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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 티베트에서 만난 가르침
현진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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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종교에는 배울 점이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은 종교에서 썩 잘 배우지 못하다는 것이 아닐까싶다. 종교 자체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인간이지 종교 자체가 바라는 목표는 아니었다고 본다. 한국인들도 불교인이 많으니 이 책에서 만나는 티베트의 불교는 낯설지 않았다.

 무종교라 할지라도 절에 가서 절도 해보았고, 절밥도 먹어보았으니. 그렇다고 교회나 성당에 안 가본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기독교 같은 타종교는 교인이 부자가 많은 반면, 불교인은 부자인 사람이 없다고. 그러고 보니, 불교인들은 모두 욕심을 버리라는 종교의 가르침 때문에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가 힘들런지도 모르겠다. 세상사를 살아가기엔 다소 불편한 종교가 불교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르침 대로 나 혼자만 실천하자면 아무래도 절에 들어가서 수양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지 않을까.

 그래도 왠지 수양되어 있고 깊이 있어 보이는 진정한 불교인들이 더 친근하고 자기 안의 부처를 깨달아라는 가르침이 더 가치있어 보이고 좋다. 책속에는 여러가지 티베트 불교에 대한 상식과 뜻하는 바가 멋진 사진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의미에서 건네는 가르침이 까불랑꺼리고 산만한 내  정신을 한동안  숙연해지게 만든다.   


 

 

 어느 회교사원의 벽에 이런 시 구절을 적어 놓았다고 한다.
 "운명에는 이틀이 있다. 하루는 당신의 편, 다른 하루는 당신에게 등을 돌리리라. 그러므로 운명이 자신의 편일 때 자만하거나 무모하지 말며, 운명이 등을 돌릴 때 참고 기다리라." 181p

 이 말이 전하는 의미를 깨달을 때가 종종 있으나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그때그때 다시금 깨닫게 되는 말이다. 운명이 등을 돌릴 때 참지 못하는 인내심. 나는 가끔 이런 한계에 도달하곤 한다.

 
 무지에 대한 잘못을 탓하는 것도 불교의 가르침이다.
 "여기, 뜨거운 돌이 있다고 하자. 뜨겁다는 사실을 알고 잡은 자가 화상을 많이 입겠는가, 모르고 무턱대고 잡는 자가 화상을 많이 입겠는가?"  174p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하는 일들이 없었는지 지난 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이 종교는 확실히 종교 자체의 가르침은 숭고한 정신을 지닌 듯하다.

 근데 왜 중국인들은 티베트 종교인들을 그렇게 억압하고 식민지화하려 하는 걸까. 그들도 종파가 다를 뿐 많은 이들이 불교의 한 갈래를 믿고 있지 아니한가. 탐욕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그들은 종교인이라고 말하면서도 가르침이 주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티베트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안타까운 와중에 중국인들이 원하는 이득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불교가 말하는 전생의 업이나 착한 사람은 복 받고 못된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그 말이 가끔 세상의 단면들을 관찰하면서 회의가 들긴 하지만, 그런 근본적 토대가 없더라면 세상은 더 험악한 세상이 될테므로, 그러고자 행동하고 뜻을 전하는 게 여전히 지금의 세상이나마 유지하는 근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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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1 만화 상상력 사전 3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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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좋으니, 만화책으로 만들어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어디에도 이런 백과사전은 없었다. 이미 [개미]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는 베르나르는 개미에 대한 애착을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낸다. 이 책에서도 빠짐없이 개미는 등장한다. 인간처럼 집단을 이루고 사는 개미들은 인간들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그가 눈을 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개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여섯살때부터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그가 이미 작가가 될 운명을 지녔던 것 같다.  

  그 밖에도 그는 곤충, 쥐, 공룡, 돌고래 같은 동물들도 등장시켜 재미있는 상식들을 가르쳐준다. 가령, '스테노니코사우르스'는 인간의 선조가 겨우 뾰족뒤쥐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을 때 우리보다 훨씬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지구에 일어난 재앙으로 모든 공룡들이 멸종되지 않았다면, 이 종들은 우리보다 진화되어 지금 인간의 자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하는 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에선 웃음이 난다.

 

   이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기계를 발명시키고, 빌딩을 짓고,

    

  실험실에선 인간이 실험대상이 되어 실험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말이다. 내 생각엔 어쩌면 그들은 지금의 인간처럼은 진화되지 않았을 꺼란 생각도 든다. 베르나르의 의견대로라면, 다윈이 주장한 것처럼 모든 생명체가 긍정적으로만 진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인간의 모습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진화되는 생명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테노니코사우르스'는 착하게 진화됐을런지도 모를 일 아닐까. 자기들끼의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뇌가 우리보다 무거운 돌고래 또한 긍정적이게 진화되는 생명체로 우리가 모르는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 누가 알까.  

  돌고래들은 인간이 가까이 와도 친근해하고 자기네들끼리도 장난과 놀이를 즐긴다. 게다가 사람의 말귀도 잘 알아듣는 것 같고 옛날 전쟁시에는 인간에 의해 이용당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책에는 흥미롭고 뇌를 자극시키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원작이 워낙 충실한 내용이라  만화 또한 그만큼의 만족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느끼게 된다.

 

  아르헨티나 개미는 아르헨티나인 '체게바라'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어 또다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개미에게서 찾아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이 정말 신기했는데, 그렇게보면 인간 또한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말을 할 뿐 그 밖에는 다른 생명체들이 지닌 장점을 닮지 못하고 탐욕과 나쁜 짓을 일삼는 것만이 인간만이 가진 단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뭐, 희망을 가져본다면야 단점을 개선하려고자 노력하며 장점을 취하는 소수의 인간들에게서가 아닐까.

 

 한편, 개미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여왕개미는 첫번째 알과 두번째 세번째 알까진 건강한 알을 놓기 위해서 먹는다고 한다. 그중 첫번째 낳은 알 중 하나는 키워 무수리로 쓰는데 , 정상적인 알을 놓게 될 때 그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들이 이 첫 세대 개미를 죽인다고 한다. 왠지 슬픈 역사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년 봄에 날개짓을 하며 이리저리 집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던 개미들을 생각해보니, 그게 여왕개미들의 서글픈 여행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여행 도중 대부분의 암컷 개미가 죽고 그 중 살아남은 소수만이 개미제국을 만든다. 이들 개미제국에선 배울 것이 참 많다. 개미들은 부분 부분 개인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협동하며 유기적인 형태로써 살아가는 데 그 모습이 어쩐지 그렇게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작은 크기와 인간의 엄지손가락 하나면 끝나버리는 생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강한 생명들일 것이리라.

 

 쥐들의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쥐띠라 그런지 이상하게도 정이 가는 쥐들. 이들에게서 또한 베르나르의 관찰과 다른 학자들의 실험에 의해 인간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쥐들로 실험을 하는 건 이제 보편적이다. 모든 실험실에는 실험쥐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만큼 인간과 닮은 점이 많고 꾀를 부르는 그들에게서 도출해낼 만한 괄목할 결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섯만 모이면 2마리는 먹이를 구해오는 자가 되고, 2마리는 먹이를 구해온자의 먹이를 빼앗는 자들이 되고, 1마리는 홀로 먹이를 구하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며 나머지 1마리는 빼앗지도 제 스스로 구하지도 못하는 쥐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명체마다의 특징을 인간들은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꾀돌이 쥐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외통의 쥐처럼 한 곳에 몰린 쥐들이 갑자기 멈춘 채로 맴돌다 죽는 현상을 말하는 이 현상은 자기네들끼리 한 자리에서 맴돌다 꼬리가 엉켜 죽기도 한다고 한다. 이때 위 그림처럼 불구가 된 쥐떼에게 먹이를 주는 쥐도 있다고 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다. '라따뚜이'와 '스튜어트 리틀' 등으로 만화로도 친근한 쥐가 실제에서도 사람들이 발견시 고함을 지르며 도망다닐만큼 혐오스런 존재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개미들이 당해내지 못하고 인간조차 감당하기 힘들 곤충을 쥐들이 손쉽게 다루는 모습 또한 재미난다.  

 이처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관찰들과 사실, 감동스런 이야기를 통해 지성과 감성을 모두 충족시켜 주는 명작이다. 만화로 나오니 보는 즐거움 또한 새록새록하니 또다른 즐거움이다.  

 (58p 오류 - 네번째 칸 말풍선에 돌고래 뇌의 무게를 여자가 잘못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전 얘들의 뇌가 1450그램이라는 것에 동의 못해요.' 근데 돌고래 뇌의 무게는 1700그램이라고 두번째칸에 나와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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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먼로의 죽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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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그 짓은 한다'는 부정적인 말이 통하는 궁색하고 무책임하며 호색한 '버니'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결코 뿌리 내리지 못하는 남자의 비참한 삶이란,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낸들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화장품 방문 판매원이 들리는 집마다 여자들에게 찝쩍거리며 끈적하게 군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나면 얻게 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또다른 욕망이다. 그런 그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 역시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의 아내는 그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헤어졌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녀는 싱글맘일지라도 또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로 차마 다 하지 못할 진상 '버니'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에게 추잡한 짓을 한 것을 알아챈 뒤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정과 배신감의 충격으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아다시피 우울증이란 무서운 감정이다.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당사자를 질식시키는 것이 이 우울증이다. 이것을 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이건 감정이다. 벗어나기 힘겨운 어두운 감정이 보이지 않는 몸 전체를 까맣게 둘러싸고 있는 것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상인 '버니'는 그런 아내를 가끔씩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기까지 하면서 다른 여자들을 꼬셔 자신의 끊이지 않는 욕망을 채운다. 아내가 감정 때문에 신체적으로도 병들어가고 있을 때 그는 한창 신날때다. 아니 그도 그것이 신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생활이 아닌 것보다는 낫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분명 그도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달리 무얼 할지 모르는 '버니'. 가장의 책임도 가정의 평화와 화목함도 전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과 끔찍하고 더럽고 치사스러운 것을 먼저 보게 된다. 엄마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이를 떠맡은 '버니'의 짐짝처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옮겨다니며 그의 해괴망측한 '짓거리'들을 관찰하는 아이의 눈은 밝을수가 없다.

 버니의 죽음은 어쩌면 자신이 죽음의 길을 스스로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에겐 그의 죽음이 그다지 피해가 될 것도 없다. 무가치한 인간의 죽음. 하지만 그럼에도 따지고 보면 그는 자신이 똑같이 닮은 부친의 재현이다. 부친이 아들에게 행한 불행은 버니에게서 마감되었다. 버니와 아이는 어른과 아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완벽하진 않다. 길 잃은 인간 '버니'는 낯설지 않다. 사실 버니같은 인간들이 꽤 된다. 또는 아내와 아이를 버리거나. 그러나 진상이고 몹쓸 인간 '버니'조차도 부분적으로는 불쌍하고 또 불쌍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종종 있다. 삶,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지려고도 하지 않고 일상에서 벗어났으면서 욕망을 분출하는 인간. 진화상으로만 본다면 무가치한 존재이자 덜 진화된 것이라고까지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안도가 든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배를 곪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는 좁은 승용차라는 불안정하고 불위생적인 환경과 백과사전 하나를 읽으며 지식의 즐거움을 알지만 학교도 가지 못하는 버니의 아들에겐 아비와 같은 생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이라는 무한한 길이 열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 지 모르더라도 '버니'를 따라다니며 못 볼 꼴 다 보는 것보다는 아동보호소가 안정스럽지 않을까.  

 작가는 아마도 독자가 이런 감정이 저절로 들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종의 반어적 형태 말이다. 최악의 상태를 노출시킴으로써 옳은 길을 보여준다. 뭐 이런 것이 아니었지싶다. 어둠이 있기에 빛을 정의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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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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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란 어느 시대에도 어쩔 수 없는 모순 덩어리이지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으리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도 몹시 상처받기 쉬워, 어른이라면 견딜 수 있을 어렵잖은 일로 바스러져 버리기도 하죠. ... 마치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문제는 유리로 된 망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 460p
 
  모든 곳에 CCTV가 달려 있고 비상구를 벗어나면 경비실에 있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갈 수 없는 빌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밀실 살인사건'. 사장실에 있던 사장이 죽자 그 옆방에 있던 전무가 의심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작 그는 그 시간동안 잠에 빠져 있었으므로 무죄를 주장한다. 마침 비서는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말한다. 그러나 그 증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호사 준코는 그의 결백을 풀기 위해 도둑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열쇠전문가 '에노모토'를 부른다.


 먼저 '에노모토'와 '준코'가 실마리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전반부를 채운뒤, 후반부에는 다시 새로운 인물의 전후사정에 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친이 빌린 돈 때문에 사채업자로부터 쫓기게 된 '아키라'. 그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를 가지고 자신의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든다. 새로운 신분으로 자신을 감추었지만, 사채업자를 상처 입혔던 터라 신변에 위험을 느껴 지역을 바꿔가며 도피생활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가짜 신분으로 살 수만은 없었던 아키라는 위험한 결심을 하게 된다.


 우선, [유리망치]는 구성만큼은 뛰어난 편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이야기 속에서 각자 풀어가는 실타래를 붙잡고 글을 읽다보면 서로 맞아 떨어지며 맞물리는 작용들에서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유리창 자체를 드러낸다는 부분은 상상이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너무 피곤한 범죄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이 책의 매력은 아무래도 풀어나가는 방식과 구성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전일과 코난 같은 추리만화가 생각나게 하는 <유리망치>는 만화와는 또다른 소설만의 추리적 재미를 지니고 있다. 다소 중간중간 너무 설명을 길게 빼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추리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다.


 1+1=2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1+1=창문 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책을 더 재미나게 보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만 놓고 보자면 재미로는 완전 만족스럽진 않지만, 방식과 구성면에서는 싫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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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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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과기록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으며 이름 조차 정확하지 않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법을 지키며 사는 시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한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을 ’투명인간’이라 칭하면서 만일 스스로 원한다면 완전 새로 태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16세 이후로 투표권을 잃었다가 36세가 되어서야 새로운 이름과 신분으로 투표권을 지니게 된다. 한번도 투표조차 해보지 못한 범죄자. 그런 그에게 투표권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나라의 시민으로써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건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라는 소재로부터 시작된다.

 영화 시나리오를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가 다시 소설용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듯이 책을 읽다보면 영화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하다. 뉴욕의 뒷골목 배경의 마약, 매춘, 범죄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 이 책을 보면 영화 ’아이 러뷰 유 뉴욕’에서 보여준 밝은 모습의 뉴욕과는 상반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부패한 도시의 모습과 가장 사랑과 활기가 넘치는 모습의 도시의 모습이 같은 도시라는 것이 어째보면 아이러니스럽듯이, <시티즌 빈스>에서 또한 주인공의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존재감 없는 과거의 모습과 투표권을 가진 투명인간과 비슷하지만 존재감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살인이 일어나고 형사가 등장하고 마피아까지 나와 이야기가 얽히고 섥히지만 그런 이야기들로 이 책을 구성했을지언정 알맹이는 빈스를 통해 범죄자의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악과 선의 대립이 아닌 회색들의 대립을 엿볼수 있다. 그 속에서 정치가와 정부, 법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적인 시각을 추가로 읽을 수 있다.


 스릴러나 추리보다는 한 인간을 통해 이어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존재에 대한 사념적인 소설이 이 책을 소개하기에 더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만일 내가 두번째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편집오류 - 273p(이 페이지 두번 있습니다)부터 288p까지 한번 더 반복됩니다. 편집오류가 좀 큰 듯. 한장이 아니라 제법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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