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그레이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앤 브론테 지음, 허진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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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잉글랜드 웨스트오크셔 주 브래드퍼드의 자치구 중 하나인 손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계로 당시 교구의 부목사로 재직했으며, 모친인 마리아 브론테 (결혼 전 성은 브랜웰)는 콘월의 상인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앤은 이들 사이에서 여섯 명의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그녀는 샬럿, 에밀리, 브랜웰의 여동생이었는데, 이 중 샬럿과 에밀리는 영문학에서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824년 중반,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은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를 웨스트요크셔 크포프턴에 있는 크로프턴 홀 학교로 보냈고, 그후 랭커셔의 코완 브리지에 있는 성직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외부에 나갔던 엘리자베스와 마리아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가족, 특히 아버지인 패트릭이 남은 아이들을 다시 멀리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샬럿과 에밀리는 코완 브리지에서 나와 5년 동안 이모 엘리자베스와 패트릭에게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목사관 밖의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는데 특히 앤은 이모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앤은 집에서 음악과 그림을 공부했고 아버지의 잘 갖춰진 서재에서 호머, 버질,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등의 글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 앤이 11살이 되자 가족으로부터 그녀가 "사랑스럽고 온화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이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839년 4월, 19세가 된 앤은 웨스트요크셔 주 커클리스 자치구에 소재한 미어필드 근처, 블레이크 홀의 잉엄 가문에서 가정 교사로 일을 시작하는데요. 잉엄 부부는 당시로서는 매우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녀는 이곳에서 다섯의 아이를 교육하는데 애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때의 경험이 『아그네스 그레이』를 쓰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후 1848년 9월, 언니인 브랜웰이 끊없는 음주로 건강을 잃어 사망했고, 그 직후 에밀리 역시, 큰 병을 앓게 되는데, 두 달 동안 악화되어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니들보다도 앤은 에밀리에게 마음을 열고 크게 의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지나친 슬픔은 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심한 독감에 걸렸고, 이듬해인 1월 초에 의사로부터 폐결핵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2시경,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노스요크셔 주 스카버러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gness Grey"로 지난 1847년에 출간되었고, 이번에 번역하게 된 원전은 1989년에 펭귄 클래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초 번역은 200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의 번역본은 최근인 2026년 1월에 이뤄졌습니다.

앤 브론테의 이 작품은 많은 분량의 작품인 '와이드펠 저택의 여인'과 함께 그녀의 유일한 장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아그네스 그레이'는 앤의 언니인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해에 출간되지만, 이 작품은 자매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샬럿이 관여하여, 새로운 판본이 재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앤의 이 장편은 그녀 자신의 가정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기도 합니다. 이 '아그네스 그레이'의 설정 상, 약간 흥미로운 부분은 극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그네스의 수기(手記)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고, 그녀의 언행과 내밀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 작가인 앤 브론테의 이야기로 쉽게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이 작품은 앤의 자전적 소설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아그네스의 부친은 영국 북부의 목사로 재직했고 모친은 지방 대지주의 딸로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이 결혼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했지만 자신의 딸은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이 가난한 목사와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입 초반의 상황은 그녀의 어머니와 외가는 거의 의절을 한 상태로 추측됩니다. 이런 아그네스에게는 위로 메리라는 언니를 두고 있는데, 이 둘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목사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현명하면서 검소한 태도를 지닌 모친의 절제력 있는 운영으로 필요한 하인들을 두는 등,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었지만 부친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상행이 망망대해의 난파로 마감됨으로써, 집안이 적잖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아그네스가 18세가 되자, 그녀는 부모를 설득해 다른 집의 가정교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모두 반대를 했지만 무엇보다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어른답게 자신의 몫을 하겠다는 결심이 그들의 반대를 이겨냅니다. 이런 아그네스가 처음 일하게 된 '블룸필드 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오만한 부인의 과욕으로 그 문제가 드러납니다. 특히 이곳의 큰 아들인 '도련님 톰'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거짓 술수'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어른을 수단으로 삼는 '교활함'까지 갖춘 아이인데요. 이 소년은 자신이 집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저 반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생들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까지 마음대로 하려고 곧잘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가문의 등장하는 인사들은 전부 비틀린 인물들로 '어른의 마땅한 역할'이라든지, '겉과 속'이 매우 다르게 행동하거나, 지속되는 언사와 행동들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의 돈과 지위를 바탕으로 소위 '왕국'처럼 오만하게 지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당시 상업을 기반으로 대두하고 있던 '계급들'에 대한 실질적인 내실의 빈약은 아마도 영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아그네스는 이러한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무기는 "인내심, 단호함, 끈기"로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특히 네 아이를 지도하는 가운데(물론 한 아이는 매우 어리지만) 어른도 우습게 보는 쉽지 않은 본성에 이들에게 따귀라도 쳤으면 행동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태도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작가인 브론테는 극의 지문을 통해, 이 시대 아이들의 훈율을 위해, 손을 올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에 좀 더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겸허함과 겸손을 갖추는 것을 인간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피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아그네스 역시, 매우 신실하고 스스로 종교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든지, 사람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굳이 현대식의 교육 환경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룸필드 가의 인물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에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을 블룸필드 가에서 혹독하게 보낸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우려와 연민을 뒤로 하고 다시금 가정교사 자리에 지원합니다. 아그네스는 이미 모친이 가르친 바대로 "피아노, 노래, 그림, 프랑스어, 라틴어, 독일어"까지 능통한 여성으로서도 보기 드문 교양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오만한 본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게 공개 지원을 통해서 두 번째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집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인 호턴 로지의 '머레이 가'로 떠나게 됩니다. 이 머레이 가는 마찬가지로 당시 귀족 다음으로 사회적 힘을 얻고 있었던 '젠트리 계급'으로 꽤나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가문이었습니다. 이때의 관습대로 장녀에게 칭하게 되는 '머레이 양'인 로절리는 극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상당한 미모를 갖춘 아가씨로 여겨집니다. "몸매가 완벽하고 살갖은 고우면서도 뺨에는 혈색 좋은 느낌"이 드러난다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미인임을 감안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머레이 가의 로절리는 활기차고 낙천적인 성격 이면에 사람에 따라, "차갑고 오만하며,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부목사의 배경을 갖고 있던 아그네스에게 로절리가 간혹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분별이 있는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노처녀 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즐기면서 온 세상을 유혹"하겠다는 로절리의 강한 응답은 뒤이어, 모두가 바라는 숙녀를 얻지 못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찟어 놓고 싶다는 식으로 첨언됩니다. 앤 브론테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본성에 대해, 아그네스의 입을 통해, "분별과 도덕성, 그리고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예로 듭니다. 분명 로절리는 앞선 진술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로 단순히 미모를 갖춘 소녀의 허영심 이상의 교활함을 드러내는데요. 지역의 교구 목사인 햇필드의 외모를 칭찬하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통찰력이 전무하여 그의 지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볼 수 있는 햇필드 역시, 종교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매우 오만한 인물로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아그네스는 호턴 로지 지역의 영지민들 가운데 빈한한 삶을 살고는 있지만 신실하고 겸손한 낸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햇필드는 그런 낸시를 경멸합니다. 더욱이 로절리와 햇필드 이 두 사람은 진실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위선적인 인물들로 이들의 관계 역시 그 가벼운 본성 만큼이나 쉽게 종말을 고하는데요. 여기에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로절리가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부목사인 웨스턴에 대한 아주 경박한 평가는 극의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서사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저 삶의 낙관적인 전망을 떠나 아주 안일한 결정으로 결혼을 하게 된 로절리에게 아그네스는 어떤 질투나 이죽거림의 태도가 아니라, 진실로 로절리의 혼인을 걱정합니다. 부유한 유지인 토머스와의 결혼이 그녀의 모친이 나서서 주도한 결과로 이어졌고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한 남자의 본성과 도덕성, 그리고 진실됨의 여부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안락한 삶'을 위해서만 목표로 삼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아그네스는 로절리에게 몇 번이나 조언과 우려의 빛을 보내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습니다. 특히 겸허하면서 어려운 지경의 영지민을 보살피는 웨스턴을 자신의 매력으로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로절리의 그 끝 모를 태도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중에 '애슈비 부인'이 된 로절리가 애슈비 파크로 아그네스를 초대해 이들이 몇 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 신중하지 못했던 결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과신하고 사람의 값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기적이면서 자기본위적 태도자체는 작가인 앤 브론테가 가장 경계했던 인간상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앤 브론테 역시,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시 여겼던 점인, "인간의 분별력"에 대해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분별력이 없는 인간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극의 골자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의 끊임없는 분별의 부재를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극의 서사에서 후반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 대체로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그네스의 결혼 역시 익히 예측이 된 모습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애슈비 부인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머레이가 사람들, 그리고 호턴 로지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소식을 묻는 과정에서, 제일 나중에 언급되는 이의 뜻밖의 이주, 그리고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드디어 드러나는 그의 풀네임은 이러한 정황이 소설적인 측면에서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그네스와 그와의 재회 역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했는데요. 다만,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가리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통찰이 때론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지위나 가진 부가 누군가에게 욕망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면 그 결말 역시, 분별력을 잃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 작품은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에서 도덕적인 측면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겸허한 속성, 그리고 훈련된 지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와 중요한 선택의 문제에서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누구보다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 작가인 브론테는 우리가 어떠한 인간들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소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곳의 인물들이 오가는 자연 풍경이나 한가한 일상을 담은 서사 한 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교훈을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 작품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후반부, 로절리가 아그네스에게 햇필드과 관련된 가당찮은 욕망과 그에 대한 낮잡은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 매정한 허영심이 놀랍고 역겨웠다"는 꽤나 놀랄만한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의 서사를 거의 열 번 넘게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 전체의 묘사나 서사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게 대단했던 전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저급한 측면의 본성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가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보니 노부인은 위선적이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아첨꾼, 내 말과 행동을 염탐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계층에 속한 노부인들의 버릇이었지만 그 기묘한 버릇이 이렇게까지 심한 노부인은 처음 보았다.

로절리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차갑고 오만하게 굴다가 나중에는 거만하고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게 되자 거만한 태도를 내려놓았고, 나중에는 나 같은 신분과 지위의 사람에게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갖게 되었다.

로절리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고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모와 가정교사와 하인에게 폭군처럼 굴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되자 그러한 성향이 다른 것들과 함께 더 큰 열정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고, 곧 남성을 매혹하고 싶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야망에 삼켜졌다.

"내 지위를 절대 잊지 않고 제일 훌륭한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했는데 말이에요. 당장 내일이라도 그런 남자와 무릎을 꿇고 아내가 되어달라고 애원하면 좋겠어요."

불쌍한 로절리! 그때 나는 로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가 나에게 준 모든 상처와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용서했다.

"정말 이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위와 부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자식들에게 지위와 부를 확보해주면 자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는 로절리가 무척 가여웠다. 행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의무를 경시하는 것도 가여웠지만 그 끔찍한 동반자에게 운명이 묶인 것도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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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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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명이 이리나 르보브나 네미로프스카야인 이렌 네미롭스키는 1903년 2월,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키예프(현재는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레프 보리소비피 네미로프스키로 당시 키예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은행가였습니다. 모친인 파니 요보브나 마리골리스 네미로프스키로 그녀에게는 별다른 가정사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딸인 이렌과 적잖은 불화를 겪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어머니와의 불안정하고 불행한 관계는 그녀의 많은 작품에서 주요한 뼈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시작될 무렵의 불온한 기운을 읽은 그녀의 가족은 러시아 제국을 떠나, 잠시 핀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1918년을 그곳에서 보낸 후, 그녀의 가족은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네미롭스키는 곧 소르본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18세가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많은 딸과 유대인 은행가의 이야기를 담은 '데이비드 골더 (국내에 번역된 제목은 『몰락』)'를 출간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30년,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데이비드 골더의 원작자가 밝혀졌을 때, 당시 프랑스 문단은 여성 작가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쌓은 작가적 명성을 통해, 그녀도 파리에서 꽤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에 자신이 신청한 '프랑스 국적' 취득이 당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거부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939년에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인데요. 더욱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잡지인 '캉디드'와 같은 곳에 글을 기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덧씌워진 '유대인'이라는 혐오는 그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뿌리가 깊었습니다. 1940년이 되자 네미롭스키의 남편은 더 이상 은행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 역시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치가 수도 파리에 접근하자 그녀의 가족은 부르고뉴 지역의 이시레베크로 급히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부르고뉴와 파리를 오가며 생활했던 네미롭스키는 1942년 7월 16일부터 17일까지 비시 프랑스 정부 경찰이 독일 점령 당국의 지시에 따라 파리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한, '벨 드 이브 검거 작전'에서 '유대인 무국적자'라는 이유 만으로 연행되어, 당시 오를레앙에 있던 비시 정부의 피티비에르 수용소로 끌려갔고, 1942년 7월 17일, 982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이틀 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네미롭스키에게 나치는 유대인 식별 번호를 새겼고 이로부터 한달 후 쯤에 그녀는 장티푸스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1942년 11월 6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즉시 살해되었습니다. 작가 자신과 남편의 이 불행하고 비참한 죽음은 유대인이기 전에 프랑스인과 다름없었던 그녀의 삶 자체를 유럽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 것이며, 나치 독일은 그 엄혹한 체제 만큼이나 인간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잔혹한 행위 등을 국가 사회주의이라는 미명하에, 주저 없이 시행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es Chiens et les loups"로 지난 194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9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개와 늑대'는 그녀가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렌 네미롭스키가 쓴 이 특별한 작품의 의의는 유대인과 그 민족을 다른 여타 문학들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가 명확히 알지 못했던 1900년대의 유럽,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190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들 현지인들과 따로 분리한 '게토'가 이미 존재했다는 부분과, 이 게토가 실상은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최상위 유대인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로 거주 구역을 나눴다는 놀랄만한 서사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는, "그럼에도 돈이 많은 유대인은 쓸모가 있다'는 메타포 자체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작품 서두에 등장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에 대한 언급 역시, 이 대다수 유대인들이 실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배타적이고 몰이해적인 혐오에 직면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각지를 오가며 물건을 팔고 있는 이스라엘 시너는 아내를 여의고 홀로 남은 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아마도 키예프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의 하층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허름한 집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딸의 외할아버지인, 장인까지 부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만 사촌 동생의 부인이 남편을 잃고 그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데요. 아마도 유대인들의 관습 상, 혼자가 된 집안의 여인과 남은 가족을 친척이 부양하게 되는 의무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존의 빠듯한 생계에도 불구하고 시너는 별다른 군말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의 딸인 아다에게는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환경의 변화로 이렇게 대면하게 된 '라이사 숙모'와 마찬가지로 사촌 남매인 릴라와 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러시아 기병대'를 비롯한 군중 무리들이 유대인 게토 지역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는 당시 암묵적인 사주로 이뤄진, '포그롬 pogrom'이라는 유대인 약탈 행위이자 박해이기도 합니다. 아다의 아버지와 숙모가 야밤에 아직 어린 아다와 벤을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와중에 그들의 식모이자 하녀인 나스타샤와 부지불식간에 떨어진 이 두 아이들은 유대인 상류층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과 성은 동일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너'의 대저택이 그곳이었습니다.바로 이때, 아다의 남은 평생을 의식하고 좌우하게 될. '해리 시너'와의 극적인 조우가 이뤄집니다. 물론 이 만남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대면이기도 했습니다. 극에서 로스차일드와 비견될 정도로 부유하고 권력층과 유대가 깊은 본래의 '시너 가문'은 유대인 사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들이기도 헸는데요. 그들은 러시아 제국에서 큰 돈이 될 만한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이들 유대인들이 당시 상류층에게 특별한 '돈줄'임과 동시에, 이 가문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득에 기여할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돈 많은 유대인'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이득이 될 만하다는 서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극중에 등장하는 "유대인에게는 부유함이 곧 구원이다"라는 증언에 가까운 읊조림은 그야말로 '현실의 확인된 서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미롭스키의 이 작품은 돈이 있는 유대인 상류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과의 확연히 분리된 인식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듭 반복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 딸의 갑작스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다의 부친인 이스라엘 시너는 그에게 있어 '시너 본가'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극중에서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꾸준한 성실성'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성공적으로 시너 가문의 일에 스스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딸과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돈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요. 물론 하루 아침에 풍족하고 부유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자신의 딸에 대한, 야심만만한 야망을 갖고 있던 라이사는 딸과 조카인 아다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주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녀는 여기에 있어봤자 나날이 미모를 드러내고 있는 큰딸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라이사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마담 미미'와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강하게 설득했고 이때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외동딸인 '아다의 더 나은 교육 기회'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들불처럼 러시아를 휩쓸자, 이스라엘 시너의 사업 역시, 기존의 안정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딸과 제수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던 시너의 돈이 결국 마르게 되자 라이사는 부득이하게 생계를 위해, 그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옷 수선집'을 차리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딸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꽃피우고 있던 아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라이사는 종종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해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반추하고 그때의 기억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던 아다는 숙모의 독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자신이 돈 많은 남자를 골라 결혼했던 라이사와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는 라이사와, 아다는 완전히 대립되는 캐릭터로 자리합니다. 아마도 당시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던 많은 여성 유대인들이 가졌을 법한, 소위 '상향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아다는 무엇보다 '잔잔한 일상'과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열망합니다. 이는 단순한 서사로 봤을 때, 라이사가 그녀에게 행하는 손찌검과 증오에 가까운 발언 등이 직접적으로 아다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사촌인 벤과의 결혼을 감행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그녀가 '상향혼'을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전혀 없는' 결혼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요. 그런 연유로 그녀가 집착하는 '해리에 대한 열망'이 이런 의도적인 설정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멀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그동안 흠모해 왔던 아다와 결혼한 벤은 그 시대가 표출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추구해야 될 것은 오로지 '돈'이며, 이것은 유대인들의 숙명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다에게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마음과 반대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점'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면모 또한 함께 드러냅니다. 그런 연유로 그는 무엇보다 아다가 있는 집을 벗어나 하염없이 외부로 겉도는 상황을 반복합니다. 이런 와중에 유년 시절에 겪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제국 하의)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을 지배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극복할 수 없었던 아다는 '특유의 유대인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엄혹한 분위기이면서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안고 있던 유대인들의 면면과 그들이 처해 있던 도시와 환경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됩니다.

해리 역시, 아다와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린 시절 '포그롬'에 대한 기억을 선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 민족에 대한 양가 감정과 명확히 분리되지 못한 인식과 그것에 사로잡힌 삶을 그는 동시에 영위하고 있었는데요.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는 후반부의 서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여기에 "갈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 끈질긴 에너지, 거의 본능적인 욕구, 주변의 눈치를 볼 줄 모르는, 체면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뻔뻔함, 그의 정신 속에서 이 모든 건, '유대인의 불손'이라는 오직 하나의 이름표 아래 정리되었다" 부연 설명됩니다. 이처럼 해리는 자신이 분명한 유대인의 후손이면서도 반쯤 왜곡된 그 '유대인 정체성'을 혐오합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순수 프랑스인이었던 로랑스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애정 없이 결혼한 것이기도 한데요. 물론 그의 아내인 로랑스의 부친이 부유한 은행가이긴 했지만 해리가 돈 때문에 로랑스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그에게 장인이 되는 로랑스의 부친은 애초에 이 결혼을 반대하는데요. 그는 어릴 때부터 크게 반항하지 않은 막내딸이 해리의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식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동쪽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극심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 부녀의 서사에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생전에 프랑스 사회에서 어떠한 냉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온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당시 서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어떠한 인종주의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해리는 그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동안 유대인 전통에 따른 '혈통 결혼'에 은연중 거부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와 집안의 혈통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충동적인 모험의 길로 스스로 이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다시 해리와 재회하게 된 아다와 이들을 둘러싼 벤과의 연민과 갈등을 주축으로 극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물론 직전에 읽었던 '몰락 (데이비드 골더)'과는 다르게 극의 전환에 있어 당사자들의 '몰락'은 예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사실상 유인한 벤 역시, 아다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아다는 스스로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에 처하지만 해리의 안전과 삶을 위해 그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결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해리의 아내인 로랑스에게 있어, 아다가 차라리 그의 정부(情婦)였다면 쉽게 잊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아다와 해리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그리고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특별한 우정 관계"라는 용서할 없는 그 관계성이 자신을 더욱 나락을 이끌었다는 간접적인 묘사는 큰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계가 상당히 상투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 지속은 그야말로 '심연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가 맞게 되는 인생의 제2막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는데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는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극이 일관되게 설명했던 아다의 개인적 인생사와 맞물려, 그동안 그녀가 견지했던 삶의 방향성과 마지막의 예상치 못한 장면은 서사의 관점에서 통일된 느낌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갈망과 두려움 그 사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겠으나 만약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해리와 연관되어 있다면 마지막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독백하는 '그와의 연결성'에 대한 언급은 적당한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열린 결론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극의 종결은 어느 정도 모호하게 마무리되고 있어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두지 않았나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본문 229 페이지에 편집 오류인지 한 문장에 두 번이나 마침표가 찍혀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본문 28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책 제목과 관련해, 극의 후반부에서 '벤과 해리'로 암시 되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개와 늑대로 대비되는 이 두 종은 극명한 점과 더불어, (종과 사회적인 인식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제목의 차용 자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니콜라이 2세가 지배한 20세기 초의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의 거주가 몇몇 주거지역과 몇몇 구역, 몇몇 거리로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상점들도 군인들 틈에 섞여서 종교와 상관없이 약탈을 일삼는, ‘비렁뱅이‘라 불리는 인간 말종들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하늘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고상하고 기묘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그녀에게는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이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낙천적이고 정겹고 부드럽고 유쾌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가 그 여자아이 앞에서 그렇게 덜덜 떤 것은 그의 눈에 그 여자아이가 가난뿐만 아니라 불행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처럼 이상하고 불길하게 전염되는 불행을 표상했기 때문이다.

해리가 아름다운 책들을 집어 어루만질 때면, 아다는 그의 민첩한 갈색 손이 황갈색이나 붉은색 표지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걸 바라보며 진정한 황홀감을 느꼈다.

모든 유대인이 그렇듯,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

아다는 상류사회에 진출하거나, 인맥을 쌓고 돈을 벌기 위해 해리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여겼다.

"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 전에 너의 것이었어. 로랑스가 정확하게 봤어. 내가 로랑스 비슷한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그녀는 날 용서했을 거야. 그래, 로랑스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건 바로 너야. 우리와는 다른 누군가가 묶어 놓은 것을 푸는 건 우리의 능력 밖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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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패배
에마뉘엘 토드 지음, 권지현 옮김 / 아카넷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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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프랑스 중북부 일드프랑스의 이벨린 주, 생제르망앙레에서 태어난 에마뉘엘 토드는 부친인 올리비에 토드는 저명한 언론이었고, 모친인 안네-마리 니잔은 작가 집안의 여식이었습니다. 특히 토드의 외할아버지는 작가 폴 니잔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친할머니 줄리아 오블라트는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평소에도 에마뉘엘 토드는 자신의 논저들을 통해, 스스로 유대인계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인류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던 토드는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유명한 고등학교인 생제르망앙레 국제고등학교 (Lysee international de Saint-Germain-en-Laye)에 입학합니다. 1968년 5월, 그 유명한 '68혁명' 당시, 그는 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그의 활동 시기는 매우 짧았습니다. 이후 파리 정치학 연구소에서 인류학적인 관점을 가진 두 역사가인, 피터 라슬레와 앨런 맥팔레인의 지도 아래,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이런 그에게 전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는 연구가 1976년에 있었습니다. 그는 유아 사망률 증가와 같은 사회적 지표를 기반으로 과학적 분석과 아날 학파의 접근법을 사용해,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여 당시 학계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1992년에는 유럽 연합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백히 반대했고, 이 시점에서 '사회적 균열' 또는 '사회적 격차'라는 용어를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언론에 통해서 나오기도 했는데, 그는 이를 부인합니다. 이런 인류학적인 역사 접근 방법과 유럽 연합 정치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최근에는 (2002년 이후) 미국의 쇠퇴와 그에 따른 전세계 정지경제학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a Défaite de l'Occident"으로 지난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의 이 논저는 출간 당시, 프랑스에서 큰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겐 서구 진영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하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니힐리즘과 관련된 수사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저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부분은 지금의 유럽 연합이 자신들이 구축한 이데올로기가 동유럽이나 혹은 권위주의적인 러시아보다 정치경제학적인 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입니다. 이것은 유럽 연합 지도층의 뿌리 깊은 우월 의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는 자신의 이 논저에서, 앞선 '정치경제학'이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았고, 더불어 세계의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이 '중요한 학문'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본질을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글은 마치 유럽 연합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적 행위자인 러시아를 제대로 이해해 보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읽힙니다. 다만, 현지 프랑스 언론이 이 논저에 대해, 작금의 정세를 단순히 유럽과 미국에 밀접한 개신교의 유산이 쇠퇴했고 여기에 니힐리즘적 자기 파괴가 이뤄져, 이 틈을 교묘히 파고든 권위주의적 러시아의 승리라고 보는 관점은 그 기술적 논법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 어려운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 미국은 2010년 이후로, 기독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주의적 정치 개입이 강화되어 왔기에 이것을 앞선 개신교의 쇠퇴와 결부짓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관점에서 토드의 이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특히 저자가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서구 자유 진영이 그동안 러시아를 방만하게 분석해 왔다"는 평가는 저자를 포함한 일부의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유럽의 엘리트들이 새겨 들어야만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여러 사회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바와 같이, 작금의 세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님에 인정하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1장의 논증 가운데, 미국에 대해 "신자유주의에 물들었다"는 분석은 색다른 수사 만큼이나 그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신자유주의에 의해 조직적으로 후퇴한 미국과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고 있는 유럽에 있어, 예상과는 다르게 오래 지속해 오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관련해, 이미 제조업 기반이 무너져, 군수 물자 지원마저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더욱 입증하게 된 혹독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더욱이 근래에 자주 오르내리던 미국 중부의 '러스트 벨트' 역시, '아웃소싱과 이윤을 위한 제조업 기반의 해외 이전'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핵심 사항이 이룩한 현실이기도 한데요. 여전히 신자유주의 자체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그저 입을 놀리기 싶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말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절, 마거릿 대처의 "사회 따위는 없다"는 일갈 (사회경제학적인 양식이 전혀 없는 자의 발언처럼)은 시카고 학파의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의 극적인 마중물이기도 했습니다. 푸코의 말처럼 사회가 없는 시민들의 상태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그 허위의 표본처럼 말이죠. 이것은 "대처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이 사회에 무슨 짓을 했겠는가"와 같은 냉소와 연계되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인 토드는 이 책의 6장에서, 이런 영국이 처한 정치경제학적인 상황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앞선 대처의 '사회는 없다'라는 진술이 당시 사회 기반 영역의 거침없는 민영화에 따른 일부 기업으로의 분배가, 지금까지 대다수 영국인들을 고통에 빠트렸다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의료 서비스와 그것을 가능케 했던 '의료 보험의 붕괴'를 함께 진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 사회가 아주 심각하게 양극화되어 있다는 6장 후반부의 도드라진 분석은 그런 연유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영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어 왔으며, 그 제반 산업이 이미 실효를 다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제조업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누구나 짐작할 만하겠죠. 더욱이 같은 장에서, "영국이 취약해진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고 그 이데올로기란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말한다"는 폭로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로도 읽힙니다. 이렇게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 에마뉘엘 토드가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자기 부정과 해체 그리고 급기야 소멸'에 처하게 되는 '니힐리즘적 양상'을 지금 서구 유럽과 미국이 처해있는 파국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니힐리즘이라는 수사가 어떻게 보면 급진적으로도 보입니다만 이들이 잃어버린 계몽주의와 그것에 기반했던 자유주의적 유산이 더 이상 이 사회들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의 2장 말미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애초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이 나라가 러시아의 침략을 받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극적인 서사는 여전히 이치에 맞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서술해 냅니다. 바로 이런 이해 관계에 놓인 서구 유럽 역시, 역설적으로 "서방은 더는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이에 대해 저자는 부연 설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서구 유럽은 겹치는 가치가 많은데, 그것은 심지어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은 것들'이라고 폭로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군사 원조를 받기 위해 법적으로 면제된 자금 조달 시스템에 편입했다는 점은 이 가운데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자를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것이 무기 브로커이거나 서방의 고위 관료로서, 체제 내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이득처럼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의 초반에서 글이 나아가는 진행 방향성을 잠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저자는 우선적으로 이 글을 통해, "우크라이나-전쟁이 미국과 서구 유럽에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자신에게 다시금 되묻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역사와 인류학을 통한 문답의 형태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상당히 명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러시아를 오판하게 된 진정한 연유는 무엇인지"도 대해 중요한 주제 의식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구 유럽이 더 이상은 자유주의 진영이라고 불릴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저자는 11장에서 미국을 아주 명확하게 "자유주의 과두제 국가"로 규정합니다. 저는 이렇게 묘한 의미로 겹치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한동안 그 의미를 음미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틴의 초기 정치적 행보와 관련해, 인용되기 시작하는 '올리가르히'이라는 권력 지향적이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상당히 맞지 않는 이 용어 자체는 이미 미국와 유럽에서, "체제에 기생하는 엘리트 기득권층"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어떻게 보면 온전한 자유주의 체제라 부를 수 없는, 너희 서구 유럽이 어떻게 권위주의적인 체제인 푸틴의 러시아를 비난할 수 있느냐로 힐난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푸틴이 제거했던 올리가르히와 미국의 경제 안보 엘리트들, 그리고 유럽의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이 '서구 자유주의 식으로' 공통된 이해로 수렴하는 마치 '서유럽의 수수께끼'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일관됩니다. 이미 미국은 오래된 다원주의적 가치를 상실했고 이 다원성의 실종이야말로 자유주의 유산의 퇴행하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일정 부분 그 뜻하는 바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불온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민주주의적 제도 하에, 규정된 선거제의 지속과 평등한 투표권 등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가 완벽히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내실에서 자유주의에 반하게 되는 정치적 행위나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극단주의화 역시,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자는 일관된 관점으로 미국과 서구 유럽의 엘리트들의 무능을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의 러시아, 혹은 푸틴 자체에 대한 오판을 수정하지 못하고 저자의 말마따나 유럽에서 러시아의 유산을 과소평가한 서유럽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실책은 어쩌면 자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직 KGB 출신으로 능수능란한 모략을 지니고 있는 푸틴과 그의 러시아를 너무 '실패 국가'로 몰아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서구 자유 진영이 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광범위한 러시아 경제 제재를 지속해 오고 있지만 저자인 토드는 이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시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제재가 러시아에게 가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러시아에서 왜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았는가로 반문합니다. 만약 서구 정치권이 이 경제 제재를 통해 푸틴 정권이 궤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판이고, 이미 자급경제를 달성한 러시아의 식량 사정은 큰 위기 없이, 삶이 지속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러시아인들을 본다면 확실히 이번 제재의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은 초반 진술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는데요.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무분별한 탄압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에 있어 흔한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서부(독일 게르만주의와 연계)와 동부(친러시아 계열)의 민족적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 전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저자의 분석 또한 큰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과거로부터 한번도 '국민국가'였던 적이 없다는 인류학적인 분석은 꽤나 독창적이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가 러시아의 영향력에 오랫동안 종속되어 왔다는 단편적인 서사보다도 통합된 국민국가로의 이행에 나설 수 없었다는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었는데요. 즉, 저자가 설명하는 바대로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이 주축이 된 국가'로서 우크라이나는 그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나토 국가인 폴란드의 이해 관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밀접하다는 일련의 진술 말고 오히려 진정성이 있다면 푸틴의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역시, 정치적으로 고려할만한 선택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크라이나의 서부와 동부의 현격한 이질감은 단순히 선거를 강행하고 지역 내 정치인을 선출한다고 해서 이 나라가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민국가인지는 여전히 단정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푸틴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과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였고 그런 연유로, 러시아의 국내 문제라는 잣대를 무시할 만한 수준의 개입 정당성이 서구 유럽에는 이론적 기준으로는 상당히 애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개입에 대한 정당성 문제는 스스로를 입증 시킬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 떠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게르만주의에 호응했던 서부의 역사를 유럽이 선택적으로 이를 용인하는 것은 통합의 차원에서 상당히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의 본질을 고찰해본다면 말입니다.   

저자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의 사례를 소개하며, 동유럽에서도 푸틴의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는 국가들이 있다는 점과 독재자인 푸틴 자체는 역사에 오르내렸던 무능한 독재자들과는 매우 다른 유형의 인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러시아의 선거 제도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많은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은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해석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문단 서두에서 잠깐 언급하기도 했지만 푸틴의 러시아와 협력을 유지해왔던 국가로 독일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구소련의 붕괴 이전에 당시 서독은 동독과의 통일을 위해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협력과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반대로 미국은 독일 통일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노르트스트림과 관련된 논저에서도 드러나듯, 러시아의 독일에 대한 가스관 연결은 이전의 '시라크와 메르켈, 그리고 푸틴의 커넥션'에서도 미국이 싫어하는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케이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는 매우 충격적인 가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전의 원인불명으로 처리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사보타지에 있어, 미국에 주도로 노르웨이가 협력하고, 더불어 독일의 묵인으로 실행되었다는 설을 논증 가운데 실고 있었는데요. 저자는 이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유럽 내의 미국과 새로운 군사안보적인 협력 국가로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꼽으면서 이들 두 국가는 그동안 미국의 안보 정책과 발을 맞춰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분석되는 미국의 사회 병폐적 상황은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기존에 쓰였던 용어로서 지칭되는 기독교가 아닌 '개신교'로 명칭을 전환하여, 알게 모르게 사회전체에 신과 신자라는 영혼적 관계를 넘어, 종교적 지배가 가능했던 영향력에 대한 부침 자체는 종래의 미국 사회를 상당히 변질시킨 것으로도 읽힙니다. 1950년대 전후로 영국 성공회 기반의 교육 제도와 미래 엘리트 세대의 육성이 미국 사회가 한동안 유럽 사회를 닮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저자의 말마따나 종교의 부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감리교 신학의 확산이 어느 정도 개인주의와 자유 관념에 긍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 본다면 작금의 기독교 우파의 등장은 타협과 관용을 실종한 일종의 극단주의로의 변질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 과정의 논증에서 종래의 개신교가 본질적인 '인간 평등'을 부정해 왔다는 점이 과거 계급주의 질서에 편입한 개신교의 역사로 쉽게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영국 사회가 그러한 신분 차별에 대한 기존의 관행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분석도 1980년대 이후의 미국 사회를 좀 더 조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스프의 역사를 고찰해 본다면 이러한 이해가 쉽게 가능하기도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저자는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잉글랜드 섬 중북부 이후에는 영향력이 미진했고 오히려 스코틀랜드와 인접한 이북의 시민들에게 감리교가 주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술 역시, 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성공회나 그에 못지 않은 감리교가 인간 평등이라는 관념을 어떻게 보면 쉽게 용인할 수 없었던 불협화음 역시, 그 맥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연유로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여전히 구체제에 있어, 인간 이성의 확신이 다른 유럽 지역에서 왜 제대로 먹히지 않았는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신앙적으로 가혹했던 과거 칼뱅파의 후손들에게 이러한 계몽주의적 맥락은 쉽게 계산할 수 없는 문제였을 것 같습니다. 아주 쉽게 말해, 인간의 이성과 신의 명령과 같은 개념적 대립 구도에서 말입니다. 

끝으로 유로화의 출범으로 유럽 내부에서 좀 더 완전한 권력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 독일이 다른 경쟁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과거 원죄'를 들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강고한 관념이면 독일이 정치적으로 가혹하게 말하자면 거의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가 이런 독일의 현실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갖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 '모순에 처한 현실'을 인정한 부분은 어느 정도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이후로, 독일 정치권은 러시아와 잘 지낼 수 있다는 식으로 어필하기도 했지만 이는 미국이 절대 용납할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결국은 아무 쓰잘데기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선적으로 이 전쟁 이후에 러시아가 과연 폴란드를 포함한 위협에 직면한 순진무구한 유럽에 군사력을 투사를 할 것인가에 더 논의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저자는 푸틴이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폴란드의 우려'는 가볍게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토드의 이 논저는 앞선 전쟁에 대한 현실의 분석은 물론, 대립하는 두 세력의 사회적 일면을 거의 생경하게 분석해 내고 있고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의 경제적 조건, 그리고 지금 러시아인들의 생활이 어떻게 안정되어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각 사회가 아무런 모순이 없을 수는 없지만 예를들어 영국 사회가 고학력자들과 저학력자들의 계층적 대립이 심각하고 특히 지난 브렉시트와 관련된 국민 투표에서 부유층과 고학력자들은 유럽 연합에 남고 싶었지만 반대로 노동자 계층과 저학력 계층은 탈퇴하고 싶어, 이를 대행할 보리스 존슨 총리를 신뢰했다는 일견 복잡한 진술의 내용은 그야말로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이미 이런 내용만으로도 영국 사회는 심각한 분열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도 마찬가지로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현상으로 '사회적 갈등과 파편화'를 적절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전쟁에서 저자의 여러 의견들 가운데, 가장 동의했던 부분은 일전에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상실하게 된 러시아와의 국지전에서 미국이 전혀 나서지 않고 수수방관 했던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대만과 일본이 중국으로부터의 전쟁 위협에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에 대해, 저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하게 되었다는 점을 글 말미에 밝혀두고 싶습니다.


-저자인 에마뉘엘 토드의 중국의 WTO 가입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는 말에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제적 안정은 서구 자유 진영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극명한 명암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와 오바마 시절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미국의 탈산업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중국에게 떠넘기면서도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미국이 행한 정책에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일전의 폴 하이드먼의 분석은 에마뉘엘 토드의 이 논저를 통해, 재차 미국 정치권의 실체를 이런 식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GDP는 유통기한이 끝난 개념이고 우리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서방 진영은 푸틴과 러시아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러시아 혹은 미어샤이머 같은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서방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문맹퇴치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을 때 17세기와 18세기의 영미권에서는 자유주의가 탄생했고, 18세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평등한 자유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에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나치즘이,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가 탄생했다.

러시아가 주권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있을 때 전술핵 공격 가능성을 원칙으로 내세웠다면 나토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금전 거래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만든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영국과 우크라이나의 도덕 시스템이 양립 가능하다는 점이다.

러시아보다 좀 더 평화롭고 선진적이며 가족 전통이 우세한 우크라이나에서 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는가?

러시아가 요구한 것은 세가지였다. 우선 러시아 흑해 함대의 안전과 존재 자체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크림반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돈바스의 러시아 주민이 용납할 수 있는 ㅎ솬경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요구 사항은 우크라이나가 중립국 지위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따라서 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하려고 달려드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저널리즘적 사고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헝가리인들이 자신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러사이인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무기를 들고 그들과 맞섰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즉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표방한 공식 목적은 러시아인이 사는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다시 우크라이나 정부의 관할로 둔다는 것이다.

우리의 엘리트들은 마스트리히트에서 고장 난 기계를 만든 뒤 그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이 바라보는 미국과 나머지 세계가 바라보는 미국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을 해방시켰고 생산 기반을 파괴했다. 순수하고 완전한 신자유주의의 시장에는 비도덕적이고 탐욕스럽기만 한 사람들이 활동한다.

따라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초고학혁자들이 다양성, 소수민족, (유럽연합 탈퇴 지지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이민 등 서민이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든 찬성한다는 것이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보호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대만과 일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2001년 12월 11일에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켰다. 이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 결과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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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시대 - 정의를 외치는 극단적인 사람들
폴 하이드먼 지음, 신재일 옮김 / 이글루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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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고 있는 폴 하이드먼은 뉴저지 주의 연구 중심 대학인 럿거스 대학(뉴어크 캠퍼스, 럿거스 대학은 3개의 캠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에서 미국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미국 정당의 역사는 물론, 더 내밀한 미국 좌파의 역사 및 지식인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강단 지식인에 머물지 않고 유튜브 등 미디어에 출현해, 자신의 논저를 설명하고, 또한 현재 미국 정치에 관한 나름의 분석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내 인종 차별과 계급 투쟁에 관련된 글을 내놓기도 했고 이러한 사회적 양상들이 어떻게 사회를 파편화에 이르게 하는지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글은 원제, "Rogue Elephant: How Republicans Went from the Party of Business to the Party of Chaos"로 지난 2025년 11월에 출간되었고, 국내 번역은 최근인 2026년 3월에 이뤄졌습니다.

우선 국문으로 번역된 책 제목과 관련해 상당히 적절치 않은 편집이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이 글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아니 상당 부분) 미 공화당의 극우화 내지는 내란 세력화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극우의 시대'라는 제목은 여전히 자극적인 감상을 갖게 합니다. 또한 하이드먼의 이 글은 지난 미국 정치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대를 기점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분화 내지는 뚜렷한 변모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주된 분석은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의 '이념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점과 이들의 선거 자금과 관련된 뚜렷한 '이익화'와 기업계의 일관된 지지에도 불구하고, 반자유주의화에 편승한 소위 정당으로서의 모습이 사라진, 작금의 변질된 공화당을 매우 면밀하게 비판적인 내용으로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초까지, 미국의 공화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드리운 그림자를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제거할 수 있겠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젠하워를 필두로 당시 다수 공화당 정치인들은 급격한 변경 시도에는 원만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는데요. 이미 이 글 1장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듯, 첨예한 냉전의 시기가 도래할 그 시점에서도 노동자들과 기업과의 권력 싸움은 워싱턴 정가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과거 조지프 매카시가 불러 일으킨 '광풍(狂風)'을 프롤로그에서 따로 도출하여, 작금의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이 둘의 차이는 어느 정도는 현격한 부분이 있어 무슨 연역의 방식처럼 모두를 처리할 수는 없지만, 우선 매카시가 초래한 '매카시즘'에 대해선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날의 극단주의적 이행과 맞물려서 말입니다. 여기에선 후반부에서 논증하게 될 미 공화당의 '부정적 당파성'이 이 매카시즘과 매우 닮아 있으며, 전자의 매카시즘이 (그저 명목상 허울뿐인) 자유주의를 위해, 그런 난장판을 조장했다면 지금의 공화당이 보이고 있는 '부정적 당파성'은 반자유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맥락의 워싱턴 정치 자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됩니다.


이 책의 주요 해석 수단으로 등장하는 '그림자 정당'과 관련해, 저자인 폴 하이드먼은 서두에 미국 경제사에서, "상공회의소"와 "전미제조협회"의 등장을 시점으로 논증을 이어갑니다. 그 이전까지 미국 내 기업 경영인들이 상대적인 노동 조합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 단체를 꾸릴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으나, 1910년대 이후 이들의 소위 권력화는 나날이 강화되어 왔습니다. 역대 미 행정부가 자유시장주의 노선의 견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번 갈증을 느끼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 조직은 앞서 진술된 내용이 그저 경영인들의 친목 모임이라는 것을 웃으며 넘긴다 하더라도 1979년 그 유명한 '볼커 쇼크'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에 이르자 단순히 '시장 자유'에 올인하는 것을 넘어, 노동 개혁과 이들이 언급하는 미국 내 반기업적인 (물론 이들의 말에 의하면) 세력에 사실상 맞서는 것으로 자원을 투입하게 됩니다. 이는 대체로 의회 로비와 선거 자금 투입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이들의 바람대로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세법 개정안'이 요구대로 통과되고 "기업에 대한 실질 세율이 33퍼센트에서 16퍼센트"로 크게 낮아지게 됩니다.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의 가장 큰 과업이기도 했던 '헬스케어 개혁 법안'이 공화당 주도의 조직적인 반대로 무산되기까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정치 세력과의 강고한 연대가 사실상 통념적인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를 후퇴시킨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쉽게 동의하는 공화당원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2장에서 분석되는 바와 같이, 앞선 뉴딜은 미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뒤바꾸게 만드는데요. 제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민주당은 '도시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고 이에 반해 공화당은 미국 기업계의 확고한 지지와 더불어, 보수 세력의 정당으로 옷을 바꿔 입게 됩니다. 저는 하이드먼의 이 글을 일독하면서, 뒤이어 나타날 공화당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의 '민주당 혐오'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면밀히 추론해 보고자 했습니다. 이 글이 그러한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상대 당에 대한 근거 없는 지독한 혐오는 '티파티 운동'이 힘을 잃은 2014년 이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이었습니다. 특히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다면적인 인신공격을 포함한 증오에서도 말입니다. 만약 미 정당사의 맥락에서 그 근원을 파헤쳐 본다면, 아마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소위 3연임 집권과 그가 추인한 뉴딜 개혁에 이 공화당 세력이 아주 소름끼칠 정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앞서 언급한 '티파티 운동'은 명목상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 및 '자유 지상주의'를 기반으로 미국 내 리버럴 정치와 민주당 세력을 일소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자인 폴 하이드먼은 정당 정치 바깥의 다수의 의견과 반하는 그림자 정당 세력으로 이 티파티 운동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민주당이 '노동계를 포섭했다'는 정당사 과정의 소위 이익 집단화를 차치하더라도 함께 가야 할 보수 정당인 공화당이 그 저변의 여러 정치적 측면의 극단주의화를 그저 손 놓고 바라봤다는 점도 상식적인 측면에서 쉬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면에서 저자는 현재의 공화당 정치를 '이념 정당'으로서가 아니라 반자유주의 세력의 '총집합'으로 해석하는 것 같았습니다. 독자들은 저자가 어떻게 공화당을 반자유주의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마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에 간단한 설명으로 재 집권한 작금의 도널드 트럼프가 반자유주의적 기조를 통해, 무역과 경제 개혁에 나섰고 특히 통렬한 반이민주의는 세계화에 따른 자유주의 기조에 명백히 반하는 시도로,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그동안 미국에서 대놓고 볼 수 없었던, '삐뚤어진 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출된 논증으로 봤을 때, 이 모두의 공통된 기반은 노골적인 '반자유주의'였습니다. 저도 저자의 다음 의문인, "공화당은 왜 반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극단적 정치 세력화에 어떠한 반대 의견도 내놓지 못했는가?"에 동의하고,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논증들이 결국 공화당의 실질적인 정당성 상실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공화당 정치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것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가 목도하게 될 미국 정치가 그리 밝지 만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국 시민들의 삶에 그다지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은 의료 보험 개혁과 사회 보장 제도의 개선의 필요성은 앞서 진술된 바와 같이,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를 거치며, 정치권에서 쇠락하게 됩니다. 저자의 진술대로 이 의료 보험 개혁과 사회 보장 제도를 실질적으로 유의미하게 보장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은 미국 시민 모두에게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레이건 시대의 이인자로 여겨졌던 뉴트 깅그리치와 같은 강력한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소위 '반시장주의' 해법에 반대한 것은 분명한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확고한 정치 세력에 막대한 로비를 지속한 기업계는 "클린턴의 의료 개혁안이 자기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해 스스로 반대해 나섰을 뿐이다"라는 편의주의적인 진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클린턴 대통령 재임 초기부터 공화당은 클린턴을 매우 증오했고, 더 나아가 그를 경멸"하기까지 했는데요. 민주당의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가히 시장 친화적인 인물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르윈스키 스캔들'을 지렛대로 클린턴의 탄핵 시도 당시, 공화당은 "담배 산업과 기독교 우파"의 강고한 지지에 눈이 멀어, 중대한 시기에 놓인 백악관을 유명무실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갈등 끝에 탄핵은 무산되기는 했습니다. 이렇게 세계화를 이끈 자유주의 엘리트 세력이 2008년 전까지 미국에서 중심 세력으로 인정받고, 이들이 가진 생각이 최소한 레이건 행정부까지는 존중 받을 정도였으나, 공화당이 진행한 여러 법안에서 더 오른쪽으로 향하게 된 점은 지금에 와서 어떻게 보면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한 민주당 리버럴들과 공화당의 강고한 신자유주의자들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역사학자인 딘 베이커 역시 의문을 갖고 그렇게 진술했고, 최근에 읽은 게리 거스틀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비평하기도 했습니다. 레이건의 그 개혁은 소위 리버럴의 묵인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다는 진술대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했던 공화당은 사실상 조지 W. 부시가 방조한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에 대응해, 긴밀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는 물론이고, 금융 시장의 붕괴로 현물 시장을 포함한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이 관 속에 들어갈 시점에서도 애꿎은 '자유 시장 담론'을 여기다 들이대기까지 합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더 큰 위기가 찾아오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곧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가 내부 논의 끝에, 막대한 구제 금융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의회에 통보했음에도 그리고 그 수많은 전문가들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민주당 정권의 백악관이 시도하는 대책에 보이는 마뜩찮은 반응이 부정적 당파성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지독한 당파주의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런 편협함은 자유주의의 유산은 확실히 아니라는 점입니다. 반면에 오바마 행정부 이전의 조지 W. 부시의 막바지 임기 1년 간을 따로 레임덕으로 설명하면서, 다른 정치적 패착이었던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는 일부 사람들에게 2008년의 금융 위기를 예견할 정도로 전조 상황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방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수습하는데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무능한 정실 인사를 내려 꽂는 인사 실패는 조지 W. 부시 정권의 패착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공화당 정치를 이렇게까지 변질 시킨 건 티파티 운동과 더불어 코크 형제와 같은 그림자 세력이 한 몫을 하게 됩니다. 현재의 미국 정치가 자유주의적 자정 능력을 거의 상실한 데에는 이러한 원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따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SNS로 인해 더욱 범람한, 극단주의의 파고도 이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러한 이행에 더욱 편승한 미국 정치의 부정적 파급, 그 자체가 되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자인 하이드먼은 6장의 서두에서, 특별히 "트럼프의 집권은 반드시 해명이 필요하다"고 이처럼 강조하고 있었는데요. 더욱이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은 기존의 사회과학적 분석 틀을 무너뜨렸다."고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트럼프의 인기는 스스로 SNS를 통해, 정치적인 이슈 등에 즉각적인 답변을 업로드 하며, 일찍이 대중 정치의 속성을 간파한 것에 있습니다. 매우 영악할 정도로 말이죠. 여기에 그는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철저한 자기 이익과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된 그야말로 '날 것'의 소통이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는 외견상 공화당의 이념(혹은 정치적) 정당으로서의 몰락과 이 '트럼프 현상'이 그 궤를 같이 했다는 점에서 두 현상의 부정적 시너지 효과로 인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미국 정당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비로소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닉슨에 반대했던 블리스를 떠올려본다면 이는 극명하게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2014년 당내 주류 세력이었던 칼 로브와 그 패거리들은 중간 선거의 승리를 바탕으로 정치적 도전들을 물리치고,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상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됩니다. 2015년 1월, 부시 일가의 젭 부시가 출마를 앞둔 시기에 당내 의원들은 이런 젭 부시가 승리를 하게 되면 당내 세력을 일소해, 진정한 통합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이것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6장에서 진술된 바와 같이, 2015년 초, 코크 형제는 2016년 대선에 9억 달러 가까이 지출할 계획을 잡게 됩니다. 이는 대선 캠프 전체의 지출과 맞먹는 규모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대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2015년 8월에 열린 첫 공화당 예비경선 토론회 이후,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게 되는데요. 이때 경쟁하던 젭 부시와 테드 크루즈는 곧 지리멸렬해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테드 크루즈는 자신이 도널드 트럼프를 꺽고 그의 조직을 쉽게 흡수할 것이라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당시, 공화당 지지자들은 세금과 복지 삭감 문제에 있어서는 회의적이었던 반면에 이민자와 다문화 정책에는 더 적대적인 상황이 되었는데요. 이에 트럼프는 이 틈새를 완벽히 파고 들어, "매디케어, 메디케이드, 사회보장을 삭감 없이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 같은 무역협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특히 이민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혹자들은 이런 트럼프가 단순한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아닌, 의회 바깥의 반이민, 반자유주의, 그리고 극단적 보수주의 연합과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광범위한 세력이 결집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부분과는 별개로, 이 도널드 트럼프 현상이 초래한 중요한 것들 가운데, 공화당의 도드라진 부정적 당파성, 즉, '상대당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이 트럼프를 매개로 실질적으로 발현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럼에도 항간의 트럼프의 당선과 관련해, 저자는 널리 알려진 두 가지 주장을 언급합니다. "트럼프의 당선이 공화당이 새로운 노동 계급 중심의 유권자 기반을 확보하는 전환점이었다는 것과 인종주의 급증의 결과"라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저자는 강조하면서, 첫째로 트럼프의 노동 계급 지지 상승은 2005년 이후, 노동 계급을 포획하기 위한 공화당의 추세와 다름 아닌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또한 둘째로 백인 유권자들의 '인종적 반감'이 이때 대규모로 퍼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인용됩니다. 일례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백인들이 인종적 반감이 깊어진 징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강조하고 이런 주장에 대한 최신 분석들도 비슷했다고 언급합니다. 그 대신 "트럼프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려면" 당시 트럼프 캠프가 보여준 독특한 전략에 있다고 진술하는데요. 힐러리 클린턴이 정치 광고에서 자신의 인격과 자격에 집중했던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 내 다양한 세력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메시지 전달과 각종 정책에 대한 의견 제시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강조했던 바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은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뚜렷했고 일부 계층에게 반감을 사고 있던 점을 개선시킬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나 업적 만을 늘어놓는 자기 광고는 역시 패착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트럼프 당선에 있어서 노동자 계급의 불만과 확대된 이민 정책과 이민 문제 자체 때문에 표가 몰린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중들이 인식하는 힐러리 자신에 대한 문제에 있어, 캠프의 대응 실패와 실효적인 선거를 치르지 못한 정치적 무능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트럼프의 인종주의는 백인 우월주의와 이를 지지하는 단체들과 맞물린 측면이 분명 있고,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으로 해석되는 '러스트 벨트' 지역의 산업 쇠퇴와 그에 따른 수많은 노동자들의 분노가 표로 트럼프에게 결집된 점도 그저 무시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티브 배넌과 그에게 영감을 안겨준 지금은 작고한 앤드루 브라이트바트의 소위 영리한 정치적 연계는 그동안 코크 형제로 대표되는 그림자 정당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을 정당으로서의 영향력을 붕괴시킨 주요 원인으로 불릴만 합니다. 특히 스티브 배넌은 지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에서 특별한 참모로 활동하여, 전부는 아니겠지만 공화당 주류 세력이 트럼프에게 굴복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에게 일종의 카리스마를 엿본 바바라 F. 월터의 인상 만큼은 아니지만, 저자인 하이드먼 역시, 아주 일관되게 '작금의 정치 상황을 내전 상태'로 규정하고 이러한 이행에 기름을 끼얹은 극단주의 세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바바라 F. 월터 역시, 하이드먼과 유사하게 이 내전 상태에 대한 놀랄만한 정치적 분석을 도출하기도 했는데요. 저 역시도 이미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2020년의 대선 패배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충동하여, 무장한 무리들이 미 의회에 난입하게 된, 2021년 1월의 그 사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그리고 그들의 무리가 어떠한 사법적 처벌도 없이 넘어간 장면은 미국 민주주의의 오욕임과 동시에 미국 정치가 어디쯤에 있는지 아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자유 지상주의자라고 설명하는 마이크 펜스가 자기 이익에만 영합하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그토록 아첨을 일삼았다는 내용도 충격이거니와, 워싱턴이 일개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권력 향배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 의회와 행정부의 면밀한 대화와 의견 도출로 타협에 이르는 과정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망각한 도널드 트럼프의 오만 자체는 이 시대의 정치가 그 세를 다하여, 붕괴를 드러내는 상징, 그 자체라고 보는 것이 과도한 해석은 아닐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 보수 정치가 사실상 자유주의 자체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만큼 암담함을 넘어 그 끝이 불분명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과거 닉슨의 사례로 보건대, 당을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하여 장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공화당을 사실상 위협에 빠뜨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 역시,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철저하게 당을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한 사건을 거의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는데요.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진정한 값어치는 돈에 따라 움직이는 거수기 따위가 아니라, 할 말을 할 수 있는 의지와 그 선명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 역시, 저자의 광범위한 분석인 "미국 정치가 선거 자금 획득의 소위 비약적인 혁명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진술에 동의하며, 앞으로 공화당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도 이 글을 통해, 분명히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조지프 매카시와 도널드 트럼프) 진실과 거짓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지지자들로 하여금 적을 향한 분노를 부추기는 ‘선동 정치‘를 했다는 점도 닮았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골드만삭스에서 베들레햄스틸에 이르는 기업계 연합의 지지를 받아 당선될 때, 기업계의 최우선 과제는 세법 개정이었다.

공화당 우파는 기업 비리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에 반대하고, 대담한 세금 삭감을 지지하며, 노동조합과 규제에 대한 지속적인 적대감을 지닌 판사를 임명하는 싸움에서 믿음직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민주당 내 자유주의 세력은 일찍부터 남부 보수파를 적으로 규정하고, 1940년대 이후에는 이들을 당에서 축출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결정적으로 힘을 약화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1932년과 1934년의 연이은 선거 패배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많은 사람은 신중함이 용기의 일부라는 사실을 빠르게 깨닫고, 루스벨트 행정부에 직접 도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우파를 달래기 위해 부통령 후보로 기용된 리처드 닉슨조차 1960년 대선후보로 지명을 받기 위해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넬슨 록펠러와 타협해야 했다.

닉슨은 공화당을 자신의 뜻대로 완전히 장악하려 했으나, 블리스는 이에 반대했다. 결국 닉슨은 당 조직을 무시하거나 우회하여 독자적인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

1994년 초 공화당이 클린턴의 의료개혁안을 강력히 반대한 것은 기업계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였다.

조지 W. 부시는 미국 기업 지도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버지 조지 H. W. 부시는 오랫동안 전형적인 ‘비즈니스 공화당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의 심각한 피해와 행정부의 늦장 대응은 국가적 우선순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공화당이 대공황 수준의 혼란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기업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던 구제 금융 법안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볼커 쇼크‘로 인한 금융 변동성 속에서 수익을 찾으려던 은행들은 대공황 이후 도입된 수많은 규제의 철폐를 요구했고, 실제로 많은 규제가 차츰 해제되었다.

당시 코크 네트워크와 전통적 보수 단체들은 힘을 합쳐 오바마 행정부에 맞서 공화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티파티 운동가들은 이 타운홀 미팅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의원들을 거칠게 비난했다. 이런 행동은 헬스케어 개혁 반대 여론을 널리 알릴 뿐 아니라,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 하락에도 일조했다.

그 후 2년 동안 코크 네트워크의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은 티파티 운동을 지원하며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을 공격하기 위해 광고와 유세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브는 오바마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보수진영의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사람들은 우리를 거대한 우파 음모라고 부르지만, 사실 우리는 반쪽짜리 우파 음모에 불과하다. 지금이야말로 진짜로 움직일 때다"고 말했다.

8월에는 공화당 하원 의원 마크 메도스가 오바마 헬스케어 예산 전액 삭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연방정부 예산을 인질로 삼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트럼프는 2012년 대선에서 롬니가 패배한 직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정치 슬로건을 상표 등록했다.

티파티의 격화된 극단적인 공격으로 인해, 공화당 지지층은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선전포고‘를 강하게 외치는 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민주당은 노동조합 등 연합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보호무역을 훨씬 노골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던 반면,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공화당 의원들은 탈산업화의 책임을 중국에 주로 떠넘기면서도 이를 가능하게 만든 미국 내 정책에는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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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과 주권 - 토머스 홉스의 정치사상 입문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 마농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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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독일 헤센 주, 라인-마인 지역의 프리드베르크에서 태어난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유럽의 정치 이론과 사상사를 전문으로 하는 독일의 저명한 정치학자입니다. 뮌클러는 특히 마키아벨리 연구로 유럽 학계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에 뮌클러는 197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소재한 종합 대학인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에서 독일어학, 정치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여, 독일어와 사회 과목의 중등 교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이후 그는 현재 유럽에서 표준 연구로 일컬어지는 『마키아벨리 : 피렌체 공화국의 위기에서 본 근대 정치사상사의 기초』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으로 학문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1992년 3월에 그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사회과학부 정치 이론 교수직을 수락합니다. 그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학과장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같은 대학의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게 됩니다. 또한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뮌클러는 독일 정치학 분기별 학술지 (German Political Science Quaterly)의 정치 이론 부문을 담당했고, 1993년에는 비엔나 고등연구소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in Vienna)의 객원 강사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그는 독일 외교부와 연계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2024년까지 단극 세계 질서 시대가 끝나고 5대 강대국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인도)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럼에도 뮌클러는 전세계에서 민주주의 확대와 발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2018년 은퇴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과 현실적 가능성 등을 언론과 지방 자치 단체에 이론적 초안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강력한 지원을 주장하는데, 그의 의견이 중요한 근거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omas Hobbes, Eine EinFuhrung"으로 지난 200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뮌클러의 진지한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토머스 홉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들인, 『시민론』, 『리바이어던』, 『법의 기초』, 그리고 『베헤모스』등의 원전을 통해, 홉스 사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미 저는 영국의 정치 이론가인 리차드 턱의 유사한 성격의 글인『홉스』를 일독했던 바가 있습니다. 물론 턱의 논증된 글 또한, 동일하게 서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기 뮌클러의 이 논저도 홉스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독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앞의 리차드 턱의 글과는 달리, 지금 소개할 뮌클러의 논저는 홉스의 여러 저서들에 대한 꽤 명료한 분석을 보이며, 그의 전반적인 삶과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거의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입체적이면서 틀에 박히지 않은 관점 역시도 마음에 들기도 했는데요. 홉스는 이미 그의 많은 주요 저작들에서 가히 부정적으로 도출된 (무질서에 이르는 상황에서 인간이 폭력적 조건에 빠지게 되는 현실 자체) 소위 '내전 상태'와 그 순간 모든 시민들의 '자기 보존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지금도 잘 알려진 리바이어던의 '모든 사람에 대한 투쟁', 그리고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는 늑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 혹은 야만성"을 일종의 연역적 방식으로 풀어 논증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의 1장 4부 이후의 논증에서 결론적으로 홉스는 자유주의자들과 절대 왕정주의 혹은 절대 권력 옹호자들에게 무언의 영감을 준 사상가로 도출됩니다. 이에 필연적으로 홉스가 언급하는 자유는 이사야 벌린에게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고, 여전히 논란의 인물인 카를 슈미트와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에게까지 그는 일정 부분, 권력 집중에 대한 편의적인 이론 제공과 절대화 된 권력의 이론적 해석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 지점에서 우선 인식하고 있어야 되는 부분은, 이 책의 저자인 뮌클러가 분석하고 있듯, 후자의 소위 '절대 권력'의 목적이 다수 시민의 '자기 보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입니다. 이는 과거 홉스가 살았던 영국에서의 내전 상황과 그에 따라 얼핏 인식적 연계에 따라 드러났던 '공화주의'에 대한 아이디어의 우려와 공포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요. 심각한 내전 전후로 이어지는 공화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홉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즉, 책의 1장에서 광범위하게 언급되는 바와 같이, 홉스에게는 시민들 사이에 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것보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에 기대어, 자신이 분석하는 그 특별한 '권력'의 조율된 원칙이 기반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앞선 '덕의 부재'에 대한 관념적 해석은 이후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흄에 의해, 토머스 홉스의 합리적 이익 추구의 신민들이라는 독창적 개념이 일견 부정 되기는 했습니다만 '왕의 목을 치게 되는' 심각한 내전 상황에서의 권력 붕괴와 그에 따른 대다수 신민들이 맞게 되는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 그리고 인간의 중요한 목표이자 욕망인 자기 자신을 (야만의) 자연 상태에서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무산되는 정치적 현실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올리버 크롬웰과 연관이 있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만 신민들의 자기 보존이라는 이익에 기대어, 정치적 파행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는 그가 궁정 정치인이 아니었음에도 일종의 사활적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의 후기 저작인 『베헤모스』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의 진정한 이익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피력하기도 합니다. 이는 그의 후기 사상이 어떤 식으로 강화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홉스의 이러한 관심은 실질적인 권력을 쉽게 조망할 수 있는 '가정 교사'였다는 사실이 실체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투쟁 속에서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1961년까지, 기피 되고 거부 당하는 인물이었으며, 귀환한 뒤에는 철저하게 영국 공화정에 복종함과 동시에, 런던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학문에만 바치게 되었다는 일종의 타협은 홉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간접적으로 엿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리바이어던으로 통해, 드러난 홉스의 주요 관점은, "모든 권력을 주권자에게 양도하고 주권적 권력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떤 집단과 단체도 허용하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는 "오직 신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통치자에게만 복종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홉스가 '사회 계약'이라는 개념을 처음 밝히기도 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인 뮌클러가 후반부에서 새롭게 밝히는 바와 같이, 이후에 사회 계약의 효시가 된 장 자크 루소에게 철저히 부정 되어야만 했던 역사로서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통해 개인의 권리와 사회 보장에 따른 안전과 재산권 보호를 인정하고 수립했지만, 여전히 전세계의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제한적이라는 현실은 과거의 토머스 홉스가 왜 강력한 권력을 빗대어, 소위 '성서와 하늘의 권리'로 승화시켜, 절대 왕정에 부여하게 되었는지 그 노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수사와 정치적 맥락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사회에 누적된 지식 발전이 더불어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신뢰한다면 이를 뒤집어 '그 역'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언급되는 '정치 신학'에 대한 홉스의 특별한 기여와 그가 평생에 걸쳐, '무신론자'라는 누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일화도 역시, 이처럼 인지부조화에 가까운 서로 충돌 되는 관념의 투쟁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이 글의 1장, 2부부터 3부까지의 주요 논증이 토머스 홉스의 정치 사상적 고찰에 의해, 그가 어떻게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전통적인 철학과 왜 단절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저자는 거듭 밝히고 있었는데요. 홉스에게는 늑대들과의 전면 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그리스 철학의 전통과 길을 달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적 이론이 거의 '홉스식으로' 부정되기에 이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기도 한, "소위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 극단들 사이의 중간을 지향하는 시민 관념을 포기하고, 이 시민을 복종 의무를 지닌 신민으로 대체"했습니다. 특히 정치적 불안을 심각하게 야기하는 것이 과거 그리스 전통에서의 평가와 점차 점진하는 정치인들의 명예욕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더욱이 그가 말하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분석할 때,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나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일반적인 평등 이론'이 더욱 '자연 상태'를 조장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홉스는 신분 상의 차이나 계급적 차별을 수용하고 이것에 반하는 평등 관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세에 홉스에 대한 평가들 가운데, 자유주의자 혹은 구왕권주의자와 같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수식어로 대비되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는 저자인 뮌클러의 고찰대로, 전기와 중기의 홉스 사상과 후기의 내용이 상당히 변화가 있었다는 것과 이중에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를 놓고 봤을 때, 전자의 주목 받는 여러 논증이 '베헤모스'에서 상당히 신중해지거나 논리적 일관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점은 앞으로 좀 더 분석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글 1장의 2부에서, 이들 자연 상태에 적나라하게 제시되는 "가장 약한 자조차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다"는 논리는 계략과 음모라는 매개는 물론, 거기에 동원되는 살인 무기 등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논증하고 있었는데요. 이처럼 홉스는 그 시대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관념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대의 이 세계에서도 어떤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 있는 모략(물론 심히 거창한 표현이지만)과 술수는 여전히 가능하며, 이러한 전제로 인해 인간의 선의와 도덕적 선행에 대한 인식을 매번 긍정할 수 없는 이유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홉스의 분명한 인식처럼 수많은 개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측면에서의 이익 추구가 절대 권력의 방만과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을 (견제할 수 있다거나)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처럼 사실상 도덕이 붕괴된 상황에서 '연계된 개인들의 합리적 이익 추구'가 과연 홉스가 그토록 바라던 사회 질서와 안전 유지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최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장담해 마지 않던 자유 시장의 터무니 없는 관념과 일맥상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홉스는 2장에서, "인격적 유대와 필요 지향적 노동의 자리에 들어선 시장 매커니즘에 사회적 통합이 고착된 것을 인간 본성의 산물로 묘사"한 귀결은 홉스가 "시장이 매개하는 사회는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만, 그는 '법의 기초'에서 철저한 '법의 보장'만이 신민들의 방종을 방지하고 이러한 법의 토대가 결정적으로 정치적 및 사회적 안전에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습니다.

앞서 강조했단 바와 같이, 홉스가 규정하는 주권자는 "시민 일반의 복지를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원칙과 그것을 지킨다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일종의 선결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세금 문제가 결부된 영국의 찰스 1세의 처형이나, 이후의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의해 목이 잘리게 되는 점도, 자기 보존성과 연계된 시민의 복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절대 왕권의 몰락을 비극적으로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홉스는 그러한 전제 정치 내지는 왕권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붕괴시켜, 한 국가를 내전에 빠트리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못 박고, 동시에 이러한 주권적 권력의 태만에 대해서도 경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홉스가 자신의 후반부 논저에서 상당히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2장 5부에서, 그의 리바이어던을 통해, "주권적 통치자를 갖춘 정당한 권력 구조"에 대한 논증은 그의 사상이 어떤 관점으로 어떤 맹목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지, 설득은 안되지만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홉스의 시대 역시, 도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쉽게 야만에 빠질 수 있었던 정치적 위기의 순간들이었지만 그가 일관되게 서술하는 국가의 선결 과제와 그런 틀로 규정된 정치적 권력과 이 정점에 위임한, 이 '주권'에 관련된 내용은 현대에 살고 있는 저에게도 적잖은 고찰을 요구했습니다. 일반 신민들에 대한 다소 냉정한 평가와 이들의 방만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법의 단호한 대책과 같은 일련의 논리적 연계들은 '주권'을 온전히 발휘하고 그것을 권력화하여, 국가 통치에 나서는 소위 '존귀한 세력'에 대해서는 다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부분은 특별히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반왕권주의적이고 친공화주의적인 결론을 피하기 위한 홉스의 노력"은 2장의 초입에서도 일관된 진술로 드러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의 논점들은 정치 구조와 그것의 행위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역설적으로 추동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요즘으로 돌아와, 홉스가 작금의 극단주의 세력에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고, 또한 제한적인 자유 관념과 그 정치의 목적이 오로지 사회 질서 유지와 그로 인한, 신민들의 자기 보존에 우선한다는 맥락은 그것의 서사적 전개 및 요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현실과 비교하여,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글의 1장 중후반부에서 자유 평등의 상태가 홉스에게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는 점과 이 자유와 평등을 근본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 그리고 그 효력 범위에 대한 촉구는 여러모로 그가 전면적인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사람임을 깨닫게 만듭니다.  


- 행동의 동기를 이익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인간 행동의 여러 요인들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등의 이익 본위의 행동 원리는 지금까지도 그 역겨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를 거의 신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추구만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 편인데요. 바로 여기에 왜 오늘날 도덕 관념이 불필요한 관념으로 추락하고 그것을 백안시 했는지, 이를 통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홉스 이론의 한계는 바로 이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과 가까운 거리 덕에 그는 평범한 지방 성직자의 아들로서는 쉽게 가질 수 없었을, 정치적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일찍부터 갖출 수 있었다.

홉스의 관점은 정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 적어도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정치 분석가 홉스의 탁월한 점은 내전의 영향 속에서 이론을 발전시켰는데도 권력을 결코 폭력으로 축소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명시적이기보다는 묵시적으로) 복합적 권력 개념을 가지고 논증했다는 것이다.

홉스가 그 저작들에서 발견한 것은 그의 시대에도 여전히 불안과 갈등을 낳는 요소들, 무엇보다 선동 정치가의 명예욕이었다.

플라톤의 대답이 철인의 지배였다면, 홉스의 대답은 모든 권력을 주권자에게 양도하고 주권적 권력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떤 집단과 단체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홉스는 주권자에 대한 시민의 충성을 확보하는 데 국가의 효용, 즉 생명의 보장과 그에 근거한 부유한 삶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거기에 더해 국가와 그 꼭대기에 앉은 통치자로부터 압도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권자의 지배가 때로 억압적일지라도 그것이 어떤 경우에도 내전으로 추락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야기한다.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어떤 지위를 보유하는지가 오로지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결정에 달려 있을 뿐,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들은 자유를 가치라고 말하고, 과두정 지지자들은 부나 좋은 혈통을 가치라고, 또 귀족정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탁월성을 가치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불평등이 본성의 차이로부터 도출된다고 본 반면, 홉스는 불평등이 오직 주권자의 결단을 통해서만 강제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홉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이상, 즉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 극단들 사이의 중간을 지향하는 시민 관념을 포기하고, 이 시민을 복종 의무를 지닌 신민으로 대체한다.

자유, 평등, 정의가 각각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는 각각의 주권자가 그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홉스는 주권자에게 의무와 임무보다는 주로 권리와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플라톤과 마르크스보다는 딜레마에 덜 얽매였다.

몇몇 사람은 공격적이고 불의하므로 악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진술은 공화주의적 맥락에서 왕과 그의 신하가 가진 권력을 제한하거나 부수기 위해 흔히 사용되던 논거였다.

명백히 반왕권주의적이고 친공화주의적인 결론을 피하기 위해 홉스는 맹수의 성격을 부여하는 대상의 사회적, 정치적 한계를 없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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