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통로, 현대예술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름다운 미인에서 괴물까지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빛과 내가 본 환영들, 소소한 이야기와 아픔이나 상처 등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을 보며 깨닫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지만, 권력과 돈, 정치력과 소수의 힘이 숨어있다. 특정한 이들을 위해 특정한 교육을 받은 특정한 이들이 점령하던 예술이란 그 견고하고 오래된 틀을 현대예술은 무너뜨렸다.
현대, 지금 동시대의 그림들 앞에 서면 어떤 마음이 들까.
소리를 보라는 그림, 뭉개진 형태이다 못해 혐오스러운 피사체, 도통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겹치는 형상, 일그러진 육체들, 내가 그려도 이것보다 낫겠다는 이야기들.
동시대의 그림들은 다양성이다. 내가 어제 주워 온 조개껍데기도 훌륭한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것, 추하고 더러운 것들과 쓰레기들도 그림이 되는 것이다. 대중에게 익숙해진 캐릭터들도 나만의 생각이 담기면 새로운 작품이 된다. 아이가 그린 듯 어설픈 그림에도 이 시대가 꿈꾸는 순수함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작품이다. 동시대의 그림은 과거보다 좀 더 자유롭다. 권력과 정치에 구애받지 않는다. 무엇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그리며, 또 누군가는 그런 독특함들을 추구한다. 무시당하고 외면받았던 예술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성과 독특함이란 단어들에 수용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돈의 논리, 새로운 시도들의 현대예술에 동그라미들이 자꾸 붙기 시작하면서 그 친근함에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작가나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설서는 아니다.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대표 그림 하나 등으로 동시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정도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폰으로 계속 이미지를 찾기도 하고, 또 <세계 100대 작품으로 만나는 현대미술강의>책이 도움이 되었다.
예술의 아우라를 깨고 맘대로 말하고 내키는 대로 느끼기!
그것도 모른다고? 그게 어때서?
이게 뭐냐고? 현대예술이다 왜? 이 정도가 이 책을 읽고 떠 오른 생각이다.
“트레이시 애먼”전시회에서 만나 예술에 대한 마음이 맞아 팟캐스트 진행에서 책까지 쓰게 된 배우와 싱어송라이터의 그림이야기다. 허세없는 그림이야기에서부터, 그림의 구입방법까지 설명되어 있다.
동시대의 미술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가치관에 대한 전복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정신이 담겨있다.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참여하는 예술과 성과 생활에서의 각기 다른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퍼포먼스아트를 소개한다.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있으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예술을 관람함으로써 더 극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대표적 작가 중에 기억에 남는 인물은 2016년 터너 프라이즈 상을 받은 앤시아 헤밀턴이다. 버튼 스쿼시와 호박빛깔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7가지 의상 중 하나를 입고 공연자가 캐릭터에 대한 내면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또 한 명의 작가는 제도권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고대 역사나 신화, SF와 다크 판타지와 페미니스트에 영향을 받은, 2019년 터너 프라이즈 상을 수상한 타이 샤니 이다. 크리스탄드 피잔의 <여인들의 도시>를 재해석하여 가부장제를 부정하는 새로운 우주관과 세계관으로 만든 작품 <DC.Semiramis>에는 그녀가 만든 12개의 캐릭터들이 나온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그 캐릭터들은 네안데르탈인부터 소프트웨어 조각까지 다양하며 그녀들은 공공생활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고 선택의지를 갖는다.
두 번째는 공공예술로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기존의 조각상들이 진정 위대하고 정당한 인물인가에 대해서 의문점을 가지고 시작한 케힌데 와일리의 <전쟁의 소문> 조각상은 나이키를 신은 젊은 흑인이 말을 타고 있다.
세 번째는 사진부문으로 인화지를 구부려 만든 눈물방울 모양을 찍어 유명해진 볼프강 틸만스를 소개하고 있다. 인습에 묶이지 않은 다양한 주제와 개인적인 내면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캐서린 오피 등의 작품도 담겨 있다.
네 번째는 예술과 정치이다. 인권유린과 독재, 인종차별 등을 예술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소통하려는 행동주의 예술을 소개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루바이나 히미드의 <naming the money>다. 예전 예술작품에서 그저 지나가거나 하인 등 중요치 않은 인물로 그려졌던 흑인들에게 하나하나 인격을 부과하면서, 그들에게도 그들의 서사와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섯 번째 예술과 페미니즘 편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은 리사 브라이스의 작품이다. 마네와 르누아르 등의 대가들의 그림 속 여성 누드를 재해석하여, 주체성있는 인물로 탈바꿈한다.
여섯 번째 자기 표현에서는 인종과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술가들을 일곱 번째에서는 사운드아트를 다룬다. 이 중에 하룬 미르자는 바다를 그리다가 결국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은 파도소리임을 알게 되어, 그 후에는 파동에 집착하여 온 몸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방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덟 번째는 도예작품을, 아홉 번째는 주변부의 예술을 다룬다. 일명 아웃사이더 예술가들로, 필라델피아 와이어맨, 헨리 디거 등이 유명하다. 그 중 다섯살에 자폐증 진단을 받고 부모와 떨어져 보호시설에서 살게 된 미슬레이디스 카스릴로 페드로소의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페드로소는 이런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소통하며 대화했다고 한다.
열 번 째는 만화예술이다. 좋아하는 작가인 조이스 펜사토의 작품이 나온다. 색색의 선과 검은 빛, 흘러나오는 느낌의 미키에게선 분노가 느껴진다. 아름답고 동화 같은 세계를 이야기하는 만화캐릭터로, 작가는 분노와 부조리와 세상의 고통을 말한다.
“만화가 아니라 오직 이미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만화를 도저히 볼 수가 없어요”
마지막은 동시대 미술에 참여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깊이있는 분석이나 작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책은 아니다. 그저 동시대의 작가들에 대한 간단한 배경설명, 이런 그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짧은 설명서 느낌의 책이다. 그럼에도 영국내 새로운 화가들, 주목받고 각광받는 새로운 인물들을 알게 되어 재미있게 읽은 책, 단 네이버와 구글에서 열심히 작가들을 검색하고 그림들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는 예술에서조차, 아주 오랜 시간동안 유색인종과 소수파들, 여인들의 목소리는 묵인되었다. 그들은 입도 없고 손도 없고 눈은 가려진 창의력도 없는 존재였다. 그들의 손재주는 그저 주인들을 위한 눈요기였고 그 속에 담긴 위대함 등은 무시되었다. 흑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퀼트들은 백인 주인들의 자랑거리와 돈이 되었고, 여인들은 그저 모델로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동성애자들은 정신병자였고, 장애와 자폐아들이 내놓는 소통의 이미지들은 괴랄함이라 여길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드디어 현대예술은 자리를 내어준다. 그들의 색감과 형태와 분노와 다양한 방법들과 함께, 소외와 단절 고통이란 서사가 힘을 실어준다. 예술계에서도 큰 성과다. 반쪽의 시선을 되찾은 것, 그리고 아웃사이더들의 세상을 볼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