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연주. 체코의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1막 중 유명한 아리아 〈달에 부치는 노래〉이다. 오페라는 슬라브 전설에 등장하는 물의 요정 루살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극의 내용은 그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와 유사하다. 




 오페라 《루살카》 줄거리


1막

물의 요정 루살카는 어느 날 호숫가에 찾아오곤 하는 왕자에 한 눈에 반한다.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드는 그를 느끼는 '물'이기에 왕자는 루살카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사랑에 앓던 루살카는 아버지 보드니크에게 인간이 되고 싶음을 털어놓는다. 딸을 말리지 못한 보드니크는 마녀 예시바바에게 가보라 조언한다. 마녀를 만나러 가는 길, 루살카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달을 향해 노래한다. 예시바바가 말하길, 인간이 되려면 너의 목소리를 가져가겠노라. 왕자가 너를 배신하고 네가 이 곳에 돌아온다면 둘 다 저주받으리라... 그렇게 루살카는 약을 받아 마시고 인간이 된다. 사냥을 하러 온 왕자는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루살카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다.


2막

왕자와 도착한 성. 일주일간 루살카와 왕자의 결혼식을 준비중이다. 루살카의 정체가 수상하다, 요괴가 아닐까 하는 소문이 돈다. 왕자는 답답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루살카, 그녀의 차가운 몸이 자신의 열정을 거절하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루살카는 물의 요정이었기에 몸이 차갑고, 열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 뿐... 변덕스러운 왕자는 외국의 공주의 유혹에 응하여 춤을 추고 루살카의 마음을 찢어놓는다. 성의 연못에서 보드니크가 루살카를 부르고, 루살카는 비통을 고백한다. 그때 나타난 왕자는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에게 안기는 루살카를 거부한다. 보드니크는 왕자를 저주하고 루살카를 데려간다. 공주는 루살카를 따라가라며 왕자를 조롱한다.


3막

예시바바가 경고한 대로 왕자의 배신으로 저주받아 죽음의 영이 되어버린 루살카. 인간이 되려 자매들을 배신하였기에 홀로 호수에서 고통 받고 있다. 마녀는 루살카에게 왕자를 죽이고 오면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루살카는 거절한다. 산지기와 요리사가 나타나 왕자가 저주받았다며 예시바바의 도움을 얻고자 하지만 쫓겨나고... 왕자는 루살카를 찾아 호숫가를 헤맨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며 키스를 바라지만, 이제 루살카의 키스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 결국 왕자는 루살카와 키스하고 그녀의 품에서 죽는다. 왕자를 안은 루살카도 호수 아래로 사라진다. 




 >> 비톨드 프루슈코프스키(Witold Pruszkowski)의 《루살키Rusałki》(1877)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와 전설 속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a water nymph)이다. 님프는 요정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요정 종류가 많아서... 픽시나 님프, 고블린, 놈gnome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요정이므로, 정령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님프는 자연(숲, 호수, 바다)에 깃든 정령들로 보통 외양이 아름답고 자연의 순수를 가진 아가씨들로 그려진다. 험버트 험버트가 말하는 님펫이 님프... 루살카는 불가리아, 벨라루시,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인어로 통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야기마다 다른데, 어디서는 나무 위에 올라가 노래하는 모습으로 어디서는 물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빗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루살카 주간이라고 8월 초에는 수영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했는데 루살카들이 물귀신으로 화하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슬라브 전설에서 가져와 오페라로 만든 이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이야기보다 더 아름답고 비통하지 않은가. 왕자를 죽일 수 없다며 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저주를 또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좋다. 인어공주는 이후 구원받아 승천하지만 사랑을 얻지는 못했으니... 해피엔딩을 원했다면 애초에 왕자가 바람을 안 폈으면 되는 일이다! 루살카가 정령이라 인간세계에 무지하고 또 물의 속성 때문에 차갑게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왕자야 몰랐어도 알몸으로 루살카(호수)에 안겼던 탓도 있지 않느냐!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야하다) 그리고 루살카를 데려오면서 소문이 안 돌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닐 것이고. 순수했던 루살카는 악령이 되어서도 사랑을 지키려 하고, 그래도 두 사람이 마지막엔 함께 하니 만족...



  참고> 고!클래식 자료실의 대본, 위키피디아 루살카오페라(루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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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화 《브라이트 스타》. 제인 캠피온이 벤 위쇼를 너무 사랑하신다. 애비 코니시가 아니라 벤 위쇼가 영화의 히로인이야…. (굉장히 치명적이긴 하지만) 진짜 존 키츠는 금발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위쇼의 키츠는 너무 완벽하다…. 저렇게 섬세하고 예민하면서도 따뜻하고 병약하고 완전 위쇼를 위한 영화 아니냐. 심지어 자기 짝도 영화에서 만났다. 음악 감독이랑 결혼함. 트레일러 맨 처음에 패니 브론 정말 너무 짓궂다. 존이 말하길, 어젯밤 꿈을 꿨는데 나무 위를 떠다니고 있었고 아름다운 누군가와 입술이 이어져 있었다…. (더 잘 옮길 자신이 없다) 그랬더니 패니가 누구 입술이냐고, 자기였냐고. 입꼬리 진정해…, 대사를 옮겨본다.


John Keats:

I had such a dream last night. I was floating above the trees with my lips connected to those of a beautiful figure, for what seemed like an age. Flowery treetops sprung up beneath us and we rested on them with the lightness of a cloud.


Fanny Brawne:

Who was the figure?


John Keats:

I must have had my eyes closed because I can't remember.


Fanny Brawne:

And yet you remember the treetops.


John Keats:

Not so well as I remember the lips.


Fanny Brawne:

Whose lips? Were they my lips?


출처> http://www.quotes.net/mquote/981934 




영화 자체가 뛰어나진 않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다. 키츠와 패니 브론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맹세를. 빛나는 별이여, 내가 그대처럼 한결같았으면―. 시인이 연인과 주고 받은 서신을 번역하고 키츠의 시를 소개하던 책이 있었다. 솔출판사에서 출간한 『빛나는 별』이다. 예전에 빌려읽고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구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시집은 지만지 출판사에서 나온 『키츠 시선』과 『엔디미온: 시적 로맨스』이 있다. 알라딘에서 처음으로 당선작으로 뽑혔을 때 받은 지원금으로 『키츠 시선』을 샀다. 나름 의미가 있는 책으로, 아티초크에서도 키츠 시선을 번역중이며 출간할 예정에 있는 것으로 안다. 쭉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과 『엔디미온』 시리즈 역시 키츠의 시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작품에서 중요인물로(나한테만?) 키츠가 등장하는데 무지 재미있다.   







영화 제목이며, 연인에 바친 아름다운 작품….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yet still ste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밝은 별이여, 내가 그대처럼 한결같았으면.

     밤하늘 높이 걸려 외로이 빛나며

자연의 참을성 있는, 잠자지 않는 은둔자처럼

     항상 눈꺼풀 열고

지상의 인간이 사는 해안을 깨끗이 씻어 주는

     사제의 임무를 다하는 출렁이는 바닷물을 지켜보거나

산과 황야 위에 새로 부드러이 씌워진

     눈의 가면을 응시해서가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언제나 한결같고, 언제나 변함없이

     내 아름다운 연인의 무르익은 젖가슴을 베개 삼아

그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영원히 느끼면서

     영원히 달콤한 흔들림 속에 잠 깨어

언제나, 온화하게 들이쉬는 그녀의 숨결을 항상 들으며 그렇게

영원토록 살았으면 해서.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혼절해 죽었으면.



『키츠 시선』(지만지), 윤명옥 역 




음악감독 마크 브래드쇼의 사운드트랙이 하나 빠질 것 없이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다고 느낀 〈휴먼 오케스트라〉를 링크한다. 위의 영상은 영화 속 클립, 아래는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추출한 트랙이다. 영화 속에서 오케스트라 앞줄 가장 우측에 자리한 이는 사무엘 바넷으로, 연극과 영화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포스너 역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다. 최근 몇 년 셰익스피어 연극에 출연 중이며, 작년이었던가….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극단이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면서 《십이야》, 《리차드 3세》에서 여성 역할을 연기하였고 바이올라 역으로 토니 어워드 수상 후보에 올랐었다. 이 배우의 보물같은 목소리는 지난 조이스 시집 리뷰에서 생각난 노래에 링크하기도 했었다. 벤 위쇼 옆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사람이 마크 브래드쇼다.





페이퍼의 제목은 『엔디미온』의 도입부이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 그 사랑스러움은 오로지 증가할 뿐, 결코 무(無)가 되지 않는다네.” (윤명옥 역, 『엔디미온: 시적 로맨스』)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 ever:

Its loveliness increases; it will never

Pass into nothingness (…)


  출처>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and-poets/poems/detail/44469   -원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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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10-1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 위쇼 검색했는데요. ㅎㅎㅎ
배우가 독특한 분위기라서 연기까지 잘한다면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될 듯 하네요. 멋있어요.
연인에게 바친다는 키츠의 시 읽어봤더니,
저에게 바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급 로맨스 지수 상승입니다. ㅎㅎ

에이바 2016-10-17 11:33   좋아요 0 | URL
완전 천재예요. 연극학교 RADA 수석이었고 졸업할 때 였던가 현대극 햄릿에서 쇼킹한 연기를 보여줘서 다들 난리였었대요. 알려지기 시작한 건 영화 향수의 그루누이 역을 맡으면서부터인데 더 알려진 건 최근 007에서 Q... 마이 브라더 톰이라고 옛날 영화 그것도 좋아요. 재밌는게 자기 진짜 성을 모른대요. 할아버지가 프랑스 스파이여서 영국으로 귀화했댔나 그랬는데요ㅎㅎ 그래서 영국인인데도 유전자가 열일 해서 머리 숱이 많죠. 이란성 쌍둥이고요. 최고의 배우죠... 넘 좋아요... 암튼 워킹클래스 출신은 아닌데 리처드 2세였나 그 역할 맡았을 때도 말이 좀 나왔나 보더라고요. 할로우 크라운이라고 셰익스피어 특집으로 찍은 드라마인데 그걸로 바프타상도 받고 암튼 연기 보면 소름 돋아요...!! (수정했어요 리처드 2세였네요 샘 멘데스가 연출했고요 ㅎㅎ)

단발머리 2016-10-17 11: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리 에이바님 흥분하셨네요~~~
외모도 훈훈한데 머리도 좋군요, 이 멋진 배우가^^
저는 언급하신 영화를 다 안 본거라서 모르겠지만, 올려주신 사진이랑 에이바님 전도에 저도 팬이 될 판이예요.
이란성 쌍둥이라는 이야기, 저도 읽었어요.
결혼했다는 얘기도요... ㅎㅎㅎ

에이바 2016-10-17 11:36   좋아요 0 | URL
완전 좋아요. 진짜 ㅠㅠ 알면 알수록 사람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기계치인데 Q 역할 맡아서 해내는 것도 그렇고 배우자 만나게 된 계기도 그렇고 막 일상이 허술하고 그런 것들까지 넘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예술이 인간으로 태어나면 벤 위쇼가 아닐까...ㅠㅠ 시 읽어주는 영상들 몇 개 있는데 기분 우울하면 그거 들어요....ㅋㅋㅋ

다락방 2016-10-1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건 뭡니까!
예고편 봤는데 완전 좋을것 같아요. 제가 보겠습니다!! (굿 다운로더 검색하고 올게요)

(검색후 울며) 없네요, 굿 다운로더... ㅠㅠ

에이바 2016-10-17 12:49   좋아요 0 | URL
제인 캠피온 시각이 참 좋아요. 여성의 입장을 생각하게 해서... 연출이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좋은데 사실 내용은 알려진 그대로예요ㅠㅠ 키츠가 가난한데다 아프기까지 해서 패니 브론과의 사랑이 이뤄지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는 것... 도서관에라도 DVD 있으면 담에 빌려보셔요! vod 서비스가 있으면 간편하고 좋은데요...

서니데이 2016-10-1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트닝 스타의 파란 꽃밭 사진이 예뻐서 영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에이바님 감기조심 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에이바 2016-10-17 18:51   좋아요 1 | URL
너무 이쁘죠. 저런 분위기의 영화랍니다. 차분한 영국...

양철나무꾼 2016-10-1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시몬스를 좋아해서 히페리온 시리즈를 보다 말다 했다죠.
님을 통해 `키츠`를 알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감솨~^^

에이바 2016-10-17 18:51   좋아요 0 | URL
키츠 좋아요... 댄 시먼스 소설 칼리의 노래 전자책 행사 하던데 보셨어요? 저도 나중에 읽으려고 사뒀습니다.ㅎㅎ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밥 딜런이라고, 오바마의 노벨평화상과 같은 느낌이라는 반응도 있고 또 받을 만 하다는 반응도 있고 그러하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에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Literature의 의미를 되새기면서도 못내 아쉽다. 이 시대에도 여전한 제국주의 문제를 고발하는 응구기 와 티옹오가 받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읽던 책들을 완독 후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 상권을 읽기는 하였지만 아직 하권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원래 이 책, 저 책 찔끔찔끔 읽지 않는데 요즘은 시간 날 때 마다 읽으니 전자책도 건드리고 종이책도 건드리고... 이제 곧 11월이고 연말인데 그 동안 어떤 책들을 읽었나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읽고 싶은 책들이 하나씩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중에서 다시 언급해볼만한 책으로 『분노의 날들』이 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찾아보니 1989년에 발표되었으며, 페미나 상 수상작이었다.




실비 제르맹, 작가도 멋있고 소설 제목도 넘넘 멋있고 표지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게다가 줄거리는 또 어떠한가. 마을의 부호가 배우자를 살해하는 과정을 목격한 벌목꾼이 그 시신을 보고 사랑을 느끼고, 부호의 모든 것을 빼앗은 뒤 그 여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완전 성인용 아닌가. 내 스타일이다. 제인 오스틴 스타일을 좋아하던 내 취향이 사뭇 변하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많은걸까, 아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가. 『독거미』도 그렇다. 예전같으면 절대로 보지 않았을 타입이다. 근데 좋더라고...


빨리 리뷰를 하나 쓰자는 생각에 저번에 보다 말았던 『소네치카』를 다시 펼쳤다.(응구기 와 시옹오도 울리츠카야처럼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기억으로는 두번째 단편을 읽다가 덮었던 것 같은데, 표제작이라도 읽고 리뷰를 쓰자 싶었기 때문. 사실 문학과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감정에 대해 쓸 요량이라 읽기로 한 것인데 이게 또 볼수록 묘하다. 울리츠카야의 소설은 페미니즘 문학으로도 볼 수 있다, 러시아식 리얼리즘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런 해설을 보니 좀 더 깊이 읽어야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네치카는 굉장히 희생적이며 헌신적인 여성상으로, 러시아판 『여자의 일생』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독서중에 계속 떠오르기도 한다.




어릴 적에 읽었던 모파상의 작품은 끔찍하게도 싫었다. 잔느의 삶이 굉장히 체념적이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때야 성애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이런 것이다. 낭만적인 첫날밤을 고대하던 소녀(수녀원에서 자라 이 소녀도 잘 모름)... 술냄새 나는 입김이 얼굴에 쏟아지고 털이 숭숭 난 차가운 다리가 제 허벅지를 벌리고 너무 아픈 무엇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그 고통. 행위가 끝난 뒤 등을 돌려 누워 코골며 자는 남자까지 아주 그냥 총체적 난국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국딩 시절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 작품을 펼치지 않은 것은 그 때 느낀 혐오 때문이었다. 지금 읽으면 어떨런지.


찾아보니 원제는 『어떤 인생Une vie』인데... 어감이 너무 다르지 않나? 이 기구한 인생이 어딜 봐서 여자의 것이더냐. 물론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영 아닌 제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잔느가 너무 불쌍하다. 로잘리는 어떻고. 악덕 속에서 순수를 지키며 사는 것은 이리도 어려운가 보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테스』의 경우는, 숲 속의 이슬이 내리는 가운데 잠이 든 테스의 입가에 알렉의 숨결이 내리앉았다던가... 그런 문학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다. 다음 파트에서 테스의 배가 불러 있어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이해가 안 되는 작품들이 많았고 그냥 감정선만 따라가며 책장을 넘겼었다.


다시 소네치카로 돌아와, 이 소네치카라는 인물도 남편을 공유하는 아샤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놀랍다. 잔느의 체념적 상황과 달리 소네치카는 굉장히 기쁘게, 빌린 물건을 돌려주듯 남편을 내어준다. 이게 뭐랄까 일종의 일부다처를 연상시키는데, 흔히들 일부다처라 하면 남성이 여성을 거느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여성들이 남성을 공유하는 것에 가깝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조선시대 축첩 같은게 아니라, 그 왜 아랍 쪽에도 보면 1부인, 2부인 똑같이 대우해야한다고 차별하면 안 된다고 율법에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골치 아파서 여러 부인 들이지 않는다고....


아무튼 소냐와 아샤, 타냐, 로베르트 이 네 사람의 관계는 각자 기묘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작품 자체가 철저히 여성 위주로 서술되는 분위기다. 각 등장인물의 출연 분량이 1/4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냐는 아샤를 비난하지 않으며 남편도 딸도 내어주고, 동시에 아샤를 딸로 받아들여 아낀다. 오히려 의붓딸 포지션의 아샤를 취하는 로베르트에게 금기를 어긴 어떤 화살이 돌려지는 느낌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벌을 받지도 않으며 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해설을 보니 러시아 문학 속의 여성상들이 스쳐간다는데 이게 마더 러시아, 대지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깊은 애착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마더 러시아, 마더 러시아...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표제작만 읽어서 울리츠카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머지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써도 이 페이퍼와 감상이 달라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완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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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16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섹스는 두(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함께 수행하는 다른 활동과 도덕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말하며 섹스의 레크레이션 의미를 강조한 오브리 드 그레이의 말이 생각나네요. 우리의 윤리 의식은 옳음이나 절대성이 아니라 자기 확신=믿음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모두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고 자기 삶을 위한 것이니 선택의 문제였다 말해야 할까요. 그래서 지금의 사회는 이토록 이해관계로 완강해지는 것이겠고. 하나 하나 무너뜨리면 우리는 혼동에 빠지고 곤란을 겪기 때문에 경계를 짓게 마련인 셈이죠... 결국 혐오는 공격보다 방어의 의미가 더 강하죠. 제 자신에게 이런 걸 느낄 때마다 아,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그럴 수록 더 접근하고 싸워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분노의 날들> 보고야 말 거 같은데요. 에이바님은 유혹의 달인!

에이바 2016-10-16 16:58   좋아요 2 | URL
아 너무 멋있는 댓글... 덕분에 글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흐 신난다! 혐오는 공격보다 방어에 가깝다, 윤리 역시 자기 확신과 선택의 문제이다.... 넘 멋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페이퍼 쓰면서 느낀 건데 지금 모파상의 글을 읽으면 여전히 울화에 휩싸이겠지만 한편으론 피식 웃을 것 같아요. 여러가지 이유로요. 어릴 적에 봤을 때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존중 없는 섹스도(그게 구체적으로 어떤건지 몰랐음에도 잘못됐다는 건 알았죠) 혐오스러웠지만 이것이 여자의 일생이다 라는 어떤 교본처럼 느껴져 더 싫었어요. 이걸 추천한 것도 싫었구요. 인내하고 감내하고 포용하고 버림받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이런 거요. 하지만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자연주의 소설이니까요... 아 분노의 날들 진짜 빠르면 이번 달 아니면 다음 달에 읽을 거예요...! 빠져든다 빠져든다....

[그장소] 2016-10-16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 어쩜 좋아 , 넘 근사한 대화를 듣고 있는 이 시간에도 , 감동은 하면서 쓰는 건 별개 , 요즘은 읽는 것도 쓰는것도 꽤 , 쉽지않네요.. ㅎㅎㅎ 두 분의 멋진 대화를 기억할게요!^^

에이바 2016-10-16 19:19   좋아요 2 | URL
아갈마님께 묻어가니 기분 좋아요! 프리 라이더! 저도 지금 애쓰는 중인데 정말 쉽지 않네요. 생산성만큼이나 성실함이 요구되는 것이 블로깅인 듯 해요. ㅠㅠ

[그장소] 2016-10-17 00:51   좋아요 0 | URL
음 , 절대 동감입니다. 성실 , 중요한 과제예요 .
정말 쉽지 않기도 하고요~^^

2016-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7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7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7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7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10-17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리짓 존스 3편 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일처다부제를 연상시키는 내용이었어요. 아내가 결혼했다. 도 생각났고, 보다보니 두 남자에게 사랑받는 일도 퍽 피곤한 일이겠구나 싶더라구요 ㅋㅋㅋㅋ 왜냐하면 한 대상을 두고 반대편의 성이 두 명 이상일 때, 공평함과 한쪽으로 쏠림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일이 쉽지 않아보였거든요. BTW 이미 보셨을 거 같긴 한데 계속 웃다 나오긴 했지만비추에요. 그닥 웃기지도 않았고, 특유의 몸개그도 많이 줄었고,.. 그건 아무래도 다 좋은데, 일의 성공과 실패,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이런 이슈에 있어서 결론이 굉장히 마음에 안들었거든요. 물론 그게 주제는 아니지만... 씁쓸해요. 현실이 그러니까 더 씁쓸하긴 한데 현실에선 백만장자 잭도 없고, 다아시도 없으니까.. 암튼 1편과 2편의 기억 속에서 훨씬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 영화나 리뷰써야겠네요)

에이바 2016-10-17 19:01   좋아요 1 | URL
확실히 에너지가 넘쳐야 양 손의 꽃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ㅋㅋ 조금 실망이긴 하죠. 왜 이제서야 싶기도 하고 어차피 판타지 영화잖아요? 근데 막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캐릭터로 끝나는 건 싫죠 당연히... 사실 브리짓 캐릭터 자체가 좀 그래서... 모 문인이 자기가 콜린 퍼스보다 못한게 어딨냐고 했던가 뭐 그런 발언을 했다고 하던데요. 콜린 퍼스는 올타임레전드... 콜린은 콜린이죠. 왜 부끄러움이 제 몫이죠 ㅠㅠ 솔직히 콜린 퍼스 때문에 브리짓 보는 거 아닌가요? 네? 미스터 다아시 때문에요! (쩌렁쩌렁) 전 1편이 제일 좋아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6-10-17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들이 응구기와 티옹오를 얘기했었지만, 전 밥 릴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딜런 토마스도요~^^

에이바 2016-10-17 19:03   좋아요 1 | URL
전 하루키가 우세하대서 하루키가 될 줄 알았어요ㅎㅎ 밥 딜런도 좋고 축하할 일이지요. 그냥 제가 은근히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라 좀 아쉬울 뿐..ㅎㅎ
 

《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BBC에서 제작한 TV영화를 보았다. 아마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찾아보다 알게된 듯 한데, 영화는 2005년에 나왔다지만 아마 2006년이나 2007년에 본 듯 하다. 그 후 2007년 ITV 제인 오스틴 주간에 방영된 《설득》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았는데 여기에도 샐리 호킨스가 나와서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섬세한 연기력에 팬이 되어 거의 첫 주연이나 마찬가지인 영화 《해피 고 럭키》도 봤었다. 지금은 없어진 명동 중앙극장이 스폰지하우스였던가, 리뉴얼했을 때 찾아갔었는데 약간 쌀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TV영화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하녀 역할을 맡은 수Sue, 샐리 호킨스가 아니라 아가씨 모드Maud를 연기한 일레인 캐시디였다. 영화는 2부작으로 수의 시선, 모드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모드가 얼마나 앙큼하던지. 정말 연기를 잘 한다.

박찬욱 감독은 『핑거스미스』를 빌려왔지만 원작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반전, 출생의 비밀을 삭제한 후 그 파트를 아가씨의 후견인 이모부와 백작에게 주었다. 자연히 장물아비 식구들의 캐릭터들이 설 자리도 없어지고 극의 절정(따지자면 3부에 해당하는)에 지하실 씬을 넣으면서 영화가 지루해진다. 인물들의 악행을 단죄하는 느낌보다는 뭔가 설명충스러운(이 단어가 정말 싫지만 이 표현이 주는 혐오와 짜증과 하대하는 천박한 느낌을 가져오고 싶다) 해설과 부연이었다. 특히 이모부의 변태적 행위는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의도적인 장치라는 점에서 더 거부감이 인다. `조국을 배신하고 여성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 취급한 인간의 비밀은 이렇게나 추악했고 주인공들의 닫힌 결말을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어`를 아주 불필요하게 설명한달까?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지 않아서 성애 장면을 비교하긴 힘든데 《아가씨》의 베드씬도 길었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다. 두 주인공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 빠지고 갈구하게 되는 감정적 묘사에 비해 베드씬은 자세하고 길게 진행된다. 은골무 씬이나 일본의 여관에서 문틈으로 키스하는 장면은 앞뒤 전개되는 장면과 연결되어 나쁘지 않았지만. 칸느 리뷰를 보면 남성적 시선이란 말이 나오던데 뭐 박찬욱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도 여성의 신체를 다루는 장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다. 애틋한 감정, 케미스트리가 배제된 듯한 베드씬. 그 욕구를 표출하는 능숙한 체위 변경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데코의 비밀과 숙희의 과거를 짐작해야 하는 관객의 적극성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찜찜함이 남는다. 일종의 포르노그라피를 스포츠를 보듯 관람한 기분이다.

아네트 베닝과 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에브리바디 올라잇》을 보면 영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끼어들어 갈등을 유발한 남자가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당시에 의아해서 찾아봤더니 (신뢰도가 확실치 않으나) 레즈비언 영화에서는 자주 그런다고 한다. 남성의 존재는 갑자기 증발하는 것. 《아가씨》는 퀴어 영화이지만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르다. 남성이 사라져도 괜찮을 장면(3부)에서 오히려 비중이 확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남성의 지배와 폭력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의 연대는 《매드 맥스: 퓨리로드》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려지는 방식은 페미니즘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요소들은 페미니즘을 가리키지만 3부를 보면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건 오히려 친일파의 몰락이 아닐까 싶은…. 남성성을 조롱하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봐야겠지만 어쨌든 히데코와 숙희 이야기가 힘을 잃는달까?

출생의 비밀이라는 반전을 버리고 택한 마지막 지하실 씬은 꼭 들어가야 했을까. 디테일한 것도 좋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부족했을까. 춘화집과 문소리의 엄청난 연기로 기괴함을 증폭시켰던 것이 맥빠지는 기분이었고 덕분에 결말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히데코와 숙희가 배를 타고 마주 선 장면에서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구슬 얘기도 많이 나오던데 딱히 해방의 상징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앞선 베드씬들의 연속처럼만 느껴졌다. 차라리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져버리지 꼭 삽입의 용도로 써야 하는가 싶었다. 우물쭈물하던 히데코, 온갖 도색서적을 섭렵해야 했던 히데코라는 캐릭터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택을 벗어나는 두 사람의 모습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라는 대사는 좋았다.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BBC 버전이 낫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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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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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시리즈 신간이 출간되었길래 예전에 써 두었던 리뷰를 찾았다. 시리즈 첫 권이자, 세계관을 설명하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인공 존 페리는 75세 생일에 우주개척방위군(CDF)에 입대한다. 75세가 되어야 입대할 수 있는 것만 알려진 군대. 복무기간은 2년이며 10년까지 연장될 수 있다. 노인들을 데려다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유는,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계약을 맺고 72시간 이내에 원래의 몸은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존과 패거리를 결성한 노인 신병들은 어떻게 ‘젊음’을 되찾는 것인가에 대한 추측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군대에 DNA를 제공했음을 깨닫는다.

4번째 챕터에 이르러서야 이 노인들이 어떻게 군인이 될 수 있는지가 밝혀진다. 바로 ‘신체 개량’을 통해서다. 늙은 몸은 벗어버리고, 정신을 새로운 몸으로 옮기는 것이다. 50년의 시간을 뛰어 넘은, 25세 때 자신의 모습으로 말이다. 피부색이 초록색이라는 것만 빼면 인간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의식의 전이가 이루어지고 새로운 몸을 얻은, 75세의 늙은 육체에 갇혀 있던 25세의 젊은이들은 광란의 축제(예상할 수 있는 바로 그것)를 벌인다. 자유로웠던 1주일 후, 존의 패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배치되고 2부부터는 신병훈련을 거쳐 개척군으로서 참전한다.

우주개척방위군이 활동해 온 200여년 동안의 통계 수치에 따르면, 참전한 지 10년이 지나면 천 여명의 신병 중 25%만이 살아남는다. 전투 방식과 전투 지역이 그 정도로 극악하므로 이 군대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 빨리 적응하고 대처할 사람들, 즉 노인들 말이다. 신체는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지만 정신은 개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존은 아내 캐시와 닮은 사람을 본다. 캐시는 75세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CDF에 입대할 수 없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유령 여단’이라는 특수 부대의 장교라 한다. 그녀는 과연 누구일까?

‘장기 기증’을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들에서, 기증자의 배우자가 수혜자와 사랑에 빠지는 작품들이 있다. 그런 설정이 아주 드물지는 않으나 이 소설이 다른 점은, 배우자의 일부를 지닌 이가 아니라 DNA가 아예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식 전이를 비롯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은 설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순한 명제가 도출된다. 동일한 신체에 깃든 영혼은 그 몸의 원 소유자 즉 제공자와 같은 영혼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개량된 신체에 깃든 인간의 영혼은 여전히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캐시의 신체를 얻은 제인은, 존을 통해 자신의 원류인 캐시가 어떤 이였는지를 배우고 또 교감한다. 제인은 이미 자아가 뚜렷한 존재이며, 살인 병기로 기능하기 위해 신체를 제한 없이 개조당했고(원 소유자가 죽었으니 새로운 신체는 CDF의 소유이다) 따라서 존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자랑한다. 그러나 자신이 ‘진짜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은 늘 가슴 언저리에 어떤 공허함을 남겼던 것이다. 서로 교감을 나누던 존과 캐시는 참전 후 헤어지게 되지만 재회를 암시하며 소설은 끝난다.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은 『유령여단』, 『마지막 행성』, 외전 『조이 이야기』로 같은 세계관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후 출간된 『휴먼 디비전』과 그에 이어지는 『모든 것의 종말』까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잃지 않으려 한다. 개척지의 원주민들과 벌이는 싸움은 인류를 위한 것이나, 제국주의적 사고의 발로인 동시에 생존 의지이며 다분히 정치적이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와 함께, 전투 묘사가 탁월해 즐거이 읽었다. SF물에 거부감이 있거나 지루하게 여겼던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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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10-14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전자를 똑같이 복사하더라도 그 유전자의 발현은 어느정도 무작위성이 있는 것 같아요. 황우석이 개를 복제한다죠. 미국에서 많이 요청받는다던데, 개의 성격이 많이 다르고, 심지어는 털색깔까지도 다른 경우가 있다고 해요. 미국에서니 물론 유전자 검사를 해서 동일 유전자임을 확인했겠지만요. 고양이 복제는 쉬워서 고양이는 미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잘한다고도 하는데, 성격이 달라서 환불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같았고. 인간도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같잖아요? 심지어 환경까지 같은데도 동일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엉뚱한 얘기만 했네요. 이 소설 리디에서 뭔가 막 할인하고 하기에 사까마까하다가 말았는데, 흥미롭네요.

에이바 2016-10-14 16:04   좋아요 0 | URL
미국에서 입양돼 자란 청년이 친부모를 찾는 다큐를 봤는데요. 쌍둥이더라고요. 체격도 다르고 해서 이란성인줄 알았더니 일란성이라고 하고요. DNA가 같다고 해도 환경 등 다른 요인들에 따라 성격 등이 달라지지만, 저는 이 작품에서 신체를 그릇이라 봤을 때 담길 혼이 같은지가 더 궁금해요. 잘은 모르지만 약간 윤리적 문제도 끼어들 것 같은데요, 이 소설에서는 단순히 유전자만 복제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를 바탕으로 신체를 만든 뒤 정신을 전이시키는 그런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제인이 캐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군인으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브레인워시를 당한 것 같고요. 후속작들을 읽으면 비밀을 알 듯도 한데 저도 아직 요 작품만 봐서요. 꽤 흥미로와요. 저는 스칼지를 그... 왜 빨간 티셔츠를 입으면 (스타트렉에서) 사망하는가, 던가 그 책으로 알았거든요. 계속 후속작이 나오니 세계관이 제대로 자리잡은 것 같아요. SF는 설정에 따라 현실에서 논의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