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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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명, Sid Meier's Civlization〉이라는 게임이 있다. 기본적으로 영토 확장에 기반한 세력 게임으로, 목표는 내가 선택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대결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으며 떠올린 이 게임이, '문명'이란 무엇인지 아주 간단히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을 통해 지배 문화가 퍼져 나갈 공간을 확장하는 것. 쿳시는 이 작품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명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문명의 허구성에 대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훗날 《추락》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등장인물의 계급이 전복되면서 벌어지는 시각의 반전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도 보여준다.


제국의 정복지, 야만인들의 땅이지만 제국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곳을 다스리는 치안 판사. 그는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물며 나름대로 '야만인'에 대한 이해를 키워왔다.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일종의 '성전'을 연상시키는 전쟁을 하러 온 졸 대령은 무고한 이들을 잡아와 고문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낸다. 이 와중에 고문받던 한 사람이 숨을 거두고, 치안 판사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졸 대령이 전쟁을 하러 자리를 비우자, 치안 판사는 죽은 이의 딸로 보이는 여인을 데려와 보살핀다. 약 5개월 후, 이 여인을 고향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여행을 다녀온 그는 야만인들과 내통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히고, 고통을 받게 된다.


치안 판사는 눈이 멀고, 몸이 불편한 이 여인에게 집착한다. 집으로 데려와 흙이 엉겨붙고 상처투성이인 발을 정성껏 씻긴다. 목욕 시중은 발에서 온몸으로 늘어나고 오일을 발라 정성껏 마사지도 해준다. 이 친밀한 관계는 지극히 성애적인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치안 판사는 이 여인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인의 반질반질한 두 눈이 자신을 거리낌 없이 비춰내고 또 그의 고요한 모습이 자신을 튕겨낸다고 느낀다. 나는 이 늙은 남자의 욕망이 솔직하면서도 지극히 교묘하고 또 약탈적이라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펼친 유혹의 덫에 여인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면서도 그 모양새가 자발적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치안 판사의 속내는 문명화, 개화시켜주겠다는 제국주의자들의 어떤 시혜적인 태도와 겹쳐진다. 내가 너희를 친히 밝혀주리라. 서구 문명이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그들 문화의 근간인 그리스도교를 전파시킨 것과도 마찬가지다. 너희 스스로 믿고 이 우수한 문화를 전파하게 하리라. 하지만 정작 지배 문화는 피지배 문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미니어처, 미니언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지배 문화를 강요하는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어르고 달래는 것이 치안 판사의 모습이요, 폭력을 통한 방식이 대령의 모습이다. 평화로울 때와 어지러울 때, 둘 다 제국의 모습이다.


결국 여인은 치안 판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떠나버린다. 여인을 갖기 위해 그가 위험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훗날 치안 판사가 생각하기를 그녀는 자신의 허위를 꿰뚫어보았기에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녀의 문화도 충분히 '문명화된 사고'를 전수했을 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자신이 그런 가능성을 배제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치안 판사 그 자신은 야만인을 꽤 안다고 자신했는데도.


치안 판사는 주둔지에 돌아와 또 다른 야만을 목격한다. 자신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강탈한 문명이란 이름의 야만을. 폭력 앞에서 법은 무력해진다. 이성이란 평화로울 때나 기능하는 것이다. 야만인들은 감옥에서 행복했다. 따뜻한 밥이 나오고, 꽤 안락한 잠자리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대우를 받은 치안 판사는 수치를 느낀다. 과연 이것이 박해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안 판사는 떠나 보낸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나쁜 건 없는 법이다."(56쪽) 하지만 그의 이성과 존엄성은 육체에 내려앉는 폭력 앞에서 서서히 깨어진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에서 표현된 것처럼 그릇이 깨어지면 영혼이 견딜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근성은 그를 고문하는 것을 유희적으로 여기던 만델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심어주는데 성공한다. 고문은 아프고, 나는 살고싶지만... 그대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가? 이렇게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고 어떤 정화의식 같은 것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치안 판사의 선택과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결국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에 도달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의'로 표현되는 수오지심. 그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마땅히 옳은 일을 해야한다는 정의로움. 치안 판사의 선택에는 누구나, 심지어 동물마저도 이 정의로움을 타고난다는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치안 판사가 관심을 가졌던 폐허. 그 유적을 발굴하며 찾아낸 문서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한 차례 폭풍이 불고난 뒤 그 발굴 현장은 다시 모래로 뒤덮였다. 수비대가 떠난 곳도 서서히 몰락해 폐허처럼 변해간다. 어쩌면 그들의 제국도 모래가 쓸어 담아 그 흔적을 지울지도 모른다. 야만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국 이 땅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제국보다 더 오래 전에 그 땅을 지배했던 또 다른 제국,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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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04-2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 쓰셨네요. 저는 이번 이벤트에 나보코보의 소설을 읽으려고 샀는데, 아직까지 다 못읽었어요. 대충 다 읽긴 읽었는데 다시 읽고 있어요. 에이바님 행운을 바랄께요~
 
수용소군도 세트 - 전6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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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한정판.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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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12-1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내일 중으로 배송올 거 같아요. ㅎㅎ

에이바 2017-12-11 12:0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캐모마일님도 선착순 1500번째 안에 드셨군요 ㅎㅎ

단발머리 2017-12-11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용소군도 세트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네요.
저까지도 기분 좋네요~~~
오늘 배송오면 자랑해 주세요~~ 구경하고 싶어요^^

에이바 2017-12-11 12:26   좋아요 0 | URL
중고판매가가 어마어마했어요. 출판사에 문의해도 재간이 좀 어렵지 않겠냐고 했는데 넘 행복하네요. 전쟁과 평화도 완간이고... 단발머리님도 구입하시면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판! 끌리지 않으시나용

단발머리 2017-12-11 12:33   좋아요 0 | URL
아하.... 그랬군요. 살짝 찾아보니 22년만이라고 하네요. 출판사에서 큰 결심했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에이바님!!
근데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말에 그 가치를 잘 모르는 저도....
우앗!!하고 끌리네요. 1500명 선착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에이바 2017-12-11 12:45   좋아요 0 | URL
한 사람이 여러 세트 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품절될까 맘 졸이면서 주문했어요. 기다린 분들 많으실텐데 알라딘 독점 1500세트 너무 적은 것 ㅠㅠ 소식 늦으면 못 살 수도 있잖아요. SNS 안 하시는 분도 계시고... 저는 다행히도 신간페이지에서 발견했어요. 안 그랬으면 품절된 거 보고 울었을지도 몰라요. 이상하게 알림 문자가 안 와서(?) 말이에요. 암튼 배송오면 열심히 읽겠습니다... 내용 때문에 완독은 언제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ㅠㅠ
 
고리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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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나?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작품을 재미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읽기 전에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질까 조금 저어되었다. 1981년에 출간된 소설이기 때문에 고루하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우였다.  「고리키 파크」에 등장하는 냉전 시대는 진짜다. 작가가 미국인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을 살아낸 소련인이 아닌가 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존 르 카레의 범죄소설과 비견될 만 하지만, 읽는 내내 보다 최근에 출간되었으며 대중성을 입증받은 톰 롭 스미스의 「차일드 44」와 비교하였다. 「차일드 44」의 진행은 배경이 과거로 설정되었음에도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 철저히 계산된 구조 위에 얹힌 세련미, 영화를 연상시키는 능동적인 액션, 지극히 현대적인 범죄인 연쇄살인 사건 그리고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조금은 뻔한 복선까지 말이다. 현대 방첩물이 눈 앞에 그려지는 느낌이다. 그에 비해 「고리키 파크」는 우직하다. 이 작품에는 「차일드 44」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의 아우라가 있다. 사색적인 주인공 아르카디 렌코가 맞닥뜨리는 사건은 소련 사회의 부조리와 맞물리며 그로 인해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가 대두하기 때문이다.


아르카디 렌코는 조국 영웅의 아들이라는 훌륭한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요직도 아닌 한직, 잡범들을 소탕하는 수사관에 머물러 있다. 당 활동에도 무심하고, 야망이 없어 보이는 아르카디. 배당받은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매듭짓고 KGB에 넘기려했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아르카디가 통찰력과 용기를 발휘하고 또 영웅적 면모를 띠면서부터 조금씩 흥미로워졌다. 사실 도입 부분이 잘 읽히지 않아 몇 번을 다시 펼쳐야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680쪽 위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의 밀도가 치밀하기 때문이었다. 사건들을 어느 정도 펼쳐놓으면 설렁설렁 진행될 만한데 그렇지 않다. 아르카디 렌코의 수사 방식도 아주 끈질기다. 용의자가 일찍 등장하고 범인의 정체도 빨리 밝혀지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여기서의 재미는 말초적이라기 보다는 약간은 학문적인 재미라 할까? 소설은 범인의 정체보다도 살인 사건과 그것을 넘어선 거대한 음모, 그 크레바스의 틈을 들여다보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수사의 결과보다, 차근히 단계를 밟아가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조각을 하나씩 맞추며 퍼즐을 완성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된다고 해서 통괘함이나 희열이 느껴지진 않는다. 얼어붙은 강과 그 위에 쌓인 눈이 상징하듯, 감춰진 진실이 폭로되는 과정과 결과에는 슬픔과 우울이 짙게 덧칠돼 있다. 철저히 통제된 자유, 그 안에서 권력을 누리고 또 권력에서 배제된 이들 사이를 걷는 외인 아르카디 렌코. 그의 시선은 KGB와 검찰, 당 지도부의 연결고리를 거쳐 냉전시대 주적이었던 미국까지 뻗어간다. 사회에 내재된 규칙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도덕적 해이를 상징하는 인물, 부역자로서의 괴로움을 변명하는 이까지... 이 소설이 재현해낸 현실감은 눈 앞에 그려지는 부류가 아니라 피부에 오소소 돋아나는 부류다. 알 리가 없는데, 그 시절의 비릿함이 코 끝을 맴돌고 씁쓸함을 삼키게 된다. 살아남기 위하여 혹은 욕망을 위하여 가족, 친구, 동료를 배신하는 시대에서 발견한 사랑. 그 감정은 인물들의 신념조차 잠깐 가리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가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소련 시스템 아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훌륭하게 재현한 소설이다. 그 풍모는 고전이라 이름 붙이기에 아깝지 않다.


에드거 앨런 포를 떠올리게 하는, 네버모어라는 이름의 1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는 30년 동안 8부작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시리즈가 끝까지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리뷰를 쓰게 되었다. 미리니름을 피하려다보니 리뷰 내용이 두루뭉실하게 표현된 감은 있지만, 범죄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쯤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후속작에서 아르카디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이 작품이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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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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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출간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HBO에서 제작한 드라마 로마Rome를 봤었다. 인상적인 장면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아티아와 세르빌리아의 싸움으로, 린지 던칸이라는 명배우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여자들을 읽으면서야 깨달았다. 그 세르빌리아가 이 세르빌리아였다니?! 세르빌리아 카이피오니스, 잔혹한 파트리키, 리비아 드루사의 딸, 드루수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무서운 아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내 마음 속 세르빌리아에 비해 린지 던칸이 너무 우아했던 탓이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여덟 살 난 어린 딸 율리아도 음험하다 여기는 세르빌리아는 여전히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였다. 촌놈에 노예 혈통인 카토와 혼인한 것도 그렇지만 빨강머리 뻐꾸기들을 카이피오 집안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세르빌리아의 생각에 조부가 목숨바쳐 지켰던 톨로사의 황금은 (그녀의 친동생으로 여겨지나 실은 이부동생인)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가 아닌 그녀의 아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에게 상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첫 남편을 사별한 뒤 실라누스를 남편으로 맞이하였지만 그녀 인생의 유일한 아들은 브루투스가 유일할 것이다. 세르빌리아는 아들의 청에 따라 율리아 카이사르에 약혼을 제의한다.

일곱살이나 어리고 지참금이 부족할 것이나 고귀한 혈통을 가진 율리아 카이사르. 세르빌리아는 예비 사돈 카이사르와 정을 통한다. 역시 고대로마는 언모럴하다... 뒤에 보면 클로디우스와 관련한 키케로의 명언도 등장한다. 근친상간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놀이입니다 였던가. 아무튼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는 지성이 감성을 압도하는 인물들로 주도권 싸움이 팽팽하달까. 물론 고대로마 파트리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치는 비교불가이지만 세르빌리아는 그 세르빌리아다. 그녀는 이 관계에서의 득과 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임신 후 출산하는 과정에서도 용의주도함을 보인다. 아내를 깊이 사랑하는 실라누스에게도 연민을 비추지 않는...

어찌 되었든 이 스캔들은 카이사르의 재혼을 앞당겨 술라의 손녀인 폼페이아가 그 주인공이 된다. 폼페이아의 무식함과 수동성은 카이사르를 밖으로 나돌게 하는 핑곗거리가 되고 예비사돈의 관계 역시 계속 이어진다. 이제 막 서른 둘이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피우스 가도의 관리인이 되는데, 고대 로마 도로 사정이 언제나 그렇듯이 유지와 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때문에 카이사르의 재정에도 적신호가 켜진다. 혈통과 아름다운 외모, 타고난 카리스마와 배우적인 매력...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장점들을 모아놓은 듯한 그는 페이지가 넘어갈 때 마다 완벽함을 더해간다. 그의 남성마저도 소문이 자자하니... 그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머리숱...

위대한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흔드는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법 제정을 위해 피호민들을 선거에 내보낸다. 극렬히 반대하는 원로원의 보니파도 카이사르의 아테네식 연설 앞에 숨죽인다. 그의 경험이 묻어난 포로 탈출기가 얼마나 흡입력 있는지. 시민관을 쓴 그의 발언을 막을 자 누가 있겠는가. 2년 전부터 준비한 폼페이우스의 꼼꼼한 청소 계획은 세찬 비질로 해적들을 밀어버렸다.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매형 루쿨루스의 몰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또 다른 매형 렉스에게도 잔잔한 재앙을 몰고 왔던 응석받이 징징이이다. 매컬로 여사는 역시 맺고 끊기가 절묘하다. 긴장감이 떨어질 무렵에 미친 캐릭터를 등장시키니...

클로디우스가 베스타 신녀 소송에서부터 복수할 사람 목록을 만드는 모습에서는 얼불노 왕좌의 게임에서의 아야 스타크를 떠올렸다. 그에 비하면 아야는 약과다. 아무튼 그가 아라비아인들에게 당한 복수는 인간적으론 안타까웠지만 인과응보이지 않나 하고... 돌아온 집에선 원로원에 들어간 큰형이 반기고 그 위로의 끝은 자본과 명분을 갖춘 그라쿠스의 손녀 풀비아의 청혼이라니 인생 정말 알 수 없다. 로마에 파란을 몰고 올 가장 무서운 칼이자 방패의 결합에서 그들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4부는 카이사르의 여자들- 어머니 아우릴리아, 딸 율리아, 정부 세르빌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 3부에서 다소 늘어졌던 분위기는 4부의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치정 앞에 긴장을 더한다. 이 시리즈에 대단하다, 재미있다는 표현 외 무엇이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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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12-0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족한 것이 머리숱뿐이라면 저도 마구마구~~~ 이 멋진 남자 카이사르의 매력에 빠져 보고 싶네요.
이 분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에이바님^^

에이바 2016-12-08 10:53   좋아요 0 | URL
소설 속에서 재탄생했고, 그 연속적인 시공간에서 이해하니 매력있어요. 카리스마도 타고 났고 교활하지만 티도 안 나고 여러 모로요. 근데 제 남자 하긴 싫구욬ㅋㅋㅋ 그리고 여러 모로 세르빌리아에 감탄하게 돼요. 결국 톨로사의 황금은 브루투스의 것이 되는데 그 과정이 아주 비정해요. 역시 세르빌리아는 떡잎 때부터 대단한 아이였다니까요...
 
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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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구입한 것은 여름이었고, 읽고 덮고를 반복하다 다시 두 편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인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와 최정화의 「인터뷰」 이다. 김금희의 작품은 동명으로 소설집이 나와 있고, 리뷰를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런 내용일줄은 몰랐다. 한낮의 종로. 맥도날드에 앉아 청년 시절을 회상하고, 그 때처럼 퀸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고 걷는 필용.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내 이야기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건 상관없이 들을 줄 아는, 일종의 권력욕을 채워주는 그런 존재. 현재와 과거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필용에게 양희는 자존심 회복제 같은 것이었을 터다. 그렇다고 양희가 적극적으로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은 아니다. 그냥 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왜 ‘연애’인가. 왜 ‘한낮’일까. 우리 오늘부터 사귀자, 다짐하지는 않았어도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지는 것... 매일 만나 대화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 일상으로, 내 인생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양희의 고백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인지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그 마음이 날아갔을 때는 치졸한 반응을 보인다. 용기없는 것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하여, 과거 좋은 때를 떠올리며 기억 속 자신의 비겁함은 삭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하는 것을 얻었던가. 오히려 한낮에 드러난 비참함에 눈물을 쏟았을 뿐이다.

최정화의 「인터뷰」는 이 작품집을 산 이유이기도 하다.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단편집을 읽고 그가 쓰는 장편이 궁금했다. 악스트 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이 얼마 전, 은행나무에서 『없는 사람』으로 출간되어 읽어보려 한다. 이 작품은 그 소설을 기다리면서 읽어보려고 산 것이고, 단편집에 수록되었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뷰」의 주인공도 공허하다. 허상을 좇는 피상적인 인간 관계 속에 지쳐 있는 주인공.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어 타인에게서 얻는 관심에 만족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탓, 탓, 탓. 벌어진 모든 것은 누구의 탓이다. 이 탓들 속에서 문득 건강하지 못한 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도 그 구성원들도 병들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현실을 비정하게 그리는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일반적인 인물이라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쓸모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는 것은 사회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주인공이 호프집에서 만난 커플에 대하는 태도나 사회나 장인이 주인공에 취하는 태도나 별 다를 바 없다. 그냥 아내가 불쌍하다. 부수적인 존재로 등장하기에... 이 단편을 읽고 나면 장르는 다르지만 홍상수 영화를 본 뒤의 느낌이 있다. 비교하긴 그렇지만 일종의 하이퍼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와 다른 의미로 최정화의 단편은 내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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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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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1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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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7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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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7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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