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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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끝까지 차 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는 [리큐에게 물어봐]. 느닷없이 죽음을 앞둔 리큐의 이야기는 독특한 구성을 지닌다.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영화 [메멘토]와 비슷한 방식을 닮았기도 하다. 다소 읽기 힘든 어체와 다도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로 인해 집중이 쉽진 않았지만, 차와 역사 한편에 남겨진 인물에 대한 새로운 스타일이라 참신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도 되지만, 뒤에서부터 읽을 수도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읽는 것에선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뒤에서 읽는 방법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반적 구성으로 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충돌될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짜임새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점이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구성방식으로썬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처음장을 펼치고 리큐의 죽음 바로 직전 상황의 모습이 소설 뒤 부분을 궁금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할복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언급되는 히데요시는 이 남자와 어떤 사이일까..

 

 

 정말 성질이 급한 사람이 첫장을 읽고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면, 가장 마지막 장을 펼쳐봐도 좋으리라. 그럼 가장 빠르게 궁금증이 풀리리라. 하지만 인내심있게 첫장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의 흐름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리라. 그리고 마치 왠종일 다도에 대해서 나오던 이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향기같이 오묘하고 고아한 향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리라.. 입가에 펼쳐지는 편안한 미소. 이것이 책을 덮을 때 내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무슨 일에나 도가 너무 지나친다만, 내가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다도야. 일본인의 기괴함, 진묘함은 다도에 가장 잘 나타난다 할 수 있어.... 중략.. 그래. 왜 일본인은 그렇게 비좁은 방에 모여 앉아 꼼지락꼼지락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냐. 왜 잡동사니에 불과한 흙덩어리를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며 서로 뻔한 칭찬을 하는 것이야?"

 

 "다도는 저도 이해 못하겠습니다. 다도에 열광하는 일본인은 머리가 돌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 149p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 中

 

 

 발리냐노와 지지와 미겔의 대화가 이해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다지 한가로이 좁은 방에서 차를 타 마시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네, 아름다움을 논하고 다구가 비싼 값에 팔려 나가는 모습이 어쩌면 허영 같기도 해서 도대체 다도가 그럴 가치가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리큐는 미를 제대로 볼 줄 아는 뛰어난 심미안을 가졌고, 그것이 아름다운 한 여인을 열정적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과 닮아 있다. 그런데 그 여인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오히려 완벽한 사랑의 판타지를 리큐의 마음에 심어 주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를 향해 더욱더 아름다운 판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던 리큐. 그래서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잘 알았던 리큐. 그러나 오히려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죽음에 놓이게 된 그는 예술가라고 볼 수도 있다. 예술가라서 까다롭고 결벽증 비슷한 성격도 있었지만 말이다.

 

 - 아내로서 섬겨보면 리큐만큼 힘든 남편은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가재도구부터 청소 방식, 아침저녁 식사에 쓰는 접시 하나를 고르는 방식, 절임 한 조각 놓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짢아했다. 밥을 푸는 방식, 음식에 담는 방식까지 모든 일에 독특한 아름다움을 요구했다. 그에 맞지 않으면 눈썹 언저리가 흐려졌다.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 언짢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소온이 얼마만큼 마음고생을 하는지 남편은 알까.. 이따금 무심코 소리 내서 샛장지를 닫았을 때 눈살을 찌푸린 리큐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을 만큼 슬퍼지곤 했다.  - 193p

 

 

 여자들에겐 사랑을 제법 많이 받았던 리큐는 까탈스런 성격 때문에 화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명확한 심미안과 뒤따른 재치와 기략. 이것이 때론 교활하고 변덕스런 히데요시를 권력의 최고봉에 올려줬을지도 모르나, 때론 그것 때문에 자신덕에 천하를 휘두룰 수 있는 자리에 오른 히데요시가 시기해 그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벚꽃으로 말하자면 그 사내, 꽂지도 않고 가지를 들더니 '져야 비로소, 져야 비로소'하고 읊으면서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야. 꽃잎이 흩날려서 아닌 게 아니라 봄의 풍정은 더하더구나. 그래, 나쁘지는 않았다. 허나 영 아니꼬워." 리큐가 재지와 기략을 종횡무진으로 펼쳐 보일 때마다 히데요시의 분은 더욱 커졌다.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좋은 화기가 들어왔다고 부르기에 갔더니 화기는 보이지도 않고, 다석이 파한 다음 보니 다실 정원 쓰레기 구멍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좌우지간 밉살스러운 사내가 아닌가."

 

- 231p 히데요시의 말 中

 

 

 생각해보면 히데요시에게 리큐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단지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라는 마음이 들은 히데요시가 리큐를 지독하게 질투했던 것 같다. 천하를 가졌으되, 리큐가 가진 것을 히데요시가 가지지 못했으므로. 한낱 질투심 때문에 리큐를 죽이고선 나중에, 리큐의 지략과 아름다움에 관한 안목이 그리워 후회했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죽으면 다도는 그것으로 끝이다. 차를 좋아하는 자는 크게 늘지 모르지. 허나 마음이 없는 다인뿐, 진정한 차를 끓일 수 있는 자는 없어." - 리큐의 말 中 - 197p
 


 리큐의 이 말이 다소 거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솔직함을 드러낼 줄 아는 당당함을 지녔고, 이것이 장인. 또는 예술가의 정신이 아닌가싶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리큐의 죽음 또한 비굴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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