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메이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김영진 외 옮김 / 현암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 세상과 반대되지만 비슷한 세상의 이야기라면, '체크 메이트'는 이 세상과 다른 듯하지만 흡사한 세상의 이야기다. 앨리스가 '이 약을 먹으시오'라는 약을 먹고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토끼를 따라가는 것처럼 '체크 메이트'에는 체스를 두는 누군가에 의해 체스속 이야기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64가지 제목을 지닌 글들은 각각 모두가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오히려 모티브라고 할까. 작가는 이 글들을 통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품을 쓸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체크 메이트]의 작가가 어느 글 속에서 그러라고 한 부분도 있었으므로. 이 글들은 각각 작가 '요슈타인 가이더'의 다른 책들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의 부분이다. 

  마치 '이야기를 파는 남자'인 본인처럼 작가의 [희귀한 새], [마야], [카드의 비밀], [소피의 세계], [세실리의 세계], [오렌지 소녀], [크리스마스의 비밀] 등의 부분을 다시 엮어 만든 [체크 메이트]는 놀라울 정도로 64가지 글이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마치 한 세계에 사는 여러 사람들을 카메라를 돌려가며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 '러브액츄얼리'처럼 분명 모두 개별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하나의 끈을 통해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고 자신들은 모르지만 화면을 벗어난 사람이 보기엔 마지막 장이 덮혀지는 순간 완성되는 이야기. 그것이 이 책이 가진 묘하고 독특한 특징이다. 그래서 체크 메이트. 왕이 붙잡히는 순간. 작가가 글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는 순간 책은 디앤딩 스토리가 완성된다.
 
 제법 아리송하고 형이상학적이다. 그러다보니 철학과 쉽게 연결되기도 한다. 모든 글들이 존재와 지구,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내세우고 존재의 시작과 끝에 대해 탐구해 들어간다. 마법사 못지 않은 변신과 다양한 놀라움으로 시시각각 주제와 소재를 바꾸어가며 우리가 여태까지 잊고 있었던 인간 본연의 심상으로 여행하는 [체크 메이트]는 결과가 있는 답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계속 여행을 한다. 우주의 불덩어리에서 태어난 지구이든, 다른 행성에서 이미 만들어져 지구로 옮겨진 생명체나 인간이든간에 누군가 창조해낸 존재가 생명을 얻는 것은 [카드의 비밀]이나 [마야]에서 묘사된다. [소피의 세계]에는 철학을 어린이와 어른의 대화를 통해 여러 시점으로 훑어 보면서 토론 아닌 토론이 진행되고 [세실리의 세계]는 천사와의 대화와 이야기를 통해 신과 천사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렌지소녀]에서는 부모의 시간대에서부터 자식의 시간대까지 거슬러 내려오면서 내적심리의 변화가 오는 부분을 시간 자유성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머릿속에서 넘쳐나는 생각을 감당하다 못해 글로 토해버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체크 메이트]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사유의 여행을 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도 내면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디론가로 가든 마지막엔 '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말들이 머릿속에 새겨질 것이다.

 "오딘 신의 양쪽 어깨에는 까마귀가 한 마리씩 앉아 있잖아요. 그리고 아침마다 그 까마귀들은 세상으로 날아가서 세상을 둘러봤죠. 그런 다음에 그들은 다시 오딘에게 날아와서 자기들이 본 것을 얘기해 주었어요."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래도 세상을 날아다닌 건 바로 오딘 자신이었어. 그가 아무리 자기 옥좌에 앉아 편안히 쉬고 있었다고 해도, 그는 결국 까마귀 날개를 타고 세상을 날아다닌 셈이야. 까마귀들은 뭐든지 아주 잘 보니까." - 482,483p

 '자연이 기적이 아니라고 말하지 마라. 세계가 동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다. 그걸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은 동화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겨우 알게 될지도 모르지. 그제야 우리는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을 찢어 버릴 마지막 가능성을, 이 기적에 우리를 몰입시킬, 그러나 이제 작별을 고하게 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최후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 4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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