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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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253쪽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주인공 ‘선‘은 다섯 살 남동생 ‘윤‘이 밤낮 친구 연오에게 맞으면서도 또 언제 싸웠느냐는 듯 다시 같이 노는 꼴을 보니 열불이 난다. 그래서 채근한다.

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 음...... 그럼 언제 놀아?
선: 어?
윤: 연오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오가 또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천진난만한 다섯 살 아이 윤이의 말이 어쩌면 헌법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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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의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의 글이다. 이 책은 이 말을 하기 위해 장장 250여 쪽을 할애한 셈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강조하는 가치는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선의?

그렇다면 그 이상의 선의는 어디에서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책의 에필로그에 다다르기도 훨씬 전에 이미 그 해답을 부여잡게 될 것이다.

하여 그 과정을, 독서의 여정을 잘 누려보시길 바란다. 이 책은 아주(?) 쉽다. 어려울 게 없이 술술 읽힌다. 헌법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나 하고 놀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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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시시비비를 따지기 위한 목적의 수단이기에 앞서 오래 전부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합의를 통해 정한 바를 앞으로도 지극히 잘 지켜나가자는 우리 서로의 궁극적 약속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 의해 우리의 사회적 관계가 조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사회적 관계형성을 통해 오래된 궁극의 약속을 파기되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함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헌법은 우리 인간을 지배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우리는 헌법에 지배되어서도 종속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고로 헌법은 사회적 매뉴얼이라기 보다는 여행에서 길을 잃지 않게끔 하는 이정표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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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쪽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다. 그게 ‘존엄‘의 의미다. 인간이 존엄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이 당연한 천부인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이룩될 때, 비로소 헌법은 세상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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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3세대에 걸친 역사의 이야기. 그래서 무작정 황석영 선생님의 《철도원 삼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역작.

《유다》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기는 한다. 하지만 《유다》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이야기이며, 그 배경으로 종교적인 이야기가 강한 바탕을 이루는 또다른 결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와 비슷한 결을 가지는 면이 있어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에 대한 역사만큼은 먼 나라의 이야기만 같지는 않다.

뜬금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유다》는 유대교에 대한, 그리고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다 준 유익한 책이라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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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라는 작품에 대한 요약정리는 옮긴이(최창모)의 소개글이 아주 명확하여 그의 글 일부를 올린다.

📖 옮긴이의 말, 509~510쪽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줄기가 이중나선구조로 맞물려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에 드러난 예수에 대한 유대인의 시선과 가룟 유다의 배신이요, 다른 하나는 현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숨겨진 다비드 벤구리온에 대한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배신이다. 2,00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에는 나이도 다르고 성性도 다르고 삶의 경험도 다르고 이념도 다른, 3세대에 걸친 세 명의 등장인물, 즉 슈무엘 아쉬, 게르숌 발드 그리고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이 자리한다. 실의에 빠진 감수성 풍부한 스물다섯 살의 청년 아쉬와 결혼 생활 1년 반 만에 과부가 된 베일에 싸인 냉담한 마흔다섯 살의 아탈리야 사이의 아슬아슬한 ‘사랑과 욕망‘은 소설 전체의 흐름을 전혀 제루하지 않게 해 주지만, 사실 ‘배신‘이라는 묵직한 주제는 젊은 슈무엘과 일흔 살의 늙은 장애인 발드의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긴장감 넘치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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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 책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배신‘이라는 단어에 담긴 역사적, 종교적 함의이자 그 말이 품은 진정한 의미의 해석이다. 배신에 대한 해석은 슈무엘의 개인적 신념으로, 더불어 슈무엘과 발드의 대화에서도 끊임없이 재기되는 토론의 주제로 끊임없이 재기된다. 그리고 이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해석의 다양한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독자의 몫이자 의무로 치환되는데,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자 개인적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이유이다.

‘가룟 유다‘는 과연 배신자일까? 일반적으로 유다는 예수를 로마에 팔아넘긴 자, 그래서 배신자이자 배반자로 낙인 찍힌 자이며, 심지어는 마귀가 발현된 인물로 성경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세상사람들은 그렇게 굳건히 믿고 있다. 하지만, 아모스 오즈의 해석은 (유다에 관한 일반적인 해석과 다를 바 없이 나 개인적으로도 좁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성경에서의 해석이 밝히는 선을 넘었고,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까지 취급될 만한 여지가 크겠다는 판단이 앞서) 위험(?)하기 그지 없다. 아모스 오즈는 지금껏 그 누구도 집중 조명하지 못한, 또는 의도적으로 외면했거나 알면서도 방관했을 법직한 유다에 대한 역사적, 종교적 은폐를 거침없이 까발리며 고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다》는 유다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책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은 유다의 행위가 옳다거나 그르다 하는 가치판단적인 문제라거나 유다가 과연 배신자이냐 아니냐 하는 팩트체크를 위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유다의 행위 그 자체가 과연 배신이냐 아니냐 하는 보다 지극히 본원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아모스 오즈는 진득하게 파헤치고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선입견이나 일방적으로 주입된 인식에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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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 대한 해석 외에도 《유다》에서는 이스라엘 건국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이목을 끈다. 뿐만 아니라 실의에 빠진 슈무엘과 아탈리야의 사랑 이야기도 무척 매력적이다. 더불어 슈무엘과 발드의 치열한 토론마저도 긴장감이 넘친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옮긴이의 말‘의 일부에서 이 부분들이 모두 언급된 것이라 반복되는 쓸데없는 말이 될 뿐이지만, 《유다》는 그만큼 허투루 읽으려해도 그럴 수가 없는 수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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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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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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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여행의 최고 방해물을 돈과 시간이라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떠날 수 있고, 시간이 있어야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철썩같이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이 주머니 가득 넘쳐흘러도,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도... 나는 늘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작은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돈과 시간이란 여행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결국 내게는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여행을 향한 한 걸음을 떼기 위한 노력의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나를 묶어놓은 두려움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갑자기 없던 용기가 불끈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는 것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은 또다른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는 지금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어찌보면 내게는 여행을 위한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를 벗어난다는 자체가 두렵고 싫은 것이다. 막연함,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 미지의 순간들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운 것이다.

분명 문득 자리를 박차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지만 여행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자동발생적으로 나를 묶어놓는 두려움과 늘 투쟁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일까?

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통해 온통 시기와 질투만 가득 채웠다.

📖 51쪽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을 대하는 김영하에게는 온통 여유와 만족이 가득하다. 책에서도 알 수 있지만, 김영하는 여행이 자신의 삶의 일부이거나, 아니 그의 삶 자체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김영하에게 여행은 단순히 행복함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후회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나름의 투쟁이기도 하다.

📖 109쪽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두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대해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다는 점에서 김영하와 나는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김영하는 떠나고 나는 머무른다. 엄청난 차이며, 근본적으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대척점적 거리다.

그래서 부럽다. 이것 때문에 김영하를 질투한다. 질투는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꼭 여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떠날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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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잠깐 언급되는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가 궁금하다. 읽어봐야지 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이번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잊은 기억을 다시금 살려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의 핵심어는 사람, 장소, 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김현경의 책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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