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Burst란
, 이온화 세기를 측정하는 이온화상자로 우주선(宇宙線)을 관찰할 때, 때때로 이온쌍이 갑자기 많이 발생하여 우주선의 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현상을 인간 역학 연구에 대입하여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개개인들과 전체를 살펴본 것이 이 책의 중점 내용이다.






  

 특이하게도 이 책의 구성에는 옛날 16세기 헝가리 십자군의 이야기와 현대의 여러가지 현상들 두 부분이 나뉘어져 있다. 역사의 저편에는 ’죄르지 세케이’라는 인물과 ’이슈트반 텔레그디’라는 두 인물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그 이유는 ’세케이’라는 인물은 무작위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법칙에서 아웃사이더인 인간형이고, ’텔레그디’는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사항을 말미암아 바라바시는 텔레그디가 과학적 도움 없이도 미래를 예측했었기 때문에 지금 현대에서 과학적 도움과 통계, 여러가지 실험과 정보를 통해서라면 앞으로의 미래 예측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단지 더 중점으로 연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세케이’같은 아웃사이더 인간형이다. 세케이 같은 인간형은 그리 흔한 인간형이 아니며 빌게이츠, 아인슈타인 등도 마찬가지다. 본문에는 그런 대표적 인물로 ’하산 엘라이’가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의 피부색과 잦은 여행 때문에서 공항에서 항상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수색 당하는 인물이다.


 번번히 공항에서 잡히자 그는 자신이 가는 경로마다 사진을 찍어 개인 블로그에 간단한 메모를 곁들여 올린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런 문제에 적응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공개함으로써 수상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진이나 글을 올린 기간이 매일 일정했던 게 아니라 어느 시기에 몰려 한꺼번에 올린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특성을 폭발성의 행동 패턴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엘라히는 거짓말 탐지 조사를 하고 다시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이런식의 폭발성 행동 패턴 또한 일정한 규칙을 지닌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던져 6이 아닌 다른 숫자만 나올 확률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6이라는 숫자는 일정한 간격에 따라 계속 나올 수 있으며 이런 무작위적 현상 위의 일정한 규칙속에서 멱함수 법칙을 발견한다.


 나아가 앨버트로스의 움직임, 조지아는 어디에?라는 도장이 찍힌 돈의 추적, 아인슈타인이 연구했던 원자들의 궤적을 그린 여러 실험들이 멱함수 법칙과 레비 비행을 묘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레비 비행과 멱함수 법칙의 차이는 사과 맛과 사과의 관계와 같다’ - 277p
에서 저자는 설명한다. 마구잡이로 걸을 때 각각의 점프마다 대체로 비슷한 거리로 이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규칙적 마구잡이 걷기다. 아인슈타인이 연구했던 원자들의 궤적이 그런 부류였고, 좀더 혼란스러운 형태의 마구잡이 걷기는 브로그만이 관찰했던 지폐들의 움직임이다. 이런 경우는 특수하기 때문에 레비 비행이라는 별도의 이름까지 주어졌다. 따라서, 레비 비행은 마구잡이 걷기의 특수한 한 종류이고, 멱함수 법칙은 레비 비행을 여타 평범한 마구잡이 걷기와 구별 지어주는 특징이다. -277p 참조


 저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행했던 사스나 인플루엔자 같이 신종 바이러스가 어디를 근원지로 두고 각자 지역으로 전염되는지 경로를 궁금해했다. 이를 알아야 전염병을 막는 데 사실 그에 대한 자료가 미흡했다. 만일 이 상태로 약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병에 오염시킬 것은 어렵지 않은 예상이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 역학 연구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인물들, 수학, 물리적 형태, 여러가지 상황, 동물실험, 인간실험 등 다양한 통계와 정보들이 쉽게 읽히지만은 않고 오히려 해답보다는 더 생각할 꺼리를 가져다주지만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귀를 팔에 이식한 예술가 이야기는 섬찟하기도 하다. 각자의 이야기들은 모아져 전체의 주제로 귀결되는 자료로 정리된다.  
 

 지금까진 수집된 데이터와 자료들이 폰 마케팅처럼 상업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쓰이고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저자의 목적은 더 다양한 곳에 있다.


 사실 달나라에 가서 분화구에 ’푸아송’이라는 과학자들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의 곳곳을 관찰하지만 일기예보는 지금도 그리 정확하지 않다. 일주일 뒤의 날씨라면 거의 동전 던지기의 확률처럼 찍어 맞추기라 무용지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조지오웰의 ’1984’에서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감시하에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인간의 행동 패턴의 지도를 완성하는 날에는 빅브라더보다 더 겁이 날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학의 양면이랄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같이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전염병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예방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도의 정보라면 선을 두고 용인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듯하다. 그것이 앞으로 고찰해야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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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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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가장 예뻤던 날들을 묻는다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주인공들은 언젠가 사랑을 했던 그 시절, 함께 사랑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방향을 모르고 방황하던 시절, 외로워하며 함께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같은 의견을 가진 영혼끼리 어울려 불의에 맞써 싸우던 때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보면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이 소설은 가장 예쁘고 풋풋한 스무 살 무렵의 청춘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아픔을 견뎌내는 모습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이런 비슷한 배경을 끌어안고 '누군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또한 이십대의 사랑,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아픔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뿌리처럼 얽혀 너무나 예뻤지만 너무도 가슴 아픈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차분하고 절제적인 문장은 서정성과 더불어 가을 밤 조용히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같이 감성을 일깨운다. 자칫 이 단조로움이 지루해질 무렵, 나는 아마 나만의 과거로 흘러가버리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오오, 나는 이 글쟁이들에게 정말 질려 버렸다!
 유익하고 즐겁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은 도무지 쓰려 들지 않고
 땅속에 숨겨진 온갖 더러운 비밀만 캐고 있다....!
 그런 자들에겐 더 이상 글을 못 쓰도록 해야 하는데!
 그래, 대체 이것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글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망상에 잠기고
 말도 안 되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정말이지, 그런 자들에겐 글을 못 쓰게 해야 한다.
 정말 한 줄도 못 쓰게 막아야 한다.                 - V. F. 오도예프스끼 공작

 
 
 도스또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의 본문을 들어서기 전에 써진 내용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지극히 실존적인 글을 썼고 글 속에서 어떤 판단이나 행복함만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의 글이 시작되기 전에 이런 서문 아닌 서문이 실려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분명 이 글 그대로라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오도예프스끼 공작이 글을 막고 싶은 작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속뜻을 살펴보면 반어적으로 오히려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이 너무나도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서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도예프스끼 공작은 도스또예프스끼의 글을 읽고 그의 작품이 한동안 머릿속을 가득 메웠을 것일테다.

 문학이라면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읽고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그건 문학으로써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불현듯 생각나고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고, 그렇게 다시 읽을 때 또달리 읽히는 게 진정한 문학이다.

 나는 달을 가르킬 때 손가락이 아닌 그너머를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책 한권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짧게 줄여)'어.나.벨.'에서의 20대의 외로운 영혼 '정윤'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은 아픔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개인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려 시도하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손을 내밀고픈 또다른 상처를 지닌 '미루'와 '명서'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관계 속에 스며들어 이상적인 삼각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들에게 윤교수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해주며 그대들이 크리스토프인지,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인지 묻는다. 이것은 간접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은 조금 헷갈릴 소지가 있긴 하지만 아마도 내가 세상을 지고 가는 사람이냐, 세상에 업혀 가는 사람이냐를 묻는 궁극적 물음일테다. 윤교수는 삶을 두려워하는 20대 그들에게 위안와 격려, 힘을 아낌없이 불어넣어주는 존재다. 그는 하늘을 밝혀주는 하나하나의 등불이 되라며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마지막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어쩌면, 그들은. 또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듣고 내 안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대여, 당장 밧줄을 집어던져라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라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네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기전에 막상 실제에서 또한 이성보단 행동과 감정이 앞서나가는 경우가 많다. 감성으로 문학을 이해한다면, 문학이니까.. 라는 말로 현실성이 없다고 잡아때기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지금 이 경우처럼.

 시대의 배경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시대는 개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배경 밑에 개개인들이 얽히고 섥혀 겪는 상처와 아픔을 살며시 짚어가며 부각시킨 '어.나.벨.'은 애잔하고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작가가 새벽에 이 작품을 써서였을까. 그 새벽의 뿌엿함과 반투명 어둠을 이 작품에서 확인한 것 같다. 그 시절이 가고 그 뒤로는 아무일도 없었네.. 라는 글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에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께.'라는 문장의 마무리는 시도의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너무 가슴 아파 건들 수 없는 상처들은 다시 희망의 불로 살아난다. 그 불을 살려냄으로써 작가는 미래를 긍정한다.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378p 작가의 말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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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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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갑자기 두 아이가 사라졌다. 각자 다른 집에서의 실종이다. 한 집의 아이는 신발이 없어졌고 다른 집의 아이는 신발이 있다. 한 집에서는 아이가 사라지자 마자 유괴일꺼라 생각하고 한 집에선 원래 숲을 좋아하는 아이라 집안에 있는 숲에 놀러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괴사건이 일어나면 경찰은 먼저 그 부모와 집안 사람들을 조사한다. 많은 경우의 범인이 가족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침묵의 무게>는 각자 인물들의 입장에서 따로따로 이야기를 서술해간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하지 않는 아이 '칼리'와 칼리의 오빠 '벤', 그들의 엄마 '안토니아', 아빠 '그리프'. 말하지 못하는 칼리를 대신해 말해주는 친구 '페트라'와 부모 '마틴'과 '필다', 안토니아의 전 남자친구였으며 형사인 '루이스'의 시각으로 사건은 전개된다.

 긴박감과 몰입도가 강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릴감이 넘친다. 의처증이 있는 그리프는 안토니아를 의심하며 칼리 또한 자신의 딸이 아닐꺼라 생각한다.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지만 갈수록 많아지는 음주량과 더불어 행해지는 폭력은 가정을 산산조각 내놓는다. 안토니아는 한때는 사랑했었던 그리프가 행하는 폭언과 폭력을 당하면서도 쉽게 진실을 직시하지 않고 상황을 피하기만 한다.

 그리프가 아이들에게 하는 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터치없이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바람에 그리프와 아이들 사이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프는 아이들을 학대하고 때리며 폭언을 일삼는다.

 그러던 중 임신한 안토니아가 그리프에게 떠밀려 계단에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아이를 유산하고 그런 아내를 소파에 눕혀놓고 칼리에게 의자에 앉혀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는 데 그 뒤로 칼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제목이 말하는 '침묵의 무게'는 마지막에 칼리가 힘겹게 말을 내뱉기까지 엄청난 희생과 동시에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그에 비해 페트라의 가족은 화목하고 완벽하다. 페트라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페트라가 생긴 후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게다가 페트라는 착해 친구가 없고 말 없는 칼리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너무 행복해서 탈이었을까. 누군가가 시기했는지 끔찍한 사건은 페트라에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없어진 사건을 시작으로 각 인물들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거꾸로 거슬러가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치밀한 구성과 세세한 묘사와 각 캐릭터들의 특징이 뚜렷하고 뛰어난 이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완벽하다. 여러 캐릭터의 시선들로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낸 이 책은 재미와 스릴, 반전과 감동, 가족 개개인의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책임을 일깨워준 한여름 땀방울이 가셔지는 스릴러드라마다.

 비록 가슴 아픈 진실과 결과들이 일깨워준 사실들은 고통스러움을 동반하지만 그만큼 깊이 인식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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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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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보면 노골적인것도 같고 어째보면 뻔뻔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순수한 분노이고 순수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도 어른이 말하면 음흉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면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과 자신이 본 그대로만 말하기 때문에 순수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아이 입장에선 완고하게 돌려 말하는 방법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직설적 화법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볼수도 있을 듯하다. 근데 이런 류는 성인소설에서나 많이 등장하는 관계로 여기 이 작품에서 마주치다 보니 조금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뿜어내는 분노는 억울함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해내 실제로 이 인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그 인물 하나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하나씩 지닌 소설 밖 인물들은 많을 것이다. 그녀가 한 생각도 또한 여러 갈래로 갈려져 나와 여러 실존 인물들의 머리 속에 존재하고 있던 물음들과 고민들이 많을 것이다.

 때론 진실은 너무나 잔혹해 감당하기 힘든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실을 어떻게 승화시키는 가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이 아예 진실을 두려워하며 피하는 것은 그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읽는 내내 어두운 현실 곳곳을 후비벼 다니는 것 같아 섬찟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책 속 소녀가 항상 불행했던 것만은 아닌 것이 항상 짧은 행복을 맛보기도 했다는 것이 다. 술을 먹고 딸을 때리는 아빠,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그런 부모는 진짜 부모가 아닐꺼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들은 가짜 부모이고 진짜 부모는 어떻게든 딸을 사랑하고 이뻐해줄 것이며 먹을 것도 꼬박꼬박 챙겨줄 것이라 생각하는 소녀는 집을 나와 진짜 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소녀는 정확히 자신의 나이를 모르지만 학교를 다니는 다른 아이들의 덩치와 자신을 비교해 자신이 열한살쯤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엔 다방에서 마담과 직원들, 자신 또래의 남자아이를 만나 얼마간 지내던 소녀는 '장미'라는 가명을 쓰는 다방 직원이 못 먹고 몇일간 씻지 못해 더러운 자신을 목욕탕에도 데려가고 덕지덕지한 머리로 잘라 주어 정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혹시 이 '장미'라는 여자가 자신의 진짜 엄마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론상으론 맞지 않지만 진짜 엄마란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뻐해주고 먹을 것도 줄 것이라 생각하는 소녀에게는 '장미'가 그 생각에 들어맞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찌됐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미'가 만나는 백곰이라는 남자를 보며 소녀는 실망하게 된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지하방에 살며 집밖을 나오지 않고 장미가 사다주는 음식을 꼬박꼬박 받아먹고 더러운 집을 치워주는 장미를 항상 깔보고 무시하며 잘난 척하는 백곰을 지독히도 싫어하며 그런 백곰을 왜 좋아하는지 장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백곰이라는 작자가 장미에게 폭력을 휘둘고 뛰쳐나가는 장미를 따라가려다 한 템포 늦은 소녀는 백곰에게서 거지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입혀주고 먹여줬다고 하는 장미에게 들은 말을 조롱으로 바꿔 이야기하며 아랫도리를 벗고 변태행각을 벌이려 한다.

 충격을 받은 소녀는 그 뒤로 그곳을 빠져나와 다방에 다신 가지 않고 기차를 타는데 여기서 한 할머니와 만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벙어리인채 하며 할머니와 지내게 된 소녀는 한순간은 비교적 행복하게 지내지만, 할머니의 불한당같은 아들이 등장하면서 소녀의 운명도 다시 바뀐다.

 이 아들은 아비가 죽었을 때도 오지 않고 집을 나갔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갈 곳이 없게 되자 딸린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두 딸내미와 자신의 천 싸가지 정도 하는 허영심에 부풀은 아내와 함께 할머니집에 얹혀 살면서 등꼴을 빼먹기 시작한다.

 친자식에게서 밀린 소녀는 할머니가 넣어준 돈 뭉치를 마지막으로 행복도 잠시 또다시 떠돌게 된다. 뒤로 소녀는 교인, 폐가에 쳐박혀 사는 허약한 남자, 불량 소녀들을 만나며 삶의 고달픈 여정을 걷게 된다.

 불량소녀로 사회속에서 이단아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도 또한 피해자이다. 새아빠의 수차례 성폭행, 또는 잘못된 부모들, 그 틀 속에서 평범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어디론가로 튀어나가는 아이들. 그들에게 평범은 곧 부정의하고 더러운 것에 순응하는 것이다. 곧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은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들의 방법으로 더러운 것에 맞서는 것이다.

 소녀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떠나는 여정들은 어째보면 모두 겪을 수 많은 일상들일꺼란 생각도 든다. 길거리 소녀에게 행운이 얼마나 많이 따를 것이며 그녀가 더 나쁜 상황에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쥐들이 아비를 갉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악몽을 꾸는 소녀를 이해하기란 나쁜 부모를 만나지 않은 사람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소녀가 진짜 부모를 만났다면.. 이 소설은 결말도 달라지고 전체적 특징도 잃었을 것이다.

 어둡고 자극적인 부분이 많아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만큼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삶들에 대해 생각해본 소설이다. 진짜 부모란 무언가, 세상의 자녀들은 얼마나 진짜 부모를 만나 자신이 자라 진짜 부모가 되고 있나. 새삼 그런 생각도 든다. 이 책의 표지를 볼때마다 왠지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을꺼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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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여행>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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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 비행기 왕복 총 4번, 여행으로 인한 기차는 0번, 국내여행으로 인한 버스는 열손가락은 넘은 듯.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여행 안하는 데 보내는 나는 요즘은 어디 돌아다닌 것도 돈이 너무 깨져 그냥 영화를 보러가거나 레스토랑에 가는 것이 바깥 구경이다.

 내 차가 없으니 어디 갈때마다 스스로 찾아가는데 그러다가 길도 잃고 돈도 두배로 깨져 본적이 많아 돈 때문에서라도 모험을 잘 하지 않으려 한다. 일단 내가 모험을 하고 싶어도 나와 함께 가는 일행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고로 모험을 뛴 여행은 그나마 안전한 국내여행에서 족하므로 국외에서는 한번도 없다고 보면 된다.

 국외 여행은 딱 한번 패키지로 구성된 걸로 친구들과 함께 가본적이 있는데, 원래 패키지란게 정해진 곳에 가므로 별달리 계획해야 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 같은 경우 그 정해진 일정에서 조금 비껴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 친구의 친척이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친척분의 집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함께 쇼핑을 하고 마사지를 받았으나,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그 친척분께서 가이드가 하는 일을 해주었고 대신 우리의 돈이 들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 '집보다 여행'의 작가가 말하는 국외에서의 모험은 해본적이 없다. 일단 여성이라는 점이 여행에선 불리한 점이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면 자유여행을 가서 어쩌다 실수로 숙소가 안 잡혀지면 길거리에서 잘 수도 있고 허튼 사람이 허툰 수작 안 부릴테고, 어찌됐든 남자라면 남이 건들진 않을테니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라면?

 국내에서도 여자는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거닐면 위험하고 대낮에도 자신의 물건을 조심해야 하는데 하물며 국외에서라면? 관광객을 노리는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어쩌고. 거기에 더해 그런 영화들이 많지 않나. '트레이드', '테이큰'. 여행객을 노린 나쁜 범죄였다.

 너무 오버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걱정되는 거다. 진짜 믿을만한 보디가드를 끌고가면 좋을 테지만, 그 보디가드 여행비는 내가 대야 된다면 또 문제다. 그럴 돈은 없으니까.

 <집보다 여행>은 재밌게 여행에 대한 철학을 글쓴이가 이야기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한 통찰, 여러가지 에피소드, 사회와 나아가 인류, 역사 문제까지 논하며 여행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행하는 자가 발견하는 신세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게다가 이 책에는 소설형식과 에세이형식을 만나볼 수 있으며 간간히 나오는 명언들은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림도 곁들여 있다.

 여러 단편들이 기억에 남을 만큼 재밌었지만 그 중에 'TV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224p에 나와 있는 글은 묘하게 뒤틀어 비판했는데, TV를 통해 사람들은 가보고 싶은 곳을 가고 예기치 않은 일도 겪지 않고 편안하게 앉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며 자유를 얻은 사람들을 찬양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진짜 저자가 TV의 이로움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겠지.  

 '연예인 흉내를 내고 그들에 대한 소문을 말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라. 신나는 모험을 하고도 누구 하나 다친 이 없는 이 안전한 세상을 보라.'  - 227p

 
 모든 진실은 일단 밝혀지기만 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문제는 진실을 조작하는 것이다. 

 -  가이 가와사키    p224
 
 진실조작의 한 형태를 반어법으로 비꼰것이다. 재미있다. 저자는 여행을 가서 눈으로 보고 사색에 잠기는 것보다 남겨야 한다며 사진만 이빠이 찍는 사람들을 반대하는데, 어쩌지. 내 친구 중에 딱 그런 애가 있기 때문이다. ^^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둘째치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들에게 떠난 자의 배움과 철학으로 살짝 기름칠을 해줘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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