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라는 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술책을 읽다보면 정말 많이 만나긴 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최근 읽은 책 두 권에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실은 뭘까?

난 왜 이것이 궁금한걸까? 

















모네는 고향 르아브르 해안에서 바닷가에 떠 있는 배, 멀리 보이는 항구를 비롯해 그 어떤 것도 형체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그저 붉은 하늘과 물에 비친 잔영들의 '인상'을 빠른 붓놀림으로 그렸습니다.그런데 전시회를 찾은 예술평론가 르루아는 모네의 그림을 가리켜 "마치 총에 물감을 넣고 쏜 것처럼 그리다 만 그림을 봤다. 화가는 해가 뜨는 장면을 그렸다지만, 본질에서 벗어나 짧은 순간의 인상만을 그린 것 같다"고 혹평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네는 '짧은 순간의 인상을 그렸다'는 르루아의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의 제목인 '해돋이'에 '인상(impression)'이란 단어를 붙여 넣었지요. 그러면서 "인상을 그린다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햇빛의 시간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인상이다"라고 했습니다. 모네의 말은 그대로 전시회를 연 화가들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인상파'기 태동한 것이지요.-p385~386


















이 전시회는 총 165점의 작품을 선보였고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가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배와 굴착기, 공장의 회색 실루엣 뒤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스케치한 작품으로 빛이 아래쪽 물과 위쪽의 하늘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모네의 작품 제목에 주목하여 이 단체를 인상파라고 불렀다. 이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단지 인상, 즉 무언가를 살짝 본 듯한 느낌, 스케치만 했다는 뜻이었다. 면밀하게 계획된 구도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쥘 카스타냐리 같은 다른 비평가들은 조금 더 관대했다. '풍경이 아니라 풍경이 만든 감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상주의자라 하겠다'라고 그는 썼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고착되었고 1877년 세 번째 전시회가 열릴 무렵에는 예술가들 스스로 이 명칭을 받아들였다. -p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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