는 재미와 함께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팁들을 고스란히 알려주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글쓰기와 작법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어 왔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서스펜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 궁금했었다. 막상 읽어 보니 '서스펜스'를 활용할 수 있는 전반적인 글쓰기 방법을 모두 알려주고 있어 작법 책으로도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개요를 작성하고, 플롯을 짜고, 보조플롯을 더하고, 서스펜스를 빚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등 전반부에는 이야기를 구상할 때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알려 준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이야기를 쓰는 실전 작업에 돌입해 독자들의 머릿속으로 작가가 들어갈 수 있도록 효과적인 문장 쓰는 법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서스펜스를 사용하는 방법, 결말과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수정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모든 요소들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작가가 알려주는 이론들을 실전에 응용할 수 있도록 돕는 사례연구와 연습문제도 수록되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공부를 할 수도 있는 책이라 더 좋았다. 그러니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만화, 웹툰, 웹소설, 에세이 등 모든 서사 장르의 작가 지망생과 기성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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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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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는 내가 샌 파블로 대로 같아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테리는 버클리 폐기장 같았다. 폐기장 가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뉴멕시코가 그리울 때 그곳에 갔었다. 삭막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갈매기들은 사막의 쏙독새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그곳에선 머리 위로, 사방으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쓰레기 트럭들은 천둥 소리와 함께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다닌다. 회색 공룡들.

난 네가 죽는 걸 감당할 수 없어 테리. 하지만 너도 그건 알지.   -'청소부 매뉴얼' 중에서-

초라한 가게와 고물상, 군용 야전침대를 파는 중고품 가게가 있는 거리에 있는 에인절 빨래방, 나는 한 일 년쯤 그곳에서 항상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키가 큰 백발의 인디언 노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 내내 할아버지의 치과에서 일해야 했는데, 잔인하고 편협하고 거만했던 할아버지를 가족들 모두 몹시 싫어했던 이야기도 들려 준다. 이곳 저곳에서 청소부 일을 하면서 집주인들의 성격과 청소부들이 그곳에서 뭘 훔치는 지를 알려 주면서, 청소부로 일을 할 때 필요한 조언을 말해주기도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짧기도 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해서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상한 지점에 쉼표가 있다거나, 마침표가 있는 식으로 낯선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비문인가 싶어서 여러 번 읽어 보면 분명 그건 아니었는데, 뭔가 기존의 작품들에서 만나오던 문장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문장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고 보니 루시아 벌린의 '구두법은 정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불규칙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말에서는 들리지 않는 쉼표, 불필요한 데서 문장의 흐름을 끊는 그런 문장부호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 번역본에서도 그러한 구두법을 바로잡는 일을 피했다고. 덕분에 나는 같은 문장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 곱씹고, 읽다가 자주 멈추느라 짧은 이야기인데도 긴 호흡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행간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나고, 그녀의 삶을 엿보게 되고, 그녀의 문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 느낌이다.

나는 보통 늙어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어떤 것들을 보면 아픔을 느끼는데,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머리를 휘날리며 긴 다리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지. 또 어떤 것들은 나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 샌프란시스코 고속철도 문이 그렇다. 열차가 정지하고도 한참 기다려야 문이 열린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너무 길다. 시간이 없는데.    -'카르페디엠' 중에서-

사후 11년 만에 떠오른 문학 천재, 루시아 벌린의 단편선집이 국내 첫 발간되었다. 지난 2015, 미국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인기가도를 달리는 작가들을 제치고 낯선 작가의 소설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 책이 바로 무명작가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 이었다. 2004,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에 루시아 벌린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명작가였던 소설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로 사후 20년 만에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평생 76편의 단편소설을 썼는데, 상당수가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전체 43편의 이야기 중 16편이 수록된 가제본 도서와 후반부 10편이 수록된 원고를 통해 먼저 만나보았다. 사실 단편집 전체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란 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32살에 이미 세 번 이혼했고,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었고, 싱글맘으로 네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의 일을 하면서 글을 써야 했던 그 지독한 인생의 풍경들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비극적인 동시에 유머와 멜랑콜리를 자아내고, 감정은 극한이지만 언어는 꾸밈이 없으며, 문장은 단편적이면서도 글은 산뜻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우아하다. 그리고 최소한의 단어로 복잡한 감정과 사소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있으니, 단편으로서는 최고의 효율적인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그 동안 루시아 벌린이라는 작가를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단편소설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루시아 벌린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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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관찰의 기술 - 몸의 신호로 상대를 꿰뚫어 보는 실전 매뉴얼
조 내버로 지음, 김수민 옮김 / 리더스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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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동은 머리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뇌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쉬지 않고 일한다. 뇌에서 나오는 신호는 심장과 호흡, 소화, 그리고 다른 많은 기능을 통제한다. 그러나 머리의 바깥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리카락과 이마, 눈썹, , , , , 턱은 일반적인 건강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전 생애에 걸쳐 부모로서, 친구나 직장 동료 혹은 연인으로서 속마음을 드러내는데, 이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면 머리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p.23

세계 최고의 비언어 커뮤니케이터이자 행동 분석 전문가이자 전 FBI 특별수사관 조 내버로의 신작이다. 그는 현직에 있는 동안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고 이를 활용한 새로운 수사 기법을 확립했고, 동료들로부터인간 거짓말 탐지기라고 불릴 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선보였다. 전작 <FBI 행동의 심리학>이 비언어적 능력에 대한 개론적 분석을 담았다면, 이번에 출간한된 <FBI 관찰의 기술>은 구체적인 비언어 신호를 최대한 세밀하게 제시하고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407가지 몸짓 및 표정 언어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있는 '궁극의 보디랭귀지 바이블'이다.

조 내버로는 17살 때부터 인간의 행동에 관한 일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다양하게 행동할까. 이러한 행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당시만 해도 4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관찰한 내용들을 카드에 적어 수집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는 그렇게 수년간 수천 개의 항목을 수집했고, FBI 특별 수사관이 되어 25년간 범죄자와 스파이,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데 이러한 관찰 자료들을 사용했다. 이 책은 그렇게 평생에 걸쳐 그가 수집하고 분류하고 검증해온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신호를 집대성하고 있다.

팔은 몸을 보호하고 균형을 맞춰 주며 물체를 옮기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좋은 의사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팔로 스스로를 포옹하고,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경우 팔을 들어 올린다. 아이는 애정이 담긴 포옹을 갈구할 때 팔과 손을 뻗는다. 팔은 끊임없이 우리를 보좌하고 따뜻하게 해 주고 타인을 돌봐 주며, 느낌뿐만 아니라 욕구까지 전달한다. 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p.185

이 책에 수록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표현 또는 신호들은 FBI 요원들이 범죄 용의자를 심문할 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일상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친구나 연인, 배우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머리, 이마, 눈썹, , , 어깨, 팔 등등.. 신체 부분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 마치 사전처럼 필요한 순간에 찾아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행동이고, 머리를 긁는 행위는 의구심이 들거나 불만스럽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스러울 때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코 위쪽으로 주름을 잡는 모습은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표시이며, 입술을 잡아당기거나 뜯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두려움이나 의심, 걱정, 자신감 부족, 이외의 힘든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았는데, '언어가 생각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면, 몸짓은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타인의 언어에 속지 말고 몸짓을 관찰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혹은 치밀하게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하지만 대개 이들의 비언어는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문제가 있거나, 솔직하지 않거나, 말에 자신이 없거나, 숨겨진 의도가 있거나, 불안하거나 등등..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는 신호나 행동을 포착한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언어들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신뢰와 친밀감을 쌓고, 공감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또는 특정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바라고 두려워하고 의도하는지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쉽고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구라도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통찰력을 얻어 실제 일상 생활에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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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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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한테 오면 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지? 근데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들 말도 안 듣고, 네가 제일 잘났다 하니까 다들 네 비위 맞추느라 그러는 거지. 이제 아무도 네가 제일 잘 춘다고 생각 안 해. '진짜 그런 사람' 정말 없을걸? 시대는 바뀌어. 당연한 거야. 근데 너는 그걸 몰라. 안다면 인정하기 싫은 거겠지. 이제 네 시대는 갔어. 지금은 그냥 쟤네들의 시대인 거야.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고."   p107~108

세계 대회 팝핀 우승자, 빛나는 K팝 안무의 숨은 주인공, 구독자 1,600만 유튜브 채널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안무가, 모두 한 사람을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이다. 바로 트레이드마크인 까만 단발머리를 흔들며 때론 파워풀하고 때론 섹시하게 넘치는 에너지를 몸으로 발산하며 춤추는 그녀, 리아킴이다.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가시나>, 트와이스의 <T.T>,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안무가 바로 떠올려질 정도로 유명한 이 음악의 안무를 만든 것이 바로 리아킴이다. 그녀는 랑킹과 팝핀 장르로 세계 댄스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JYP, CJ엔터테인먼트 등의 댄스 트레이너와 안무가로 활동해왔다. 이력만 보면 태어날 때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은 그녀이지만, 지금의까만 단발머리 리아킴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둘 중 하나야. 계속 혼자 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찾아 네 세계를 깨고 밖으로 나오든지. 네가 널 깨고 나오지 않으면, 지금처럼 밤마다 맥주 마시고, 자고, 자기관리 안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그렇게 평생 살다 가는 거야. 언젠가는 그만할 수 있겠지. 누구 탓할 수 없어. 네가 그 느낌대로, 매일 선택해서 가는 거니까. 매일 네가 그러기를 선택하고 있는 거라고. 넌 이제 어떻게 할래?"   p.209

이 책은 안무가 리아킴의 삶과 앞으로의 비전을 담고 있는 에세이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욕먹는 아이였다. 왕따에 전따, 지역 일대의 찌질이였던 그녀는 친구 사귀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성격장애와 대인기피증의 씨앗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타인과의 만남은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두려웠는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언제나 그들에게 그녀는 조금 차가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왕따에 찌질이였던 중학생 소녀의 삶을 한 순간에 바꿔 버린 것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이 텔레비전에서 방송 중이었고, 그녀에게 그 장면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그의 미세한 표정과 호흡, 숨소리, 목소리, 손끝, 발끝의 움직임까지 어느 하나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춤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다. 문화센터, 댄스팀 등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어디든 찾아 다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노력해 세계 댄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댄스 커뮤니티의 주인공이 되고,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정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댄스 배틀에서 연이어 바닥을 찍고, 눈을 돌려 도전했던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굴욕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오고 나서, 철저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비로소새롭게춤추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여정과 함께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수록 용기는 커지고,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깨달음이 그녀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춤을 추고 싶다면, K팝을 사랑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K팝과 춤을 더 신나게 하는 리아킴의 매직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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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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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목이 멘다. 나는 무감각해지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도 잠깐 평정심에 금이 간다.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벤처럼. 내 여동생처럼.  p.26~27

영어 선생님 조 손은 20년 만에 고향인 안힐으로 돌아온다. 결코 다시 돌아올 생각도, 이유도 없는 고향이었지만 살다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두 달 전 의문의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는 열다섯 살때 친구들과 함께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폐광의 갱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의 유골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의 어린 동생 애니가 오빠를 몰래 따라왔고, 동굴에서 딱정벌레 떼의 습격을 당한 친구들이 도망치려 하다 쇠지렛대로 애니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조는 애니의 손을 놓쳤고, 겨우 밖으로 나왔을 때 애니는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히도 48시간 뒤 애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 뒤로 애니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났고, 한때는 석탄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폐광촌으로 남은 작은 마을 안힐에서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것이다. 엄마는 피로 아이의 시신 위쪽 벽에 '내 아들이 아니야'라고 휘갈겨놓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 손은 바로 그 불길한 집을 빌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자살한 엄마 줄리아는 평소에 아들을 애지중지했었고, 전혀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해된 아들 벤은 죽기 두어 달 전에 실종되었다가 24시간 뒤 돌아왔는데, 밝고 착한 아이였던 성격이 내성적이고 산만해졌다고 한다. 조 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20년 전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일어났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진실을 뒤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에 계속 살고 있던 그의 동창들은 그가 과거를 헤집는 것을 고스란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 대체 이들은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사라진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게 인생의 문제다.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손톱만 한 단서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여유를 두고 그 순간을 흡수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다음이라야 붙잡을 만한 순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나는 행복하고 순수하고 태평하게 깡충깡충 뛰어가는 애니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때가 마지막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p.219

C. J. 튜더의 <초크맨>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 예리한 문장과 독창적인 플롯이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작품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후속작 징크스 따윈 없이 더 멋진 한방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가 돌아왔다> 역시 전작과 유사한 부분들이 여럿 눈에 띈다. 주인공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는 점,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현재 다시 벌어진다는 것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섬뜩한 메시지와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극적인 구성 등등.. 이 그러하다. 하지만 전작이 현실적인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이번 작품은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어 한층 더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굉장히 오싹하고 으스스하게 그려져 있어 시종일관 공포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튜더가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강렬한 공포와 초자연적인 호러 요소까지 더해 무시무시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첫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이미 후속작 원고를 완성해놓았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후속작을 완성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작품의 분위기만 닮은 게 아니라 작업 속도까지 스티븐 킹을 빼다 박은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은 '일인칭 시점이 아니라 여러 명의 삼인칭 시점이고 섬뜩한 미스터리라기보다 스릴러에 더 가깝다'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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