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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가엘 조스 지음, 최정수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6월
평점 :
그녀의 계보도를 따라 올라가며, 그녀의 삶을 조심스레 써내려가는 책이다.
그녀의 작품들이 하나도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ㅠㅠ)
프랑스의 한 소녀 외제니, 그녀에겐 사랑이었겠지만 상대편에겐 불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외제니는 아이를 낳았고, 남자는 외면했다.
결국 살길이 막막해진 외제니는 아이를 친척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프랑스 요리사로 미국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며 살아냈다.
프랑스에 있는 딸, 마리아를 데려오기 위해서.
14살의 딸은 낯설었다. 14살의 딸도 엄마가 낯설기는 마찬가지.
마리아는 성격이 불같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찰스 마이어와 결혼한다.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엄마와 불같은 성격의 술 좋아하는 아빠 사이에서
비비안 마이어가 태어난다. 그 위로 오빠 칼이 있지만, 칼은 폭력적인 아빠를 닮았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것보다 못한 상황, 그녀를 보살펴주던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비비안은 홀로 남는다.
외할머니의 친구였던 뛰어난 사진가 잔 베르트랑에게서 배운걸까.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세상에 뛰어든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볼품없는 삶을 그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카메라 필름에 담는다.
아이를 학대한 보모
편집증적인 보모
재치있고 따뜻하고 조금은 엉뚱한 보모.
그녀에 대한 평가들이다.
어느 것이 맞는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머무는 시선, 그녀와 마주치는 사람들, 그녀가 담은 모습들을 보며 추측해 볼뿐.
(사생아로 태어난 엄마는 마음이 텅 빈 사람같았다.
그 텅 빈 마음엔 사랑도,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이들도 품을 수 없었다.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우울과 나태로 그녀는 자신을 보듬기도 어려웠다.
술에 취하고 쉽게 중독되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도 자식들은 그저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었다.
그런 엄마와 아빠에게서 태어난 비비안 마이어.
그녀 또한 결핍의 삶을 산다.
부모의 폭력과 방임, 그나마 방패막이 되었던 할머니들의 죽음.
외할머니의 친구를 통해 사진을 접한 후, 비비안에게 카메라는 삶의 의미가 된다.
보모로 살아가면서도 그녀의 목엔 언제나 카메라가 걸려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폭력과 방치와 결핍으로 얼룩진 가정 출신이며, 가난한 하층민이라면 어떨까. 이런 사람이 재능을 인정받고 제도권 예술로 진입할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로에 가까운 일을 현실화하고 있는 예술가가 바로 비비안 마이어이다.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그녀 자신이 하는 일은 아니고, 그녀의 작품이 하는일이지만 말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2009년 4월에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사망 직후에야 비로소 그녀의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녀는 타고난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작업하고, 시도하고, 발전했다. 초점, 조명, 셔터 속도, 작동 거리 등을 조절하는 다양한 사진 기술을 익혔다.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에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했다.
"나중에 일자리를 얻어 고용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비비안은 딱 하나의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자기 방문에 자물쇠를 달아달라는 것이었다.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내밀함과 사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사춘기 혹은 유년기에 겪은 고성과 공포스러운 장면들에 대한 기억, 어렴풋한 기억. 혹은 감내해야 했던 폭력 때문이었을까. 적대적인 세상에 맞서야 했지만, 모든위험, 모든 두려움에 맞서야 했지만 보호해주는 사람이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무성의 실루엣을 지녔고 애교가 전혀 없었던 점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다. 방어용 외피. 여러 증거가 그녀가 실제로 느꼈던 두려움을, 남자들을 기피하고 성적인 것을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오빠를 겪으면서 남자들에 대한 이미지가거듭 망가졌다. 적어도 얼어붙었다.
그녀의 아낌 없는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간신히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향한 비범하고도 혼란스러운 공감을 통해 기적들을 양산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의유일한 재산을, 자신의 보물을, 시선을 선물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 인생의 근원들로 거슬러 올라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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