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능행 지음, 신상문 사진 / 도솔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늦은 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책속의 글들을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로만 생각하며
편히 읽을 수 만은 없었다.

불치병 환자들이 생을 마무리하러 들어가는
정토마을이란 곳에서 호스피스 능행스님이
이들을 지켜보며 여러해 동안 사연을 정리하고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도 덧붙인 책이다.

잘 다듬어졌거나, 또는 한권의 책으로써
감동을 이끌고자 전문작가의 힘을 빌린 듯한 책은 못된다.
그럼에도 한 쳅터씩 읽어나가다 보면
이런 외형적인 부분들에서 받는 미숙함보다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닌 '운명'이란 주제로 인해 자연발산되는
가공되지 않은 숙연한 감동이 아련히 전달되어 온다...

자녀 넷을 모두 박사로 키워 낸 엄마의 얘기가 있다.
남편은 전직 군인으로 죽음을 앞둔 아내를 두고도
간병은 커녕 평상시와 거의 다름없고,
사형선고를 받은듯한 엄마가 자식들 모두에게 연락을 해봐도
어느 하나 달려오는 이가 없다...

혹, 이 엄마란 여자가 가족에게 뭔 큰 잘못을 했던건 아니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자신들의 가족을 이루고 잘 살고 있는
장성한 자식들의 도가 지나친 무심함과,
상식선에서 보다 훨씬 무정한 남편을 둔
어쩌면 너무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였을 뿐이다.

처지를 맘놓고 슬퍼할 겨를도 얼마 안남은 그녀는
능행스님과 함께 자신을 다스려가며 남은 삶을 마무리해 간다.

죽기 전 유언과 같은 부탁을 가족에게 남긴다.
이제 자신은 아무런 미련이나 원망은 없다고...
다만, 자신이 화장될 때 이 보따리 2개는
풀어보거나 하지 말고 그냥 함께 태워달라고...

그 보따리엔 품위유지를 위해 끼고 다녔던 가짜반지 한개와
자신이 아꼈던 옷가지들과 책이 들어있었다.

그녀가 죽은 그날,
장례를 준비하던 가족들은 그녀가 준비해뒀던
그 보따리가 없어진걸 알고 서로 의심하며 분노한다.
장례가 끝나고 보자는 장남의 매서운 눈초리...

알고보니 그 보따리는 그녀의 남편이 숨겼었다.
'내가 준 돈으로 모아서 산거니 남편인 자신이
확인해 볼 수도 있고 소유권도 있다'는 이유에서...

몇개월이 흘러 그 남편은 능행스님에게 찾아와
씁쓸히 웃으며 말을 건낸다.

'스님은 알고 계셨죠?'...

능행 또한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그를 바라봐 줄 뿐...

이 이야기는 책 속에 담긴
삶을 떠난 이들과 관련된 여려 이야기들 중 하나다.

이런저런 뒤섞인 얘기들...
가족, 삶, 사랑, 죽음, 이별...

삶에도 사랑에도 유효기간은 있다.
아니,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읽었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잊으며 살지 모르겠다.

삶이 영원하지 않기에 주변사람들과 나눌 시간 또한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지금은 절실히 느끼면서도
매일 먹는 밥처럼, 매일 마시는 공기처럼,
그저 당연히 영원할 듯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평소의 자신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을 소중한 걸 배웠다는 이 느낌만은
문득문득 기억날 듯 하다.

이 책은 누군가에겐 사랑의 책으로,
누군가에겐 이별의 책으로,
누군가에겐 고통의 책으로 다가설 지 모른다.

해석하고 간직하는 건 각자의 몫이리라...

이 가을...
비싸지 않은 이 책 한권을 소장해보라 권해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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