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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심리학
귀스타브 르 봉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20년 3월
평점 :
당시 철학자들의 사회 분석에 대해 내심 인내의 한계를 느꼈던 귀스타브 르 봉은 그런 연유로 심리학에 기반한 국가와 민족을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의학을 전공했음에도 의외로 역사에 조예가 깊기도 하였는데요. 뿐만 아니라 당시에 거의 미지의 세계와 다름없었던 북아프리카 지역을 탐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는 각 인종별로 머리뼈와 뇌의 크기를 분류해 진화론적인 분석을 심리학에 접목시키기도 하였고, 이런 학문적 연계에서 남들에게 흔히 볼 수 없었던 민족에 대한 고유 연구를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군중 심리'에서 보여지듯이 흡사 엘리트 계층에 대비하여 군중을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몰고 간 것은 꽤 논란이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관념체계로 이러한 그의 인식을 십분 이해하기란 다소 어려운 법이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대, 간접적으로 목도한 프랑스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이 학자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한 심리학적 근원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전쟁의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것은 대전에 대한 종래의 역사학자들의 틀에박힌 분석을 사실상 르 봉이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The Psychology of The Great War"로서 지난 19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0년 3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출판된 여러 대전사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논저들을 꼽는다면, 마이클 히키와 제프리 주크스의 삼인 공저, 그리고 로버트 거워스의 글입니다. 명성을 얻고 있는 마이클 하워드의 관련 글은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조만간 그의 책도 일독해 보려고 합니다. 앞선 이들과 같은 역사학의 글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르 봉의 이 대전사 기록은 일단 '집단심리학적인 측면'에서 1차대전을 해석하고 여기에 덧붙여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그리고 러시아 제국이 심리학적인 불신상황에서 서로를 오판하게 된 연유를 밝혀보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후발주자였던 독일이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완성시키고 강대국에 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자,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었다는 것을 르 봉은 일차적으로 전제하고, 이 부분과 더불어 집단적 심리주의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게르만 민족은 마땅히 세계를 지배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하에, 당시 독일 정부와 언론들이 이를 조장해 왔다는 것을 저자인 르 봉이 짚어내고 있습니다. 독일은 1870년 보불 전쟁 이후, 국력과 관련해 견실한 내실을 쌓고 있었고 꽤 견고한 자본주의화를 이룩해 냅니다. 자신들의 국력이 다른 유럽 열강과 비슷해지자, 그들은 마찬가지로 식민지를 보유하고 싶다는 원초적 열망에 휩싸이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르 봉은 사실상 독일의 오판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활발한 상품 경제에 이른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 자신들의 상품을 파는 것 만으로도 식민지를 보유하는 것보다 이익이 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정치적 시도가 자신들의 국익을 해치는 수준에 끝나지 않고, 당시의 국제 정세를 해치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그는 보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이 모로코에 개입했던 것이, 자신들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경계심을 유발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언급하면서, 이 이후에 모로코 사건과 유사한 국제적 문제들에 대해 카이저의 차원에서 독일 제국이 이를 최종적으로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나 짐작해 보게 되었습니다.
쇼비니즘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당시 독일 국민들의 광신적인 애국주의는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히틀러에 의해서 처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시기에도 만연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역사적 연원으로부터 게르만 민족들은 주변의 라틴 민족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종족이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르 봉에 인용되는데요. 물론 이러한 타 민족 혹은 인종에 대한 끊없는 편견은 14세기에도 이미 자체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유대인에 대한 편견'보다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 타협할 수 없는 '게르만주의'는 민족적 열망의 시대에서조차 문제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독일인들 스스로 자신들은 여타 유럽의 다른 민족들과 다른 운명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의 카이저가 자신들을 명예로운 과업으로 이끌 것이라는 광신적인 믿음까지, 단순히 프랑스인들에 대한 경멸이나 영국인들에 대한 일축들을 더 넘어서는 꽤 위험한 수준의 분위기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요. 더욱이 당시 독일 국민 거의 모두가 하나같이 이러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병영 사회와 상명하달에 익숙한 이러한 독일인들"이 정부와 언론에 대해 일말의 비판적 의견조차 보이지 않고 있던 점은 실로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인데요. 물론 르 봉의 이러한 독일 게르만인들의 인식이, '군중 심리'에서 보여지는 대중에 대한 불신과 유사한 관념체계라고 단정지을수는 없지만, 앨버트 O. 허시먼의 평가대로 르 봉이 허버트 스펜서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인물로서,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기존의 저자 자신의 인식이 아예 배제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총상에 의해 절명했을 때,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제국의 황제가 이미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예측한 부분과 자신들의 위신을 위해 발칸 반도의 소국가인 세르비아를 이쯤에서 손봐줘야 한다는 요구가 당시의 제국 신민들에게 매우 팽배해 있었다는 분석에서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어떻게 유럽을 전화의 잿더미로 몰고 갔는지 대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규모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민족이 배타적인 민족주의의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평가는 '몽유병자들'의 크리스토퍼 클라크에 의해서도 증명되기도 하였는데요. 이러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과거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민족의 자주 혹은 민족의 자립을 인정하는 차원에서의 건전성을 상실한 민족주의가 배타적으로 혹은 폭력적으로 분화해, 이러한 인식적 전통이 오늘날에까지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극단적 유일 종교와 배타적 민족주의는 인류의 앞날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게 하는 요인이라고 봐도 거의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1차대전 당시에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한 민족국가의 운명은 후에 발발되는 2차대전의 상황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데요. 세르비아 사태에 대해 영국이 자신들의 이익과 하등 상관이 없는 사건이라고 일축하게 됨으로써, 2차대전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세르비아가 겪었던 경험과 거의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는 발칸 소국들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러시아 제국의 차르에게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귀중한 황태자의 목숨값을 세르비아에게 청구하려는 수준에 끝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를 새로 쓰기 위한 정치적 의도까지 사실상 포함하고 있었던 점에서 파국을 잉태한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야만의 시기'를 어떻게 E. H 카가 "당시 전쟁에 대한 터무니 없는 낭만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었는지 저로서는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외교적 치킨 게임에서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평화 협상에 대한 노력을 통해, 러시아는 자신들의 세르비아 개입에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오판하고, 독일은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다시금 손보려고 하는 자신들의 결정을 결국 영국은 중간에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과신해, 독일 제국이 룩셈부르크가 아닌 벨기에로 쳐들어가 그 나라를 지도에서 지우려고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대로 전쟁은 돌아가지 않았는데요. 저지대에 대한 영국의 이익을 너무나 과소 평가한 독일은 후에 값비싼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독일의 왜곡된 민족주의, 즉, 자신들이 다른 민족들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다는 이 선민사상은 르 봉에 의해, 증거로 규명되지 않은 "신비주의적인 힘 혹은 신비주의"로 지칭되고 있었는데요. 본디 의학자였던 르 봉이 과학이라는 본질에 의거해,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 사상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다만, 그도 역시 게르만 민족에 대해 풍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선입견과 유사한 주장들을 이 책에서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미 소위 군중들이 야기한 '혁명'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그는 독일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대다수의 게르만 민족이 권력과 정부에 대한 수동적인 본능을 마냥 비판하는 것이 논리적인 측면에서 다소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는데요. 영국이 끝내 프랑스를 외면하고 중립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이들의 억측을 냉소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전쟁의 원인이라는 점에 국한지어 정치적 행위자들의 비이성적인 결정이 결국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실은 뼈아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민족의 자주권을 위해 강대국에 마냥 고개를 숙일 수 없었던 세르비아 인에 대해서도 독일의 민족주의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가 양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국민들이 주도가 된 국민국가와 민족이 중요한 주체가 되는 민족국가 개념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있는 점은 인정해야 될 부분이지만 대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시 유럽에 팽배한 민족주의의 대두로 단편적인 수준으로 국한해, 이해하는 것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흔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적법한 후계자, 프란츠 황태자에게 향한 총성은 당시 유럽을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전쟁의 한복판으로 내몰게 되었습니다. 이에 르 봉은 논란의 이 글을 통해, 무엇보다 급박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러시아의 이 삼자가 자신들의 대사들을 통한 외교, 그리고 급박했던 당시의 사정이 르 봉의 나레이션을 통해 꽤 사실적으로 규명해 냅니다. 순전히 전쟁 양상과 전략적인 측면에서 대전 전체로서의 모든 장면들을 끄집어 내고 있진 않지만, 비참한 참호전과 가스전을 언급하기 이전에 대전 초기 프랑스 방면으로 진격하는 독일군에 의한 저지대 국가인 벨기에 초토화가 독일에게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했다는 점에서, 숙고하지 않은 어떤 정치적 결단에 대한 교훈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 내에 팽배해 있던 민족주의와 독일 국민의 신비주의적 맹신이 끝내 카이저의 몰락으로 이르게 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는데요. 독일은 대전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대적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카이저의 내각 전체가 전쟁 행위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기록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데요. 어쩌면 프랑스를 몰락시키면 영국은 알아서 자신들의 요구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그들의 오만이 바탕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거대한 제국이 이렇게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될 수밖에 없던 부분은 "전쟁은 그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결코 완벽한 것이 될 수 없다"라는 비스마르크의 금언을 절로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르 봉은 이 글의 마지막 장인 7장을 통해, 대전의 미스테리에 대한 몇가지 가설들을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분명 흥미로운 부분도 있어서 얼마간 생각에 잠기기도 했는데요. 르 봉의 꽤 견고한 심리학적인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이 글이 무엇보다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은 것은, 오스트리아의 황제와 독일 제국의 카이저, 러시아 제국의 차르, 이 세 사람 어느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의 대응으로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이를 독일이 완강하게 철회하라고 요구했을 때, 만약 러시아가 독일의 요구를 수용했다면 과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독일인들 스스로가 전유럽을 지배할 만한 민족은 오로지 자신들 뿐이라는 맹신에 비추어 봤을때, 자신들보다 수준이 낮은 프랑스인들과 영국인들이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는 현실을 해가 가면 갈수록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쌓여가는 그들의 불만족과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었을지는 대충 짐작이 가늠해 집니다. 다소 맹목적인 국민들 위에서 군림하고 있던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관념의 카이저, 빌헬름 2세의 독단이 오스트리아의 터무니없는 야망과 독단, 러시아의 정치적 무리수와 더불어, 결국 전유럽에 4천만에 가까운 인명 피해를 초래했고, 이는 역사의 반복일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또 다시 히틀러의 등장을 예고하게 됩니다. 이 점은 인류에게 있어 결코 초대받지 않은 자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요. 신비주의자들의 유구한 논법대로 역사가 인류를 단죄하기 위한 수순이었을까요. 물론 저의 이런 억측도 르 봉의 언급대로라면 전적으로 '신비주의적인 주장'이 될 것입니다.
-몇가지 논증적 단점을 제외한다면, 르 봉의 이 작업은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내밀한 외교 정치를 꽤 사실적인 수준에서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충분한 일독의 당위라고 생각됩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번역 또한 크게 나무랄데가 없었습니다.
-글을 다 읽고 드는 단편적인 생각은 르 봉의 국가에 대한 관념이 지금까지 '국가의 공포'를 터무니 없이 설파하고 있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논법과 일견 유사해 보이는 측면이 있었는데요. 독일 제국이 자신들의 국민을 다루는 일련의 정치적 방법들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14년 7월 23일부터 8월 1일 사이의 일주일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금까지 간단히 요약한 내용은 프로이센이 정복을 통해 태어났다는 점을, 그리고 프로이센이 정복만으로 점점 위대해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프로이센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럽을 기만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반면에 독일인은 국가를 국가가 설정한 가장 고귀한 목표를 탁월하게 수행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여기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는 국민의 삶 전체이며 국가의 권위는 국민의 삶이 생생하게 돌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때부터 줄곧 새로운 학파의 이론가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들은 우수한 민족이며, 그래서 세계를 정복할 의무를 져야 한다는 식으로 설득시켜 왔다
독일이 다른 나라들이 가진 식민지들을 모두다 점령한다 하더라도 독일의 상업적 이익은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의 교역을 통해 얻는 이익에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1914년 7월 23일부터 8월 1일 사이의 일주일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기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간들이 군중 속에서 사고하는 방식은 그들이 따로 있을 때 사고하는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이유는 인간들의 집합은 그 집합을 이루고 있는 개인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독일로 하여금 영국이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믿도록 만들었으며, 영국의 그런 태도가 전쟁을 초래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독일 통치차들이 국민들에게 영국과 러시아가 독일을 상대로 은밀히 음모를 꾸미며 자신들을 배신하고 있다는 식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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