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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여행의 최고 방해물을 돈과 시간이라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떠날 수 있고, 시간이 있어야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철썩같이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이 주머니 가득 넘쳐흘러도,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도... 나는 늘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작은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돈과 시간이란 여행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결국 내게는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여행을 향한 한 걸음을 떼기 위한 노력의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나를 묶어놓은 두려움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갑자기 없던 용기가 불끈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아는 것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은 또다른 문제일 뿐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나는 지금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어찌보면 내게는 여행을 위한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렵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를 벗어난다는 자체가 두렵고 싫은 것이다. 막연함,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 미지의 순간들에 대한 두려움이 두려운 것이다.

분명 문득 자리를 박차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지만 여행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자동발생적으로 나를 묶어놓는 두려움과 늘 투쟁하는 것이 싫다.

그래서일까?

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통해 온통 시기와 질투만 가득 채웠다.

📖 51쪽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을 대하는 김영하에게는 온통 여유와 만족이 가득하다. 책에서도 알 수 있지만, 김영하는 여행이 자신의 삶의 일부이거나, 아니 그의 삶 자체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김영하에게 여행은 단순히 행복함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후회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나름의 투쟁이기도 하다.

📖 109쪽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두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대해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다는 점에서 김영하와 나는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김영하는 떠나고 나는 머무른다. 엄청난 차이며, 근본적으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대척점적 거리다.

그래서 부럽다. 이것 때문에 김영하를 질투한다. 질투는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꼭 여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떠날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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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잠깐 언급되는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가 궁금하다. 읽어봐야지 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이번에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잊은 기억을 다시금 살려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의 핵심어는 사람, 장소, 환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김현경의 책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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