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사회의 정치사상 -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 지성사
이슈트반 혼트 지음, 김민철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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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 1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이슈트반 혼트는 헝가리 태생의 영국 경제사상 및 정치사상을 연구한 역사가였습니다. 그의 부친인 혼트 야노시는 1949년에 수립된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농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모친인 케메니 클라러는 헝가리 최초의 여성 공학 교수였습니다. 1965년 일 년 정도의 군복무를 마친 혼트는 아버지의 남다른 조력에 힘입어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1974년 '데이비드 흄과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 헝가리 학술원의 연구관으로 부임합니다. 그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스코틀랜드 정치경제사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1975년 부인 안나와 함께 단기 일정으로 영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영국의 망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대사 석좌 교수였던 휴 트레버-로퍼의 지도 하에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혼트는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펠로우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는 1988년에 컬럼비아 대학의 정치사상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른 역사가들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18세기 근대 국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그는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와 같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상업, 민족주의, 국가 부채, 사치 사회 및 정치경제학과 같은 주제들로 여러 학술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 Jean-Jaques Rousseau and Adam Smith"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혼트의 이 글은 자신이 탐구한 필생의 연구 실적과 마찬가지로, '근대 정치사상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을 학문적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서문의 믿음으로 출간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 (1723-1790)가 장 자크 루소 (1712-1778) 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일독해, 추후 소감을 남긴 것에 주목하고, 당시 18세기에 비약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냈던 소위 '상업 국가'에 따른 루소와 스미스의 생각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으로 당시 대두하고 있던 상업사회에 대한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분석의 장은 1장부터 4장까지, 그리고 경제와 관련된 루소와 스미스의 논의는 5장과 6장으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제 서평을 논외로 하더라도 5장과 6장은 여러분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5장과 6장에서는 스미스를 끊임없이 오독을 하고 있는 교조화 된 자본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와 다름 없는 경제학계의 그를 향한 편협한 해석의 원류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혼트가 6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국부론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고 그것의 일례로 "스미스가 국가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식민지 체제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진술 자체는 작금의 학계가 이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퀜틴 스키너가 이미 밝혔듯이,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시작점은 아마도 홉스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홉스의 사상에 반대하려는 목적 그 자체 뿐만 아니라, 협소하게는 홉스가 펼친 국가론 (내지는 정부론)에 대한 명백한 이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치와 정부에 대한 인식의 '다른 의견'은 소위 계몽주의의 초석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홉스 사상의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여, 1장에서 저자가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한다는 내용으로 갈음하고 있었는데요. 홉스는 아주 간단히 말해,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서로에게 늑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홉스는 '인간의 원천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고전 그리스 철학에 대한 당시 유럽의 맹신에 대해서도 반대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그러므로 앞선 계몽주의의 맥락은 이런 홉스의 사고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여 계몽주의가 후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그 당시 스코틀랜드의 사상은 "인간은 자기애에 기반하여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그런 욕구가 사회 내에서 남을 존중하고 규칙을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인간이 자신 말고 타인을 신경 쓴다는 것 자체는 뒤이어 존 스튜어트 밀을 필두로 자유주의적 사상의 기반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 내에 합리적 가치 책정에 따른 효용에 대한 감각을 가진 시민들이 적절한 용역을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유지"되는 맥락의 '효용에 기초한 사회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스미스가 생각하는 사회의 규범과 질서 유지 및 도덕성의 관철에 이러한 시민들의 효용에 대한 가치 유지가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여겼는데요. 또한, 대표적인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저자인 혼트가 분석하는 바대로, 그것이 신의 전능과 그 영역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보이지 않는 손을 어떤 식으로 왜곡해 이에 "전지전능한"이미지를 부여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상업사회의 구조적인 안정은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안정화 요소"라는 부연 설명으로 개념화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이 점은 애덤 스미스의 남다른 통찰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18세기 상업사회의 정신적 기반은 바로 효용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관련된 자존심의 발현이 그 근간이 되었습니다. 혼트는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우리가 18세기의 상업사회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다만, 애덤 스미스가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도덕감정론에 근거하여) 홉스주의자나 혹은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에게 홉스주의자라는 타이틀은 분명 상당히 모욕으로 여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홉스가 상업과 그 이익에 관련된 이해를 분명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상업사회의 확장 가운데 '도덕철학의 역사' 또한 이 시기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의 '도덕감정론'이 요약하기 어려운 논저라는 인식은 모두의 불만을 사듯, 스미스는 분명하게 도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사상가였습니다. 현재까지 자유 세계의 이론가들과 경제학자들이 스미스를 소위 '자본주의의 시조'쯤으로 여기며 자신의 논리대로 스미스를 잘 써먹고 있는 현실은 반대로 그를 도덕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철저히 배제시키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공화국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공한 유력한 사상가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역시도 상업사회에 따른 사회의 전반적인 이기심 추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논저이기도 했고, 그 가운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공감과 이입의 본성'이 어떻게 '이기심의 본성과 그 체계'에서 양립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던 것인데요. 바로 이 부분의 내용에서 루소는 애덤 스미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방향성의 단초를 루소에게서 얻었던 것으로 첨언하고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육문사 판으로 1998년쯤에 읽을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떠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또한,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역시 따로 접하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발췌한 적은 분량의 텍스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혼트가 간단한 주석으로 요약하고 있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일부 내용들이 이 글의 2장에서도 인용되고 있어 계급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루소의 기본적인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루소와 스미스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공감의 세계'로 비롯되는 공감의 내용은 뒤이어 5장에서, 이 두 사람이 완벽한 현실주의자임을 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에도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미스가 "인간은 타인의 의견과 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근원적 본성이라는 분석은 그가 얼마나 상업사회의 기반에서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인간 심리 분석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미스 역시, "사회화, 수치심, 위선"등을 어느 정도는 중요한 의미로서 탐구했다는 면모가 일련의 사고에서 중요한 증거로 도출되기도 합니다. 이에 스미스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고인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다른 이기적인 행위자들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시켜, 원초적 이기심과 그것의 자기강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였습니다.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저 필수 불가결한 어떤 필연적인 문제로 봤지만 스미스는 이 이기심을 어떻게 타인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루소 역시도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오독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대표적인데요. 루소와 스미스 양자가 그런 면에서,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존재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만들어내는 사회 형태라는 도출된 결론을 크게 인정했다"는 분석은 앞선 효용과 인정에 대한 맥락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즉, 이 둘은 상업사회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했으며, 이렇게 불안한 요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것을 안고 나아간다면) 홉스주의적 결과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혁명'을 방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둘 다 혁명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럼에도 2장에서 스미스가 인간이 내적으로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외부로부터는 인정을 추구함으로써 이것이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즉, 이 불평등의 문제가 홉스주의적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스미스는 꽤나 진지한 어조로 상업사회에서 종래의 계급적 분화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양립하며, 사회에 넘치는 부로 인한 현격한 상황에서 가난한 자들이 평범한 소비생활을 통해, 전반적으로 나아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나아진)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는 상업사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는 대두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완화를 위해 스미스는 자신이 도덕적이지만 이론에 가까운 토대를 마련하고자 고민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자애와 타애라는 감정의 적절한 성립 가능성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인간의 인정 추구라든지, 사회 내에서 스스로 기여하거나 단독으로 쟁취할 수 있는 영광 추구가 엘리트를 포함한 모든 계급의 고통이 되었고, 그것에 지배당하게 되었다는 서술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5장 이후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가계 경제에 따른 상업사회의 진면목이 "가장이 주도하는 권위"와 이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복종이라는 기본적 행태가 이러한 문제를 애초에 내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루소와 스미스 모두는 이런 상업사회의 이행 가운데, 원초적으로 인간이 사회성과 도덕성을 타고났다는 점을 부정했습니다. 3장 도입의 이와 같은 저자의 단언은 그동안 논증 가운데 예견될 만했는데요. 루소는 과거 가혹해진 전제정과 삶의 유지가 어려워진 빈자층에 대한 일종의 제한적인 배려에서 평등에 대한 관념이 잠깐 솟아나기도 했지만 중앙 집권이 미약했던 과거 봉건 정치에서 획기적인 권력 집중의 전제정치가 나아갔던 방향과 그 면모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가혹했다는 점을 먼저 명시해두고 싶습니다. 루소는 이미 이렇게 권력 집중을 통한 중앙 집권적 전제정이 무력을 통한 타국의 침략에 거의 무방비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점차 살을 붙여가는 진술 가운데, 저자가 14세기의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그 나름대로는 진보적인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이웃의 프랑스나 신성 로마 제국의 군사적 공격에 취약했던 것은 전제 군주들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었던 연유일 겁니다. 아니 동원령을 내려 (귀족과의 타협이든 간에) 대규모 원정을 꾸릴 수 있었던 '왕권'에 실효적으로 대항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몽테스키외와 마찬가지로 이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대한 스미스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지엽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는 단순한 감상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앞의 진술로 돌아가서, 상업사회의 의도치 않은 이면이 스미스가 예견했던 대로 이것이 인간의 자유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들과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는 합리적 이기심의 추구와 같은 전제가 중요한 요소로 함께 실현되었다면 (그저 도덕적 맥락이 아니라) 이 상업사회는 그 파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익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숱한 전쟁들로 말미암아 기존의 봉건 국가가 낱낱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후로 이어지는 18세기의 상징적 단상은 공화주의의 발견이 아니라 어쩌면 더 가차 없는 개인들의 이익 추구의 사전 작업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스미스의 이런 노력은 거의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오늘날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유명무실해진 이유에는 스미스의 순진함과 더불어, 그의 다른 측면을 세인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은 그 의도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부론이 그만큼 편파적으로 이해된 측면 말입니다. 수세기에 걸쳐서 말이죠. 루소를 일정 부분 받아들인 스미스가 지위 추구에 여념이 없는 문화를 거대한 기만이라고 인식한 것처럼 지위와 타인의 인정 추구에 매몰되어 이것이 심각한 불평등을 유발할 때, 루소나 스미스 양자 모두가 특별한 강구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을 너무 만만하게 본 연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측면의 무모함과 저열함을 너무나 우습게 본 것이죠. 아주 늦은 판단이긴 하지만 루소 역시도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스미스와 달리 루소는 인간에 대해 사회성을 촉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해본 것 같지만 그 역시도 현실의 조건을 가볍게 본 것 같습니다.또한, 루소는 경제에 관여할 수 있는 정부의 재량권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개혁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사회 조정에 불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애덤 스미스와 루소 역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상업사회가 주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법치와 경제적 번영"이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대로 역사에서 이 양자는 쉽게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끝으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인간이 갖고 있는 시기심과 질투를 조정해, 좀 더 진보한 단계까지 나아가려 했던 스미스는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과 그에 따른 제국주의의 출현을 전부 목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이때의 절대 왕정은 과거 로마 제국의 그것과 유사하게 단일 패권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것의 파급은 스미스나 루소조차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방대한 생산 시설과 그에 따른 자원 보유를 통해 이러한 메커니즘이 국내의 복리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패권과 국가적 위신을 위해 영국을 포함한 절대 왕정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국왕과 귀족들의 지향과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들과 그 궤가 확연히 달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미스는 어쩌면 대의로서 상업사회의 일면과 그것을 점차 개선해, 시스템과 인간의 모순을 조정하고, 요즘식으로 다음 단계로의 건설적 이행을 바랬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이 검은 왕들과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 귀족들에게는 국가는 그저 자신들의 위신과 이익을 채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의 구귀족들이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부역한 영국이나 오스트리아의 귀족들 역시, 함께 갖고 있는 공통된 이익은 일차적으로 현상 유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미스의 아이디어들은 몇세기를 거치며, 오용되어 금세기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공익에 대한 자신들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숨기는 데 있어 여실히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루소는 이 점을 몇 세기 전에 신랄하게 비판한 바가 있는데요. 물론 이들에게는 과거 극심한 이념 대결에 따른 배경적 이익도 한몫했고, 정치인들을 구워 삶는데 교조주의적 수단도 서슴치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미스가 절대 왕권을 설득할 수도, 또한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세계와 우리 시대의 지향성이 이처럼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글의 후반부인 6장에서, 저자는 "18세기 근대국가의 군사-상업 복합체"라는 문구를 드러냅니다. 저에게는 저자의 표현이 기시감을 불러일으켜 소수의 그룹이 사회적 헤게모니를 손쉽게 획득하기 위한 그런 일련의 작업이 국가를 불법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는 서로 중첩된 의미를 의도치 않게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루소가 경고한 대로 이 시점에 혁명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기적으로 조직된 사회 구조가 결국은 과두제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번갈아 반복하거나 아니면 시민들이 권력에서 배제된, 변형된 과두제로 진행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상업사회가 지칭하는 대상은 실제로 이뤄지는 물질적 거래가 아니라 해당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성질이었다.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한탄하곤 한다.

사회성 개념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지점은 사회가 ‘욕구‘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이른바 안정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스미스가 정말로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그는 홉스주의자나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이다.

‘애덤 스미스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연민의 본능을 이처럼 도덕성의 원형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유의미한 도덕이론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잘못된 토대에서 출발한 실패에 불과한지 평가해야만 한다.

스미스는 루소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정의의 법칙은 본래 타인에 대한 비자연적이고 부당한 우월성을 유지하거나 얻으려 하는 교활하고 힘 있는 자들의 발명품이다."

서구에서 논의되는 ‘근대 대의제 상업공화국‘의 사상적 기원을 살펴보면 그것이 루소와 스미스의 작업을 종합한 결과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스미스)는 근대 도덕철학 논쟁이 홉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홉스와 플라톤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을 거쳐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루소가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그 단적인 예이다.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개인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만들어내는 사회 형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즉각적인 관심은 사회적 자아에 대한 루소의 이론적 역사 서술과 스미스의 그것이 나아가는 궤적이 아주 비슷하거나 동일한데도 어째서 그 사실이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사회가 홉스주의적 결과를 피할 수 없으며 일단 사회가 상업적으로 조직된 뒤에는 홉스주의적 장치들조차 그 사회를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끝없는 혁명의 파괴적인 반복과 순환 속에서 유럽에 카이사르주의와 민주주의가 번갈아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를 경배하는 마음, 그리고 물질적인 화려함을 통해 개인의 영광을 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철저하게 부패한 정서로서,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발휘했다.

루소는 자신이 18세기 ‘정치의 걸작‘이라고 불렸던 사상, 즉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자들의 행동이 사회적 응집력 혹은 적어도 안정된 사회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기적 행위들 자체의 효과로 인해 공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비판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가 경제정책의 한 형태로서 국제적으로는 타국을 향한 민족적 적개심에, 국내적으로는 국가의 권력 확장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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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멈춰버린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
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희상 옮김 / 원더박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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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리데만 카릭은 니더바이에른 주의 유일한 대학인 파사우 대학에서 미디어 연구 및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라인 강 유역에서의 독일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퀼른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습니다. 현재 그는 베를린과 뮌헨을 오가며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요. 그는 팟캐스트인 "Piratensender Powerplay"를 진행하고 있는 동시에 쥐트도이체 차이퉁 (SZ)과 디 차이트 (Die Zeit)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소재한 토마스 만 하우스의 펠로우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Was ihr wolt : wie Protest wirkliich wirkt"로 지난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같은 해인 2024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국내 출판 업계가 해외에서 출간된 책의 원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이거나 아예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으로 출판하는 것이 뭔가 업계의 관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카릭의 이 책도 이런 범주의 출판물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원제는 "시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요약할 수 있지만 번역된 제목은 가히 어두운 정치적 붕괴로서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일독하고 나서 번역된 제목과 여기의 내용이 아주 거리가 멀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상당히 자극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강하게 듭니다. 이 부분은 정말 유감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정 부분 공론장의 아이디어와 연관된 위르겐 하버마스의 유명한 언급인 "시민 불복종은 그만큼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는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문장 자체는 저에게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적 다원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전에 존 듀이가 이 정치적 다원성과 시민 불복종을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을 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민 불복종의 근원적인 배경에는 민주주의적 다원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1943년 이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돌프 히틀러와 자신들이 고안한 전체주의에 맞서 광범위한 불복종이 왜 실패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이 글의 1장과 2장의 핵심이기도 하면서 카릭의 이 글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여겨지는 "극우 포퓰리즘과 같은 극단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의 다원성에 기반한 시민들의 정치적 불복종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맥락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18년 이후에 전세계에 닥친 극단주의의 범람에 "2024년 1월, 독일에서 역사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진술은 우리의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흐름에서 시민들에게 각인시킨 "민주주의 사회는 극우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유럽의 시민들이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종래의 평가와 더불어 이들의 사회 참여가 정치 왜곡에 따른 극단주의 세력의 확장을 불식시키는 보루라고 인식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자인 카릭은 스스로 독일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정치가 두려워 하는 부분인, 다시는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공감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독일 정치의 리더십'이 부분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과거 역사에서 독일의 대중운동과 관련해, "나치즘이 '유대 민족'이라는 꾸며낸 적을 상대로 하는 끔찍한 대중운동을 성공시킨 사례"라는 확고한 인식은 독일인들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의구심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2장 서두에서 저자는 "권위주의나 유사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에는 강력한 다수의 저항이 필요하고 여긴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난 윤석열의 불법적인 계엄 선포와 관련된 정권 퇴진에 우리 국민 다수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과 동일한 이해라고 여겨지는데요. 또한 2장에서 저자는 우리와 튀르키예를 언급하며, "튀르키예와 한국의 학생운동이 군사정권을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고 언급하며 이 저항운동에 대한 의미를 되새깁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프리데만 카릭은, 간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해 행동에 나선 것처럼 "어떠한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 가운데, "우편 폭탄 공격까지 서슴치 않고 왕의 말 앞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을 정도로 치열했던 운동"과 같이 몸을 내던지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은 운동의 성과를 떠나 모두에게 불행한 일임은 자명해 보입니다.

카릭의 이 글에는 역사의 한 획을 차지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운동의 공감대를 이끌었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최초로 인정했던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와 '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밀크와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진지하고 상세한 설명은 이 독일인이 얼마나 진보적 시민운동에 영감을 주었던 이들 선구자들에 어떠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짐작케 할 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유로마이단 혁명'에 대한 특별한 관점도 내비치고 있었는데요.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손으로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퇴진 시킨 이 혁명은 서구 유럽의 눈에는 상당히 독특하고 예상치 못한 정치적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유럽 연합이 제시한 협정을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거부"하여 촉발된 시위는 애초에 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그저 외교 정책 노선과 관련된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 사이에선 혁명으로 비화 될 정도가 아닌 단순한 사건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가 특수기동대에 이 시위대를 급습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나서, 이 만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켜만 보고 있던 많은 시민들이 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무고한 시민들에게 린치를 가했던 '부도덕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아주 극적인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권리는 보호 받아야 될 원칙일 겁니다. 굳이 헌법을 논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굳이 지금까지 진술한 이러한 시민적 저항 운동에 대한 필요성과 결부지어, '참여의 문제'를 강박적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수 시민들이 자신의 양심으로 표출된 의견 개진과 그로인한 저항운동의 참여는 이들이 속한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응당 용인 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미 글의 7장에서, 하버마스와 관한 분석에 이어,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 역시, "장기적인 정의를 위한 단기적인 법 위반이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들 편에 섰다"는 언급 역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전에 마누엘 카스텔은 "정부에 대항해 행동에 나선 많은 시민들에게 경찰의 공권력이 내포하고 있는 공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 가운데 다수 시민들은 무조건 비폭력 저항을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은 거의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수반한 원초적인 저항 운동이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은 원칙적으로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의 후반부인 10장에서, 시민들이 '체제가 가하는 폭력'에 마땅히 저항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앞서 보였던 비폭력 운동에 대한 확고한 저자의 인식에 저는 약간의 혼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동에 분별력을 잃은 "총기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워싱턴 D.C의 미국 연방 의회에 벌인 "2021년 미국 의회 점거 폭동"은 이들에 맞서는 일반 시민들의 대결 구도 그 자체보다는 정치를 나락으로 몰아가는 극우 포퓰리즘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요구하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폭력적 상황에도 중도적 의견을 내세우며 기회주의적 사고에 매몰된 일부 시민들은, 저자의 분석대로 "설사 정당한 요구라 할지라도 지나친 이기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공공공간을 유례가 없는 폭력으로 점거하는데도 대부분 방관한다"는 우파적 속성에서 기인한 극단주의적 행태에 대한 자정이 사회에서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극우 포퓰리즘적 극단주의 행태는 직설적으로 "특정 인구 집단을 정체성(인종, 성별)에 따라 적으로 간주하면서 이 집단 구성원의 존엄성 그리고 민주주의에 참여할 권리를 부정하는 가장 명백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고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과 동일한 시민들을 단순히 성적 지향과 성별, 인종 등으로 단순화하여 이들을 배제하거나 이들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박탈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무분별한 선동 정치인과 분별력을 잃은 지지자들의 결합"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전의 미국 정치에서 티파티 운동이 드러낸 극단주의적 속성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0장에 도출된 일부의 결론이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극우 포퓰리즘은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퇴행을 부추기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더 크게는 그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려고 국민을 동원한다."는 소름 끼치는 분석 말입니다.

저자가 서두에 도출했던 바와 같이, 권위주의 정부에 처해 있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저항권을 바탕으로 체제에 반대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반란자들로 몰아갈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권위주의 정부가 휘두르고 있는 억압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이 사회의 시민들이 명백하게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는 것인데요. 이렇게 중반의 논증을 거치며 저항 운동에 대한 분명한 맥락을 짚어 본 저자는 후반부에서는 아마도 독일 정치에서 네오 나치와 같은 불온한 움직임을 염두해 두고 진술과 논증을 병행한 것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10장에서,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인,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 "극우 포퓰리즘과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라면 충분히 인정이 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영향력을 키운 극단주의 정치에 대한 수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의 경고는 앞서 설명한, 2021년의 미국 연방 의회 점거와 오버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를 비롯, 지젝과 같은 지식인들이 이 연방 의회 점거에 보인 태도는 아주 분명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이 반민주주의적인 반동 세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히틀러가 선동질을 통해 바이마르 의회를 무력화 시켜 민주주의 체제를 끝장내버린 역사와 절묘하게 수렴되기까지 합니다. 나치가 주도한 대중운동이 반유대주의를 근거로 600만의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던 것처럼 극우 포퓰리즘이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을 그것에 준하는 폭력으로 귀결되지 않을 보장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역시도 괴물을 맞이해, 모두가 전혀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이할 뻔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 제목처럼 극단주의와의 전쟁은 아마도 이제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가 허락한 저항권을 악용해 민주주의 체제 또는 민주주의 근본 가치를 공격하는 극단 세력이 그런 예이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권위주의나 이와 유사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에는 강력한 다수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극심한 폭압에 맞서 정권을 전복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근소한 차이라도 과반이 넘는 다수 또는 매우 큰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소수가 떨쳐 일어나야만 정권의 수혜자, 기회주의자, 하수인, 기득권자 세력을 누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일설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르봉의 책을 읽고 군중을 사랑이나 증오 같은 단순한 감정으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는 믿음 이외의 다른 무엇인가가 함께 작용한다.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수십만 명의 ‘팔로워‘들은 단지 정치적인 이유에서만 노이바우어를 따르는 게 아니다. 이들은 일종의 사회적 관계, 말하자면 오늘날 ‘인플루언서‘와 대중 사이에 형성되는 가상의 친밀함을 갈망한다.

우리는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 자기 자신이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봐야 달라질 것이 없어"라는 태도로 정치와 저항운동에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무관심한 태도만 보이는 사람은, 사회가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것에 공동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 시민 불복종은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와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의무 사이의 "의무 갈등"이 일어날 때 자유를 지키는 방향으로 갈등을 풀어줌로써 사회의 헌법 정의를 안정시켜줄 수 있다고 롤스는 보았다.

극우 포퓰리즘은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퇴행을 부추기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더 크게는 그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려고 국민을 동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신을 반대하고 심지어 폐지하려고 하는 저항도 용인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지만, 그 딜레마는 어디까지 자유민주주의의 규칙을 지키는 상대에게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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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그레이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앤 브론테 지음, 허진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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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잉글랜드 웨스트오크셔 주 브래드퍼드의 자치구 중 하나인 손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계로 당시 교구의 부목사로 재직했으며, 모친인 마리아 브론테 (결혼 전 성은 브랜웰)는 콘월의 상인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앤은 이들 사이에서 여섯 명의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그녀는 샬럿, 에밀리, 브랜웰의 여동생이었는데, 이 중 샬럿과 에밀리는 영문학에서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824년 중반,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은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를 웨스트요크셔 크포프턴에 있는 크로프턴 홀 학교로 보냈고, 그후 랭커셔의 코완 브리지에 있는 성직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외부에 나갔던 엘리자베스와 마리아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가족, 특히 아버지인 패트릭이 남은 아이들을 다시 멀리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샬럿과 에밀리는 코완 브리지에서 나와 5년 동안 이모 엘리자베스와 패트릭에게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목사관 밖의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는데 특히 앤은 이모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앤은 집에서 음악과 그림을 공부했고 아버지의 잘 갖춰진 서재에서 호머, 버질,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등의 글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 앤이 11살이 되자 가족으로부터 그녀가 "사랑스럽고 온화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이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839년 4월, 19세가 된 앤은 웨스트요크셔 주 커클리스 자치구에 소재한 미어필드 근처, 블레이크 홀의 잉엄 가문에서 가정 교사로 일을 시작하는데요. 잉엄 부부는 당시로서는 매우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녀는 이곳에서 다섯의 아이를 교육하는데 애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때의 경험이 『아그네스 그레이』를 쓰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후 1848년 9월, 언니인 브랜웰이 끊없는 음주로 건강을 잃어 사망했고, 그 직후 에밀리 역시, 큰 병을 앓게 되는데, 두 달 동안 악화되어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니들보다도 앤은 에밀리에게 마음을 열고 크게 의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지나친 슬픔은 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심한 독감에 걸렸고, 이듬해인 1월 초에 의사로부터 폐결핵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2시경,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노스요크셔 주 스카버러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gness Grey"로 지난 1847년에 출간되었고, 이번에 번역하게 된 원전은 1989년에 펭귄 클래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초 번역은 200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의 번역본은 최근인 2026년 1월에 이뤄졌습니다.

앤 브론테의 이 작품은 많은 분량의 작품인 '와이드펠 저택의 여인'과 함께 그녀의 유일한 장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아그네스 그레이'는 앤의 언니인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해에 출간되지만, 이 작품은 자매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샬럿이 관여하여, 새로운 판본이 재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앤의 이 장편은 그녀 자신의 가정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기도 합니다. 이 '아그네스 그레이'의 설정 상, 약간 흥미로운 부분은 극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그네스의 수기(手記)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고, 그녀의 언행과 내밀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 작가인 앤 브론테의 이야기로 쉽게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이 작품은 앤의 자전적 소설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아그네스의 부친은 영국 북부의 목사로 재직했고 모친은 지방 대지주의 딸로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이 결혼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했지만 자신의 딸은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이 가난한 목사와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입 초반의 상황은 그녀의 어머니와 외가는 거의 의절을 한 상태로 추측됩니다. 이런 아그네스에게는 위로 메리라는 언니를 두고 있는데, 이 둘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목사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현명하면서 검소한 태도를 지닌 모친의 절제력 있는 운영으로 필요한 하인들을 두는 등,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었지만 부친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상행이 망망대해의 난파로 마감됨으로써, 집안이 적잖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아그네스가 18세가 되자, 그녀는 부모를 설득해 다른 집의 가정교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모두 반대를 했지만 무엇보다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어른답게 자신의 몫을 하겠다는 결심이 그들의 반대를 이겨냅니다. 이런 아그네스가 처음 일하게 된 '블룸필드 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오만한 부인의 과욕으로 그 문제가 드러납니다. 특히 이곳의 큰 아들인 '도련님 톰'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거짓 술수'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어른을 수단으로 삼는 '교활함'까지 갖춘 아이인데요. 이 소년은 자신이 집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저 반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생들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까지 마음대로 하려고 곧잘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가문의 등장하는 인사들은 전부 비틀린 인물들로 '어른의 마땅한 역할'이라든지, '겉과 속'이 매우 다르게 행동하거나, 지속되는 언사와 행동들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의 돈과 지위를 바탕으로 소위 '왕국'처럼 오만하게 지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당시 상업을 기반으로 대두하고 있던 '계급들'에 대한 실질적인 내실의 빈약은 아마도 영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아그네스는 이러한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무기는 "인내심, 단호함, 끈기"로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특히 네 아이를 지도하는 가운데(물론 한 아이는 매우 어리지만) 어른도 우습게 보는 쉽지 않은 본성에 이들에게 따귀라도 쳤으면 행동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태도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작가인 브론테는 극의 지문을 통해, 이 시대 아이들의 훈율을 위해, 손을 올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에 좀 더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겸허함과 겸손을 갖추는 것을 인간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피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아그네스 역시, 매우 신실하고 스스로 종교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든지, 사람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굳이 현대식의 교육 환경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룸필드 가의 인물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에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을 블룸필드 가에서 혹독하게 보낸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우려와 연민을 뒤로 하고 다시금 가정교사 자리에 지원합니다. 아그네스는 이미 모친이 가르친 바대로 "피아노, 노래, 그림, 프랑스어, 라틴어, 독일어"까지 능통한 여성으로서도 보기 드문 교양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오만한 본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게 공개 지원을 통해서 두 번째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집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인 호턴 로지의 '머레이 가'로 떠나게 됩니다. 이 머레이 가는 마찬가지로 당시 귀족 다음으로 사회적 힘을 얻고 있었던 '젠트리 계급'으로 꽤나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가문이었습니다. 이때의 관습대로 장녀에게 칭하게 되는 '머레이 양'인 로절리는 극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상당한 미모를 갖춘 아가씨로 여겨집니다. "몸매가 완벽하고 살갖은 고우면서도 뺨에는 혈색 좋은 느낌"이 드러난다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미인임을 감안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머레이 가의 로절리는 활기차고 낙천적인 성격 이면에 사람에 따라, "차갑고 오만하며,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부목사의 배경을 갖고 있던 아그네스에게 로절리가 간혹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분별이 있는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노처녀 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즐기면서 온 세상을 유혹"하겠다는 로절리의 강한 응답은 뒤이어, 모두가 바라는 숙녀를 얻지 못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찟어 놓고 싶다는 식으로 첨언됩니다. 앤 브론테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본성에 대해, 아그네스의 입을 통해, "분별과 도덕성, 그리고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예로 듭니다. 분명 로절리는 앞선 진술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로 단순히 미모를 갖춘 소녀의 허영심 이상의 교활함을 드러내는데요. 지역의 교구 목사인 햇필드의 외모를 칭찬하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통찰력이 전무하여 그의 지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볼 수 있는 햇필드 역시, 종교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매우 오만한 인물로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아그네스는 호턴 로지 지역의 영지민들 가운데 빈한한 삶을 살고는 있지만 신실하고 겸손한 낸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햇필드는 그런 낸시를 경멸합니다. 더욱이 로절리와 햇필드 이 두 사람은 진실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위선적인 인물들로 이들의 관계 역시 그 가벼운 본성 만큼이나 쉽게 종말을 고하는데요. 여기에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로절리가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부목사인 웨스턴에 대한 아주 경박한 평가는 극의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서사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저 삶의 낙관적인 전망을 떠나 아주 안일한 결정으로 결혼을 하게 된 로절리에게 아그네스는 어떤 질투나 이죽거림의 태도가 아니라, 진실로 로절리의 혼인을 걱정합니다. 부유한 유지인 토머스와의 결혼이 그녀의 모친이 나서서 주도한 결과로 이어졌고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한 남자의 본성과 도덕성, 그리고 진실됨의 여부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안락한 삶'을 위해서만 목표로 삼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아그네스는 로절리에게 몇 번이나 조언과 우려의 빛을 보내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습니다. 특히 겸허하면서 어려운 지경의 영지민을 보살피는 웨스턴을 자신의 매력으로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로절리의 그 끝 모를 태도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중에 '애슈비 부인'이 된 로절리가 애슈비 파크로 아그네스를 초대해 이들이 몇 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 신중하지 못했던 결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과신하고 사람의 값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기적이면서 자기본위적 태도자체는 작가인 앤 브론테가 가장 경계했던 인간상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앤 브론테 역시,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시 여겼던 점인, "인간의 분별력"에 대해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분별력이 없는 인간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극의 골자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의 끊임없는 분별의 부재를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극의 서사에서 후반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 대체로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그네스의 결혼 역시 익히 예측이 된 모습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애슈비 부인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머레이가 사람들, 그리고 호턴 로지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소식을 묻는 과정에서, 제일 나중에 언급되는 이의 뜻밖의 이주, 그리고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드디어 드러나는 그의 풀네임은 이러한 정황이 소설적인 측면에서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그네스와 그와의 재회 역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했는데요. 다만,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가리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통찰이 때론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지위나 가진 부가 누군가에게 욕망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면 그 결말 역시, 분별력을 잃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 작품은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에서 도덕적인 측면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겸허한 속성, 그리고 훈련된 지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와 중요한 선택의 문제에서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누구보다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 작가인 브론테는 우리가 어떠한 인간들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소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곳의 인물들이 오가는 자연 풍경이나 한가한 일상을 담은 서사 한 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교훈을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 작품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후반부, 로절리가 아그네스에게 햇필드과 관련된 가당찮은 욕망과 그에 대한 낮잡은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 매정한 허영심이 놀랍고 역겨웠다"는 꽤나 놀랄만한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의 서사를 거의 열 번 넘게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 전체의 묘사나 서사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게 대단했던 전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저급한 측면의 본성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가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보니 노부인은 위선적이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아첨꾼, 내 말과 행동을 염탐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계층에 속한 노부인들의 버릇이었지만 그 기묘한 버릇이 이렇게까지 심한 노부인은 처음 보았다.

로절리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차갑고 오만하게 굴다가 나중에는 거만하고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게 되자 거만한 태도를 내려놓았고, 나중에는 나 같은 신분과 지위의 사람에게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갖게 되었다.

로절리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고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모와 가정교사와 하인에게 폭군처럼 굴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되자 그러한 성향이 다른 것들과 함께 더 큰 열정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고, 곧 남성을 매혹하고 싶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야망에 삼켜졌다.

"내 지위를 절대 잊지 않고 제일 훌륭한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했는데 말이에요. 당장 내일이라도 그런 남자와 무릎을 꿇고 아내가 되어달라고 애원하면 좋겠어요."

불쌍한 로절리! 그때 나는 로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가 나에게 준 모든 상처와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용서했다.

"정말 이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위와 부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자식들에게 지위와 부를 확보해주면 자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는 로절리가 무척 가여웠다. 행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의무를 경시하는 것도 가여웠지만 그 끔찍한 동반자에게 운명이 묶인 것도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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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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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명이 이리나 르보브나 네미로프스카야인 이렌 네미롭스키는 1903년 2월,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키예프(현재는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레프 보리소비피 네미로프스키로 당시 키예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은행가였습니다. 모친인 파니 요보브나 마리골리스 네미로프스키로 그녀에게는 별다른 가정사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딸인 이렌과 적잖은 불화를 겪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어머니와의 불안정하고 불행한 관계는 그녀의 많은 작품에서 주요한 뼈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시작될 무렵의 불온한 기운을 읽은 그녀의 가족은 러시아 제국을 떠나, 잠시 핀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1918년을 그곳에서 보낸 후, 그녀의 가족은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네미롭스키는 곧 소르본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18세가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많은 딸과 유대인 은행가의 이야기를 담은 '데이비드 골더 (국내에 번역된 제목은 『몰락』)'를 출간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30년,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데이비드 골더의 원작자가 밝혀졌을 때, 당시 프랑스 문단은 여성 작가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쌓은 작가적 명성을 통해, 그녀도 파리에서 꽤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에 자신이 신청한 '프랑스 국적' 취득이 당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거부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939년에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인데요. 더욱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잡지인 '캉디드'와 같은 곳에 글을 기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덧씌워진 '유대인'이라는 혐오는 그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뿌리가 깊었습니다. 1940년이 되자 네미롭스키의 남편은 더 이상 은행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 역시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치가 수도 파리에 접근하자 그녀의 가족은 부르고뉴 지역의 이시레베크로 급히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부르고뉴와 파리를 오가며 생활했던 네미롭스키는 1942년 7월 16일부터 17일까지 비시 프랑스 정부 경찰이 독일 점령 당국의 지시에 따라 파리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한, '벨 드 이브 검거 작전'에서 '유대인 무국적자'라는 이유 만으로 연행되어, 당시 오를레앙에 있던 비시 정부의 피티비에르 수용소로 끌려갔고, 1942년 7월 17일, 982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이틀 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네미롭스키에게 나치는 유대인 식별 번호를 새겼고 이로부터 한달 후 쯤에 그녀는 장티푸스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1942년 11월 6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즉시 살해되었습니다. 작가 자신과 남편의 이 불행하고 비참한 죽음은 유대인이기 전에 프랑스인과 다름없었던 그녀의 삶 자체를 유럽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 것이며, 나치 독일은 그 엄혹한 체제 만큼이나 인간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잔혹한 행위 등을 국가 사회주의이라는 미명하에, 주저 없이 시행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es Chiens et les loups"로 지난 194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9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개와 늑대'는 그녀가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렌 네미롭스키가 쓴 이 특별한 작품의 의의는 유대인과 그 민족을 다른 여타 문학들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가 명확히 알지 못했던 1900년대의 유럽,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190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들 현지인들과 따로 분리한 '게토'가 이미 존재했다는 부분과, 이 게토가 실상은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최상위 유대인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로 거주 구역을 나눴다는 놀랄만한 서사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는, "그럼에도 돈이 많은 유대인은 쓸모가 있다'는 메타포 자체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작품 서두에 등장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에 대한 언급 역시, 이 대다수 유대인들이 실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배타적이고 몰이해적인 혐오에 직면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각지를 오가며 물건을 팔고 있는 이스라엘 시너는 아내를 여의고 홀로 남은 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아마도 키예프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의 하층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허름한 집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딸의 외할아버지인, 장인까지 부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만 사촌 동생의 부인이 남편을 잃고 그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데요. 아마도 유대인들의 관습 상, 혼자가 된 집안의 여인과 남은 가족을 친척이 부양하게 되는 의무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존의 빠듯한 생계에도 불구하고 시너는 별다른 군말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의 딸인 아다에게는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환경의 변화로 이렇게 대면하게 된 '라이사 숙모'와 마찬가지로 사촌 남매인 릴라와 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러시아 기병대'를 비롯한 군중 무리들이 유대인 게토 지역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는 당시 암묵적인 사주로 이뤄진, '포그롬 pogrom'이라는 유대인 약탈 행위이자 박해이기도 합니다. 아다의 아버지와 숙모가 야밤에 아직 어린 아다와 벤을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와중에 그들의 식모이자 하녀인 나스타샤와 부지불식간에 떨어진 이 두 아이들은 유대인 상류층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과 성은 동일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너'의 대저택이 그곳이었습니다.바로 이때, 아다의 남은 평생을 의식하고 좌우하게 될. '해리 시너'와의 극적인 조우가 이뤄집니다. 물론 이 만남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대면이기도 했습니다. 극에서 로스차일드와 비견될 정도로 부유하고 권력층과 유대가 깊은 본래의 '시너 가문'은 유대인 사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들이기도 헸는데요. 그들은 러시아 제국에서 큰 돈이 될 만한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이들 유대인들이 당시 상류층에게 특별한 '돈줄'임과 동시에, 이 가문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득에 기여할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돈 많은 유대인'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이득이 될 만하다는 서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극중에 등장하는 "유대인에게는 부유함이 곧 구원이다"라는 증언에 가까운 읊조림은 그야말로 '현실의 확인된 서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미롭스키의 이 작품은 돈이 있는 유대인 상류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과의 확연히 분리된 인식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듭 반복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 딸의 갑작스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다의 부친인 이스라엘 시너는 그에게 있어 '시너 본가'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극중에서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꾸준한 성실성'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성공적으로 시너 가문의 일에 스스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딸과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돈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요. 물론 하루 아침에 풍족하고 부유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자신의 딸에 대한, 야심만만한 야망을 갖고 있던 라이사는 딸과 조카인 아다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주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녀는 여기에 있어봤자 나날이 미모를 드러내고 있는 큰딸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라이사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마담 미미'와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강하게 설득했고 이때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외동딸인 '아다의 더 나은 교육 기회'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들불처럼 러시아를 휩쓸자, 이스라엘 시너의 사업 역시, 기존의 안정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딸과 제수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던 시너의 돈이 결국 마르게 되자 라이사는 부득이하게 생계를 위해, 그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옷 수선집'을 차리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딸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꽃피우고 있던 아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라이사는 종종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해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반추하고 그때의 기억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던 아다는 숙모의 독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자신이 돈 많은 남자를 골라 결혼했던 라이사와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는 라이사와, 아다는 완전히 대립되는 캐릭터로 자리합니다. 아마도 당시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던 많은 여성 유대인들이 가졌을 법한, 소위 '상향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아다는 무엇보다 '잔잔한 일상'과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열망합니다. 이는 단순한 서사로 봤을 때, 라이사가 그녀에게 행하는 손찌검과 증오에 가까운 발언 등이 직접적으로 아다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사촌인 벤과의 결혼을 감행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그녀가 '상향혼'을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전혀 없는' 결혼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요. 그런 연유로 그녀가 집착하는 '해리에 대한 열망'이 이런 의도적인 설정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멀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그동안 흠모해 왔던 아다와 결혼한 벤은 그 시대가 표출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추구해야 될 것은 오로지 '돈'이며, 이것은 유대인들의 숙명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다에게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마음과 반대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점'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면모 또한 함께 드러냅니다. 그런 연유로 그는 무엇보다 아다가 있는 집을 벗어나 하염없이 외부로 겉도는 상황을 반복합니다. 이런 와중에 유년 시절에 겪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제국 하의)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을 지배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극복할 수 없었던 아다는 '특유의 유대인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엄혹한 분위기이면서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안고 있던 유대인들의 면면과 그들이 처해 있던 도시와 환경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됩니다.

해리 역시, 아다와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린 시절 '포그롬'에 대한 기억을 선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 민족에 대한 양가 감정과 명확히 분리되지 못한 인식과 그것에 사로잡힌 삶을 그는 동시에 영위하고 있었는데요.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는 후반부의 서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여기에 "갈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 끈질긴 에너지, 거의 본능적인 욕구, 주변의 눈치를 볼 줄 모르는, 체면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뻔뻔함, 그의 정신 속에서 이 모든 건, '유대인의 불손'이라는 오직 하나의 이름표 아래 정리되었다" 부연 설명됩니다. 이처럼 해리는 자신이 분명한 유대인의 후손이면서도 반쯤 왜곡된 그 '유대인 정체성'을 혐오합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순수 프랑스인이었던 로랑스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애정 없이 결혼한 것이기도 한데요. 물론 그의 아내인 로랑스의 부친이 부유한 은행가이긴 했지만 해리가 돈 때문에 로랑스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그에게 장인이 되는 로랑스의 부친은 애초에 이 결혼을 반대하는데요. 그는 어릴 때부터 크게 반항하지 않은 막내딸이 해리의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식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동쪽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극심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 부녀의 서사에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생전에 프랑스 사회에서 어떠한 냉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온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당시 서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어떠한 인종주의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해리는 그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동안 유대인 전통에 따른 '혈통 결혼'에 은연중 거부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와 집안의 혈통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충동적인 모험의 길로 스스로 이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다시 해리와 재회하게 된 아다와 이들을 둘러싼 벤과의 연민과 갈등을 주축으로 극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물론 직전에 읽었던 '몰락 (데이비드 골더)'과는 다르게 극의 전환에 있어 당사자들의 '몰락'은 예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사실상 유인한 벤 역시, 아다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아다는 스스로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에 처하지만 해리의 안전과 삶을 위해 그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결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해리의 아내인 로랑스에게 있어, 아다가 차라리 그의 정부(情婦)였다면 쉽게 잊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아다와 해리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그리고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특별한 우정 관계"라는 용서할 없는 그 관계성이 자신을 더욱 나락을 이끌었다는 간접적인 묘사는 큰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계가 상당히 상투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 지속은 그야말로 '심연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가 맞게 되는 인생의 제2막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는데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는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극이 일관되게 설명했던 아다의 개인적 인생사와 맞물려, 그동안 그녀가 견지했던 삶의 방향성과 마지막의 예상치 못한 장면은 서사의 관점에서 통일된 느낌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갈망과 두려움 그 사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겠으나 만약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해리와 연관되어 있다면 마지막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독백하는 '그와의 연결성'에 대한 언급은 적당한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열린 결론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극의 종결은 어느 정도 모호하게 마무리되고 있어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두지 않았나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본문 229 페이지에 편집 오류인지 한 문장에 두 번이나 마침표가 찍혀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본문 28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책 제목과 관련해, 극의 후반부에서 '벤과 해리'로 암시 되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개와 늑대로 대비되는 이 두 종은 극명한 점과 더불어, (종과 사회적인 인식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제목의 차용 자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니콜라이 2세가 지배한 20세기 초의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의 거주가 몇몇 주거지역과 몇몇 구역, 몇몇 거리로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상점들도 군인들 틈에 섞여서 종교와 상관없이 약탈을 일삼는, ‘비렁뱅이‘라 불리는 인간 말종들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하늘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고상하고 기묘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그녀에게는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이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낙천적이고 정겹고 부드럽고 유쾌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가 그 여자아이 앞에서 그렇게 덜덜 떤 것은 그의 눈에 그 여자아이가 가난뿐만 아니라 불행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처럼 이상하고 불길하게 전염되는 불행을 표상했기 때문이다.

해리가 아름다운 책들을 집어 어루만질 때면, 아다는 그의 민첩한 갈색 손이 황갈색이나 붉은색 표지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걸 바라보며 진정한 황홀감을 느꼈다.

모든 유대인이 그렇듯,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

아다는 상류사회에 진출하거나, 인맥을 쌓고 돈을 벌기 위해 해리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여겼다.

"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 전에 너의 것이었어. 로랑스가 정확하게 봤어. 내가 로랑스 비슷한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그녀는 날 용서했을 거야. 그래, 로랑스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건 바로 너야. 우리와는 다른 누군가가 묶어 놓은 것을 푸는 건 우리의 능력 밖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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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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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프랑스 중북부 일드프랑스의 이벨린 주, 생제르망앙레에서 태어난 에마뉘엘 토드는 부친인 올리비에 토드는 저명한 언론이었고, 모친인 안네-마리 니잔은 작가 집안의 여식이었습니다. 특히 토드의 외할아버지는 작가 폴 니잔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친할머니 줄리아 오블라트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평소에도 에마뉘엘 토드는 자신의 논저들을 통해, 스스로 유대인계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인류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던 토드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유명한 고등학교인 생제르망앙레 국제고등학교 (Lysee international de Saint-Germain-en-Laye)에 입학합니다. 1968년 5월, 그 유명한 '68혁명' 당시, 그는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그의 활동 시기는 매우 짧았습니다. 이후 파리 정치학 연구소에서 인류학적인 관점을 가진 두 역사가인, 피터 라슬레와 앨런 맥팔레인의 지도 아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이런 그에게 전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 연구가 1976년에 있었습니다. 그는 유아 사망률 증가와 같은 사회적 지표를 기반으로 과학적 분석과 아날 학파의 접근법을 사용해,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여 당시 학계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1992년에는 유럽 연합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백히 반대했고, 이 시점에서 '사회적 균열' 또는 '사회적 격차'라는 용어를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언론에 통해서 나오기도 했는데, 그는 이를 부인합니다. 이런 인류학적인 역사 접근 방법과 유럽 연합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최근에는 (2002년 이후) 미국의 쇠퇴와 그에 따른 전세계 정지경제학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a Défaite de l'Occident"으로 지난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의 이 논저는 출간 당시, 프랑스에서 큰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겐 서구 진영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하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니힐리즘과 관련된 수사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저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부분은 지금의 유럽 연합이 자신들이 구축한 이데올로기가 동유럽이나 혹은 권위주의적인 러시아보다 정치경제학적인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입니다. 이것은 유럽 연합 지도층의 뿌리 깊은 우월 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자신의 이 논저에서, 앞선 '정치경제학'이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았고, 더불어 세계의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이 '중요한 학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마치 유럽 연합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적 행위자인 러시아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읽힙니다. 다만, 현지 프랑스 언론이 이 논저에 대해, 작금의 정세를 단순히 유럽과 미국에 밀접한 개신교의 유산이 쇠퇴했고 여기에 니힐리즘적 자기 파괴가 이뤄져, 이 틈을 교묘히 파고든 권위주의적 러시아의 승리라고 보는 관점은 그 기술적 논법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 어려운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미국은 2010년 이후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주의적 정치 개입이 강화되어 왔기에 이것을 앞선 개신교의 쇠퇴와 결부짓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관점에서 토드의 이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저자가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서구 자유 진영이 그동안 러시아를 방만하게 분석해 왔다"는 평가는 저자를 포함한 일부의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유럽의 엘리트들이 새겨 들어야만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러 사회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바와 같이, 작금의 세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님에 인정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1장의 논증 가운데, 미국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다"는 분석은 색다른 수사 만큼이나 그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후퇴한 미국과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고 있는 유럽에 있어, 예상과는 다르게 오래 지속해 오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관련해, 이미 제조업 기반이 무너져, 군수 물자 지원마저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더욱 입증하게 된 혹독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더욱이 근래에 자주 오르내리던 미국 중부의 '러스트 벨트' 역시, '아웃소싱과 이윤을 위한 제조업 기반의 해외 이전'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핵심 사항이 이룩한 현실이기도 한데요. 여전히 신자유주의 자체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그저 입을 놀리기 싶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말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마거릿 대처의 "사회 따위는 없다"는 일갈 (사회경제학적인 양식이 전혀 없는 자의 발언처럼)은 시카고 학파의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의 극적인 마중물이기도 했습니다. 푸코의 말처럼 사회가 없는 시민들의 상태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그 허위의 표본처럼 말이죠. 이것은 "대처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이 사회에 무슨 짓을 했겠는가"와 같은 냉소와 연계되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인 토드는 이 책의 6장에서, 이런 영국이 처한 정치경제학적인 상황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앞선 대처의 '사회는 없다'라는 진술이 당시 사회 기반 영역의 거침없는 민영화에 따른 일부 기업으로의 분배가, 지금까지 대다수 영국인들을 고통에 빠트렸다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의료 서비스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의료 보험의 붕괴'를 함께 진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 사회가 아주 심각하게 양극화되어 있다는 6장 후반부의 도드라진 분석은 그런 연유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영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어 왔으며, 그 제반 산업이 이미 실효를 다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제조업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누구나 짐작할 만하겠죠. 더욱이 같은 장에서, "영국이 취약해진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고 그 이데올로기란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말한다"는 폭로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로도 읽힙니다. 이렇게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 에마뉘엘 토드가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자기 부정과 해체 그리고 급기야 소멸'에 처하게 되는 '니힐리즘적 양상'을 지금 서구 유럽과 미국이 처해있는 파국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니힐리즘이라는 수사가 어떻게 보면 급진적으로도 보입니다만 이들이 잃어버린 계몽주의와 그것에 기반했던 자유주의적 유산이 더 이상 이 사회들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2장 말미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애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이 나라가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극적인 서사는 여전히 이치에 맞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서술해 냅니다. 바로 이런 이해 관계에 놓인 서구 유럽 역시, 역설적으로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이에 대해 저자는 부연 설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서구 유럽은 겹치는 가치가 많은데, 그것은 심지어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은 것들'이라고 폭로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군사 원조를 받기 위해 법적으로 면제된 자금 조달 시스템에 편입했다는 점은 이 가운데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자를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것이 무기 브로커이거나 서방의 고위 관료로서, 체제 내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이득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의 초반에서 글이 나아가는 진행 방향성을 잠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저자는 우선적으로 이 글을 통해, "우크라이나-전쟁이 미국과 서구 유럽에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자신에게 다시금 되묻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역사와 인류학을 통한 문답의 형태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당히 명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러시아를 오판하게 된 진정한 연유는 무엇인지"도 대해 중요한 주제 의식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구 유럽이 더 이상은 자유주의 진영이라고 불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저자는 11장에서 미국을 아주 명확하게 "자유주의 과두제 국가"로 규정합니다. 저는 이렇게 묘한 의미로 겹치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한동안 그 의미를 음미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틴의 초기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 인용되기 시작하는 '올리가르히'이라는 권력 지향적이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상당히 맞지 않는 이 용어 자체는 이미 미국와 유럽에서, "체제에 기생하는 엘리트 기득권층"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어떻게 보면 온전한 자유주의 체제라 부를 수 없는, 너희 서구 유럽이 어떻게 권위주의적인 체제인 푸틴의 러시아를 비난할 수 있느냐로 힐난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푸틴이 제거했던 올리가르히와 미국의 경제 안보 엘리트들, 그리고 유럽의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이 '서구 자유주의 식으로' 공통된 이해로 수렴하는 마치 '서유럽의 수수께끼'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일관됩니다. 이미 미국은 오래된 다원주의적 가치를 상실했고 이 다원성의 실종이야말로 자유주의 유산의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일정 부분 그 뜻하는 바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불온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민주주의적 제도 하에, 규정된 선거제의 지속과 평등한 투표권 등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가 완벽히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내실에서 자유주의에 반하게 되는 정치적 행위나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극단주의화 역시,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일관된 관점으로 미국과 서구 유럽의 엘리트들의 무능을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러시아, 혹은 푸틴 자체에 대한 오판을 수정하지 못하고 저자의 말마따나 유럽에서 러시아의 유산을 과소평가한 서유럽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실책은 어쩌면 자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직 KGB 출신으로 능수능란한 모략을 지니고 있는 푸틴과 그의 러시아를 너무 '실패 국가'로 몰아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구 자유 진영이 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광범위한 러시아 경제 제재를 지속해 오고 있지만 저자인 토드는 이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제재가 러시아에게 가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러시아에서 왜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는가로 반문합니다. 만약 서구 정치권이 이 경제 제재를 통해 푸틴 정권이 궤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판이고, 이미 자급경제를 달성한 러시아의 식량 사정은 큰 위기 없이, 삶이 지속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러시아인들을 본다면 확실히 이번 제재의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은 초반 진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는데요.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무분별한 탄압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에 있어 흔한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서부(독일 게르만주의와 연계)와 동부(친러시아 계열)의 민족적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 전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저자의 분석 또한 큰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과거로부터 한번도 '국민국가'였던 적이 없다는 인류학적인 분석은 꽤나 독창적이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가 러시아의 영향력에 오랫동안 종속되어 왔다는 단편적인 서사보다도 통합된 국민국가로의 이행에 나설 수 없었다는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었는데요. 즉, 저자가 설명하는 바대로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주축이 된 국가'로서 우크라이나는 그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나토 국가인 폴란드의 이해 관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밀접하다는 일련의 진술 말고 오히려 진정성이 있다면 푸틴의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역시, 정치적으로 고려할만한 선택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서부와 동부의 현격한 이질감은 단순히 선거를 강행하고 지역 내 정치인을 선출한다고 해서 이 나라가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민국가인지는 여전히 단정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푸틴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과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였고 그런 연유로, 러시아의 국내 문제라는 잣대를 무시할 만한 수준의 개입 정당성이 서구 유럽에는 이론적 기준으로는 상당히 애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개입에 대한 정당성 문제는 스스로를 입증 시킬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 떠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게르만주의에 호응했던 서부의 역사를 유럽이 선택적으로 이를 용인하는 것은 통합의 차원에서 상당히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의 본질을 고찰해본다면 말입니다.   

저자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의 사례를 소개하며, 동유럽에서도 푸틴의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국가들이 있다는 점과 독재자인 푸틴 자체는 역사에 오르내렸던 무능한 독재자들과는 매우 다른 유형의 인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러시아의 선거 제도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많은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해석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문단 서두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푸틴의 러시아와 협력을 유지해왔던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구소련의 붕괴 이전에 당시 서독은 동독과의 통일을 위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협력과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반대로 미국은 독일 통일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과 관련된 논저에서도 드러나듯, 러시아의 독일에 대한 가스관 연결은 이전의 '시라크와 메르켈, 그리고 푸틴의 커넥션'에서도 미국이 싫어하는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케이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는 매우 충격적인 가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전의 원인불명으로 처리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사보타지에 있어, 미국에 주도로 노르웨이가 협력하고, 더불어 독일의 묵인으로 실행되었다는 설을 논증 가운데 실고 있었는데요. 저자는 이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유럽 내의 미국과 새로운 군사안보적인 협력 국가로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꼽으면서 이들 두 국가는 그동안 미국의 안보 정책과 발을 맞춰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분석되는 미국의 사회 병폐적 상황은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기존에 쓰였던 용어로서 지칭되는 기독교가 아닌 '개신교'로 명칭을 전환하여, 알게 모르게 사회전체에 신과 신자라는 영혼적 관계를 넘어, 종교적 지배가 가능했던 영향력에 대한 부침 자체는 종래의 미국 사회를 상당히 변질시킨 것으로도 읽힙니다. 1950년대 전후로 영국 성공회 기반의 교육 제도와 미래 엘리트 세대의 육성이 미국 사회가 한동안 유럽 사회를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저자의 말마따나 종교의 부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감리교 신학의 확산이 어느 정도 개인주의와 자유 관념에 긍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작금의 기독교 우파의 등장은 타협과 관용을 실종한 일종의 극단주의로의 변질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 과정의 논증에서 종래의 개신교가 본질적인 '인간 평등'을 부정해 왔다는 점이 과거 계급주의 질서에 편입한 개신교의 역사로 쉽게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영국 사회가 그러한 신분 차별에 대한 기존의 관행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분석도 1980년대 이후의 미국 사회를 좀 더 조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스프의 역사를 고찰해 본다면 이러한 이해가 쉽게 가능하기도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저자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잉글랜드 섬 중북부 이후에는 영향력이 미진했고 오히려 스코틀랜드와 인접한 이북의 시민들에게 감리교가 주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술 역시, 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성공회나 그에 못지 않은 감리교가 인간 평등이라는 관념을 어떻게 보면 쉽게 용인할 수 없었던 불협화음 역시, 그 맥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연유로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여전히 구체제에 있어, 인간 이성의 확신이 다른 유럽 지역에서 왜 제대로 먹히지 않았는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신앙적으로 가혹했던 과거 칼뱅파의 후손들에게 이러한 계몽주의적 맥락은 쉽게 계산할 수 없는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아주 쉽게 말해, 인간의 이성과 신의 명령과 같은 개념적 대립 구도에서 말입니다. 

끝으로 유로화의 출범으로 유럽 내부에서 좀 더 완전한 권력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 독일이 다른 경쟁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과거 원죄'를 들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강고한 관념이면 독일이 정치적으로 가혹하게 말하자면 거의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가 이런 독일의 현실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갖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모순에 처한 현실'을 인정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이후로, 독일 정치권은 러시아와 잘 지낼 수 있다는 식으로 어필하기도 했지만 이는 미국이 절대 용납할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결국은 아무 쓰잘데기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선적으로 이 전쟁 이후에 러시아가 과연 폴란드를 포함한 위협에 직면한 순진무구한 유럽에 군사력을 투사를 할 것인가에 더 논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저자는 푸틴이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폴란드의 우려'는 가볍게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토드의 이 논저는 앞선 전쟁에 대한 현실의 분석은 물론, 대립하는 두 세력의 사회적 일면을 거의 생경하게 분석해 내고 있고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의 경제적 조건, 그리고 지금 러시아인들의 생활이 어떻게 안정되어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각 사회가 아무런 모순이 없을 수는 없지만 예를들어 영국 사회가 고학력자들과 저학력자들의 계층적 대립이 심각하고 특히 지난 브렉시트와 관련된 국민 투표에서 부유층과 고학력자들은 유럽 연합에 남고 싶었지만 반대로 노동자 계층과 저학력 계층은 탈퇴하고 싶어, 이를 대행할 보리스 존슨 총리를 신뢰했다는 일견 복잡한 진술의 내용은 그야말로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미 이런 내용만으로도 영국 사회는 심각한 분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도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현상으로 '사회적 갈등과 파편화'를 적절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저자의 여러 의견들 가운데, 가장 동의했던 부분은 일전에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상실하게 된 러시아와의 국지전에서 미국이 전혀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 했던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대만과 일본이 중국으로부터의 전쟁 위협에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대해, 저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하게 되었다는 점을 글 말미에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의 중국의 WTO 가입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말에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제적 안정은 서구 자유 진영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극명한 명암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와 오바마 시절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미국의 탈산업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중국에게 떠넘기면서도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미국이 행한 정책에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일전의 폴 하이드먼의 분석은 에마뉘엘 토드의 이 논저를 통해, 재차 미국 정치권의 실체를 이런 식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GDP는 유통기한이 끝난 개념이고 우리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서방 진영은 푸틴과 러시아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러시아 혹은 미어샤이머 같은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서방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문맹퇴치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을 때 17세기와 18세기의 영미권에서는 자유주의가 탄생했고, 18세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평등한 자유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에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나치즘이,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가 탄생했다.

러시아가 주권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있을 때 전술핵 공격 가능성을 원칙으로 내세웠다면 나토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금전 거래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영국과 우크라이나의 도덕 시스템이 양립 가능하다는 점이다.

러시아보다 좀 더 평화롭고 선진적이며 가족 전통이 우세한 우크라이나에서 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는가?

러시아가 요구한 것은 세가지였다. 우선 러시아 흑해 함대의 안전과 존재 자체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크림반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돈바스의 러시아 주민이 용납할 수 있는 ㅎ솬경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헝가리인들이 자신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러사이인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무기를 들고 그들과 맞섰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즉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표방한 공식 목적은 러시아인이 사는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다시 우크라이나 정부의 관할로 둔다는 것이다.

우리의 엘리트들은 마스트리히트에서 고장 난 기계를 만든 뒤 그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이 바라보는 미국과 나머지 세계가 바라보는 미국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을 해방시켰고 생산 기반을 파괴했다. 순수하고 완전한 신자유주의의 시장에는 비도덕적이고 탐욕스럽기만 한 사람들이 활동한다.

따라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초고학혁자들이 다양성, 소수민족, (유럽연합 탈퇴 지지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이민 등 서민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찬성한다는 것이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보호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대만과 일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2001년 12월 11일에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켰다. 이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 결과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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