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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이 사람 아닌가요?' 프롤로그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녀의 물음. 이 사람. 도대체 누구일까..?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작가 '텐도 아라타'는 이 책에 대해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이나 괴짜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겐 일단 경계심부터 갖는다. 사회분위기탓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테다. 순례자도 종교적인 이유도 아닌, 단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남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설득시키기도 힘든 이 남자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하루에 평균 10명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의 일부분일 뿐이며, 일년에는 경우에 따라 몇만명이 죽기도 한다. 한국에는 하루에 자살로 인한 사망률만 평균 35명이라고 한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큰 사건사고에선 사망자는 성별과 숫자로 표시되고 이를 보는 사람들은 사건의 가해자, 사고에 대해서만 기억한다. 죽은 이들이 누굴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 받았으며, 누가 이들에게 감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잔혹하고 충격적인 사건일수록 사람들에겐 이슈화가 되지만 길어도 1-2년정도의 기간밖에 기억속에 남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죽고 난 후 그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특별한 죽음처럼 차별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고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화장되어 처리되기도 한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만, 과연 외면당하는 외로운 죽음을 위해 애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외로운 죽음이 나라면, 죽어서도 얼마나 위안이 되고 고마움을 느끼겠는가. 다른 영혼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애도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하는 사람은 성인이라거나 모든 것을 평정한 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 형제같기도 하고 사촌같기도 하고 아들같기도 하고 손자같기도 한 평범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다. '애도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 것만큼은 특별난 임무이지만, 그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는 가까움이 더 친근감이 들게 한다. 그는 무차별 살인자나 끔찍한 살인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 혼란스럽고 그런 자들에 대한 애도행위는 보류중일때도 있다. 간혹은 감정이입을 너무 한 탓에 죽음에 유혹되기도 한다.
이런 평범한 그가 평범하지 않은 애도하는 여행에서 만난 건들건들한 기자 '마키노'는 처음엔 이 사나이를 비웃는다. 마키노는 기자 중에서도 '에그노'라는 별명이 붙은 제법 불량적이고 괴팍스런 기자다. 그가 쓰는 기사는 대부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기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일부분의 사실로 전체를 끼어맞춘 일그러진 진실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에게서 신문이나 잡지를 쥐어들게 하는 선택으로 작용하고 시청률에 영향을 끼치니 이런 일이 밥줄인 그에게는 인간의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취재대상이 되고 진실보다는 일부의 자극을 원하게 한다. 그런 마키노가 애도하는 청년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애도하는 청년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마키노는 여태까지의 자신과는 다르게 본능이 움직여 청년을 관찰하고, 자신속에 잃어버린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죽은 아버지로 기억되는 마키노. 그는 죽음과 가까이 마주치게 됐을때야 자신을 위해 슬퍼해줄 누구도 없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애도하는 사람'을 기억해낸다.
'난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했는데 전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 시체가 내년 봄에나 운 좋게 발견된다 해도 그때는 뼈만 남았을 테지. 신원을 증명할 건 아무것도 없고 말이지..., 싫어. 싫다고, 싫어... 한 사람,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이여, 너는 백골로 발견된 내 소식을 들으면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주겠지? 그리고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무릎을 꿇고, 내가 아직은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오른손에, 내가 묻힌 이 땅 냄새를 왼손으로 받아 가슴 앞에 모으고 나를 기억하려 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 - 431p
당신을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이 세상에 넘쳐나는 죽은 이를 잊어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당하거나 잊혀가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별 볼일 없는 사망자로 취급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 432p
지독한 구두쇠였던 '스크루지'는 동화를 아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신을 찾아온 죽음과 영혼의 신들과 여행을 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하면서 스크루지는 자신의 모습을 제3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 스크루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스크루지, 누구도 그에게 감사해하지 않았던 스크루지. 어째, 맥락이 스크루지를 떠오르게도 하는 마키노는 죽음과 생의 경계에서 깨닫게 된다. 자신의 잘못되고 헛된 삶의 끝에서도 고독한 영혼을 위해 애도해줄 청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무엇보다도 세상에 필요한 이가 바로 그였음을.
불타 죽는 소녀를 보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녀의 일부분의 삶에서 들여다본 인간의 추악한 면 때문에 오히려 잘 죽었다고, 죽어도 쌌다고. 죽어도 싸다고 말한 그녀의 삶의 과거는 세살배기 아기의 엄마였고, 남편의 사랑스런 아내였으며,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영원히 그럴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족에게 한 순간의 비극으로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게 된 그녀가 빠지게 된 자포자기의 어두운 길. 그런 그녀의 죽음이 쌌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당하지 않을까.
'애도하는 사람'의 가족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청년을 보면 가족들 또한 평범치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소설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어떤 판타지도, 어떤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이도 없다. 혼란도 느끼고 갈등도 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는 인간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그의 가족 또한 이런 여행을 하는 아들의, 남매의 입장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를 보인다. 단지, 애도하는 사람의 어머니인 준코, 아버지인 다카히코, 여동생 미시오는 각자 개성적인 캐릭터들로 개개인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사랑을 뿜어내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특별할수도 있겠다.
준코와 다카히코 부부를 알게 된다면, 결코 그들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다카히코는 말이 없고 자기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극히 내성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낸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렸을 때 전쟁으로 형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게 되어 말수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능력이 있는 한 남자다. 아내가 죽고 난 후 자신도 따라 죽을려고 마음을 먹는 다카히코를 보면서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준코. 그녀는 여성으로써 존경할만한 강인한 정신과 영혼의 소유자로, 노멀적이게 이 소설을 읽고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런 화목한 가정에도 불행은 찾아오고, 죽음은 찾아온다. 애도하는 청년이 어째서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는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죽음, 어린 새의 죽음,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 소아과 아이들의 죽음.. 이 모든 죽음에서 그는 슬픔과 아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조금씩 자라 이제 곧 날갯짓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 123p
"여기에 넣어둘 거야... 잊지 않도록, 이 아이, 여기에, 넣어둘 거야. 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걸... 내 안에 넣어둘거야." - 124p
그래서 청년은 결심한다. 자신 안에 모든 이의 죽음을 넣어두겠다고.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어쩌면 죽은 이들이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를 선택한것인지도 모른다고.
언제나 한발짝 늦는 청년 '시즈토'는 세상의 낯선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정작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모든 신체의 기능이 정지됐을때 가장 오래 남아있는 신체기관 능력이 청각이라고, 준코는 마지막에사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시즈토가 자신을 애도하는 소리를 듣고 느끼게 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진정 사랑받았던 사람에게서..
"레지.. 재미있는 연상퀴즈 들어볼래? 있지. '나의 암'이라고 문제를 내고." "'사랑에 빠진 뒤에야 원수 집안이란 걸 안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푼다."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 준코 - 274p, 275p
'공무도하'에서 사건사고 현장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며 죽음과 인간의 치졸함, 잔인함에 대해 열렬히 기사를 써대는 기자를 통해서 느껴지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의 삶에 대하여 '던적스럽다'고 표현하며 다소 회의적으로 소설을 마친 작가 '김훈'씨도 '애도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는 좀더 긍정적인 세상이 그려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