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빌려주는 수상한 전당포
고수유 지음 / 헤세의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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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의 소재를 

자체적으로 일종의 오컬트로 분류했다.

만일,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짧은 집필 동기가 

소개돼 있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이 책의 오컬트라 칭한 부분들 중 극히 일부는 

우연같은 사실도 섞였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너무 지어낸 얘기 같지만

그 외양을 가능하게 한 우연한 만남이

마치 사실일 수 있겠다란

오해할 수 있을 그 실낱같은 가능성 때문에.


책 말미 작가의 소회를 빼놓곤

모두 창작으로 이뤄진 조각들이다.

소재도,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당연하지 않은가?

시간을 빌려주는 할머니,

그 할머니와 인연이 되어 찾아오는 사람들,

평생 되돌리고 싶던 어느 한순간으로 

딱 되돌아가는 일종의 시간여행자가 된다는 게

어떻게 사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책의 초반과 후반에

포레스트 검프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옆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장면처럼, 

전당포 할머니와의 짧은 만남과 기억을

소설의 앞뒤에 배치시켜 놓음으로서,

이야기들은 흡사 현실 속 작가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은

순진한 믿음을 독자로써 발휘하게 만든다.


허름한 건물 안 전당포.

할머니는 시간을 빌려주는 일을 한다.

우연히 명함을 보고 찾아왔던 

바꾸고 싶은 사연을 지닌 많은 사람들...

그들은 과거 속 그 순간들을 위해

1일에서 3일 정도를 얻어 되돌아 간다.

그 댓가로 그들의 남은 수명은 단축된다.

1일이라면 19년, 

2일이면 40년,

3일이라면 생환 할 기회도 거의 없다.

게다가 돌아갔을 때 그들이 발목을 잡는 건 기실

그 당시의 위험했던 똑같을 순간의 

반복 그 자체의 염려 때문만이 결코 아니다.

모든 과거 여행자들을 위험하게 하는 건

돌려받은 시간의 소중함 만큼에 비례할거라는 

각자의 간절함과 달리 흐르는,

돌려받은 시간 속 사건의 흐름들이

과거의 수정을 향해 원만하게 흐르지 않고,

관성처럼 원래 잘못됐던 선택 그대로

그 결과를 만들고 싶어하는 듯

불가사의하게 막는 듯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를 이미 알고 왔음에도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이끄는 강력한 힘이,

스스로의 욕망처럼 작용해

거의 전과 같은 운명에 휘둘리도록 만들려 한다.


책에 나온 인물들 모두 그런 상황에 휩싸이지만

위험을 극복해 낸 유독 기억에 남는 한명은,

빌라왕에게 자기집 마련의 꿈을 사기 당했던 여성이다.

그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과거로 향했던 이 여자는,

다시 그 계약을 한 부동산 중개소에 앉아 버린다.

원래대로라면, 과거와 똑같이 될 행동들은

아니까 알아서 안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책 속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거의

과거 뼈저린 잘못을 했던 바로 그 근처에서 

똑같은 선택을 하도록 또다시 그 언저리까지 

무서우리만치 같은 조건으로 다시

자기 발로 데려다 놓는다.

계약서의 결과를 아는 이 여자는

그 결과를 만들 계약서를 다시 마주한 순간 직전으로

본인을 마주하게 하면서 스스로 그 경험을 

자초하기 직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돌리고 싶던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한 이 여자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119를 불렀다.

이는 거짓말이다.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불가항력 같이 내모는 도돌이표 힘의 상황에서,

자신을 빼내 가도록

자신을 빼내 주십사

119를 부른 것이다.

도착한 119대원들이나

계약을 하려던 중개사 모두,

그녀가 피하고 싶던

하지만 다시 현실이 된 이 과거가,

이해불가일 거고

해프닝일 거고

실제 사고인가 어리둥절 해야한다.


하지만, 이건 진짜 사고다.


왜냐면 바꿀 수 있는 현실이

다시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이기에.

자신의 남은 수명을 댓가로 지불하고 온 사연 속 주인공에겐 

어떤 병이나 상황보다도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인 거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건 본인과

잘못된 순간이더라도 그 상태로

계속 똑같이 흐르려고 한다는 걸 아는

전당포 할머니,

그리고 독자 정도일 뿐.


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는 크로노스로

앵무새는 카이로스라고 불리는데,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

카이로스는 '특별한 기회의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책은 은유처럼 보태 놓았다.

우주의 섭리는 다르마로,

개인이 지닌 역량은 카르마로 설명도 했고.

카르마가 업이 아닌 역량인지는

그냥 책의 설명으로 받아 들이겠다.


아마, 저자는

본인의 희망과 상상을

소설 스토리에 많이 녹여 놓은듯 하다.

갈 수 없는 지난 시간 속으로의 여행,

그게 가능한 세상과 해줄 수 있는 누군가,

만일 간다면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준

상응할 댓가는 지불해야 한다는

희생되야 할 최대한의 지불용의도 설정해 놓았다.

그 기회를 얻는 자격 또한

할머니의 눈에 비친

각자의 오로라 색깔로 분별되는데,

불합격 기준은 빨강이고

가장 선한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은

자기성찰이 강한 오로라의 색깔은 보라색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순서인 이 색깔들은

뒤나미스(잠재성 or 카르마)라 일컬어져 있다.

할머니는 그들이 되돌려 받을 시간을 

잘 활용할 사람들인가를

색깔로 짐작하고 잠재성 평가기준으로 활용한다.

그 선택기준을 거쳐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기회대상에서 배재.


책처럼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 상상인가?

하지만, 책을 읽으며 틈틈히 생각해 볼 땐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지도 

얼마만큼의 노력을 다시 해야할지도 미지수 같았다.

또한 다른 비슷한 소재의 영화나 책들에선

무언가 하나를 과거에서 바꾸니 

다른 무언가가 영향을 주며 어긋나,

계속 그 과거로 인해 변한 뭔가는

현재 속 문제로 대두 된다.

이 책에선 그와 달리 성공했다면

모두 원하는 바를 얻지만.


현재에 지쳐 당장 

태세전환의 기회라도 책에서 만큼은

상상이지만 누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봐도 될 소재의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 수준을 높여 준 장치는 단연,

과거로 되돌아 가서도 

후회했던 그 모습처럼 행동하도록 

은연 중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는 

시간의 파라독스 즉,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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