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한국 여론이 적극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지하는 계층은 좌파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 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 쇼에 불과하다.” 홍준표가 한 말이다. 홍준표,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보낸다. 그의 말은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었다.

 

어렵게 말하지 말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70%를 오간다. 홍준표의 말대로라면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좌파이고 그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한다. 그 정도면 전 국민이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좌파가 70%라는 것도 놀라운 변화이다. 그 정도이면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

 

홍준표고 유승민이고 간에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9년 동안 당신들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나? 한 것이 있으면 단 한 가지만이라도 이야기 해보라. 당신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해 당신들은 어떤 노력을 했나?

 

당신들이 한 일은 단 하나 당신들의 무능의 책임을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떠넘기려고 애쓴 것밖에 없다. 당신들은 지난 9년 내내 햇볕정책이, 퍼주기가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앵무새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래 좋다. 그러면 당신들에겐 무슨 대안이 있었나?

 

당신들은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퍼주기를 안 해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했나? 북한이 당신들의 정책에 굴복해서 당신들에게 협상을 구걸하기라도 했나? 북한이 당신들이 두려워 핵개발을 중지하는 시늉이내라도 낸 적이 있나?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 있다면 당신들의 정권 하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날로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북한 핵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당신들은 지독하게도 무능했다.

 

당신들은 앞에서는 국민을 향해 흥분한 목소리로 북한 핵개발을 비난했지만 뒤에서는 그것을 즐겼다. 당신들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위협할수록 당신들의 영구집권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았다. 당신들은 핵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국민을 배신했다. 당신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볼모로 위험한 도박을 했다. 그게 당신들이다.

 

통일은 어느 날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라고? 이명박이 한 말이다. 그게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할 말인가? 한 나라의 통일이 도둑질인가? 이명박스러운 발언이다. 통일이 대박이라고? 통일이 도박판인가? 박근혜다운 발언이다. 그 허황된 발언 뒤에 숨어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분단을 즐겼고 국민을 전쟁의 공포에 몰아넣어 놓은 채 희희낙락했다.

 

지금 야당을 대표한다는 홍준표와 유승민, 당신들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의 충실한 조력자들이었다. 그런 당신들이 이제 와서 말끝마다 완전한 비핵화를 들먹이고 정상회담을 폄훼하기 위해 혈안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당신들은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안다면 그 입을 다물어라.

 

핵을 볼모로 국민을 위협해온 당신들의 단꿈이 지금 무참하게 깨지고 있다. 그 현실 앞에서 당신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당신들이 연일 쏟아놓는 저급한 말은 바로 당신들이 남북의 변화 앞에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역사의 거대한 물에 빠져 떠내려가면서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당신들, 정상회담에 가슴 설레며 눈물 흘리는 국민을 향해 당신들이 연일 퍼부은 악담과 저주는 머지않아 당신들에게 저주로 돌아갈 것이다. 기다려라.

 

딴지일보 자유게시판 naemaeumdaero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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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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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1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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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16: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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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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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16: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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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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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새끼들만 오면 스트레스 받는 걸 보면 구타유발자이면서 암유발자인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8-04-30 10:49   좋아요 0 | URL
이번 지선도 물론 다름 총선때까지 이대로 쭉 나가면 ....나가리 되는거 볼만 할 거같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4-30 1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들에게 관심 보이지 말고 우리가 갈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yureka01 2018-04-30 11:21   좋아요 2 | URL
그럼요..분위기 파악 안되는 말..자꾸 들어봐야 스트레스거든요.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4-30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플이 답입니다. 관심가져주면
더 짖거든요^^

yureka01 2018-04-30 13:15   좋아요 2 | URL
그렇겠죠?
아무래두 무관심이 답일듯 ^^

2018-04-30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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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2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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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30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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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1 23: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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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8-05-01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거 때마다
아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써먹었던 ‘안보‘카드가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넘의 안보를 핑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게요.

지방선거에서 쟈들을 싹 제거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yureka01 2018-05-01 23:04   좋아요 1 | URL
전쟁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결집용 맨트..
이젠 먹히지 않을 거예요..일부를 제외하고서!~^^..

2018-05-02 08: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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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2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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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1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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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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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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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1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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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각하는 눈
최건수 지음 / 인덱스(INDEX)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초저녁잠이 늘어나고 아침잠이 줄어든다는 것은 노화의 대표적 증상이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훨씬 빨리 잠을 깨게 될 때 하루 종일 또 피곤함에 쩔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늙어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그래서 더 두려운 일이다. 온종일 피곤에 업무를 가중하는 게 우울할 지경이다. 출근하자마자 종일 내내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고역이 뻔한대도 아침의 숙면이 달아난다. 왜 쓸대없이 일찍 일어나서 덜거덕거리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나이 많은 노인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찍 일어나서 밭에 갈 일도 없고 시간 맞춰서 출근할 일도 없는데 새벽에는 더 게을러져도 됨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 부산했던 이유가 결코 부지런해서가 아니었던 거다. 노화는 결국 몸이 말을 점점 듣지 않는 현상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멀뚱멀뚱 깨어나는 머리와 눈을 감게 만드는데 잠을 들 수 없는 어중간한 시간이 난감할 때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깊게 자버렸다간 출근에 늦을 거 같고 다시 눕기도 마뜩하지도 못했을 때 출근 시간까지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사진 평론서인데 한 작가의 사진에 대한  평론을 한다. 간혹 평론서라고 하면 사진의 품평하듯이 잘 찍었냐, 못찍었냐로 우열을 가리는 듯이 공모전 심사하는 듯 마냥 언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보기 좋게 빗나간 평론서이다. 유독 사진계에서 사진 작품은 품평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구도가, 색감이, 흔히 작가의 실수로 보일 법한 뉘앙스를 평론이란 이름으로 점수화시켜 평가하려 든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작가주의적 시점에서 사진에 대한 창작론과 결합된 사진작가의 사유를 설명한다. 물론 보는 입장에서 사진에 대한 논함이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좋아하는 사진에 관한 책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평론서가 비록 내가 사진 찍는데 있어서 1도 반영이 될 수는 없었어도, 사진의 창작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평론서를 읽으면서 책 저자는 사진을 아우르며 살아온 경험과 쌓은 지식의 넓이를 읽게 된다. 누군 그러겠지. 고작 사진에 무슨 이론과 지식과 경험이 첨부되어야만 하는지 따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진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진의 평론을 읽고 알게 됨으로써 사진을 보는 방법과 방식, 사진의 양식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사진도 예술이란 범주에 끼어들어서부터 모든 예술론이 심오할수록 사진도 예술화된 심오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다루는 사진작가의 예술론이었던 셈이다. 각 개별적 사진작가의 사진 예술의 방향을 재보고 카메라의 시야각을 어느 쪽으로 방향성을 가지는 것에 대한 분석이 그래서 돋보인다. 앞서 전 편의 리뷰에서도 언급한 발터 밴야민의 인용 문구에서도 나온다. 현대 사회의 문맹은 이미지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를 보고 읽는 것이 현대의 문명의 총아로서의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했다고 언급한다. 읽을 수 없는데 쓰기가 가능한 것이 사진이라면, 아무렇게 쓴 사진은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낙서일 뿐이다. 백날 낙서질이 카메라로 이미지를 쓰기를 일찍 멈추는 현상이 조루증으로 나타난다.

 

한때 광풍처럼 유행으로 불었던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많이 축소되고 죽었다. 카메라 소비시장이 줄었다는 것은 사진의 생산자도 줄었다는 뜻이고 한때나마 개나 소나라 하며 작가처럼 나서던 사람들도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대규모 사진 포털도 퍠업 선언과 함께 하였고 문을 닫았다. 소비시장이 점점 줄어드니 흡사 시골 장터에 그 북적북적했던 사진 사이트도 휑하다가 흔적을 찾기도 어려워졌고 더 이상 사진 시장은 바람이 불었던 전으로 돌아갔다. 디지털의 호기심은 단지 호기심으로 그쳐 버렸다. 나는 많이 떠나고 그만두었어도 여전히 아직도 사진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처럼 사진을 오늘도 가슴 한편에 버젓이 돌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잔을 앞에 두고 선술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밤이라도 셀 듯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했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떠난 것일까? 나보다 더 오래 사진 할 것처럼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던 선배들과 후배들은 지금 카메라를 어디다 두었을까. 그래서 동호회에서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고 부주 돈 써가며 행복한 사진의 삶을 살 거라 다짐했던 선남선녀들은 무얼 할까? 그들에게는 사진이 단지 놀이였을 뿐이다. 사진의 가치와 의미보다는 "놀기 삼아"라는 호기심이었고 이 놀이가 흥미가 떨어지고 지루해질 무렵이면 호기심도 사라지니 더 이상 카메라는 중고로 혹은 장롱으로 보관용 신세로 전락시켜 버렸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또 안개에 싸인 세계가 보일 텐데 거기서 멈출 때가 안타깝다.

 

우리가 곰곰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추측도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사는 게먹고사는 일이 녹녹하지 않았고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가 않았다. 그때를 비추어 지금을 돌이켜보면 인생이란 참 지루한 고통스러운 현상을 겪고 만났던 것이다.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왔을까 따져 보면 흡사 자학적인 삶을 산 듯이 고난스러운 일들이 행복하다 여기는 일들보다 훨씬 많았다. 대기업 금수저 자식놈들도 화를 버럭버럭 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여길 만하다. 있는 놈이건, 없는 놈이건 대부분의 시간이 무덤덤한 시간을 제외하면 짜증 나고 열통 터지는 일들이 즐거워 흐뭇한 미소지를 수 있는 것보다 많았다. 일상은 뭐 하나라도 가볍고 단편적이지를 못하고 머리를 싸매는 선택에 내몰리는 삶을 사는 걸 보고 있다. 어딜 가더라도 요즘 경제에 분석하고 주식과 부동산에 이야기한다 한들 무엇 하나 확실하게 이거다라도 느끼는 것도 부족하다. 삶이란 지긋한 스트레스성 미열에 시달리며 구역질 나는 울렁거림의 연속이라는 것에 대해 단 한순간이라도 이 세계를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내가 속한 이 세계의 나를 만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한다. 그 지점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 사진이었다.

사람은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런데 이 본다는 의미는 눈을 통해서였다. 눈이 세상과 나를 보이는 시계로 이어준다. 종착지는 마음이다. 역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는 시발점이자 종착지였던 거다. 마음은 욕구나 욕망에 의해서 표출된다. 사람의 본능은 보는 것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피드백이 본능이다. 이것을 표현이라고 한다. 가슴에 쌓아두고서 표현하지 못할 때는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이다. 보고 듣고 그래서 말하고 생각을 드러내는 것. 모슬로우의 안전 5단계에 최고 정점에 있는 인간의 욕구에서 왜 자아실현이라는 욕구가 가장 위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느끼는 일들이다. 사람이 단순히 밥만 먹고도 살수야 있을지는 모르나 왜 밥도 아닌 예술적인 일상에 갈구를 하게 되는 것인지. 이것이 일종의 본능이라는 점이다. 형이하학적인 본능에 매몰되느냐 아니면 형이상학적 본능에 의탁을 하느냐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진지하게 자신의 행복론에 스스로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진은 존재적 가치와 의미의 미시적 형태이다. 어쩌면 이게 인문학이란 본령이 아니던가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사진이 생각하는 눈이라고 했다. 사진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넓게 인문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본다는 의미이다. 음악가의 눈으로 사진을 보면 사진은 하나의 음악처럼 보이고 문학가의 눈으로 보면 사진은 한편의 시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진작가의 시선이 희석되거나 탈색되거나 주관성을 부여하는 생각이라는 것의 눈이다. 랜즈와 카메라를 통한 보이는 현상을 휘저어 가공된 사상화되는 것. 이것이 사진의 묘미이자 재미이다. 문학의 근처도 가보지도 않았던 내가 굳이 시를 읽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진은 어떤 예술과도 좋은 양립형 콜라보이다. 사진의 눈이 뭔가 덧댈수록 사상의 변이성을 나타낸다. 사진은 흡사 수만 개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자이크 같은 퍼즐이다. 이게 곧 생각이자 의미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겉으로만 보면 수박의 속이 왜 그렇게 빨간색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수박을 깨듯이 사진을 깨는 것과 같이 따져 보고 분석하고 평론해야 빨간지 노란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은 현상을 결정하고 현상은 본질을 드러내는 것. 이것을 심미안이라고 하자. 사진도 심미스러울 때 가장 행복한 사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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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4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평을 통해 자신의 예술관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비평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8-04-24 13:21   좋아요 2 | URL
물론이죠.사진의 지평을 더 넓고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진도 볼줄 알아야 오래 사진 찍을 수 있거든요...
찍는거야 카메라가 다 해 주지만 사진 읽기는 카메라로만 읽을 수야 없거든요...

stella.K 2018-04-24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의 이야기와 유레카님의 서평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들고 웃긴 게 TV 켜놓고 잠이 드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얼른 TV를 끄고 자려고 하면 달아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
한참만에 잠이 들죠. 중간에 잠깐씩 깨는 적도 많고.
나이들면 더하겠죠?ㅎ
그런데 작년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저랑 동갑내기 지인이 그러더군요.
공부 다시 시작해 보라고.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집안 일하고, 교회 다니고
등이 바닥에 닿으면 바로 잠든다고 하더군요.
잠 잘 못 잔다고 하는 사람 그거 다 편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구요.
일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집에 오면 퍼지고. 불면 걱정할 것 없겠다 싶어요.ㅎㅎ

yureka01 2018-04-24 14:12   좋아요 1 | URL
네..물론입니다.나이들어 공부해보면 ...잠이 보약이 되죠..ㅎㅎㅎㅎ
머리 뉘이자 마자 골아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또 공부하려니..무서워요 ....흐.....
공부는 불면을 해결하긴 하는데 기억력과 싸움이고..
작년에 자격증 공부해보니..이건 뭐 잠하고 한판 시름 ㄷ ㄷㄷㄷㄷㄷ

sprenown 2018-04-24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학교공부가 아닌 나이들어 관심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새로운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인생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거든요^^.

yureka01 2018-04-24 14:57   좋아요 2 | URL
그럼요.자신이 무슨 분야이든 좋아할만한 그래서 오래토록 찾을 수 있는 분야를 꼭 하나씩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인생이 비록 고독할 수는 있어도 외롭지는 말아야 하거든요.
특히 나이들어가는 늙어질때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죽기전까지 남아도는 시간 주체할 수없이 허송하는 게 인생 낭비같아서요.

강옥 2018-04-24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오늘의 포토‘가 사라지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디지털 사진이 한물 간 거였군요.
아닌게 아니라 제가 가끔 들락거리던 사진방도 이름만 걸어놓고 스산하더군요.
주말마다 유명 출사지로 몰려다니더니 요즘은 각개전투로 바꿨나 싶었더니...

글도 사진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운 것 같아요.
산에 왜 오르냐고 물었더니 산이 거기 있어서, 라고 대답했던 산악인처럼
저는 카메라가 곁에 있으니 찍는 것 같아요. 그냥 재미있어서~
그래서, 철학도 사유도 없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결코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요 ㅎㅎ

yureka01 2018-04-24 23:35   좋아요 1 | URL
사진인구가 줄어도 유명관광형 출사지 즉 소위 포인트는 그래도 여전히 카메라 대열이
서있을 거예요..물론 그때만으로 그치고 만다는게 너무 아쉽지여,,,
그기서 한 걸음 더 들어 가보는 호기심은 왜 생기지 않는지도 참 의문이더군요..
비비안 마이어처럼 일단 찍는 것..그것도 꾸준히....그럼 됩니다...

cyrus 2018-04-24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에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초성능 사진기)가 나온다면 인간은 사진 찍는 일을 하지 않게 될까요?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유레카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어요.. ^^;;

sprenown 2018-04-24 20:21   좋아요 1 | URL
인공지능의 초성능 사진기가 나와도 인간은 사진을 찍을거예요. 사람만이 갖고 있는 기억과 감성은 기계가 도저히 흉내낼수가 없을거 예요.^^

cyrus 2018-04-24 20:22   좋아요 1 | URL
제가 예상했던 답변입니다. ^^

yureka01 2018-04-24 23:37   좋아요 1 | URL
지금도 거리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있죠...
차에도 블렉박스..다 카메라잖아요..
실용성으로 따지면 인공지능은 아마 사진 안찍을 겁니다...

생각이라는 걸 인공지능에 불어 넣지 못하는 이유가...
인공지능에 인간의 욕망을 넣을 수 없다는
인공지능학자의 주장이었어요.,,,

아마 인공지능이 스스로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면
인간은 멸망할지도 모르거든요,,ㅎㅎㅎ

이걸 경고한 것이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이었지요..

2018-04-27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발터 밴야민(독일 철학자)의 사진에 대한 몇 가지 저서에 대한 사진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사진에 대한 책. on photograpy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와 똑같은 제목의 책, 수전 손택(미국 사회 비평가, 저술가)의 책 on photograpy는 사진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사진을 "대하는 것"과 사진에 "관한 것"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카메라 초창기 시절에는 카메라 한대 가격이 거의 집 한 채 가격이었고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카메라가 있는 집이라면 그래도 좀 먹고살 만한 부잣집처럼 각인되었다. 사진은 애초부터 먹고살 만한 수준의 부르주아급 찍는 행위들이었다. 카메라가 워낙 비싸고 일반적인 대중들이 손쉽게 접하기 부담스러운 고급스러운 장비였다.(물론 아직도 일부 카메라 상표 중에는 명품이라는 빨간 쌕 라이카 상표가 붙은 카메라는 먹고살 만해진 사람들의 고집한 선택 사향이다.)

 

기술의 발전은 카메라의 기능이 첨단급으로 향상시키면서도 가격은 너무나도 많이 낮췄다. 가격이 낮아짐으로 인해서 카메라의 보급은 늘어났고 이제는 사진이 거의 일상 속에서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종례의 카메라라는 고전적 형태는 아니더라도, 카메라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스마트폰에는 카메라가 한대씩 장착되어 있고 어디서든 누구나 사진을 찍기 바쁘다. 일례로 어느 봄날 벚꽃이 아름답게 핀 관광지에서 보이는 현상을 상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전통적인 카메라의 형태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셀카봉을 들고 벚꽃을 배경으로 저마다 사진을 찍기 바쁘다. 어쩌면 꽃놀이가 사진 놀이화된 것처럼 어디를 가서 놀러 가면 그날을 기념하든 기록을 하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고 셔터를 눌러댄다. 이게 일상적인 사진을 대하는 일반적인 자세이다. 기술의 발전은 카메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커다란 카메라 대신에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카메라 기능을 넣고 쉽게 저장하고 SNS로 저마다 인화한 사진처럼 디지털 앨범에 기록을 하고 지인들에게 보여준다. 오늘 나 어디 놀러 갔었고 이뻤고 무얼 먹었고 등등 개개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나 오늘 이렇게 행복한 모습이라며 자랑삼아 보여준다. 이 역할이 사진을 통해서이다. 글로 써서 보여주기보다는 먼저 사진부터 보여준다. 그 사진을 보고 즐거웠겠구나. 멘트를 날린다. 그럼 사진의 역할은 다했다. 즐거웠음을 보여주는 것. 이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하는 사진의 역할이다.

 

카메라의 발명은 회화의 문화적 양식을 변모시켰고 예전에 없는 삶의 방식도 사진 찍고 사진을 보는 행위들로 바꿔 버렸다. 이처럼 카메라의 없었던 시대와 있는 시대의 삶의 행위가 달라졌다. 달라졌으니 의식 또한 바뀌는 것 또한 당연하다. 사진에 대한 밴야민의 철학자로서의 사진이란 이미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예전에 없던 문화적 배경이 되고 오늘날까지 그의 철학이 이어지는 놀라운 효과를 당대에서 만나고 있다. 이것이 사진에 대한 것들이다.

 

독일 베를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태계 독일인은 삶이 종국에는 불운했다. 유럽의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분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았고 급기야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던 때 프랑스를 탈출하지 못해서 피레네산맥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비록 사진을 찍지 않고 사진가는 아니었더라도 유럽의 사진계의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지금의 사진 현상을 밴야민은 일찍이 내다보았고 사진적인 현상에 대해 철학적인 예언도 지금에서야 이해되는 현상을 우리 시대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미래의 시대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면(파악하지 못하면) 문맹자라고 인용한 부분의  일갈은 마치 오늘을 예견한 그의 사진에 대한 시선이었다. 아마 오늘날의 사진을 밴야민이 보았더라면 무척 기뻐했을까 슬퍼했을까? 그 당시의 사진과 오늘날의 사진을 감히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오늘날의 사진을 그가 만난다면 얼마나 많은 사진에 대한 저술이 나올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오늘날 이렇게 사진이 광범위한 삶의 한 방식에 편입된 현상에 대해 비평을 한 수전 손택은 그의 저서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잊고 있던 밴야민을 부활시킨 듯이 조명한 대표적 저술가 있다. 그의 책도 역시 "ON photogray"였다는 점에서 같았다. 여기에서 수전 손택은 밴야민의 사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사진의 사회적인 현상의 전반에 관한 비평을 이어나갔고 사진 비평의 확장성에 일조를 하였다. 사진만의 범위에서 넓혀 나아가 사진의 사회성에 대한 현상을 사유하고 비평한 것이었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사진은 전 인생을 표현하는 것과 같이 현대인의 사진은 놀이로써 또는 현재의 증명으로써 이어진다. 또한 사진은 다큐로써 역사를 기록하고 예술로 승화시켜 미학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하다못해 오래전 초상화같이 대형 걸개 사진에서부터 작은 신분증명서에 붙은 증명사진까지 우리가 일상의 사진은 알게 모르게 사진화되어 있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학생증 등등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신원증명을 하는 문서에 반드시 있다. 사진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이제 사진적인 의식화이 되었다. 병원에서 태어났을 때 첫 번째 찍는 사진부터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걸리는 영정사진까지 사진은 따져보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사진이 나아가서 예술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과 같이 된 것도 별로 이상할 일도 아닌 시대임에는 틀림없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사진을 십수년 찍어 오면서 흔히 사진을 경멸하는 의미로, 사진 찍으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냐, 그걸 왜 찍냐고 타박했던 말이 떠오른다. 물론 사진은 돈도 안되고 밥도 안 나온다. 그런데 사진이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돈을 아예 만들 수가 없고 밥벌이를 시작도 할 수 없다. 어디 이력서 하나 제출하려고 해도 이력서에 사진이 없으면 지원조차 할 수 없는데 돈벌이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처럼 사진은 일상의 삶에 나무의 뿌리처럼 지하에서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시스템의 방식이 된 것이다. 당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면 당장에 무등록자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오늘날의 존재 근거는 신분증명서에 담긴 사진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진의 가치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하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지금 당장에 자신의 얼굴이 담긴 주민등록증에 담긴 자신의 사진에 눈을 맞추어 보는 것은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내가 존재의 증명을 사진으로 한다면 내가 거주하는 이 공간의 증명 또한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 곳으로 풍경 사진을 찍는 것 또한 내가 그기 그곳에 존재했다는 시간의 증명이 바로 사진이 된 것은 아닐까 한다.

사진은 나의 신분 증명이듯이 내가 찍는 사진은 내 존재의 증명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셔터를 누를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계속 사진을 찍을 것이다.

PS : 페이퍼글 마지막으로 사진에 대한, 혹은 사진에 관한 책이 나왔다고 해서, "사진하면 유레카를 떠올렸다"며 책을 보내주신 이웃 분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 오랜만에 사진책 이렇게 흥미롭게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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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4-19 1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 소개도 감사드리고, 마지막에, 사진은 ˝내 존재˝의 증명이라는 말씀도 의미있게 들려요. 보통은, 사진은 피사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yureka01 2018-04-19 11:5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피사체의 증명이자 누가 찍은 것의 증명이고 그곳에 있었다는 증명이거든요..
흡사 사진은 공간의 증언이라서요~ 물론 누가 찍은 것인가에 따라 증언은 다를 수가 있어서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8-04-19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웃나라에서는 안면인식 안경을 공안이 착용
한다고 하는데, 경찰국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예전에
는 카메라만으로만 가능하던 일들이 일상으로
스며들지 않았나 싶네요.

그나저나 벤야민의 사진 이야기는 궁금하네요.

yureka01 2018-04-19 13:54   좋아요 0 | URL
전 인구의 얼굴을 저장하고 카메라로 비추고 대조하면 누군다 다 나오겠지요..
특정한 얼굴 부분 만 잡아 내면 조회가 간편하게 되니 말입니다.

카메라가 나온지 얼마 안되는 시대에 사진의 철학적 사유가 나온 이유도
밴야민이 철학자라서 그런가 싶었어요.,.
유독 사진에 대한 글이 많은 걸로 봐서 사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진의 상업성. 사진의 텍스트와의 문제..몇가지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stella.K 2018-04-19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동네에 한 군데 씩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많던 사진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싶어요.
그런데 아주 없지는 않더라구요.
오늘도 한군데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물론 당장 사진 찍을 일은 없지만.
사진사도 밥은 먹고 살아야하잖아요. 흐흑~
지금이 옛날과 무엇이 더 좋아진 건지 모르겠습니다.
기계화가 반드시 다 좋은 건 아닐텐데 말입니다.ㅠ

yureka01 2018-04-19 14:20   좋아요 0 | URL
증명사진을 찍을려면 저도 사진관에 갑니다..ㅎㅎㅎㅎ
사진을 찍어 본 사람으로써 증명사진은
저도 못찍어요..
사진 규격이 다 있어서 말입니다.여권사진 잘못찍으면 사진 빠꾸 당하거든요..
아무래도 사진이 대중화 됨으로 나쁜 거 보다는 좋은게 많다고 믿고 ^^..

cyrus 2018-04-19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구판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밝은 방> 구판이 레어템이라서 중고가 금액이 어마어마해요.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에 이 책을 싼 값으로 살 확률은 친구가 우연히 준 로또 복권이 1등으로 당첨될 확률과 같습니다... ㅎㅎㅎ 만약 <밝은 방> 구판을 가지게 되면 꼭 유레카님에게 빌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가지게 될 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유레카님이 이 책의 첫 번째 독자입니다.. ^^

yureka01 2018-04-19 15:02   좋아요 0 | URL
흐 기대가 되는데요.
바르트의 밝은 방 신판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가외 이야기로..밴야민도 수전 손택도 롤랑 바르트도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저술도 남겼는데...
전부 같은 공통점이 카메라들고 직접 사진은 안찍었다는 점입니다.

최근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사진 작가는 여류작가인데 비비안 마이어이거든요.
이분은 사진 전시회도 한번 가지지 않고 오로지 사진만 찍었어요...

cyrus 2018-04-19 15:04   좋아요 1 | URL
<밝은 방>이 아니라 <카메라 루시다>였습니다. 두 책 모두 내용은 동일한데 <밝은 방>이 동문선, <카메라 루시다>는 열화당에서 나온 번역본입니다. ^^;;

yureka01 2018-04-19 15:19   좋아요 0 | URL
카메라 루시다라는 책은 저도 아직 읽어 보지 못한 책이네요..흐..
기대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0 11:31   좋아요 1 | URL
어 ? 그래요 ? 오, 저 롤랑 바르트의 < 카메라 루시다 > 있는데... 호호...

yureka01 2018-04-20 12:12   좋아요 0 | URL
우앙..곰발님이 카메라 루시다 책이 있다니요. 대단^^..

겨울호랑이 2018-04-1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말씀처럼 누구나 사진을 찍는 요즘, 사진은 가장 대중화된 예술 장르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저 역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분야보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인 것 같아요.^^:)

yureka01 2018-04-19 15:21   좋아요 1 | URL
이젠 스마트폰에 카메라 넣을 생각한 기술자들의 발상이
사진의 판을 키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내장되고 부터,
카메라 시장이 급감했던 아이러니...^^..

나와같다면 2018-04-19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사진부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니콘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으러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필름값 때문에 신중하게 누르던 셔터, 사진이 나오기 까지의 그 기다림의 시간들

그때의 신중함과 기다림의 시간이 그립네요..

yureka01 2018-04-20 08:29   좋아요 1 | URL
그럼요..필름카메라의 기다림에 대한 묘미죠..
요즘은 디지털이라 마구 찍어도 되죠...
이젠 필름 구하기도 어려워졌죠..
격세지감입니다.ㅎㅎㅎ

강옥 2018-04-20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천천히 망하려면 사진을 하라˝고 했죠
‘필름을 두 가마니쯤 소비해야 사진 좀 찍는다‘고 했다니.... ㅎ
실제로 사진에 미쳐 가산을 탕진한 작가도 봤지요.
사진 배울 때 강사님이 권한 책이 수잔 손택이었어요. 그리고 진동선 -
근데 읽으면 뭐하나요. 저같은 경우 실전에 별로 도움이...... 실력 부족 ㅠ.ㅠ

yureka01 2018-04-20 12:11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도 사진 책보고 사진은 못찍었습니다..
다만 참고용이었습니다.그런 것도 있구나 싶었어요..
물론 책 한 권 안읽고도 사진찍을 수는 있으니까요.

네 그런 가산 탕진 케이스 드물게 있긴해요..

하다못해 수백만원씩하던 카메라 할부로 어렵게 질러놓고
장롱행으로 중고로 처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겠고요..
 

 

 

직원들이 모두 굽신거리니 노예들 같아 보였겠지. 너희들이 뭐가 그리 잘난 건지 모르겠지만 입에는 걸레를 물고 난도질인가 봐. 그럴지도 모르겠어. 자본주의 시대에 너희들이 가졌던 돈의 힘이란 것이 모든 사람들 아래로 보이게 하고 하대하며 갑질을 쉽게 하였을 것이다. 너희들이 돈을 빼고 나면 대체 남는 게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직원들은 이 돈의 힘이란 생존이 걸진 자본에 대한 비굴함으로 오늘을 또 버티거나 자발적 잘리거나 할 것이다.

 

가족들 부양하고 먹고살기 위해 오늘도 많은 직장인들이 한쪽 가슴에 사직서를 품어 출근하고 그렇게 갑질에 대해 돈의 힘에 대해 굴복당하는 비굴함을 가지고 연명~이란 짓을 한다. 산다는 것은 연명과는 다를 것이다. 삶이란 숭고하고 위대하다고 어느 예술가가 떠들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명일지라도 개돼지는 삶을 구걸하지는 않는다. 비록 어느 밥상에 보신탕으로 오르든, 삼겹살로 오르든 처절할지언정 비굴하지는 않다. 고통의 비명보다 더 아픈 것은 자존감을 꺽는  존재론적인 굴레라는 철학적인 논쟁을 재차하더라도, 굴욕이 주는 비통한 속울음과 슬픔이다. 돈에 오늘도 비굴하게 굽신거려야 하는 저마다의 처지가 참으로 삶을 좆같게 만들더란 말이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욕지기부터 내뱉어야 하는 불만이 생기는 삶, 또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슨 불만이 생기고 차오르는 분노가 들끓어서 직원들에게 아침부터 개새끼 소새끼라며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해야 할 만큼 뒤틀린 인성. 이 자체가 이미 연명보다 못한 삶이다. 물론 돈이 많아서 제 멋대로 굴릴 수는 있어도, 어떤 것에서도 자신의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불만을 다만, 직원에게 투영시키는 것일 테니까.

갑질이든 을질이든 욕망의 불끈거림은 불편한 진실이다. 돈이 그렇게 많아서 일개 대기업의 오너가 되어서도 욕이라도 나오는 그 불만족.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의 사이클에서 잡먹히는 꼴이다. 돈의 욕망이라는 세탁기 통에 들어가서 욕이 탈수되는 것일 테니까. 있는 세끼도, 없는 세끼도 만족이 없는 삶이다. 욕망은 늘 만족의 저항군처럼 존재의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마음에 악마의 지시를 기다리며 욕망의 충실한 불만군의 부하가 된 것일테니까. 있는 자는 있는 자 대로, 없는 자는 없는 자 대로 삶의 저주 바다에 띄워진 나약한 조각배를 타고 시간의 노를 젓는다. 오늘도 욕하면서.

자본의 야만적 사회에서 문명은 있으되 문화는 점점 사라진다. 정제된 언어는 욕망의 자본에 대항을 하려 해도 외면당한다. 천박함이란 야만을 닮았다. 외부로 속 사정이 넘친다는 것은 물그릇이 넘쳐서 흐르듯이 텨져 나왔다는 증명이다. 그동안 얼마나 지속적으로 차고 넘쳐올라 넘쳐 흐를 만큼 오랫동안 지속적이었을까라고 쉽게 추측이 되는 부분이다. 더욱이 이는 하나의 기업에 국한된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나도 직장 초년병 시절에 근무했던 곳의 오너는 재떨이가 사무실로 날아다녔던 적이 있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누가 소비자를 왕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소비자는 결코 왕이 아니다. 대기업의 그저 보기 좋은 밥풀때기들이고 자신들에게 끝없이 자본을 몰아주는 좋은 밑밥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다. 뭐 간혹 진상급도 있지만 진상 한둘정도는 돈으로 떡밥 던지듯 보상으로 안겨주면 튀어나온 주둥이 쑥 들어가는 좆밥 들이거든. 그러니 대부분들은 개돼지로 안하무인으로 봐도 순한 양의 탈을 쓴 좆밥들로 보였을 것이다. 다들 자본이란 지폐 앞에서는 끽소리도 못하는 자존감 1도 없는 비굴한 병신들인데 왕이 될 수 없으리라 여긴다. 떨어지는 일부의 콩고물 같은 월급으로 먹고 살만큼 주면 부려먹기 좋은 조선시대급의 노비나 다름없을 것이다.노비들이 무슨 족보타령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열심히 일한 대가의 자본이라고 착각하게 만들면 너무나도 쉽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종자들이 득실대는 시대이니까. 우리 회사는 동종 업게의 타 회사보다 최고로 더 준다는 대우로 착각하게 만들고 노비가 주인의 위상이 곧 노비의 자신의 처지에 따른 위상으로 오도하게 만들면 회사에서 주는 명함은 곧 노비의 신분증명서와 다를 바 없다. 저 여기 다녀요.가오잡는 노비들이란 측은하다. 나 여기 잘 나가는 곳에 다녀, 연봉도 동종 업계 최고야.라며 프라이드를 느끼게 만들면 굴욕정도는 치욕스럽더라도 참을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이게 야생이 아니라 야만의 조작스러운 시스템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죽어라 공부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자신을 단련 시키는 노력파들은 그렇게 조련되고 단련된다. 대학은 개좆밥으로 여기는 기업으로 취업소개소의 면면들이 그렇게 만든다. 학문은 없고 취업만 있는 곳에서 하는 교육은 단지 학문의 탐구가 아니라 자본의 입맛에 맞도록 조각된 인형처럼 미소를 가르친다. 자본의 야만은 그렇게 순화시킬 뿐이다. 나사 하나 흔들거리면 언제든 바꾸면 되는, 나사 따위가 불만을 가질 자격도 없다.

이러한 덜떨어진 인성의 갑질은 생각나는 것만도 몇 가지나 된다. 대구의 모 소주를 만드는 기업. 부산의 막걸리 만드는 기업. 이번처럼 땅콩 항공에, 모 대기업 오너 아드님의 몽둥이 사건, 세탁세제 만드는 회사, 낙농 우유제품 만드는 회사 등등등. 이런 덜떨어진 회사들이 여전히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나 털 생각에 직원들에게 윽박의 갑질과 안하무인을 한다면 여과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품질과 맛이 좋은 커피라 할지라도 여과되지 못하여 거를 수 없다면 마실 수는 있어도 입안에 맴도는 찌꺼기나 먹는 꼴이다. 정제되고 여과되는 삼투압 필터 같은 것은 결국 소비자의 행동일 수밖에 없다. 자본에 가장 큰 적은 역시 자본이다. 전체적인 집단 지성을 가진 자본이 악랄하고 모멸스러운 자본을 여과시키는 것. 그래야 이 탁한 오염물을 정수해야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 썩은 자본을 마셨다간 늘 배탈 난다. 이 자존감의 모멸감이 배탈의 증상처럼 나타난다. 오염된 천박한 자본은 걸려야 하는 이유이다. 돈이란 것이 똥묻은 돈도 잡아야 한다는 것도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집단 사회를 이룬다. 집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성 중에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인지는 따져 보는 것이다. 수치스러움을 모르면 인간 사회의 집단에 소속될 필요는 없다. 어디 먼 섬 무인도로 가서 혼자 살면 가장 좋은 일이고 하늘에 다 대놓고 욕이라도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다. 왜 인간계 들어와서 인간을 무시하며 인성 부재로 사는 걸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똥 묻은 돈은 피하자. 무서워서가 아니다. 더러워서다. 더러운 것들은 기요틴이 제격인데 아쉽다. 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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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8-04-18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품성도 개판이지만 가정교육이 일단 막가파네요 애새끼를 저 따위로 키우는 것도 재주내요

yureka01 2018-04-18 11:34   좋아요 1 | URL
집안이 막장인가 봐요..ㄷㄷㄷ

레삭매냐 2018-04-18 14: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느 신문기사에서 봤는데 갑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물적 토대, 그리고 고착화된 터널링을
허무는 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갑질에 대한 처벌은 과태료 얼마, 그리고
집행유예로 끝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갑질 남매들은 여론의 몰매만 잠시 피하면 된다
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구조적으로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는 모기업
터널링을 막는 게 핵심이라는 생각입니다.

yureka01 2018-04-18 14:08   좋아요 1 | URL
적극 동의하는 의견입니다....
그 기업이 일반 주식회사이지만 개인기업화된 것이 제일 크겠죠..
문제는 성격파탄자같은 기본 인성도 작용하리라 보이더군요..

cyrus 2018-04-18 15: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나면 갑질 사건이 잊히겠죠?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어딘가에 갑질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이 갑질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만 안 걸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언론에 들통 나서 제대로 혼쭐나면 “(내가 갑질했는 줄) 몰랐다”라고 발뺌할 것입니다.

yureka01 2018-04-18 17:01   좋아요 1 | URL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지요..
일전에 언니가 한번 혼쭐났는데 정신 못차리고....
이젠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시작했다는건 임계점을 넘었다는 이야기죠..
아무리 막되먹어도 그정도 까지는 아니거든요..
무슨 개망나니들도 아니고서야..

2018-04-23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3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석탑은 최초의 우주로켓 현대시조 100인선 71
장수현 지음 / 고요아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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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사진 블로거를 보면 직업도 모르고 뭐하고 사는 분들인지 전혀 모르는데 사진만 본다. 사진으로 그의 삶을 감히 추측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사진이 투사하고 있는 시선은 찍는 사람의 생각을 살짝 엿보는 관음증 환자처럼 살피게 된다. 그러던 중, 또 사진 찍어 보여주는 분이 시조시인인 줄은 몰랐다. 작가 스스로가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길도 없다. 사진 블로거가 다른 영역의 작품을 알리는 것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모른다. 많이 알려주었더라면 꼭 반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알려 주기만 한다면 꼭 주문을 하고 살펴보고자 했다. 물론 이런 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간혹 있는 형편이다. 더 자주 직접 저자의 책을 받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장수현님의 시집을 알게 되었다.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 냉큼 주문을 넣고 시조집을 받았다. 주문 넣었다고 알려드리니 시집을 보내주시겠단다. 사양하지 않았다. 멋지도록 사인해서 시집보내 달라고 했고 진짜 저자 사인이 아주 근사한 캘리그래피가 적힌 시집에 적어 보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주문한 시집과 저자가 제공한 시집과 쌍둥이처럼 서재에 나란히 저장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저자의 사인이 들어간 책은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시집을 펴들고 정독했다.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어떤 시이든 간에 마치 사진처럼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점 꽤 인상적이었다. 역시 사진 블로그에서 사진을 자주 올리는 시인이라서 그런가라는 싶었고 시가 언어로 찍은 사진처럼 읽혔다. 시적인 언어가 왜 이미지의 언어와 궁합이 잘 맞는 역할을 하는지 이 시집을 보면 금방 드러나는 부분이다. 

감상을 위해서 한 편 읽어 보자.


교감 1(35쪽)


늙은 소

한 마리가

온 들판을 끌 수 있는 것

억센 힘이 아니라

흙의 표정을 읽는 까닭이다


생살을 

다 터트리고서야

발돋움하는 봄,

들판


봄이 되면 농부는 농사일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하는 일이 밭을 갈아엎는다. 쟁기를 끄는 소. 오래전 우리네 시골에는 대부분 소가 쟁기를 끌었다. 이제 밭에는 소 대신에 경운기가 쟁기를 이끈다. 그런데 경운기는 흙의 표정을 읽지는 않는다. 동력의 메커니즘은 흙의 표정을 읽도록 설계되지 않았을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소가 힘으로 쟁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생살을 터트리는 흙의 표정을 읽어서 끈다고 은유한다. 흙의 표정만 읽겠는가. 농부의 생살 터진 손으로 거친 삶도 소가 읽는 것이었다. 새봄의 흙에서 농부의 거친 손에서 읽어 가는 소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흙을 뒤엎는 소의 힘은 농부의 힘과 봄이라는 시간의 힘이 싹을 튀우려는 힘의 합작품인 것이다. 복합적이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복합적 물리작용이 화학작용으로 바뀌어 바로 교감으로 뭉쳐짐으로 드러난다. 우리 삶의 교감이라는 것. 단절이 아니라 이입이 되고 공감이 되어야만 감각이 교류한다. 일방통행의 직류가 아니라 백만 볼트의 교류가 일어나야 봄은 생살을 터지는 겨울의 얼어버린 아픔을 이기고서도 피어나는 새싹과 같으리라. 시를 읽고 눈을 감아보면 어느새 늙은 아버지가 어느 봄날, 쟁기 매단 소를 끌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새봄의 땅은 그렇게 갈아 엎어지고 소를 끌던 소리가 난다. 이랴 이랴 부르던 봄날 밭의 흥얼이 시조의 운율같이 멜로디가 되어 퍼져 나온다. 역시 봄은 소가 읽는 땅의 기운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가 소를 앞세우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밭. 이 사진이 떠 올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를 따라 읽다 보면 멜로디가 생긴다. 3 혹은 4의 음절로 읽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호흡의 길고 짧은 장단이 생긴다. 이는 특히 시조라는 문학 장르의 형식미가 만들어내는 우리글의 독특한 낭송의 맛깔이 근사한 한 곡의 노래가 된다. 시조의 묘미이다. 간혹 고전 문학에서 나오는 시조는 오늘날의 시어와 다르겠지만 사용하는 단어가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모하는 마술의 노래처럼 읽힌다. 시조의 형식은 고전적이고 내용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시조는 읽는 호흡에 따라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작곡 같은 개념이랄까 싶었다. 그럼 시가 곧 가사가 되는 셈이고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랩 장르의 음악이다. 또 한 곡 노래 불러 보자.


여름내, 그곳에서 취하다(58P)

-조선족 김씨


저물어 가는 공사장

한 귀퉁이에서 불을 지핀다


어린 짐승 등허리 앑듯

피어오르는 불의 혓바닥들


여름내 타들어 간 몸

소금꽃 돋아난다


잦아드는 불길 속으로

빈 술병 던져 넣고


애써 울음 삼키고 있는

눈시울이 붉디, 붉다


몸 누일 방 한 칸 없어도

고향은 그리운 법이다. 


어느 소수민족의 이야기 (68P)

- 붉은 손


화덕에 빵을 꿉는

위구르족 사내들


손등에 피어 있는

붉은 꽃을 본 적이 있다


화인을 찍던 날마저

피워 올리는 불꽃들


허기진 저녁나절

모퉁이 돌아서면


불길을 어르며 산

사람의 손에서


잘 익은

생의 냄새가 

화르르 풍겨났다.


조선족 김씨와 위구르족 사내들의 삶의 이야기는 단 몇 줄의 음절로 압축된다. 원래 고향은 조선 땅인데 오늘날의 조선 대신에 타국이 되어 반대로 고향을 그린다. 살려고 취하고 빵을 굽는 사내들의 손들이 생의 맨손으로 맞잡고 한 사내는 취했고 한 사내는 불도장에 뜨거운 줄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둘다 소수민족이구나. 어쩌면 이 시대의 마이너들의 삶이란 소수민족처럼 옹색한 생을 취하고 찍는 것은 아닐까. 두 시가 다른데 또 같이 보인다. 눈시울이 붉디붉고, 손등에 뜨겁게 찍히는 붉은 도장 같은 화상들. 생체기는 역시 붉은색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마찬가지로 시를 읽으면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글로 촛점이 선명히 찍혀진다. 사진을 보지 않고도 사진 찍은 듯이 이미지가 역시 떠올려진다. 언어의 스냅 사진 같다.

우리는 이렇게 방식과 양식으로 규격화되고 정형적 질서를 만들어 표현한다. 물론 글이 낙서가 되느냐 그림이 낙화가 되느냐는 순전히 통일된 표준화 작업을 거칠 때로 수렴된다. 글이란 모름지기 시적인 형식을 갖출 때 혼란을 줄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표현하려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표현이야 말고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내부에 쌓아만 놓고 있다면 숨이 막히는 것과 같이 답답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는 결국 켜켜이 쌓여가는 삶의 고역이라는 앙금이 쌓여 가는 것이고 이 앙금을 시라는 형식과 양식으로 정제하는 행위이다. 석공이 탑을 쌓는 것도, 탑이 로켓처럼 우주로 뻗어 나가며 표현하는 것이 결국 본능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조는 대단히 규격화된 양식이자 프레임이다. 사진의 사각형 속의 프레임이라는 양식에 이미지화된 언어는 음절과 단어로 나오는 로켓의 고체 같은 연료가 되고 추진력을 얻게 되는 이치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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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7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조집 제목이 특이하네요. 책 제목만 보면 과학 책인 줄 알겠어요... ㅎㅎㅎ

yureka01 2018-04-17 15:3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도 시집 싸이즈라서 금방 알아 보겠더라구요..

2018-04-17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조의 정형화된 양식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yureka01 2018-04-17 15:38   좋아요 1 | URL
네 시조가 또 읽다보면 운율이 생겨서 흡사 랩같은 노래가 되더군요...
낭송의 묘미도 있어서요..

사실 요즘 누가 시조시를 읽냐 하겠지만 의외로 읽기 편한 시가 시조시에 있더군요..

AgalmA 2018-04-18 0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축미를 정말 잘 살린 시조들이네요. ˝흙의 표정을 읽는˝ 같은 촌철살인 표현을 땅땅! 넣으셔서 시조의 강렬함도 잘 살리시고!

yureka01 2018-04-18 08:32   좋아요 1 | URL
감성 전달도 운율에 실려서 술술 나왔어요^^..
일상적인 단어들의 시라서 어렵지도 않고..느낌도 돋고..^^..
저도 어려운 시는 못읽지요~^^.

강옥 2018-04-18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 참 좋네요
쉽게 읽히면서 찌르르 감동을 주는 작품이 흔치 않던데....
저도 주문 넣어봐야겠네요
유레카님 덕분에 좋은 작가 한분 알았네요. 감솨 ^^*
(오늘 대구 갔다 왔어에. 덥데예~~~)

yureka01 2018-04-19 09:01   좋아요 0 | URL
대구 오셨으면 연락주시지 그랬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