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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서버 - 윈십 부부의 결별 외 35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9
제임스 서버 지음, 오세원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평점 :
제임스 서버를 알게 된 것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즈음 개봉해 봤던 영화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데이빗 보위의 목소리를 포함한 뛰어난 사운드트랙….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차원이동 판타지를 좋아한다면, 일상에 치이는 직장인에게는 월터의 상상, 이른바 멍 때리기(zone out)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월터의 상상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질 정도로 과하게 표현되긴 하지만 말이다.
수록된 단편들은 상당히 짧고 유머러스해서 줄곧 킥킥거리며 웃었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선들을 여럿 읽었지만 제임스 서버의 작품 길이가 가장 짧다. A4 용지 반페이지라도 채울까 싶은 글도 있다. 나는 단편 읽기를 상당히 곤욕스러워하는 편인데 그 이유가 ‘왜 이렇게 끝나는지’를 한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흡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관련 없어 보이던 요소들이 합쳐지며 후반부에서 기다리는 쾌감과 놀라움을 주는, 작가의 뚝심과 내공을 짐작하게 하는 장편을 더 좋아한다. 그렇지만 제임스 서버 단편들은 좀 쉬이 읽혔다.
한 편, 한 편이 스케치 같은 느낌이었다. 약간 모놀로그 같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이 생생히 움직이는 느낌, 마치 어딘가에 실존하는 인물 같았다. 제임스 서버가 카투니스트이기도 했으니 짧은 글에 촌철살인을 담는데 노련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운 좋은 사나이, 재드 피터스」는 우리네 허풍선이 오촌 당숙처럼, 명절 때 마다 늘어놓는 레퍼토리가 이제는 사실인지 허풍인지 구별도 안되고 그러려니 배경음악처럼 흘러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말이야, 아주 기냥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말이야, 어…?
카툰 같았던 「레밍과의 인터뷰」와 편집증과 소외감을 다루는 「쏙독새」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맥베스 살인 미스터리」는 추리소설 독자가 추적하는 『맥베스』인데 발상이 재밌었고 공감되는 면도 있었다. 여성들이 추리소설을 좋아했었나? 그런 생각도 들고 일종의 패스티시로 봐도 좋을 듯 하다. 가장 재밌는 것은 마지막에 실린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이다. 서버는 자기 주변의 일들을 글로 옮겼다는데, 그의 신랄한 유머가 어디서 나왔을지는 이 가족들을 보면 된다. 하나같이 골 때리고 재밌다.
전기에 기절초풍하는 할머니 얘기나 자동차나 기술 같은 이야기들에서는 새삼 제임스 서버가 옛날 사람이었구나 깨닫는다. 백여 년 동안 이룩한 인류의 발전에 감탄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빼면 작품들은 하나같이 현대적이다. 제임스 서버가 포착해낸 인간과 삶의 속성 때문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란 그다지 변하지 않기 때문일까. 서버가 그린 삽화들과 함께 짧막한 기분해소를 통해 생기를, 상쾌함을 되찾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