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 치유할 수 없는 질병
슬라보예 지젝 지음, 노윤기 옮김 / 현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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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1949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였던 류블랴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요젝 지젝은 슬로베니아 동부, 프레크무르예 지역 출신으로, 당시 이 지역에서 촉망받는 경제학자이자 국가 공무원이었습니다. 또한 모친인 베스나는 슬로베니아 리토랄의 고리치아 힐스 출신으로, 국영 기업의 회계사로 일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의 부모 모두 무신론자였습니다. 지젝은 어려서부터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이런 희망을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로부터 1967년이 되던 해에, 지젝은 티토가 주도한 자유화의 분위기에서 류블랴나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합니다. 즉, 그는 이 모교에서 학사와 문학 석사,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이때 지젝은 대륙 철학에 기반한 헤겔 철학에 몰두하게 되는데요. 앞선 1967년부터, 그는 자크 데리다와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의 글을 탐독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80년대에 지젝은 자크 라캉과 지그문트 프로이트, 루이 알튀세르의 글을 편집하고 또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크 라캉의 글들을 통해,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해석하기도 했는데요. 그에게는 라캉으로부터 시작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는데 몰두하기도 합니다. 1986년에 지젝은, 프랑스 파리 8 대학에서, 자크-알랭 밀러의 지도하에 두 번째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학문적 기반과 성취를 통해, 서구 유럽의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 사회 문제, 관념론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상아탑 지식인이 아닌 대중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현재 전세계 슬로베니아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 꼽히기도 하는 지젝은 이러한 여러 강단 활동과 출판 등으로 명성을 쌓은 것이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는 영국 런던 대학의 인문학을 위한 버크벡 연구소의 국제 이사, 뉴욕 대학의 독일어 세계 명예교수, 유럽 대학원 (EGS)의 철학 및 정신분석학 교수, 모교인 류블랴나 대학의 사회학 및 철학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Freedom : A Disease Without Cure"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지젝의 이 논저는 '자유'라는 광범위한 의미의 테제를 기반으로 이것이 인간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에 이르러 '실질적 자유'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유가 유럽과 미국에서 우익에 의해 오도되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범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데 이용되어 왔다는 점과 지젝이 그동안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비자유'의 메커니즘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서슴없이 폭로한 이력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지젝은 자신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 "그동안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역사에서, 이 자유를 통해 우리가 인간 해방에 보다 가까이 다가갔는지"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약간 풀어본다면, 조지 오웰의 수사처럼 "자신들이 명백하게 자유롭다고 외치는 사회가 결국에는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계몽주의자들의 노정으로 시작된 자유에 대한 쟁취가 현시점에 이르러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겠는데요. 더욱이 표면적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국가조차도 안으로 들어가보면 모두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세계의 언론을 통해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저 입으로 외치는 자유와 반대로 '비자유'와 '자유의 결핍'에 대해 시민들이 그만큼 고민해 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젝은 서두에서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 법칙을 근거로 자유는 단지 왜곡되거나 병에 감염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자유는 하나의 질병과 같으니 그런 인간을 훈육하고 가르칠 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뒤이어 등장할 루소의 자유 의지를 논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는 존재로서, '신체와 정신의 자유'를 주장할 권리는 마땅히 침해받을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젝이 후술되는 인간과 자유의 원천적 문제와의 결부된 문제를 철학적 수단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 극우 네오 파시스트에 가까운 극단주의자들과 그것을 등에 업은 대중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에 기반해, 기존 정치체를 부정하면서도 결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소위, "화려한 외피를 두르고 있다"는 점은 아마도 민주주의 내에서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를 탐색하는 데 주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왜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를 인식하는 경우에 있어, 왜 훈육과 자기 교육이 필요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물론 지젝은 이런 기본적인 탐구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그것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속에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를,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도 한) 라캉과 그외 여러 사상가들 및 작가들의 작품 들을 매개로 면밀히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목도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라는 것은 이 글에서 논의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 자유의 극명한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대안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 우리가 지금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전략적인 선택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저자인 지젝은 강조합니다. 이 정치적 혼란의 근본 원인인 이 극단주의적 파고는 세계 도처에서 쉽게 수그러들 기미가 없어 보이는 것은 앞으로의 정치적 미래가 그만큼 어둡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지젝의 분석대로 인간은 이 자유가 근본 목적이자 가치로 구축한 체제조차도 (가련한 현실을 드러내는 의미에서) 누군가가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거의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려 본다면 앞선 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정치인이라면 필요한 도덕적 선명성이나 정치적 이상, 심지어 진보에 대한 그림까지도 진정성 따위는 고민하지 않고 그저 '허위와 다름없는 혀놀림'으로 대다수 시민들을 농락할 수도 있습니다. 작금에 이르러선 헝가리, 스페인,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에서 이러한 일들이 발견될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지젝은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라캉의 '주이상스'를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절묘하게 매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권력을 갖기 위한 욕망과 그런 행위 자체가 분명히 자기 이익에 기반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주이상스는 라캉에게 있어, 쾌락의 추구, 아니면 쾌락 그 자체로, 만약 인간에게 쾌락에 대한 본능 혹은 쾌락 그 자체를 제거한다면 과연 "그 혹은 그녀"가 인간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쾌락에 있어 주이상스는 실체와 허구와 혼재된 욕망과 충동적인 향유를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요. 인간에게 페니스가 쾌락의 근원이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초적인 무언가로 지칭될 때, 반대로 거세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이는 사회심리학적인 근본 원인의 탐구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연계를 다른 식으로 구성해 본다면, 다분한 자기 이익적 태도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러시아를 두둔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을 모조리 싸잡아 '옳고 그름의 문제', 즉 도덕적 본성이 거세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이 현상 자체로만 보자면 인간의 본성에서 무언가가 일부 배제되었거나, 인식의 자유에 기반한 자기 합리화의 강한 욕망이 발휘되었다고 읽힙니다.

인간과 관련된 자연의 본성이 어느 정도 규명되고 나자, 뒤이어 이성이라는 측면에서 일군의 계몽주의자들이 탐구했던 것은 아마도 기본적 '의지'와 관련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유명한 구절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유 의지'였습니다. 거의 말장난과 다를바 없이, 우리 인간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자유 의지' 혹은 이와 별개로 자유 자체에 인간으로 하여금, 이를 추동하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지젝은 본래의 이야기를 벗어나 색다른 분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연과 그것을 해석하는 과학의 범주 안에, 인간 본성으로서의 자유 의지를 지젝은 논하면서도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통해 일단의 결정론을 들고 나오는데요.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우리가 물려받고 부여받은 '인간 본성'의 개념과 유사하다는 그의 분석은 자유 의지와 관련해, 제법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버마스의 이론을 들어, "과학의 결과가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의 지배 담론에 의협이 된다"는 논증 또한 새겨들을 만하다고 여져지는데요. 이 부분의 설명은 역시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AI 같은 것 말이죠. 과거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드러난, '자유 의지'는 그것의 역사적이면서 혁명적인 의미를 되짚기에 앞서, 입으로 자유를 추구하고 심지어 추종했던 자들이 모조리 '테러'로 귀결된 한 줄의 비극적 역사를 새기고 말았습니다. 지젝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깊은 소회를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었는데요. 약간의 논외이긴 하지만 이 프랑스 혁명과 다소간 비교되는 레닌과 소비에트 혁명 역시, 그것의 결과물이 '억압받는 인간'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권력 투쟁으로 끔찍하게 귀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눈이나 그 구성 요소에 대해, 과연 인간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철학적 탐구 내지는 인간 본성과 결부된 우리 세계 자체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변질된 스탈린주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나약하고 안일한 이상주의자들에게 향하는 조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과 한 몸인 것처럼 세계는 그렇게 결부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 의해 세계 자체가 변혁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 지젝이 인용한 칸트의 초월적 존재 (혹은 인간을 빗대어 해석할 수 있는)에 대한 탐구나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던주체와 객체의 관계성 역시, 앞선 자유 의지와 유사한 맥락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소중한 자유를 기반으로 동시에 삶의 건전한 목적성을 추구하는, 전반적인 삶 자체에 있어 그것을 실질적으로 파괴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라고 지젝은 강조합니다. 즉, 이는 4장에서, "실제 삶 자체가 투기적 자본의 광기 어린 춤의 하위 순간으로 축소되었다거나, 그토록 건강한 삶은 자본주의적인 소외에 의해 파괴되고 없기 때문"이라고 그 분석을 확장하는데요. 이미 그레이엄 그린이 "순진함은 폭력과 다름없다"고 말한바와 같이, 전면적인 헤겔주의에서 우리의 역사와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는 이런 '역사적 고착 상태'는 바로 우리의 순진한 무관심에 있었습니다. 물론 이 무관심 자체가 앞선 고착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런 무관심을 이끌게 한 것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선 적지 않은 이들이 아마 '자본주의의 소외적 측면과 평범한 삶을 도덕과 유리시키는 이기심 추구'라는 측면으로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지젝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결국 그가 앞서 설명한 바대로, 자본주의에서 변형된 이 투기적 금융 자본주의가 더욱 이러한 상황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투기 금융 자본이 주가 된 자본주의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충분히 부유하지 않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의 말처럼 '부의 과잉 상태'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의 진술 또한 쉽게 수긍이 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지젝은 글 후반부에서, 우크라이나가 현재 러시아와의 극명한 전쟁 상황에서 잠시나마 서구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주춤해지자, 그동안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개인의 무분별한 탐욕과 이익 추구로 인한, 부패와 뇌물 문제가 점차 해소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결국 신자유주의는 전쟁 상태가 되어서야 그것의 실질적 폐해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자, 지젝이 비판하는 자유주의적 좌파가 왜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다소 순진한 태도를 보였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방위 산업체가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식은 결국 전쟁의 본질을 대면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젝의 촘스키에 대한 비판은 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젝은 신자유주의하에, 하이에크식으로 "시장은 자유가 실현되는 공간"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동안 데이빗 코츠와 리민치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파헤쳤던 것처럼, 소위 변형되고 완전히 다른 방면의 '자유'를 위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거의 안면몰수된 이데올로기처럼 주장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거의 이데올로기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 지젝이 자유에 대한 우익들의 오용이 사회적으로 어떤 식으로 개념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결과가 이민과 인종 차별을 우회하여 다수의 시민들을 배제하는 양상을 드러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2008년에 들어서 그리고 작금의 전쟁에서 지젝은 겸허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쇠퇴했다"고 강조합니다. (데이빗 코츠가 이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의문입니다만) 바로 이런 쇠퇴에서, 앞으로 벌어질 전쟁은, "신자유주의와 그 이후의 싸움이 아니라 장차 도래할 두 형태의 싸움이 될 것인데, 하나는 공포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우리를 계속 꿈꾸게 하는 기업 (저커버그의 '메타버스'와 같은) 신봉건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모색하도록 강제하는 가혹한 각성"이라고 메시아적 경고를 우리에게 내립니다. 앞선 저커버그의 거대 인터넷 기업이 모든 시민들의 취향과 소비 행태 등을 묶어 과거 봉건주의 시대의 영주가 자신의 영지민들에게 일일이 거부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린 것처럼, 사실상 우리 사회가 저 인터넷 기업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것을 지젝은 분명 그런 경고를 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본다면 그의 말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닐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만큼 자유를 강조한다는 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가 실상은 어떻게 보면 감시에 가까운 은밀한 검열이 서서히 확장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글 후반부에서 지젝은 자신의 이 논저를 통해, 우리가 구축해 왔던 자유에 대한 담론과 그것을 바탕으로 시민의 자유와 그것을 보장하는 국가 체제가 과거 후쿠야마 식의 자유 진영이 사회주의 진영에 이념적으로 승리한 그것은 아니라고 여러 논증 가운데 밝히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더욱 악화시킨 인간 소외의 문제 그리고 심각한 불평등 문제는, 공리주의자들로부터 혹은 밀과 같은 자유주의자로 이어진 사회적 협력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사회의 외적인 문제로 여실히 '배제되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젝은 "우리가 새로운 보편성을 만들어야 하며, 착취받고 지배받는 이들을 우선시하면서도 중립적인 보편성의 형태를 갖추어야 되고, 그것이 새로운 법으로 도피하지 않도록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법에서 평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가 충분히 평등하다는 세간의 인식을 경고하는 동시에, 이민 유입된 많은 사회에서 인종 차별과 종교적 차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그러한 차별과 종교적 관용을 보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앞선 지젝의 제언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새로운 보편성의 제안이 어떻게 보면 이는 진보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가치면서, 오히려 과거 좌파들이 신자유주의에 무력했던 사회사를 뒤돌아보게 하는 장치로도 읽힙니다. 그동안 물신화된 자본주의는 사회의 비판적 목소리와 왜곡되는 구조 자체에 대한 이견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모습을 거의 자임했습니다. 사회에서 이에 반하는 의견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분명 많은 지식인들이 이에 동조하는 경향을 띠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편으론 지식인들이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지식인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기까지 했지요.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자 하이에크와 밀턴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가 매개된 시장 자유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개혁들이 그저 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국가의 사회 부조를 끊어내어 세금을 줄이는 목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인간을 자유케 하리라"는 무슨 복음과도 같은 말들을 엮어내면서 말입니다. 고도화된 금융 자본주의가 다수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고, 혹여 앞으로의 자본주의가 인간이 철저히 배제된 채로 지속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저자는 마찬가지로 경고합니다. 작금의 인간성이 결여된 이 자본주의가 어떠한 식으로 귀결될지 AI의 비인간성과 함께 고려해 볼 때, 이는 매우 두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에 8장에서 지젝은 "인간은 그 정념에 의해 우선적으로 충동되고, 그 정념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언급하고 우리가 마땅히 주체가 되는 체제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철학을 바꾸어야 되는 시점이 왔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근래 읽었던 지젝의 여러 책들 가운데, 이 책은 인류가 현재에 이른 전쟁과 자본주의의 비정상적 양상, 그리고 극단주의 세력의 대두와 그것을 통해 이들이 정치적 이익을 얻게 되는 민주주의 전반의 첨예한 갈등 구조가 어떤 식으로 거대한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궤멸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 우리는 어느 정도 미래를 유추해 보는데 그의 이 글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물론 여기에 드러나는 논증의 방식이나 그것의 근거가 모두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논증의 단초가 된 것은 바로 이 '자유'이며, 자유가 본래의 의미가 아닌 그동안 점층이 이데올로기화가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서도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이에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체제가 부정적 순환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것과 더불어 자본주의와 전쟁, 디지털 기업들이 주도하는 봉건주의화와 같은 각각의 개별 주제들로 연계되는 점은 지젝의 특별한 사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지젝의 이 글은 독자들의 관련된 면밀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고, 특히 라캉에 대한 사전 지식 또한 특별히 요청되는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지젝은 자유가 그저 법으로만 존재하는 상태의 그것처럼, 체제가 보장하고 인정하는 자유를 마땅히 향유해야 하는 시민들이 사실상 '비자유'에 놓인 지경이라고 진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놓인 비극적 결말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판단하는 바와 같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예전에 계몽주의자들이 고민했던 수준의 것들보다 심각한 수준임은 거의 분명합니다. 이에 중립을 겉에 두른 양비론과 같이, 시민 모두가 그저 냉소주의에 빠져 현실을 정확히 회피하는 식으로 기본적인 의무 (너무나 많이 언급해서 입이 아플 정도로) 를 방기한다면 체제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관계성 마저, 비극적으로 모호해질 것입니다. 마치 하인을 섬기는 주인의 방식과 같은 상징적인 수사는 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젝은 글 말미에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있었는데요. 지젝이 파헤친, 우리가 직면한 세계의 불완전성과 그에 따른 위기 그리고 나날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담대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가 말하는 시민 개개인의 '영웅적 면모'로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왜곡된 체제에서 이익을 거두는 그 체제 본연과 그것에 기생하는 자들이 키우는 위기를 점차 개선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지젝이 강조했던 것처럼 이러한 사태에 있어, 우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스스로를 무장시켜야 하는 근본 이유가 되지 않나 글 말미에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궁극적인 인간 해방에 이르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나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향유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거듭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회적 공간 안에서 우리는 언제나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매개하는 ‘소외된‘ 기관들인 시장, 국가, 대의민주주의 등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정치적 탄압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와 농촌 빈곤 상황 등을 연구하는 성가신 지식인들을 국가 기밀 누설죄로 수년간 감옥에 가둔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규범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자유는 우리 삶의 결여, 즉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무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때 발생한다.

여기서 지옥은 무엇일까? 라캉은 분명히 밝혔다. "인간의 욕망이 지옥이며, 욕망의 작용이야 말로 어떤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칸트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러한 자유는 언제나 병리적인 동기들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인과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계급투쟁은 정확히 말해서 세상이 두 개의 계급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명확하게 양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신비로운 존재로 포장하며 은밀히 숨겨진 것을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하지만, 뒤에서는 자신이 저지르는 (또는 정당화하는) 범죄를 은폐한다.

언젠가는 ‘강렬하고 충만한‘ 완전한 의미의 주이상스를 경험함으로써 유아적 환상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약속 자체가 궁극적 환상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여성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으면 과도한 쾌락이 그녀들을 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 의해 유지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적 대의를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자신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부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시민 사회가 빈곤해진다"기보다는, 사회를 충분히 부유하지 않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부의 과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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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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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F. 월터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글로벌 정책 및 전략 대학원의 국제 관계 관계 분야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입니다. 그녀의 연구 분야는 내전, 폭력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인데요. 특히, 미국이 현재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사실상 '내전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려서 뉴욕의 욘커스에서 자랐지만 모친의 영향으로 스위스로 이주했고, 부친은 독일계로 유래가 있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입니다. 그녀는 미국 펜실베니아주 루이스버그에 소재한 진보적 예술 대학인 버크넬 대학에서 정치학과 독일어학으로 학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 사회과학의 요람인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1996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 사직한 월터는 미국내에서 '비폭력 시민 저항 운동'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명성을 얻은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와 함께,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정치 블로그를 함께 운영하기도 했는데요. 또한 그녀는 미국 과학 아카데미 (NAS)와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이런 교수 이력 이외에도, 세계은행, 미국 국방부, 국무부, 유엔, 그리고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공격을 조사하기 위한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인, '1월 6일 위원회'에서 자문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How Cilvil Wars Start : And How To Stop Them"으로 지난 202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바바라 F. 월터의 이 책은 기본적으로 독재와 민주주의의 중간 구간의 국가 정체를 가리키는 아노크라시 Anocracy로 논증 전반의 분석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장된 논증 가운데서 이 논저는 "과연 미국은 현재 내전 상태인가"에 대한 정치학적인 분석을 포함하고 이런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극단주의자들과 파벌주의, 그리고 이 글에서 "최고의 종족 사업가" 일컬어지는 도널드 트럼프와 현재 혼란스런 미국 정치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사례를 연구한 '내전' 전문가인 저자는 준비없이 새로 도입된 민주주의가 발생시킨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 소외'를 초래했고, 이런 배경에서 '실질적 내전'이 일어난 세계의 여러 사례들을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여기에 논의된 각각의 사례들은 사실상 정부를 붕괴시키기에 이르고 내부를 첨예한 극단주의적 대결로 이끌었다고 그녀는 냉정히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연유에서 우리가 왜 극단주의자들과 극단주의 정치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그 정치적 책무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인식시키고 있었습니다.

글의 도입에서 저자는 파리드 자카리아의 '비자유 민주주의 illiberal democracy'를 언급하며, 아노크라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극단주의가 기존 정치에 등장함으로써, 견실한 민주주의가 유래가 없는 위기에 놓인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거 냉전 시기를 거쳐,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데올로기적인 강고한 신념화 단계를 거쳐가는 그런 물신화의 체제는 아니지만 권력 분산과 안정적인 체제 유지, 시민들의 주권을 보장하고 이러한 기반에서 이뤄지는 합법적 정권 수립과 교체는 무엇보다 시민들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특별한 정치체 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마땅한 자유를 누려야만 하고 이것의 권리는 무엇보다 침해 받을 수 없다는 당위성은 숱한 정치학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이미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일전에 게리 거스틀은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의 근거를 들어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이 제거된 이라크에서 딕 체니와 그 미군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그 땅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것을 보며, 이에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될 사항은 민주주의가 이식될 나라의 국민들과 그들의 역사적 관습, 종교, 문화, 제도 등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미군과 미국 정부가 주도한 이라크의 민주주의 도입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만큼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정치적 토양이라는 걸 준비하는 것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종과 종교로 철저히 분리되기 전의 유고슬라비아 역시, 그야말로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였습니다. 과거 스탈린에 정치적으로 맞서 대항하기도 했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소위 '인종적 평등'을 내세워, 유고의 통합을 이끌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 안정이 지속되었습니다. 티토의 사후, 유고가 여러 인종 국가로 갈라진 상황에서 벌어진 참혹한 '종족 살상' (바바라 F. 월터의 이 글에서는 인종 살상이 아니라, 종족 살상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은 다른 말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혐오스런 인종청소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당시 세르비아 공화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대한 '종족적 원한'과 과거 나치의 '게르만 인을 더 위대하게'와 같은 인종적 슬로건과 비슷한 맥락인 매우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의 광풍이 모든 것을 휩쓸었다고 그와 같은 평가를 하고 있었는데요. 2장 이후,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파벌주의'는 이런 인종적 내전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한 주요 배경으로도 읽힙니다. 이 파벌주의와 정치적 양극화는 매우 긴밀한 인식 관계로 파벌주의가 온상이 된 국가는 한편으론 내부에서 확연히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앞선 세르비아의 사례는 파시즘에 버금가는 '배타적 인종적 정체성'을 매개로 다인종 국가의 배경에서 자신의 인종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폭력적 논리를 확장시켰고, 이 자체만으로도 내부 정치를 극단적 대결로 몰아 가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인도에서도 힌두인들에 의한 이슬람인들의 축출, 마찬가지로 미얀마에서 다수 불교도들이 서부 라카인 주의 이슬람 민족인 '로힝야 족'을 집단 린치 및 살해한 사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욱이 미얀마 국민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던 '아웅 산 수 치'가 당시 SNS로 퍼지고 있던 '버마인들에 의한 로힝야 족을 향한 무분별한 테러' 영상에 대해, 그것은 거짓에 불과하다고 양심을 저버리고, 그녀 스스로 일축한 점은 이 사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한 장면이 되기도 했습니다.

격화된 내전의 다른 돌발 원인이기도 한, 소위 '지위 격하 downgrading'는 다른 말로 지위 상실로 해석해 볼 있습니다. 여기에는 필리핀 남부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다투 우드토그 마탈람 Datu Utdog Matalam의 사례가 대표적으로 인용됩니다. 그는 과거 2차 대전에서 일본군과 용감히 싸운 전쟁 영웅이자, 현재에 이르러서는 지역민들 사이의 분쟁을 현명하게 조정하는 공정한 중재자였던 인물입니다. 그의 이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인정과 존중을 받을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북부의 카톨릭 교도인 필리핀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남부로 내려오면서, 그의 평온한 일상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카톨릭과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이분법은 차치하더라도, 땅과 경제적 이익을 가운데 놓고 벌이기 시작한 대립은 마탈람의 장남이 정부 요인으로부터 살해 당한 시점부터 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마탈람의 아들이 비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은 그에게는 상당한 모욕이 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는 그는 분연히 일어나 총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한 국가의 다른 인종, 구분되는 종교적 차이가 제대로 중재되지 않는다면, 어느 한 쪽의 지위 격하를 발생 시키고, 이것은 곧 권력의 상대적 차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앞선 유무형의 권력 차이 뿐만 아니라, 그동안 누려왔던 지위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박탈까지 감수해야 됩니다. 이는 그야말로 지위 박탈의 실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결국 많은 사회에서 이러한 지위 추락이 직접적 내전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와 유사한 내전은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비극적 폭력 사태와 콩고 내전에서 자행된 '인종 말살'이 있습니다.

약간 이른 결론일 수도 있지만, 저자인 바바라 F. 월터는 앞에서 논증된 서사를 바탕으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에서 내전에 의한 정치적 혹은 물리적 테러가 무고한 다수를 향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의 근본적 원인은 일부 시민들의 좌절감과 그것을 이용하는 극단적 정치인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극단적 정치인의 가장 대표적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헝가리와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 트럼프와 비슷한 궤를 보이는 여러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있지만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연방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라는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의 정치인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우려하는 미국 정치의 극단주의화, 그리고 슬프면서 역설적인 상황인, 민주주의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토론이나 타협을 거쳐, 원할하게 수용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마땅히 실질적 물리행사, 즉 폭력이다" 라고 그녀는 더욱 강조해서 인용합니다. 세계 최대 총기 보유 국가인 미국은 일반적인 총기 사고 및 범죄는 물론, 일상사에서 총기로 인한 유무형의 위협에 놓여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저자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거나, 선거에서 크게 이겼을 경우, 그 해의 총기 판매량이 월등하게 높았다는 것을 미국만의 극명한 예로 들고 있었는데요. 이는 미국 정치가 단적으로 파벌주의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6장에서 여실히 논증되는 바와 같이, "한 파벌이 이기적으로 권력을 욕심내면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상황 말이다"라고 폭로됩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 내의 좌절된 '저학력의 백인 노동자'라는 서사는 이미 잘 알려진 바가 있습니다. 공화당은 이제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이런 불만과 증오에 빠진 일부 계층의 표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여기에 이런 저학력의 백인 노동자들을 더 들끓게 만들었던 소위 '불법 이민자 문제'는 그것의 본질적 진위 여부를 가리기 전에, "경제적, 사회적 쇠퇴를 실감하는 이들 백인들이 볼 때, 미국 정부는 마치 벵골인들에게 아삼으로 이주하도록 장려하는 인도 정부나 자바인들에게 서파푸아로 이주하도록 권하는 인도네시아 정부, 또는 싱 할라인들에게 타밀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부추기는 스리랑카 정부와 같았다"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이런식으로 수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왜곡된 인식이든 자포자기 심정이든, 로버트 달과 같은 민주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인종 혐오이든 말입니다. 이들 백인들은 인도나 중국 출신의 젊은이들이 미국의 유수 명문 대학이나 첨단 IT기업,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영어가 아닌 자신들의 모국어로 대화를 나눌 때, 아마도 비참한 굴욕감을 느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 자리는 분명 나의 것인데, 미국의 유산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유색인들이 내 자리를 빼앗아, 마땅한 내 권리를 그들이 앗아갔다"고 말입니다. 이는 극단주의화 된 '폭스 저널리즘'을 비판한 리스 펙의 주장과도 일정 부분 연계되어 있는데요. 결국 이 점은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실질적 삶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이들의 지지와 표를 이용하기 위해, 이들의 불만을 부추기고 있다는 현실 자각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근래 미국 정치가 오랜 독립 역사에서 명예로운 증거로 규정된, '민병대의 역사'와 이 조직된 군대라는 소위 헌법의 어디즈음에 존재하는 '총기로 무장한 민간인들'이 오늘날 인터넷의 발전으로 등장한 SNS 시대의 실질적 수혜자임을 저자는 다시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일전의 마누엘 카스텔이나 조르조 아감벤의 기대와는 달리, 이 SNS는 민주주의에서의 모두를 위한, 긍정적 영향이 아니라, 극단주의자들의 아주 훌륭한 연락책이자, 극단화의 매개물이 되었습니다. 이 정치적 극단성이라는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개선시켜야 할 무언가가 이 거대한 SNS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개성'정도로 쓰이고 있는 희극적인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특히 이 소셜미디어가 분노에 사로잡힌 극단적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한 국가의 제도에 관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이 와중에, '잘 조직화된 민병대'는 네오 나치와 인종주의를 매개로 흡사 '총기로 잘 무장된 병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책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의도와도 잘 들어맞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미국 정치의 민낯 혹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저자의 입을 통해, 이러한 파벌주의와 극단주의적 정치의 원인은 바로 금권정치와 첨예화 된 양극화라고 규정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그녀는 시장에 좀 더 기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한 시민 다수의 경제적 불평등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무엇보다 정치적 체제의 개선 실패와 시민들 자신이 건전한 의견을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의 부재, 그리고 극단주의자들이 더 발언권과 힘을 얻는 왜곡된 정치적 구조 및 지지 기반 등을 문제의 핵심으로 짚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아노크라시 어디쯤에 놓여 있는 사실상 '내전 상황'이냐는 질문에 그녀의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끝으로, 제가 몇몇 서평에서도 자주 언급했습니다만, 일전의 미국 정치 내에서, 과거 보스턴 차 사건을 차용한 '티파티 운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즉, 리버럴 대부분을 사회에서 없애야 될 '격멸'의 대상으로 치부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으로 대표되는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수에 의한 정치적 폭압, 즉, 소수의 권리 약화를 우려했고, 그런 연유로 연방 정부와 헌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매우 견고한 '균형주의적이면서 권력 분립적인 체제'를 고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유산을 이어 받은 후세인들이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같은 미국인들을 격멸과 제거의 대상으로 지칭한 것을 무덤에 있는 저 건국의 아버지들이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저로서는 매우 궁금할 따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을 쓴 저자 역시, 자신의 나라가 이런 극단주의적 파고에 휩쓸리게 된 현실을 연구자이자, 혹은 지식인으로 심대한 고민의 밤을 숱하게 보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그녀 자신이 대면하게 된 현실은 '파벌주의적 내전에 빠진 미국 정치'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그녀는 작금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법치를 강화하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정부 서비스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전반적으로 과거 로널드 레이건으로부터 시작되어, 빌 클린턴에 의해 완성된 신자유주의 체제의 상당한 개선 노력으로도 읽힙니다. 기존의 엘리트 지배 체제를 부정하는 포퓰리스트 조차도 선동 이면에는, 결국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답습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지금의 미국이라는 국가는 개인의 극대화된 이기심과 그것이 발휘될 사회적 조건과 그 기본 자원의 유용성이 오직 부유층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망각하게 만들고, 오히려 자원 배분의 불평등성을 더욱 조장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수립으로 더욱 내밀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와 개인의 이기심을 글로 더 펼쳐낼 생각은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러한 체제 하에 극단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분노를 먹고 커져 가는 정치는 결코 성공해서 안된다는 점은 거의 명백합니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토머스 홉스와 존 스튜어트 밀의 이야기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미국 정치는 더욱 수렁 속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정치학자들의 경고는 단순한 우려 만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한쪽의 극단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그런 자기파괴적 정치는 더 이상 유럽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없다고 단언했다죠? 하지만 그의 단언은 여실히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 물론 저자인 바바라 F. 월터가 작금의 한국 상황을 예상하고 쓴 내용은 아니겠지만 "새롭게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거의 모든 나라는 선거의 적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의 독립적인 선거 관리 체계를 만든다. 이는 선거 과정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분석하고 여기에 속한 국가들 가운에 우리 나라를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전술된 내용은 완벽히 한국을 가리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는 5장의 저 극명한 문장은 작게는 개인사를 헤쳐나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고, 크게는 국가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 실로 깨닫게 만듭니다. 마치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깊은 메아리를 듣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라크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인 후세인과 역시 수니파의 주류인 바트당의 통치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들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낮다.

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에 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신속하고 대담하게 개혁을 시도할수록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 민주화의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하지만 민주화는 가능하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 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정치 제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면 내전의 위협이 줄어든다.

크로아티아 우스타셰의 지도자인 안테 파벨리치는 크로아티아에서 비크로아티안을 모조리 제거하기 위한 잔인한 공식을 세운 과격 민족주의자였다.

한편 견고해진 파벌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추종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협소한 부족적 의제를 추구할 여지가 생긴다.

내전이 폭발한 원인은 기회주의적 지도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공포와 원한을 활용하면서 중무장한 폭력배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을 국민들 사이에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모디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인도 선거 민주주의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공격함으로써 정치권력을 강화한다.

2019년 한 해에만 칠레, 레바논, 이란, 이라크, 인도, 볼리비아, 중국, 에스파냐, 러시아, 체코 공화국, 알제리, 수단, 카자흐스탄 등 모든 대륙의 114개 나라에서 정치적 시위가 분출했다.

하지만 재앙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2년 승려가 다수인 불교도 초민족주의자 집단이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미얀마 전역의 무슬림 인구를 표적으로 삼았다.

한때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나다. 선거로 뽑힌 일부 지도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고 헌법을 개정해서 권력을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노출의 문제가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 아웃사이더들이 으뜸가는 관여의 추동 요인 - 공포와 분노 - 에 편승해서, 대규모 청중에게 경쟁자들과 한 나라의 제도에 관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는 유권자들에게 나쁜 정보를 쏟아붓고 있다. 사람들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상실함에 따라 대안적 체제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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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니더작센 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린덴-리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렌트는 유대인의 부모 밑에서 자라났는데, 부친은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고, 모친은 당시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가정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베를린에서 중등 교육을 수료한 후, 마르부르크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마르부르크 필립스 대학에서, 지적 및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1929년에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를 야스퍼스 지도 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같은 해에, 그녀는 철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귄터 스턴과 결혼했지만, 1930년대에 나치 독일의 참혹한 반유대주의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1933년, 게슈타포에 의해 잠시 투옥 되기에 이릅니다. 게슈타포의 조사 이후, 방면된 그녀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스위스 등지를 거쳐,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1937년에는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1940년에는 귄터 스턴과 이혼 후,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하게 됩니다. 같은 해에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그녀는 외국인 신분으로 구금되었지만 탈출하여 1941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1950년에 정식으로 미국 시민이 되었고, 이듬해인 1951년에 인류에게 있어 거의 기념비적인 논저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간됩니다. 이후 미국의 여러 대학을 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하다, 1975년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찾아와, 이른 나이에 그녀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그녀의 인생 전반이 파란만장한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정식 서류'가 없는 무국적자로서의 삶을 자신의 철학적 사유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로 극복하며, 전체주의를 경험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학문적 책무를 다한 그녀는, 지금도 전세계 지식인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On Violence"로 지난 197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1999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된 상황입니다.

아렌트의 이 책은 제가 2000년도가 되던 해에, 광화문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구입한 것인데요. 몇년 뒤에, 일독을 하고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책 박스들을 정리하다 오랜만에 발견한 것처럼,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20대 때는 책을 거의 신주단지 모시듯 읽어, 책 상태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개인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유럽에서 유대인의 삶을 무참히 파괴했던 전체주의와 이후, 냉전과 이 시기에 개발된, '대량 살상 무기'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몰락 시킬 수 있는 제2의 전쟁 위기를 몇 번이나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이는 2차 대전을 거쳐, 첨예한 냉전 시기까지 정신력이 탁월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혹은 의지가 박약한 사람에게는 아마도 하루조차 견딜 수 없는 시대였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이는 참혹한 대전에서 수없이 자행된 인종 청소와 그로 인한 인간성 파괴, 또한 부족한 식량 배급에서 겪은 극도의 빈곤 상황 등은 이 사회에서 보다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정상적이지 않은 인간이 갈망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더 나아가 강력한 권력의 존재를 갈망하는 소위 이성의 범주 안에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체제의 격변을 겪은 '살아남은 자'로서, 아마도 제일 먼저 전체주의의 폭력을 규명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러한 그녀의 '학문적 사명감'은 참혹한 분절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의무인 동시에, 그런 증언과 기록들을 몸과 기억에 새겨 넣은 소수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인류의 성찰이 스스로 시급하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 논저는, 기본적으로 1968년 3월의 68 운동 혹은 다른 말로 68 혁명 당시, 유럽에서 강하게 불었던 사회 변혁에 대한 요구와 이를 뒷받침했던 진보에 대해, 학생들과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런 격변의 시기를 거쳐간 사람들의 지향점 등을 살펴보고, 이들의 직접 행동으로 야기 될 수 있는 혁명의 가능성, 그리고 불거질 수 있는 다양한 폭력의 문제, 더 나아가 그런 폭력 담론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상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 사회 철학적인 의미로서 폭력을 연구한 파레토, 여기에 더해 조르주 소렐의 논저,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폭력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들을 섭렵하여, 한나 아렌트 고유의 철학적 답변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물론 여기의 논의되는 배경 지식들과 주장이 꽤나 독특한 측면이 있어서 기존의 생각들과는 상당히 상이한 접근법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귀스타브 르 봉과 같은 전형적인 방식의 논증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폭력의 근본적 의미를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논증의 대전제로서, 이 폭력과 권력에 대한 세밀한 정치철학적 비교 분석과 손쉽게 인간을 유혹하는 폭력의 문제가 어떻게 체제와 권력을 구축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그녀의 고유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서서히 밝혀 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폭력은 사람을 이용하지만 권력은 폭력과 사람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1장의 서두에서 그녀는 "역사와 정치에 관하여 사유하는 사람은 누구든 폭력이 인간사에서 수행하는 거대한 역할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데요. 이는 전쟁이 구사하는 본질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체제 갈등과 국가간의 대립에서도 이러한 폭력이 최종적 해결책이 되어왔다고 언급됩니다. 그래서 그녀가 분석하는 역사의 역설이라는 것이, 아마도 "오히려 평화가 다른 수단을 통해 벌이는 전쟁의 연속이라는 측면"의 통찰을 담고 있는 것으르도 읽히는데요. 이는 평화시기의 전쟁 억지라는 담론과 갈등의 시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의 실상과 그 파급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권력과 다소 혼재되어 우리의 감각을 혼란 시키는 점은 명백하다고 여겨집니다. 바로 그런 연유로 아렌트는 자신이 읽어 나간, 사회 과학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회학자들이 이 폭력과 권력을 명확히 구분해 내려는 노력을 하고, 이것을 단순 학문 분야의 개념적 구별이라는 전형적 패러다임에 국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의무를 강조합니다. 즉, 어디서든 촉발될 수 있는 대량 살상의 가능성과 이런 혼란스런 시기에서 무엇보다 후세와 다수 시민들을 위해 폭력과 권력이 철저하게 구별되어야만 하는 점은 충분히 일독 내내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도 민주주의에서의 '법의 지배' 혹은 헌법의 통치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와 구별되는 '폭력을 통한 권력의 추구'는 시민의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철학의 주요 주제, 그리고 그것을 탐구하는 사유의 방식과 기본 전제들이 정치철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매우 폭넓은 개념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개념과 권력의 이해 역시, 그 궤가 상당히 교차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반대로 아렌트의 말마따나 권력이, "부를 통해서 측정될 수 없으며, 풍부한 부가 권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실상 뿐만 아니라, "많은 돈은 공화국의 권력 및 안전에 특히 해롭다"는 진술이 이러한 논증으로 이해될 수 있겠는데요. 이는 3장 후반부에서 진술되는, "완벽한 관료주의 사회"가 시민의 자유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맥락상 이어지기도 하는데요. 마치 많은 돈이 사회에 풀리면 그 사회가 풍족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삶 속의 과정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고, 개인의 책임을 일원화된 체계 그 범주 바깥으로 내모는 완벽한 관료주의화 역시, 결국은 부정적으로 파급된 역설로 사회와 체제에 영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렌트의 이러한 논증이 다소 과장이 섞였다고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이미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경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순혈 게르만주의와 그것을 강도 높은 체제로 만든 기계처럼 일원화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명령에 한결같이 복종하는 시민이라는 굴절된 정치적 관념 말입니다. 

또한, 아렌트는 충동적인 폭력의 파국을 논하는 가운데, 1장을 거쳐, 2장 까지 소위 '참여 민주주의'의 허상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는 의외의 측면에서, 진보주의 운동과 이들과 유사성을 함께하는 '혁명'에 있어, 중요한 정치적 담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달리 말하자면 위조되어 덧칠해진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으로서의 '극좌 운동'이 오히려, 기득권 엘리트 계층이 달가워하지 않는 '참여 민주주의'를 표면적으로는 더욱 원하고 갈망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정치적 역설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도정에서 폭력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를 달성하겠다는 맹목적인 이상은 이처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여기서 약간의 논외이긴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만약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이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가 아니라, 독일, 일본의 지배를 받는 인도였다면, 간디는 그날로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비폭력'의 불안한 미래는 마누엘 카스텔이 탐구했던 것처럼, 공권력과 사회 체제에 대한 '비폭력 운동'이라는 진술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한나 아렌트 식의 명백한 개념화라고 생각됩니다.

뒤이어 2장에서 아렌트는 "우리는 복종 본능, 복종하고 싶어서 어떤 강자에 의해 지배되기를 바라는 열렬한 욕망이, 적어도 인간 심리학에 있어서는 권력에의 의지만큼이나 현저하고,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아마도 더 관련성이 많다"고 논증 가운데 이를 드러냅니다. 이미 유명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과 방금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인간 대부분이 갖는 강한 권력에의 복종 욕망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인간의 정치적 본성 가운데, 권력에의 의지 만큼이나 어떤 강한 권력에 복종하여, 자신의 안위를 돌보고 싶은 생물학적 본능과도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아렌트는 현재의 사회과학이 생물학과 자연과학에 논리적 근거를 찾고 있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기도 한데요. 각 학문을 넘나들고, 개념 당 다른 학문에서 그 이유의 단초를 찾는 이런 활동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한나 아렌트는 누구보다 이런 생물학적인 본능이나 자연적인 유래에서 인간 행동과 사회적 행태에 대한 유사성을 찾는 행위 자체를 본질적으로 인간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보는 듯 싶었습니다. 즉, ' 인간의 권력에의 복종' 자체를 생물학적인 본성이나 본능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 인간을 왜소한 크기로 한정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거의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어쩌면 철학과 생물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어느 정도 그 범주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3장에서 보여지는 폭력의 본성은 부분에 따라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두드러진 흑백 갈등도 그렇거지나와 자본주의화가 거의 공장의 자동화 벨트처럼 진행된 서구 사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분노 혹은 혐오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양자 전부 사회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였죠. 이에 아렌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적 측면을 뛰어넘는 개인주의화가 그런 이익 추구 담론에서 주요 논점이 되고, 이러한 토대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사실상 '사익 추구 메커니즘'에 방해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서구 사회의 관용의 몰락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그 기형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책에서 인용된 조르주 소렐 역시, 이 사건이 자신에게 있어서도 충격으로 남게 됩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색출하겠다는 발상과 그것에 휩쓸린 수많은 대중들, 이러한 진행이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조차 일축한 시민들의 무지는 어쩌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이데올로기 논쟁을 격하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변화 속에 사회에서의 노동자들의 위상과 이들을 바라보는 다른 계층의 시선 등을 꽤나 우려섞인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었는데요. 노동자 자신들이 조직을 이루어 권리를 위한 최소한의 권력 쟁취를 목표로 하는 (물론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이) 정치 행동이 왜 환영을 받지 못했는지 그녀의 이 책을 통해,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적 부르주아 계층과 노동자들의 연합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폭력은 도구적일 수밖에 없고, 권력은 그 목표를 지향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단언은 이 책을 다시금 일독한 지금, 저에게는 적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단초를아렌트는 토머스 홉스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폭력이 개인의 본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본성 자체를 매몰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엘리트 지배 계급이 왜 체제의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치적 맥락 뿐만 아니라 그 '혁명의 문제'로서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보의 존재 자체는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고, 한나 아렌트가 살다간 그 시대의 자화상이 엄청난 대결 구도에 전사회적인 자원을 투입하게 만들었으며, 오직 균질한 사회를 위해 오도된 사상이 있었다는 것도 참으로 불행한 역사의 한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다만, 사상과 출판의 자유, 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인간이 태초의 조건에서 어떻게 폭력에 손을 내미는 형상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는 몇번이나 곱씹어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시민에게 주어지는 충분한 자유가 폭력이라는 부정의 열매와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아렌트는 그렇게 인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에 합당한 자격이 없는 자들의 권력 추구와 그런 목적으로 수많은 시민들을 기만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맨얼굴을 그만큼 그녀 역시도 수없이 목격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결국 모든 정치사회적 수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념과 관념들, 그것이 부분적으로 구축하는 사회의 모습 전반을, 우리는 이를 양가적 측면과 불가능한 예측까지도 떠넘기지 말고 숙고해야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삶은 참으로 어려운 숙명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글말미에 떠올리게 됩니다. 

  





이른바 권력은 부를 통해서 측정될 수 없다는 것, 풍부한 부가 권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것, 많은 돈은 공화국의 권력 및 안전에 특히 해롭다는 것과 불길한 유사성을 갖는다.

정치적 암살은 대체로 우파의 특권이었고, 반면에 조직된 무장 봉기는 군대의 전문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전쟁에 빠져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재체 존재하지 않는다.

흑인 폭력은 사실상 한 세대 이전 미국에서의 노동 폭력에 비유하여 이해될 수 있다.

동서양 반란의 가장 의미있는 공통분모를 구성하는 ‘참여 민주주의‘요구는 혁명 전통의 최상의 산물에서 유래한다.

우리에게 조작에 관한, 또는 오히려, 조작의 한계에 관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으며, 이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차차 나아질 것이다.

진보는, 확실히, 우리 시대의 미신 박람회에 제출된 보다 심각하고 보다 복잡한 품목이다.

사람은 자기자신과 타인을 자신의 의지의 도구로 만들 때 자신이 보다 사람답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강제력은 적법해졌다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서, 강제력이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만일 전통적인 정치 사상 대로, 자신을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와 전제 정치를 동일시한다면, 지배자 없는 지배가 분명히 가장 전제적인데, 왜냐하면 행해지고 있는 일에 대하여 도대체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는 위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종 본능, 복종하고 싶어서 어떤 강자에 의해 지배되기를 바라는 열렬한 욕망이, 적어도 인간 심리학에 있어서는 권력에의 의지만큼이나 현저하고,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아마도 더 관련성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사실상 권력과 폭력의 가장 명백한 차별성들 중의 하나는 권력이 항상 다수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는 반면에, 폭력은 도구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수가 없어도 어느 정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세계 질서를 전복시키고 세계 평화를 파괴하려 한다면, 블가피하게 우리 자신의 정치 제도를 먼저 전복시키고 파괴해야만 한다.

이기주의는 , ‘진정한 이해‘ 다시 말해서 자신의 이해와 구별되는 세계의 이해에 양보하라고 요구받을 때, 언제나, 가까운 것은 내 셔츠지만, 더 가까운 것은 내 피부이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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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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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J.P. 테일러는 1906년 영국, 당시 랭커셔의 일부였던 사우스포트의 버크데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의 부모는 좌파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테일러는 양친으로부터 그런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 퀘이커 교도였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부르주아 문화와 기독교에 극렬하게 저항하게 되는데요. 그는 1924년에 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옥소포드 대학의 오리엘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1920년대에 그의 모친인 콘스탄스는 영국 코민테른의 일원이었고, 그의 삼촌 중 한 명은 영국 공산당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특히 모친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으며, 자유 연애의 열렬한 옹호자였습니다. 테일러 역시도 1924년부터 1926년까지 영국 공산당의 일원이었으나, 1926년 총파업 당시 당의 비효율적인 입장으로 당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그는 공산당을 떠난 뒤, 평생 영국 노동당을 지지했고, 60여년 이상 노동당의 당적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테일러는 특이하게도 1925년과 1934년에는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계 제2차 대전과 첨예한 냉전을 겪은 그는 당시 유럽에서 손꼽히는 19세기와 20세기의 유럽 외교를 전문으로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했는데요. 이 즈음에 새롭게 탄생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린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서슴없이 내비친 인물로도 유명했는데요. 1936년에 영국의 재무장과 관련해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피력했고, 1938년의 '뮌헨 협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한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에서 오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자본주의가 전쟁과 갈등의 원인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1950년에 발발된 한국 전쟁에 대해서도 영국이 이에 참전하는 것을 그는 원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드러낸 독일 혐오증은 유명했는데요. 1944년과 1945년에 걸쳐, 방송과 출판을 통해 보인 독일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도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Second World War : An Illustrated Histoy"로 지난 197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본으로 쓰인 판본은 1989년 출판본입니다. 이에 국내 초도 번역은 2020년 10월에 이뤄졌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8쇄본으로, 2024년 1월, 출간본입니다.

우선 저자인 테일러의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유명한 글은, 최근 국내에에 개정판이 출간된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으로, 무엇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영국에서 극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연유로 국내 출간 시점에서 큰 관심을 받은 논저이기도 합니다. 즉, 제가 일전에 서평을 쓴,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상당한 분량으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이 주도하는 '추축국' 진영의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전쟁 원인에 대해서는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1938년 즈음부터 시작된 유럽의 외교 위기와 히틀러를 통한 독일의 정세 변화에 관해서는 앞선,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참고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자인 A.J.P. 테일러는 전쟁의 주된 요인이었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화의 원인이 베르사유 조약인가 아니면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된 것이냐를 놓고, 둘 다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자신의 저명한 논저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의 패전국 독일을 배제한 강압적 측면이 이후, 독일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을 팽배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이 글에선 1차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알자스 로렌 지역을 독일이 상실한 것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민족적 모욕"이 되었다고 언급됩니다. 이는 마찬가지로 조약에 따른 후처리로 인해 동프로이센의 회항이 폴란드 영토로 가로 막힌 점도 한몫을 했는데요. 일전에 2차 대전사를 집필한 벤저민 카터 헷은 당시 독일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인 쿠르트 슈마허가 "나치의 선동은 인간 내면의 저열한 부분에 끊임없이 호소한다"는 평가에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나치 독일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히틀러가 폭력적으로 선도한 순혈 게르만주의와 그 대척점의 유대인을 유럽의 암세포로 적시하고, 무고한 이들을 절멸시킨 소위, '전체주의의 대두'는 우리가 왜 제2차 세계대전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포드와 같은 미국의 기업인들이 소비에트 혁명으로 인해 대두하고 있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크나큰 우려와 반감을 표시하고, 이것의 전면적 해결책이 히틀러의 파시즘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그 오싹한 결론에서도 역사의 비정함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그 와중에 히틀러가 이 혁명이 '유대인의 음모'라고 확신했던 부분 역시, 개인적으로는 반유대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불행한 인간사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주도권을 잡은 이후, 1938년의 서유럽의 두 강대국과 맺은 뮌헨 협정 이후, 당시 혼란한 유럽 정세속에서 뒤이어 폴란드가 히틀러의 시야에 잡히자, 영국이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폴란드에 대해 보장을 약속한 것은, 오히려 히틀러의 흥분을 불러일으켰다는 저자의 표현에 꽤 흥미로운 감상이 들었습니다. 민감한 국제적 정세에서 히틀러가 흥분을 했다는 의미의 맥락이 꽤나 소름끼치는 부분이었는데요. 히틀러가 1938년 9월 1일에, 휘하에 있던 독일 장성들에게 폴란드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할 수 있게 준비하라는 지시가, 저자의 표현대로, 혹여 서유럽에 대한 '공갈협박이'었을지라도 당시 프랑스 정치권이 동맹 관계였던 폴란드의 몰락을 어느 정도 예견했다는 점은 정설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냉엄한 국제 정치의 측면에서, 약소국의 운명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 우리는 여실히 깨닫게 되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해, 저는 일전에 다른 서평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2002년작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을 자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극 중 바르샤바에 있던 슈필만의 가족이 독일군의 폴란드 진공 즈음에, 프랑스와 영국이 폴란드를 보장할 것이라는 라디오 방송에 결국 피난을 떠나지 않고 이를 기념해, 저녁에 소소한 파티를 하는 장면이 마치 '국제 외교의 냉엄한 역설'을 여실히 드러내는 컷으로 각인되어 있는데요. 저자인 테일러 역시, 독일의 침략 야욕에 놓인 폴란드에 대해, 실효적인 보장이 전혀 없었던 '외교적 수사'에 대해 마찬가지로 당시 영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뼛속 깊은 영국인임에도 말이죠.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1918년의 기세등등한 전승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헛된 평화에 대한 현실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처럼 아픈 가시처럼 박혀있는 테일러의 정치적 수사들은 이곳에서 거의 가감 없는 표현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히틀러의 야욕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만, 이 대전을 수행한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그리고 히틀러는 이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선출된 행태가 어떻든 간에, 이들 모두 엄청난 재량권과 실효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주요 행위자들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말할 것도 없고 처칠 역시도 의회의 눈치를 얼마간 보기는 했으나 중요한 의사 결정은 주변의 조언들만 참고하고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렸습니다. 루스벨트 역시 자신의 고립된 집무실에서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몸소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스탈린의 소련은 이 대전에서 2천만 명의 희생자를 감수했는데, 이 점은 국가 지도자가 주도한 총동원령의 체제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했습니다. 국가 총동원령 자체는 그만큼 국력을 심대하게 소모 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는데요. 물론 히틀러의 그 광오한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독일 병사들을 갈아 넣은, 레닌그라드 포위전과 이후 스탈린그라드 (현 볼고그라드) 전역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수합니다. 거의 국가가 주도하는 만연된 '인명 경시 풍조'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입니다. 더군다나 이 인명 경시는 특히 소련군의 한 장성의 말로 대변되기도 하는데요. "지뢰를 탐지하기 위해 그저 병사들을 그 지대로 진군시키면 된다"는 정말로 참혹한 언급이었습니다. 이는 그 시대의 비참한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군사 작전과 관련된 일사분란하지 않은 작전 수행과 그 과정에서 보인 장성들의 심각한 패착은 2차 대전에서도 여실히 여러 장면에서 증명되고 있었는데요. 특히, 프랑스 진공을 위해 저지대 국가로의 우회로로 진격한 아주 '비상한 사태'에서 수 틀리면 발을 빼려고 했던 영국 군과 역시나 지휘 체계가 뒤죽박죽이었던 프랑스는 치욕적인 뒹케르크에서의 탈출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벨기에를 비롯한, 저지대 국가들의 안위가 전통적으로 영국의 안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우회하는 구데리안의 독일 기갑군을 제때에 격퇴하지 못한 점은 연합국에서 프랑스를 이탈시키고 다음 전황에서 영국이 스스로 고립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1941년 이후, 프랑스의 이탈과 더불어, 고착화된 전황을 타개하고자 영국이 주도하여, 독일내 산업 시설에 대한 폭격을 입안하고 이를 실제로 실현하지만 독일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던 것으로 이 책에서 분석됩니다. 테일러는 이 '공중 폭격'이라는 아이디어가 실제로는 독일보다 영국에 더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영국인들은 이러한 폭격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결정적일 수 있다고 그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폭격의 결과물보다, 오히려 독일의 해역을 봉쇄한 실질적 행동이 적대국에게 실효적이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독일의 해군 장령인 레더가 히틀러에게 보다 많은 유보트 생산을 건의했지만, 히틀러는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이 비상시기의 결정을 마찬가지로 언급합니다. 이러한 영국의 효과적 해안 봉쇄에도 불구하고 영국 해군이 주도하는 노르웨이에 대한 수복 작전이 지리멸렬하게 실패하자, 독일과 영국의 해전은 대전 내내 서로 미미한 대응만을 고수하게 되는데요. 테일러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일절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영국이 굴욕적인 뒹케르크 탈출의 굴욕을 다소나마 지울 수 있는 '나치에게 넘어간 노르웨이 수복 작전'이 연합군의 신뢰를 위해, 필요했지만 충분한 해군력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그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스칸디나비아의 철광석이 독일의 수중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를 사실상 묵인하였습니다.

뒤이어, 지중해 제해권과 관련한 몰타와 크레타 섬, 그리고 그리스 문제에 봉착한 영국 정부는 당시 군사적으로 준동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제어할 필요성에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영향권이자 '사활적 국가 이익 지점'인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를 방비하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해군의 전력 증파가 필요했습니다. 몇 번이나 강조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의도치 않은 바이기도 했던 히틀러가 대전 중 '지중해 사태'에 대해 경시하기도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전쟁의 작은 전환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는 테일러의 언급대로 히틀러는 중동의 석유 획득보다는 코카서스 지대의 원유를 노린 것으로 후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전제 하에, 히틀러는 자신의 의도대로 소련의 서부 지대를 점령하여 빠르게 모스크바를 굴복시키고, 다음 영국을 정리하기로 계획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는데요. 저자인 테일러의 분석대로라면, 1938년 이후로 히틀러는 영국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읽힙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나치 독일이 러시아를 재빠르게 정리해 이후 영국과의 전쟁에 모든 전력을 쏟아 넣겠다는 말로도 이해해 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틀러는 참모부의 의견을 사실상 묵살하며, 3개의 대규모 기갑 집단군을 소련 원정에 동원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대략 1세기 반 전의 나폴레옹의 전철을 고스란히 이행한 히틀러는 자신과 독일을 패망의 길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과신하는 스스로의 군사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다시 돌아와, 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그리스 보존은 영국의 사활적 이익임은 물론, 아드리아해를 통한 이탈리아 군의 진출 저지도 사실상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원칙적으로는 독일과 극심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던 소련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그동안 실패했던 제 2전선의 구축 시도임과 동시에, 후에 마이클 돕스에 의해 진술되는 바와 같이, 그리스가 서방의 영향에 있는 것이, 지중해 제해권을 가진, 영국에게는 몰타의 안위와도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당시 스탈린이 고려했는지는 다소 불확실해 보이지만, 소련의 그리스에 대한 개입 시도가 처칠에게 거부 당하고 나서, (교환의 성격은 아니겠지만)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발칸반도가 사실상 소련의 지배가 용인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역시, 기존 마이클 돕스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테일러 역시, 처칠이 스탈린에게 건넨 그 '쪽지'를 통해, 진실이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그 주변의 북아프리카 전역 역시, 독일 기갑군의 불세출의 명장이라는 롬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리비아가 같은 추축국인 이탈리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서쪽 인근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의 운명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지경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롬멜은 자신의 기갑 전력을 아끼면서, 영국의 노회한 장성들을 패퇴시킵니다. 더욱이 본국인 독일에서의 군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롬멜로서는 그가 영국군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꽤나 귀중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건강상으로 귀국길에 오른 롬멜의 부재를 깨달은 처칠이 몽고메리에게 진군을 재촉하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영국군의 진군은 더뎠습니다. 특히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와 그해, 11월 2일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이 200대의 전차를 잃은 것은 치명적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본국에서 증파되는 병력으로 인해, 그런 영국군의 실패가 다소 가려지는 측면도 있기는 했습니다. 다만, 11월 4일 이후 영국군이 종단 돌파에 성공해, 이미 빠져나간 롬멜을 뒤로하고 독일군 만명과 무능한 이탈리아 군 2만명을 포로로 사로잡은 것은 그 와중의 전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극심한 소모전을 초래하면서, 그럼에도 영국은 자신들의 중요한 자산인 수에즈 운하를 독일군으로부터 지켜내기에 이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2차 대전과 관련된, 거의 독보적인 시리즈였던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배경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즉 '오버로드 작전' 이후, 그 치열했던 프랑스 서부 해안의 전투, 그외에 다소 지지 부진하게 흘러갔던 로리랑 점령, 반대로 인정할 수 없는 소모전을 연합군에게 강요했던, 소위 아르덴 전역은 앞선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주요 무대였습니다. 특히 바스토뉴에 고립된 미국 101 공수 사단이 맞이하게 될, 거의 쥐어 짠 전력의 나치 재공세에서 이들이 겨우 버텨내,1944년 12월 말, 패튼의 대규모 공세가 이어진 그 시점에서 프랑스 북부와 저지대 지역의 온전한 해방의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테일러는 연합군의 총 군령권이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 양자간의 공유된 지침이었다면 이제는 아이젠하워가 온전히 군을 통솔하게 됨으로써, 영국은 (미국의) 속국 지위로 떨어졌다는 '다른 역사의 전환점'으로 지목합니다. 이미 영국의 내수 경제와 군수품 조달이 한계에 이르렀고 이대로 가다간 전쟁이고 뭐고 간에, 영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아예 흔들릴 지경이기도 했는데요. 마침 이를 구원해 준 것이, 루스벨트였고 만약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이 대전의 양상과 결과는 아주 판이하게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이 주축이 된 서부 전선에서의 동진, 그리고 참혹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수습하고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등을 수복하며 서진한 소련군이 베를린을 향해서 진군하게 되는데요. 몽고메리는 하루라도 빨리 베를린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지만 아이젠하워는 이를 묵살합니다. 물론 보급과 각 사단의 연계가 필요했고, 독일 내부의 진공은 때에 따라 정치적인 고려가 필요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전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민간인을 향한 대규모 항공 폭격,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은 분명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두 기의 원자 폭탄 투하, 그리고 1945년 8월 8일, 소련의 대일본 참전과 함께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저자인 테일러는 히틀러의 만용과 영토에 대한 야욕으로 시작된 1938년부터, 추축국들이 최대한의 성세를 자랑했던 1942년 이후, 진정한 세계 대전의 서막은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1942년 12월 이후가 연합국과 추축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고 판단됩니다. 일본은 원할한 내수 자원과 군수 물품 생산을 위해, 지속적인 원료 공급이 가능한 동남아 지역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대동아 공영권이 발동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에 의해 불세출의 영웅으로 취급받는 해군 장령, 야마모토가 어쩔 수 없이 진주만을 타격했지만 그곳의 막대한 유류 저장고를 없애지 않고 철수해, 진주만 공습은 일본 제국주의에게 절반의 성공으로 그치고 맙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막대한 생산력을 경시했고 그것을 통한 대전의 전개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근본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원인이 주요 패착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를린과 도쿄에서의 항복과 그로 인한 대전의 종전에 대해, 저자인 테일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2차 세계 대전은 좋은 전쟁이었다고 단언하는데요.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세력이 도덕적으로도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인명을 경시하고 배타적 인종주의에 매몰된 망령된 제국주의 세력을 세계 지도에서 제거한 것이 그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오늘 국제 체제의 발단이 이 2차 대전이었던 것만큼, 만약 이 대전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아마도 종말을 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운명은 더욱 알 수 없었겠죠. 여기서 좀 더 첨언하자면, 테일러는 일본의 당시 행태를 너무나 인명을 경시한 제국 정도로 스치듯 가볍게 보고 있지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과거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 일본인들의 패악과 착취가 도를 넘어섰다는 분석 또한,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와 히로히토, 그리고 초전에 지리멸렬한 무솔리니의 이 참혹한 대전에 대해, 명실상부한 숙고와 성찰이 없다면 지금 준동하고 있는 여러 극단주의 세력의 패악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 역사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경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히틀러와 그가 이끌었던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탄생한 것인지 아니면 대공황으로 탄생한 것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답은 두 가지 모두다.

자본주의 세계는 소련을 승인하지 않고 배척함으로써 보복했고 간섭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소련을 몰락시키려 했다.

독일의 승리로 독일인들이 가장 우월한 종족이고 다른 모든 민족들은 그 밑의 지위에 있으며 몇몇 종족을 물리적으로 말살해야 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원칙과 실행에 대한 주장이 뒤따랐다.

루스벨트는 가장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편법과 고결한 원칙, 상황에 따른 득실 계산과 원대한 목표가 하나하나 헤쳐 낼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여름이 다 가도록 체임벌린과 그의 동료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히틀러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프랑스인들이 체코슬로바키아와 맺은 동맹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체코인들과 프랑스인들은 오로지 전쟁이 두려워서 양보했고, 체임벌린은 영국 대중에게 자신 역시 전쟁이 두려워서 합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납득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뒹케르크 철수는 영국에서 놀라운 성과로, 거의 승리로 환영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그 일이 원한 어린 감정을 불러왔다. 패배를 앞두고 철수하는 일은 언제나 영국인들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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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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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큐언은 1948년, 영국 햄프셔 주 올더숏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동 계급으로 군에 입대해, 소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매큐언은 아버지의 주둔지를 따라, 영국 밖에서 생활하다, 12세가 되던 해에 영국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는데요. 그는 서퍽의 런던 소년들을 위한 중등 문법학교인 울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게 되고, 1970년에 이스트 서식스 주 팔머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서식스 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소설가로서는 매우 드물게 6번이난 부커상 후보에 오릅니다. 1998년에 바로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또한 2011년에는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수여하는 예루살렘 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서식스 대학이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매큐언에게 50주년 기념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2020년에는 독일 문화원이 "독일어와 국제 문화 관계에 뛰어난 공헌을 한 비독일인에게 수여"하는, '괴테상'을 수상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1917년에 영연방 왕국 훈장인 '명예 동료 훈장'과 예술과 과학에 기여한 영국의 기사 훈장인 '대영 제국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Amsterdam"으로, 지난 1998년에 출간되었고, 다만 이번 판의 번역에 쓰인 것은 2016년의 출간본입니다. 국내 초도 번역은 1999년 7월에 있었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23년 5월의 개정판 2쇄 본입니다.

이 작품은 '몰리 레인'이라는 여성의 갑작스런 장례식과 함께 본격적인 서사가 진행됩니다. 영국 내각의 고위 관료이자, 외무부 장관인 '줄리언 가버니', 시사지인 저지의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와 영국을 넘어 유럽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심포지엄 작곡가인 '클라이브 린리', 그리고 앞선 몰리의 법적 남편이라고 볼 수 있는 조지 레인' 등 이들은 극을 진행하는 데 있어, 주요 인물이기도 합니다. 앞선 몰리라는 여성은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과 한때 연인 관계였거나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이 어떠했는지는 앞선 이들의 대화나 회상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앞에서 열거된 두 사람은 명백히 아내가 있었기에 이는 달리 말하자면 외도라는 측면에서, 부도덕한 불륜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몰리는 사망 당시 46세로, 어쩌면 그녀는 당연히 건강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가인 매큐언은 현 남편인 조지 레인에 의한 독살이나 사고사를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한발 물러서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몰리의 생전 마지막 상대가 외무장관 줄리언 가버니라는 점은 극에서 상당히 중요한 설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그는 일종의 인종주의자이자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로 극의 배경인 1996년 이후의 영국 사회에서 대두된 한 쪽의 정치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가버니는 소위 입지전적인 인물로, 아내인 로즈와 함께 가정을 일구었고 의사인 아내의 경력에도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외조도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가 법대를 졸업해 변호사가 되었고 이후 정치 경력을 통해 내각의 장관이 된 이력은 전문직과 고위 정치인이라는 자신만의 성공한 성을 쌓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된 몰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심지어 극 중반에 그의 아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몰리가 가버니는 물론 아내와도 직접적인 교류를 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슈베르트를 경멸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베토벤을 향한 애정과 그런 악곡의 창작에 대한 예술을 천직으로 삼고 있던 클라이브 린리는 극 초반에는 상당히 합리적이면서 이성적으로 그려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내면은 다소 나약하고 어느 정도 충동적인 일면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술가들에게 이런 충동적인 측면은 당연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가 읊조리는 예술과 삶에 대한 관계와 이것들을 통한 자신의 지향, 여기에 고통스런 노력을 통해 탄생되는 작품에 대해 스스로가 갖는 자부심 등은 예술가들이 흔히 갖는 인간적인 면모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분주한 생활을 영위하는 와중에도 그는 오랜 친우인 버너를 향한 배려와 도의는 꽤나 놀라운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더불어 그 역시도 지난날 몰리와 뜨거운 사랑을 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연인으로서, 그녀에게 청혼을 고민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중견 시사지인 '저지'의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는 직장 내에서 쉽게 적이나 친구를 만들지 않는 그만의 처세술로 사내 요직인 국장의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친구인 클라이브에 대해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치기 어린 모습도 보이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두 사람의 어느 정도 불협화음이 잡히기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진정으로 우정을 나눈 사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데요. 다만, 앞선 클라이브가 한동안 일이 없던 버넌에게 보인 우정 이상의 호의는 꽤나 특별한 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약간의 논외지만, 우리가 쉽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친분이나 우정관계라는 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배려, 그리고 호의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실로 건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데요. 물론 매큐언의 이 작품은 많은 상징과 사회적 관습, 통찰을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클라이브와 버넌, 이 두 사람의 지난날 함께한 막역하고도 서로 간의 밀접한 기억들은 이런 관계의 불균형이 지속된 상황에서 서로가 순간 분을 못 참고 벌인 충동적인 행동이 극의 충격적인 마무리를 장식한 것은 어떻게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이는 마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의도된 희극과 유사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극의 주요 변곡점이었던, 버넌이 왜 줄리언 가버니를 쓰러트리려고 했는지는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그런 몰리를 향한 연민과 동시에 줄리언을 향한 사적인 질투가 이 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이러한 부분을 자신의 이익과 절묘하게 결부시킨 조지 레인이 그 시점을 이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의 말대로 버넌은 '치솟는 감정의 노예'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누구보다 스스로 노력해, 치열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자부심과 국장이라는 지위에 올라서도 신중한 처세를 추구했지만, 경쟁지와 비교해서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현실과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앞선 조지 레인의 의견을 수락한 것은 그의 경력과 삶을 배경으로 했을 때는 큰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 조지 레인의 야료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또한 신자유주의 하에 있던 소위 경쟁적 기업이라는 맥락에서, 다른 사람의 몰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등의 합리주의로 포장된 이기주의를 이 부분에서 여실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찌됐든 이런 서사는 개인의 추락을 떠나 상당히 비극적인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인 매큐언은 일종의 치정극을 기반으로, 당시 영국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의 갈등, 지금에서야 성정체성과 관련된 LBGT 문제가 전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기서 그려지는 당시 영국 사회의 성담론과 성소수자들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고심해 볼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즉, 줄리언에 대한 버넌이 주도한 위기 혹은 그 음모가 성소수자 코스프레로 순간을 모면하긴 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의 정치적 경력을 끝장나게 만드는데요. 매큐언은 이 장면을 유독 콕 집어 세르반테스 식의 우스꽝스러운 연출로 비꼬면서, 가히 한편의 코미디 극으로 만들고 있었는데요. 이는 우선적으로 우리 세태에 대한 극명한 비판에서 뿐만 아니라, 그런 이슈가 어떻게 한 치의 고려도 없이, 어느 정도 사회가 경직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성담론에 무조건적으로 투항하는 모습을 매큐언은 우리 사회를 빗대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적 회고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읽은 매큐언의 이 작품은 제가 읽은 어떤 장편들보다 극의 짜임새와 사건의 진행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클라이브가 버넌과 다툰 뒤, 충동적으로 감행한 산행에서 맞닥뜨리게 된 그 사건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독창적인 전개라고 볼 수 있었는데요. 더욱이 클라이브가 버넌에게 본심을 드러내어, 마치 데이비드 흄이 애덤 스미스와 맺었던 우정의 한 진면목처럼 부탁하는 그 장면이, 나중에 그렇게 비극적으로 이용될 줄은 저 역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매큐언의 영리한 글쓰기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뒤이어 조지 레인이 이 두 사람의 몰락을 지켜보며, 마치 아내의 부적절한 정부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처럼 구는 행동 역시, 냉혹한 기시감과 더불어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 사회에서 한 축을 맡게 된 놀라울 만한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돈이나 권력보다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점은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임은 아마도 누구나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사회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런 승리감에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는 것은 아마도 개인적 나약함과는 그저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매큐언은 바로 자신의 이 작품에서 마치 커다란 복지와 사회적 지원의 수혜를 받으며 성장한 68세대가 결국 뒤이어 등장한 마거릿 대처에 적절히 대항하지 않고, 점차 기득권에 안착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 도덕적 기준과 보편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저 전문직이라는 이유와 고위 직업군의 종사자라는 자격만으로 본성이 범한 과오가 면책될 수 없다는 점을 이 작품은 복합적으로 이를 드러내고 있기까지 했는데요. 이는 1980년대의 미국 드라마가 아주 대놓고 성공한 경력을 보유한 중산층들의 외도와 불륜을 극의 소재로 삼은 부분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대미를 포함한 후반부의 전개 과정이 단순히 남녀 간의 치정이 얽힌 복수극을 다룬 심리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인데요. 여기에 작가 본인도 후반부의 서사를 통해, 인간이 불가해한 존재라고 인정했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몰락에 이르게 하는 길은 자신에 대한 과신과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안일함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치정극이라는 허울을 쓴 이 주요 인물들의 몰락 과정에서도 여실히 자신의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다는 냉혹한 현실과 이를 기민하게 해석할 수 있는 유럽 합리주의의 위태로운 양면적 속성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극의 대미 즈음에 매큐언은 그 비극적 사건을 두고 "이것이 그들 운명의 희극적 성격이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에너지, 그런 행운, 전후의 사회복지국가에서 태어나 나라가 주는 젖과 꿀을 먹고 자라고, 부모들이 이룬 소박한 부에 얹혀살다가 곧장 완전 고용의 시대에 돌입한 세대.

그는 외국인 혐오와 과도한 형벌이라는 뻔한 노선을 앞세우며 정치판에서 이력을 다져왔다.

"옳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린리 씨. 이 세상에 오류가 없는 사법체계란 없습니다."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유행을 초월하며, 저물어가는 한 세기와 그 시기의 무분별한 잔혹성을 애도하는 한편 눈부신 창조의 업적을 기리며 폐부를 찌르는 아름다운 멜로디. 먼 훗날 천 연주의 흥분이 충분히 가라앉고 불꽃놀이와 평가분석, 간추린 역사 서술과 더불어 새천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끝난 후, 이 거부할 수 없는 멜로디는 사라져간 세기의 엘레지로 남으리라.

유럽에서 음악은 줄곧 인간 본성이 불가해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온 인본적 전통 위에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서른 살 때나 지금이나 몸은 결국 별 차이가 없었고,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버릇은 노회한 정치가의 처세술이라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렇다 빛을,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공공의 선이 하나되어 타오르는 불꽃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단호한 손길로 국가라는 기관에서 종양을 잘라낼 순간이 임박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견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널리즘이란 어느 면에서 자연과학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기사는 적수인 반대의견들을 물리치고 살아남는 기사이며,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강해집니다.

그 목소리의 설득력은 그녀가 속한 계급이나 장관의 아내라는 위치보다는 전문직 종사자의 긍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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