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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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목이 멘다. 나는 무감각해지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도 잠깐 평정심에 금이 간다.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벤처럼. 내 여동생처럼.  p.26~27

영어 선생님 조 손은 20년 만에 고향인 안힐으로 돌아온다. 결코 다시 돌아올 생각도, 이유도 없는 고향이었지만 살다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는 두 달 전 의문의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는 열다섯 살때 친구들과 함께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폐광의 갱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의 유골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의 어린 동생 애니가 오빠를 몰래 따라왔고, 동굴에서 딱정벌레 떼의 습격을 당한 친구들이 도망치려 하다 쇠지렛대로 애니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다. 조는 애니의 손을 놓쳤고, 겨우 밖으로 나왔을 때 애니는 사라진 상태였다. 다행히도 48시간 뒤 애니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 뒤로 애니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다.

20년이 지났고, 한때는 석탄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폐광촌으로 남은 작은 마을 안힐에서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가 아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자살한 것이다. 엄마는 피로 아이의 시신 위쪽 벽에 '내 아들이 아니야'라고 휘갈겨놓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조 손은 바로 그 불길한 집을 빌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자살한 엄마 줄리아는 평소에 아들을 애지중지했었고, 전혀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살해된 아들 벤은 죽기 두어 달 전에 실종되었다가 24시간 뒤 돌아왔는데, 밝고 착한 아이였던 성격이 내성적이고 산만해졌다고 한다. 조 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20년 전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일어났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진실을 뒤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에 계속 살고 있던 그의 동창들은 그가 과거를 헤집는 것을 고스란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 대체 이들은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사라진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그게 인생의 문제다.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손톱만 한 단서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여유를 두고 그 순간을 흡수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다음이라야 붙잡을 만한 순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나는 행복하고 순수하고 태평하게 깡충깡충 뛰어가는 애니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이 그때가 마지막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p.219

C. J. 튜더의 <초크맨>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한 구성, 예리한 문장과 독창적인 플롯이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작품 역시 굉장히 치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후속작 징크스 따윈 없이 더 멋진 한방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가 돌아왔다> 역시 전작과 유사한 부분들이 여럿 눈에 띈다. 주인공이 학교 선생님이라는 점,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는 점,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 현재 다시 벌어진다는 것과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섬뜩한 메시지와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극적인 구성 등등.. 이 그러하다. 하지만 전작이 현실적인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이번 작품은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어 한층 더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특히나 굉장히 오싹하고 으스스하게 그려져 있어 시종일관 공포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튜더가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서늘하게 만들어 주는 강렬한 공포와 초자연적인 호러 요소까지 더해 무시무시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첫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이미 후속작 원고를 완성해놓았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다시 후속작을 완성해놓은 상태라고 한다. 작품의 분위기만 닮은 게 아니라 작업 속도까지 스티븐 킹을 빼다 박은 것 같다. 세 번째 작품은 '일인칭 시점이 아니라 여러 명의 삼인칭 시점이고 섬뜩한 미스터리라기보다 스릴러에 더 가깝다'고 하니 어서 빨리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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