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는 내가 샌 파블로 대로
같아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테리는 버클리 폐기장 같았다. 폐기장 가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뉴멕시코가 그리울 때 그곳에 갔었다. 삭막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갈매기들은 사막의 쏙독새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그곳에선 머리
위로, 사방으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다. 쓰레기
트럭들은 천둥 소리와 함께 먼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지나다닌다.
회색 공룡들.
난 네가 죽는 걸 감당할 수 없어
테리. 하지만 너도 그건
알지.
-'청소부 매뉴얼' 중에서-
초라한 가게와
고물상, 군용 야전침대를 파는
중고품 가게가 있는 거리에 있는 에인절 빨래방,
나는 한 일 년쯤 그곳에서 항상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키가 큰 백발의 인디언 노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 내내 할아버지의 치과에서 일해야 했는데,
잔인하고 편협하고 거만했던 할아버지를 가족들 모두 몹시 싫어했던 이야기도 들려
준다. 이곳 저곳에서 청소부
일을 하면서 집주인들의 성격과 청소부들이 그곳에서 뭘 훔치는 지를 알려 주면서, 청소부로 일을 할 때 필요한 조언을 말해주기도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짧기도 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해서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상한 지점에 쉼표가 있다거나, 마침표가 있는 식으로 낯선 문장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비문인가 싶어서 여러 번 읽어 보면 분명 그건 아니었는데, 뭔가 기존의 작품들에서 만나오던 문장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문장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알고 보니 루시아 벌린의
'구두법은 정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불규칙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말에서는 들리지 않는
쉼표, 불필요한 데서 문장의
흐름을 끊는 그런 문장부호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국내 번역본에서도 그러한 구두법을 바로잡는 일을 피했다고. 덕분에 나는 같은 문장들을 여러 번 읽으면서
곱씹고, 읽다가 자주 멈추느라
짧은 이야기인데도 긴 호흡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행간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나고, 그녀의 삶을 엿보게 되고, 그녀의 문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 느낌이다.
나는 보통 늙어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 어떤 것들을 보면
아픔을 느끼는데,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머리를 휘날리며 긴 다리로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는지. 또 어떤 것들은 나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다. 샌프란시스코 고속철도 문이
그렇다. 열차가 정지하고도
한참 기다려야 문이 열린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너무 길다.
시간이 없는데. -'카르페디엠'
중에서-
사후 11년 만에 떠오른 문학 천재, 루시아 벌린의 단편선집이 국내 첫
발간되었다. 지난 2015년, 미국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인기가도를 달리는 작가들을 제치고
낯선 작가의 소설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 책이 바로 무명작가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 이었다. 200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에 루시아 벌린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명작가였던 소설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로 사후
20년 만에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평생 76편의 단편소설을 썼는데, 상당수가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전체 43편의 이야기 중 16편이 수록된 가제본 도서와
후반부 10편이 수록된 원고를
통해 먼저 만나보았다. 사실
단편집 전체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란 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32살에 이미 세 번 이혼했고,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었고, 싱글맘으로 네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의 일을 하면서 글을 써야 했던 그 지독한 인생의 풍경들이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이야기들은 '비극적인 동시에 유머와 멜랑콜리를
자아내고, 감정은 극한이지만
언어는 꾸밈이 없으며, 문장은
단편적이면서도 글은 산뜻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우아하다. 그리고 최소한의 단어로 복잡한 감정과 사소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있으니, 단편으로서는 최고의 효율적인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그 동안 루시아 벌린이라는
작가를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단편소설의 진수를 느껴보고 싶다면,
루시아 벌린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