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85
볼레스와프 프루스 지음, 정병권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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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국민소설로 일컬어지는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이 출간되었다. 사실 폴란드 문학은 낯설다. 쇼팽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츠키에비츠 등의 이름은 알게 되었지만 영 멀게 느껴진다. 곰브로비치 정도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닌가 한다. 어찌 되었든 을유세계문학으로 만나게 된 『인형』은 너무 재미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소설의 세계로 푹 빠지게 되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소설의 배경은 1877년에서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있던 시기의 폴란드 바르샤바이다. 서유럽에서 불어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운은 폴란드 사회 공고하였던 계급적인 위계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중이다. ‘출생과 재산’이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죽은 아내가 남긴 상점을 가진 보쿨스키는 충분히 부자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서 큰 돈을 벌어온다. 40대 중반, 부자에다 미혼인 그를 노리는 사람은 많지만 보쿨스키의 마음은 웽츠키 집안의 아름다운 이자벨라에게 향해있다. 살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오만한 이자벨라는 보쿨스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이 사업가의 마음을 알아챈 사람들은 충고하곤 한다. 그런 식으로는 아가씨의 마음을 살 수 없어요. 덫을 놓으려면 확실히 강제해야 해요. 이에 보쿨스키는 대답하곤 한다. 지배하지 못한다면 절대적인 자유를 허용하고 싶습니다. 보쿨스키는 이자벨라를 숭배하고, 그녀의 무심함에 가슴을 끓이면서도 감정을 끊지 못한다.

보쿨스키의 어설픈 계략, 아니 구애는 이자벨라에게 닿지 않는다. 첫째, 보쿨스키는 귀족이 아니며 둘째, 그는 대토지를 소유한 것이 아닌 상점을 가진 사업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쿨스키가 이자벨라를 위해 벌이는 구애는 그녀에게 그를 ‘짝’이 아닌 집사나 어떤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소설은 보쿨스키가 뛰어드는 귀족의 세계에 도사린 허영과 무지, 특권의식 등을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 백작이 폴란드 사교계에서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다. 푸른 피는 별 것 아니오, 그냥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것이지. 시대는 변하고 있다네. 폴란드 귀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도 하지 못한다.

보쿨스키를 돕는 변호사는 그를 처량하게 생각하여 이렇게 말한다. 귀족들에게는 의지의 병이 있다네... 추진력이라곤 없는 그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렇다면 보쿨스키라는 인물은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젊을 적부터 보쿨스키는 의지가 대단한 인물로, 모두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당당히 과학을 탐구하였다. 1963년 러시아에 대항한 봉기에 참여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당하였고, 그 곳에서 사업을 벌여 재산을 좀 모은다. 바르샤바로 돌아와서는 오랜 친구 제츠키의 조언으로 상점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를 눈여겨본 여사장의 유혹을 거절하였으나 끝내는 혼인하게 된다. 이는 자신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젊음과 사랑을 돈과 바꾸었다는 죄책감은 의부증에 가까운 아내의 집착과 함께 서서히 그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아내가 죽고,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바로 이자벨라였다. 순전한 아름다움, 순수한 오만. 이자벨라의 주변을 맴돌지만 존재조차도 인식당하지 못하기를 오랜 시간, 보쿨스키는 그녀에게 구애하겠노라 다짐하며 전쟁터에서 큰 돈을 벌어온다. 이자벨라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벌이기도 하고, 그녀의 집을 크게 손해보며 구입하기도 하지만... 이는 계략조차 되지 못하는, 사랑에 발로한 어리석음일 뿐이었고 이자벨라의 변덕에 어울리느라 보쿨스키의 사업도 위태로워진다.

경제관념이 없는 귀족들은 그를 돈줄로만 여겼기에, 보쿨스키가 이자벨라를 위해 벌인 일들은 일종의 계급투쟁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자벨라의 행동들은 허영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그녀가 허영 그 자체로 느껴진다. 그런 세계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영어를 못한다고 그를 무시했기에 보쿨스키는 영어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이자벨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똑똑히 알게 된다. 오랜 친구 제츠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쿨스키를 염려한다. 보쿨스키는 소리친다. 나도 살고 싶어, 나도 살고 싶단 말이야. 나는 왜 사랑을 하면 안 돼? 이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야. 나를 태우면 한 줌의 재만 남겠지...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서! 라는 보쿨스키의 외침은 얼마나 공허한가. 돈 쓰는 자신을 경멸하는 보쿨스키, 비스와 강 언덕 너머의 비참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보쿨스키, 사회는 개인의 힘으로 구제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타인을 도우려는 보쿨스키를 보며 참 가슴이 저려왔다. 돌아보지 않는 상대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 눈길 닿는 곳들을 질투하다가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현타를 맞는 보쿨스키. 나이에 맞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보노라면 이자벨라와의 나이 차이도 잊게 된다. 두 사람은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자벨라가 상대의 면면을 따지는 동안 보쿨스키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도 그녀의 속성을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보쿨스키가 보는 이자벨라는 뭔가 신비로운 존재로, 그 아름다움과 기품은 성상화에서 빠져 나온 듯한 분위기처럼 느껴진다. 좋은 교육을 받은 지성은 또 어떠한가. 언젠가 어떤 동화에서 진정한 공주는 일곱 겹 매트리스 아래 콩 한 알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쇠락한 저택의 기운에도 아랑곳 않는 보쿨스키... 그를 단순히 계급이라는 어떤 트로피를 얻기 위한 야망있는 사내로 볼 수는 없다. 세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는 헌드레즈 홀로 상징되는 계급을 손에 넣으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2차대전 이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계급이라는 선이 느껴진다. 하물며 70년 전의 폴란드는 어떠했겠는가.

사실 보쿨스키는 귀족이다. 어릴 적부터 명철했던 그는 계급에 매달리는 아버지를 어리석다 생각하고 상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가 대토지, 장원을 가진 귀족이 아닌 다음에야 이자벨라가 눈 하나 깜짝 할까. 그를 보며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큰 돈을 벌어 온 인물들을 떠올렸다. 에밀리 브론테의 히스클리프, 제인 오스틴의 웬트워스 대령, 피츠제럴드의 개츠비까지... 이들이 보쿨스키와 다른 점은 여자 주인공의 사랑과 애정을 한때나마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이유로 그들을 배신하였고, 그에 상처를 입어 전쟁이나 불법에 손을 담가 재산을 모아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해 돌아온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적절하게 여주인공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보쿨스키는 이도 저도 아니다. 그는 잘생기지도 젊지도 않다. 계급도 보잘 것 없고 재산은 많지만 시내에 있는 상점을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대학에 다녔지만 중퇴했고, 귀족들이 중요시하는 교양도 갖추지 못했다. 이자벨라를 위해 벌인 일들은 그녀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고, 첫 단추를 잘 못 꿴 탓인지 인상도 좋지 않았다. 그가 연애에 빠삭하거나 아니면 교묘하기라도 해서 이자벨라를 빠져 나올 수 없는 덫에 빠뜨리기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과정은 정말 비참하기까지 해서, 이자벨라와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녀를 깨끗이 잊고 새출발하기를 바랐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랬다.

보쿨스키의 로맨스가 그려지는 동안 과거와 현재 사회는 제츠키의 회고로 메워진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1848년 헝가리 혁명에서 혁명군 측에 입대하여 전장을 다녀온 이야기, 보쿨스키의 과거 및 현재 상점이 어떻게 운영되며 사장의 평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귀족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와 같은 내용들이다. 집안에서 이자벨라의 좋은 짝이 될 것이라 여겨지던 오호츠키는 젊을 적 보쿨스키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인데, 과학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이야기가 제츠키와 보쿨스키로 흘러가는 걸 보면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오호츠키가 아닐까 한다. 위인의 헛된 희망은 그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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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톨의 밀알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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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소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조응하며 어떤 희망을 남기는, 과거와 현재의 갈등을 오롯이 담은 그런 소설.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비추었던 것에 비해 현재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 있는 케냐의 정치와 사회적 상황을 가늠하게 하는, 고전 소설 분위기를 품고 있는 작품... 이 소설을 읽고 난 만족감이 어느 정도이냐 하면, 응구기 와 티옹오의 다른 소설들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이다. 거장의 세계를 엿본 듯한 아니 맛본 듯한 그 만족감이 기묘하게도,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제거해버린다고 할까? 아프리카 문학, 제 3세계 문학으로 분류되겠지만 고전이라 불리는 어떤 작품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작품이다.

1952년 시작된 무장봉기 마우마우 운동으로 1959년까지 비상사태가 선언된 케냐. 식민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인물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1963년을 배경으로 한다. 독립, 나라(부족)의 존망 앞에서 각자는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은 곧 누군가를 배신하는 것이었고 원하든 원치 않았든 오롯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저항 운동의 상징인 키히카는 연인을, 무고는 양심을, 기코뇨는 동지들을, 카란자는 조국을, 뭄비는 배우자를  배반한다. 이러한 배반은 소명 때문에 혹은 사랑 때문에, 흥분에 따른 순간의 충동 때문이었고 그 결과는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생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배반자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 것인가?

키히카는 말한다. ‘노예한테 삶이란 게 있을까.’ 기코뇨는 얘기한다. ‘나 자신의 자유를 살 수 있다면 케냐 전체라도 백인에게 팔아넘겼을 것입니다.’ 독립의 결실을 맛보는 자들은 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식민 통치는 주체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배경을 달리한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들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동화 정책을 생각하는 톰슨은 어떠한가. 옥스포드 출신의 역사학자인 그는 자신을 아프리카의 ‘프로스페로’처럼 여긴다. 뒤떨어진 문명을 도덕적으로 갱생하여, 사회와 문화를 재교육함으로써 그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오만한 생각. 당시 지배층 대부분을 지배하는 생각이었을 터이다.

자치 대장으로서, 식민 당국의 앞잡이었던 카란자는 자신을 백인 힘의 일부로 여겼다. 여인들을 욕보였으며, 형제들의 피로 몽둥이가 흠뻑 젖었다. 카란자는 왜 배반했던가?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지만, 배반의 과정과 결과를 자신이 즐겼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린드 박사는 비상사태 동안, 집에서 일하던 요리사와 남자들에게 윤간당하고 키우던 개도 잔인하게 죽는다. 이러한 장면은 존 쿳시의 『추락』을 떠올리게 한다. 남아공 독립 이후, 시골에 정착한 루시 역시 흑인 남성들에 윤간을 당하고 개도 죽는다. 루시는 이를 이 나라에 머무르는 대가처럼 생각하여 받아들이고, 린드 박사 역시 새로운 개를 키우며 케냐를 떠날 생각이 없다.

식민 통치를 했던 인종과, 식민 통치를 받았던 인종의 시각은 다르다. 『추락』과 『한 톨의 밀알』의 시각 차는 거기에서 기인한다. 서로를 두려워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한 톨의 밀알』에서 본국으로 송환될 톰슨은 아주 가차없는 인물이었으나, 독립을 앞둔 케냐인들의 열망에 두려움을 품는다. 어쩌다 위대한 제국이 이렇게 되었지? 못생긴 백인 노처녀, 린드 박사를 본 순간부터 증오했다는 코이나는 주인을 짓밟았지만 여전히 건재한 그녀를 보며 불안함을 느낀다. 마치 그들의 땅에 늘러붙은 제국을 상징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에 대한 폭력은 집단적으로 서술되지만 백인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개인적이며 상징적이다. 이마저도...

키히카는 스코틀랜드 교회 학교에서 여성의 할례가 야만적이라는 선생에게 주장한다. 그런 말은 성경에 없으며 잘못되지 않았다고. 모계사회였던 케냐가 부계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남성들은 ‘임신’으로 여성들을 땅에 묶어둔다. 숭배하던 여성을 타락했다 점찍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에서 배부른 여성은 새로운 탄생과 희망이라는 상징을 남긴다. 여성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신격화야말로 억압일 터이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독립국가들이 전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다시 돌아봐야할 자취들로, 기코뇨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장면들과 함께 새로운 여지들을 남긴다.

키히카라는 저항 정신을, 조국 케냐를 배반한 이는 누구인가? 지난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벌을 받아야 할 배반자를 찾는 것. 이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은 양심 선언, 어떤 숭고한 희생과 용기로 막을 내린다. 장거리 경주를 응원하던 열망, 사람들로 가득 찬 들판은 텅 비었으며 양심 선언을 한 인물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케냐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던 조모 케냐타. 그는 물러간 식민 통치를 이어받아 케냐인들을 억압한다. 이러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응구기 와 티옹오는 ‘하람베’, 화해와 상생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길지는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꽉 차 있는 작품이다. 직접적인 묘사는 피하면서도 충분히 그 고통과 절망이 묘사되고 있으며 캐릭터들이 제시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면들은 클래식하다. 다소 낯선 이름들에 익숙해지면 이제껏 읽어 온 작품들을,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역자 해설을 참고하면, 이 작품은 조지프 콘래드의 『서양인의 눈으로』를 상호텍스트로 활용한 작품이라 한다. D. H. 로런스의 영향을 받았고, 응구기가 영어로 쓴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름을 제임스 응구기에서 기쿠유 식인 응구기 와 티옹오로 바꾼 후로는 기쿠유 부족언어로만 글을 쓰고 있다고. 이 다음에는 포스트 식민시대를 대표한다는 작품, 『피의 꽃잎들』을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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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11-0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박경리문학상...인가 받았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거의 완벽한 소설˝이라고 하시니, 확 당깁니다.^^ (글은 나중에 제대로 읽을게요. 요새 통 뭔 글이든 안 읽힙니다.)

에이바 2016-11-08 17:32   좋아요 1 | URL
흠결없는 작품이에요. 서양 고전 읽는 기분이었고 왠지 모르게 노벨상은 못 받을 것 같더라고요... 다음에 생각나면 한 번 보셔요.

AgalmA 2016-11-08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쿳시가 그 땅의 문제들을 먼저 캐치해 여러 작품을 써서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존 쿳시의 여성 화자와 시점도 워낙 탁월했죠.
응구기 와 티옹오 소설 읽고 존 쿳시와 비교해 보고픈 충동이 생기네요~

에이바 2016-11-08 18:50   좋아요 1 | URL
쿳시랑은 좀 다르게 느껴지고요... 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1960년대에 쓰인 것도 있고, 작품들은 이 소설을 원형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느낌이래요. 쿳시 번역한 왕은철 교수님 역이고요. 아갈마님께서 응구기와 쿳시 비교해주시면 넘 좋죠 ㅎㅎ 아무튼 읽는다면 피의 꽃잎들 한 작품만 더 읽지 않을까... 한 권의 소설로 족하기는 오랜만이에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요.

AgalmA 2016-11-08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60년이면 존 쿳시보다 더 앞서 목소리를 낸 건데....흠. 존 쿳시가 작법에도 만능이라 라이벌로는 어려운 상대죠. 두 작가 나이대(티옹오가 2살 더 많네요)도 비슷하고, 같이 살아온 시대와 여건 생각하면 여러가지로 비교 지점이 있군요.
왕은철 교수님 번역이라면 더 신뢰가네요.
암튼 티옹오 작가도 한 권으로 읽고 말 작가는 아니군요.

존 쿳시 얘기 먼저 꺼내신 에이바님이 비교분석 먼저 하세요~ㅎ

에이바 2016-11-08 22:02   좋아요 1 | URL
1967년에 출간된 건데... 그쵸 남아공이랑 케냐, 서로의 인종이 달라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대한 권위를 무시할 수 없단 생각도 들고 또 응구기는 케냐의 역사를 겪어낸, 핍박받은 지성인이기 때문에 달리 느껴져요. 쿳시는 이천년대 초반에 몇 작품 읽었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정확히 기억나는 건 추락 정도... 쿳시가 폴 오스터랑 주고 받은 서간집 번역된 거 좋더라고요. 다음에 쿳시도 다시 찬찬히 읽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늘 그렇듯 저는 읽기 계획을 또 세워 보겠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요 ㅎㅎ
 

Sonny Stitt feat. Hank Jones
- 「The Good Life」 Sonny Stitt & Hank Jones Trio (1980)

http://youtu.be/SR3mWWtDV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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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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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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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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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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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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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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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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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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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1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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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출간된 쉼보르스카 유고시집 『충분하다』 이후 『끝과 시작』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 출간일은 10월 11일. 알라딘에는 개정판 표시 및 소개글이 없어 출판사 도서 소개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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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쉼보르스카 시의 정수를 담은 『끝과 시작』 개정판

폴란드 현대시는 “단절되고 오염된 언어의 정화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범하면서도 순수한 시의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폴란드 현대시인에게 두 번이나(체스와프 미워시, 1980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 노벨문학상을 선사함으로써 이에 대한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그중 2007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이 번역을 다듬어 다시 출간되었다. 옮긴이는 2016년,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정규 시집 『여기』(2009)와 유고시집 『충분하다』(2012)를 엮어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끝과 시작』을 다시 검토하였고,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숙성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장을 매만져 개정판을 내놓았다.

쉼보르스카는 1945년 데뷔 이래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존 철학과 접목한 시를 꾸준히 발표하면서 대시인의 반열에 올랐으며, 1996년 여성으로서는 아홉번째, 여성 시인으로서는 세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나 미학 담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우주적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 중심적 논리와 인과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양 철학의 패러다임으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관계론적 · 상생적 사유가 엿보인다. ‘혼돈’과 ‘해체’ 속에서 사유의 조화로운 동참을 권유하는 미의식은 쉼보르스카의 시학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성과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서구의 비평가들은 쉼보르스카의 시를 낯설고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흔히 쉼보르스카의 시를 논할 때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이 인용되곤 한다. 그만큼 쉼보르스카는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동원하여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쉼보르스카의 시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총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시선집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自選) 시집Wiersze wybrane』(2000)과 『순간Chwila』(2002), 『콜론Dwukropek』(2005)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옮긴이가 엄선한 주요 시 170편을 수록하고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에서부터 『끝과 시작』(1993)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시집과 기타 미공개 작품들 가운데서 시인이 직접 선별한 184편의 주옥같은 시들이 수록된 책이다. 평생을 시 창작에만 바쳐온 시인이 자신의 외길 인생을 정리하듯 손수 작품을 고르고 다듬어 집대성한 자선 시집을 토대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출간한 『순간』과 『콜론』의 시들을 함께 엮은 시선집 『끝과 시작』은 1945년 등단작부터 2005년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쉼보르스카 문학의 정수(精髓)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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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오르페우스의 창(신장판) 03 [고화질] 오르페우스의 창(신장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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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는 율리우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비친다. 한편 음악원에서는 카니발에서 니벨룽의 노래를 공연하기로 한다. 율리우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그를 크림힐트로 꾸미고 아름다운 모습에 비르클리히는 옛 연인을 떠올린다. 이때 과거가 밝혀진다. 비르클리히와 율리우스의 모친은 사랑에 빠졌으나, 그때 이미 그녀는 아렌스마이어의 첩으로 살며 임신한 중이라 이름마저 속였던 것이다... 그 이름이 바로 크림힐트.



공연 중 어째서인지 가검이 진검으로 바뀌어 율리우스는 자상을 입는다. 이것은 비르클리히의 소행으로 의심된다. 그는 이전에 율리우스를 죽이려 했었고 이는 아렌스마이어 가에 대한 깊은 증오 때문인 듯 하다. 클라우스는 방에 갇힌 채 가면을 도둑맞고 동지들과의 접선이 위태롭게 된다. 비가 내려 카니발이 중단되고 율리우스는 클라우스의 가면을 쓴 자를 따른다. 이후 만난 동지 때문에 가면을 훔친 자(비르클리히)는 클라우스의 정체를 알게되는 듯 하다. 그리고 나타난 진짜 클라우스와 율리우스는 러시아 황제파 요인들에 쫓긴다. 이때 알라우네가 나타나 구해준다.



자상에 비를 맞은 채 달아나느라 지쳐 쓰러진 율리우스를 돌보다 그가 여성임을 알게 된 클라우스. 이후 깨어난 그녀에게 알라우네는 비밀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 클라우스는 자신에게 맹목적인 율리우스에게 끌리지만 마음을 다잡으려 하고, 이자크에게 여성인 것을 밝힌다. 한편 프리드리케는 이자크의 부모에 거둬져 동기처럼 자랐으나, 그를 연모한다. 이자크를 음악가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래서 모리츠의 구애에 일부 응답하지만, 그는 아직 철 없는 부잣집 도련님에 불과하고 미래가 험난해 보인다.



비르클리히와의 레슨 중 율리우스는 그가 가면을 쓴 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임을 알아차린다. 그때 율리우스의 부친은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아렌스마이어 가에 경찰이 찾아 와 실종된 의사 얀이 스파이로 의심된다고 밝힌다. 부친이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되었음도 암시되며, 아네로테(율리우스의 둘째 누나)는 얀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마리아 바르바라는 율리우스 모자에게 이전보다 따뜻하게 대하지만 연모하는 비르클리히와 레나테가 함께 있는 모습에 분노한다. 그녀에게 레나테는 아름다움을 이용한 불륜 야망녀이기에...


율리우스의 아버지는 그에게 제국은행 금고 열쇠를 남기고 사망한다. 율리우스가 18세가 되는 날 열 수 있다. 그 때까지 아렌스마이어 가의 재산은 레나테와 마리아 바르바라, 변호사가 관리한다. 아네로테는 율리우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조심하는 게좋을 거야. 너에게 정당한 상속권이 없다는 게 밝혀지면 마리아 바르바라 언니에게 유리해질 테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비밀이 밝혀지면 율리우스와 레나테는 사기죄로 감옥가는 거 아닌가?


이자크가 믿을 만 하고, 클라우스가 율리우스를 위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비밀을 너무 빨리 밝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자크는 신의를 지키지만 사람은 어찌 될 지 모르는데! 다비트도 율리우스에게 저돌적이고, 이자크는 프리데리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나... 율리우스 주변 남자들 하나같이 다 실망이다. 역시 여자 캐릭터들이 최고다. 율리우스, 마리아 바르바라, 알라우네, 게르트루드... 아네로테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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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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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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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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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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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9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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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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