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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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날땐 그때그때 분출시키고, 기분이 변덕스러워 똑같은 행동을 해도 어떨 땐 좋았다가 어떨땐 나빠한다. 사소한 일에도 토라져서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주위 사람들이 힘들고 지치도록 인식시킨다.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함부로 내뱉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누군가에게는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을 수 있는 정치적 언사나 다소 어긋난 상식의 발언을 자리 가리지 않고 정말로 그런냥 멋대로 말해댄다. 이 성격을 가진 사람은 '올리브 키터리지'가 아니다.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런데 놀랄만큼 올리브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나의 이모와도 닮아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닮기도 했다. 이렇듯,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습은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매우 닮아있다. 사실 올리브가 무척이나 까탈스럽고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면은 있지만 그녀의 성격이 유별나게 특이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겐 올리브같은 할머니와 이모가 있지만, 그 외에도 이런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선 내게서도 올리브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비교해보게 된다. 특별한 듯 보이지만 일상과 많은 부분부분이 유사한 '올리브 키터리지'는 바로 그런 얼핏 유별나 보이는 일상속의 평범함을 느긋하고 평이하게 표현해냈다.

 잔잔한 영화가 떠오르는 이 책은 카메라가 비춘다면, 제일 먼저 올리브 부부의 모습부터 렌즈에 담았을 것이다. 그런 뒤 올리브 가까이 사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들을 비추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두번째컷과 세번째컷에서 올리브는 마치 까메오처럼 이곳 저곳 등장했을 것이다.

 이렇듯 그녀를 통해 다른 커뮤니케이션 집단의 연결의 모습과 그들을 통한 올리브를 바라보는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올리브의 모습'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 올리브의 행동 자체를 놓고 독자가 그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올리브의 행동들을 끄집어낼때 그들의 말을 통해 올리브의 성격을 짐작하게 된다.

 이것은 상대성과 개인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령, 올리브의 입장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그녀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건 자신의 방식대로 남편을 사랑했고, 아들을 사랑했다. 또 남에게 피해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녀의 모습은 이해가 된다. 허나 아들과 남편의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눈에 의해서라면 올리브의 모습은 불편하다. 상대적인 입장은 곧 사회성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올리브는 사회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녀 스스로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그 사회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는 정도껏 주위환경에 맞추지만 누군가는 자신에게 환경이 맞춰주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맞추려는 사람들과 맞추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이가 삐걱대기 시작하고 어긋난 토대로 쌓아진 건물은 후에 빌딩 전체가 대략 만들어졌을 때 어느 순간 부실 공사 흔적이 나타나지만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찾아내기엔 대략 난감할 정도로 부담감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그 빌딩을 무너뜨리고 다시 토대를 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건물공사는 허락될지라도 삶에서만큼은 그런 상황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이층이 만들어졌을때라면 또 모르지만 이미 만들어진 빌딩에서 토대의 축을 공사하는 거라..., 그렇기 때문에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습이 더욱더 안타깝고 그녀의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연민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극적으로 달리지 않는 안정감에서 느껴지는 일상감은 뭔가 모를 아쉬움과 행동을 변화시킬 깨달음이 아닌 그저 무언가 잡히지 않는 삶에의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로써 삶을 부분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보게 되는 데 거기서 배우게 되는 것은 지나친 집착을 놓고 시간을 상대하며 기다리게 되는 통찰적인 메시지다. 

 표현이 시나리오 대본처럼 느껴지기도 한 많은 부분이 대화체로 되어 있는 작가의 글솜씨는 몰입과 휴식을 왔다갔다하며 독자를 이완시킨다. 또한 작가의 말은 '올리브 키터리지'만큼이나 인상깊다. "작가가 되겠다면 포기하지 말며,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되, 그럴 수 없다면 계속 글을 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며 습작을 게을리하지 말라" 단순하지만 의미 깊은 이말은 소설의 매력과도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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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색의 즐거움
위치우위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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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우위. 자신의 책이 무려 네 권이나 베스트셀러에 올라갔고 '현대판 루신'으로 불리우며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는 이 작가. 근데 나는 [사색의 즐거움]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중국작가라고 하면 가장 인상깊었던 사람이 '루쉰'이었다. '아큐정전'을 보고 대번 좋아진 루쉰. 루쉰이 검색자료에서 다소 찾기 쉽고 자료도 많은 편이라면 '위치우위'는 인터넷 자료의 질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작가이름을 검색창에 쳐도 작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중국 인세수입 1위 '위치우위'라는 광고 아래 '현대판 루쉰'이라는 명칭이 얼마나 부합될까. 그건 그의 책을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솔직히 [사색의 즐거움]을 읽고 나면 루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쉰과 같은 민중계몽과 치열한 의식 인식에 대한 문제를 많이 거론하지만 위치우위는 루쉰과는 조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는 힘있는 필체의 작가라고 생각된다. 아직 내가 그의 책 한권만 보아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위치우위는 표현이 좀더 감상적인 면이 보인다. 폐허의 역사를 사랑하며 음악과 예술, 문명에 높은 가치를 둔 면에서만큼은 루쉰과 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통해 의식을 깨우치게 만들었던 루쉰에 비해 위치우위는 역사와 삶, 예술을 두루 돌아다니며 홀로의 사색을 통해서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고 엇나간 이성을 바로 잡는다.

 사랑과 우정, 삶에 관한 면에서는 냉철한 현실주의면이 많이 엿보인다. 판타지하고 이상적인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많은 작품에서 판타지한 사랑과 우정을 논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부합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므로 어릴 때부터 현실적인 문학과 작품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나 또한 현실과 이상의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그럼에도 현실과 이상을 노래하는 두 작품들 모두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 그렇기 때문에 이상을 쉽게 포기하기 힘든 면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부분이 단편으로 된듯한 사색적인 면이 많지만 서로 연결을 이루며 뻗어나가 하나를 이루는 위치우위의 사색은 그의 일화인지 아니면 누군가에서 들은 듯한 이야기들과 함께 섞여 그의 사상을 인정하게끔 만든다. 중간중간 중국의 문화와 사상이 뒤섞여 있는 이야기들은 생소한 부분이 많았지만 책장을 덮을 때만큼은 만족스런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학생 한명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교수로부터 퍼부어진 질문에 대한 대답, 엔지니어가 파리에 시찰을 위해 갔건만 프랑스 노부인의 냉담한 질문에 대한 답변, 비극의 숭고함에 대한 정의, 왜곡된 역사가 퍼져나가는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 독일인들의 모습을 숲에 비유한 정곡을 찌른 표현, 일반적 정형과 전략적 정형을 향해 던지는 따가운 일침, 위대한 예술가를 조롱하고 모욕하며 죽게 만든 시대의 무지몽매하고 비양심적인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국제 사회에서의 '문화충돌'이란 말을 쉽게 믿지 않길 바란다. 고개를 숙여 자신을 생각해보라. 매일 기하대수, 고등수학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고, 셰익스피어, 베토벤, 로댕을 감상하면 마음이 즐거워지면서, 같은 중국 문화계의 비방자, 유언비어 날조자, 저작권 침해자들과는 소통이 이루어지질 않는다. 반평생을 돌아보면 내가 겪은 가장 거센 문화적 충돌은 모두 한 국가, 한인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우리의 시선을 외국으로 돌리고 등 뒤에서 다시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56p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가장 큰 적은 가장 가까이 있다고. 문화충돌.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205p 14째줄 오류 - 조가 ->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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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쁜 아빠 - 신화와 장벽
로스 D.파크 & 아민 A. 브롯 지음, 박형신.이진희 옮김 / 이학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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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아선 알 수 없다는 말을 [나쁜 아빠]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예부터 나라 불문하고 많은 영화와 책에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부재하는 곳에서 아이는 더 훌륭하게 커왔다. '아버지'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을 때리거나 학대하고, 아내를 폭행하고 온종일 일을 시키거나 평생을 뜯어먹는 악질적인 남성들로 많이 나왔다.

 [나쁜아빠]의 저자들은 이런 대중적인 전달서에서 흘려지는 메시지로 인해 남성들이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게 되어 위축되고 사회는 그런 남성들을 아닌 남자들까지 합해 전체적인 특징으로 분류해서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가진 사람에게 꼬투리 잡기 좋은 구실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또, 이 극단적인 페미니즘 사람들은 남성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TV나 매체에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남성이 아닌 남자를 등장시켜 모든 이에게 조롱거리로 만든다고 말한다.

 일부 과장되긴 했지만 미국 사회에선 어느 정도 해당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성차별은 역시나 남성주의 사회로부터 여성들이 피해자라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 한국은 1950년대부터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급격한 개화를 통해 극적인 발전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천천히 바뀌면서 자리잡힌 의식적인 문화보다는 겉표지같은 문화가 더 많이 한국의 곳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저런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걸 왜?라는 물음이 아니라 부강국이 그렇게 하니까.. 하는 의식이 자리잡힌 한국에선 어쩌면 [나쁜 아빠]가 보여주는 사례들이 비슷하면서도 어긋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양육권이나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처럼 쉽게만 이루어지지 않고 싱글맘 복지정책 또한 미흡한 것이 사실이며, 미디어에서는 권위적인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악녀로 많이 등장해 치마폭에 감싸안고 아이들을 망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이의 양육이 거의 전적으로 엄마로 인해 행해지기 때문에 아빠들이 동기부여와 의지가 약하다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가 안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남편은 모두 아이를 어떻게 키운거냐며 아내를 탓한다.

 남편은 그저 돈을 버는 가장의 역할만 다하면 된다는 것은 한국사람들의 의식에 많이 내재되어 있는 인식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의식을 어릴때부터 자신의 부모세대에서부터 세뇌되었기 때문에 더 강하다. 요즘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 의식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남편은 집안일과 양육의 일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건 여전하다. 특히 한국은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 남자들은 그저 먹고 놀고 TV만 보면 되지만 여자들은 주방에서 허리가 끊어져라 분주하다. 이 점 또한 미국과 틀린 한국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데 제법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남자가 함께 일을 돕고 싶어도 나이가 있는 할머니들은 오히려 말리며, 남자가 무슨 주방에 드나드나며 급구 말리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외국에서처럼 남자들만 마음 먹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달라져야 하는 사람은 제일 변화가 힘든 기성 보수세대와 남성 뿐 아니라 어느정도 여성에게도 있다. [나쁜 아빠]에서 남성에 대해 안 좋은 인식으로 꼽힌 것 중에 아동학대남성들이나 성범죄자들도 있는데 책 속의 통계가 어느 정도 정확한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실종 되는 아동 중에 많은 수가 가출이나 다시 집을 돌아온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안 돌아오는 실종자수를 상대적인 비율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본 비율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가 아닌가.

 게다가 쉬쉬하고 가리기 급급한 한국에서조차 이따금 뉴스에만 보도되는 아동성폭행범만 해도 끔찍한 수준을 넘었다. 길거리의 어떤 남성도 믿을 만하지 않은 건 후에 일어날 지 모르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물론 삭막하다. 그건 남성이 그렇게 만들었다기 보다 범죄자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책 속 저자가 말한 것처럼 여성들도 남성 못지 않게 학대자가 많다고 한다. 맞다. 여성들도 많겠지. 이건 남성과 여성을 떠나 그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삭막해진 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구분없이 범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고 이런 범죄자들을 혼낼만한 충분한 법이 논란이 많아 그들을 억제할만한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나라의 통솔력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모든 사례와 자료를 떠나서 나는 제 4부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장에서 주장한 저자의 의견에 적극 찬성이다. 이 시도에는 남성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식과 노력, 또한 사회의 변화 또한 무척 필요한 일이다. 서글픈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할만한 여지가 있다면 그것이 가족형태의 진화와 발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아가 그것이 선진국이라면 걸어야 할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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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행복한책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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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 나름대로 책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히 잡힌 사람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나름의 독서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안에 소개되어 있는 30권의 도서중 일부를 읽었거나 읽지 않았다면 도서목록만 있어도 읽고자 하는 데 번거로움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등한시 해온 사람들에게 유용한 활용서가 되지 않을까싶다.
 

 

 인문서이지만 계발서에 가깝기도 한 이 책에선 좋은 책들의 주옥같은 속내용이 많이 언급된다.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평균 5-7권정도 읽는 나는 여기에서 소개된 5권정도를 읽었다. 그 중에 몇권은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책이고 읽지 않은 몇권은 읽고자 하는 목록에 뽑아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책들이 몇권 되었다.

 

 

 어릴때부터 서점이나 도서관이 우리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거에 비해 나를 둘러싼 곳은 책과 먼 환경이 주로 배경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가는 동물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친구를 사귀었고 친구들의 집엔 그당시 내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큼의 책이 있었다. 용돈이 부족했던 나는 엄마에게 준비물 산다고 받은 돈에서 책방에서 책을 빌리는데 많이 썼다. 그러는 바람에 학교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 뒤에 나가 서있는 날이 흔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와 반납하지 않은 책도 다섯 손가락안에 들만큼만(!) 있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책은 몇번을 되새김질하면서 읽었던 책 '데미안'과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너덜너덜한 누런 표지를 가지고 있는 그 책들은 아직도 내 책꽂이에 꽂혀져 노장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렇듯 내게 어릴때부터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물건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이 아닌가 싶다.

 

 

 나름대로 확고한 나만의 책읽는 철학이 있는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법에 100%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책과 책에 대한 배경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관성 있는 책들을 읽는 것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기도 한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자의 독서법은 다독가에게는 별다른 방법이랄 것도 없지만, 책을 한달에 한권도 안 읽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복잡한 일이 독서라는 선입견부터 새기게 될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교양인의 책읽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교양인'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우월감이 앞서는 느낌이 있다.

 

 

 세상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보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을 원한다. 한 사람이 있는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면 이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럴때 책은 위로와 안식, 치료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속마음을 말할까, 말하지 말까.하는 망설임 때문에 오히려 오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글로 인한 소통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통을 위해 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을 통해 배우고 익히지 않는 다면 사람은 그저 지구의 배경에 지나지 않음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내가 이해받기 위해서는 남을 이해해야 하고 남을 이해함으로써 내가 소탈해질 수 있는 끈이 되는 책은 현대의 차갑고 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꼭 필요한 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든지 기억에 남는 문구나 충고를 건지듯이 나는 이 책에서 감성을 두드리는 몇권의 소중한 책과 그 책의 가슴 찡한 문구 몇개를 소개받았다. 그 중 책의 일부 내용이다.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땅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조종弔鐘)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 존 던(Donne, John),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문 -

 


 프레히트가 어렸을 때 즐겨 읽었다는 로이드 알렉산더의 <타란의 대모험>에서 마법사 달렌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 아들 타란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해답을 찾고 있는 그 과정이 해답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 87p

 

 

 "해답을 찾고 있는 그 과정이 해답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때가 많다." -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달렌과 의견이 같다.

 

 

 

 책속에 언급된 30권의 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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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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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 아닌가요?' 프롤로그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녀의 물음. 이 사람. 도대체 누구일까..?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 '텐도 아라타'는 이 책에 대해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이나 괴짜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겐 일단 경계심부터 갖는다. 사회분위기탓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테다. 순례자도 종교적인 이유도 아닌, 단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남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설득시키기도 힘든 이 남자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하루에 평균 10명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의 일부분일 뿐이며, 일년에는 경우에 따라 몇만명이 죽기도 한다. 한국에는 하루에 자살로 인한 사망률만 평균 35명이라고 한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큰 사건사고에선 사망자는 성별과 숫자로 표시되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사건의 가해자, 사고에 대해서만 기억한다. 죽은 이들이 누굴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 받았으며, 누가 이들에게 감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잔혹하고 충격적인 사건일수록 사람들에겐 이슈화가 되지만 길어도 1-2년정도의 기간밖에 기억속에 남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죽고 난 후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특별한 죽음처럼 차별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고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화장되어 처리되기도 한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만, 과연 외면당하는 외로운 죽음을 위해 애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외로운 죽음이 나라면, 죽어서도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다른 영혼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애도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하는 사람은 성인이라거나 모든 것을 평정한 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 형제같기도 하고 사촌같기도 하고 아들같기도 하고 손자같기도 한 평범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다. '애도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만큼은 특별난 임무이지만, 그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는 가까움이 더 친근감이 들게 한다. 그는 무차별 살인자나 끔찍한 살인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스럽고 그런 자들에 대한 애도행위는 보류중일때도 있다. 간혹은 감정이입을 너무 한 탓에 죽음에 유혹되기도 한다.

 

 

 이런 평범한 그가 평범하지 않은 애도하는 여행에서 만난 건들건들한 기자 '마키노'는 처음엔 이 사나이를 비웃는다. 마키노는 기자 중에서도 '에그노'라는 별명이 붙은 제법 불량적이고 괴팍스런 기자다. 그가 쓰는 기사는 대부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기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일부분의 사실로 전체를 끼어맞춘 일그러진 진실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에게서 신문이나 잡지를 쥐어들게 하는 선택으로 작용하고 시청률에 영향을 끼치니 이런 일이 밥줄인 그에게는 인간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취재대상이 되고 진실보다는 일부의 자극을 원하게 한다. 그런 마키노가 애도하는 청년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애도하는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마키노는 여태까지의 자신과는 다르게 본능이 움직여 청년을 관찰하고, 자신속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죽은 아버지로 기억되는 마키노. 그는 죽음과 가까이 마주치게 됐을때야 자신을 위해 슬퍼해줄 누구도 없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애도하는 사람'을 기억해낸다.
 


 '난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했는데 전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 시체가 내년 봄에나 운 좋게 발견된다 해도 그때는 뼈만 남았을 테지. 신원을 증명할 건 아무것도 없고 말이지..., 싫어. 싫다고, 싫어... 한 사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이여, 너는 백골로 발견된 내 소식을 들으면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주겠지? 그리고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무릎을 꿇고, 내가 아직은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오른손에, 내가 묻힌 이 땅 냄새를 왼손으로 받아 가슴 앞에 모으고 나를 기억하려 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 - 431p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 432p 


 
 지독한 구두쇠였던 '스크루지'는 동화를 아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신을 찾아온 죽음과 영혼의 신들과 여행을 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스크루지는 자신의 모습을 제3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스크루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스크루지, 누구도 그에게 감사해하지 않았던 스크루지. 어째, 맥락이 스크루지를 떠오르게도 하는 마키노는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되고 헛된 삶의 끝에서도 고독한 영혼을 위해 애도해줄 청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무엇보다도 세상에 필요한 이가 바로 그였음을.

 

 

 불타 죽는 소녀를 보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녀의 일부분의 삶에서 들여다본 인간의 추악한 면 때문에 오히려 잘 죽었다고, 죽어도 쌌다고. 죽어도 싸다고 말한 그녀의 삶의 과거는 세살배기 아기의 엄마였고, 남편의 사랑스런 아내였으며,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영원히 그럴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족에게 한 순간의 비극으로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게 된 그녀가 빠지게 된 자포자기의 어두운 길. 그런 그녀의 죽음이 쌌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당하지 않을까. 


 
 '애도하는 사람'의 가족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청년을 보면 가족들 또한 평범치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소설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어떤 판타지도, 어떤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이도 없다. 혼란도 느끼고 갈등도 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그의 가족 또한 이런 여행을 하는 아들의, 남매의 입장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를 보인다. 단지, 애도하는 사람의 어머니인 준코, 아버지인 다카히코, 여동생 미시오는 각자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개개인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뿜어내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할수도 있겠다.

 

 

 준코와 다카히코 부부를 알게 된다면, 결코 그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다카히코는 말이 없고 자기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극히 내성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낸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렸을 때 전쟁으로 형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말수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능력이 있는 한 남자다. 아내가 죽고 난 후 자신도 따라 죽을려고 마음을 먹는 다카히코를 보면서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준코. 그녀는 여성으로써 존경할만한 강인한 정신과 영혼의 소유자로, 노멀적이게 이 소설을 읽고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화목한 가정에도 불행은 찾아오고, 죽음은 찾아온다. 애도하는 청년이 어째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 어린 새의 죽음,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 소아과 아이들의 죽음.. 이 모든 죽음에서 그는 슬픔과 아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조금씩 자라 이제 곧 날갯짓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 123p


 
 "여기에 넣어둘 거야... 잊지 않도록, 이 아이, 여기에, 넣어둘 거야. 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걸... 내 안에 넣어둘거야." - 124p

 

 

 그래서 청년은 결심한다. 자신 안에 모든 이의 죽음을 넣어두겠다고.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어쩌면 죽은 이들이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를 선택한것인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한발짝 늦는 청년 '시즈토'는 세상의 낯선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모든 신체의 기능이 정지됐을때 가장 오래 남아있는 신체기관 능력이 청각이라고, 준코는 마지막에사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시즈토가 자신을 애도하는 소리를 듣고 느끼게 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진정 사랑받았던 사람에게서..


 

 "레지.. 재미있는 연상퀴즈 들어볼래? 있지. '나의 암'이라고 문제를 내고." "'사랑에 빠진 뒤에야 원수 집안이란 걸 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푼다."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 준코        - 274p, 275p

 

 

 

 '공무도하'에서 사건사고 현장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며 죽음과 인간의 치졸함, 잔인함에 대해 열렬히 기사를 써대는 기자를 통해서 느껴지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의 삶에 대하여 '던적스럽다'고 표현하며 다소 회의적으로 소설을 마친 작가 '김훈'씨도 '애도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는 좀더 긍정적인 세상이 그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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