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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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호의 인생에서 보면

누나의 죽음과 관련된 스토리는

책 속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녔다.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일하는 본인과

아죽사라는 묘한 이름의 모임을 운영하는 아버지.

죽음이 일상처럼 다가서는 정서를 배경으로 하며

덤덤하게 살아가는 가족이자 사회구성원으로써의 그들.

이들의 과거 속엔 그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한 가족의 죽음이 들어있다.

일찍 사망한 딸이자 누나였던 그 존재.


누나와 함께 친구처럼 놀며 지내던 어린시절 속 재호는 

자신이 시작한 매우 위험한 목조르기 놀이로

누나가 숨이 넘어가 버리는 사고를 자초하게 된다.

어린 재호가 이런 놀이에 탐닉하게 된 건,

아슬아슬한 질식의 순간마다 찾아왔던

황홀경 같은 느낌에 매료됐기 때문인데,

자신에게 좋았던 그 느낌을

가족이자 친구같은 누나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의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소설 속 이 가상의 상황은

어린 재호가 추구하기에 상황적 흐름상 

애초부터 위험천만한 뭔가로 다가온다.

어린아이 둘이 부모없이 집에 남아

서로 해주는 놀이가 서로의 목조르기라니.


그렇게 먼저, 누나가 재호의 목을 졸라줬을 때

위험을 느끼며 그만 멈추려는 누나를 향해

재호는 좀더 해도 된다며 계속 더더를 요구한다.

그러다 풍선처럼 놓아졌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

이어지는 누나의 순서에서 재호는

자신은 아쉽던 그 선경험을 발판삼아 

누나에겐 그런 아쉬움 없게 노련한 리더처럼 

자신이 원한 수준의 그런 느낌을 보여주고자 한다.

입장이 바뀐 누나도 마치 재호처럼 

괜찮다는 신호도 주며 졸림을 당하는데...

그러다, 누나는 깨어나지 못했고

순간 들어온 엄마의 모습에서 그때의 회상은 끝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일상 중 

짧은 분량의 단편적 사연이지만,

전체 스토리 상 삶과 죽음의 여러 모습 중

재호의 이 경험과 이후 이어지는 흰뱀의 환영은 

중요한 메타포임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결말적 요소이긴 하지만,

잔잔하게 진행되는 소설의 색깔상

누나와의 이 사건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도 상관없을성 싶다.

재봉일을 하는 동거인 히로시,

이혼한 엄마 아빠, 

그후 재혼한 엄마가 낳은 남동생 고호,

혼자인 아버지를 좋아하는 팀장,

그리고 재호의 여자친구 마리까지,

누나와의 사건이 유독 중요하긴 해도

긴 호흡의 스토리 속 하나의 사연일 뿐이니까.

누군가에겐 오히려 마리와 재호의 야간 장례식장 알바가 

더 중요한 책의 모티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고.


기억속 누나의 죽음은 재호의 착각이었다.

누나에겐 지병이 있었던게 밝혀지고

죽은 시점도 그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재호의 죄책감이 그런 기억을 만들었단 식으로

부모와의 대화 중 우연히 진실을 찾는다.


이후 최종적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누나가 사망했던 병원을 찾아가고,

재호의 그런 과거 사정을 들으며

오랜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주는 

최종 확인자처럼 등장하는 한 의사와의 대화 장면이 

묘한 여운처럼 등장한다.


재호의 사연을 다 들은 의사는,

그때의 누나와의 이야기 자체를 더 묻거나

뭔가 확인 증명서라도 발급해주기 위해

어떤 공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니라,

재호에게 아직도 그때의 흰뱀이 나오냐며 묻고는

시선을 돌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부모의 말이 맞다며 이야기 해준다.


이 부분에서 독자로써의 상상력을 조금 발휘하자면,

부모와 의사로 이어지는 이 확인에서 왠지 남은 여운이 있었다.

진짜 모든게 그저 재호의 상상 속 죄책감인가 싶은.


상을 받은 책이라 맨 뒤엔 

당시 심사위원들의 평이 실려있어

여러 사람의 해석과 시각을 볼 수 있단 장점도 있다.


드라마 스페셜 같은 잔잔한 나레이션을

소설을 통해서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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