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장석준.김민섭 지음 / 갈라파고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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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인 장석준은 1971년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과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활동했고, 진보신당 부대표 노동당 부대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2014년에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노동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 종로구 제1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현재는 진보정치연구소의 대표를 거쳐,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김민섭 작가의 논픽션 단편 소설과 합본으로 2022년 10월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능력주의에 관한 글을 찾아보다, 장석준 부소장의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능력주의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내면화 되었는지 논증하고 있어 저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우선 능력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관리자본주의 managerial capitalism 적 시대를 살고 있다고 우선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이 관리자본주의는 프랑스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논증으로 도출된 용어이기도 합니다. 제2차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사회에 구축되면서 이를 둘러싼 자본가계급과 관리자계급의 경쟁과 충돌 그리고 때론 협력을 통해, 당시 중요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던 노동계급에 맞서는 등의 분명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 이후, 노동계급이 점차 지리멸렬해진 점과 이 과정을 통해, 금융과 정보화를 모토로 전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질 시킨 신자유주의가 능력주의라는 소위 지배 이데올로기적 체제를 정착시켜 왔다고 여겨지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에도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국민들이 그저 사전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노동 조합과 노동 단체에 대한 가히 극렬한 적대감은 앞선 이력과 점차 강화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프로파간다에 기인하고 있는 것은 거의 부정할 수 없을 텐데요. 여기에 저자 고유의 현실 인식이기도 한, 노동 조합과 노동자들의 실질적 힘과 영향력이 사회에서 약화됨에 따라, 이 능력주의적 사고 방식은 그만큼 시민들에게 강하게 내면화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란 저자의 말마따나 "한국 사회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말 공정한 시스템이 기반이 된 능력주의라면 부모의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되물림하려는 시도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능해선 안되는 일이지만 소위 이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강화된 세습주의적 논리와 계급적 세습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실에서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자는 우리의 능력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비판의 칼날을 용인하지 않고 있으며, '지식 중간계급 intellectual middle class'과 같이 상위 계급과 이들 밑의 하위 계급까지, 빙산의 일각과 같은 능력주의를 거의 무분별하게 신봉하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민간에 의한 사립 대학의 확대는 단순히 부의 획득 과정을 떠나, 이 대학 교육을 비롯한 시스템의 확충이 지식 중간 계급의 출현을 이끌었고, 이들이 결국 상위 계층보다 더 견고한 능력주의의 지지자이자, 체제를 지탱하는 지분을 갖게 되었다고 글 전반에 걸쳐, 논증되고 있습니다.

저는 저자의 이 책을 일독하면서 놀랐던 부분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민한 분석이기도 했는데요. 신자유주의가 지구화와 금융, 그리고 정보화를 기반으로 자본주의를 거의 변질시켰고, 이에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집단이 누구보다 엘리트 계층임을 스스로 단언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을 그저 확대 해석으로 볼 게 아니라, 능력주의와 이 변질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체제 내의 승리자에게 모든 과실을 몰아주고, 특히나 앞선 관리 자본주의적 속성에서 마땅히 관리 계급이라 볼 수 있는 엘리트 전문가 계층이 마찬가지로 부와 지위를 독점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이행이 완료된 거의 모든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일 겁니다.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능력주의가 자본주의가 쉽사리 용인하지 않는 사회 내의 계급화를 촉진시켰고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나서, 거의 모든 시민 계층이 지지할 수밖에 없는 과도한 엘리트주의를 도출해 낸 것은 분명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마틴 울프는 엘리트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사실상의 이런 수혜가 그저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라 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몇 가지 논증을 통해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엘리트들의 헌신'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존중과 사회적 지위를 우선하는 데 있어 사실상 동의를 표한 것이지만, 많은 정치인들이 부르짖는 공정과 또한 적대시 되는 평등에 있어, 이러한 보상 체계가 단순히 합당한 근거 여부를 떠나, 많은 시민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마땅히 노력해야 하는 사회"로 몰아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능력주의에 대해 진지한 고찰 없이 쉽게 내면화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해 이뤄진 소위 '관리 선발'이라는 '과거 제도'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과거 제도가 단순히 글을 잘 쓰고, 경전을 잘 외워,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역량을 검증 받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과거 시험에서 '그 자격이 있는 선비들'이 국가 관료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해방 이후, 확대되었던 여러 고시들을 매개로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미담으로 한층 꾸며진 이 고시 선발 시스템과 한국형 능력주의는 1987년 민주화 과정을 거쳐, 당시 노동자 계급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를 지우게 만들었고, 단순히 가진 돈의 총량으로 측정하는 중산층과 같은 일면적인 수단이 아니라, 앞선 지식 중간 계급이라는 지위와 지식 그리고 돈이 결합된 새로운 계급 시스템을 우리가 고안해 낸 것과 거의 동일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시험주의에 전도된 우리의 능력주의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여기에서 낙오된 많은 시민들에게 사회적 차원에서 다시금 줄 수 있는 '세컨 찬스'를 가능하게 할 어떠한 기회와 소위 패자부활전이 필요하지 않는 사회로 왜곡되었습니다. 특히나 기회의 균등과 보편적 평등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반이 무엇보다 장애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평등 자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무지 내지는 극우에 가까운 인사들이 이를 '철지난 색깔론'으로 매도하기에 이르렀는데요. 평등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 임을 분명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폐쇄적인 능력주의를 그나마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시도들을 애초에 꿈도 꾸지 못하게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존엄하고 인간 다운 삶을 위해, 이를 보장하고 다각도로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미 기울어진 경쟁이 되어 버린 이 각축장에서, 더 많은 자원을 누가 더 투입할 수 있는가로 결정되는 능력주의적 현실에 눈을 감고, 이런 시스템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많은 시민들을 구제하는 여건을 자체를 제한하고 오로지 지능과 능력에 몰빵한 더 획일화 되고 폐쇄적인 사회로 치닫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능력만 있으면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꼬고 욕할 수 있는 사회,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사회일까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뒤이어 실린 김민섭 작가의 단편은 따로 서평을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현대 미국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은 능력주의의 산물이거나 적어도 능력주의 탓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한국적 능력주의는 신자유주의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한국의 20~30대만이 아니라 그 시기를 함께 겪은 한국 사회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능력주의와 최악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사회를 ‘실제로‘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영의 능력주의가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 소설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능력주의 속 세계의 20세기 말쯤이 되면, 능력주의 교육 시스템이 어느새 엘리트 신분을 세습하는 통로로 반전되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3국에서 과거제를 통해 국가 관료 기구의 상층에 진출하는 것이 출세의 표준이 됐다.

우리에게는 영락없이 조선 시대 양반을 연상시키는 이 생시몽식 엘리트는 한참 뒤 뉴딜 시기 미국의 테크노크라트나 소련 공산당의 고위 간부로 육화돼 지상에 강림한다.

이미 독일 등 몇몇 나라에서 꾸준히 성장하던 새로운 중간계급이 이제 대학 졸업장으로 무장한 채 어엿한 지식 중간계급으로 꼴을 갖춘 것이다.

그 대안들이란 지구화, 금융화, 정보화의 세 가지 커다란 전환이었으며, 이 전환들이 서로 맞물리며 등장해 지금껏 이어지는 역사적 국면을 우리는 흔히 ‘신자유주의‘라 칭하곤 한다.

노동자들은 그저 유식한 척하거나 가방끈이 길어야 더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따름이다.

하위 중간계급은 확실히 상위 중간계급만큼은 능력주의를 통해 실질적인 이득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다수는 상위 중간계급과 마찬가지로 능력주의에 적극 동의한다.

이후 법조인뿐만 아니라, 행정 부처와 외무부 고위 관료도 고시를 통해 선발하면서, ‘고시‘는 과거에 ‘과거‘가 그랬듯이 곧바로 엘리트층에 편입되는 시험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지식 중간계급의 세계관이 과도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성별과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시민이 동등한 교육 기회를 누리게 함은 모든 선량한 자유주의자와 담대한 사회주의자의 위대한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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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04-17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표적인 엘리트 선발제도인 고시제도가 대한민국 정부수립때부터 있었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할수록 고시제도에 대한 공격이 심해진 걸 보면
한국에선 오히려 고시제도가 정부영역의 과도한 시장화에 대한 방어벽으로
어느정도 기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시 폐지를 주장하는 행정학자나 경제학자들이 민간부문 경력자들을 관리자 계급으로 채용하자는 주장을 시종일관 하며 정부부문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려 하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고시제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명감을 가진 엘리트는 필요합니다.

베터라이프 2024-04-17 10:28   좋아요 3 | URL
저 역시 저자의 논점과 동의하게 된 부분은 특별한 선발 시험인 고시와 같은
시험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의 제한된 기회로 자리매김했고
시험 지능과 능력으로 평생까지 돈과 지위를 보장 받는 시스템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 일반적인 의문을 나타내는 인식입니다.
물론 고위 관료 선발을 위한 기회는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

쓰신 바대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엘리트의 헌신은 매우 중요합니다
리처드 벨러미, 한스 포어랜드 등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에
공감했는데요
그런데 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 이행 이후 아주 많이 변질된 것은 분명합니다
능력주의가 사회 기반의 맥락을 부정할 수 없음에도
비타협적 개인주의와 능력 맹신에 이르러
이러한 상황이 더욱 고착화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엘리트들이 다수가 된다면 민주주의에 아주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이렇게 가짜 뉴스와 잘못된 프로파간다에 노출된 상황에서는
더욱 말이죠


추풍오장원 2024-04-21 12:17   좋아요 1 | URL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엘리트들의 타락이 가속화된것은 분명한듯 싶습니다.
엘리트정신에 대한 재구축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한국의 사회경제 특성상 고시제도는 계속 존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처럼 가난한집 아들도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비교적 공정하게 얻을 수 있거든요....

베터라이프 2024-04-21 19:42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관료 선발 취지의 공개 시험이나 그와 비슷한 제도들은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존 체제에서 소외되거나 정규 시스템의 영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데요. 그건 정치권에서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제도적 차원에서 제안이 있어야하겠죠 ^^ 이렇게 다시 귀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