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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책장을 덮자말자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엄마를 보러갔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옆에 앉으니 우리 딸이 오늘 참 예쁘네 하셨다. 혹시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시나 싶어서 내가 누군데 했다가 혼났다. 누구긴 누구야 내 딸이지. 아주 맑음.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루시는 구주 가까이 병원에 있었던 오래 전 일을 회상했다. 두 딸아이가 다섯 살,여섯 살이었던 때였다.병원에 입원한 딸을 보러 먼 길, 힘든 길을 달려온 엄마와의 관계가 왠지 서먹서먹했다. 왜 저렇게 관계가 어색할까 했더니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에게 학대를 당한 탓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가난한 삶이기도 했고. 주변인들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지만, 루시는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며칠간 함께 알고 있던 많은 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시가 엄마에게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웃음으로만 넘긴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그들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죽는 순간을 보여주기 싫어 딸을 밀어냈던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마음이 너무 너무 궁금했지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었다. 루시의 삶에 큰 그림자를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소설은 가난과 학대로 가득 찼던 날들의 기억, 그 곳을 벗어나 대학을 가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 그녀의 삶들이 자서전처럼 쓰여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난 루시의 엄마와의 관계가 유독 크게 다가왔다. 엄마에 대한 루시의 복잡한 감정 뒤에 사랑이 느껴졌고, 그래서, 엄마가 더 보고싶어졌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루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소설 속에서 루시는 작가였다.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 주었다. 이것이 내 말의 요점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 p34
<바닷가의 루시>에서 작가인 루시를 만났는데,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이유를 이 책에서 알게된 셈이었다. '루시 바턴 시리즈.라고 불리는 네 권의 책 중에서 네 번째를 읽고, 첫 번째를 읽은 터라, <바닷가의 루시>에서 어렴풋이 짐작하던 루시를 선명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자극적인 내용 없이, 루시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어린 루시의 삶이 마음 아프긴 했지만, 자신의 길을 꿋꿋이 찾아서 단단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응원하는 맘이 되었다. 노년의 루시를 만났을 때 또 다른 아픔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닐까싶었다. 맑은 날만은 없는 날들. 그 날들을 어떤 식으로 마주하고, 헤쳐나가느냐의 문제일뿐. 남은 두 권의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