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의 귀환
샹탈 무페 지음, 이보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3년 6월 17일, 벨기에의 샤를루아에서 태어난 샹탈 무페는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이자 정치 이론가로, 당대 지식인들 가운데 급진 민주주의 모델을 가장 옹호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1964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이후 프랑스 파리 대학에서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영국의 국립대학인 에식스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MA) 과정 이수를 거쳐, 평생의 학문적 동지인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만나게 됩니다. 현재 그녀는 영국의 공립 연구 대학인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데리다와 그람시를 비롯, 포스트구조주의 정체성 이론을 바탕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했습니다. 또한, 급진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좌파 정치를 재정의하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가장 잘 알린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은 전세계에서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는 저서이기도 합니다. 지금 소개할 이 책의 큰 골자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롤스와 드워킨을 비롯한 숙의 민주주의의 비판적 분석, 그리고 칼 슈미트를 인용하며, 자유주의가 갖는 한계, 그런 인식 속에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The Return of the Political"로 지난 199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7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상탈 무페의 이 글은 소위 자유주의의 승리로 일컬어지는 '냉전의 종식'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극우의 준동 및 전체주의의 부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길을 가야만 하는가"라는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페의 논증을 통해 드러난, "자유주의가 시민의 도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는 결론에 깊게 수긍하면서, 앞선 전체주의의 재구축 혹은 부활을 막기 위해서는 8장의 도출된 해답처럼, "진정한 민주적 다원주의를 창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이르는 일관된 주제 의식과 관련된 여러 의견 교환과 분석 전반의 논증 들은 독자들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정치학과 정치 이론 및 정치 철학의 기본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쉽게 일독할 수 있는 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무페가 이미 1990년대에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세계가 안고 있는 인식과 환경의 불일치, 사회 각각의 심각한 갈등 요소, 그리고 시민들의 도덕성 결여가 자유주의가 기본적으로 안고 있던 노골적인 개인주의화에 따른 파급으로 비롯된 문제라는 점을 밝히고 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첨언을 하자면, "더 이상 자유주의가 사회의 아우르는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시민들이 빠르게 인정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페가 그녀의 다른 논저들을 통해, 밝힌 '급진 민주주의의 모색'은 그런 연장선 상 안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페가 거듭 인정한,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과감하게 분리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런 이론적 획책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손쉽게 이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등의 문제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에 있어 핵심 요소였음에도 불구하고, 평등에 받아들일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조장을 확산시켜 왔습니다. 이미 무페는 이 글에서 카를 슈미트를 빗대어, 자유주의자들이 모든 시민을 동등하고 평등하게 대할 것을 어떤 선언적 의미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회는 사실상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는데요. 물론 존 롤즈의 주장을 끌어들여 자유 만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의 노골적인 개인주의화가 결국에는 입에 발린 사회 정의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홉스 시대를 거치면서 인식하고 있던 공동선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실상 민주주의 체제가 이런 공동선, 공동 이익에 대한 실질적 안배에 실패하게 됨으로써, 결국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제한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무페의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하려고 했던 움직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가렛 존스와 같은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과잉'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미국 자유 민주주의의 소산이라 수식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다른 말로 존 롤즈가 추동한 그의 학문적 작업이기도 한 자유주의적 철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 사회의 자유주의적 방향성을 먼저 선점하고 싶었던 롤즈의 열망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그의 작업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반대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무페 역시 존 롤즈와 드워킨, 매킨타이어를 인용하며 결정적으로 '자유주의 관점의 한계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롤즈는 자신이 살아있던 거의 직전까지 '정의론'이 도덕철학에 속한다고 주장하기는 했으나 엄밀히 따지면 정치학과 정치철학 및 인간철학에 관여된 복잡한 양상의 논의였습니다. 자유로운 다수의 시민들이 자유주의적 관념 내에 합리적 이익 추구를 바탕으로 사회를 정의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막연한 주장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 확실히 이런 논리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총아라고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비슷한 예로 '복지 국가'를 아예 퇴출하고 싶었던 (물론 성공했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와 관련된 담론에 대해서도 저런 유사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물론 무페가 간접적으로 논증하고 있는 이 장의 비판적 논의들이 '자유주의자 대 공화주의자'의 형태로 롤즈의 주장을 섭렵하여 확대된 사회 정의로 나아가는 가능성이 왜 자유주의적 관념에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지를 공화주의적 세계관이 이에 반대하는 모습은 어느 정도는 꽤 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일전에 읽었던 필립 페팃의 '공화주의적 자유'를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공화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자기통제적인 공동체"라는 선결 조건은 그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마키아벨리에게 시민덕의 실천과 공동선에 대한 봉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목적 추구를 허용해 줄 인격적 자유의 정도를 우리가 보증하기 위해서다"라는 2장 말미의 인용은 그만큼 현실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능 정도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스스로 가늠하게 만듭니다.

이어지는 3장의 논증에서도 그렇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적 다양성, 즉 민주주의 체제 내의 다원주의적 토대의 확대는 자유주의가 거의 용인했다고 봐도 무방한 공동선의 추방에 따른 그 결과로 정치와 도덕의 배제가 치른 대가를 최소화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시민 사회 내의 갈등 문제나 정치적 문제를 종교의 교리처럼 이해나 화해의 수단으로 덮어나가는 것이 세간의 다원주의의 요구의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알 것입니다. 저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다원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를 좀 더 확대해 본다면 개인의 도덕적 본성과 민주적 다원주의는 서로 밀접할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계몽주의 시대에서 강조한 도덕의 본성이라는 것이 이처럼 각각의 맥락에 서로 얽혀 있다고 판단됩니다. 다시 롤즈로 돌아와서, 그가 강조한 정의의 문제가 진실로 도덕의 문제라고 이해했다면 옳음과 정의의 우선적 실행은 양자 모두가 도덕적 목표들 가운데 포함되어야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 본성에 추동한 시민들이 정의의 문제에 눈을 감지 않게 되는 것은 옳은 결정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정의관을 무페의 제언처럼. "엄격한 정치적 지반 위에 둘 수 있게 하는 조건들을 확립"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거의 2세기에 걸쳐, 자유주의자들이 구축한 국가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이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립'의 문제 등 이러한 배경에서 오랫동안 선으로 여겨져 왔던 개인의 선택과 정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덕적 본성을 구축한 시민들의 자기 제한적인 결정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대립처럼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런 정의의 물음조차도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거의 시녀로 거느리게 됨으로써 발생된 가치 정복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유주의에 있어 '자유'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래 자유 민주주의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 두 가지의 정치적 원리를 긍정하고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는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2장에서, "평등이 우리에게 핵심 목표인 이유는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이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적 시민관이 문제가 많다는 점은 무페의 일관된 논증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시민관이 사회 내부에 제대로 뿌리 내린 것을 차치하더라도 우리 시민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가 2세기나 이어진 시민 사회의 건전성을 요구하고 다양성의 논리를 중요하게 개념화시킨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4장의 "다원주의의 옹호, 개인적 자유의 관념, 교회와 국가의 분리, 시민사회의 발전, 이 모든 것이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구성 요소"라는 일련의 열거들이 이 체제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깨닫게 되는데요. 이런 진술을 토대로 저는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협력해야 하는 서로 동등한 개체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종속시키고 자신의 원리를 위해, 상대를 부속으로 만드는 것은 특히 시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페가 아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유주의가 오늘날 나날이 축소되고 있는 다원주의 관념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거의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무페는 자유주의에 반하는 다수 공동체주의자들이 바라는 "민주주의의 정치 공동체가 단일하고 실체적인 공동선의 관념을 중심으로 조직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 "개인적 자유를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강한 참여를 주장하는 시민권의 관념을 회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생각은 분명합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요구를 자신이 자유롭게 삶을 조직하고 자유를 누리는 권리에 있어 훼방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개인의 도덕성이 그 자체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 자체는,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타협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자인 무페는 4장에서 이 부분의 진술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지만 개인적 권리에 대한 과도한 특권화라든지,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 행위 전반을 편파적인 관념화로 이어지는 사고 과정은 분명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현대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서 일반 시민들은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의 권력 차이를 심각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영역에 대한 개인주의적 시민들의 태도는 다소 분명해 보입니다. 있지도 않은 '나의 권리 침해'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그만큼 민주 체제에서의 시민들이 인식하는 공적인 영역의 존재감이 옅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페가 이번 장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자유주의가 축소 시킨 정치의 영역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는 "일련의 윤리-정치적 가치들을 공통으로 인정하면서 서로 유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많은 정치학자들이 애써 개념화한 시민권의 의무를 인식하는 데 중요하고 이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적인 일이 만인을 위한 평등과 자유라는 자유 민주주의 채제의 정치적 원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우리는 물론 시민 사회 전반이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눈치를 챈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자유 민주주의에서 평등이 자유와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평등의 제반 원리들이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다원주의와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의 2장과 4장의 전반적인 분석적 논조와 그에 따른 논증들이 단순히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외와 공동체주의가 대결하는 가운데 서로가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다시금 살펴보는 것처럼, 결합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역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권력 관계의 구조를 이제는 적절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수많은 진술 가운데 드러나는 진면목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 이는 체제와 이를 떠받치는 시민 사회를 새롭게 구축하여 분열되고 단절된 각각의 시민 사회 그룹의 연결성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극단주의의 파국에서 공론장의 확대나 혹은 정치적 편향, 혹은 과도한 정체성 정치를 제어하는 것 이전에 "왜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기반이 강조하고 있는 기본 원리들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런 범주 안에 우리의 행동 양식이나 각자의 관념 체계를 먼저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끝으로 샹탈 무페는 자신의 급진 민주주의 이론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적지 않은 분량에서 카를 슈미트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역겨운 이력 때문에 특유의 정치적 대결주의와 결단주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무페는 슈미트의 이론은 오만하고 멍청한 자유주의의 과오를 돌아보고 이것을 토대로 견실한 민주주의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슈미트가 불완전한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를 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일 텐데요. 이에 8장에서, 저자는 "슈미트가 주로 반대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 확실하게 나타난다."고 첨언합니다. 여기에 슈미트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이 그 자체로 자유주의가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단언과 이러한 연계에서 오늘날 자유주의가 침투한 정치 환경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듭 반복하지만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정치 현상의 본성"을 파악할 수 없다는 진술은 슈미트를 매개로 무페가 분석하는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적 사고가 그 개인주의로 말미암아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일맥상통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페가 왜 급진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는지 이 대목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는데요. 극단주의 세력이 아무런 지식 없이 자신들의 자유를 내세우며, 민주주의가 병들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대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교묘하게 이 자유 민주주의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무능한 자유주의와 그런 자유주의의에 종속된 민주주의가 작금의 극우 포퓰리즘과 극단주의 세력의 확대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신물나게 들어온 기존 엘리트 체제의 극도의 혐오와 무능이 여기에 부채질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그렇기에 무페는 7장에서, 민주주의가 다원주의라는 외피를 둘러야만 한다고 강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저자인 무페의 중요한 생각들을 제 마음대로 재단하기는 했습니다만, 저는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에게  7장부터 9장의 내용들 만큼은 충분히 숙고하면서 일독해 보셨으면 합니다. 카를 슈미트를 쉽게 용서할 수 있을지는 개인의 몫이지만 그를 통해 바라보는 자유주의와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길을 가야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길잡이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페에게 있어, 자신이 사실상 고안한 '접합'이라는 용어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 세기 가까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접합된 상태로 공존해 왔는데 그녀는 또 다른 의미로 접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다양성, 즉 다원주의와 접합하는 것을 긍정하면서, 여기에 과거의 공동선이 회복될 수 있느냐 (근본적이든 표면적이든 간에)는 이 접합의 기술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글에서도 등장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자유주의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접합한 문제를 무페는 어떤 사조의 구분 정도로만 짧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존의 자유주의가 저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철저히 왜곡되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단순한 서술의 기법이 놓여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슈미트는 우리가 친구와 적의 관계라는 정치학의 중심에 관심을 두도록 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적의의 요소와 연결된 정치적인 것의 차원을 알아차리게 한다.

근래에 신자유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유 및 평등과 같은 개념들을 다시 정의하고 자유의 관념을 민주주의 관념으로부터 탈접합하려 하는데, 이런 시도들은 자유민주주의 전통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친숙성들을 활용하게 해 주는 서로 다른 전략들이 어떤 식으로 추구될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마키아벨리에게, 사람들이 시민적 덕을 행사해야 하고 공동선에 봉사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고유한 목적의 추구를 허용하는 특정 정도의 인격적 자유를 스스로에 보증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거의 동시에 ‘신자유주의자‘집단은 [존슨 대통령이 추진한] ‘위대한 사회‘의 재분배 정책을 공격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의 늘어나는 간섭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그들은 밀턴 프리드먼과 더불어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설교했다.

이 저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는 위기는 사회적 유대의 파과에 있으며, 그렇게 된 이유는 개인들에게 자기 이익만 돌볼 줄 알고 자기 자유를 구속할지도 모르는 의무는 모두 거부하라고 자유주의적으로 선동했기 때문이다.

평등이 우리에게 핵심 목표인 이유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인데,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이 가치가 깊이 스며들어 잇는 제도와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가치를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대로 공화주의 언어에서 자유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관과 연결되어 국가의 통치에 참여한다.

여러 공동체주의자들은 인간 주체의 본성에 관한 특정 교리인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곤리의 옹호, 다원주의의 인정, 국가 역할의 제한, 권력 분립 등 ‘법치국가‘의 특징을 이루는 일련의 제도들로 이루어진 정치적 자유주의를 구별하지 못한다.

물론 몇몇 자유주의자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유 시장경제가 없이는 정치적 자유주의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자유주의의 한 조류에 불과하다.

"정치적 정의관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종교적 교리나 철학적 교리, 도덕적 교리에 의해 정식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 사회의 공적인 정치 문화 내에 잠재되어 있다고 보이는 일정한 기본적 직관들로 정식화 된다."

롤즈가 공리주의자와는 반대로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을 말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들이 일반 복리를 위해 희생될 수 없으며, 개인들이 추구해도 무방한 가치관들이 무엇인지를 제한하는 역할을 정의 원칙들이 수행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급진 민주주의적 접근은 우리가 시민으로 행동하려면 끊임없이 조화해야 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소실점‘이 바로 공동선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내가 주장하고 있는 접근 방식에서 급진 민주주의 시민권의 목표는 공동의 정치적 정체성을 구축하여, 새로운 평등주의적인 사회관계들, 실천들, 제도들을 통해 접합되는 어떤 새로운 헤게모니의 살립 조건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슈미트에 따르면 절대적 인간 평등, 즉 불평등이라는 필수적 상관물이 없는 평등은 그 가치와 실체를 강탈당한 것이어서 아무 의미 없는 평등이기에, 인류의 민주주의 관념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슈미트의 도전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정치 현상의 본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업사회의 정치사상 -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 지성사
이슈트반 혼트 지음, 김민철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7년 4월 1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이슈트반 혼트는 헝가리 태생의 영국 경제사상 및 정치사상을 연구한 역사가였습니다. 그의 부친인 혼트 야노시는 1949년에 수립된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농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모친인 케메니 클라러는 헝가리 최초의 여성 공학 교수였습니다. 1965년 일 년 정도의 군복무를 마친 혼트는 아버지의 남다른 조력에 힘입어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1974년 '데이비드 흄과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 헝가리 학술원의 연구관으로 부임합니다. 그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스코틀랜드 정치경제사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1975년 부인 안나와 함께 단기 일정으로 영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영국의 망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대사 석좌 교수였던 휴 트레버-로퍼의 지도 하에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혼트는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펠로우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는 1988년에 컬럼비아 대학의 정치사상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른 역사가들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18세기 근대 국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그는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와 같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상업, 민족주의, 국가 부채, 사치 사회 및 정치경제학과 같은 주제들로 여러 학술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 Jean-Jaques Rousseau and Adam Smith"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혼트의 이 글은 자신이 탐구한 필생의 연구 실적과 마찬가지로, '근대 정치사상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을 학문적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서문의 믿음으로 출간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 (1723-1790)가 장 자크 루소 (1712-1778) 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일독해, 추후 소감을 남긴 것에 주목하고, 당시 18세기에 비약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냈던 소위 '상업 국가'에 따른 루소와 스미스의 생각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으로 당시 대두하고 있던 상업사회에 대한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분석의 장은 1장부터 4장까지, 그리고 경제와 관련된 루소와 스미스의 논의는 5장과 6장으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제 서평을 논외로 하더라도 5장과 6장은 여러분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5장과 6장에서는 스미스를 끊임없이 오독을 하고 있는 교조화 된 자본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와 다름 없는 경제학계의 그를 향한 편협한 해석의 원류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혼트가 6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국부론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고 그것의 일례로 "스미스가 국가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식민지 체제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진술 자체는 작금의 학계가 이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퀜틴 스키너가 이미 밝혔듯이,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시작점은 아마도 홉스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홉스의 사상에 반대하려는 목적 그 자체 뿐만 아니라, 협소하게는 홉스가 펼친 국가론 (내지는 정부론)에 대한 명백한 이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치와 정부에 대한 인식의 '다른 의견'은 소위 계몽주의의 초석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홉스 사상의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여, 1장에서 저자가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한다는 내용으로 갈음하고 있었는데요. 홉스는 아주 간단히 말해,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서로에게 늑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홉스는 '인간의 원천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고전 그리스 철학에 대한 당시 유럽의 맹신에 대해서도 반대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그러므로 앞선 계몽주의의 맥락은 이런 홉스의 사고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여 계몽주의가 후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그 당시 스코틀랜드의 사상은 "인간은 자기애에 기반하여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그런 욕구가 사회 내에서 남을 존중하고 규칙을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인간이 자신 말고 타인을 신경 쓴다는 것 자체는 뒤이어 존 스튜어트 밀을 필두로 자유주의적 사상의 기반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 내에 합리적 가치 책정에 따른 효용에 대한 감각을 가진 시민들이 적절한 용역을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유지"되는 맥락의 '효용에 기초한 사회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스미스가 생각하는 사회의 규범과 질서 유지 및 도덕성의 관철에 이러한 시민들의 효용에 대한 가치 유지가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여겼는데요. 또한, 대표적인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저자인 혼트가 분석하는 바대로, 그것이 신의 전능과 그 영역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보이지 않는 손을 어떤 식으로 왜곡해 이에 "전지전능한"이미지를 부여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상업사회의 구조적인 안정은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안정화 요소"라는 부연 설명으로 개념화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이 점은 애덤 스미스의 남다른 통찰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18세기 상업사회의 정신적 기반은 바로 효용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관련된 자존심의 발현이 그 근간이 되었습니다. 혼트는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우리가 18세기의 상업사회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다만, 애덤 스미스가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도덕감정론에 근거하여) 홉스주의자나 혹은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에게 홉스주의자라는 타이틀은 분명 상당히 모욕으로 여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홉스가 상업과 그 이익에 관련된 이해를 분명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상업사회의 확장 가운데 '도덕철학의 역사' 또한 이 시기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의 '도덕감정론'이 요약하기 어려운 논저라는 인식은 모두의 불만을 사듯, 스미스는 분명하게 도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사상가였습니다. 현재까지 자유 세계의 이론가들과 경제학자들이 스미스를 소위 '자본주의의 시조'쯤으로 여기며 자신의 논리대로 스미스를 잘 써먹고 있는 현실은 반대로 그를 도덕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철저히 배제시키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공화국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공한 유력한 사상가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역시도 상업사회에 따른 사회의 전반적인 이기심 추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논저이기도 했고, 그 가운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공감과 이입의 본성'이 어떻게 '이기심의 본성과 그 체계'에서 양립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던 것인데요. 바로 이 부분의 내용에서 루소는 애덤 스미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방향성의 단초를 루소에게서 얻었던 것으로 첨언하고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육문사 판으로 1998년쯤에 읽을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떠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또한,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역시 따로 접하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발췌한 적은 분량의 텍스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혼트가 간단한 주석으로 요약하고 있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일부 내용들이 이 글의 2장에서도 인용되고 있어 계급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루소의 기본적인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루소와 스미스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공감의 세계'로 비롯되는 공감의 내용은 뒤이어 5장에서, 이 두 사람이 완벽한 현실주의자임을 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에도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미스가 "인간은 타인의 의견과 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근원적 본성이라는 분석은 그가 얼마나 상업사회의 기반에서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인간 심리 분석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미스 역시, "사회화, 수치심, 위선"등을 어느 정도는 중요한 의미로서 탐구했다는 면모가 일련의 사고에서 중요한 증거로 도출되기도 합니다. 이에 스미스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고인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다른 이기적인 행위자들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시켜, 원초적 이기심과 그것의 자기강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였습니다.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저 필수 불가결한 어떤 필연적인 문제로 봤지만 스미스는 이 이기심을 어떻게 타인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루소 역시도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오독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대표적인데요. 루소와 스미스 양자가 그런 면에서,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존재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만들어내는 사회 형태라는 도출된 결론을 크게 인정했다"는 분석은 앞선 효용과 인정에 대한 맥락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즉, 이 둘은 상업사회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했으며, 이렇게 불안한 요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것을 안고 나아간다면) 홉스주의적 결과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혁명'을 방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둘 다 혁명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럼에도 2장에서 스미스가 인간이 내적으로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외부로부터는 인정을 추구함으로써 이것이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즉, 이 불평등의 문제가 홉스주의적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스미스는 꽤나 진지한 어조로 상업사회에서 종래의 계급적 분화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양립하며, 사회에 넘치는 부로 인한 현격한 상황에서 가난한 자들이 평범한 소비생활을 통해, 전반적으로 나아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나아진)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는 상업사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는 대두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완화를 위해 스미스는 자신이 도덕적이지만 이론에 가까운 토대를 마련하고자 고민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자애와 타애라는 감정의 적절한 성립 가능성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인간의 인정 추구라든지, 사회 내에서 스스로 기여하거나 단독으로 쟁취할 수 있는 영광 추구가 엘리트를 포함한 모든 계급의 고통이 되었고, 그것에 지배당하게 되었다는 서술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5장 이후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가계 경제에 따른 상업사회의 진면목이 "가장이 주도하는 권위"와 이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복종이라는 기본적 행태가 이러한 문제를 애초에 내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루소와 스미스 모두는 이런 상업사회의 이행 가운데, 원초적으로 인간이 사회성과 도덕성을 타고났다는 점을 부정했습니다. 3장 도입의 이와 같은 저자의 단언은 그동안 논증 가운데 예견될 만했는데요. 루소는 과거 가혹해진 전제정과 삶의 유지가 어려워진 빈자층에 대한 일종의 제한적인 배려에서 평등에 대한 관념이 잠깐 솟아나기도 했지만 중앙 집권이 미약했던 과거 봉건 정치에서 획기적인 권력 집중의 전제정치가 나아갔던 방향과 그 면모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가혹했다는 점을 먼저 명시해두고 싶습니다. 루소는 이미 이렇게 권력 집중을 통한 중앙 집권적 전제정이 무력을 통한 타국의 침략에 거의 무방비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점차 살을 붙여가는 진술 가운데, 저자가 14세기의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그 나름대로는 진보적인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이웃의 프랑스나 신성 로마 제국의 군사적 공격에 취약했던 것은 전제 군주들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었던 연유일 겁니다. 아니 동원령을 내려 (귀족과의 타협이든 간에) 대규모 원정을 꾸릴 수 있었던 '왕권'에 실효적으로 대항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몽테스키외와 마찬가지로 이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대한 스미스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지엽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는 단순한 감상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앞의 진술로 돌아가서, 상업사회의 의도치 않은 이면이 스미스가 예견했던 대로 이것이 인간의 자유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들과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는 합리적 이기심의 추구와 같은 전제가 중요한 요소로 함께 실현되었다면 (그저 도덕적 맥락이 아니라) 이 상업사회는 그 파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익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숱한 전쟁들로 말미암아 기존의 봉건 국가가 낱낱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후로 이어지는 18세기의 상징적 단상은 공화주의의 발견이 아니라 어쩌면 더 가차 없는 개인들의 이익 추구의 사전 작업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스미스의 이런 노력은 거의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오늘날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유명무실해진 이유에는 스미스의 순진함과 더불어, 그의 다른 측면을 세인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은 그 의도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부론이 그만큼 편파적으로 이해된 측면 말입니다. 수세기에 걸쳐서 말이죠. 루소를 일정 부분 받아들인 스미스가 지위 추구에 여념이 없는 문화를 거대한 기만이라고 인식한 것처럼 지위와 타인의 인정 추구에 매몰되어 이것이 심각한 불평등을 유발할 때, 루소나 스미스 양자 모두가 특별한 강구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을 너무 만만하게 본 연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측면의 무모함과 저열함을 너무나 우습게 본 것이죠. 아주 늦은 판단이긴 하지만 루소 역시도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스미스와 달리 루소는 인간에 대해 사회성을 촉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해본 것 같지만 그 역시도 현실의 조건을 가볍게 본 것 같습니다.또한, 루소는 경제에 관여할 수 있는 정부의 재량권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개혁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사회 조정에 불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애덤 스미스와 루소 역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상업사회가 주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법치와 경제적 번영"이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대로 역사에서 이 양자는 쉽게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끝으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인간이 갖고 있는 시기심과 질투를 조정해, 좀 더 진보한 단계까지 나아가려 했던 스미스는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과 그에 따른 제국주의의 출현을 전부 목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이때의 절대 왕정은 과거 로마 제국의 그것과 유사하게 단일 패권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것의 파급은 스미스나 루소조차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방대한 생산 시설과 그에 따른 자원 보유를 통해 이러한 메커니즘이 국내의 복리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패권과 국가적 위신을 위해 영국을 포함한 절대 왕정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국왕과 귀족들의 지향과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들과 그 궤가 확연히 달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미스는 어쩌면 대의로서 상업사회의 일면과 그것을 점차 개선해, 시스템과 인간의 모순을 조정하고, 요즘식으로 다음 단계로의 건설적 이행을 바랬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이 검은 왕들과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 귀족들에게는 국가는 그저 자신들의 위신과 이익을 채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의 구귀족들이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부역한 영국이나 오스트리아의 귀족들 역시, 함께 갖고 있는 공통된 이익은 일차적으로 현상 유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미스의 아이디어들은 몇세기를 거치며, 오용되어 금세기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공익에 대한 자신들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숨기는 데 있어 여실히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루소는 이 점을 몇 세기 전에 신랄하게 비판한 바가 있는데요. 물론 이들에게는 과거 극심한 이념 대결에 따른 배경적 이익도 한몫했고, 정치인들을 구워 삶는데 교조주의적 수단도 서슴치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미스가 절대 왕권을 설득할 수도, 또한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세계와 우리 시대의 지향성이 이처럼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글의 후반부인 6장에서, 저자는 "18세기 근대국가의 군사-상업 복합체"라는 문구를 드러냅니다. 저에게는 저자의 표현이 기시감을 불러일으켜 소수의 그룹이 사회적 헤게모니를 손쉽게 획득하기 위한 그런 일련의 작업이 국가를 불법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는 서로 중첩된 의미를 의도치 않게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루소가 경고한 대로 이 시점에 혁명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기적으로 조직된 사회 구조가 결국은 과두제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번갈아 반복하거나 아니면 시민들이 권력에서 배제된, 변형된 과두제로 진행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상업사회가 지칭하는 대상은 실제로 이뤄지는 물질적 거래가 아니라 해당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성질이었다.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한탄하곤 한다.

사회성 개념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지점은 사회가 ‘욕구‘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이른바 안정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스미스가 정말로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그는 홉스주의자나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이다.

‘애덤 스미스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연민의 본능을 이처럼 도덕성의 원형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유의미한 도덕이론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잘못된 토대에서 출발한 실패에 불과한지 평가해야만 한다.

스미스는 루소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정의의 법칙은 본래 타인에 대한 비자연적이고 부당한 우월성을 유지하거나 얻으려 하는 교활하고 힘 있는 자들의 발명품이다."

서구에서 논의되는 ‘근대 대의제 상업공화국‘의 사상적 기원을 살펴보면 그것이 루소와 스미스의 작업을 종합한 결과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스미스)는 근대 도덕철학 논쟁이 홉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홉스와 플라톤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을 거쳐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루소가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그 단적인 예이다.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개인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만들어내는 사회 형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즉각적인 관심은 사회적 자아에 대한 루소의 이론적 역사 서술과 스미스의 그것이 나아가는 궤적이 아주 비슷하거나 동일한데도 어째서 그 사실이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사회가 홉스주의적 결과를 피할 수 없으며 일단 사회가 상업적으로 조직된 뒤에는 홉스주의적 장치들조차 그 사회를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끝없는 혁명의 파괴적인 반복과 순환 속에서 유럽에 카이사르주의와 민주주의가 번갈아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를 경배하는 마음, 그리고 물질적인 화려함을 통해 개인의 영광을 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철저하게 부패한 정서로서,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발휘했다.

루소는 자신이 18세기 ‘정치의 걸작‘이라고 불렸던 사상, 즉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자들의 행동이 사회적 응집력 혹은 적어도 안정된 사회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기적 행위들 자체의 효과로 인해 공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비판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가 경제정책의 한 형태로서 국제적으로는 타국을 향한 민족적 적개심에, 국내적으로는 국가의 권력 확장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멈춰버린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
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희상 옮김 / 원더박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리데만 카릭은 니더바이에른 주의 유일한 대학인 파사우 대학에서 미디어 연구 및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라인 강 유역에서의 독일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퀼른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습니다. 현재 그는 베를린과 뮌헨을 오가며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요. 그는 팟캐스트인 "Piratensender Powerplay"를 진행하고 있는 동시에 쥐트도이체 차이퉁 (SZ)과 디 차이트 (Die Zeit)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3월까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소재한 토마스 만 하우스의 펠로우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Was ihr wolt : wie Protest wirkliich wirkt"로 지난 202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같은 해인 2024년 1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국내 출판 업계가 해외에서 출간된 책의 원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이거나 아예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으로 출판하는 것이 뭔가 업계의 관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카릭의 이 책도 이런 범주의 출판물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원제는 "시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요약할 수 있지만 번역된 제목은 가히 어두운 정치적 붕괴로서의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일독하고 나서 번역된 제목과 여기의 내용이 아주 거리가 멀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상당히 자극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강하게 듭니다. 이 부분은 정말 유감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정 부분 공론장의 아이디어와 연관된 위르겐 하버마스의 유명한 언급인 "시민 불복종은 그만큼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는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문장 자체는 저에게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적 다원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전에 존 듀이가 이 정치적 다원성과 시민 불복종을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을 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민 불복종의 근원적인 배경에는 민주주의적 다원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1943년 이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돌프 히틀러와 자신들이 고안한 전체주의에 맞서 광범위한 불복종이 왜 실패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이 글의 1장과 2장의 핵심이기도 하면서 카릭의 이 글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여겨지는 "극우 포퓰리즘과 같은 극단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의 다원성에 기반한 시민들의 정치적 불복종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맥락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18년 이후에 전세계에 닥친 극단주의의 범람에 "2024년 1월, 독일에서 역사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진술은 우리의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흐름에서 시민들에게 각인시킨 "민주주의 사회는 극우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유럽의 시민들이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의식이 투철하다는 종래의 평가와 더불어 이들의 사회 참여가 정치 왜곡에 따른 극단주의 세력의 확장을 불식시키는 보루라고 인식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자인 카릭은 스스로 독일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정치가 두려워 하는 부분인, 다시는 나치와 같은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공감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묘사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독일 정치의 리더십'이 부분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와는 별개로 과거 역사에서 독일의 대중운동과 관련해, "나치즘이 '유대 민족'이라는 꾸며낸 적을 상대로 하는 끔찍한 대중운동을 성공시킨 사례"라는 확고한 인식은 독일인들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의구심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2장 서두에서 저자는 "권위주의나 유사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에는 강력한 다수의 저항이 필요하고 여긴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가 지난 윤석열의 불법적인 계엄 선포와 관련된 정권 퇴진에 우리 국민 다수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과 동일한 이해라고 여겨지는데요. 또한 2장에서 저자는 우리와 튀르키예를 언급하며, "튀르키예와 한국의 학생운동이 군사정권을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고 언급하며 이 저항운동에 대한 의미를 되새깁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프리데만 카릭은, 간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해 행동에 나선 것처럼 "어떠한 폭력도 용납하지 않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 가운데, "우편 폭탄 공격까지 서슴치 않고 왕의 말 앞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을 정도로 치열했던 운동"과 같이 몸을 내던지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은 운동의 성과를 떠나 모두에게 불행한 일임은 자명해 보입니다.

카릭의 이 글에는 역사의 한 획을 차지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운동의 공감대를 이끌었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최초로 인정했던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와 '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밀크와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진지하고 상세한 설명은 이 독일인이 얼마나 진보적 시민운동에 영감을 주었던 이들 선구자들에 어떠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 짐작케 할 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유로마이단 혁명'에 대한 특별한 관점도 내비치고 있었는데요. 최종적으로 시민들의 손으로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퇴진 시킨 이 혁명은 서구 유럽의 눈에는 상당히 독특하고 예상치 못한 정치적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유럽 연합이 제시한 협정을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거부"하여 촉발된 시위는 애초에 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그저 외교 정책 노선과 관련된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시민들 사이에선 혁명으로 비화 될 정도가 아닌 단순한 사건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야누코비치가 특수기동대에 이 시위대를 급습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나서, 이 만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켜만 보고 있던 많은 시민들이 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무고한 시민들에게 린치를 가했던 '부도덕한 정부'에 대한 분노는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아주 극적인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권리는 보호 받아야 될 원칙일 겁니다. 굳이 헌법을 논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굳이 지금까지 진술한 이러한 시민적 저항 운동에 대한 필요성과 결부지어, '참여의 문제'를 강박적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수 시민들이 자신의 양심으로 표출된 의견 개진과 그로인한 저항운동의 참여는 이들이 속한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응당 용인 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미 글의 7장에서, 하버마스와 관한 분석에 이어, 마찬가지로 한나 아렌트 역시, "장기적인 정의를 위한 단기적인 법 위반이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들 편에 섰다"는 언급 역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일전에 마누엘 카스텔은 "정부에 대항해 행동에 나선 많은 시민들에게 경찰의 공권력이 내포하고 있는 공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 가운데 다수 시민들은 무조건 비폭력 저항을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은 거의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을 수반한 원초적인 저항 운동이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은 원칙적으로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글의 후반부인 10장에서, 시민들이 '체제가 가하는 폭력'에 마땅히 저항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에서는 앞서 보였던 비폭력 운동에 대한 확고한 저자의 인식에 저는 약간의 혼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동에 분별력을 잃은 "총기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워싱턴 D.C의 미국 연방 의회에 벌인 "2021년 미국 의회 점거 폭동"은 이들에 맞서는 일반 시민들의 대결 구도 그 자체보다는 정치를 나락으로 몰아가는 극우 포퓰리즘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요구하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폭력적 상황에도 중도적 의견을 내세우며 기회주의적 사고에 매몰된 일부 시민들은, 저자의 분석대로 "설사 정당한 요구라 할지라도 지나친 이기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공공공간을 유례가 없는 폭력으로 점거하는데도 대부분 방관한다"는 우파적 속성에서 기인한 극단주의적 행태에 대한 자정이 사회에서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러한 극우 포퓰리즘적 극단주의 행태는 직설적으로 "특정 인구 집단을 정체성(인종, 성별)에 따라 적으로 간주하면서 이 집단 구성원의 존엄성 그리고 민주주의에 참여할 권리를 부정하는 가장 명백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고 추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들과 동일한 시민들을 단순히 성적 지향과 성별, 인종 등으로 단순화하여 이들을 배제하거나 이들의 민주주의적 권리를 박탈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무분별한 선동 정치인과 분별력을 잃은 지지자들의 결합"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전의 미국 정치에서 티파티 운동이 드러낸 극단주의적 속성이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0장에 도출된 일부의 결론이 이를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극우 포퓰리즘은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퇴행을 부추기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더 크게는 그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려고 국민을 동원한다."는 소름 끼치는 분석 말입니다.

저자가 서두에 도출했던 바와 같이, 권위주의 정부에 처해 있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저항권을 바탕으로 체제에 반대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반란자들로 몰아갈 수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권위주의 정부가 휘두르고 있는 억압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는 이 사회의 시민들이 명백하게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는 것인데요. 이렇게 중반의 논증을 거치며 저항 운동에 대한 분명한 맥락을 짚어 본 저자는 후반부에서는 아마도 독일 정치에서 네오 나치와 같은 불온한 움직임을 염두해 두고 진술과 논증을 병행한 것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10장에서, 극우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인,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 "극우 포퓰리즘과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라면 충분히 인정이 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영향력을 키운 극단주의 정치에 대한 수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의 경고는 앞서 설명한, 2021년의 미국 연방 의회 점거와 오버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를 비롯, 지젝과 같은 지식인들이 이 연방 의회 점거에 보인 태도는 아주 분명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이 반민주주의적인 반동 세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히틀러가 선동질을 통해 바이마르 의회를 무력화 시켜 민주주의 체제를 끝장내버린 역사와 절묘하게 수렴되기까지 합니다. 나치가 주도한 대중운동이 반유대주의를 근거로 600만의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던 것처럼 극우 포퓰리즘이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을 그것에 준하는 폭력으로 귀결되지 않을 보장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역시도 괴물을 맞이해, 모두가 전혀 원치 않는 상황을 맞이할 뻔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 제목처럼 극단주의와의 전쟁은 아마도 이제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민주주의가 허락한 저항권을 악용해 민주주의 체제 또는 민주주의 근본 가치를 공격하는 극단 세력이 그런 예이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권위주의나 이와 유사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사회 변화에는 강력한 다수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극심한 폭압에 맞서 정권을 전복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근소한 차이라도 과반이 넘는 다수 또는 매우 큰 목소리를 내는 강력한 소수가 떨쳐 일어나야만 정권의 수혜자, 기회주의자, 하수인, 기득권자 세력을 누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일설에 따르면 아돌프 히틀러는 르봉의 책을 읽고 군중을 사랑이나 증오 같은 단순한 감정으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관계에는 믿음 이외의 다른 무엇인가가 함께 작용한다. ‘소셜네트워크‘로 연결된 수십만 명의 ‘팔로워‘들은 단지 정치적인 이유에서만 노이바우어를 따르는 게 아니다. 이들은 일종의 사회적 관계, 말하자면 오늘날 ‘인플루언서‘와 대중 사이에 형성되는 가상의 친밀함을 갈망한다.

우리는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 자기 자신이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봐야 달라질 것이 없어"라는 태도로 정치와 저항운동에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무관심한 태도만 보이는 사람은, 사회가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는 것에 공동 책임이 있다.

더 나아가 시민 불복종은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와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의무 사이의 "의무 갈등"이 일어날 때 자유를 지키는 방향으로 갈등을 풀어줌로써 사회의 헌법 정의를 안정시켜줄 수 있다고 롤스는 보았다.

극우 포퓰리즘은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퇴행을 부추기며,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더 크게는 그 정부에 권력을 부여하는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려고 국민을 동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자신을 반대하고 심지어 폐지하려고 하는 저항도 용인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지만, 그 딜레마는 어디까지 자유민주주의의 규칙을 지키는 상대에게만 유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그네스 그레이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앤 브론테 지음, 허진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잉글랜드 웨스트오크셔 주 브래드퍼드의 자치구 중 하나인 손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계로 당시 교구의 부목사로 재직했으며, 모친인 마리아 브론테 (결혼 전 성은 브랜웰)는 콘월의 상인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앤은 이들 사이에서 여섯 명의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그녀는 샬럿, 에밀리, 브랜웰의 여동생이었는데, 이 중 샬럿과 에밀리는 영문학에서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824년 중반,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은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를 웨스트요크셔 크포프턴에 있는 크로프턴 홀 학교로 보냈고, 그후 랭커셔의 코완 브리지에 있는 성직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외부에 나갔던 엘리자베스와 마리아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가족, 특히 아버지인 패트릭이 남은 아이들을 다시 멀리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샬럿과 에밀리는 코완 브리지에서 나와 5년 동안 이모 엘리자베스와 패트릭에게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목사관 밖의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는데 특히 앤은 이모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앤은 집에서 음악과 그림을 공부했고 아버지의 잘 갖춰진 서재에서 호머, 버질,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등의 글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 앤이 11살이 되자 가족으로부터 그녀가 "사랑스럽고 온화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이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839년 4월, 19세가 된 앤은 웨스트요크셔 주 커클리스 자치구에 소재한 미어필드 근처, 블레이크 홀의 잉엄 가문에서 가정 교사로 일을 시작하는데요. 잉엄 부부는 당시로서는 매우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녀는 이곳에서 다섯의 아이를 교육하는데 애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때의 경험이 『아그네스 그레이』를 쓰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후 1848년 9월, 언니인 브랜웰이 끊없는 음주로 건강을 잃어 사망했고, 그 직후 에밀리 역시, 큰 병을 앓게 되는데, 두 달 동안 악화되어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니들보다도 앤은 에밀리에게 마음을 열고 크게 의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지나친 슬픔은 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심한 독감에 걸렸고, 이듬해인 1월 초에 의사로부터 폐결핵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2시경,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노스요크셔 주 스카버러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gness Grey"로 지난 1847년에 출간되었고, 이번에 번역하게 된 원전은 1989년에 펭귄 클래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초 번역은 200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의 번역본은 최근인 2026년 1월에 이뤄졌습니다.

앤 브론테의 이 작품은 많은 분량의 작품인 '와이드펠 저택의 여인'과 함께 그녀의 유일한 장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아그네스 그레이'는 앤의 언니인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해에 출간되지만, 이 작품은 자매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샬럿이 관여하여, 새로운 판본이 재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앤의 이 장편은 그녀 자신의 가정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기도 합니다. 이 '아그네스 그레이'의 설정 상, 약간 흥미로운 부분은 극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그네스의 수기(手記)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고, 그녀의 언행과 내밀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 작가인 앤 브론테의 이야기로 쉽게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이 작품은 앤의 자전적 소설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아그네스의 부친은 영국 북부의 목사로 재직했고 모친은 지방 대지주의 딸로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이 결혼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했지만 자신의 딸은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이 가난한 목사와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입 초반의 상황은 그녀의 어머니와 외가는 거의 의절을 한 상태로 추측됩니다. 이런 아그네스에게는 위로 메리라는 언니를 두고 있는데, 이 둘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목사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현명하면서 검소한 태도를 지닌 모친의 절제력 있는 운영으로 필요한 하인들을 두는 등,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었지만 부친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상행이 망망대해의 난파로 마감됨으로써, 집안이 적잖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아그네스가 18세가 되자, 그녀는 부모를 설득해 다른 집의 가정교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모두 반대를 했지만 무엇보다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어른답게 자신의 몫을 하겠다는 결심이 그들의 반대를 이겨냅니다. 이런 아그네스가 처음 일하게 된 '블룸필드 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오만한 부인의 과욕으로 그 문제가 드러납니다. 특히 이곳의 큰 아들인 '도련님 톰'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거짓 술수'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어른을 수단으로 삼는 '교활함'까지 갖춘 아이인데요. 이 소년은 자신이 집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저 반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생들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까지 마음대로 하려고 곧잘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가문의 등장하는 인사들은 전부 비틀린 인물들로 '어른의 마땅한 역할'이라든지, '겉과 속'이 매우 다르게 행동하거나, 지속되는 언사와 행동들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의 돈과 지위를 바탕으로 소위 '왕국'처럼 오만하게 지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당시 상업을 기반으로 대두하고 있던 '계급들'에 대한 실질적인 내실의 빈약은 아마도 영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아그네스는 이러한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무기는 "인내심, 단호함, 끈기"로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특히 네 아이를 지도하는 가운데(물론 한 아이는 매우 어리지만) 어른도 우습게 보는 쉽지 않은 본성에 이들에게 따귀라도 쳤으면 행동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태도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작가인 브론테는 극의 지문을 통해, 이 시대 아이들의 훈율을 위해, 손을 올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에 좀 더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겸허함과 겸손을 갖추는 것을 인간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피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아그네스 역시, 매우 신실하고 스스로 종교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든지, 사람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굳이 현대식의 교육 환경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룸필드 가의 인물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에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을 블룸필드 가에서 혹독하게 보낸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우려와 연민을 뒤로 하고 다시금 가정교사 자리에 지원합니다. 아그네스는 이미 모친이 가르친 바대로 "피아노, 노래, 그림, 프랑스어, 라틴어, 독일어"까지 능통한 여성으로서도 보기 드문 교양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오만한 본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게 공개 지원을 통해서 두 번째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집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인 호턴 로지의 '머레이 가'로 떠나게 됩니다. 이 머레이 가는 마찬가지로 당시 귀족 다음으로 사회적 힘을 얻고 있었던 '젠트리 계급'으로 꽤나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가문이었습니다. 이때의 관습대로 장녀에게 칭하게 되는 '머레이 양'인 로절리는 극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상당한 미모를 갖춘 아가씨로 여겨집니다. "몸매가 완벽하고 살갖은 고우면서도 뺨에는 혈색 좋은 느낌"이 드러난다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미인임을 감안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머레이 가의 로절리는 활기차고 낙천적인 성격 이면에 사람에 따라, "차갑고 오만하며,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부목사의 배경을 갖고 있던 아그네스에게 로절리가 간혹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분별이 있는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노처녀 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즐기면서 온 세상을 유혹"하겠다는 로절리의 강한 응답은 뒤이어, 모두가 바라는 숙녀를 얻지 못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찟어 놓고 싶다는 식으로 첨언됩니다. 앤 브론테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본성에 대해, 아그네스의 입을 통해, "분별과 도덕성, 그리고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예로 듭니다. 분명 로절리는 앞선 진술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로 단순히 미모를 갖춘 소녀의 허영심 이상의 교활함을 드러내는데요. 지역의 교구 목사인 햇필드의 외모를 칭찬하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통찰력이 전무하여 그의 지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볼 수 있는 햇필드 역시, 종교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매우 오만한 인물로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아그네스는 호턴 로지 지역의 영지민들 가운데 빈한한 삶을 살고는 있지만 신실하고 겸손한 낸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햇필드는 그런 낸시를 경멸합니다. 더욱이 로절리와 햇필드 이 두 사람은 진실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위선적인 인물들로 이들의 관계 역시 그 가벼운 본성 만큼이나 쉽게 종말을 고하는데요. 여기에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로절리가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부목사인 웨스턴에 대한 아주 경박한 평가는 극의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서사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저 삶의 낙관적인 전망을 떠나 아주 안일한 결정으로 결혼을 하게 된 로절리에게 아그네스는 어떤 질투나 이죽거림의 태도가 아니라, 진실로 로절리의 혼인을 걱정합니다. 부유한 유지인 토머스와의 결혼이 그녀의 모친이 나서서 주도한 결과로 이어졌고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한 남자의 본성과 도덕성, 그리고 진실됨의 여부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안락한 삶'을 위해서만 목표로 삼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아그네스는 로절리에게 몇 번이나 조언과 우려의 빛을 보내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습니다. 특히 겸허하면서 어려운 지경의 영지민을 보살피는 웨스턴을 자신의 매력으로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로절리의 그 끝 모를 태도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중에 '애슈비 부인'이 된 로절리가 애슈비 파크로 아그네스를 초대해 이들이 몇 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 신중하지 못했던 결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과신하고 사람의 값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기적이면서 자기본위적 태도자체는 작가인 앤 브론테가 가장 경계했던 인간상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앤 브론테 역시,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시 여겼던 점인, "인간의 분별력"에 대해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분별력이 없는 인간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극의 골자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의 끊임없는 분별의 부재를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극의 서사에서 후반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 대체로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그네스의 결혼 역시 익히 예측이 된 모습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애슈비 부인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머레이가 사람들, 그리고 호턴 로지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소식을 묻는 과정에서, 제일 나중에 언급되는 이의 뜻밖의 이주, 그리고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드디어 드러나는 그의 풀네임은 이러한 정황이 소설적인 측면에서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그네스와 그와의 재회 역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했는데요. 다만,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가리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통찰이 때론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지위나 가진 부가 누군가에게 욕망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면 그 결말 역시, 분별력을 잃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 작품은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에서 도덕적인 측면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겸허한 속성, 그리고 훈련된 지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와 중요한 선택의 문제에서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누구보다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 작가인 브론테는 우리가 어떠한 인간들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소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곳의 인물들이 오가는 자연 풍경이나 한가한 일상을 담은 서사 한 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교훈을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 작품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후반부, 로절리가 아그네스에게 햇필드과 관련된 가당찮은 욕망과 그에 대한 낮잡은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 매정한 허영심이 놀랍고 역겨웠다"는 꽤나 놀랄만한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의 서사를 거의 열 번 넘게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 전체의 묘사나 서사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게 대단했던 전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저급한 측면의 본성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가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보니 노부인은 위선적이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아첨꾼, 내 말과 행동을 염탐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계층에 속한 노부인들의 버릇이었지만 그 기묘한 버릇이 이렇게까지 심한 노부인은 처음 보았다.

로절리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차갑고 오만하게 굴다가 나중에는 거만하고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게 되자 거만한 태도를 내려놓았고, 나중에는 나 같은 신분과 지위의 사람에게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갖게 되었다.

로절리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고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모와 가정교사와 하인에게 폭군처럼 굴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되자 그러한 성향이 다른 것들과 함께 더 큰 열정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고, 곧 남성을 매혹하고 싶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야망에 삼켜졌다.

"내 지위를 절대 잊지 않고 제일 훌륭한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했는데 말이에요. 당장 내일이라도 그런 남자와 무릎을 꿇고 아내가 되어달라고 애원하면 좋겠어요."

불쌍한 로절리! 그때 나는 로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가 나에게 준 모든 상처와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용서했다.

"정말 이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위와 부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자식들에게 지위와 부를 확보해주면 자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는 로절리가 무척 가여웠다. 행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의무를 경시하는 것도 가여웠지만 그 끔찍한 동반자에게 운명이 묶인 것도 가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래 본명이 이리나 르보브나 네미로프스카야인 이렌 네미롭스키는 1903년 2월,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키예프(현재는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레프 보리소비피 네미로프스키로 당시 키예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은행가였습니다. 모친인 파니 요보브나 마리골리스 네미로프스키로 그녀에게는 별다른 가정사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딸인 이렌과 적잖은 불화를 겪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어머니와의 불안정하고 불행한 관계는 그녀의 많은 작품에서 주요한 뼈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시작될 무렵의 불온한 기운을 읽은 그녀의 가족은 러시아 제국을 떠나, 잠시 핀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1918년을 그곳에서 보낸 후, 그녀의 가족은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네미롭스키는 곧 소르본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18세가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많은 딸과 유대인 은행가의 이야기를 담은 '데이비드 골더 (국내에 번역된 제목은 『몰락』)'를 출간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30년,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데이비드 골더의 원작자가 밝혀졌을 때, 당시 프랑스 문단은 여성 작가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쌓은 작가적 명성을 통해, 그녀도 파리에서 꽤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에 자신이 신청한 '프랑스 국적' 취득이 당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거부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939년에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인데요. 더욱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잡지인 '캉디드'와 같은 곳에 글을 기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덧씌워진 '유대인'이라는 혐오는 그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뿌리가 깊었습니다. 1940년이 되자 네미롭스키의 남편은 더 이상 은행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 역시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치가 수도 파리에 접근하자 그녀의 가족은 부르고뉴 지역의 이시레베크로 급히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부르고뉴와 파리를 오가며 생활했던 네미롭스키는 1942년 7월 16일부터 17일까지 비시 프랑스 정부 경찰이 독일 점령 당국의 지시에 따라 파리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한, '벨 드 이브 검거 작전'에서 '유대인 무국적자'라는 이유 만으로 연행되어, 당시 오를레앙에 있던 비시 정부의 피티비에르 수용소로 끌려갔고, 1942년 7월 17일, 982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이틀 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네미롭스키에게 나치는 유대인 식별 번호를 새겼고 이로부터 한달 후 쯤에 그녀는 장티푸스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1942년 11월 6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즉시 살해되었습니다. 작가 자신과 남편의 이 불행하고 비참한 죽음은 유대인이기 전에 프랑스인과 다름없었던 그녀의 삶 자체를 유럽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 것이며, 나치 독일은 그 엄혹한 체제 만큼이나 인간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잔혹한 행위 등을 국가 사회주의이라는 미명하에, 주저 없이 시행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es Chiens et les loups"로 지난 194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9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개와 늑대'는 그녀가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렌 네미롭스키가 쓴 이 특별한 작품의 의의는 유대인과 그 민족을 다른 여타 문학들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가 명확히 알지 못했던 1900년대의 유럽,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190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들 현지인들과 따로 분리한 '게토'가 이미 존재했다는 부분과, 이 게토가 실상은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최상위 유대인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로 거주 구역을 나눴다는 놀랄만한 서사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는, "그럼에도 돈이 많은 유대인은 쓸모가 있다'는 메타포 자체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작품 서두에 등장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에 대한 언급 역시, 이 대다수 유대인들이 실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배타적이고 몰이해적인 혐오에 직면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각지를 오가며 물건을 팔고 있는 이스라엘 시너는 아내를 여의고 홀로 남은 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아마도 키예프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의 하층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허름한 집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딸의 외할아버지인, 장인까지 부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만 사촌 동생의 부인이 남편을 잃고 그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데요. 아마도 유대인들의 관습 상, 혼자가 된 집안의 여인과 남은 가족을 친척이 부양하게 되는 의무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존의 빠듯한 생계에도 불구하고 시너는 별다른 군말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의 딸인 아다에게는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환경의 변화로 이렇게 대면하게 된 '라이사 숙모'와 마찬가지로 사촌 남매인 릴라와 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러시아 기병대'를 비롯한 군중 무리들이 유대인 게토 지역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는 당시 암묵적인 사주로 이뤄진, '포그롬 pogrom'이라는 유대인 약탈 행위이자 박해이기도 합니다. 아다의 아버지와 숙모가 야밤에 아직 어린 아다와 벤을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와중에 그들의 식모이자 하녀인 나스타샤와 부지불식간에 떨어진 이 두 아이들은 유대인 상류층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과 성은 동일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너'의 대저택이 그곳이었습니다.바로 이때, 아다의 남은 평생을 의식하고 좌우하게 될. '해리 시너'와의 극적인 조우가 이뤄집니다. 물론 이 만남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대면이기도 했습니다. 극에서 로스차일드와 비견될 정도로 부유하고 권력층과 유대가 깊은 본래의 '시너 가문'은 유대인 사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들이기도 헸는데요. 그들은 러시아 제국에서 큰 돈이 될 만한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이들 유대인들이 당시 상류층에게 특별한 '돈줄'임과 동시에, 이 가문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득에 기여할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돈 많은 유대인'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이득이 될 만하다는 서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극중에 등장하는 "유대인에게는 부유함이 곧 구원이다"라는 증언에 가까운 읊조림은 그야말로 '현실의 확인된 서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미롭스키의 이 작품은 돈이 있는 유대인 상류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과의 확연히 분리된 인식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듭 반복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 딸의 갑작스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다의 부친인 이스라엘 시너는 그에게 있어 '시너 본가'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극중에서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꾸준한 성실성'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성공적으로 시너 가문의 일에 스스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딸과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돈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요. 물론 하루 아침에 풍족하고 부유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자신의 딸에 대한, 야심만만한 야망을 갖고 있던 라이사는 딸과 조카인 아다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주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녀는 여기에 있어봤자 나날이 미모를 드러내고 있는 큰딸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라이사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마담 미미'와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강하게 설득했고 이때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외동딸인 '아다의 더 나은 교육 기회'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들불처럼 러시아를 휩쓸자, 이스라엘 시너의 사업 역시, 기존의 안정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딸과 제수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던 시너의 돈이 결국 마르게 되자 라이사는 부득이하게 생계를 위해, 그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옷 수선집'을 차리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딸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꽃피우고 있던 아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라이사는 종종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해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반추하고 그때의 기억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던 아다는 숙모의 독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자신이 돈 많은 남자를 골라 결혼했던 라이사와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는 라이사와, 아다는 완전히 대립되는 캐릭터로 자리합니다. 아마도 당시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던 많은 여성 유대인들이 가졌을 법한, 소위 '상향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아다는 무엇보다 '잔잔한 일상'과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열망합니다. 이는 단순한 서사로 봤을 때, 라이사가 그녀에게 행하는 손찌검과 증오에 가까운 발언 등이 직접적으로 아다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사촌인 벤과의 결혼을 감행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그녀가 '상향혼'을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전혀 없는' 결혼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요. 그런 연유로 그녀가 집착하는 '해리에 대한 열망'이 이런 의도적인 설정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멀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그동안 흠모해 왔던 아다와 결혼한 벤은 그 시대가 표출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추구해야 될 것은 오로지 '돈'이며, 이것은 유대인들의 숙명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다에게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마음과 반대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점'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면모 또한 함께 드러냅니다. 그런 연유로 그는 무엇보다 아다가 있는 집을 벗어나 하염없이 외부로 겉도는 상황을 반복합니다. 이런 와중에 유년 시절에 겪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제국 하의)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을 지배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극복할 수 없었던 아다는 '특유의 유대인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엄혹한 분위기이면서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안고 있던 유대인들의 면면과 그들이 처해 있던 도시와 환경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됩니다.

해리 역시, 아다와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린 시절 '포그롬'에 대한 기억을 선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 민족에 대한 양가 감정과 명확히 분리되지 못한 인식과 그것에 사로잡힌 삶을 그는 동시에 영위하고 있었는데요.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는 후반부의 서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여기에 "갈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 끈질긴 에너지, 거의 본능적인 욕구, 주변의 눈치를 볼 줄 모르는, 체면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뻔뻔함, 그의 정신 속에서 이 모든 건, '유대인의 불손'이라는 오직 하나의 이름표 아래 정리되었다" 부연 설명됩니다. 이처럼 해리는 자신이 분명한 유대인의 후손이면서도 반쯤 왜곡된 그 '유대인 정체성'을 혐오합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순수 프랑스인이었던 로랑스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애정 없이 결혼한 것이기도 한데요. 물론 그의 아내인 로랑스의 부친이 부유한 은행가이긴 했지만 해리가 돈 때문에 로랑스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그에게 장인이 되는 로랑스의 부친은 애초에 이 결혼을 반대하는데요. 그는 어릴 때부터 크게 반항하지 않은 막내딸이 해리의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식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동쪽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극심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 부녀의 서사에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생전에 프랑스 사회에서 어떠한 냉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온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당시 서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어떠한 인종주의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해리는 그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동안 유대인 전통에 따른 '혈통 결혼'에 은연중 거부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와 집안의 혈통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충동적인 모험의 길로 스스로 이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다시 해리와 재회하게 된 아다와 이들을 둘러싼 벤과의 연민과 갈등을 주축으로 극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물론 직전에 읽었던 '몰락 (데이비드 골더)'과는 다르게 극의 전환에 있어 당사자들의 '몰락'은 예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사실상 유인한 벤 역시, 아다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아다는 스스로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에 처하지만 해리의 안전과 삶을 위해 그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결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해리의 아내인 로랑스에게 있어, 아다가 차라리 그의 정부(情婦)였다면 쉽게 잊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아다와 해리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그리고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특별한 우정 관계"라는 용서할 없는 그 관계성이 자신을 더욱 나락을 이끌었다는 간접적인 묘사는 큰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계가 상당히 상투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 지속은 그야말로 '심연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가 맞게 되는 인생의 제2막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는데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는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극이 일관되게 설명했던 아다의 개인적 인생사와 맞물려, 그동안 그녀가 견지했던 삶의 방향성과 마지막의 예상치 못한 장면은 서사의 관점에서 통일된 느낌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갈망과 두려움 그 사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겠으나 만약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해리와 연관되어 있다면 마지막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독백하는 '그와의 연결성'에 대한 언급은 적당한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열린 결론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극의 종결은 어느 정도 모호하게 마무리되고 있어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두지 않았나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본문 229 페이지에 편집 오류인지 한 문장에 두 번이나 마침표가 찍혀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본문 28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책 제목과 관련해, 극의 후반부에서 '벤과 해리'로 암시 되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개와 늑대로 대비되는 이 두 종은 극명한 점과 더불어, (종과 사회적인 인식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제목의 차용 자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니콜라이 2세가 지배한 20세기 초의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의 거주가 몇몇 주거지역과 몇몇 구역, 몇몇 거리로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상점들도 군인들 틈에 섞여서 종교와 상관없이 약탈을 일삼는, ‘비렁뱅이‘라 불리는 인간 말종들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하늘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고상하고 기묘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그녀에게는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이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낙천적이고 정겹고 부드럽고 유쾌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가 그 여자아이 앞에서 그렇게 덜덜 떤 것은 그의 눈에 그 여자아이가 가난뿐만 아니라 불행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처럼 이상하고 불길하게 전염되는 불행을 표상했기 때문이다.

해리가 아름다운 책들을 집어 어루만질 때면, 아다는 그의 민첩한 갈색 손이 황갈색이나 붉은색 표지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걸 바라보며 진정한 황홀감을 느꼈다.

모든 유대인이 그렇듯,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

아다는 상류사회에 진출하거나, 인맥을 쌓고 돈을 벌기 위해 해리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여겼다.

"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 전에 너의 것이었어. 로랑스가 정확하게 봤어. 내가 로랑스 비슷한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그녀는 날 용서했을 거야. 그래, 로랑스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건 바로 너야. 우리와는 다른 누군가가 묶어 놓은 것을 푸는 건 우리의 능력 밖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