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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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차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리큐에게 물어봐]. 느닷없이 죽음을 앞둔 리큐의 이야기는 독특한 구성을 지닌다.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영화 [메멘토]와 비슷한 방식을 닮았기도 하다. 다소 읽기 힘든 어체와 다도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로 인해 집중이 쉽진 않았지만, 차와 역사 한편에 남겨진 인물에 대한 새로운 스타일이라 참신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도 되지만, 뒤에서부터 읽을 수도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읽는 것에선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뒤에서 읽는 방법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반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충돌될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짜임새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점이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구성방식으로썬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처음장을 펼치고 리큐의 죽음 바로 직전 상황의 모습이 소설 뒤 부분을 궁금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할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언급되는 히데요시는 이 남자와 어떤 사이일까..

 

 

 정말 성질이 급한 사람이 첫장을 읽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면, 가장 마지막 장을 펼쳐봐도 좋으리라. 그럼 가장 빠르게 궁금증이 풀리리라. 하지만 인내심있게 첫장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의 흐름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 그리고 마치 왠종일 다도에 대해서 나오던 이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향기같이 오묘하고 고아한 향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리라.. 입가에 펼쳐지는 편안한 미소. 이것이 책을 덮을 때 내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무슨 일에나 도가 너무 지나친다만, 내가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다도야. 일본인의 기괴함, 진묘함은 다도에 가장 잘 나타난다 할 수 있어.... 중략.. 그래. 왜 일본인은 그렇게 비좁은 방에 모여 앉아 꼼지락꼼지락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냐. 왜 잡동사니에 불과한 흙덩어리를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며 서로 뻔한 칭찬을 하는 것이야?"

 

 "다도는 저도 이해 못하겠습니다. 다도에 열광하는 일본인은 머리가 돌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 149p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 中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가 이해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다지 한가로이 좁은 방에서 차를 타 마시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네, 아름다움을 논하고 다구가 비싼 값에 팔려 나가는 모습이 어쩌면 허영 같기도 해서 도대체 다도가 그럴 가치가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리큐는 미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뛰어난 심미안을 가졌고, 그것이 아름다운 한 여인을 열정적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과 닮아 있다. 그런데 그 여인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완벽한 사랑의 판타지를 리큐의 마음에 심어 주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를 향해 더욱더 아름다운 판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리큐. 그래서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잘 알았던 리큐. 그러나 오히려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죽음에 놓이게 된 그는 예술가라고 볼 수도 있다. 예술가라서 까다롭고 결벽증 비슷한 성격도 있었지만 말이다.

 

 - 아내로서 섬겨보면 리큐만큼 힘든 남편은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가재도구부터 청소 방식, 아침저녁 식사에 쓰는 접시 하나를 고르는 방식, 절임 한 조각 놓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짢아했다. 밥을 푸는 방식, 음식에 담는 방식까지 모든 일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요구했다. 그에 맞지 않으면 눈썹 언저리가 흐려졌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 언짢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소온이 얼마만큼 마음고생을 하는지 남편은 알까.. 이따금 무심코 소리 내서 샛장지를 닫았을 때 눈살을 찌푸린 리큐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을 만큼 슬퍼지곤 했다.  - 193p

 

 

 여자들에겐 사랑을 제법 많이 받았던 리큐는 까탈스런 성격 때문에 화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명확한 심미안과 뒤따른 재치와 기략. 이것이 때론 교활하고 변덕스런 히데요시를 권력의 최고봉에 올려줬을지도 모르나, 때론 그것 때문에 자신덕에 천하를 휘두룰 수 있는 자리에 오른 히데요시가 시기해 그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벚꽃으로 말하자면 그 사내, 꽂지도 않고 가지를 들더니 '져야 비로소, 져야 비로소'하고 읊으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야. 꽃잎이 흩날려서 아닌 게 아니라 봄의 풍정은 더하더구나.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허나 영 아니꼬워." 리큐가 재지와 기략을 종횡무진으로 펼쳐 보일 때마다 히데요시의 분은 더욱 커졌다.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좋은 화기가 들어왔다고 부르기에 갔더니 화기는 보이지도 않고, 다석이 파한 다음 보니 다실 정원 쓰레기 구멍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좌우지간 밉살스러운 사내가 아닌가."

 

- 231p 히데요시의 말 中

 

 

 생각해보면 히데요시에게 리큐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단지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라는 마음이 들은 히데요시가 리큐를 지독하게 질투했던 것 같다. 천하를 가졌으되, 리큐가 가진 것을 히데요시가 가지지 못했으므로. 한낱 질투심 때문에 리큐를 죽이고선 나중에, 리큐의 지략과 아름다움에 관한 안목이 그리워 후회했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죽으면 다도는 그것으로 끝이다. 차를 좋아하는 자는 크게 늘지 모르지. 허나 마음이 없는 다인뿐, 진정한 차를 끓일 수 있는 자는 없어." - 리큐의 말 中 - 197p
 


 리큐의 이 말이 다소 거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낼 줄 아는 당당함을 지녔고, 이것이 장인. 또는 예술가의 정신이 아닌가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리큐의 죽음 또한 비굴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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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 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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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인 몇백명을 뽑아 실험한 결과 평균 10분에 세번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사실. 그러나 이걸 가지고 모든 걸 단정지을 순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또는 의식중에 거짓말을 한다. 선의의 거짓말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되 남을 속여 재산을 갈취하거나 심적,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게 한 거짓말은 엄연히 지독하게 나쁜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쁜 거짓말 때문에 무조건 거짓말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 또한 거짓말을 하루에도 몇댓번 하는 줄도 모르고. 정직은 미덕이라고 누구나가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지나친 정직은 역시나 사람을 떠나가게 만든다. Bye Bye~~!

 "오늘 나 어때?"라는 말에 "이상해. 보기 싫어." 라고 말한다면, 이 말이 사실인데 어떡할 꺼란 말인가. 또, 어떤 실수에 대해 "나 정말 바본가봐. 난 왜 이리 모자란 걸까."라고 자책하는 친구에게 "어. 그러게." 라고 말하면 위로는 못받을지언정, 조용히라도 있어주면 얼마나 좋겠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민망한 상황과 어려운 자리에서 속 마음을 정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솔직해서 좋다는 대답을 듣진 않는다. 오히려 저 사람 뭐야. 재수없어. 라던가 융통성이 없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그 사람은 사회 생활 좀 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입에 발린 말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거짓말인지 알더라도 사람들은 칭찬을 듣고 싶어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 책이 인기를 얻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 보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은 지나친 정직보다 더 우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직을 내세우는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 밖에.

 [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을 한다]는 여러가지 실험과 통계,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거짓말이 본능적인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 탐색한다. 선의의 거짓말과 나쁜 거짓말을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사례들을 들어 구분하고 때론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딪히는 현실을 인식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거짓말을 자주 한다고 해서 세상엔 믿을 사람 없이 오로지 나만 믿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게끔이 아니라 때론 이런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필요에 의한 거짓말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게끔 만든다.

 기억에 남는 재밌는 사례는 동식물에 관한 것이었다. 포셔거미는 와이셔츠 단추만 한 크기의 털이 많은 거미로 아프리카와 호주, 그리고 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서식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거미들은 대부분 날벌레를 잡아먹지만 포셔거미는 고도의 사냥 기술로 다른 거미를 잡아먹는다. 심지어 자신보다 두 배나 더 큰 거미를 공격하기도 한다. 포셔거미는 사냥 상대로 점찍은 거미의 거미줄이 낙엽이나 바람 등으로 흔들리기를 기다려 거미줄에 올라앉거나 거미줄을 타고 움직인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움직임에 따른 거미줄의 진동을 은폐하고 상대 거미는 적이 공격하는지조차 모르고 당하게 된다. 상대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에 날아든 것이 맛있는 먹잇감이나 연애 상대인줄 알고 아무 의심 없이 다가가다가 포셔거미의 습격을 받아 그대로 잡아먹히고 만다. 놀라운 것은 거미 종류마다 감지하는 거미줄 진동 종류도 다른데 포셔거미는 이를 알고 어떤 거미를 공격하느냐에 따라 진동을 달리 조작한다는 점이다. - 118,119 참고

 동식물은 다른 생물로 위장하기도 한다. 무해한 나비들 중에 독성이 있는 헬리코니드 나비와 똑같은 모양의 날개를 가진 것들이 있다. 독성이 있는 나비인 척해서 새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한 나비와 나방 중에는 날개에 검고 둥근 눈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것들이 많다. 포식자에게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 123p

 남아프리카 저지대에 사는 검은색 도마뱀 새끼와 독성이 있는 우그피스터 딱정벌레는 흡사하고 거울 난초의 꽃은 암컷 말벌을 닮은 데다 암컷 말벌이 분비하는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기까지 한다. 북미에 사는 주머니쥐는 워난 죽은 척과 아픈 척에 두각을 나타내 영어로 'play opossum'이 '죽은 체하다'라는 속어가 됐을 정도라고 한다. 돼지코뱀은 죽은 척할 때 몸을 벌러덩 뒤집으면서 배설물을 분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혀를 축 늘어뜨리고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기까지 한단다. 그러고보면 이들의 이런 재미있고 우스꽝스런 모습은 진화론이 주축이 된다면,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거짓말은 의향과 통찰력이 필요한데 동물들에게는 없다고 보며 이들의 거짓 모습은 진화의 메커니즘을 통째로 떠받치는 강력한 엔진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써의 저자의 입장이라면 이 말이 훨씬 논리적이나 시각경험으로 봤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일요일 아침 방송되는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동물들이 하는 행동들이 그저 진화의 메커니즘과 자손 번식의 욕구로 볼수만은 없는 부분도 있다. 동물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동료나 주인에게 충성 또는 집착하는 모습, 또는 개들이 웃거나 다른 개의 웃음 소리를 듣고 성질이 못된 개들의 성격이 순해지는 모습,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와 동물들이 소통하는 모습은 동물들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저 욕구나 매커니즘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남는다.  

 우리는 때로 10분안에 세번보다 더 많이, 혹은 덜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누군가는 너무 솔직해 옆의 사람이 떠나갈지도 모른다. 무겁지 않게 흥미를 적당히 돋우며 실험과 사례로 엮어진 이 책은 우리에게 적당한 선의의 거짓말을 허용한다. 그러나 아첨과는 분명히 구별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거짓말은 이미 선의가 아니니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 이 정도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죽은 채하며 피까지 뚝뚝 흘리는 채하는 돼지코뱀을 생각해보면 귀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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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은 없다 - 사랑, 그 불가능에 관한 기록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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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없다' 라는 다소 염세주의적 시각일 것 같은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고민해보라. 비판의식 없이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이 무척 허무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일처제'가 본능에 위배되는 것이며 남자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모두가 일부다처제를 택할 것이라고 하는 말은 무척이나 그럴듯하다. 반대로 여자 또한 그러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자보다 남자들의 바람기가 더 활발한 이유가 난자와 정자수의 차이라니. 즉, 바람기는 자기의 피를 받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한 본능이란다.

 여자들은 일정한 난자수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는 일생동안 자신의 자손을 낳을수 있는 기회의 수다. 그렇게 하여 임신을 하면서 겪게 되는 대가와 모성애로 치장한 보호본능에 의해 남성보다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남성의 바람기에 대한 설명이 확립된다. 게다가 남자는 육체적인 배신을 더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반면 여자는 정신적인 배신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 또한 저자는 그럴 듯한 논거들을 제시한다. 그만큼 남자들은 감정보다는 육체적이고 여자들은 육체보다는 감정적이란다. 마치 잡지같은 곳에서 보는 내용같지 않은가.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상을 싸그리 접어두고 이성적인 뇌를 꺼내어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사랑은 없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은 거부하고 싶어도 수긍되는 사실들이 많다. 그럼에도 실생활에서 사랑에 눈이 멀다보면 이 책의 내용이 아무리 사실적이고 경험적이며 통계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책은 저 먼 옛날 이집트의 파라오의 여자에서부터 현재로 거슬러오며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까지 1:1의 연인과 1:다수의 연인들을 살펴보면서 종의 구분없이 사회를 이루는 모든 생명체들의 많은 수가 한 사람을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험적 사실들로 확인한다.

 '질투, 정절, 결혼 같은 개념들도 알고 보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의하면 여자는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며, 예부터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의 문란한 성에 의해 사건사고가 많아지자 종교와 국가에서는 법적, 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침범하여 관통죄를 만들어 사람들을 구속했다. 그러나 남녀차별이 심한 곳에는 여자의 관통죄는 매우 엄히 다스리는 한편, 남자의 관통죄는 비교해봤을 때 약한 편이다. 사람들은 남녀가 바람이 나면 바람난 남자보다 바람난 여자에게 더 욕을 퍼붓고 매정한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이런 태도는 지금 세대보다 예전 세대 사람이 더 강한 편이다. 그들 세대의 여자들보다 요즘 세대 여자들이 조금더 남녀차별을 덜 받는 까닭일께다.

 우리가 꿈꾸고 위대해마지 않는 사랑 이야기조차 이 책에서 거론되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 '트리스탄과 이졸데' 사람들은 이들의 사랑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또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랑했던 이들을 찬양했다. 그래서 위대한 문학이지만 마치 실존한 인물처럼 생생히 남아 몇세기를 걸쳐서도 여전히 그 위상을 드높인다. 그런 남녀의 사랑이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들이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둘이 함께 해플리 에버하게 살았다면, 과연 판타지한 사랑이 지속됐을까. 저자는 의문을 던진다.

 이런 것쯤은 저자의 의견이고, 이를 읽은 사람들이 생각권을 선택하는 거라 치자. 다른 생물종과 인간을 비교한 부분에서는 인간도 동물이라는 점에서 그럴 듯한 의견이 더 많이 보인다. 97%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침팬지는 사람처럼 질투를 하고 치장을 하며 바람도 핀다고 한다. 그들이 인간과 같은 점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흉내내는 듯한 그들의 행위를 보며 신기해하고 웃기도 한다. 그런 그들은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결코 넘지 않는단다. 근친상간이나 수많은 폭력을 일삼는 인간에 비해 어떤 점에선 더 괜찮은 생명종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을 보며 우리는 종족 번식이라고 하지 인간네 삶처럼 그들에게 '삶'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보다 언어감각과 몇가지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점에서 우월성을 지닌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게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은 생명종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이유는? 본능에 내재되어 있는 종족 번식을 위하여.

 흥미로운 점은 고귀하고 순결의 상징이라 여기며 평생 일부일처제로 산다고 생각했었던 '백조'들조차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같은 둥지의 새끼들의 일부분이 수컷과 유전자가 틀리다고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희박하게나마 3퍼센트 정도의 동물들은 일부일처제로 평생을 해로한다고 하니 희망적인가..

 아직 불타는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환상과 긍정적인 심상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없다!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입장에서 책을 읽고자 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연관되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논거들을 열거해나간 이 책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이 책의 많은 부분에 수긍하면서도 모든 부분을 수긍하지 못하게 하는 사실들이 있다. 몇주전, UCC동영상에 나온 영상들이다. 고양이 한마리가 죽었는데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머지 고양이 한마리의 모습과 도로 중간에 죽은 개를 다른 개 한마리가 구하기 위해 수많은 차들 사이를 헤치며 죽은 개를 물고 안전한 보도에 끌고 오는 장면이었다. 동물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주장에 비해 UCC에서 보여지는 동물들은 너무나도 감정적인 모습이 아닌가. 간혹 가다 이런 감동스런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동물인 사람에게조차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관계를 맺는 사이에 빚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본능에 내재된 종족 번식'으로 대체하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는 인상 깊은 장면들의 진실이 일부분 남아 있다. 그럼에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른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책에서도 언급을 피했듯이 게이와 레지비언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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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메이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김영진 외 옮김 / 현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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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 세상과 반대되지만 비슷한 세상의 이야기라면, '체크 메이트'는 이 세상과 다른 듯하지만 흡사한 세상의 이야기다. 앨리스가 '이 약을 먹으시오'라는 약을 먹고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토끼를 따라가는 것처럼 '체크 메이트'에는 체스를 두는 누군가에 의해 체스속 이야기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64가지 제목을 지닌 글들은 각각 모두가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오히려 모티브라고 할까. 작가는 이 글들을 통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품을 쓸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체크 메이트]의 작가가 어느 글 속에서 그러라고 한 부분도 있었으므로. 이 글들은 각각 작가 '요슈타인 가이더'의 다른 책들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의 부분이다. 

  마치 '이야기를 파는 남자'인 본인처럼 작가의 [희귀한 새], [마야], [카드의 비밀], [소피의 세계], [세실리의 세계], [오렌지 소녀], [크리스마스의 비밀] 등의 부분을 다시 엮어 만든 [체크 메이트]는 놀라울 정도로 64가지 글이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마치 한 세계에 사는 여러 사람들을 카메라를 돌려가며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러브액츄얼리'처럼 분명 모두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하나의 끈을 통해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고 자신들은 모르지만 화면을 벗어난 사람이 보기엔 마지막 장이 덮혀지는 순간 완성되는 이야기. 그것이 이 책이 가진 묘하고 독특한 특징이다. 그래서 체크 메이트. 왕이 붙잡히는 순간. 작가가 글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는 순간 책은 디앤딩 스토리가 완성된다.
 
 제법 아리송하고 형이상학적이다. 그러다보니 철학과 쉽게 연결되기도 한다. 모든 글들이 존재와 지구,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내세우고 존재의 시작과 끝에 대해 탐구해 들어간다. 마법사 못지 않은 변신과 다양한 놀라움으로 시시각각 주제와 소재를 바꾸어가며 우리가 여태까지 잊고 있었던 인간 본연의 심상으로 여행하는 [체크 메이트]는 결과가 있는 답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계속 여행을 한다. 우주의 불덩어리에서 태어난 지구이든, 다른 행성에서 이미 만들어져 지구로 옮겨진 생명체나 인간이든간에 누군가 창조해낸 존재가 생명을 얻는 것은 [카드의 비밀]이나 [마야]에서 묘사된다. [소피의 세계]에는 철학을 어린이와 어른의 대화를 통해 여러 시점으로 훑어 보면서 토론 아닌 토론이 진행되고 [세실리의 세계]는 천사와의 대화와 이야기를 통해 신과 천사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렌지소녀]에서는 부모의 시간대에서부터 자식의 시간대까지 거슬러 내려오면서 내적심리의 변화가 오는 부분을 시간 자유성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머릿속에서 넘쳐나는 생각을 감당하다 못해 글로 토해버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체크 메이트]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사유의 여행을 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도 내면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디론가로 가든 마지막엔 '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들이 머릿속에 새겨질 것이다.

 "오딘 신의 양쪽 어깨에는 까마귀가 한 마리씩 앉아 있잖아요. 그리고 아침마다 그 까마귀들은 세상으로 날아가서 세상을 둘러봤죠. 그런 다음에 그들은 다시 오딘에게 날아와서 자기들이 본 것을 얘기해 주었어요."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래도 세상을 날아다닌 건 바로 오딘 자신이었어. 그가 아무리 자기 옥좌에 앉아 편안히 쉬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결국 까마귀 날개를 타고 세상을 날아다닌 셈이야. 까마귀들은 뭐든지 아주 잘 보니까." - 482,483p

 '자연이 기적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라. 세계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걸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은 동화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겨우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제야 우리는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을 찢어 버릴 마지막 가능성을, 이 기적에 우리를 몰입시킬, 그러나 이제 작별을 고하게 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최후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 4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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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1 - 나로 5907841 푸른숲 어린이 문학 18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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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공 지능 로봇과 컴퓨터에게는
반드시 로봇의 3원칙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로봇의 3원칙은 아래와 같다.

하나,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둘, 첫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 첫째와 둘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 로봇에 관한 지구 연방법 제1조 1항



인간은 열등하다. 피부는 부드럽고 근육은 연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활하다.. 책의 본문에 나온 말이다. 왠지 씁쓸한 진실인 듯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버금가는 한국의 SF판타지라는 타이틀을 걸고 당당하게 불모지의 한국의 장르소설에 도전한 [로봇의 별].



해리포터 보다 재미있다고? 처음 이런 소개글을 보고 글쎄.. 과연 그럴까.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해리포터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했고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미야자키 작품에는 자국의 전통에서 벗어난 세계관 사상이 스며있다. 그가 손댄 하나하나의 작품에 들어있는 주제와 소재의 관심사가 내가 원래 좋아했던 관심사였기도 한 터라 그의 작품이 내 속에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로봇의 별]이 이들 소설에 비교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심 이 작품이 민족주의적인 세계가 아니라 개방적 세계관으로 주제를 살려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책을 마지막으로 덮는 순간. 느낌을 표현하자면, 음. 나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의 장르소설에서도 제법 풀도 나고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별]이 어린이소설이긴 하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어른이 읽어도 전혀 유치하지 않을 만큼 책속의 사건들이 어른인간의 비양심적인 면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읽기에 조금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인간들의 너무나도 교활한 이기심을 비판하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스토리 말이다.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러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그렇지 않은가. 실제가 그런데 이야기속에서도 아이들이 이해하는 게 쉽나 어디.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닌 나로, 아라, 네다. 세 로봇이다. 물론 소수의 인간은 좋은 사람들이라 착한 편에 속해 세 로봇을 돕는다. 나머지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불쌍하고 사뭇 병적이고 또, 이기적이다. 이런 인간들이 자신이 신이라 착각하며 인간과 비슷하게 만든 창조물 로봇. 로봇의 3원칙에 따라 그들은 인간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에 관한 법에서 작가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듯.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으냐?' -65p



백곰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로봇 나로는 자아에 대한 탐색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로봇의 세계를 변하게 하는데 첫번째 계기이다. 이 부분은 윌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에서 자아를 깨달은 한 로봇은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Who am I?' 이 순간 나로는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런 나로에게는 멋진 인간 엄마가 옆에 존재한다.



"나로야, 무서운 건 당연해. 엄마도 무서워. 그렇지만 우리는 용감해. 왜인지 알아? 우리의 선택이 용감한 거니까. 두려움을 모르는 게 용기가 아니야. 그건 어리석은 것일 뿐이야. 진짜 용기는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거야. 어려워도, 힘들얻, 두려워도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나로야, 우린 용감해. 그러니까 가! 어서 가!" - 112p



엄마가 불어주는 용기에 힘입어 나로는 로봇의 별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사건은 벌어지고 1권은 나로의 이야기, 2권은 아라의 이야기, 3권은 네다의 이야기. 그러나 세권 모두에는 이 세 로봇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된다. 이런 구성 자체가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희생,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 이들을 막아서는 방해물들. 이 모든 것들이 흥미진진했고 마치 꿈을 위해 한발짝 용기 있는 걸음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그들 각자의 꿈(독자들 각자의 꿈)에 용기를 얻어 동참하게끔 만든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 평가하면 너무 한국적으로 그린 것 같아 세계적 다양함이 조금 베여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조금더 모자란 점을 보완하면 [로봇의 별]이 만화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



현실 세계의 여러가지 부분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는 [로봇의 별]. '은발의 아기토'의 장면들과 비슷한 부분들도 떠오르게 한다. 아직 미야자키작품들 보다 해리포터 보다 더 낫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 나름대로의 탄탄한 구성과 재밌는 스토리는 나름대로의 매력으로 은은히 빛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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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2010-06-0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방바닥! 책 사진 뒤로 보이는 장판이 대학 때까지 뒹굴던 제 방 것이랑 같은 것 같네요. 왠지 정감이 가는 배경(?)입니다. ㅎㅎ
책 내용도 잘 봤습니다. 다음에 읽어봐야겠네요...

샤이란 2010-06-08 21:37   좋아요 0 | URL
^^ 제법 오래된 장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